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12화 (11/34)
  • 12. 회귀

    "어째서 발포했습니까."

    "두부(頭部)를 조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청원을 기다리지 못하고 단독행동을 한 이유는……."

    질문은 쏟아졌다.

    낙원은 계속해서 대답했다.

    도주의 위험이 있었다, 조준했다고 경고했는데도 앞으로 다가왔다, 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째서 머리를,"

    "이봐요."

    낙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의 손을 들어보였다. 오른손엔 구급요원이 싸매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저는 경찰연수라고는 8주밖에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딜 노리고 쏜다는 게 가능이야 하겠어요?"

    손이 부어 있었다는 이야기에 조사관들이 총의 반동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하더니 잠시 나갔다.

    눈앞에서 놈들이 사라지자마자 의자에 앉은 낙원의 얼굴에서 여유와 웃음이 뜯겨 나갔다.

    손을 옆으로 늘어뜨린 낙원의 머릿속엔 아까부터 한 가지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놈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아직도 귀를 기울이면 놈의 미약한 심장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깨져버린 램프 안에서 불안하게 흔들리는 촛불처럼, 피 흘리는 놈에게서 들렸던 그 꺼질 듯한 심장소리. 그 심장은 어디까지 뛰었을까.

    혹여 그나마 뛰고 있던 그 심장도, 지금쯤 이미 하얀 천을 덮고 나와 버린 게 아닐까.

    '수술 중입니다.'

    조사실에 들어가기 직전 서경위가 마지막으로 전해준 한 마디였다.

    수술중입니다. 그 이후에 대해선 그는 만 하루가 지나도록 듣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때 인질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끊임없이 질문만을 던진다.

    무어라 묻고 나면 저들끼리 나갔다 들어와 도로 질문만을 하는 조사관들을 향해, 김낙원은 힐끗 짜증스런 시선을 던졌다.

    단 한 마디면 되었다. 한 마디면.

    그러나 그는 그 한 마디를 듣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차라리 지하창고에 있을 때가 나았다.

    그땐 적어도 눈앞에 놈이 있었다.

    조사관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을 때에도 조금은 나았다.

    제일 견디지 못하는 때가 혼자 있을 때였다. 불안에 직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렸다.

    죽었을 거야. 낙원은 초조하게 생각했다. 미동도 없었던 놈의 몸이 떠올랐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맥없이 쓰러져 있던, 박목화의 몸.

    피가 흘러 고였다가 말라붙었던 흔적들. 깊게 누른 뒤에야 느껴졌던 심장소리.

    절망만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그때 남아있던 네발의 총알로, 차라리 날 쏴버릴 걸 그랬어.

    깊숙한 절망 속에서 낙원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한 뒤에는 다른 방향의 희망이 뒤이어 흘러나왔다.

    3년 전 똑같은 상처를 입은 놈을 병원에 보냈지 않았던가. 낙원은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살았을 거야.

    살았을 거야…….

    강한 놈이었다. 그렇게 협박을 하고 깔아뭉개도 단 한마디 신음조차 내뱉지 않은 놈이었다.

    아래에 깔려서도 휘두른 주먹 한방에 아직도 배에는 멍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손을 망가뜨린 건 자신이었다.

    구급요원이 붕대를 감아준 오른손을 의자 옆에 늘어뜨린 채 낙원은 절망의 도돌이표를 끊임없이 찍고 있었다.

    조희용을 죽인 걸 후회하는 건 아니었다.

    그것만은 경찰이 되길 잘했다고 백번은 더 생각한 듯 하다.

    살인죄의 적용보다 징계를 논하고 있다는 이 현실 자체가 그에게는 경찰이 된 데 대한 충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단지 놈을 상대한 시간이 미칠 듯이 아까웠다. 절망에 차 딴짓을 했던 시간이 그를 더더욱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 1분 1초를 모아 놈의 심장에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번만 더 놈을 보고 싶었다. 한번만 더.

    그렇지만 만약 놈이 하얀 천을 뒤집어 쓰고 있다면.

    "……."

    낙원은 숨을 삼켰다.

    그는 잠시 얼굴에 양손을 가져다댔다.

    흐으, 누구에게도 들려줄 수 없는 신음이 비통하게 흘러나왔다.

    심장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자신이 없는 곳에서 놈이 혼자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자신이 놈에게 여태껏 무슨 짓을 했던가라는 후회에.

    조사를 받고 있는 중에는 수갑만 채우지 않은 피의자와도 같았다.

    돌려보내는 법 없이 긴 의자에서 선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대강 면도를 하고, 도로 조사실로 들어왔다.

    김선도 박광우도 그 뒤에 잡혔는지 어쨌는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놈의 생사 뿐이었다.

    외부와의 어떤 접촉도 차단된 상태에서 이틀이 지나자 점차 불안이 사라졌다. 이미 모든 게 끝났을 것만 같아서였다.

    서경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온다 해도 가장 가능성 높은 대답은 뻔한 것이었다.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건 이제는 혼자라는 절망과 후회였다.

    제공되는 백반을 먹을 때마다, 낙원이 딸깍거리는 자신의 수저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수저를 내려놓았다.

    전에 놈에게 혼자 먹는 게 얼마나 괴로운 지에 대해 그럴싸하게 늘어놓았던 그 말들이, 고스란히 자신을 향해 돌아왔다.

    ……죽은 자가 먹는 것처럼 아무 맛도 없어진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채 늘어놓았던 말이 비수가 되고 화살이 되어 그대로 자신에게 꽂혀 들어왔다.

    전에 놈과 밥을 먹었을 때가 하나하나 기억이 났다.

    쇼마이부터 시작해 입으로 길들이다시피 부지런히 사다 날랐던 음식들.

    이제와선 무엇도 맛을 느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보기 싫어했던 놈의 방법대로 의무적으로 밥을 먹고 찌개를 퍼먹으면서, 오로지 위장만을 채우기 위해 밥을 먹었다.

    다 그 새끼 때문이었다.

    낙원이 숟가락을 집어던졌다. 챙, 소리가 방을 울렸다.

    "젠장,"

    젠장. 낙원은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입맛과 함께 날짜도 사라져갔다. 며칠째 여기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선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는 동안 언제 놈이 죽어가고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깨어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놈이 지하창고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이리저리 사소한 이유들로 놈의 고통을 외면했던 기억이 떠오르면 잠이 들다가도 다시 눈이 떠지곤 했다.

    이토록 누군가를 보고 싶었던 것도 처음이었다.

    이토록 그 곁에 있고 싶은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있지 못한 것도, 처음이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문답에서 낙원의 웃음이 완전히 걷혀갈 때쯤, 딸깍.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또 바뀐 모양이었다. 고개조차 들지 않는 낙원에게, 뜻밖의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낙원아,"

    최검이 어색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랬냐, 너답지 않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낙원을 보면서 담당 검사로 온 최검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라면 징계당해. 한 달간 정직에 감봉 조치 들어가는거 알지. 너, 그래도 괜찮으냐?"

    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잘 알고 있었다. 다시는 수사현장에 투입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승진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도, 수사부에서 자리를 옮겨야 할 지 모른다는 사실도. 그러나 아무래도 좋았다.

    가고 싶었다. 죽었든 살았든 놈이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지금 당장 놓아주기만 한다면, 뭘 어떻게 하든 상관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는 놈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최검은 한숨을 쉬었다.

    "언제는 맨홀에 빠진 사람들 구경하는게 좋다고 하더니, 어떻게 너야말로 꼭 그렇게 빠진 사람 같으냐……."

    최검이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진술확인서였다. 수없이도 되풀이했던 기계적인 답을 채 다 훑어내리지도 않은 채 낙원이 왼손으로 펜을 쥐고 사인했다. 그리고 일어났다.

    최검은 제지하지 않았다. 검사가 확인서 아래에 싸인을 하는 동안 낙원은 창문으로 다가가 블라인드를 걷었다.

    햇살이 짜증날만큼 환했다. 눈이 부셨다.

    처음으로 낙원이, 최검에게 말문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차마 크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낙원이 작게 물었다.

    "너, 그 놈 어디 있는지 아냐."

    누구, 하고 최검이 고개를 들었다.

    * * *

    "형님,"

    목화는 병원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김원일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동생들의 덩치로 꽉 찬 병실 안에서, 용케 자리를 잡은 김원일이 사과 한 조각을 든 채물었다.

    "과일이요, 형님."

    목화는 고개를 내저었다. 둘째가 부지런히 보따리에 싸온 다른 과자를 내놓았다.

    "다른 것도 많으니까 천천히 드시라구요, 형님. 참, 그런데 경찰이 총 쏘면 안 된다는 거 형님은 알았소?"

    목화의 눈이 약간 커졌다. 목화가 답할 사이도 없이 동생들이 끼어들었다.

    "글쎄 난 그런 줄 처음 알았다니깐."

    "총 들어도 무시할까봐 이젠."

    넷째가 킥킥대며 한 말에 둘째가 오류를 잡았다.

    "그게 아니구 머리에 쏴서 그런 거잖아, 머리에. 괜히 뻗대지 말어."

    원일이 재빠르게 다시 말했다.

    "경찰이 머리에 총 쏘면 안 된다는 거 아셨…, 어라. 누구라도 그건 안 되긴 하는 것 같은데……."

    원일이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그때 그 형사양반이 희용이 머리를 박살내서 징계받는 댑니다. 형님 중환자실 계실 때 경찰들이 그것 때문에 몇 번 왔는데, 의사들이 경찰보다 더 세더라구요? 막 거절하니까 쪽도 못 쓰고 그냥 가더구만요."

    둘째의 말에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어, 의사가 더 센 것 같어."

    "그 양반도 꽤 화끈하죠?"

    셋째의 말에 원일이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난 똑같이 두번 쑤셔줄 생각박에 안 했는데 말이지."

    요즘은 형사가 더 조폭 같다는 둥, 흉악범 대하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둥 하는대화가 오갔다. 그동안 목화는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문을 벌컥 열었다.

    "……!"

    제일 먼저 맞은 건 김원일이었다.

    "이야- 저 양반 이제 양반으로 부르면 안 되겠네……."

    거기에 서 있던 건 방금 전까지 이야기 하던 형사양반, 김낙원이었다.

    그러나 낙원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듯 했다. 그의 시선은 침대에 앉아있는 박목화의 얼굴에 고정된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목화가 고개를 돌려 원일에게 한 마디 했다.

    "가봐라."

    형님 말이라면 그저 말없이 복종하고 보는 김원일이었다. "얘들아, 가자." 이 한마디로 모두가 일어났다.

    "몸 조리 잘하십시오, 형님."

    다 같이 합창한 놈들이, 돌아서서 나오면서 문간에 서 있던 김낙원에게 한 마디씩 했다. '화끈하쇼', '빚져 버렸네' '형님 목숨 빚은 언젠가 갚아드릴 테니까는', '잘 했소'…….

    그리고 모두 나간 뒤에야 낙원이 한 걸음,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 시끄러운 소리들이 사라져갔다.

    낙원이 성큼성큼, 문에서부터 다가왔다. 목화가 놈을 쳐다보았다. 바로 옆까지 다가온 낙원의 얼굴에 잠시 목화는 놀랐다. 놈은 그 사이 몰라보게 까칠해지고 말라 있었다. 면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얼굴에 구겨진 옷차림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놈이야말로 어디 병원에 입원했다 나온 사람 같았다. 대체 어딜 다녀온 거냐는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놈이 갑자기 그를 밀어 눕혔다.

    "……!"

    무슨 짓인가 싶어 목화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미처 밀쳐내기 전에 놈은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댔다. 목화는 잠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놈은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분명하게 뛰고 있는 소리를 낙원은 듣고 또 들었다. 놈이었다. 그 빌어먹을 박목화였다. 분명하게,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소리가, 뇌에서부터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져 내부로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팔요했다.

    낙원이 숨을 들어마셨다. 놈의 가슴과 배가 같이 움직였다. 낙원은 몇 번이나 숨을 내쉬었다. 몇 번씩 확인한 뒤에야 낙원은 놈의 환자복을 서슴없이 풀어헤쳤다. 놈이 놀라서 그의 손을 쥐었다가, 뭐에 놀랐는지 힘을 풀었다. 그러나 낙원의 눈은 오로지 새로 생겨난 놈의 상처에 멈취 있었다. 세 개째였다.

    짜증을 내는 양 한참을 말없이 미간을 찌푸리고 서 있는 낙원을, 목화가 어이없어하며 쳐다보았다.

    "……다쳤냐."

    먼저 말문을 연 것은 목화였다. 낙원은 목화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내려 보았다. 목화가 보고 있는 건 낙원의 오른손이었다.

    "조금."

    낙원은 그렇게만 대답했다. 목화가 다시 물었다. 잠시 양쪽이 바뀐 것 같았다.

    "징계 받았다면서."

    낙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목화가 조금 있다 물어보았다.

    "왜 그랬냐."

    "……."

    목화는 잠자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곧은 눈이었다. 그 익숙한 시선에, 낙원은 점차 정신이 들었다.

    낙원은 입을 열었다.

    "네가 죽을까봐 그랬지."

    목화는 되물었다.

    "죽은 줄, 알지 않았어?"

    "……!"

    설마 다 들었던 건가. 낙원이`쳐다보자 목화가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멱살 잡았던 것까지는, 이라는 듯 했다.

    그때 대체 무슨 소리를 했지. 기억을 더듬던 낙원은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물었다. 병실이라는 걸 깨닫고는 담배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목화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병신새끼야', 라던가.

    '정애도 박광우도 김원일 네들도 다 죽여 버린다.' 는 이야길, 들었던건가.

    낙원은 잠시 변명했다.

    "이제 총 지급 받을 일 없으니까."

    목화가 피식 웃었다.

    "다행이군."

    놈이 웃는다. 살아서, 웃는다.

    낙원이 웃는 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문득 그 말을 할 때의 절박했던 심정이 생각난 낙원이 불쑥 내뱉었다.

    "다행은, 배때기에 구멍 내놓고 다행이냐?"

    놈의 배에는 이제 상처가 세 개였다. 방금 전 보았던 그 상처들이 생각난 낙원이, 곧이 꼬여 물었다.

    "어떻게 하면 같은 놈한테 두 번을 찔리냐?"

    "……."

    '막내'니까 그랬냐? 말없는 놈 앞에서 낙원이 화를 냈다.

    "찔린 놈한테 또 질리는 바보도 있냐? 네 배에 흔적을 쌍으로 아로 새기니 좋든?"

    화가 났다. 놈은 살아났다. 그런 만큼 억울하고 또 화가 났다. 쓰러진 놈 앞에서 했던 말은 발악이었을지 몰라도, 살아난 놈 앞에서 꼬이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최소한 낙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왜 반항 한번 안 해보고 끌려가냐? 넌 김정애가 네 목숨보다 중요하냐? 나는, 나는 그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기나 하냐?"

    나뒹구는 모판을 보았을 때엔 숨이 막히는 줄 알았다. 그날 아침부터 뭐에 맞기라도 한 듯이 숨이막히고 힘이 풀렀다. 죽은 줄 알았던 놈을 보았을 때의 그 절망이, 놈을 흔들 때의 그 절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 채 쳐박혀있을 때의 그 저망이 다 같이 분노로 덮쳐왔다.

    네 목숨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냐고. 낙원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누구를 위해서 버릴 만큼 하찮은 목숨 아니라고. 너는 내가 두 번이나 살린 목숨이라고. 어딜 함부로 버리느냐고. 너야말로 내가 본 중 최고로 재멋대로고 맘대로인 인간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놈 때문에 버린 건 자신의 '길'이었다. 멀쩡하게 포장된 도로를 혼자서 달려가던 자신을 자빠트려놓은 놈이, 감히 다른 자를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네가 김정애 대신 가 죽었으면, 내가 그 여잘 죽여 버렸을 거야."

    그깟 여자 하나 죽이는데 무슨 총기가 필요할까. 얼마든지 죽여 주마 하고 낙원은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만 네 목숨이 중한 지를 알겠다면 얼마든지 죽여주겠다고.

    박목화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를 간신히 가라앉힌 낙원이 돌아섰다.

    "깨끗이 나아서 돌아와라."

    그리고 낙원은 병실을 나갔다.

    -목화, 박목화.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만 가던 어둠속에서 누군가 그토록 불러대었던 것을 목화는 기억했다.

    '죽일 거다', '다 죽여버릴 거다'…….

    악에 받힌 목소리였다. 보낼 수는 없다고 폐부에서부터 악을 쓰고 소리치는, 그 막막한 어둠에 시비를 걸고 싸우려 하던 그 목소리.

    한 길 두 길, 어둠 속으로 쳐박혀 들어가던 그를 일깨운 건 놈의 총소리였다. 조희용을 쏜 놈이 멱살을 잡고 다 죽여버리겠다는 소리쳤을때부터, 기억은 띄엄띄엄 의식의 표면을 겉돌았다.

    "형님, 이제 가시죠."

    퇴원 할 때까지 결국 놈은 오지 않았다. 옆에 서 있던 원일을 보고 목화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제멋대로라고 생각했다.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날 화를 내고 간 뒤엔 놈을 보는 눈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까지 오지 않은 건, 뜻밖이었다.

    역시 뭘 생각하는지 모를 놈이라고 목화는 생각했다.

    짐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실려 왔을때의 옷가지는 피가 엉겨 입을수가 없었다. 지금 입은 건 동생들이 사다준 셔츠와 바지였다. 아직 빨리 걸으면 배가 조금 당겼다. 생사를 헤맸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걸을만 했고 움직이만 했다.

    목화는 병원비를 계산하고 동생들이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만류한 채 택시를 탔다. 꽃집앞에 검정색 벤츠를 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몸조리 잘 하십시오, 형님!"

    원일이가 인사할 때 둘째가 기사의 무릎에 이만원을 찔러주었다.

    가게를 가지 않은 지도 벌써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갔다. 말라죽었을식물들을 치울 생각을 하자 잠시 가슴이 답답해졌다. 핸드폰도 가게에 있을 것이다. 그간 동생들을 통해 누님에게 연락을 드리긴 했어도, 퇴원했다고 말씀은 드려야 할 듯 했다. 자신 때문에 납치당했던 공포는 깨끗이 잊은 채 병원에 와서 괜찮냐고 묻던 누님을 떠올리고 목화는 잠시 웃었다.

    "저깁니다."

    눈에 익은 역사입구가 보였다. 택시 기사에게 서달라고 말하던 목화가,잠시 눈을 크게 떴다.

    꽃집 문이 열려 있었다.

    "……?!"

    택시가 섰다. 목화는 택시 기사에게 만원을 건네고 거스름돈을 받는둥 마는 둥 하며 택시에서 내렸다.

    설마 누님이 여기까지 해주실까 생각했지만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누가,라고 생각했을때였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약간 빨리 걷자 배가 당겼다.그래도 목화는 묵묵히 걸음을 서둘러 계단으로 향했다. 꽃집이 보였다. 가게 앞에는 물을 막 준 듯한 모판이 순서대로  나와 있었다. 목화는 잠시 계단앞에 멈춰섰다.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꽃집안에서 들려왔다.

    "안녕히 가세요-,"

    손님이 나오고, 그리고 놈이 나왔다. 꽃다발을 내놓으려는 모양이었다.

    가게 안으로 나온 녀석이 문득 계단 쪽을 쳐다보았다. 멍하니 쳐다보던 목화와 눈이 마주 쳤다

    "……."

    아무 말도 못하고 있던 목화를 보고 낙원이 싱긋 웃었다.

    오라는 듯이 손짓하고는 꽃집 안으로 들어가는 놈의 뒷모습을 보고도 목화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목화가 가만히 서 있자 놈이 도로 나와 그에게 소리쳤다.

    "뭐해, 돌아오라니깐."

    ……그 말이, 그 뜻이었나.

    목화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어딘가로 돌아가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집을 떠나 이래 어딘가로 '돌아가' 본 적이 그는 없었다.

    돌아가기 위해선 있을 곳이 필요했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자신만을 위해 기다려준 사람은, 놈이 처음이었다.

    차가운 바닷물에 머리끝부터 잠겨 떨어지던 아기 적의 그를 뭍으로 끌어올려주었던 테왁의 주인은, 어쩌면 놈과 닮았을 지도 몰랐다.

    믿어도 될까. 반사적으로 한 생각에 목화는 피식 웃고 말았다. 지금 여기에 있는 녀석에게 그런 생각부터 하는 건 어리석었다.

    목화는 천천히 계단에 발을 내딛었다.

    그새를 못 참은 놈이 도로 꽃집 앞에 나와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목화는 계단을 올라, 돌아갔다.

    * * *

    병원을 나와 걷는 길에는 완연한 여름빛을 띤 햇살이 내리쬐었다. 양복 상의를 벗은 낙원이, 문득 한쪽 주머니가 무겁게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주머니를 더듬했다. 핸드폰이었다.개인소지품을 주머니에 받아넣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것을 떠올리고 낙원이 핸드폰을 켰다.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14개의 새 메세지가 있습니다'라는 메세지가 화면에 떴다. 낙원은 최근 메세지를 눌러보았다.

    <오빠하고는 끝이야.>

    그 전에 메세지는 '지금 연락하지 않으면….' 이었고, 그 전 것도 마찬가지였다. 근 2주에 걸친 메세지를 본 낙원이 피식 웃고는 간단하게 답장을 넣었다.

    <미리 말해줘서 고마워>, 였다. 진심이었다.

    이 자존심 센 미인 아가씨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 것이다.

    문자를 넣느라 서 있던 낙원이, 고개를 쳐들었다. 병원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하얀 칠을 한 벽도 유리창도 하나하나 눈이 부셨다. 그러나 낙원의 눈은 아까 들었갔던 병실을 찾아, 놈을 찾아 한 층 한층 더 듬어 올라가고 있었다.

    놈은 내 것이다, 낙원은 웃으면서 생각했다.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놈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놈을 아주 잘 알았다.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는 주제에 믿음을 주기는 두려워하는, 목숨보다 신뢰가 중요한 아르마딜로, 그 주제에 배를 간질이면 결국 목숨보다 귀한 신뢰를 토해내고야 마는 약한 녀석. 너무나 강한 주제에, 너무나 약한 놈.

    내가 놈을 믿으면 놈은 나를떠나지 못한다.

    낙원은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놈은 누구도 먼저 떠난 법이 없었다. 버림받으면 버림받고, 떠나라 소리를 들은 뒤에는 떠나도,찔려놓고도 아직 뒷말이  남았다고계속해서 뒤돌아보는 놈이었다. 저런 놈이 먼저다가와 잡은 자신을 떠날 수 있을 리 없었다.

    한층 한층, 햇빛에 반짝이는 유리창을 시선으로 타고 오르며 낙원은 싱긋 웃었다.

    자신은 놈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놈도 나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놈은 내 것이었다.

    놈이 있는 병실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시선이 멈춘 낙원이, 놈이 돌아올 것을 만들 차레였다.

    정직(停職)기간이 한 달이라 했던가…….

    휴가가 길어서 좋군.

    낙원은 담배를 물고 천천히 걸어갔다. 여름바람에 연기가 춤추듯이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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