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17화 (16/34)

[스탠] 춘몽(3월의 보름을 조심하라 외)

<백억 카페>

Prologue

“어떻습니까,”

중년의 사내가 연신 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를 손수건으로 훔치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김낙원은 '뭐……'라고 하는 듯한 머뜩찮은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직 4월, 봄 햇살에 날이 일찍 풀리긴 했어도 땀이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중년의 남자가 연신 땀을 흘리는 건 날씨보다는 눈앞에 있는 이 손님 탓이 컸다.

이제 계약을 하겠다 싶으면 뭐에 기분이 상했는지, 대꾸도 없이 휙 자리를 떠버리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경험으로 이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된 중개인이 땀을 훔치면서도 운을 떼었다.

“강남 땅에 이 정도 마당 가진 2층 집은 매물로 잘 안 나와요. 이런 데는 기둥 뿌리 박고 사는 터줏대감들이라 어지간하면 이사도 안 가거든요. 이 집도 사업이 망하지 않았으면 절대 안 나왔을 집인데……”

과연 집도, 딸린 부지도 넓었다. 허스키 두 마리에 말라뮤트까지 키웠다고 하더니 그럴만한 평수였다. 낙원의 눈이 마당을 훑고나서 돌담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돌담 위로 눈길이 올라간 뒤로는 내려오지 않았다.

“아, 그게……”

중개인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게 말이죠, 이번에 들어온 고급 빌라인데 그게 참……”

돌담 위로는 5층짜리 신축 빌라가 우뚝 서 있었다. 보아하니 원래 이 돌담 위로 있었을 언덕을 이번에 대지 변경 허가가 나면서 깎아서 만든 듯 했다. 테라스 넓이만 봐도 평수도 나쁘지 않았고 전망도 나쁘지 않은, 말 그대로 고급 빌라였다.

단지 그 전망에 이 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일 뿐이었다.

그나마 1, 2층은 나무가 있다지만 저 빌라 4층 쯤 되면 이 집이 조감도로 보일 터였다.

“커튼만 열면 이 집 마당에 나와 있는 게 말라뮤트인지 허스키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겠는데.”

낙원이 중얼거렸다.

비꼬는 건지 비웃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덤덤하게 웃음섞인 그 목소리에 중개인은 자기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이젠 하다하다 이런 집을 보여주느냐 같은 비난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저, 들어오시게 되면 공사를 하실 테니까요, 그때 마당 정자에 지붕 공사만 같이 하셔도……”

중개인은 이젠 틀렸다 싶으면서도 더듬더듬 한참을 주워섬겼다. 매물 가격을 좀 깎아보겠다, 교섭을 좀 더 해보겠다, 인테리어와 조경 업자도 소개시켜드리겠다, 오로지 자신이 성의가 없었다는 이야기만이라도 피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을 때였다.

“-하지.”

“예?!”

중개인이 자기도 모르게 놀라 큰 소리를 냈다. 따사로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던 마당을 돌아보던 낙원이 싱긋 웃었다.

“그리고 한 건 더 하면 좋겠는데 말야……”

1.

“뒤쪽에 공사하는 거, 카페라는데?”

은봉은 점심 먹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나 불쑥 말을 꺼냈다.

카페 안은 아직 조용했다. 테라스 쪽으로 나간 손님 두엇이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점심과 저녁 사이, 손님들이 가장 없는 시간대였다.

최근 성주는 이 시간이면 로스팅이라면서 커피를 볶곤 했다. 커피 볶는 냄새가 카페 안에 자욱했다. 담배 연기마저 단숨에 눌러버리는 커피 향내는 카페 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힐끗힐끗 안쪽을 쳐다볼 정도로 요란했다.

요란한 건 냄새 뿐이 아니었다. 처음 그 로스팅하는 기계 값을 들었을 때에는 그 요란한 가격에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놀란 눈에 성주는 '오덕질엔 돈이 든다.' 그러고 웃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오는 손님들은 아는 듯 했다. 로스팅을 시작했다는 이야길 들으면 하나같이 놀라면서 '사장님, 드디어 거기까지 하시는군요,'하는 바람에 은봉도 이게 보통의 카페가 하는 짓은 아니라는 건 알게 되었다.

다행이었던 건, 손님들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왜 공사를 한다면서 한 달간 쉬었는데도 내장이 바뀐 게 없는지, 어디서 이런 우락부락한 나이든 알바생을 데려왔는지는 묻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카페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지라 자신이 일한 뒤에 매상이 떨어지면 다른 일을 찾겠다고 이야기했었던 은봉은, 단골인 여자손님들이 자신이 주문을 받을 때 화다닥 놀라면서 황급히 메뉴판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배짱을 가졌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여기에 저 요란한 커피 향을 풍기는 로스팅이 한 몫했다는 것도 알았다.

“뒤에?”

그때 기계를 쳐다보고 있던 성주가 물어왔다.

“어, 뒤에 주택 개조하고 있는 거.”

은봉은 그 '돈 많은 사람의 취미'라는 것 때문에 점심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는 걸 깨달았다.

실험이라도 하듯이 시간과 온도를 재가면서 기계를 다루는 녀석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잘난 녀석이니까 취미도 별나구나하고 생각했던 게 아까 들었던 이야기와 겹쳤던 것이다.

“원래 주인이 개조하고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사람이 저 이층집을 사서 카페로 개조 중인거래. 아까 점심에 밥 먹으러 갔다가 저기 인부들하고 마주쳤거든. 근데 엄청 젊은 사장이라는데, 아무래도 취미로 하는 것 같다는 거야. 돈이 진짜 많은가봐.”

돈 많은 사람들의 취미는 이런 쪽으로 오는가, 은봉은 아까 백반집에서 인부들이 하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감독한답시고 올 때마다 딱 이렇게 버티고 서서,'

백반집 한복판에서 젊은 축에 드는 인부 하나가 다리를 약간 벌리고 서서는 거만한 포즈를 해보이자 인부들 사이에 왁자한 웃음이 터졌다. '그 치에 비하면 다리 길이는 좀 짧지만 흉낸 진짜 잘 내네,'하던 조경업자가 뒤이어 주문을 했다.

'<잘 좀 해봐.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으니까.> 이 대사 좀 해-'

그러자 인부들 사이에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그런 대사를 진짜 내뱉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런 소리를 할까, 은봉이 신기한 마음에 진짜 그러느냐고 되물으려고 할 때였다. 마구 웃던 인부들 사이에서 인테리어 업자가 뒤를 이었다.

'<이건 뭐야, 어디 동남아 리조트에 드라마 협찬 촬영 나가?> 이것도 꼭 해보라구……!'

다른 인부들이 박수를 치면서 해보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나 막상 젊은 인부가 대사를 하자 다들 그 정도로는 그 재수에 발끝에도 못 미친다고 아우성을 쳤다.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이를 가는 폼들이 과장같지가 않아서, 은봉은 어정쩡하게 그 사이에서 욕만 한참 듣고 말았다.

“……사장이 직접 커피를 만든다는 거야?”

성주가 재차 물어왔다. 은봉은 재빨리 기억을 더듬었다.

“뭐라더라, 꽃집하고 같이 하는 카페래. 사장이 직접 하는 건 아니고, 커피하는 사람들을 부른다던데.”

“어디서?”

막 로스팅한 커피를 그라인더에 넣으면서 황성주가 물었다. 은봉은 기억을 더듬었다.

“미학이던가, 박…… 박이추……?”

대답하던 은봉은 설마 녀석이 경쟁업체가 생긴다고 신경을 쓰나 싶어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잘 알 수가 없는 황성주에게도 이런 인간적인 부분이 있나 싶어서였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 맛만큼은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으니 혹시 모른다.

그러나 녀석은 그 뒤로는 조용히 커피를 내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은봉은 그런 의구심은 곧 잊어버렸다.

커피를 천천히 내리자 커피 냄새가 카페 안에 두 번째로 확 퍼졌다. 테라스에 있던 단골손님들은 이 두 번째의 향기에 재빨리 반응했다. 이제 제법 카페 알바의 태가 잡혀 있던 은봉은 곁눈질로 테라스를 보고 있다가 손님들이 부르자 바깥으로 나갔다.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일이 꼭 필요하면 카페에서 해라, 라고 한 것은 황성주였다. 혹시 폐를 끼치게 될까봐 성심성의껏 일을 배우면서도 은봉은 못내 스스로가 신경쓰였더랬다.

그러나 생각 외로 카페의 손님들이 알바생에게는 크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걸 안 뒤로는 서빙하기가 조금 편해졌다.

'제시간에 커피가 손님 앞에 놓여지기만 하면 된다.'

성주는 그렇게 못을 박았다. 그리고 최근엔 칭찬도 했다. '내 밑에서 한달 넘게 버틴 건 너 뿐이다.'라고.

“지금 로스팅 하신 거요, 저희 리필해주실 때……”

손님의 말에 은봉은 '예,'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리필 주문을 받아서 되돌아왔다.

“지금 내리는 걸로 리필해달라고 하시는데,”

그러나 자신이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던 성주는 웬일인지 바로 커피를 따르지 않았다. 음, 하더니 몸을 일으킨다. 은봉은 왜 저러나 싶어 성주의 뒤를 쳐다보았다.

성주가 테라스로 나가서 손님들에게 정중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들려왔다.

“아직 제가 로스팅한 게 품질이 좋지 않아서 돈을 받을 만큼의 상품이 못됩니다. 미학에서 받아온 게 남아있는 데 이걸로 드려도 될까요?”

'저런, 사장님 하신 것도 먹어보고 싶은데,'하던 손님들이 그러시라고 곧 웃으면서 응했다.

그제야 은봉은 자신이 점심에 들었던 미학이라는 이름이 왜 낯설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이 카페로 들여오던 커피 브랜드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어, 하고 놀란 은봉의 귀로 황성주의 뒤이은 말이 들어왔다.

'다음번엔 다른 곳에서도 한 번 받아 와 볼까 하거든요. 박이추라고, 아시죠?……'

은봉은 자신이 가져온 이야기가 성주에게 정말로 신경을 쓰게 만들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황성주는 그 카페가 오픈하던 바로 그 날까지, 로스팅을 하루에 3회로 늘리고 박이추와 미학에서 원두를 받아가며 테스팅을 계속했다. 의대시절 일주일에 최소 130시간을 공부했다는 그 정열을, 은봉은 앞치마에 찌든 커피냄새로 알게 되었다.

뒤편의 카페가 오픈한 날은 4월 27일, 5월을 삼일 앞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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