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의보름을조심하라-5화 (4/34)

5. 저녁

게딱지깥이 희끄무레한 하늘이었다.

「…은 합벅적인 사업입니다. 최근 몇 년간 김선의 사업은'W캐쉬'라는 사채업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다른 게를 집게발로 짓눌러가며 하얀 스피로폼 박스를 기러 올라와, 수산지장에서 '갓 잡아왔소!'하는 소리를 허연 등으로 증명하는 그런 게딱지.

「전엔 뭐 돈놀이 안했나.」

「그렇지만 합벅적이라는 데 의미가 있죠. 이렇게 되면 탈세 밖에 잡아들일 방법이 없지 않겠습니까. 2002년도에 시행된 관계 법령에 따르면……」

아래에 깔린 채 박스 옆면이나 집게발로 긁는 시끄러운 소리는 내버려두고, 김낙원은 한가롭게 생각했다.

게 철이 지났던가.

「국세청에다 넘기잔 말야? 언제부터 놈들이 커졌다고 그래? 합법이래봤자 다 찾아보면 피해자 나오고……」

「그래봤자 경제 사범입니다, 지금 구역다툼을 하자는 게 아니잖습니까.」

며칠을 이 판에 처박혀 있었더니 좀이 쑤셨다.

내가 지나치게 성실했지.

서경위가 들었다면 한순간이라도 계급을 잊고 한 마디 했을 소리를 낙원은 태연히 중얼거렸다.

전에는 이 판도 있을만 하더니, 한번 외근 맛을 보자 가만히 처박혀 있는 것만큼 지루한 게 없었다.

사실 외근을 한다고 바깥을 싸돌아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야.

재미가 있는 건 꽃구경인가.

도저히 일반적으로 '꽃'이라고는 봐줄 수 없는 커다란 녀석의 얼굴을 떠올리고 김낙원이 웃음을 띄웠다.

……그래도, 저번 웃는 얼굴은 좀 봐줄만 했지.

김선 따위에겐 처음부터 별 흠미가 없었다.

구역다툼이 되든 무슨 다툼이 되든 이미 스티로폼 박스 안에 담긴 게 싸움일 뿐이다.

궁금한건 어떤 불가사리를 잡아먹을지 모르는 살아있는 게였다.

그간 수사한 '동양' 이야기라고 해서 와봤더니 내내 김선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그런 생각을 한 게 그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도대체 박광우는 어떻게 된 거야?」

낙원은 흘깃 목소리르 높인 쪽을 바라보았다.

김반장이었다.

「김선이 사체업을 하건 포주 짓을 하건, 여하간 깡패짓하는 게 어디 가? 합법적이니 뭐니 개소린 집어쳐. 그놈 머리에 합법적인 짓만 해서 긁어모으고 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문제 박광우 아냐. 그놈은 어딨어?」

기동대에 가서도 그 성질 조금도 죽지 않았다.

홍경장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답을 내놓았다.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학교고 저가 교사였다면 당장 학생부라도 휘두를 것 같은 기세로 김반장이 되물었다.

「김선네 사무실에 잠복한지가 벌써 몇일이야? 벌써 한 달도 넘었잖아. 김선이 사채업을 한다면 달에 한 번은 수금할 거 아냐. 지들이 은행을 쓰겠어. 딴 놈 손에 현찰을 맡기겠어. 나타나도 두 번은 나타났겠다. 명색이 기동대라는 놈들이 뒤도 못 밟아?」

「안 나타납니다.」

홍경장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박광우는 고사하고 김선일도 안 나타납니다. 김선 쪽 사무실에 드나드는 건 김선 쪽 애들 뿐입니다. 정보통에 따르면 박광우는 김선 쪽에는 거의 드나들지도 않는답니다. 3년 전에 잠적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다는 군요.」

듣던 중 새로운 소리였다.

김낙원이 턱을 괴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김반장은 할 말이 없어진 모양이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소리를 몇 번 중얼거린다.

김낙원이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다 물었다.

「자금은?」

「예?」

홍경장이 바짝 얼어 되물었다.

김낙원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되풀이 했다.

「사채업을 한다면 자금이 있겠지. 'W캐쉬'라면 상호가 아닌가. 상호를 쓴다면 훌륭한 제 2금융권의 금융회사잖나. 자금 추적이 충분히 가능할 텐데.」

수금을 사무실에서 하지 않는다면 채권을 사용해서라도 빼돌리는 구석이 있겠지, 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예, 뭐 저……」

오로지 잠복밖에 할 줄 모르는 형사들을 데리고 일을 한다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때가 어는 때인데 아직도 현찰 거래밖에 모르나.

김선이야 그런 스타일밖에 모를지 몰라도, 박광우는 그럴 놈이 아니었다.

진땀을 흘리던 홍경장이 김낙원이 일어나 나가자 그제야 안심했다.

김반장이 뒤에서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빨리 그놈의 자금부터 추적하지 않고……!」

낙원이 웃으면서 걸어 나왔다.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

서경위가 따라 나왔다.

「경정님.」

낙원이 '왜'라고 묻듯이 돌아보았다.

「김선이 사채회사인 'W캐쉬'를 등록한 시기 말입니다.」

김낙원이 기다리자 서경위가 말을 이었다.

「3년 전 합법화 시행령이 떨어졌을 때 바로 전환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시행령 상 합법적인 최고 이율은 연 67%입니다. 결코 적은 이율은 아닙니다만……」

「적지.」

김낙원이 단호하게 말했다.

서민의 기준을 갖고 있는 서경위가 잠시 질린 얼굴을 했다.

「적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확실히 다른 나에에 비해 '합법적'인 이율 치고는 높은 건지도 모른다.

연 최고 67%. 1억을 빌려주면 세금 빼고 연 6천만원 가량을 손에 쥐는 사채업.

그러나 그 이전이 어땠는지 아는 김낙원으로서는 단연코 적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건, 김낙원 뿐은 아닌 듯 했다.

「조직 폭력배가 관련된 사업에선 그 이전엔 300%, 400% 정도가 관행이었다고 하더군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김낙원은 말을 재촉하듯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서경위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그 해 법령이 발표된 건 7월입니다. 11월에 시행령이 떨어진 뒤엔 사채업자들이 두 부류로 양극화 되었다고 합니다. 합법으로 전환할 것 이냐, 아니면 현행 유지를 할 것이냐. 현행 유지도 나쁜 선택은 아니겠죠.급한 사람은 불법이율이라도 이용할 거고, 정말 그렇게 궁지에 몰린 사람은 신고도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다 아는 얘기였다.

김낙원이 담배를 문 채 라이터를 꺼냈다.

그때였다.

서경위가 본론을 한 마디로 내놓았다.

「김선이 'W캐쉬'를 등록한 건 10월 31일입니다. 경정님」

라이터를 켜려던 김낙원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이상하군.」

「확실히 이상하죠.」

서경위가 말을 받았다.

사채업계를 건너건너 알고 있는 김낙원이 '적다'고 느끼는 67%였다.

정말 300%, 400%씩 해 먹고 있던 업자 입장에선 합법화가 그리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통 이듬 해 결산 전에야 미적미적 합법화에 들어갔지?」

김낙원의 물음에 서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그 욕심 많은 김선이,시행령 떨어지는 그 날로 합법화에 들어간다?

전형적인 조폭이었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단란주점 포주건 나이트건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다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애들 몇명 보내 처리하는, 과거 나와바리를 관리하던 시절 그대로인 탐욕스런 '동양 K'.

「전과 5범 아니었어?」

확인하는 김낙원에게 서경위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놈이 그렇게 법에 민감랬던가?

들어갔던 죄목이라 봤자 젊었을 때 들어깄던 폭력 상해, 걸리면 돈 좀 쓰고 애들 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놈이, '합법'에 그리 연연해?

「애라도 생겼대?」

김낙원이 웃으면서 농담을 던졌다.

서경위가 진진하게 답했다.

「아직 1년 이상 간 정부는 없습니다만, 알아볼까요?」

「아냐, 아냐. 됐어.」

그는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이놈은 농담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럴 리가 있나.

드라마도 아니고 애 생겼다고 합법화를 하게.

뭔가 있었다- 김선 뒤에.

김선이 원하지 않아도 합법화를 시킬 수 있는, 법률에 민감한 누군가가.

「얘기 잘 들었네.」

우선 김낙원은 농담은 통하지 않아도 쓸만한 머리를 가진 서경위를 치찬했다.

저 안에 있는 놈들보다는 확실히 쓸만한 놈이었다.

김낙원이 막 돌아서려 했을 때였다.

「참, 박광우 얼굴 말입니다.」

서경위의 말에 김낙원이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서경위가 묻고 있었다.

「10년 전 철거반 시절엔 박목화가 잡혔던 구역에 담당 형사분도 있던데요. 사진이야 찍지 않았어도 아주 얼굴을 모르는 건 아니라고 하시던데, 왜 얼굴을 아무도 모른다고…….」

김낙원이 웃어버렸다.

말 그대로 박광우 얼굴을 몰라서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잡아 놓고도 이놈이 박광우라는 걸 몰라서 놓친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 거물이 되어버린 놈이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아무도 몰라 애초 수배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건만.

「자넨 너무 비유를 몰라.」

김낙원은 한참 웃다 그렇게만 말하곤 돌아섰다.

뒤에서 눈만 껌벅이던 서경위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경장님, 어디로 가십니까?'

「꽃 보러.」

좀 커다란 꽃이지.

김낙원이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 * *

나무 목에 꽃 화자, 커다란 꽃이 되어버린 박목화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통화목록에 있는 이름이라곤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누나'

핸드폰을 사주면서 정애누님이 직접 저장해준 이름이다.

통화목록 맨 위에는 4일 전 걸령핬던 부재중 통화가 마지막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 뒤로 정애에게는 더 이상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목화는 다시 핸드폰을 닫았다.

「…….」

핸드폰을 두 손으로 뒨 채 목화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꽃집 안은 조용했다.

유리창 바깥에 다니는 사람들의 소리도, 봄다워지 햇볕도 가게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이 위잉, 간헐적으로 가게 안을 울리고 했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 외에는.

그러나 입수할 때처럼 숨을 잠시 삼키고 나면, 그조차 없는 듯이 느껴졌다.

이런 건 생의 사분지 일을 보낸 감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은 이곳이 누님의 가게라는 점뿐이었다.

하지만 가게를 맡긴 누님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쥔 채 잠시 눈을 감았다.

누님에게 전화를 하는 게 좋을 지, 아니면 그냥 기다리는 게 좋을 지 알 수가 없었다.

기다리는 것은 익숙했다.

단지 기다려도 소용이 없을 때가, 더 많은 뿐이다.

'왜 그랬니,'

박하연이 묻고 있었다.

검은 생머리에 하얀 얼굴.

리본 달린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사내애들의 선망의 눈초리를 받곤 했던 그녀가.

그는 대답했다.

말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는 분명히 이야기를 했었다.

'누나, 나는……'

단지 그녀의 귀에 닿지 않았을 뿐이다.

목화는 핸드폰을 다시 열었다.

통화 목록을 눌렀다. '누나'가 떴다.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목화가 잠시 손을 멈추었다.

몇 초가 지나자 화면이 꺼졌다.

거울처럼 어두워진 화면을 내려다보던 목화가, 결국 핸드폰을 닫았다.

그때였다.

-딸랑, 종소리가 울렸다.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내려놓고 목화가 일어났다.

「어서,」

인사를 하던 목화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끝마쳤다.

「……오세요.」

들어온 건 김낙원이었다.

인사를 받아낸 김낙원은 싱긋 웃으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오늘은 손님도 없군.」

전의 손님 구경도 나름 재미있었는데.

낙원은 섭섭하다는 양 중얼거렸다.

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상관없지. 오늘은 내가 손님이니까.」

경계심어린 놈의 얼굴을 흘깃 본 김낙원이 들고 온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백화점 로고가 짝혀있는 봉투였다.

「……?」

「먹어.」

부시럭, 낙원이 종이봉투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을 꺼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랩에 싸인 종이 박스 안에 다섯 개에 가득 담긴 건 쇼마이였다.

게살 쇼마이.

「점심부터 게가 먹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게 철이 한참 지났더라구. 이봐, 손님이 왔는데 의자도 안 내놓나?」

낙원의 말에 놈이 아무 말 없이 슥 일어나, 리본대 뒤쪽으로 들어가더니 팔걸이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저번처럼 통로에 내려놓았다.

꼭 저렇게까지 하라고 말한 건 아닌데.

낙원은 잠깐 웃어버렸다.

정말로 요령 없는 녀석이었다.

자신이었다면 플라스틱 의자나 내주고 말았을 것이다.

인사하라면 착실하게 인사하고, 결찰이 손님대접을 하라는데 말 그대로 정말 대접하는 의자를 내놓다니.

낙원이 웃으면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네 미각도 어지간히 사회화가 덜 된 것 같더군. 그래서 사왔지.」

낙원이 종이 박스 하나를 놈의 앞으로 밀었다.

여전히 경계심 어린 얼굴이었다.

낙원이 직접 랩을 뜯어 젓가락과 함께 내밀었다.

「자, 먹어봐.」

놈은 몇 번 망설이는 것 같더니, 교도소 밥을 먹는 딱 그 얼굴로 쇼마이를 집어 들었다.

열릴 것 같지 않았던 입을 쇼마이만큼 벌리고 먹는 모습을 낙원이 턱을 괴고 지켜보았다.

굳은 얼굴로 몇 번 씹고 삼킨다.

놈의 결후가 아래 위로 한번 꿀꺽, 움직였다.

「어때.」

말랑말랑한 쇼마이를 자기도 하나 집어먹을 낙원이 확실어린 말투로 물었다.

「맛있지?」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해하는 얼굴이 분명히 눈에 들어왔다.

표정이 풍부한 놈은 아니었지만,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가만히 지켜보면 굳은 얼굴이라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놈의 얼굴을 읽은 낙원이 싱긋 웃었다.

「간장 안 찍어도 간이 맞을 걸. 아직 안 식었군. 게살 쇼마이를 이렇게 투명하고 부드럽게 하는 집은 많지 않아. 딘타이펑보다 여기가 더 낮지. 여긴 샤오롱바오 전문이니까.」

낙원이 한 개 더 집어먹었다.

놈도 말 없이 집어먹었다.

한 박스 안에는 열 개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먹어치운 뒤 낙원이 박스를 한 개 더 꺼냈다.

「신세계 지하 매장은 다른 백화전 지하하고는 달라. 어지간한 레스토랑들보다 낫다고. 시내에서 이미 검증된 데만 들어가니까. 혼자 먹긴 딱이지. 기왕 사먹으려면 그런 데서 사먹지 그래?」

대답을 기대하고 하는 말은 아니었다.

낙원이 젓가락으로 랩을 뜯어 벌렸다.

「기껏 나와 있는데 감방 밥이나 먹어야 되겠어? 3년이면 콩밥이 물릴 때도 됐잖아. 저번 밥집에선 다시는 시키지 마. 싸지도 않던데. 여기 시장에서 순대국 집도 안 가봤어? 옛날식으로 돼지 피에 당면 넣고 말캉하게 끓여서 나오는 유명한 집도 여기서 겨우 걸어서 5분 거리라구. 해장엔 그만한 게 없지.」

그때 놈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안 나옵니다.」

「응?」

낙원이 되물었다.

놈이 잠시 후에 다시 말했다.

「콩밥, 안 나옵니다.」

여기 비유가 안 통하는 놈이 또 하나 있었군.

낙원이 알았다는 의미로 손을 들었다.

「그래 알았어. 요즘 교도소에서는 콩밥이 안 나오지.」

놈이 다시 젓가락을 잡았다.

낙원이 웃음을 참았지만 자꾸 입가로 삐져나오려는 웃음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아직도 경계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주제에, 이런 문제로 진지하게 반론을 제가하는 게 너무나 우스운 것이다.

쇼마이 두어 개로 간신리 웃음기를 가라앉힌 낙원이 아까의 빈 종이 박스에 간장을 뜯어놓았다.

먹을 걸 사온 건 단지 저녁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쉽게도 그놈의 회의가 너무 늦게 끝난 탓에, 외근이라기보다는 퇴근을 좀 일찍 한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그냥 갈까 어쩔까 생각하던 낙원의 눈에 백화점이 들어온 건 운명이었다.

죽도록 맛 없었던 그 밥이 생각나자, 차가 벌써 백화점 지하로 들어가고 있었다.

놈의 몫까지 착실하게 계산하면서 뭐가 이쁘다고 이놈밥까지 사가는 걸까 고민했지만, 그 밥을 꾸역꾸역 먹었던 놈이 생각나자 카드가 절로 나갔다.

꽃구경 값이려니, 낙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여하간 놈의 젓가락을 올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만 봐도 사온 보람은 충분히 있는 것이다.

낚시에 떡밥 값을 아끼면 안 되지.

낙원은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식지 않았을 때 먹으라구.」

그때였다.

-딸랑, 들려서는 안 되는 종소리가 울렸다.

「어서 오세요.」

놈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저기 바깥에 꽃 화분 얼마에요?」

「어떤 걸 말씀하십니까?」

들어온 건 아줌마였다.

박목화가 일어나 나가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총각이 하네.' 아줌마와 놈이 화분을 보러 같이 바깥에 나가더니만, 얼마 안 가 도로 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그거 삼천원에 주지, 총각.」

놈이 난처한 얼굴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건 안 됩니다.」

「에이, 안되는 게 어디 있어. 그냥 줘.」

「들여올 때 삼천원에 들여와서……」

정말이라는 게, 놈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장사하는 놈치곤 너무 솔직한 거 아니냐.

낙원은 속으로 혀를 찼다.

몸집으로 두 배인 놈은 단숨에 말을 까고 들어온 아줌마와 비교하면 실갱이 단수는 1/2도 되지 않았다.

원가까지 공개한 놈이 너무나 난처하다는 얼굴로 '안 됩니다'하고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어찌나 정중하게 거절을 하는지 머리라도 조아릴 기세였다.

「그냥 줘. 나 가져간다?」

「그건 정말로……」

「-오천원.」

뒤에서 일어난 낙원이 끼어들었다.

「그 이하는 안 됩니다.」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쇼마이가 식어가는 게.

아줌마는 뒤에서 나타난 김낙원을 사장처럼 인식한 모양이었다.

몇번 꿍얼거리더니 값 깎기를 시도했다.

「사천원에 줘요. 직원이 삼천원이라고 했구만.」

「들여온 값이 그렇다는 얘기죠. 그렇게는 못 팔아요. 오천원에 사가시죠. 충분히 싼 거 아실 텐데.」

그 화분이 뭔지는 모르는 낙원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하는 말에, 결국 아줌마가 지갑에서 천원 짜리로 다섯 장을 꺼냈다. 삽시간에 '직원'이 되어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박목화를 낙원이 손짓했다.

「싸 드려.」

직원답게 놈이 작은 꽃화분을 비닐에 싸서 들고 들어왔다. 낙원은 사장답게 그걸 아줌마에게 내밀면서 싱긋 웃었다.

「저희 손해 본 거 아시죠? 또 오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아줌마가 비닐을 들고 결국 나갔다. 딸랑, 종소리가 울린 뒤에야 놈은 인사조차 하지 않은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놈에게 낙원이 천원 자리를 세서 삼천원만 건넸다.

「자, 이천원은 내 사장 급료.」

그리고 낙원은 유리문 앞에 서서 잠금 장치를 찾아, 문 아래를 잠가 버렸다. 철컥, 소리가 가게를 울렸다.

「먹는 데 방해돼.」

삽시간에 직원이 된데다 영업 방해를 당해버린 놈은 내버려두고, 낙원은 의자에 돌아와 편하게 걸터앉았다.

「뭐해? 더 식기 전에 먹어.」

다 먹기 전엔 문을 열지 않겠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놈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가, 결국 한숨을 쉬더니 몇 걸음 만에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먹을 때 그렇게 방해를 받으면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교도소 밥하고 다를 게 없지. 내 친절에 감사해.」

뻔뻔스런 낙원의 말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먹을 때에는 손님은 '방해'니까 문을 닫겠다는 얘기다. 목화가 아무 말 없이 작은 만두를 집어먹었다. 먹어치우겠다는 생각이 놈의 젓가락질에 그대로 드러난다. 낙원이 웃으면서 곁에서 같이 집어먹었다. 잠시 가게 안에는 두 남자가 젓가락을 맞대고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 먹었나 싶었을 때 낙원이 네 번째 박스를 풀었다.

「새우 쇼마이도 있어.」

「…….」

놈은 자기도 모르게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낙원은 싱긋 웃었다.

「젓가락질은 누가 가르쳐줬지? 하연씨?」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파고드는 말에, 놈이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잘 하는데.」

낙원이 칭찬했다.

「난 일하던 아줌마가 하는 걸 따라 하다 어머니한테 혼났었어. 눈 대중으로 하니까 잘 안되더라고. 그런데 우리 어머닌 혼은 내도 붙잡고 가르쳐주시는 분은 또 아니거든.」

완벽한 표본 같은 젓가락질로 쇼마이 옆의 단무지를 집어 올리면서 김낙원이 싱긋 웃었다.

「언젠가 하루 종일 쌀알을 바닥에 뿌려놓고 집어 올렸지. 그러니까 되더라. 잘 하면 쌀벌레 똥까지 집겠던데.」

놈은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쇼마이만 먹고 있었다. 낙원이 단무지를 씹어 넘기곤 웃으면서 물었다.

「하연씨가 우리 어머니보다 낫네. 섭섭했겠어? 안 믿어줬을 땐. 정애씨는 요즘 뭐해?」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낙원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물었다.

「왜, 모르나? 며칠 안 왔나보지?」

「…….」

「그러게 미리 이야길 해주지 그랫어. 뭘 하나, 정애씨는. 남한테 가게를 맡겨놓고…….」

낙원이 부러 소리내어 혀를 찼다.

그때였다.

탁탁, 유리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화가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그러나 낙원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기다리지도 못할 텐데, 앉지 그래.」

태연한 말에 목화가 낙원을 돌아보았다. 쇼마이를 집어먹고 있던 낙원이 귀찮다는 듯 손짓했다.

「식기 전에 먹는 게 좋다니까.」

「…….」

아무 말 없이 놈이 돌아와, 다시 앉았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집어먹었다. 체할 텐데, 하고 낙원이 혀를 찼지만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탁탁.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리더니 사라졌다. 그래도 놈은 느려질 줄 몰랐다.

자기 몫을 다 먹은 뒤에야 놈이 멈추었다. 그리고 낙원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낙원은 놈이야 쳐다보건 말건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았다. 자기 속도 그대로 먹고 있던 낙원이 한 마디 했다.

「천천히 먹는 게 몸에도 좋아.」

어차피 자신이 다 먹기 전엔 문을 열지 못한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순진하긴.' 낙원은 피식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들렸을 텐데도 놈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다. 조금 더 굳어졌을 뿐이다.

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봐, 맛있는 걸 먹을 땐 제대로 시간을 들여야지.」

낙원이 정당한 이유를 밝혔지만 놈의 얼굴은 풀어질 줄 몰랐다.

자신의 식사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비유가 안 통하다 못해 식사에도 충실하지 않다니, 악덕을 두 가지나 갖춘 놈이었다. 낙원이 혀를 찼다.

놈은 굳은 얼굴로 유리문 쪽으로 몇 번이나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이미 아까 그 손님은 갔을 텐데도 그런다. 땡땡이도 칠 줄 모르는 범생이 어쩌다 수업을 빠졌을 때를 보는 듯 했다. 악명 높은 전직 조폭 행동대장을 범생으로 비유하는 것도 이상하긴 했지만, 여하간 자신보다 성실한 인간한테 장사 땡땡이를 치게 하는 기분은 꽤 쏠쏠했다. 놈의 얼굴을 반찬 삼자 쇼마이가 더 쫄깃해진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낙원이 자기 몫의 식사를 끝마쳤을 때에는 완연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오후의 햇빛이 역사를 물러났다. 퇴근 시간, 손님들이 올 때가 되자 놈은 좌불안석이었다. 유리문을 쳐다보는 눈길을 숨기지를 못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꽤 즐거워, 낙원은 치실을 사용하는 탓에 이쑤시개로 시간을 끌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봐.」

열라는 말이 나올까 싶었던 모양이다. 휙 돌아본 놈에게 낙원이 웃으면서 주문했다.

「밥 사온 손님한테 차도 하나 안 끓여주나?」

「…….」

이젠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놈은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전기 포트의 스위치를 켰다. 물이 끓을 동안 책상 위의 박스며 종이봉투를 모아 쓰레기 비닐에 집어넣더니, 깨끗하게 치운 뒤에 컵과 분말커피를 내놓는다. 워낙 손님 대접 운운하니 또 무어라 트집을 잡을까 걱정되었던 모양이었다. 놈이 내놓은건 일회용 종이컵이 아닌 플라스틱 컵이었다.

그러나 낙원은 잠시 그 컵을 잡을 수가 없었다.

컵이 더럽다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컵의 상태는 깨끗했다. 단지 무늬가 지독하게 튀었을 뿐이다.

컵에 그려진 건 곰이었다.

그것도 나비 넥타이에 앞치마까지 두른, 갈색의 테디 베어.

「정애씨 취향이 이런가보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낙원이 물었다.

「……?」

의아해하는 얼굴로 컵을 내려다본다. 놈은 지금에서야 컵에 무늬가 있다는 걸 발견한 모양이었다. 컵을 들어보더니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한 달 넘게 쓰고 씻고 했을 텐데, 무심하기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낙원이 뇌까렸다.

「센스가 있는데.」

확실히 어딘가 놈은 곰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몸집 탓인지도 모른다. 요즘 어깨들과는 달리 물살도 없이, 근육이 균형 있게 잡힌 건장한 몸집.

그러나 낙원이 그렇게 느끼는 건 놈의 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과거를 증명하는 듯한 그 몸집을 가진 놈이 꽃집에 있는 걸 보면, 앞발 한번 휘두르면 아름드리 나무를 작살내는 그리즐리 곰이 나비 넥타이라는 문명의 물건을 매고 앞치마를 두른 테디베어 캐릭터가 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최소한 정애는, 그런 놈을 원했겠지.

본래의 살인곰으로 돌아가라는 자신의 바람과는 여러 모로 정반대가 되는 여자였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이 다 끓었다.

놈이 포트를 들어 물을 따랐다. 인스턴트 커피는 마시지 않는 낙원이지만, 이 컵으로는 꽤 먹고 싶어졌다. 그는 오랜만에 분말로 탄 커피를 마셨다. 천천히, 맛있게.

「잘 먹었어.」

낙원은 그렇게 말하고 일어났다. 놈이 그를 쳐다보았다. 올 때 종이봉투만 들고 왔던 낙원은 성큼성큼 걸어 나가, 유리문 앞에 멈춰 섰다.

놈이 다가와 허리를 굽혀 잠금쇠를 풀었다.

낙원이 나가기 전, 다시 일어난 놈이 작게 한 말이 귀를 스쳤다. '잘 먹었습니다.' 낙원은 웃고 말았다. 밥 두어 번 얻어먹었다고 정직하게 인사를 되돌리는 놈이 우스워서였다.

낙원은 싱긋 웃었다.

「다음엔 순대국이야.」

낙원의 말에 놈이 질린 얼굴을 했다. 또 다음이 있단 말인가, 생각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하하하, 소리내어 웃으면서 낙원이 손을 흔들었다.

밥 때문에 와서 정말 밥만 먹고 간다. 오늘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왜 왔을까. 놈도 의아하겠지만 자신도 몰랐다.

뭐 그렇지만 밥값을 아낄 필요가 있나. 떡밥을 먹다보면 뭐라도 토해내겠지. 하여간 그 교도소 밥같은 걸 꾸역꾸역 위장에 밀어 넣는 꼴은 봐줄 수가 없으니까, 다. '어째서'라는 의문에 자신을 간단히 납득시킨 낙원이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갔다.

내려가던 길에 혜정이 생각이 났다. 핸드폰을 꺼내던 낙원이, 어차피 만나봤자 식사를 같이 못할 거라는 생각에 연락하지 않고 도로 집어넣었다. 놈이 먹는 꼴을 봐줄 수 없는 거였다면 굳이 자신이 놈과 같이 저녁을 먹을 필요가 없었지 않나 싶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 * *

막상 낙원이 간 뒤엔 손님이 오지 않았다.

목화는 유리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 간판 불을 켰다. 가게 안은 한낮만 지나가면 불을 켜서 환하지만, 바깥에서는 간판 불 없인 가게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낮에 만들어두었던 꽃다발을 꺼냈다. 봄답게 후리지아가 담긴 물통도 꺼냈다. 날씨는 꽃을 바깥에 내놓아도 될 정도로 꽤 풀려 있었다. 꽃을 내놓고나서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냉장고 속에 있던 꽃바구니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정애가 오지 않으니, 그가 시든 꽃을 갈아줘야 했다.

누님에게 배운 그대로 그는 움직였다.

시든 꽃을 뽑아 그 길이만큼 자른 싱싱한 꽃을 오아시스에 난 자국대로 갈아 끼운다. 장미 바구니 하나를 그렇게 다시 만든 목화가, 두 번째 바구니도 똑같이 해나갔다. 그리고 두 개 다 냉장고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나자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청소까지 한 박목화는 책상 앞에 앉았다.

「…….」

정적이 흘렀다. 가게 안은 조용했다. 커다란 꽃 냉장고가 토해내는 간헐적인 소리만이 가게 안을 울렸다. 아까 김낙원이 오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혼자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만큼 그를 괴롭히는 것은 없었다. 혼자라는 독기를 떨어내려는 듯이, 전철에서처럼 목화가 어깨를 떨어냈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그는 흘깃 바라보았다. 폴더를 잠깐 열어보았지만 그 안엔 부재중 통화조차 없었다. 도로 충전기에 꽂아두었다.

다시 할 일이 사라졌다.

이럴 땐 차라리 바쁜 게 마음이 편할 텐데. 꽃포장 손님이라도, 즐겁게 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깥에선 웅웅대는 방송과 함께 퇴근하는 사람들이 계단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이 안으로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리창 밖을 바라보던 목화가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목화의 눈에 문득 쓰레기 비닐 위에 쌓인 백화점 종이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속을 알 수 없는 놈.

목화는 중얼거렸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놈이었다.

전번엔 밥을 시키더니, 이번에는 사들고 왔다. 왜 자꾸 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은 그곳을 떠났다. 아는 이야기래봤자 3년 전 이야기다. 그런 옛날 이야기가 크게 쓸모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면 그는 더더욱 말하지 않을 터였다.

포기를 못하고 온다고 하기엔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괴롭히는가 싶어 긴장했더니 웃으면서 이죽대고, 후벼 팠다가 돌아선다. 제멋대로였다. 형사보다 높다고 하더니 정말 경찰 같지 않았다.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놈은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었다.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굴 수 있는 사람은, 형님 이래 처음 보았다.

목화는 바지 위에 두른 앞치마에 들어있는 삼천원을 잠시 만져보았다. '사장 급료'라면서 놈이 이천원을 떼어갔지만 할 말은 없었다. 실제로 돈을 더 받은 건 놈이었기 때문이다. 별 다른 행동도 한 것도 없는데, 손님은 담숨에 놈을 사장으로 생각하고 돈을 더 내놓았다.

놈이 더 주인 같았던 건 사실이었다.

손님 하나를 대하는 데도 쩔쩔매는 자신과는 달랐다. 먹을 땐 손님이 방해된다고 문을 잠가 놓을 수 있는 신경의 소유자다. 자신과는 달랐다. 참, 많이 달랐다.

「…….」

목화는 고개를 들었다.

유리창 바깥으로 서성대는 손님이 눈에 들어왔다. 나가보기 위해 일어나려던 목화가 멈칫했다. 책상 옆면에 붙어 있던 밥집 스티커가, 가운데부터 길게 찢겨져 있었다.

누구 짓인지는 분명했다.

어이없어하던 목화가 피식, 실소했다. 웃음은 작았지만 선명했다. 목화가 문을 열고 나갔다.

「어떤 걸 찾으십니까.」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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