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7화 (6/34)

7.

이렇게 많이 해놓아도 될까.

「…….」

박목화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7월 오전 9시 30분이었다. 티슈를 뭉쳐놓은 것 같은 카네이션이

냉장고 안에서 빨간 구름처럼 넘실거리다 못해 바닥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꽃천지였다.

켜켜이 쌓인 꽃바구니는 천장까지 닿아 있었고, 양동이마다 물에 담근 오아시스로 한 가득이었다.

어린이날부터 이틀간 아주머니들과의 협력 끝에 이뤄낸 진풍경이었다.

장관이라면 장관이었지만, 경험이 없는 목화에게는 불안감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

과연 이렇게 많이 나갈까.

그 자신 단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는 카네이션이었다.

파는 경험은 고사하고 사본 경험도 없는 목화는 도저히 이 정도 양의 꽃이 하루에 팔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 자리에선 꽃바구니 800개가 팔린다는 것도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 였다.

그래도 정애 누님이 그렇게 말했으니 그럴 것이다.

목화는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다 만든 건 아직 200개뿐이었다. 꽃을 꽃아놓은 바구니는 겹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공간상 그 개수가 한계였다. 그나마도 냉장고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가게 안에 가득 찬 건 오아시스를 잘라 넣고 편백만 꽃은 준비 상태의 바구니로, 그나마도 300개밖에 되지 않았다.

눈으로 보면 장관인 규모였지만, 개수로 치면 아직 누님이 말한 숫자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오늘 하루 안에 만들고 판다는 게 가능한 개수인지도 몰라도 여하간 누님 말은 지켜야 했다.

누님이야 '이번엔 경험 삼아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봐' 하고 몇 번이나 이야기해줬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없었다.

「사장님, 이렇게 만들면 되나요?」

바깥 판매대에 나가 서 있던 알바생 두 명 중에 하나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물었다. 코사지를 만드는 중이었다.

며칠간 꽃 다루는데 익숙해진 목화가 맞다고 끄덕였다.

「우와, 차가 여기까지 들어오네.」

그때 알바생 하나가 소리를 냈다.

목화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로 트럭 한 대가, 당당히 포석 깔린 인도위로 후진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트럭 뒤로 가득 쌓인 꽃이 보였다.

누님이 보냈구나, 목화는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들어오면 안 되지 않나 싶었지만 운전사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듯 했다.

역사 계단 바로 앞에 세우는 것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목화가 뛰어나갔다. 이렇게 된 거 물건을 빨리 내리고 보내자 싶어서였다.

비듯한 생각을 한 모양이다. 트럭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엇, 하는 사이 남색 조끼에 로고 모자를 눌러쓴 택배 직원들은 꽃을 한 아름씩 들고 계단을 올라서고 있었다.

목화가 결국 다시 올라가 꽃집 문을 열었다. 직원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운전사가 내리나 했더니 보조석에서도 한 명이 내리고, 뒤에서는 세 명이 차례로 꽃을 들고 내린다.

줄줄이 꽃집으로 들어온 다섯 명에 목화가 잠시 당황했을 때였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택배 직원 소리 없이 유리문을 닫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

박목화의 얼굴이 한 순간 단단해졌다.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꽃가위를 집은 목화가

손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늘어뜨려 가위를 앞치마 뒤로 감추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통로 같은 꽃집이었다.

바구니와 꽃으로 둘러싸인 지금에 와서는 남자 하나가 간산히 지나갈 정도로밖에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다섯이라고 해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다.

박목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은 필요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나중에 한 놈만 잡아 물어도 충분했다.

아직 놈들은 꽃도 내려놓고 있지 않았다. 다섯 중 가장 앞에 선 놈의 앞으로 가위를 숨긴 목화가 성큼 다가섰다.

막 손이 앞으로 나오기 직전이었다.

「형님,」

「……!」

목화가 멈칫한 사이, 제일 앞에 서 있던 택배 직원이 꽃을 내려놓고 재빨리 모자를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너무나 익숙하다 못해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목화 형님!」

낯익는 얼굴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었다.

목화가 오로지 '하나만 알고 한 길만 가는' 동생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원일아……」

수없이 불렀던 이름이었다, 3년 전에는.

김원일이 감격에 겨워 목화에게 달려들었다.

「형님, 이게 대체 얼마만입니까요.」

목화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뒤로 물러났다. 그래도 꽃가위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은 것이 그의 최선이었다.

다행히 그가 뒤로 물러난 것도, 꽃가위를 쥐고 있었다는 것도 원일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했다.

「야 뭐하냐, 빨랑 인사 안 드리고.」

김원일은 고개를 돌려 뒤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머지 네 명도 기다렸다는 듯이 차례차례 꽃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었다.

「형님.」

「목화 형님……!」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매일매일 같이 붙어있다 못해 '이러다간 장가도 못하겠다, 이놈들아' 하고 농담하던 얼굴들이었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깊은 사이라 생각했던 놈들이었다. 3년 전에는, 그랬었다.

3년 전에는.

오랜만에 다섯에게 둘러싸인 목화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형님 마르셨구만요. 감방 생활이 많이 까칠했지요. 큰형님이 말리시는 바람에 그 동안 면화 한번 못 가보고……」

'큰 형님' 소리에 목화 얼굴이 잠시 굳었다.

「여긴, 어떻게 알았냐.」

원일을 그런 말이 나올 줄 이미 예상한 듯 했다. 으쓱거리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알긴요, 형님도. 저희도 다 머리가 있고 경험이 있다 아닙니까. 이중에 빵(감방) 안 다녀온 놈이 누가 있습니까. 특사 소리 듣자마자 딱 신원보증인 찾아가려고 준비해뒀죠.」

군대도 아니고, 다녀왔다고 뻐길 경험은 아닌 듯 싶었다.

그러나 김월인은 여기까지 찾아온 스스로에게 잔뜩 도취되어 상식 따윈 잊고 있었다.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은 전과 다름이 없다.

목화의 어깨에서 힘이 좀 바졌다.

「그런데 큰 형님께서 한 달만 참았다 가시라고 하시는 겁니다. 저희가 면회 가면 나올 것도 못 나온다 하시더니만, 가석방 나온 지 얼마 안 되서 가면 형님이 또 여죄던가, 하여간 추궁만 받는다고 하시지 뭡니까. 그래가지고 저번 달에야 간산히 누님을 만나 뵈었죠.」

「누님?」

듣고 있던 목화가 되물었다.

옆에 서 있던 넷이 입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꽃 누님 말입니다요.」

「형님 누님이요.」

「왜 고속터미널……」

김원리이 잽싸게 말을 뺐었다.

「정애 누님 말입니다. 찾아가 뵈었더니, 형님이 그렇지 않아도 무슨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시더라니까요. 큰 형님 선견지명이 아주 죽인다 아닙니까. 처음엔 가지 말라고 하시는데 형님을 3년간 못 뵈었으니 저희가 더 참을 수가 있어야죠. 저희가 너무 절망을 하고 있으니까 누님게서 가라사대, 꽃집이 제일 바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때라 하시더구만요.」

목화가 낮게 물었다.

「누님께 실례되는 짓은, 하지 않았겠지?」

김원일이 그 자리에서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형님의 누님이신데요…!」

이, 삼, 사 , 오가 다 같이 펄쩍 뛰었다.

「저흰 아주 공손하게 가자마자 '누님' 하고 빌었을 뿐인데요.」

「그저 누님, 누님하고 서너 번 부르니까 누님께서 왜 본인이 누님이냐고 화를 벌컥 내시기에……」

「형님의 동생이니까 형님 누님은 누님이라고 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보아하니 누님에게 해코지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목화는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했다.

「알았다. 그만 가라, 바쁘다.」

누님이 받아주고 보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목화는 누님의 판단을 믿었다.

그렇지만 무작정 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포옹을 할 수도 없었다.

일단 밀어내는 것이, 목화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었다.

「그만 가라니요, 형님…! 바쁘시다면서요, 가장 바쁜 날이라면서요. 바깥에는 저 허여멀건한 기집애들 둘밖에 없던데 어떻게 형님을 그냥 두고 갑니까.」

그러나 그를 돕는 데에는 절대로 쉽게 물러나는 김원일이 아니란 걸, 오랜만에 만난 목화는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원일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뒤에 서 있던 동생들도 차례차례 팔을 걷어 부치려는 걸 목화가 저지했다.

「그러지 마라. 누가 보면 일 난다.」

「하이구, 형님도.」

김원일이 자신만만하게 모자를 든 손으로 자기 조끼를 탕탕 쳤다.

「이거 쓰고 이렇게 입으니까 형님도 못 알아보셨지 않습니까. 남들도 누님이 보낸 사람인 줄 알걸요. 오늘이 제일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날이라고 해서 온 건데요. 뭘, 걱정마십쇼.」

못 알아본 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대신 자신들은 놈들이 어디서 보낸 칼잡이인 줄 알지 않았던가.

그 몸집의 택배원이 우르르몰 려다니는 게 어디 있냐고,

너히들은 딱 봐도 어깨인 게 티가 난다고 목화가 딱 말하려 했을 때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다 같이 맟춰 입은 택배 조끼에 모자를 눌러쓴 차림으로 나란히 서서, 놈들이 합창을 했다.

「형님은 저희를 그렇게 키우지 않으셨습니다!」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합창 소리만은 아주 웅장했다.

그때였다.

「박목화, 너 언제 애 키웠냐?」

「……!」

목화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 새 익숙해진 목소리, 김낙원이었다.

항상 그렇든 청(廳)을 막 빠져나온 양복차림에 손에는 백화점 로고가 찍힌 종이봉투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 봉투 안에는 2인분의 먹을 것이 들어있을 터였다.

삽시간에 꽃집 안이 싸늘해졌다.

'택배원'들에게 김낙원은 누군지는 몰라도 형님을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사람이었다.

적인지 친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들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팔을 걷어 부치고 있던 다섯 중에 원오가 힐끔 자기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싸인펜으로 찍찍 그린뒤 바늘로 새긴 하트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 누구도 눈치 챈 것 같지 않았다. 원오는 슬금슬금 소매를 내려 문신을 덮었다.

목화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한 눈길을 동생들에게 보냈다.

「…….」

김낙원의 눈이 천천히 가게 안을 돌아보았다.

건장한 택배원이 다섯이다.

바닥에는 풀지 않은 꽃에, 가게 안은 천장까지 겹쳐 쌓은 바구니로 한 가득이었다.

냉장고 안에 가득 찬 카네이션까지 본 김낙원이 그제야 내일이 어버이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당일만 바쁠 줄 알았더니 오늘도 그런 모양이다.

어지로은 가게는 점심을 먹기에 적합하지는 않아보였다.

낙원이 택배원들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한 명만 빼고 두 팔을 걷어 부친 건장한 택배원들은 모두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했다.

김낙원은 들고 있던 종이봉투 두 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오늘부터 바쁜가보지?」

목화가 간산히 고개를 끄덕였다.

낙원이 별 관심 없이 '그렇군' 하고 중얼거렸다.

「그럼 같이 먹어둬.」

그리고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그 움직임에 가장 앞에 서 있던 택배원이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김낙원이 모자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뭐냐, 이건-.」

낙원이 싱글, 위험스럽게 웃었다.

「김원일?」

「……!」

보고서는 그냥 받는 게 아니었다. '동양' 내의 전과자치고 현재 김낙원이 얼굴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형님 소리를 듣고 들어설 때부터 혹시나 했던 얼굴을 정면으로 보게 된 김낙원이,

웃으면서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쥐었다.

그 손을 잡은 건 박목화였다.

「잠깐 보러 온 거다.」

김낙원이 천천히 돌아섰다. 방해물을 치우는 게 공식인 동생들이 달려드는 것을, 박목화가 다른 한 손으로 저지했다.

'경찰이다,' 목화의 입술이 소리없이 움직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목화는 가석방 중이었다.

여기서 죽여 없애더라도 후환이 남는다는 걸 안 동생들이 멈칫했다.

놈이 김낙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보내줘.」

반말이었다.

김낙원이 싱긋 웃었다. 놈의 입에서 처음 듣는 반말이, 남을 위한 부탁이라.

사회생활의 기본이 안 된 놈이었다. 간만에 잠잠했던 욕구가 들끊었다.

동생들 앞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볼까.

위험한 얼굴이 되는 걸 감지한 모양이었다. 놈이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거, 형님 일 좀 도와드리려고 온 건데 너무 그러지 마쇼.」

뒤에서 김원일이 소리냈다.

고개를 돌려보자 모자를 벗은 원일이, 조끼에 양손을 찔러넣은 채 무려 부루퉁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형님이 돌아오질 않길래 찾아보니 꽃집하고 있더이나. 손 씻고 새 사람이 된 형님 일에 손 좀 덜어보려 왔는데 깐깐하게 그러기요? 경찰 양반도 너무 잡으려고만 들지 말고 거 뭐야, 교화인가 하는 게 서로 좋을 거 아뇨.」

어이가 없었다.

김낙원 입가에 웃는지 비웃는지 모를 선이 그려졌다. 박목화가 막을 새도 없이 김원일이 거침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형님 삼년 만에 오늘 처음 뵈었소. 형님 새 사업에 방해될까 저어해서, 제일 사람 많다고 하는 날 골라 왔다니까. 아, 오늘만 도와주고 가면 될 거 아뇨. 경찰양반이 형님이 있으면, 오늘같이 바쁘다고하는 날에 저기 바깥에 허약한 기집애들 둘만 믿고 갈 수 있겠소?」

'맞소', '맞어,' 네 명이 뒤에서 백사운드를 돌림노래처럼 넣었다.

그리고 마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양, 타이밍 좋게 유리문이 열렸다.

「사장님, 저희 코사지 20개 만들었는데 더 만들어야 돼요-?」

얼굴을 들이민 알바생에게 박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바생이 '얼마나 만들어야 돼,' 하고 중얼거리면서 다시 문을 닫았다.

「저거 보……」

김원일이 힘을 얻어 이야기하려 하는 것을, 낙원이 잘랐다.

「마음대로 해봐.」

뜻밖에 말에 놀란 놈이 놀란 듯 했다. 낙원이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여기 있을 테니, 내 눈앞에서 해. 뭘 얼마나 하는지 보게.」

도와주러 왔다는 소실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접선일 테지. 낙원은 생각했다. 저 핑계만 봐도 머리가 좋은 놈들은 아니었다.

접선한 놈들을 관찰하다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박목화가 대답도 하기 전에 김원일이 먼저 나섰다.

「말 한 번 화끈하게 통하는 양반이네, 경찰 맞어?」

「그러게.」

「처음 보네.」

동생들이 덧붙이는 소리를 들으면서 박목화가 잠시 당황하는 얼굴을 했다.

저런 얼굴 보는 재미라도 있을 듯 싶었다. 김낙원은 태연이 걸어가 항상 앉던 리본대 옆에 앉았다.

그러자 관람객이 앉는 걸로라도 생각했는지 김원일이 신나서 소리쳤다.

「얘들아, 조끼 벗어라. 일 좀 하자.」

그러자 군대에서 '탈의' 명령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모두 조끼를 벗어놓았다.

막내가 다섯 개를 곱게 포개 구석에 쌓아놓자 김원일이 목화에게 물었다.

「형님, 이제 꽃모가지 분질러서 꽃아 넣으면 되는 거지요?」

목화는 어떻게든 동생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드디어 받아들였다.

들리지 않을만큼 한숨을 쉰 목화가 천장까지 닿은 바구니를 가리켰다.

「우선 곁이 꽃힌 곳에.」

지나치게 간결한 설명이었다. 원일이 눈을 껌벅였다.

「곁이 뭔데요?」

목화는 말하지 않고 일단 편백이 꽃힌 바구니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냉장고 속에 있던 카네이션을 꺼내 가위로 잘라 중앙부터 꽃아 넣었다.

네 송이가 들어가자 그런대로 속이 찼다.

그 옆에 장미와 안개를 적당히 끼워 넣은 뒤 손잡이에 리몬을 달아 내려놓았다.

목화가 시범을 보이자 테이블을 둘러싸고 있던 다섯이 완성된 바구니에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형님 대단하시다', '진짜 새 사람이 되셨어'

낙원이 웃다 못해 고개를 돌려야 할 정도로 민망한 탄성이었다.

그중 가장 크게 우와, 하며 감탄하던 김원일이 나머지를 돌아보았다.

「자, 봤지? 형님 하신대로 하는 거다.」

「예!」

대답만은 우렁찼다. 낙원은 종이봉투를 뜯으며 놈들을 지켜보앗다.

김원일이 바닥에 꽃을 풀 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덩치 큰 놈들이 하나씩 앉을 때마다 점점 가게가 좁아지고 바닥이 사라지는 했어도, 아직 팔을 움직일 공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쓸데없는 소리가 너무 많은 탓에 분업도 잘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자기는 내가 자를 테니 둘째 넌 좀 꽃아봐라. 네 전문이잖냐.」

「하이고, 첫째 형님도. 꽃바구니가 술집 년하고 같습니까요.」

「돈만 생기면 거기에 꼴아 박으면서 어떻게 넌 아직 득도도 못했냐? 그럼 셋째가 좀 해봐라. 마권 뽑는 정성으로.」

내내 이런 식이었으니 일이 될 리가 없었다.

의자에 혼자 우아하게 앉아 만두를 집어먹으며 구경을 하던 낙원이 처음으로 박목화의 침묵을 높게 평가했다.

저놈들이 바로 박목화와 다녔다는 여섯 명의 똘마니들, 김원일 패거리일 것이다.

형님 아우 해가며 까불고 있는 저놈들과 넘게 붙어 있었다면 놈이 말수가 없어진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내는 어디 갔어?」

김낙원이 불쑥 물었다.

테이블 밑에 빙 둘러 앉아 있던 놈들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들끼리 쳐다보며 대답을 피하는 폼이 수상했다.

표정을 못 숨기는 점만은 저들의 형님과 다르지 않았다. 이쪽이 정답이었나.

웃음을 숨긴 낙원이 다시 물었다.

「원래 여섯 명 아냐. 한 명은 어디 갔어?」

김원일이 부루퉁한 얼굴로 대꾸했다.

「나이트요.」

「…….」

낙원이 잠시 침묵했다. 그 사이 옆에 있던 원삼이 덧붙였다.

「그놈은 변했소, 형님. 아니 글쎄 그렇게 형님이 아껴줬던 놈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하나가 혀를 차자 바로 옆도 따라서 혀를 찼다.

「세상에, 형님 돕자하고 연락을 하니까 일이 있다고 하잖은가. 기가 막혀서. 저가 나이트 사장이 되었다고 낮에는 자야한다는 건방진 발상은 어디서 나온 거여?」

다 같이 혀를 쯧쯧 차는 모습에선 못마땅한 기운만 넘쳐났다.

테이블 앞에 서서 바구니를 꽃고 있던 목화가 문득 물었다.

「사장이 됐어?」

「그럼요. 그깟 나이트 하나 갖고도 나와바리랍시고, 형님 뒤에서 빌빌거리던 그 막내가 완전히 사람이 달라져갖고는 이제 절 봐도 생까고 지나간다 아니니까. 아니지, 이젠 막내도 아니지.」

김원일이 투덜거린다.

3년, 짧은 세월은 아니었다.

우상화할 놈들은 그럴 놈들대로 떠받들어도, 그간 비웠던 자리를 치고 올라온 아랫놈이 있을리가 없었다.

놈들 세계라는 게 그렇지, 낙원이 피식 웃으며 집었던 만두 한 개를 목화에게 내밀었다.

「아직 따끈한데.」

목화가 아무 말 없이 녹색 물이 묻어난 손을 앞치마에 훔쳤다. 그러나 손으로 받기에는 아직 덜 깨끗한 감이 있었다.

옆에 받아둔 양동이에 손을 담그려 하던 목화를, 낙원이 제지했다.

「먹어.」

만두를 집은 젓가락이 목화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받아먹으라는 건가 하고 낙원을 쳐다본다.

낙원은 웃으면서 그렇다는 양 젓가락 끝을 까딱였다. 그래도 만두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거북한 얼굴을 한 목화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약간 숙였을 때였다.

「저기 사장님, 앞에 트럭이요-!」

딸랑, 유리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알바생이 가게 안에 대고 소리쳤다.

목화가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바닥의 사내놈들도 벌떡 일어나 나가보았다.

트럭이 견인되려 하고 있었다.

김낙원이 엉망이 된 바닥을 천천히 걸어 나왔을 때에는 목화가 주차원과 꽃집을 가리키며 무어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모자란 놈들이, 역사 계단 앞에 세워두었던 트럭을 제대로 주차시키지 않고 키까지

꽂아놓은 채로 꽃집 바닥에 앉아 바구니 공작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조끼 벗은 택배원들은 간만에 나온 일반인들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차마 형님이 이미 나선 일에 끼여들 수도 없이

계단 위를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저걸 어쩐다냐,' '내가 잘못 했소, 어떻게 저걸 잊었을까.'

'트럭이야 누님에게 하나 사면 안겨드리면 그만이지만……'

우왕자왕하는 그들 곁을 김낙원이 여유롭게 지나쳐 내려갔다.

「뭐야?」

낙원이 목화 앞에 있던 주차원에게 대뜸 물었다.

그리고 주황색 옷을 입은 주차견인원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경찰신분증을 꺼내 슥 내밀었다.

「공무 중인데 ,방해해?」

'아닙니다,' 소리는 듣지 않고 낙원이 등을 돌렸다. 실제로 주차원이 방해한 일이라고 해봤자 만두 먹이기 정도였지만,

자신이 하는 일이 곧 공무라고 생각하는 김낙원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낙원이 위에 서 있던 놈 하나에게 턱짓하자 유일하게 소매를 내린 놈이 한달음에 내려왔다.

「일 끝났으면 저기 공영주차장에 갖다놔. 공무 중엔 주차비 안 내도 되니까.」

「예!」

대답만은 우렁찼다. 재빨리 운전석에 가 앉는 놈은 내버려두고 낙원이 도로 계단을 올라왔다.

낙원이 들고 있던 신붕증을, 시종일관 신기하게 쳐다보던 김원일이 그가 자기 앞을 지나자 중얼거렸다.

「……마패구만.」

그 소리에 바보들이 서로 작게 주고 받았다.

"그러게, 마패구만요."

"마패는 말 내놓으라는 패 아닌가?"

"마법패 아녀?"

환타지 좀 읽는다는 둘째 말에 넷째가 중얼거렸다.

'……갖고 싶다.'

이 말만큼 모두가 동감한 말은 없었다. 막내가 오기를 기다려 다 같이 꽃집으로 들어간 그들은 김낙원을 치하했다.

"살다 살다 경찰이 도움 되는건 첨 봤소."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화끈한 양반이셔."

시끄러웠다. 김낙원은 잠시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일 안하나?"

박목화와 딱 반만 섞었으면 좋겠다.

"아 그렇지."

김원일이 앗차 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서류상으로는 뭔가 무시무시한 별명도 가졌던 놈 같은데. 직접보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어이가 없어진 낙원이 놈들을 지켜보았다. 정신을 차린 감원일이 불러 모으는 걸 보자니 한심의 극치였다. 분업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테이블 주위에 빙 둘러 앉아 각자 꽃바구니를 꽂으려 드는 것이다. 그나마도 잘 꽂았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놈들의 행태는 구경하던 김낙원이 무려 웃을 수도 없게 만들었다.

모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손이컸다.

얼마인지는 몰라도 1년 중 최고가를 달릴, 한창 금값일 카네이션을 놈들은 우왁스럽게 가위로 마구 잘라 일단 바구니에 채워 넣고 보는 것이었다.

"어라, 막내야. 넌 어떻게 다섯 개만 들어갔냐? 난 여섯갠데."

"형님 대단하우. 난 일곱 개를 넣어도 다 안 차는데."

그 주제에 김원일은 목화가 한 것과 똑같은 모양을 낸답시고 다 꽂은 꽃을 정성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일을 이렇게 못하는 놈들은 처음 보았다. 보다 못한 낙원이 결국 못참고 한 마디 했다.

"장미는 뒀다 뭐하나? 옆에 둘러."

"……아하-."

김원일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양 한 박자 늦게 탄성을 질렀다. 그나마도 그 휘하 바보 네 마리는 경찰 말이라면 일단 귓구멍부터 막고 보는지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얘들아, 장미다. 장미를 꽂아라."

"아하- 그러면 되는 구만요, 형님."

이구동성으로 대답은 잘 해놓고 또 손을 뻗는 건 분홍색 카네이션이었다. 빨간 게 카네이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여기에 마지막 만두를 집어먹은 낙원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래, 두 개씩 달린 눈으로 카네이션과 장미도 구분 못한단 말인가? 목화의 바구니에 꽂힌 네 개의 카네이션 옆에 채워 넣은 장미는 여태껏 뭘로 보였단 말인가?

"너,"

낙원이 그 중 한 놈을 가리켰다. '저요?' 하는 얼굴로 우락부락한 놈 하나가 쳐다보았다.

"바구니 담당이다. 박목화가 바구니에 오아시스를 넣으면 거기에 편백을 꽂는다."

낙원의 손가락이 빙 둘러 김원일을 향했다.

"김원일 너, 유일하게 장미와 카네이션을 구분하는 놈이니 네가 카네이션을 맡아 자른다."

칭찬으로 알아들었는지 놈이 쑥스럽게 대답했다.

"뭐, 그래보지요, 경찰양반."

낙원이 그 옆부터 차례대로 가리켰다.

"너부터 너. 김원일이 자른 카네이션을 네 송이, 꽂는다. 그 옆엔 장미를 잘라 꽂는다. 그 옆엔 리본을 달고 완성된 바구니를……"

김낙원의 눈이 가게 안을 훑었다. 아무리 보아도 더 둘 데가 없어 보였다. 낙원이 흘깃 박목화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더 만들어야 되냐"

김낙원의 교통정리에 얼떨떨해진 목화가 대답했다.

"누님이 800개 만들어야 된다고 하셨는데, 아직 200개 좀 넘게 밖에 못했으니까……"

잠시 말문이 막혔다.

김낙원은 자시 손목에 놓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10시 10분이었다. 지하철역이니, 퇴근 시간에 쏟아지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분명 그만틈 들고 갈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퇴근 시간을 1시로 잡아도 앞으로 세 시간이 남아있었다.

뇌가 백지장 같은 저놈들에게 맡겨두다간 될 일도 없었다. 접선을 하러 온 거라는 생각은 애저녁에 버렸다. 저게 바보인척 하는 거라면 놈들은 벌써 아카데미상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박광우가 그렇게 허술한 인간이 아니었다. 저런 놈들을 접선을 하라고 보냈을 리가 없었다.

200개만으로 꽉 찬 냉장고를 훑어본 김낙원이, 여태껏 놈들이 여섯개 일곱 개씩 채워 넣은 바구니를 턱턱 집어 목화에게 내밀었다.

"넌 이거 들고 가서, 지하철 역무원들한테 돌리고 역무실 좀 빌릴 수 없냐고 물어봐. 역무원들이 숙식할 때 쓰는 방이 있어. 평소엔 안 쓸 테니까 비어있을 거다. 다 만든 걸 쌓아둘 곳이 필요해서 6시까지만 빌리겠다고 해."

뒤에서 '우와 역시 경찰이라 뭘 주는 법을 안다' 따위의 탄성이 들려왔지만 김낙원은 무시했다. 어차피 놈들이 만든 이 바구니들은 팔수 없는 물건이었다. 누가 같은 크기에 더 꽂고 덜 꽂은 걸 보고 기분 좋게 사가겠나.

김낙원이 박목화가 나가는 걸 보며 놈들에게 내뱉었다.

"네 놈들이 꽂은 걸 선물로라도 쓸 수 있는 데 감사해라. 빌리는 대로 리본 담당이 바구니를 거기로 갖다놓고. 뭐하냐? 도와주러 왔다며? 이젠 입 닥치고 일해. 한 시간에 이백 개는 만들어야 하니까."

'악덕공장주 같소.'

입 닥치란 소리에 막내가 김원일에게 작게 속삭인 말이었다. 문제는 놈들에게나 속삭임이지 다른 사람에겐 너무나 잘 들리는 말이라는 거였지만, 뒷말을 듣는데 익숙한 김낙원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단지 일 안 하냐는 표시로 바닥에 쌓여있던 꽃을 구둣발로 걷어찼을 뿐이다. 꽃이 우수수, 자르기 좋게 흩어졌다.

김원일이 '응 저 양반 길을 잘못 든 듯 싶다' 따위의 말을 지껄이더니 일단 흩어진 카네이션부터 자기 앞으로 옮겼다. 어찌되었듯 김낙원 말에 따르는 게 무사히 형님을 도울 수 있는 길이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분업을 하자 확실히 빨랐다. 몇 번 움직여본 놈들이 '신통하네', 해가며 우락부락한 몸들을 이끌고 꽃을 주물렀다. 바구니 백 개에 소리에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일단 편백 꽂은 바구니부터 놈들이 무서운 속도로 해치우기 시작했다.

곁에 꽂아놓은 바구니 숫자를 세보니 대략 300개였다.

앞으로 300개는 바구니에 오아시스를 넣는 것부터 해야한다는 소리다. 김낙원이 혀를 찼다. 뭘 믿고 일을 이렇게밖에 안 해놨을까. 김정애가 정말 여길 포기라도 했나.

그때였다. 유리문 밖으로 소란과 함께 박목화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빨리 돌아왔다. 김낙원이 놈을 쳐다보았다. 바구니는 하나도 들려있지 않았다. 설마 저놈, 바구니만 뺏기고 방은 못 얻어온 거 아닐까. 내가 가봐야 하나 싶어 김낙원이 일어났을 때였다.

"이쪽으로 주세요."

여자 목소리들이 잔뜩 들렸다. 놈들이 뭔가 싶어 고개를 빼는 걸, 김낙원이 일이나 하라고 등을 툭툭 걷어차고 나와 보았다.

문앞에 몰려 있던 건 지하철 여직원들이었다.

"다 만든 것 부터 일단 주세요. 저희들이 옮기게."

"아닙니다. 저희가 옮기겠습니다."

"바쁘신데 뭘 그러세요. 바구니값은 해야죠."

젊은 여직원 하나가 꺄르르 웃으며 말하자 나이든 여직원이 거들었다.

"장사 그렇게 하다 망한다니까, 미스터 박. 빨리 가 만들기나 해."

……아주 여복(女福)이 터졌군.

박목화가 곤란한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안에 사람 있다고, 곧 옮길 거라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김낙원은 뒤에서 혀를 찼다. 저 꼴을 보아하니 꽃바구니도 필요없었지 싶다.

"형님이 원래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서라."

그 새 못 참고 바깥을 내다본 김원일이 중얼거렸다.

"그럼요, 룸싸롱만 갔다하면 아주 형님한테 앵겨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애들이 부지기수였는데. 술집 애들이 내버려두지를 않아서, 목화 형님이 하두 곤란해하니까 큰 형님이 나중에 술 마실 때 아예 우리 구역으로는 가지를 않았잖수."

"살림 차려달라고 몸으로 덤빈 애들도 좀 많았나. 형님이 신사적이래나, 뭐 자기를 유일하게 사람으로 봐준다나 어쩌구 하면서."

술집 경험이 제일 많다는 둘째가 부루퉁한 얼굴로 덧붙였다.

"아니 내가 저를 사람으로 안 봤음, 나는 뭐 나무토막하고 잤나?"

김원일이 혀를 차며 동생을 말렸다.

"아니지, 그게 아니지. 목화 형님은 술집 가서도 저들을 무슨 양가깁 규수 대하듯이 한다 이거지. 사실 형님이 좀 멋있냐? 자알 생겼지, 힘 세지, 그런데 말은 가려하지. 게다가 그땐 큰 형님이 또 형님한텐 한달에 천만원씩 집어주셨잖냐. 돈 없어도 저런 걸 보면 뭐 그 탓도 아닌 것 같다만."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낙원을 김원일이 돌아보았다.

"경찰양반도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게 인기 좀 있었을 것 같은데, 안 그렇소?"

"……여자가 없었던 적은 없지만."

김낙원이 별 표정 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저놈처럼 헤펐던 적은 없다."

그리고 김낙원은 성큼성큼 놈에게 다가갔다.

이젠 역사를 청소하는 아줌마까지 와서 도구 두는 창고를 빌려주겠다고 하는 판이었다. 그가 다가서자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들이 일시에 쳐다보았다. 김낙원이 싱긋 웃어보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놈의 귀에 입을 갖다댔다.

"언제까지 여자들처럼 수다를 떨 셈이냐."

일은 남한테 다 시켜놓고.

놈의 귀에 바짝 대고 속삭인 말에, 놈은 그의 심사가 비틀린 것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고맙습니다. 안에 있는 애들 좀 보내겠습니다."

박목화가 목례를 하더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나마 눈치는 좀 늘었다. 김낙원이 여자들에게 한 번 더 웃어보이고는 같이 꽃집으로 돌아왔다.

"한 시간에 이백 개씩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기나 한 거냐?"

박목화한테 한 소리였지만 문간에 서 있던 놈들이 찔끔했다. 재빨리 자기들 자리로 돌아간 놈들이, 마치 5분전부터 그랬다는 양 꽃을 자르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리본 담당 막내도 냉장고 안에 들어있던 바구니를 바브게 옮겼다. 박목화 역시 앞으로 향했다. 오아시스를 만지려던 목화를, 의자에 앉은 김낙원이 긴 다리를 내밀어 저지했다.

"수다 떨 시간 있음 먹기나 해라."

아직 박목화 몫의 종이봉투는 뜯지도 않은 채였다. 언제는 시간이 없다더니, 하는 얼굴로 놈이 그를 쳐다보았지만 곧 아무 말 없이 봉투를 뜯었다. 식사 문제로 낙원에게 무어라 해보았자 먹힐 리가 없다는 걸 놈은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순히 먹고 있는 놈을 보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차 타와."

밥 먹으면 항상 하던 김낙원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건 엉뚱하게도 김원일이었다. 고개를 발딱 들더니 막내를 불렀다.

"막내야, 빨랑 타와라."

"예!"

박목화는 움직일 틈도 없었다. 낄 데 못 낄 데를 가리지 않는 김원일을 낙원이 쳐다보았다. 막내는 꽃집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커피 믹스와 종이컵을 찾아내 일곱잔을 타서 돌렸다.

여기에 처음 와봤다는 말은 거짓은 아닌 모양이군.

김이 오르는 종이컵을 앞에 놓고 낙원이 손대지 않자, 오아시스를  바구니에 박아 넣던 목화가 힐끔 쳐다보더니 테이블을 두드렸다. 낙원이 쳐다보자 박목화가 한 마디 했다.

"컵."

낙원이 곧 알아들었다. 놈은 컵 바꿔줄까, 라고 물은 것이다. 낙원이 거절했다.

"됐어. 난 원래 믹스는 안 마셔."

"……."

그럼 이태껏 먹었던 건 뭐냐, 라는 얼굴로 놈이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때였다. 커피를 마시려고 하던 원일이 괴성을 질렀다.

"으아- 안 빠져!"

무슨 소린가 싶어 낙원이 돌아보았다. 김원일 손이 꽃을 자르는 노란 가위집에 껴서 짜지지를 않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가위집이 김원일의 우왁스런 손에 비해 작기도 했지만, 잘 들지 않자 원일이 힘을 준답시고 그 안에 손가락을 두 개씩 끼워 넣고 가위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잡아 뺸 김원일의 손은 퉁퉁 불어 있었다.

"으아- 도저히 가위는 못 쓰겠습니다, 형님."

쓰란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위질도 못하는 바보를 봤나. 어이 없어하는 김낙원과는 달리, 박목화는 놈에게 익숙한 지 웃지도 한심해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다른 거 써라."

그러자 뭘 생각했는지 김원일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도 됩니까?"

박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원일이 목을 가다듬더니 소리를 질렀다.

"막내야, 형님 작두 가져와라. 꽃모가지 좀 팍팍 잘라야 겠다……!"

그제야 낙원은 '미친 뿔' 박목화의 뒤를 이은 놈의 별명을 생각해냈다.

김 작두, 김원일이었다.

"형님 빠릅니다요…!"

크핫핫, 김원일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뭔지 모를 거무튀튀한 액체로 물든 작두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작두를 든 놈의 손이 어찌나 빨라졌는지, 꽃들을 갖다대기만 하면 잘리는 듯 했다. '저 작두 호강하네' '손모가지만 자르는 줄 알았더니 꽃도 잘라보고' '-쉿' 낙원의 눈치를 본 셋째가 입에 손을 가져다댔다. 문제는 저들끼리만 들리는 줄 안다는 것이다.

김낙원이 막내를 시켜 사온 녹차캔을 홀짝였다.

김원일이 어떻게 감방살이를 했었는지 생각이 났다. 언젠가의 구역 다툼 때에, 박목화가 폭력 상해로 잡혀가자 상대 구역장을 잡아와서는 손목을 잘라놓고 합의를 강요했던 놈이었다. 양손을 다 자르는 바람에 합의서에 싸인할 손을 안 남겨놔서 결국 박목화가 감옥에 갔다는 웃을 수 없는 후일담은 북창동의 전설처럼 떠돌았다.

그 손 작두가 지금은 꽃 작두다.

어떤 놈들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캔을 사온 막내라는 놈도 사람 병신 만들어놓은 저과가 두 번 이었다. '동양' 은 원래 작은 조직이었다. 그곳이 십년간 그렇게 꾸준히 커온 데에는, 여기 있는 이놈들 탓이 제일 컸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이놈들을 심년 넘게 앞장서서 끌고 다닌 박목화야 말로 악질중에 악질이었다.

"그런데 형님, 이렇게 많이 잘라도 될깝쇼? 오늘이 도대체 무슨 날이길래,"

"어버이날이라잖아, 어버이날."

"어버이날이 7일입니까……?"

자신없이 하는 반문에, 둘째가 김원일에게 불안해서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정말로 이런 날 꽃 사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습니까요. 저흰 한번도……"

조폭이 된 놈들의 사정사에 어버이날 카네이션이 등장했을 리 없었다. 잠시 불안해하던 김원일이, 곧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답안'이라도 내놓는 듯이 대답했다.

"형님이 하라고 하셨잖냐."

그러자 놈들이 모두 수긍했다. '오,' '아,' '그렇죠.' 로 끝이었다.

"형님, 그렇죠? 800개 맞죠?"

원일이 다짐받듯 묻자 테이블 앞에 서서 바구니에 오아시스를 꽂아넣고 있던 박목화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답을 하는 방식은 똑같았다.

"누님이 그러셨다."

"그것 봐라-."

원일이 핫핫,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놈들을 돌아보았다.

"얌마, 뭔 걱정이냐. 한 시간에 이백 개래잖아, 이백 개."

신나게 잘라대는 김원일을 낙원이 녹차캔을 마시며 쳐다보았다. 낙원이 문득 물었다.

"두 손을 한번에 잘랐나?"

"아, 어디서 그런 소문을. 한 손입니다요. 한 손."

김원일이 작두질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그놈이 형님을 찌른 게 한 번 이지요. 두 번이었으면 소문이 진짜가 되었을 거구만."

예상한 답안이었다.

"그랬군."

녹차를 마시면서 김낙원이 중얼거렸다.

저 작두로 손모가지를 잘랐을 때에도, 김원일 태도는 지금과 똑같았을 것이다. 가까이서 본 지금엔 확신이 섰다. 놈들은 단순무지했다. 형님이 조폭이면 손모가지를 자르고, 형님이 꽃집을 하면 꽃모가지를 자르는 것뿐이었다. 손작두도 꽃작두도 놈들에겐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작두는 그저 작두였다.

박목화도 그런 면에선 다를 것 하나 없었다. 큰형님 박광우 따라 조폭 짓을 하고, 지금은 김정애를 따라 꽃집일에 매진한다.

이런 게 그토록 쫓던 '동양'의 놈들이었나. 서류로만 넘겨오던 김낙원은 잠시 생각했다. 가까이 보게 된 놈들은 속이 비쳐 보이는 백짓장처럼 얄팍하리만큼 투명했다. 뭘 할 지, 뭘 안 할지, 지나치게 빤했다.

단순한 놈들이었다. 어떤 이중성도 양면성도 없이 그저 돌진하고 깨부수고 그 뒤엔 감옥에 간다.

여기까지 알자 놈들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알면서도 경계심은커녕 코웃음이 나왔다.

손작두와 꽃작두를 구분하는 건 자신의 펜 끝에 달려 있었다.

"……."

조서에 쓰인 몇 줄, 펜으로 찍 긋고 가볍게 고쳐주는 것뿐이었다. 흉기는 '작두' 라고 쓰면 흉악범이 되고 '꽃작두'로 쓰면 꽃집에서 일어난 우발적 범행이 된다. 이 정도로 극적인 건 몇 건 없어도, 하루에 200건씩 통과해나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조서 몇 줄로 영장이 갈리거나 형량이 달라지곤 했다. 건수라는 명목으로 남들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한 지는 오래되었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런 면으로 생각하면 더 위험한 건 나인지도 모른다.

김낙원이 싱긋, 진심으로 웃었다.

…그래봤자 너희들이 조폭이지.

유일하게 그리 치부 할 수 없는 본명조차 들여다 볼 수 없는 놈을 떠올리고 낙원이 이마를 찌푸렸다.

'박광우.' 그게 바로 자신이 놈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11시였다.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김원일은 열심히 자르고 형제들은 바구니를 꽂았다. 일단 익숙해지기 시작하다 손들이 척척, 구낻처럼 움직였다. 놀랍게도 그 동안 천장까지 쌓여있던 바구니가 바닥에서 1m 높이로 줄어들어 있었다. 박목화와 바구니 담다으이 손도 덩달아 바빠졌다. 만들어두었던 리본이 바닥을 보인 것도 놀라울 게 없었다.

"거기. 그것도 리본이라고 접나?"

감독관인 양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턱 끝으로 가리키는 김낙원을 본 둘째와 김원일이 서로 속삭였다.

'악덕공장주가 천성인가 본데요, 형님.' '그런 모양이다.' 리본 담당인 넷째가 쭈뼛쭈뼛 일어나 김낙원에게 다가갔다.

"아니 리본이 떨어져서……"

접는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모양이었다. 리본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 머리카락처럼 길게 풀린 끈을 김낙원이 진짜 머리카락을 집듯 들어올렸다.

그리고 대놓고 비웃으며 우락부락한 넷째 어깨에 척 하니 걸쳐놓았다.

"이게 리본이야? 붙임머리나 하지 그래?"

나는 어깨요, 하고 광고하는 듯한 짧은 스포츠 머리 아래 각진 어깨에 꽃분홍색 끈을 걸쳐놓으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김원일 휘하 일, 이, 사가 시원하게 웃어 제겼다. 테이블 앞에 서 있던 박목화조차 힐끗 보고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경찰양반이 해보쇼."

그때 김원일이 끅끅대며 말했다.

'감독관 솜씨나 봅시다' 라는 소리는 귓전으로 치워버린 김낙원이 바로 옆에 리본대에서 똑같은 분홍색 리본을 끌어당겼다.

"박목화, 한번 만들어봐. 내 앞에서."

"……."

목화가 아무 말 없이 그 리본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능숙한 손길이었다. 꽃집을 한 지는 몇 달 되지 않았어도, 사흘 전부터 몇 백 개를 넘게 접어왔으니 능숙할 수밖에 없다. 척척  접어올려 리본 모양을 만드는 박목화를 보고 다섯 모두 탄성을 발했다. '우와, 형님-!' '대단하십니다!' 꽃바구니를 꽂는 걸 보았을 때와 같은 탄성이었다.

그러나 넷째의 탄성은 아주 컸다.

"형님은 천재십니다……!"

박목화의 손이 잠시 삐끗하려다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나마 얼굴이 달라지지 않는나는 점이, 놈이 저들에게 익숙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박목화가 철사까지 매어 리본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이번에는 김낙원이 똑같은 분홍색 리본을 집어 들어 손에 끼웠다. 서슴없이 오른쪽 왼쪽 번갈아 가며 동그랗게 리본을 만드는 김낙원의 동작은 박목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우와,' 숨죽인 소리가 들려오다, 누군가 소리 낸 놈을 찍어 눌렀다. '목화 형님이 더 대단하셔!' 저들은 속삭인다 생각하면서 말하는 폼이, 경찰양반 대 형님의 리본 시합이라도 보는 분위기였다. 제대로 만들었다간 뒷골목에서 덤비기라도 하겠는걸.

김낙원이 싱긋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철사를 매어 리본을 내려놓았다.

"자."

놈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테이블로 놈들이 몰려들었다.

'이럴 수가.' 넷째가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의 분위기였다. 바로 앞에서 만드는 걸 보면서도 왜 못 만들겠나.

"너무 감탄을 하니 쑥스럽군."

감낙원이 태연히 말했다. 그가 만든 분홍 리본이 놈들 손에서 한 순배 돌았다.

"어디어디, 나도."

김원일이 작두를 버리고 리본대에 달려들었다. 가위질도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거냐. 김낙원이 면박을 주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웃으면서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어어?"

리본 모양을 잡으려고 한 바퀴 돌리던 김원일이, 손을 감았다. 풀기 위해 왼쪽으로 다시 한 번 감자, 놈의 손에 분홍 리본이 붕대처럼 겹쳐졌다. 리본을 손에서 끌러내고 나서 두 번째 시도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히. 놈이 쑥쓰러운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김낙원이 부러 소리나게 혀를 차곤 다시 일을 시켰다.

"안 되는 놈들은 시킨 일이나 해."

김원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돌아섰다. 저는 작다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주 똑똑하게 들렸다.

"아니 거 신기하네. 저 분홍이가 얼굴을 타나. 형님하고 경찰양반 말은 듣고……"

그러나 그렇게 리본 접을 시간이 날 정도로 한가했던 것도, 그때뿐이었다.

* * *

“여기 코사지 두 개요.”

“이 꽃바구니는 얼마에요?”

“카네이션 넣어서 꽃다발 포장 좀 해줘요.”

바로 옆 사람이 사갈 때 똑 같이 설명을 해줬는데도 못 알아듣는 놈들은 뭘까. ‘작은 건 삼천 원이고요, 큰 건 오천 원입니다.’ 라고 설명하는 알바생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꽃집 앞을 울렸다.

놈들은 준비를 하면서도 정말로 사람이 올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버이날을 챙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계속해서 바구니를 꽂고 리본을 만드는 와중에도 놈들은 어느새 문전성시를 이룬 바깥을 힐끔힐끔 내다보았다. 문제는 꽃을 포장해가겠다는 사람들이었다. 포장해달라고 꽃집에 들어오던 여자 손님이 바닥을 가득 메운 우락부락한 다섯 놈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엇.”

당연한 일이었다. 택배 조끼와 모자를 벗어버린 놈들은 근육에 짧은 스포츠머리까지 위험, 그 자체였다. 게다가 한 놈은 그때까지도 바로 그 덩치에 리본 끈을 머리처럼 매달고 있어 다른 종류의 ‘위험’ 까지 경고하고 있었다. 한 겨울 지하철에서 여름 원피스를 입고 홀로 중얼 중얼대는 할머니를 피해갈 때 느끼는 그런 종류의 위험이었다. 다른 때만 되었어도 그냥 발길을 돌려 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흠칫 놀란 손님을 보고도 놈들은 자기 일을 멈출 줄 몰랐다. 아니 그래도, 개중 가장 사교적인 김원일이 놀란 손님에게 무려 이를 씩 드러내고 웃으며 인사만 하지 않았어도 좀 나았을 것이다.

“어서오십쇼-!”

언젠가 박목화를 나이트 클럽의 가드 같다고 생각했던 김낙원이, 자신의 그릇된 생각을 재 빨리 수정했다. 도저히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낙원이 나서서 손님에게 웃어보이곤, 놈들을 손짓으로 불려들였다. ‘뒤에서 해, 뒤에서.’

“포장하시려고요?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김낙원이 일어나 웃으면서 물어보자 손님이 안심했다.

“글쎄요, 어머니 갖다드릴 거라 한 2만원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김낙원이 손님을 상대하고 박목화가 꽃을 꺼내는 사이, 놈들이 우르르 뒤로 몰려갔다. 그러나 리본대 뒤는 의자 하나가 안락하게 들어가던 공간이었다. 덩치 큰놈들 다섯이 들어가기엔 지나치게 좁았다.

‘형님, 다리가 엉킵니다요,’ ‘어엇, 막내야……!’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김낙원이 살짝 이마에 주름을 잡았지만, 들리지 않는 척 손님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꽃다발 해드릴 생각도 다 하시고. 저는 이런 날 집에도 안 들어갑니다만.”

“아니, 왜요?”

김낙원이 웃었다.

“수많은 독신자들의 같은 이유죠 뭐. 잘 나가는 아들이 된 것만으로도 할 만큼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집에서 또 구속받기 싫달까.”

“어머-…… 젊으신데 여기 사장님이세요?”

여자 손님의 얼굴이 반짝 빛났다.

뒤의 소란이 좀 가라앉는가 싶더니, 놈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말이 속닥이지, 꽃집을 쩌렁쩌렁 울릴 지경이었다.

‘거기 바구니 좀 집어주라,’ ‘꽃이 안보여요, 형님’ ‘둘째야, 네가 꽂으려고 하는 건 내 가운뎃다리……’

“잠깐만요. 이 친구가 포장 잘 해드릴 겁니다.”

김낙원이 싱긋 웃어보이곤 박목화 옆을 지나 리본 대 뒤로 향했다. 저 새끼들이 장사를 망치려고 작정을 했나. 안쪽을 들여다보자 가관이었다. 덩치들이 민망할 만큼 다리가 엉키고 몸이 엉켜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바구니와 꽃을 쥐고 있는 놈들을 보고 김낙원은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김원일이 머리를 긁적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니 여기가 너무 좁아서……’

김낙원은 꽃 포장을 하고 있던 박목화를 옆으로 가라고 손짓하고는 포장테이블을 꽃집 중앙으로 끌어냈다. 통로에 놓여 있던 의자들을 벽 쪽으로 붙이고, 리본 대 방향까지 틀자 그 뒤에 있던 놈들이 드디어 자리를 확보하고 일어나 앉았다.

“입 닥……”

손님이 있다는 걸 생각한 김낙원이, 싱긋 웃으면서 말을 고쳤다.

“다물고 일해.”

툭툭 소매를 턴 김낙원이 의자에 앉으려 했다. 그러나 이날의 광란만큼은 그 역시 비켜가지 않았다. 딸랑, 손님이 들어왔다.

“저기 지금 한 3만원 어치로 포장 돼요? 좀 급한데.”

낙원이 다시 일어났다.

“그럼요.”

어느 순간 포장까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까지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목화야, 누나 왔다-.”

나지 가게는 대충 아줌마들에게 맡겨버리고 달려온 정애였다. 동생이 어찌나 걱정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전에야 전화로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오늘 하루는 그녀 역시 너무 바빠서 전화조차 하지 못했다. 혼자 뭘 얼마나 했을까? 벌컥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였다.

“누님.”

“……!”

정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을 누님이라 부른 건 목화만이 아니었다. 다섯 명이 더 있었다. 바닥을 차지하고 바구니를 꽂고 있던 우락부락한 사내 다섯을 보고 정애는 자기도 모르게 놀라서 멈칫했다. 그러나 정말로 흠칫했던 건 테이블 앞에 서 있던 양복 차림의 남자를 보았을 때였다.

“……좋아하실 겁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또 오세요.’ 다섯 명이 훈련받은 양 입을 모아 뒤에서 합창했다. 정애가 멍청하니 남자를 쳐다보았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눈길을 끌어 모을 정도로 잘생긴 얼굴 탓은 아니었다. 한 달 전 자신에게 와 경고를 했을 때가 선명해서였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듯하던, 바로 그 형사였다.

“형사가 왜-……”

그때 서경위가 계급이 어쩌고 했던 건 정애의 머릿속에선 이미 사라져있었다. 무조건 경찰이면 그녀에겐 형사였다. 경계심을 갖고 동생에게 물어보려 하는 정애에게, 뜻밖에도 우락부락한 형제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김원일이었다.

“경찰양반 쓸만하더구만요, 누님.”

“정말 그렇더만요.”

이구동성으로 놈들이 소리를 냈다. 김낙원이 어이없어 하면서 놈들을 돌아보았다.

감독관이 필요했던 모양이지. ‘쓸만하다’ 는 건 아주 건방진 소리였지만 그래도 기분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의구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정애가 무어라 더 물어보려 했을 때였다.

“바구니 남아있는 거 있어요?”

또 손님이 들어왔다. 정애의 눈이 재빠르게 가게 안을 훑었다. 꽂은 건 모두 나간 뒤였다. 정애가 나서서 입을 열려 했지만, 누군가가 더 빨랐다.

“그럼요, 5분만 기다리면 꽂아드릴 수 있죠. 카네이션 몇 송이 넣어드릴까요?”

정애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았다. 대답한 건 뜻밖의 인물, 형사였다. 정애가 놀라서 쳐다보는 사이, 형사는 웃음을 띠고 능숙하게 손님을 몰아가더니 동생에게 눈짓으로 꽃바구니를 새로 꽂게 하고 있었다. 동생이었다면 꽂아놓은 바구니가 없는데 기다려달라는 말을 저렇게 돌려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꽂은 건남아 있는 게 없다고 이실직고 했을 게 뻔했다. 자신이 이야기했더라도 저 형사가 말한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놀라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뒤에서 김원일이 정애에게 속삭였다.

‘글쎄 저 양반, 아침 10시부터 저렇게 도와주고 있다니까요.’

정확히 말해 김낙원이 나서기 시작한 건 손님이 밀어닥치기 시작한 2시 무렵이었지만, 원일에게 들은 정애는 그저 놀라 눈을 커다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밤 10시였다. 하루 종일 저렇게 도와주고 있었던 걸까?

‘형님이 원래 인기가 많지라우.’

원일이 중얼거렸다.

‘글쎄 형님의 매력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니깐.’

충분히 오해를 살만한 말이었지만 둘째는 진심이었다. 셋째가 거기에 못을 박았다.

‘저희 보소, 형님 일엔 열 일 제치고 달려오지 않습니까요.’

일제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정애는 잠시 뭔가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말이 없었다.

“안녕히 계세요.”

5분 걸려 남은 카네이션을 모두 모아 꽂은 바구니를 받아든 손님이, 흡족한 얼굴로 나가면서 인사했다.

“또 오세요-.”

다섯 명이 입을 모아 합창했다. 그제야 목화가 제대로 정애에게 인사를 했다.

“누님 오셨습니까.”

오늘 땀 한번 호되게 흘린 얼굴이었다. 어찌나 오랜만에 보는 동생인지 모른다. 기쁘고 반가우면서도, 생각도 못해본 고생을 한 얼굴이 눈에 들어와 정애는 웃고 말았다.

“내일은 일요일 이니까 저녁에나 좀 팔릴 거야. 아침엔 고사지니까 알바생한테 맡겨두고 오늘은 좀 가서 먹고 쉬자. 아직 저녁 못 먹었지? 고기 먹을래?”

목화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님!”

뒤에서는 다섯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고기꾼들의 합창이었다. 꽃집을 나서던 정애가, 잠시 생각하다 김낙원에게도 권유했다.

“같이 갑시다. 일도 많이 하셨는데.”

김낙원이 당연하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애가 사람들을 끌고 간 곳은 ‘불타는 연탄 고기집’ 이었다. 길가에 화로가 든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보통 고기 집으로, 날씨는 선선하니 바깥에서 고기 굽기에 딱 좋았다. 내가 없었다면 오늘 뭘 팔 수 있었겠나. 김낙원은 당당하게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놈들도 우르르 몰려와 테이블을 붙이고 앉았다.

“어서 오세요, 몇 인분 드릴까요?”

“일단……”

정애가 남자 일곱을 돌아보며 얼마를 시켜야 할까 싶어 말을 흐리자, 넷째가 꾸물꾸물 대답했다.

“우선 십오인분만 주십쇼.”

그리고 그렇게 말한 넷째는 당장 김원일한테 머리를 쥐어 박혔다.

“얌마, 너만 먹냐? 이십인분은 시켜야지.”

‘맞소 맞어’, 저들끼리 터져 나오는 말에 정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주세요. 소주는 사람 수대로 주시고.”

술과 고기는 금세 날라져 왔다. 술잔이 돌아가고 고기를 익히는 동안 잠시 모두 말이 없었다.

“…….”

그러고 보면 참 희한한 조합이군. 김낙원은 생각했다. 현직 조폭 동생 다섯에, 서른아홉 살 먹은 꽃집여자에, 경찰간부라. 누구누구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절대 같이 모여 밥을 먹을 사람들은 아니었다.

……유일한 공통분모가 입이 천금이니 조용한 것도 당연한가. 다른 테이블들의 소란에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바람이 연기를 실어갔다.

생각보다 양복에 냄새는 배지 않을 듯 싶었다. 그때 문득 정애가 그에게 물어왔다.

“형사양반은, 집이 장사하나요?”

낙원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한 얼굴로 쳐다보자 정애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 아까 말을 너무 잘 하길래…….”

말이야 누구나 하지. 특별히 못하는 놈이 있을 뿐이지. 낙원이 면박을 주려 했을 때였다. 옆에서 갑자기 김원일이 벌떡 일어나 끼어들었다.

“저는 압니다!”

“……?”

낙원이 쳐다보자 김원일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형사양반 댁, 공장하죠?!”

이, 삼, 사, 오가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오, 그거다!’ ‘맞어, 돈도 있어 보이잖어.’ ‘틀림없이 동남아애들 쓰는 공장일 겁니다.’ ‘글쎄 그런 데 감독들은 우리보다 더하다면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싱긋 웃는 김낙원의 위험스러움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김원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아닙니까?”

목화가 아무 말 없이 김원일 어깨를 눌러 앉혔다. 형님 말은 정말로 잘 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여간 일단 김원일이 앉았다. 놈도, 오늘 하루 종일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달려드는 동생들 탓에 신경 줄 한번 꽤나 시달렸을 것이다. 놈의 고생을 생각하자 기분이 좀 나아진 김낙원이 정답을 말해주었다.

“빌딩 장사한다.”

그러자 김원일이 신나서 외쳤다.

“오오- 부동산……!”

그래. 맘대로 생각해라. 김낙원이 포기하고 말았다. 고기는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냄새가 슬슬 올라왔다. 김원일과 형제들은 그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미치는 모양이었다. 슬슬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정미 년보다도 더 향긋한 이 향기.”

운을 뗀 것은 술집에 그렇게 돈을 갖다 박는다는 둘째였다.

“이 육질을 보라.”

“오오 형님, 익어갑니다-!”

그 소란 속에서 정애가 또 물어보았다.

“나이가?”

호구조사 하나. 김낙원이 짧게 대꾸했다.

“서른이오.”

그 말에 박목화 얼굴이 살짝 변했다가 도로 돌아왔다. 정애가 목화를 돌아보았다.

“목화야, 네 나이가 어떻게 되었지?”

“서른하납니다.”

목화가 대답했다. 정애가 잘 됐다는 듯이 웃음을 띠었다.

“그렇게 도와주는 사이니까, 둘이 말도 트고 잘 지내면 되겠네. 그렇죠, 형사양반? 목화야, 이 분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지금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나. 김낙원이 오랜만에 진심으로 웃으며 상을 엎으려 일어나려 했을 때였다. 목화가 무척 어색하게 물어왔다.

“……이름이, 뭐지?”

이름도 몰랐나. 반말을 해오는 것보다도, 이쪽에 조금 더 신경이 쓰인 김낙원이 자리에 다시 앉았다.

“김낙원(樂園). 즐길 락에 동산 원.”

“천국이네.”

정애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럼 자꾸 형사양반, 형사양반하기도 뭐하니까,”

확실히 좀 지겹던 참이었다. ‘씨’ 자를 붙이려나 싶어 낙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애가 말을 끝마쳤다.

“……김형사라고 부를게요-.”

그리고 정애가, 제일 먼저 익은 고기를 턱하니 그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졸지에 3계급 강등당해 ‘김형사’ 가 되어버린 낙원이 이번에야말로 엎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놈들이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눈치 챘다.

침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아주 부담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영문을 모르던 김낙원이, 김원일의 죽어가는 소리에 이유를 알았다.

“형사양반, 제발 누님 좀 먼저 드리시오…….”

자신에게 먼저 준 게 정애니, 자신이 누님에게 대접해줘야 순서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김낙원이 싱긋 웃었다.

“뭐, 그럴까.”

완벽한 표본 같은 젓가락질로 석쇠에서 고기 한 점을 집어 정애의 그릇에 올려놓는 그의 손길은 아주, 아주 느렸다.

옆에서는 헥헥대는 놈들의 신음성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주인의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밥을 먹지 않는 개들 같다. 일전에 그런 훈련을 받은 개를 보았을 때에는 주인이 동물을 대상으로 한 새디스트인가 생각했는데, 인간 대상으로 보자 진실이 드러나는 듯 했다. 툭, 고기가 정애 그릇에 떨어지자 놈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우와-!”

그러나 그것으로 끝낼 김낙원이 아니었다. 낙원이 또 고기 한 점을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목화를 향해서였다.

헉, 소리가 공동으로 울렸다. 아주 천천히 목화를 향해 가져가는 동안, 드디어 참지 못한 김원일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울려 퍼졌다.

“형사양반, 고기 타겠소……!”

김낙원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돼지고기는 원래 다 익혀서 먹는 거야.”

그러면서 김낙원은 고기를 목화에게 내밀었다. 목화의 얼굴이 잠시 거북해졌다. 곤란해 하는 얼굴을 보면서 김낙원은 자기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었다. 목화가 젓가락을 집어 그의 젓가락에 있던 고기를 집어갔다.

“역시 형님이 최고십니다-!”

그러자마자 함성이 천둥처럼 울리더니, 놈들의 젓가락이 석쇠에 번개처럼 난입했다. 많이 먹는 놈들은 젓가락질을 세게 하는 놈이지, 잘 하는 놈이 아니었다. 왼손으로 하는 게 낫겠다 싶은 놈들이 한 판을 해치우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한판, 또 한판, 그리고 다시 한판. 왜 이십 인분을 시켰는지 알 거 같았다. 고기도 술도 말 그대로 누구 코에 붙일 새도 없이 사라졌다. 그 판에 낀 김낙원도 가만히 앉아있을 틈이 없었다. 먹고 마셨다. 소주 일곱 병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났다. 그래도 놀라운 건 형님 몫과 누님 몫만은 매번 챙긴다는 것이었다. 다 먹고 석쇠 바닥을 드륵 드륵 긁던 김원일의 가련한 눈빛에 정애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또 시켜줄까?”

“누님이 최고십니다!”

금세 최고가 형님이 아니라 누님이 된 것을 보면서 김낙원은 잠시 고민했다. 놈들에게 최고는 고기 인건지도 몰랐다. 고기가 또 그만큼 왔다. 놈들의 젓가락질은 늦춰질  줄을 몰랐다. 그래도 거의 이십판 째를 돌고 나자 김원일은 슬슬 배가 부른 모양이었다. 고기도 들어갔겠다, 술도 들어갔겠다. 놈이 갑자기 ‘에헤’ 하고 웃더니만 일어났다.

“……?”

“자타공인 섹시 허리-”

저놈이 잘 먹고 미쳤나, 김낙원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김원일이 검정 티를 주섬주섬 움켜쥐고 올리고 있었다. 뭘 하려는 지 이미 알았는지. 형제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오오 형님’ 박목화도 아는 모양이었다. 고개를 젓더니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검정티를 올려 땡땡해진 배를 드러낸 김원일이 훌라우프라도 하는 기세로 배꼽을 돌려대며 허리춤을 추기 시작했다.

“저스트 텐 미닛~!”

고기집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근육 위고 막 고기를 먹어 튀어나온 배가 출렁대며 흔들렸다.

‘싸이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의 김낙원도 얼굴을 못 들 뻔 했다. 그러나 문제는 놈의 노래가 꽤나 들을 만 하다는데 있었다.

김원인이 요염하게 젓가락으로 다 익은 고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아하하……!”

정애가 소주잔을 들고 소리 높여 웃었다. 한참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를 부르던 김원일이 노래가 다 끝나가자 기다란 항정살을 핸드폰처럼 귀에 대고는 소리쳤다.

“외쳐봐-”

그러자 형제 다섯이 모두 입을 모아 부르는 것이었다.

“김-효-리!”

“……전엔 엄정화더니.”

박목화가 중얼거렸다. 이런 짓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구나, 김낙원은 침묵해다. 얼굴이 벌게진 ‘김효리’ 가 옆에 앉아 술을 따랐다.

“형님, 내 형님 한테 보여주려고 새 레퍼토리를 개발했습죠.”

박목화가 그 술을 받아 마시더니 한 마디로 그 공(功)을 치하했다.

“잘 봤다.”

놈도 의외로 거물인지도 모른다. 김낙원을 생각했다.

“건배하자.”

정애가 말했다. 김원일이 자기 잔에도 술을 따랐다. 3년만에 만난 현직 조폭 동생 다섯과 꽃집 누님과 경찰 간부 모두 술잔을 들었다. 건배할 대상은 하나뿐이었다.

“목화 꽃집을 위해!”

“형님을 위해!”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어도, 김낙원 역시 놈에게 술잔을 부딪쳤다. 타인을 위해 건배를 한 건 처음이었다.

기분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 * *

“……내, 사실 김형사씨 나이엔 동생이라면 지긋지긋 했거든.”

정애가 느리게 중얼거렸다.

“남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것도 고추랍시고 사고란 사고는 다 치는 거야. 중학생대부터 여자애를 임신 시키지를 않나,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나쁜 놈들하고만 어울려 다니고, 집나가는 건 술 먹듯이 하지, 싸움질에 합의하느라 경찰서마다 불려다녔다? ‘형사님, 한번만 봐주세요’ 이 소리 정말 수십 번을 했어.”

“…….”

“하이고, 누님. 그럴 땐 그저 공사장 빈터에 가서 아주 정신 팍 들게 매를 때려버려야 하는 건데 그랬소.”

고기집은 파장 분위기였다. 24시간 하는 곳이라, 너무 늦어 집에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만이 첫차를 기다리며 소주로 선선한 밤공기를 녹이고 있었다. 일하는 아주머니도 카운터 한 구석에서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김원일의 말에 정애가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안 계셔서 애를 팰 사람이 없었거든, 애가 너무 미운데, 그래도 동생이니까 내버려둘 수가 있어야지. 형편이 안 되어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꽃집에서 일을 했는데, 돈을 좀 모아둘만 하면 애가 사고를 치더라, 처음엔 나 대학 가겠다고 모아둔 돈을 두 번인가 깨먹고, 가게 하겠다고 해둔 돈을 또 날려먹고. 시집가는 건 벌써 그때 포기했지. 나 말고 누구 인생을 또 말아먹게.”

“…….”

“날려먹고 나면 또 얼마간 안 나타나. 그러나 또 사고를 치면 오는 거야. 내가 막아주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큰 맘 먹고 김형사씨 나이에 으름장을 놨어. 다신 오지 마라. 절대로 안 막아준다. 그러니까 결국 애가 감옥에 들어갔는데, 면회를 가도 안 만나주는 거야. 원망스러웠나봐. 그 뒤엔 연락이 끊겼어. 안막아주니까, 안 오더라고.”

‘그런 썩을 놈이 있나’, 김원일이 제 딴에는 속닥인다고 형제들과 속삭였다.

정애가 그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웃으며 김원일 어깨를 두드렸다.

“니들은 썩을 놈이 아닌 줄 아니. 다아- 누구 속 썩이면서 살고 있을 텐데.”

헤헤, 김원일이 웃었다. 정애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내가 저번에 너희들 뭘 믿고 목화한테 오늘 가라고 했는 줄 알어? 그래도 내가 목화 아직 못 만났을 때 누가 이년 동안 일일이 사식 넣어주고 뒤를 봐줬나 궁금했는데, 그게 너희들이란걸 알고 목화 챙겨줬구나 한 거야. 그동안 사식 넣어준 통장 안 들고 왔으면 우리 목화, 동생이건 뭐건 너희들 못 만나게 했을 걸.」

정애가 목화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래도 내 그놈 혹시 소식이라도 들을까 해서, 교도소를 그렇게 들락거린 보람이 있었지, 너를 만났잖니.」

「…….」

목화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미하게 웃음 같은 것이 스친다.

편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김낙원이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불쑥 물었다.

「찾아줄까.」

「찾아드릴까요, 누님?」

둘 다 말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양쪽이 그녀에게 물은 의도도 달랐지만, 아마 찾을 방법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김원일이 또 다시 조폭 vs 경찰의 시합 분위기가 되어‘내가 더 빨리 찾아야지’하고 중얼거렸을 때였다.

정애가 웃으면서 설레설레 고개를 젓고는 일어났다.

「됐어. 알아 뭐해. 아니 그리고 누님이 아니라 누나라니깐, 애들 말 정말 안 듣네.」

여기 계산이요, 정애가 소리치고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여기 계속 이렇게 있다간 몸 상하겠다. 난 택시 타고 갈게, 내일 또 여기까지 나와야 되는 목화는 어디 여관이라도 들어가렴. 김형사씨는?」

낙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차를 꽃집 앞에 두고 와서.」

가서 타고 가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정애는 다른 뜻으로 알고는 잘 됐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김형사씨도 술 마셨으니까, 둘이 여관 가면 딱 되겠네. 자, 건강하고 젊은 애들이 여기서 밤새든지 들어가든지 하고. 난 이만 가요-.」

'안녕히 가십시오.' 정중하게 현직 조폭 일골 다섯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정애를 보내주었다.

어쩔까, 하던 김낙원은 결국 정애 말에 따라 목화와 함께 고기집을 나섰다.

* * *

호텔급 이하로는 처음 와보는 낙원이, 모텔의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길가에 있던 아무 모텔이나 들어온 참이었다. 방은 하얗고 생각보다 깨끗했다. 티비가 놓인 장과 침대와 화장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평범하네.」

낙원이 중얼거리자, 목화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어떨 줄 알았느냐는 얼굴이었다. 낙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난 또 하트 모양 물침대라도 있을 줄 알았지.」

픽. 목화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오랜만에 보는 놈의 웃음이었다. 한순간 사람다워지는 놈을 보자 묘하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김낙원이 침대에 앉았다.

「너, 왜 나와 같이 온 거냐?」

그러자 박목화가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놈의 얼굴을 보자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낙원이 피식 웃으면서 되물었다.

「누님이 그러래서 온 거지?」

놈은 대답이 없었다. 놈, 너무 풀어놔서 긴장이 풀렸군. 낙원이 싱글싱글 웃기 시작했다.

「누나가 하라면 다 하냐? 누나 한번 어지간히 집착하네. 김정애씨가 친동생 찾으면 어쩌려고? 그리고 넌, 위험하다는 자각도 없나보지? 그새 다 잊었나, 네 몸에 물어나볼까.」

말을 하면 할수록 동시에 기분이 나빠졌다. 낙원은 웃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이상한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놈들을 만나 일을 하고, 술을 먹고, 여관까지 왔다. 접선이라는 가능성은 포기했어도 혹시나 싶어 같이 온 김낙원이었다. 그렇지만 다 귀찮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 하루일 거다. 낙원이 일어났다.

「다행인줄 알아. 오늘은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니까. 난 간다.」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데에도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터였다. 성큼성큼 나가려는 김낙원을, 뜻밖에도 박목화가 불러 세웠다.

「자고 가라.」

낙원이 놀라 돌아보았다. 박목화는 평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너 술, 많이 마셨다.」

놈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에 김낙원이 피식 웃었다. 저놈도 서경위 과인가, 성실한 놈들은 모두 비슷한 걸까.

이상한 날이었다. 낙원은 결국 놈의 말에 끌리듯 도로 들어가 침대 위에 앉았다. 박목화도 잠시 후엔 그에 옆에 앉았다.

한참 둘은 말이 없었다.

「하연이는 조카야.」

「응?」

불쑥 나온 말에 김낙원이 놈을 돌아보았다. 박목화가 다시 한 번 그 말을 반복했다.

「하연이는 내 조카라고.」

그 말이 입력된 건 잠시 후였다.

「……!」

아까 누나에 집착한다는 말에 아니라고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사촌누나 박하연이 조카라는 이야긴-‥‥‥.

「내 어머니는 해녀였는데 연세가 좀 많으셔서.」

김낙원의 얼굴을 보았는지 박목화가 담담하게 한 마디씩 설명했다.

「섬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하는 김낙원의 얼굴에 목화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도 만삭인 줄 모르고, 물질하러 들어갔다 애를 놓았다고, 옆사람 테왁(전복을 따서 넣는 소쿠리)에 걸려 뭍으로 나와 산 뒤엔, 소문이 도니까 서울의 큰 아들에게 보내셨다. 내가 소년원에서 나와 찾아갔을 때 큰 형인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다.」

박목화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내가 막내니까, 하연인 내 조카다.」

「…….」

우도(牛島) 태생이라는 건 서류상 알고 있었어도, 이런 이야긴 알지 못했다. 서류와 사람이 다르다는 걸 두 번째로 또 깨닫는다.

낙원이 잠시 목화를 쳐다보다 싱긋 웃었다.

「차라리 누나한테 약한게 낫지, 조카한테 약하다고 하니까 변태같은데.」

「……그런가.」

목화가 마주 싱긋, 웃음을 띠었다.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도 하는 양 초승달 같은 선만 입가에 그어도 달라보이더니만, 진심으로 웃자 놀랄 정도였다. 사람을 쏘아보는 듯한 눈초리가 작은 웃음을 띤 것만으로도 매력을 띤다. 이런 얼굴이었나. 눈을 뗄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한참을 쳐다보던 김낙원이 중얼거렸다.

「평소에도 좀 웃지 그래. 김원일이도 꽤 웃기던데.」

박목화가 되물었다.

「김효리?」

「아하하……!」

둔중한 허리를 돌리던 놈이 생각나자 웃음이 터졌다. 그 앞에서는 어이가 없어 제대로 웃지도 못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보통 웃기는게 아니다. 김낙원이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다.

「허리 놀림이 예술이던데.」

잠시 생각하던 낙원이 덧붙였다.

「하기야, 뇌 크기도 예술이지. 공룡일 것 같아. 호두알크기.」

제멋대로 단정을 내린 낙원이 목화에게 말했다.

「3년 전에 찔려놓고 어떻게 그리 같이 어울릴 수가 있나 생각했는데, 놈들을 보니 알겠더군. 뇌가 백지장이야. 속이 없어.」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던 그날 밤이 떠올랐다. 친밀한 사이에서만 찌를 수 있는, 그 정면의 은빛 흉기. 엉겨든 피처럼 오래토록 고였을, 깊은 골에서 흘러내린 배신의 향기가.

속없는 바보들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김낙원은 단정을 내렸다.

그러자 과연 정말로 박광우씨가 찌르게 시켰을까, 하는 의문의 피어났다. 김원일이 가진 건 충성심이었지 머리가 아니었다. 이, 삼, 사, 오 역시 대체할수 있는 머리는 없어보였다. 과연 이런 놈들을 믿고 박목화를 잘라냈을까. 아니, 우선 정말로 박목화가 잡혀서 불거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3년 전 정말 박광우였나?」

낙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비슷한 생각을 박목화 역시 수없이 해본 듯 했다. 조카 이야기를 할때에는 담담했던 녀석이, 오히려 박광우란 이름만으로도 훨씬 더 굳은 얼굴이 되어 이야기를 끝냈다.

「모른다.」

그리고 잠시 후 작게 덧붙인 말을 낙원은 들었다.

'의심하기도, 싫다.'

-두려운 것이겠지. 김낙원은 생각했다. 오늘까지 들어보니 한두 번 버림받고 배신당한 놈이 아니었다. 아예 생각하기 싫다는 것도, 나름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그래서 안 돌아갔어?」

「…….」

그러나 목화는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낙원도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자자.」

놈이 말했다. 시간을 보자 어느새 4시 반이었다. 낙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먼저 샤워한 뒤에 놈도 씻고 나왔다.

그 무렵엔 먹물 같은 어둠을 화선지 같은 여명이 서서히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목욕 가운을 입은 놈이 침대에 눕자, 새벽빛에 놈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낙원은 자기도 모르게 드러난 놈의 어깨를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놈의 몸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밤을 같이 지낸 것도, 아니 침대에 누워보는 것도 처음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기분이 묘했다.

문득 낙원이 손을 뻗었다. 목화가 흠칫했다. 해치지 않을 거라고 말이라도 하듯, 낙원의 손이 부드럽게 놈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손길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목화를 쓸어내렸다. 항상 셔츠로 꽉 채워져있던 목을 가볍게 지나쳐, 놀랍도록 여린 살을 감추고 있는 근육질의 단단한 가슴을 타고 내려가-.

「…….」

놈이 숨을 토해냈다. 낙원의 손이 복부에 닿아 있었다. 언젠가 옷 위로 꽉 쥐었던, 3년 전의 상처에.

'보여줘.'

낙원이 속삭였다. 그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한 부탁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목화가 침대에 바로 누웠다.

가운 아래에는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배꼽 아래 잠들어 있는 남자다운 성기와 음모가 모습을 드러내기 직전까지 낙원이 가운을 풀러 내렸다. 군살 하나 없는 단단한 복부에는 하얗게 꼬아진 삼줄 같은 두개의 흉터가 목화가 숨을 쉴 때마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위게 것은 급소에 가까웠지만 길고 얇았고, 복부 아래쪽의 것은 깊고 작았다.

김원일이 이야기했던 그 작두질이 생각났다. 어느 것이 언제적 것인지는 분명했다. 낙원이 문득 충동적으로 깊고 작은 놈의 흉터 위에 얼굴을 묻었다. 3년 전, 자신이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놈이 숨 쉬고 있지 않았을 바로 그 상처였다. 「‥‥‥!」놈이 놀라 몸을 빳빳하게 경직시켰다. 자신도 왜인지는 몰랐다. 말 그대로 충동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치골과 복부의 근육 사이에 패인 홈 같은 흉터의 감촉을 입술로 훔친 낙원이, 놈이 밀어내기도 전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

그리고 6시까지 샤워를 마친 낙원은, 아무 말 없이 옷을 입고 방을 나갔다.

* * *

「요즘은 외근 안 하시네요.」

서경위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시는 건 처음 봅니다. 경정님.」

낙원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하기 싫어지잖나.' 생각했지만 그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내일 스승의 날인데, 은사님 안 찾아가세요?」

외근 안 필요하냐고 떠보는 말이었다. 서경위가 놀리듯이 물은 말에 낙원이 대꾸했다.

「누가 인생을 가르쳐줬다든?」

김낙원이 그제야 입을 열어 은사 따윈 없음을 피력하자, 이제 그런 뜬금없는 말에 익숙해진 서경위가 눈도 한번 껌벅이지 않고 말을 받았다.

「배우진 못해도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까.」

많이 컸다. 김낙원이 피식 웃었다.

일주일째였다.

외근을 안 한 지 일주일째라는 이야기다.

그 날 뭐에 씌었나 싶었다. 자신답지 않은 짓을 너무나 많이 한 탓에 스스로에게 할 말도 없었다. 왜 도와줬을까. 여기서부터 문제였다.

바쁜 걸 알았으면 나와야 했고, 김원일을 알아봤으면 형사들을 불렀어야 하는 건데.

그 날 밤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은 낙원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길게 내뿜자 서경위가 슬슬 피했다.

낙원이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담배를 빨아들였다. 형사들이 기동대로 불려간 뒤라, 한낮의 수사부에는 몇 남아있지 않았다. 있다 했더라도 그에게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래대로 데스크의 서류 업무로 돌아온 것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항상 하던 일인데도 그렇게 심심했다.

외근을 해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바깥으로 나도는 건 금방 익숙해지는 모양이지. 김낙원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익숙해진 외근을 왜 안하는지에 대해선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가기 싫어졌을 뿐이었다. 사실, 굳이 박목화에게 자신이 갈 이유도 없지 않은가.

서경위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후, 불자 햇살이 연기에 얼룩졌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이 간간히 들려왔다. 조용하고 한가한 한낮이었다. 김낙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복도를 쾅쾅 울리며 발소리가 다가왔다.

낙원이 눈을 떴다.

문을 벌컥 연 건 오랜만에 보는 홍경장, 홍 형사였다. 모두의 시선이 문가로 쏠렸다. 홍경장이 소리를 질렀다.

「김원일이 찔렸답니다……!」

'누가'라고 분분히 묻는 소리 사이, 김낙원이 거칠게 담배를 비벼 껐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