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꽃집
날은 화창했다. 한 겹 얇은 커튼을 사이에 두고 비추는 라이트처럼 태양이 새털구름 사이로 하얗게 빛났다.
햇볕만은 봄이었다.
박목화는 언제나처럼 가게 앞에 화분들을 내놓고 있었다.
녹색의 잎사귀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화분을 내려놓고 있던 그의 시야에 문득 회색 고무신 두 짝이 들어왔다.
박목화가 손님을 맞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서 오십….”
인사를 하던 박목화는 의아한 얼굴로 말을 멈추었다.
여자의 손이,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회색 신문을 내밀고 있었다.
“받으세요. 화광신문입니다.”
목화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일단 여자가 주는 신문을 받아들었다.
그가 받아든 다음에야 여자는 운명의 서곡을 알리는 듯한 엄숙한 목소리로 신문의 종류를 알렸다.
“꼭 믿으십시오. 믿음엔 보답이 옵니다-.”
그리고는 갈 길이 멀다는 듯이 서둘러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었다.
박목화는 잠시 신문을 내려다보았다. ‘포교하라, 교포들이여’ , ‘영광은 가까이 있나니’… 알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화분 아래 괴기 위해 신문을 차곡차곡 접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 사장님, 설마 그거, ‘그거’예요?!”
지하철에서 뛰어나오던 알바생이, 그의 손에 들린 회색 신문을 보곤 인사를 하다 말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
박목화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좀 수선스럽긴 해도 아무 때나 소리를 지르는 아가씨는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알바생의 눈은 오로지 그의 손에 들린 신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가씨의 얼굴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신문이 마치 꼭 죽여야 하는 바퀴벌레라도 되는 것처럼, 발소리까지 죽이면서 다가온 알바생이 속삭였다.
「은혜…신문인가요?」
박목화는 고개를 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러자 알바생이 침을 꿀떡 삼키더니, '제발 아니라고 말해줘요'라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설마 그럼… 화광신문인가요?」
바로 그거였다.
그러나 미처 박목화가 그렇다고 대답도 하기 정이었다.이미 그의 얼굴에서 긍저을 읽은 알바생이, 가장된 몸짓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세상에, 첫 손님이 오기도 전에 화광신문을 개시하다니!」
박목화는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세상에' '이런 재수없는 일이' 하고 수선을 피우던 알바생은 한참뒤에야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침에 종교신문 받고 가게를 열면 하루 종일 재수가 없다구요. 그러데 첫 손님도 오기 전에 개시를 한게 하필 화광신문이라니!」
「…….」
가게를 하는 사람들은 유독 '개시', 첫 손님에게 민감한 법이었다.
고속터미널서 몇년간 일해 온 아가씨는 할 말이 무척 많았다.
그런 미신에 대해선 무지한 박목화는 그저 침묵했다.
「은혜신문은 기독교 계열이고요.화광신문은불교도 아닌 이상한 사이비 종교에서 나오는 건데요. 제일 재수가 없는 신문이죠! 시작을 이걸로 하면 하루 종일 가게가 파리가 날리고요, 이상한 손닐들이라오고요, 괜히 시비가 걸리고요.」
정체를 알 수없는 사이비 종교 신문을 눈 앞에 둔 알바생이 절망작인 목소리로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동안, 박목화는 아까 하던 일을 계속했다. 가게 앞에 순서대로 화분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알바생에겐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었다.
「개시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진짜에요. 아침에 길 물어본는 사람 오면 하루 종일 길 물어보는 사람만 오고요, 가격 흥정안하고 더벅 가져가는 사람오면 그 날은 정말 운이 좋은날이된다고요. 그런데 손님이 오기도 전에 종교신문이 오면….」
평소엔 자기 일거리를 뺏는다면서 그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 아가씨가, 그가 화분에 물을 줄 때까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정말 그렇다니까요 사장님.」
알았다는 의미로 박목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바생은 그제야 한숨을 돌린듯, 텅 빈 물뿌리게를 보곤 깜작 놀라면서 뺏어들었다.
「아니 언제 다 하셨어요? 나머진 제가 할께요, 들어가세요. 어서요.」
「안에….」
다했으니까 안에 들어가라고 말하기 위해 박목화는 막 돌아섰을 때였다.
알바생이 그토록 강조하던 불운은 양반은 못되는 모양이었다. 아가씨의 뒤편으로, 까만 잠바를 입은 전형적인 차림새의 남자 두어면이 눈에 들어왔다.
「….」
한 순간 그의 표정이 사라졌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데는 그들을 힐끗 본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한달 남짓 쌓아올린 일상의 얇은 커튼은 그 얇은 두께를 깨우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단숨에 찢기웠다. 언젠가 알바생 아가씨가 '사장님이 그런 얼굴도 하시네요' 라고 했던 때보다 더 단단한, 한올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무기질적인 얼굴이 찢긴 커튼아래로 드러났다.
눈에 익은 놈들이었다.
그 역시 그들에게 익숙한 얼굴로 마주셨다.미친 소의 '뿔'이라고불렸던, 무기질적인 단단함으로.
운동화가 지하철 바닥을 문지르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다.미처 박목화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알바생이 뒤를돌아보더니 손님을 맞이했다.
활짝웃는 알바생의 익숙한 목소리가 가게 앞을 낭랑하게 울렸다.
「어서 오세요-.」
만일 아가씨가 손님들의 신분을 알았다면, 인사대신 '제가 뭐랬어요, 사장님'이라고 했을것이다.
「오늘은 이만.」
박목화는 그들에게 눈을 떼지 않은채로 알바생레게 낮게 말했다.
<가요> 목소리가 작고 낮았지만 무어라 더 이야기 할수 없는 힘이 있었다.「예?!」 알바생이 그를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를 쳐다보며 입을 떼었다 닫았다 하던 아가싸가, 결국 종종걸음으로 지하철로 다시들어갔다. 아가씨가 계단 안쪽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그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아가씨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뒤에야 박목화는 몸을 돌렸다. 등 뒤로 햇빛이, 수갑을 차고 며칠 밤을 새웠던 취조실 라이트처럼 내리 쬐었다.
박목화는 천천히 가게 안으로 향했다. 들어오라는 말 따위는 필요없었다. 찌익 찌익, 형사들이 운동화를 끄는 익숙한 소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
* * *
햇빛은 렌지에 10초간 돌린 그릇마냥 따뜻했다.
「이야- 눈 까는 것 좀 봐라. 잘 하면 한 대 치겠는데? 안 그래 홍경장. 봐봐 이런 새낀 이렇게 다뤄야-….」
아무것도 넣지 않은 그릇이 혼자 렌지에서 돌아가다 즐리는 소리처럼, 문득 퍽- 하고 금가는 듯한 소리가 둔탁하게 한낮의 공기를 흔들고 지나갔다.
그러나 김낙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양 태연하게, 손님처럼 팔짱을 끼고 꽃집을 앞을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6평 남짓, 지하철 계단을 끼고 반지하부터 지상까지 뻗어 있는 긴 복도 형태의 꽃집이었다. 좁은 입구를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녹새의 식물들이 화분을 타고 역사 벽까지 침식했다.폭 넓고 두꺼운 녹색의 잎들은 형사들의 욕설만큼이나 3월의 햇빛에 윤기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 정화를 한답시고 열대의 어딘가에서 수입해온 산세베리아와프로장스풍으로 칠해놓은 하얀 회벽이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꾸며놔도 꽃집과 이곳 주인만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을 터였다.
욕설이 햇살에 적당히 무르익었을 때쯤, 한 바퀴 둘러본 김낙원은 유리문은 가볍게 두드렸다.
「…….」
문을 미는 수고도 필요치 않았다. 짧은 그림자가 가게 안에 드리워지기도 전, 홍경장이 공손하게 문을 열었다.김낙원은 팔짱을 낀 채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잠시 햇빛이 문 앞에 내리 쬐였다가, 도로 후퇴했다.
가게 안은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한쪽 벽면에 놓인 꽃 냉장고와 테이블 옆으로는 손님 한 두 사람쯤은 충분히 서 있을 수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남자의 덩치가 차지하는 면적은 달랐다. 홍경장이 옆으로 비켜 선 뒤에야 김낙원의 눈에 김반장과, 반장이 멱살을 틀어줘고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아마도 여기 주인일 터였다.
'아마도'라는 말을 붙일 수 밖에 없는 건, 도저히 꽃집 주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건장한 젊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를 증명이라도 하듯 짧게 깍인 머리에 드러난 목과 귀가 색색깔의 꽃들을 뒤로 하자 더 도드라졌다.
일반적으로 틀어잡혀 얼굴을 숙이고 있는데도 남자는 반방보다 고개하나는 더 컸다.어깨도 몸짐도 건장했다.
꽃집을 메운 듯한 남자의 존재감 탓에, 키 작은 김 반장이 남자의 멱살을 틀어쥔 모습은 마치 골리앗에게 덤벼든 다윗처럼 보였다.
김낙원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전직 조폭인 골리앗이, 꼭 김반장한체 핍박받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세상이 생각하고, 다윗이 생각하는 정의와는 반대로. 이 광경만 보면 저 건장한 조폭은 약자 같고, 약자를 핍박하는 건 한낮부터 남의 가게에 들어와 깽팡을 놓고 있는 경찰 같단 말이지….
웃음이 바깥으로 흘러나온 모양이다.
김반장이 그제야 좀 상황이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일단 멱살을 놓고 대화를 시도했다.
「경정님, 경정님께서 굳이 안에까지 들어오실 필요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짐작이 갔다. '참견 마'겠지.
김낙원은 그래도 용케 예의를 차려 말하는 반장의 정신을 높이 사,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잘랐다.
「바깥이 좀 춥더군, 김반장.」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러나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말투기도 했다. 몇 번 숨을 들이 쉰 반장이, 스스로를 누르고 남자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미리 신경을 써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경정님. 」
김낙원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남자를 눈으로 쫓았다.
놓여난 남자가 기침조차 하지 않고 셔츠의 목 부근만을 손으로 매만진다.그제야 김낙원은 남자가 하얀 와이셔츠를 목 끝까지 채운 단정한 차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 단정함 때문에 더 핍박받는 것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자외선 살균 소독기같은 보라색 조명을 뿌리고 있는 꽃 냉장고가 배경이 되자 흰 셔츠가 상당히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센스는 나쁘지 않아. 김낙원은 잠시 생각했다. 저 몸집엔 분명 하얀 와이셔츠를 목 끝까지 채우고, 바지 위에 검은 색의 커다란 앞치마를 매듭지은 단정한 모습이 어울렸다. 꽃집주인으로 어루린다기보다는, 어딘다 나이트 클럽의 기도처럼 보인다는게 문제였지만.
아니, 그런 것도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았다. 만일 클럽에서 나오게 되면 어떤 술꾼도 단숨에 깨어 투지를 꺽고 도망치리라. 그리고 동시에 술맛도 깨고 말겠지.
그래, 전직이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자신이 쓰던 칼을 배에 꽂고, 더러운 길바닥에 쓰러져 마감하는 그런 인생이, 그리고 그런인생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복수의 미덕이.
「잠깐 나갈까요, 경정님?」
그때였다. 김반장이 말을 걸어왔다.김낙원은 가석방 중인 전직 조폭에게서 눈을 떼었다.
「그러지.」
* * *
지하철 입구의 바람은 세찼다. 한 발짝 떼자 찻길의 먼지를 휘감은 바람이 얼굴로 날아와, 김낙원은 잠시 눈가를 찌푸렸다. 공기는 바짝 메말라 있었다.
「경정님, 경정님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그놈은 워낙 악질이라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옆에서 따라오는 김반장이 말하는 '설명'이란 이름의 변명들이 먼지처럼 바람에 흩어졌다.
「보통 악질이 아닙니다. 저런 놈은 일단 기를 죽여 놔야 말을 듣습니다. 지금이야 보호 감찰중이라, 한 대라도 치면 곧장 도로 감방 들어가니까 가만히 있는거죠.이럴 때 해놔야….」
그러나 김낙원은 김반장의 말 따위는 조금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는 그 골목을 기억했다.
그리고 박목화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놈이 아닙니다. 눈깔만 봐도 알아요. 시건방진 놈이, 퍼렇게 눈깔을 치껴뜨고 쳐다보면 소름이 쭉 끼쳐요. 아주 태어나길 귀신새끼로 태어났다니까요. 얼마나 흉악한지….」
싸구려 네온사인으로 번들거리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목구멍으로 먹은 것을 게워내는지 배로 검붉은 액체를 토해내는지 눈여겨볼 이는 아무도 없다.
무계획족으로 세워진 건물 두 개가 사생아처럼 낳은 좁은 골목. 뚜껑 없는 쓰레기통밖에 안 되는 그 더러운 골목 앞에서, 채 수거해가지 않는 검정색 쓰레기 봉지처럼 놈은 구겨져 있었다.
김낙원을 이끈 건 냄새였다.찐득한 피의 물리적인 냄새 따위가 아니었다. 우연히 꺼내든 휴대폰 불빛에 은빛 흉기가 놈의 배에서 반짝하고 빛났을 때, 그는 직감적으로 쓰레기의 냄새를 맡았다.
'괜찮나', 습과적으로 중얼거리며 허리를 굽혀 의식을 잃은 사내를 내려다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직감은 옳았다. 등 뒤에서 후려치고 달아나는 퍽치기 따위가 아니었다. '아는 사이' 보다 훨씬 친밀한 자만이 꽂을 수 있는 정면의 흉기에 그는 냄새를 맡았다. 엉겨든 피터럼 오래토록 고였을 사람 사이의 깊은 골. 눈에 보이지 않는 속에서부터 썩어, 노란 고름이 녹아내려도 한참 전에 흘려내렸을 배신의 향기. 그 향긋하게 농익은 상처, 인간만이 만들 수 있는 포도주의 썩은 내를.
「…경정님?」
웃고있었던 모양이다, 진심으로.
김반장이 열변을 토하다 말고 잠시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김낙원은 표정을 바꾸는 방법중에 가장 관례적이고 쉬운 방법을 택했다.담배를 꺼내 물자, 홍경장이 재빨리 불을 붙여주었다. 한번 몸을 떨어 소름을 쫓아낸 김반장이 말을 이었다.
「경정님, 실무를 해야 하는 저희들은… 정말 경정님께서 흉악한 놈들을 못 보셔서….」
그 날의 추억은 잠시 접어야 할 듯 했다. 김낙원은 그 골목, 쓰러져 있던 남자에 대한 추억을 순정에 찬 소녀가 잘 마른 은행잎을 책 사이에 끼워넣듯 아쉽게 접어 넣었다.
배신당한 자는 복수를 해야 하는법이다-….
그런 드라마가 없으면 주워서, 살려서, 힘들게 교도소까지 보내놓은 의미가 없지 않나. 자기를 찔러버린 형님쯤 또 찔러주는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주워준 사람에 대한 예의 라고 생각하는데.
얌전히 손 떼고 개심하다니, 정도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 있어. 김낙원은 자기야말로 정도를 벗어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따윈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지금은 놈을 정말로 '개심'시켜야 할 때였다.
-후우….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김낙원이 반장을 불렀다.
「김반장,」
그동안 흥분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열변을 토해냈던 김반장이 멈칫 입을 다물었다. 김낙원이 띠우고 있던 웃음의 종류가 바뀌었다. 담배 연기처럼 부드러워지고 짙어진 웃음과 함께 김낙원이 물었다.
「그래서 3년 전엔, 불던가?」
「…….」
여전히 웃는 얼굴로 그는 입을 다문 김반장에게 통고했다.
「그만가지. 난 잠깐 들렀다 갈테니.」
「저, 어떻게….」
어디를 어떻게 들르겠다는 말인지. 설마 놈을 직접 신문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김반장이 설마, 하면서도 물어보려 했을 때였다. 발걸음을 옮기던 김낙원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잠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김반장, 여기 바람이 꽤 분다는 것을 아나?」
「……?」
김반장은 멍청하니 경정을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이번엔 김반장도 잡지 못했다.
* * *
산세베리아는 모두 깨끗하다.
매일 아침 딱아주지 않는다면 이 지하철 입구에서 그렇게 윤기나게 반짝거릴 리가 없었다. 노력이 지나치지 않은가, 김낙원은 피식 웃었다. 개심인지 뭔지는 몰라도, 정성을 쏟아붓는 것만은 확실했다.
아끼는 게 있다면 길들이기도 쉬운 법이지.
전철역 입구로 되돌아가는 길에는, '꽃'이라고 써 있는 간판과 하얀 벽이 표지가 되어주었다. 김낙원은 한가롭게 걸어났다.
유리문 앞에 서자 가게 안쪽, 흰 셔츠를 입은 남자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김낙원은 손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하게 문을 밀었다.
「…어서 오십-….」
한 박자 늦었던 건 남자가 깨진 화분을 갈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막 일어나 손님에게 돌아서던 남자는, 김낙원의 얼굴을 알아보고 입을 다물었다. 단번에 꾹 다문 입술은 잠시라도 열렸다는 게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방금 전 인사를 하려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임을 다물었다고 한 마디도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나.
쥐잡듯이 취조하는 경찰관들을 상대하는 듯한 그 순진함에, 김낙원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는 서두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김낙원은 부드러운 웃음을 띠우고, 진열대 위쪽에 놓여있던 호접란 화분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
퍽, 하고 사기 화분이 맥없이 깨져나갔다. 도자기 조각이 바닥에 부딪쳐 튀겨 올랐다.난뿌리를 담고 있던 나무 껍데기가 부스러져 뒁굴었다. 김낙원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옆에 있던 트리얀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쳤다.
언뜻 남자의 검은 눈이 스쳐지나갔다.
쨍…!
유리 화분이 깨진 건 한순간이었다. 오글오글 엉킨 녹색의 이파리가 유리화분에 담겨있던 색돌들과 함께 좌르를 흩어졌다.또 다시 산호수 화분에 손을 올렸을 때였다.
「…….」
남자가, 그의 손을 붙들었다.김낙원은 싱긋 웃었다.
「왜, 이야기할 준비가 됐나?」
말은 없었다. 그러나 남자의 손에서 힘이 한 풀 꺽였다. 김낙원의 웃음이 더 짙어졌다. 방금 전 노렸던 노란 산수호 화분을 깨뜨리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손을 뻗고, 그리고 잠아끌기만 하면 되었다.
도자기화분이 퍽, 하고 부서졌다. 도자기 조각상리로 산호수의빨간 열매와 마른 잎사귀가 흩어졌다. 바닥은 흙과 들과 유리조각들로 엉망이었다. 호란접은 밤새 루즈가 벗겨진 창기 입술마냥, 바랜 분홍빛으로 물기를 잃었다. 바닥에 널린 녹색 이파리들은 무덤이 파헤져진 시체처럼 늘어져 있었다.
김낙원이 막 네번째 화분에 손을 올렸을 때, 남자가 다시 그를 붙들었다. 김낙원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입술은 꾹 다 물고 손아귀에만 힘을 주고 있다. 뛰고 있는 용의자더러 공포탄밖에 없는 의경이 '거기서, 안 그러면 쏜다!'고 외치는 형국이다. 서라고 외치면서 뛰는 지갑주인보다 더 바보 같아서, 김낙원은 속으로 혀를 찼다.어쩌면 그리도 이놈은 요령이 없나. 이러면 이럴수록 그만두지 않을 거라는걸, 눈치도 못 채는 건가?
「……!」
페페로미아 화분이 깨져 뒹굴었다. 녹색 이파리 하나 추가요, 김낙원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사기화분도 하나 더. 우동사리를 추가하는 기분으로 생각하자 요리 하나를 더 늘리고 싶은 생각도 든다. 김낙원은 작은 사기 화분들이 담겨있는 화분받침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남자가 그르 붙잡은 채 같이 한 걸음 옮겼다.
「-말을 해봐.」
김낙원은 웃으면서 속삭였다.
「그 날, 그가 직접 찌르든?」
남자의손아귀에다시 힘이 빠졌다. 검은 눈이 힐끗 스쳐지나갔다.
김낙원은 싱긋 웃었다. 한 발짝 더 안쪽으로 다가섰다. 그래도 그를 막고는 싶은지 남자는 포기하지 못하고 한 발짝 따라왔다. 딴딴딴, 딴따라딴.
손을 잡고 왈추를 추는 듯하다. 경쾌하게 구두를 움직여 들어간 김낙원이 화분쪽으로 손을 뻗었다.
화분받침을 잡아당기자 작은 화분들이 잡시 하즐을 날았다. 빰빠라밤.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추처럼 웅장한 비상은 경박한 울림으로 단숨에 끝을 맺는다. 와장창.
그래도 성한 화분들을, 김낙원은 다른새가 자기 알을 키우도록 남의 알을 다 깨버리는 뻐꾸기처럼 차근차근 구둣발로 밟아주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김낙원은 웃으면서 한 걸음 움직였다. 와작, 하고 부스러지는 소리가 났다.밟힌 도자기 조각이 구두 아래로 버석거렸다. 음향에 힘을 입어 기분좋게 스텝을 밟자 남자가 또 다시 따라왔다.눈이야 바닥만 내려다 보고 있더라도 몸은 팔짱 끼고 가만히 서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다.
놈의 그 성실성이 낙원은 마음에 들었다. 이젠 스텝만 가르치면 된다. 왈츠를, 3/4 박자, 하나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뱅글뱅글 돌아갈, 찌르고 찔리는 배신과 복수의 춤을.
하트 모양의 아이비가 손가락에 걸렸다.줄기를 손가락에 얽어당긴 것만으로도 러브채인은 맥없이 진열대 위에서 뒹굴었다.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전 남자가 다급히 손을 뻗었다. 김낙원이 그 손목을 잡았다.
「……!」
그는 낚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미끼 낚시를 하는 심정은 이해했다.큰 놈을 잡기 위해선 미끼도 역시 물고기를 써야하는 법이다. 낚시는 두번이었다. 미끼를 잡는 낚시와, 큰 놈을 잡는 낚시.
어느 쪽도 즐기지 않으면 손해다. 김낙원은 글허게 생각했다. 월척을 잡아 끊여먹는 맛도 물론 각별하지만,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지.
남미에선 피라냐를 유인하기위해 소고기를 쓴다지만, 이번엔 거꾸로 된 셈이었다.
미친소를 낚기 위해선 잡은 물고기를 먼저 길들여야했다.
화분에 손 내민 놈을 제대로 미끼로 써먹기위해, 김낙원은 놈의 손을 잡고 격하게 춤을 췄다.
「……!」
쾅, 놈의 테이블에 부딪치는 소리가 커다랗게 났다. 김낙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도로 몸을 일으키려는 남자의 목을 뒤에서 내리쳤다.
바르르, 물고기가 경련했다. 놈의 입은 이미'보호관찰'이라는 지렁이를 물고 있었다. 왈츠를 리드하는 건 김 낙원이었다. 그가 스텝을 밟으면 바늘에 입을 꿰인 놈은 무조건 따라와야만했다. 그 처지를 인식시키는 게 낚시꾼이 첫번째 할 일있었다.
놈이 목까지 채우고 있던 와이셔츠의 하얀 뒷덜미를 그는 잡아챘다.잠깐 테이블 위로 고개가 들렸다. 쾅, 그는 놈의 머리를 테이블에 찧었다. 쾅,쾅. 두세 번 반복하자 버둥대던 놈의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반항하지 못하는 놈의 어깨를 꺽는 것은 어린아이가 잠자리 날개를 떼는 것보다 쉬었다. 김낙원은 놈의 목을 잡아 채고 테이블 위로 뭉갰다.
…흐으.
문득 억눌린 놈의 호흡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숨을 신음처럼 눌러 참는 놈 탓에, 낙원은 짐짓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꽃 냉장고가 위잉 돌아가는 소리와 섞여 놈이 스스로를 누르는 소리가 작지만 선명하게 들려왔다.
<흐으,>
그래, 소리를 내야지.
김낙원은 웃었다.
더.
낙원이, 몸을 굽혀 놈의 드러난 뒷목에 입술을 댔다. 뜻밖의 행동에 놈이 숨을 삼켰다. 위이위잉. 보라색 조명이 뿜어내는 꽃 냉장고만이 정적을 잠식한 사이, 무엇을 할 지 아직 깨닫지 못한 놈이 무방비하게 뒷덜미를 드러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단단한 이의 표면으로 놈의 살을 맛보았다. 꾹 다문 입의 단호함도 아직 목 뒤까지 단련하진 못한 모양이다. 보드랍고, 따끈했다. 눈만 감으면 아직 어린 짐승으로 착각할 듯 했다. 가볍게 이로 쓸어내리던 낙원이, 단번에 놈의 귀를 물어뜯었다.
「……!」
아래에 깔린 몸뚱아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온 몸으로 그 퍼득이는 몸짓을 느끼면서 그는 웃었다.
독한 놈, 비명도 안 지르다니.
입에 고인 비릿한 액체를 낙원이 고개를 돌려 퉷하고 뱉었다. 놈의 하얀 와이셔츠는 점점이 튄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놈의 짧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까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눌리면 부드러워졌다. 쓸어 올리면 도로 땀처럼 따가워졌다. 부들거리던 건 가라앉았지만 놈은 어깨까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손이 뒷덜미를 스칠 때마다 긴장된 근육이 움찔거린다. 낙원은 싱긋 웃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것뿐인데도 이렇게 긴장하면, 기대를 배반하기가 싫어지지.
그는 놈의 몸 위로 허리를 숙였다. 낮게, 숨 쉬는 것까지 등으로 느껴질 만큼 낮게. 긴장된 근육이 기척을 알아챈다. 어깻죽지까지 바짝 당겨진다. 후우. 그는 담배연기처럼 부드럽게 숨을 불어넣었다. 피로 엉긴 귓바퀴를 넘어, 뺨에 가까운 귀 안쪽에. 그리고 붉은 피로 문신처럼 새겨진 잇자국 위를 혀로 가볍게 핥았다.
흣, 하고 짧게 숨 삼키는 소리가 났다. 예상하지 못한 방식에 놈이 놀란 듯 했다. 그러나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굳어있는 놈의 어깨를 낙원이 잡아 눌렀다. 바스락. 하얀 와이셔츠가 그의 손아귀에서 구겨졌다.
놈이 흠칫했다. 동시에 귀를 가볍게 더듬던 혀가, '어떤 행위'를 분명하게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귀 안쪽을 핥아 들어갔다.
<……>
그제야, 침입당한 놈이 소리 없이 날뛰었다.
이미 늦었다.
쿵, 와이셔츠 목깃을 잡고 있던 김낙원이 놈의 머리를 다시 테이블에 처박았다. 놈이 바르작거렸다. 쿵. 그는 한 번 더 놈을 내리 찍었다.
이마로 짓이겨진 꽃가지가 테이블에 풀물을 들였다. 놈의 몸에 잠시 힘이 빠진 틈을 타, 그는 한 손을 허리 앞으로 돌려 놈의 혁대를 끌러냈다.
철컥.
금속성의 소리가 났다. 교도소를 다녀온 놈이었다.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를 리가 없었다. 조폭인 놈이 당할 일은 없었어도, 이 소리, 분명 타인에게선 들어보았겠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한 순간에 놈이 바닥에 억눌려있던 진짜 '놈'을 일깨운 모양이었다.
언제 힘이 빠졌냐는 양 몸이 미친듯이 퍼덕거린다. 놈이다. 이제야 은빛 칼을 배에 꽂고도 번들거리는 어둠 속을 노려보던 놈이다.
테이블에 눌린 양팔로도 어깨가 들썩이고, 머리를 처박은 상태로도 단단한 상체가 일어나려 버둥거린다.
하하하. 김낙원이 소리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혁대를 풀고 지퍼를 내리는 동안 놈의 다리가 몇 번 허공을 찼다. 와그작. 놈의 발밑에서 화분조각이 으스러졌다. 놈의 머리를 몇 번 더 짓찧었다.
바스라진 풀잎사귀가 그 기세에 색종이처럼 휘날렸다. 버적대는 구두발로 그래도 바닥을 밟으며 어떻게든 움직이려 드는 놈을, 김낙원은 방금 전 핥았던 잇자국 그대로 다시 한 번 귀를 물어뜯었다.
「……!」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이었다. 놈의 몸에서 잠시 힘이 빠졌다. 단숨에 바지를 아래로 벗겨낸 김낙원이 알몸이 된 놈의 하반신을 짓눌렀다.
그 감촉에, 놈이 미친 듯이 버둥댔다. 입천장까지 찢어질 정도로 퍼덕인 물로기를 바늘에서 놓친 것은 한 순간이었다.
그 자세로도 놈은 한 순간 그를 떨치고 몸을 일으켰다.
<쿵.>
밀착된 두 남자의 몸이 테이블에 거세게 부딪쳤다. 테리블에서 떨어졌다 도로 깔아뭉개진 그 짧은 순간, 놈의 눌려있던 양팔 중에 한쪽 팔이 풀려났다. 오른팔이었다. 손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 단숨에 꽃가위를 쥐었다.
탁!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손잡이를 한 손으로 쥔 놈이, 날카로운 끝으로 테이블을 내리찍은 소리였다.
「찔러.」
그때 김낙원이 속삭였다. 속삭임은 미풍에 살랑이는 담배연기처럼 부드럽고, 독했다. 그 독기를 쐬기라도 한 듯 놈의 손이 그 자리에 멈추었다. 그는 웃으면서 짐짓 놈에게서 몸을 떼었다.
「일어나. 찔러 봐.」
목소리는 유혹하듯 낮았다. 그는 서두르는 성격이 아니었다. 도로 바늘을 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뒷말은 필요 없었다. 보호관찰 중인 놈에게 목에 걸린 밧줄을 깨닫게 하는 데엔 그거면 충분했다.
그는 다시 놈을 테이블 위로 짓눌렀다. 놈은 저항하지 못했다. 가위끝이 부르르 떨리더니, 힘이 탁 풀려나갔다.
김낙원은 웃으면서 놈의 허리를 잡았다. 손가락 끝이 움찔거리다 다시 뻗었다. 우습게도 놈은 아직 하얀 와이셔츠를 목까지 채운 채였다.
그 단정한 목깃을 뒤로 한껏 젖히고, 그는 뒷목에 낙인처럼 입술을 눌러 대었다.
체념을 잊은 모양이었다. 놈이 한 번 더 발버둥을 쳤다. 그럴수록 그만둘 수 없는 게 낙원이었다. 목을 짓누른 채로, 허리를 잡고 있던 다른 손이 놈의 단단하 몸을 타고 올랐다. 단추 하나 끄르지 않은 셔츠 안으로 아래서부터 손이 들어오자 놈은 소스라쳤다.
바짝 선 유두를 그의 손이 핥듯이 더듬자, 상상도 하지 못한 연약한 피부를 내준 놈은 한 순간 발버둥도 치지 못했다.
정말로 놀라면 소리도 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낙원은 놈이 살아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짐짓 고개를 숙여 물었다.
「숨은 쉬나?」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깨물듯이 유두를 비틀었다. 악, 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놈은 소리 없이 입을 열었다, 도로 닫았다. 비틀린 고개에서 꾹 다문 입술 끝이 보인 순간 김낙원은 문득 침을 삼켰다.
기묘한 일이다. 그는 진심으로, 놈이 내는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놈의 체온은 뜨거웠다. 뒷목을 손으로 누른 채로. 그는 놈의 벗은 하반신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지퍼를 내린 건 그 뒤였다. 금속성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 놈이 날뛰었지만, 그는 목을 짓누른 손을 놓지 않았다. 날뛰던 짐승이 차차 손에 잡힌 나비처럼 파닥, 파닥하고 힘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야 그는 놈의 사지를 벌렸다. 박제처럼. 그의 손이 들어오자 놈은 한 번 더 발버둥쳤다. 그러나 이미 한 풀 꺽인 저항은 그를 뿌리치지 못했다.
하얀 액자 같은 테이블에 그는 놈을 밀어붙였다. 놈의 허벅지에 경련이 일었다. 낙원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퍼덕이는 날개에 핀을 꽂아 넣는 아이 같은. 하얀 웃음이었다.
정애가 온 것은 오후 6시 무렵의 저녁이었다. 날은 어둑어둑했다.
저 아래 지하철이 한번 서고 가는 것을, 여기서는 역사 입구가 토해내는 사람들의 물결로 알았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는 정애도 있었다.
고속터미널에 있는 자기 가게를 닫고 최대한 서둘러 온 그녀가, 호, 하고 입김을 뿜으며 꽃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목화야-.」
딸랑, 문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면서 싸늘한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3월의 저녁은 아직도 싸늘했다. 따뜻한 건 한낮뿐이다. 잠시 몸을 떤 그녀가 목화를 찾기 위해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복도같이 생긴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았다.
진열대 옆 좁은 통로를 지나자 하얀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위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가위를 두던 작은 통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포장할 일이 없었나보네. 그녀는 생각했다.
「목-…」
한 번 더 목청을 높여 의동생을 부르려 했을 때였다. 파티션처럼 쓰이는 리본대 뒤에서 기척이 들렸다. '잠깐만요.' 다른 이였다면 이렇게 말했으리라. 그러나 워낙 과묵한 동생의 말수에 익숙해진 그녀에게는 그 기척도 그런 종류의 말로 들렸다.
리본대 뒤엔 팩스가 있는 작은 책상과 누워서 쉴 수 있는 약간 긴 의자가 있다. 열선을 깐 의자는 불만 켜면 온돌처럼 따끈해졌다. 추울 때 장사를 시작한 동생에게 장사하던 노하우를 발휘해 그녀가 신경 써서 해준 물건이었다. 손님 안 보인다고 매번 바깥에 꼿꼿이 서 있더니만, 날이 추우니 거기에 잠시 앉아 있었던 모양이다.
「춥지, 목화야.」
장사하는 사람이 흔히 입는 누비 잠바에 목도리까지 둘렀지만 추운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손을 바깥으로 빼어 호호 불면서 그녀가 말을 걸었다.
「아침에 지영이가 왔어. 검은 잠바 입은 사람들이 여기 와서 니가 가라고 했다면서.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하더라.」
말은 없었지만 동생이 귀 기울여 듣고 있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표정한 듯 보일 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남들 몇 배의 주의를 기울이는 단단하되 섬세한 얼굴로.
「그…… 형사들 왔다 간 거니?」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기실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보호관찰 중인 동생에게 다녀간 검은 잠바들이라면 뻔했다. 곧 그녀는 어조를 바꾸었다.
「지영이 그 기집애가 '우리 사장님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하는데 한 대 박아줬지. 사장님은 내가 사장님이지, 여기 내면서 너 해보라고 한 건 나니까 넌 우리 정애화원 2호 점장이라고. 그랬더니 또 금방 '점장님 어떻게 해요.' 이러는 거 있지. 그 기집애가 너 도와주라고 보냈더니 맨날 땡땡이만 친다면서. 저 입으로 그러더라. 저가 일 안 하고 놀기만 해서 너한테 나쁜 일이 생긴 것 같대. 호호. 생각하는 것도 참 웃겨.」
그때 나오려는 기척이 들렸다. 목화였다.
그녀는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목화-…… 너, 귀가 왜 그러니!?」
정애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며 서둘러 동생에게 다가갔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한쪽 귀에는 하얀 거즈가 반창고로 싸매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
상처에 내민 그녀의 손길에 목화는 반사적으로 약간 뒤로 물러섰다.
다행히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곧 정애를 대하던 평소대로 돌아왔다.
「화분에, 그랬습니다. 누님.」
목소리는 평온했다. 평소라면 '누님' 소리에 먼저 질색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들리지도 않았다. 무슨 화분, 이라고 소리를 지르려던 그녀가 그의 시선을 따라 진열대를 돌아보았다.
위쪽에 있었던 사기 화분 몇 개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은 아니더라도 며칠에 한 번씩 들러 보던 그녀였다. 빠진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빈 공간은 눈에 보였다.
「……아래로 떨어지기라도 한 거야? 화분이?」
몇 번 숨을 가라앉힌 그녀가 물어보았다. '그렇다니까요.' 라고 대답이라고 하듯 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잠바들 다녀갔다는 소리에 실은 아침부터 긴장해 있던 정애였다. 의심이 솟아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화분이 떨어지다 다쳤다면 아주 있을 수 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올려다보니 이마도 약간 붉은 것이, 긁힌 듯 했다.
거기까지 보자 의심보다 덜컥 걱정이 앞섰다. 작업용 의자를 끄집어낸 그녀가 손을 올려 커다란 동생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다 앉혔다.
「세상에, 너 머리 괜찮니? 여기 이마 긁힌 것 좀 봐. 머리 위로 떨어진 거야? 아니 어쩌다 그랬어. 병원 안 가 봐도 되니?」
이마에 손을 대려 하자 약간 뒤로 물러난다. 아픈 모양이다. 정애는 소독약을 꺼내러 재빠릴 안쪽으로 들어갔다. 목장갑을 껴도 꽃을 만지다보면 가시가 박히기 마련이다. 밴드나 소독약같은 건 꽃집 하는 사람들에겐 필수였다. 덜컹덜컹, 서랍을 열고 약들을 찾아 나온 그녀를 보고 목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다 했어요, 누님.」
그러나 정애는 들을 줄을 몰랐다.
「너 혼자 뭘 얼마나 한다고. 가만 있어봐. …얘, 그리고 그 누님 소리는 언제 그만둘 거니? 내가 무슨 물장사하는 사람 같잖니. 그냥 누나라고 부르라니깐. 얘는, 동생 삼아준 지가 얼만데 아직도 누님이래.」
언제나처럼 돌아온 누님타령에 박목화는 작게 웃었다.
소독을 한다 밴드를 붙인다 수선을 피우던 정애가 문득 놀란 듯 소리를 냈다.
「얘, 너 열 있다. 진짜 병원 안 가 봐도 되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일하러 오는.」
「응? 누구, 지영이?」
걱정스레 그를 쳐다보고 있던 정애가 반문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사람 바꿔줘? 그래도 싹싹하니, 손님 상대하기엔 괜찮겠다 싶었는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정애에게 목화는 간단히 의사를 밝혔다.
「제가 할게요.」
왜, 하던 정애가 아침 일에 생각이 미친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물어왔다.
「뭐 문제, 있는 거야……?」
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누님이었다. 너무너무 고마운 누님이었다. 피 한 방울 통하지 않는 그에게, 돌아가지 않겠다고 일만 시켜달라고 하는 그에게, 새로 낸 가게를 덜컥 맡겨준 사람이었다.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일이었다.
「며칠 들락거릴 것 같습니다. 그 애는 저를, 모르니까.」
전에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는 건 정애뿐이었다. 그 여자 아인, 그가 전과자라는 것도 몰랐다.
정애는 납득한 것 같았다.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이마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래, 내일부터는 보내지 않을게. 혼자 하기 힘들면 바로 얘기하고.」
그리고 안에서 겉옷을 챙겨 나온 그녀가 그에게 옷을 떠안겼다.
「집에라도 가. 쉬어. 네가 암만 단단해도 화분을 머리로 받아놓고 멀쩡하겠니. 오늘 장사는 내가 하고 닫을게. 어차피 바구니 꽂아줄 때도 되었고.」
괜찮습니다, 목화가 이야기하려 했지만 낮은 목소리는 곧 정애에게 묻혀버렸다.
「넌 빨리 가 쉬기나 해.」
결국 그는 정애한테 떠밀려 일어났다.
막 옷을 입은 그가 나가려 했을 때였다. 바구니를 꽂으려고 꽃 냉장고 문을 열던 정애가 어, 하고 소리를 냈다.
「며칠 전에 해놓은거 하나 팔았니? 그때 세일 크게 해놓았던 게 하나 없네.」
문을 열고 나가려던 목화가 멈칫했다.
예, 하고 대답한 목소리는 찬 공기 중에 흩어졌다. 정애가 허리를 굽혀 꽃을 꺼내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가게를 나섰다.
* * *
열(熱)을 띤 숨이 새어나왔다. 흐으, 흐으…… 누워있던 목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불조차 무거웠다. 머리가 아픈 것을 보니 열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일러를 틀고 아침에 개켜놓았던 이부자리를 폈다. 그게 끝이었다.
집이래봤자 반지하의 7평짜리 방 한 칸이지만, 누님이 없었다면 이나마 몸을 누일 곳도 없었을 터였다. 누님이, 그저 고마웠다.
문득 목이 갑갑했다. 그제야 목화는 아직도 자신이 옷을 벗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샤워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쓰러진 기억이 난다.
그래도 용케 구두는 벗었구나 했다. 셔츠에 손을 가져다대던 그가 단추를 끄르려다 멈칫했다. 실밥이 풀려 있었다.
테이블에 부대켰던 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뒷목이 화끈거렸다.
베개에 목을 누이는 것조차 갑자기 답답하게 느껴졌다.
<……>
목화는 몸을 옆으로 돌렸다. 털썩, 무거운 몸이 들렸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친 귀 탓에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채 그는 잠을 청했다. 열에 달뜬 머리가 한숨을 불러왔다.
하아. 그는 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잠이라는 이름의 죽음 같은 침묵에 굴러 떨어지던 그가 소스라치게 깨어났던 건 귀에 익은 소리 탓이었다. 위잉-.
「……!」
무거운 눈꺼풀이 단숨에 떠졌다. 흔들리는 시야로, 어두운 방에서 무언가 커다란 하얀 것이 비쳤다. 뒤집힌 냉장고였다.
위잉-…….
그는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그의 시계에 다시 제대로 상(像)이 맺혔다. 방 한 구석을 차지한 작은 냉장고를, 그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귀로 손을 가져갔다. 거즈의 까칠한 감촉이 만져졌다. 홱 손을 떼었다.
그는 도로 누웠다.
도배가 얼룩진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위에 달린 창에서 빤간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혼자였다. 여기엔 자신밖에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혼자 앓았다.
열은 숨을 쉴 때마다 흘러나와 공기를 덥히곤 올라갔다. 위로, 위로. 연기처럼.
<찔러.>
그 연기 같은 속삭임을 그는 기억했다.
<일어나. 찔러 봐.>
노란 가위가 손이 아프도록 파고들었다. 놈의 체온이, 그에게서 잠깐 떨어져나갔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그는 인식했다. 지금이라면 놈의 말대로 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그러나 그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듯 했다.
놈이, 그의 허리를 잡았다. 그 손의 깨닫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차가운 공기보다 더 섬뜩했다.
놈은 그에게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몸이 확 떠밀렸다.
도로 테이블에 엎드렸다. <……> 괜찮아. 그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감방생활 3년 동안 신참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는 종종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래도 다들 멀쩡하게 살아서, 분명히 살아서 걸어 나갔다.
괜찮아. 이건 김반장이 친 주먹과 같은 거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선 기를 꺾어놓고 보자는 것뿐이야. 나한테 들을 게 있는 거다.
죽지 않아.
괜찮아. 죽지 않아.
가위를 놓았다. 손에서 힘을 빼는 데에는 더 큰 힘이 필요했다.
놈은 경찰이다. 그는 자신에게 되뇌었다. 뭔지는 몰라도 형사들보다 도 높은 자리를 꿰차고 있는 놈이다. 김반장도 이 젊은 놈에게 꼼짝도 하지 못한 걸 보면. 어디 시험 보고 들어온 간부였다.
무슨 짓을 해도 감방에 있는 놈들보다 더할 리가 없었다. 그는 귀의 아픔을 무시하고 억지로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러나 놈이 목에 입술을 누른 순간,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불에 덴 듯 뜨거웠다.
<……>
명백한 성적인 의도를 갖고 와 닿은 그 입술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진저리쳤다. 그러나 놈에게 짓눌린 몸은 움직일 줄을 몰랐다.
허리를 잡은 놈의 손이 위로, 그리고 또 아래로 더듬으며 움직였다. 생소한 감촉에 그는 날뛰었다.
그러나 방향성 없는 저항은 놈의 손에 간단히 억눌릴 뿐이었다. 놈의 손은 철로 만든 수갑같았다. 목을 누른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숨이 막혀왔다.
흐려진 시야 속에 하얀 사각 테이블이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놈이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지독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다.
위잉-…… 꽃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낯선 체온이 다리 사이에 느껴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비석비석, 깨진 화분을 밟았던 구두가 바닥을 짓이기는 소리가 올라왔다. 다리 사이가, 뜨거웠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체념 따윈 저 멀리로 날아갔다.
오로지 그는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몸을 비틀어도 보고, 팔꿈치로 테이블을 찍고 일어나려고도 했지만 그래도 놈을 따돌릴 수는 없었다. 이미 힘이 빠졌다는 걸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미약한 저항이 놈을 더 달구었다는 것도.
아니- 그런 사실 따위, 그때는 눈앞에 들이대졌더라도 무시했을 것이다.
「…….」
박목화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땀이 흘러 있었다. 목에 손을 대자 와이셔츠의 목깃이 만져졌다.
아직도 입고 있었나. 그는 느리게 손을 움직였다. 단추를 풀어내던 그가 잠시 멈칫했다. 자신의 체온조차, 뜨거웠다.
놈이 더듬던 손의 체온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리 사이에 파고들었던 놈의 체온도 동시에 떠올랐다. 문득 심장이 사납게 뛰었다. 목화는 어둠 속에서 간신히 숨을 골랐다.
위잉-.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방 안을 맴돌며 그의 귀를 엄습했다. 도로 숨이 거칠어졌다.
둔탁한 몽둥이로 뇌를 후비 파는 듯한 둥중하고 예리한 아픔이었다. 몸을 둘로 찢듯이 밀고 들어온 놈의 흉기는 불에 달군 듯이 뜨거웠다.
귀가 멍멍해졌다.
심장이 사납게 날뛰었다. 낙인이 찍히는 듯한, 단숨에 구부러진 수저처럼 정신의 밑바닥까지 긁어내린 고통이, 목구멍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끌고 나왔다. 비명이 터졌다. 온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리가 뚫고 지나갔다.
위잉위잉, 꽃 냉장고가 보라색 조명을 토해내며 울었다.
'더.'
놈이 속삭인 것은 그때였다. 꽃씨처럼 작고 솜처럼 부드러워서, 잠시동안 그는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뒤에서 감싸 안은 놈이 짧게 웃는 듯 했다. 웃음의 파동만은 뒷목에 와 닿았다. 딱딱하게 굳은 목화에게, 놈은 한 번 더 부드럽게 속삭였다.
<소리, 내라고.>
<……!>
거칠게 놈이 파고들어왔다. 몸이 발끝까지 흔들렸다. 미칠 듯한 자괴감이 내부를 휩쓸고 지나갔다. 입을 다물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짧은 손톱이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늦었다. 놈에게 꿰뚫려 소리를 낸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입을 악 다물고, 참았다. 놈이 그의 몸 밖으로 느리게 흉기를 끌어냈다. 그 감촉에 욕지기가 났다.
일부터 천천히 빼낸 놈이 도로 격하게 찍어 누르듯이 들어왔다. 몇 번 그렇게 하자 부대끼는 뜨거운 체온에, 뇌까지 휘저어지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
피가 몰려 손등이 하얗게 맺힐 때까지 그는 쥔 주먹을 또 쥐었다.
깊숙이 들어온 놈이 그를 흔들었다. 부대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다.
잠시 숨이 막혔다. 몸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다리가 부들거렸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를, 놈이 거칠게 밀어붙였다.
<쿵,> 몸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테이블 사이에 눌린 양팔이 으스러지는 것 같았다. 놈이 몸서리쳐지는 감촉과 함께 스윽 빠져나갔다.
즈끈, 다리 사이로 무언가 뜨겁고 비릿한 것이 느껴졌다. 다시 놈이 다리 사이로 들어왔을 땐 고환까지 꾸욱 눌러왔다. 몸부림도 치지 못했다.
노란 가위가 눈에 아프도록 박혔다. 손에서 놓았던 가위다.
자신이, 놓았다. 엎드려진 채 눈을 돌렸다. 테이블과 상체 사이에서 부대낀 셔츠 단추가 피부를 파고들었다. 쿵, 쿵. 놈이 자신을 끝없이 처박았다.
몇 번이고 몸이 테이블에 부딪쳤다. 떨어졌다, 다시 부딪쳤다. 코너에 몰린 자아가 K.O를 선언할 때까지 놈은 그를 몰아 부칠 듯 했다. 이미 정신은 혼미해져가고 있었다. 판정패라도, 멀지 않았다.
욕지기가 났다.
놈이 숨을 쉬고 허리를 움직이는 것까지 등으로 느껴졌다. 놈이 움직이면, 자신도, 움직였다. 침범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무력하게 인식했다.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구토감이 올라왔다. 위장이 뒤흔들렸다. 피가 맺히도록 쥔 주먹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너무 많이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테이블을 흔든 것은 그의 주먹이 아니었다. 놈이었다. 내장까지 닿을 듯이 놈이 찔러 올릴 때마다 몸이 테이블 위로 한 단씩 올라갔다, 내려왔다. 몸이 흔들릴 때마다 이를 악 물었다. 문득 비릿한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주먹보다 입수링 약했던 탓이다. 그래도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끝이 멀지 않았다는 걸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최후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생각지 못했다.
놈이 그의 허리를 꽉 잡고 깊숙이 찔러 넣었다. 자기도 모르게 토해내려는 아픈 신음을 그는 목구멍으로 도로 삼켰다.
그러나 삼킬 수 없는 고통은 뒤에 왔다. 사정이었다.
뜨거운 액체가 몸 안에 울컥울컥 치미는 동안, 등 뒤에서 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놈의 것이 체온을 남기고 형태를 잃을 때까지, 놈은 때로 허리를 떨며 쿡쿡 찔러댔다.
여운까지 쏟아낸 놈은 몸을 아주 천천히 빼냈다. 뜨거운 액체가 다리 사이로 미지근하게 흘러내렸다. 끝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엎드린 채 잠시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문득 목화가 테이블을, 주먹이 짓이겨질 만큼 으스러지게 내리쳤다.
위잉, 위잉. 냉장고가 놀란 듯이 비명을 토해냈다….
「…….」
꽃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오는 듯 했다. 목화는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열에 들뜬 숨을 삼켰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팠다. 그러나 자신을 내리쳤던 것은 각목도 공사장의 쇠파이프도 아니었다. 놈의 흉기는 체온이었다. 뜨거운 체온이. 등판을 내려치고, 목을 내리꽂고, 좁은 골반에 파고들었다.
문득 욕지기가 올라왔다.
씻고 싶었다. 그러나 몸은 고개만 내민 채 흙구덩이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차갑고 무감각해진 몸을 이불 아래 뉘인 채, 결국 목화는 일어나는것을 포기했다.
…주먹질과 똑같다. 목화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오늘, 두들겨 맞은 것뿐이다.
그는 눈을 감았다. 뜨거운 열만큼 흐트러진 머리가 그때로 되돌아갔다. 옅은 잠은 어떤 기억도 자유롭게 놔둬주질 않았다.
<가져간다.>
경쾌한 목소리로 놈이 말했다.
……종소리가 울렸다. 문이 흔들리면 나는 종소리.
놈이 나갔다는 것을 그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이가 들어올까 놀랐다.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팠다. 옷을 다 끌어올리지도 못한 채 다리를 질질 끌며 리본대 뒤로 향했다.
한낮이어도 그곳은 조금 어두웠다. 의자에 앉아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앉아있던 것도 잠시, 그는 책상위를 더듬었다. 티슈를 찾아낸 그는 몇 장이고 뽑아 계속해서 다리 사이를 훔쳐냈다. 다리 안쪽이 쓸릴 때쯤에야 그는 정신이 들었다.
티슈 더미를 보자 실소가 나왔다. 광경만은 10대 소년이었다. 그러나 정말 웃음을 터뜨릴 여력따윈 손끝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책상 서랍을 열어 그는 정애가 두고 간 거울을 꺼냈다. 거울 속의 왼쪽 귀에 그는 능숙한 손길로 소독을 하고 거즈를 덮었다. 다치는 것도, 혼자 치료를 하는 것도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반창고를 뜯어 붙이자 처치가 끝났다.
문득 거울에 흐트러진 셔추가 비쳤다. 그는 손으로 구김을 편 후 일어나 바지를 끌어올렸다. 버클을 채우고 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다리의 흔들림도 멎었다.
평소와 같은 단정한 차림으로 나왔다. 바닥은 엉망이었다.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찾던 그가 문득 등 뒤에서 찬 바람을 맞았다. 돌아보자 꽃 냉장고의 문이 열려 있었다. '가져간다'는 말이 무엇을 뜻했는지 그는 그제야 알았다.
바구니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 * *
「브라보-!」
막간(幕間), 김낙원은 다소 과장되게 환호했다.
똑같이 박수를 치는 객석에서도 그는 눈에 띄었다. 아직 채 여드름자국도 지워지지 않은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 몸에 맞춘 양복을 입고 여유롭게 앉아있는 그가 는에 띄어 들어오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검은 벨벳드레스를 입을 혜정이 멀리서도 그를 알아보고 눈부신 웃음을 보냈다. 성숙한 몸매의 미인에게 그는 마주 웃임지었다.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2부 첫 번째 순서로 나온 혜정이 합주를 하는 전공생과 함께 목례를 마쳤다. 역시 검은 옷을 입은 동그란 얼굴에 키 작은 피아노를 쪽은 같이 박수를 받는데도 어쩐지 들러리처럼 보였다. 조를 어떻게 짜는지 몰라도, 혜정은 자신이 돋보일 것을 자연스럽게 계산에 넣었을 것이다. 그런 여자였다.
그러니까 이 꽃이 어울렸다.
낙원은 옆자리를 힐끗 쳐다보았다. 화려할 르네보와 담색의 티(tea)로즈로 커다랗게 장식된 꽃바구니가 좌석 하나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꽃은 솜씨는 나쁘지 않았다.
꽃집 한지 얼마 되었다고 했더라. 한 달……?
누가 해주고 있겠는데.
좌석 깊숙이 몸을 누인 김낙원이 입술을 만지면서 생각했다. 현재의 조력자가 누구인지, 어째서 되도 않게 조짓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지 알 필요가 있었더. 어째서일까, 자기를 잘라낸 박광우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는 건.
두려움……?
힘줄에 피가 하얗게 맺히도록 쥐어졌던 주먹을 그는 떠올렸다. 놈은 자신에게 끝까지 그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참는다. 참고 견딘다. 그 모욕과 수치를. 무엇을 위해서? 꽃집……? 어째서일까. 대체 왜 쌩뚱맞은 꽃집을 하고 또 거길 지키려 드는 거지.
한 번 피한 자는 두 번도 피하기 마련이다. 자신을 잘라낸 박광우가 두려워하는 가게를 하는 거라면 놈은 참기는커녕 한참 전에 그를 치거나 도망쳤을 것이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제하고 나자, 역시 싫은 결론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도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때 다시 한 번 박수 소리가 울렸다.
피아노가 연주를 시작했다. 혜정이 악기를 드는 모습을 찍지 못했다는 걸, 그는 장내에 바이올린 소리가 울린 다음에야 깨달았다. 놈을 생각하다 놓친 것이다. 낙원은 어깨를 으쓱하곤 웃어버렸다. 사내만 아니라면 양다리의 시작 같겠는데.
하기는, 성별(性別)도 오늘 낮에 뛰어넘긴 했다.
끊길 듯 말듯 내뱉는 숨소리가 신음으로 변할 때 쯤이면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문득 정면으로 부릅뜬 검은 눈동자가 스치는 듯 했다. 정오의 햇빛이 비쳐들지 않는 심해(深海)같은 가게 안에서, 물속에 있는 것처럼 꽃 냉장고는 귀에 대고 위잉 하고 끝없이 울고 있었다. 자신같은 초롱아귀의 턱에 걸려 온 몸이 으스러지도록 먹히는데도, 놈의 입에선 두 번 다시 '소리'가 터지지 않았다.
……처음이었을 텐데. 독한 녀석.
김낙원은 의자 더 깊숙이 들어앉았다. 기실 그럴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악어의 눈물처럼 낙원은 잠시 후회하듯 생각했다. 미끼를 길들이는 데에는 아마도 그때까지면 충분했을 것이다. 가위를 주니 놈이, 도로 가위를 토해내고 무릎꿇었던 그때에.
하지만 좋았지.
핀에 날개 꽂힌 나비처럼 놈은 바르작거렸다. 포르말린액이 발린 붓이 쓸고지나가는 양 놈은 한번씩 테이블에 처박힐 때마다 자신의 밑에서 죽고, 퍼덕이더니 끝내는 빳빳하게 굳었다.
굳어있는 것조차 사랑스러웠다, 처녀다워서.
장인이 무두질한 가죽같이 광택을 뿜어내는 건장한 몸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단단한 근육사이에 자리한 놀랍도록 연약한 유두처럼, 단호한 입매에도 불구하고 어린 짐승같던 뒷덜미처럼. 그 의외가 놈을 미치도록 탐닉하게 만든 것이다.
악어의 눈물은 병아리 오줌만도 못하게 찔끔 흘려놓고, 입술을 매만지던 낙원은 싱긋 웃었다. 하얀 이가 드러났다. 포만감에 찬 웃음이었다.
바이올린 연주가 그제야 들려왔다.
무슨 곡이더라.
'비창'과 '월광' 만 헷갈리지 않는다면, 곡명을 줄줄 외우면서 듣자마자 이건 뭐라고 난체 하는 작자들은 다 하릴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낙원이었다. 옆 자리 손에 들린 프로그램을 흘깃 쳐다보았다. 2부 첫번째 순서.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B-플렛 장조 KV.454'
길어 길어. 낙원은 무대를 바라보았다.
여대 음대의 봄 정기연주회였다. 연주는 학생들다웠다. 실수는 없었지만 개성도 없었다. 동그란 얼굴은 장래가 보이는 듯 했다. 피아노 교습소. 너무나 클래시컬한 연주를 듣다보니 유학간다던 혜정이의 등을 떠밀어주고 싶어졌다. 실제로 실력이 좋기도 했지만, 검은 머리카락을 드레스 위로 꼬아서 늘어뜨린 얼굴이 객석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것 만으로도 훨씬 더 점수가 높다. 치켜뜬 검은 눈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흑백이 선명한 눈.
흑백이 선명한, 날카로운 눈.
똑바로 쏘아보는 듯한 눈동자가 문득 뇌리를 덮쳐왔다. 이미 없어진 것을 향해 까만 어둠을 노려보고 있던 검은 눈동자. 복수의 칼을 들지 않는 지금에 와서도, 직석의 시선법을 바꾸지 못해 차라리 고개를 숙이고 돌려버리는 남자가.
묘한 일이다 자기야말로 지금 눈앞에 없는것을 향해 무대 건너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낙원은 실소했다. 체온을 맛보아서 그런가, 내내 생각이 쳇바퀴 돌듯 놈의 언저리에서 맴돈다.
와아-. 그때 박수가 터져 나왔다.
「…….」
연주가 끝난 것이다. 브라보. 도로 혜정에게 눈을 돌린 그가 커다랗게 환호했다.
* * *
서투른 남자나 일찍부터 대기실을 찾아가는 법이다. 무대 뒤편의 작은 강의실 문 앞, 포장 비닐이 구겨지도록 바짝 붙어 꽃을 들고 서 있는 남학생들을 흘깃 본 낙원은 픽 웃고 말았다. 여자에게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지.
그는 유유히 그 앞을 지나쳤다. 임시로 설치된 남자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아주 천천히 손을 씻고 나오자, 마침 혜정이 대기실 문을 빼꼼히 열고 있었다. 그제야 소란의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간 그는 혜정이 잡고 있던 문을 단숨에 열어젖혔다.
「에스콧이 필요해?」
팔을 내밀자, 혜정이 그를 올려다보곤 싱긋 웃으면서 팔을 기댔다. 까만 드래스를 입은 혜정은 앵콜을 받은 배우 같았다. 혜정의 팔짱을 끼고 그는 천천히 걸어나왔다. '참 이상하다, 남이 하면 웃을 텐데 오빠가 하면 멋있단 말야.' 그녀의 속삭임에 그는 싱긋 웃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던 삼삼오오 모인 여자애들이 그를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애들이 오빠 얘기하더라.」
어깨에 기댄 혜정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래? 뭐라든.」
혜정이 발돋움을 하더니 귀에 대고 속삭였다. '멋있대.' 낙원이 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찬 밤공기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엔 오른쪽 3열에 앉아있는 남자 봤냐고 막 애들이 꺅꺅대는 거야. 내가 모르는 척 하다 얘기했다? 전에 오빠가 여섯 살 많다고 하니까 니들이 아저씨랑 사귀냐고 하지 않았냐고. 뭘 좋아하냐 그랬더니 애들이 다 입을 다무든 거 있지.」
「그랬었어?」
낙원이 웃었다. 혜정이 지저귀듯 이야기 했다.
「응. 자기들은 오빠보다 더 진짜 아저씨 같아 보이는 애들 사귀면서 그랬다니깐.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어서, 사시패스하고 경정 특채로 들어갔다고 얘기해줬어. 경정이면 과장 맞지.」
낙원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간부 시험 봐도 파출소장인데, 오빠 그거보다 높잖아. 형사들도 막 부리고. 그래서 검사나 변호사 안 하고 경찰된 거 아냐?」
사시를 패스했는데 어째서 경찰이냐. 누가 그런 식으로 이야길 한 모양이다. 오랜만에 듣는 질문에 낙원은 웃으면서 정정했다.
「변호사는 언제해도 상관없어. 그리고 법조계로 안 간 건, 바쁘고 귀찮은게 싫어서고.」
「응?」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진심에 이해를 하지 못한 얼굴로 혜정이 올려다보았다.
낙원은 웃으면서 간단히 설명했다.
「누구보다 높다는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냐. 높다는 건 항상 상대적이니까. 중요한건 누구 밑이 아니라는 거지. 바깥에선 검사하고 부모가 자랑해댈지 몰라도, 본청에 들어가면 그냥 딱갈이란다. 올라갈 구석은 없고, 복도에선 허리 굽히고, 일은 죽도록 바빠서 그 자랑 들어줄 시간도 없어. 그렇지만 여긴 달라. 여기선 다-」
낙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내 마음이거든.」
혜정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낙원은 싱긋 웃으면서 차문을 열었다.
「우리 혜정이 만나러 오는 것도 말이야.」
커다란 꽃바구니에 혜정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올렸다. 잠시 꽃바구니를 안아본다. 르네보 사이로 미인의 얼굴이 빛났다. 낙원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모차르트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지. KV 454.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B플랫. 네가 제일, 예쁘더라.」
연주 능력에 감탄했다면 혜정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예쁘더라'는 한 마디에 혜정의 얼굴이 환해졌다. 무거운 꽃바구니를 오래 들릴 필요가 없다. 무게와 향기를 실감나게 한 것으로 의무를 다 한 꽃바구니를 차 안에 싣고, 낙원은 빙 돌아 혜정을 태웠다. '이상해. 남이하면 어색할 텐데, 정말 오빠가 하면 멋있단 말야.' 혜정이 또 속삭여왔다. 낙원은 차를 출발시키면서 싱긋 웃었다.
나는 항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때문이야.
뭐든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