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49)
  • - 긴급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지금 현재 세가 내에 잠입한 괴한들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하였으며, 건물의 붕괴를 막기 위해 기관장님께서 임시 조치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라며, 혹시 움직이기 힘드신 경우라면 가까운 곳에 있는 비상 버튼을 눌러주시거나, 주변을 두드려 위치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현재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들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였으며, 건물은 곧 붕괴합니다. 당장 밖으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라며, 움직이실 수 없는 경우라면 응급 비상 버튼을 누르거나 주변을 두드려 소리를 내어 주시기 바랍니다.

    폭발로 망가진 스피커들을 제외하고, 남은 스피커에서 최대로 소리를 키운 방송이 건물 전체에서 울리듯 퍼져 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아래층에서 싸우는 소리와 함께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금세 잦아들었다.

    부디 재원이가 이긴 거여야 할 텐데. S등급이라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어린 데다 아직 교육을 받지 않은 녀석이라 걱정도 되었다.

    그리고 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상원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누구세요? 어서 밖으로 대피… 으악!

    순간 상원이의 비명이 마이크로부터 멀어졌다. 그리고는 우당탕탕 하는 무거운 무언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몸싸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이딩을 하다 멈추고 놀라서 고개를 드는데, 다행히 잠시 후 조금 먼 감으로 상원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 내가 서선배한테 구른 게 몇 년인데, 사람을 쉽게 보냐. 에이씨, 깜짝 놀랐네. …아아, 선배, 들려요? 재원아 들려? 저는 멀쩡하니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하세요. 그리고 다른 분들도 모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가짜 오성파로 추측되는 괴한 세력은 현재 세가 내 사람으로 잠입해 있으며 언제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다들 주의하시면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재원, 휴대폰 좀 봐라, 이 똥강아지 새끼야!!

    새끼야, 새끼야-.

    상원이의 마지막 말이 기관 전체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후배 교육을… 잘 시키셨네요.”

    “…그렇지. 저런 거에 당하면 내 손에 먼저 죽지.”

    #109

    그 말에 한태화가 작게 웃다 손을 들어 제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내 손 위를 감쌌다. 어느새 수면 가스는 발목 부근까지 차올랐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태화는 그런 것 따윈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태평한 얼굴이었다. 첫 만남에 저거에 당해서 누워있던 과거의 모습 따윈 벌써 다 잊은 모양이다.

    “가이딩 방식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요한.”

    “그게 중요해? 이럴 줄 알고 있었냐고 물었잖아.”

    “…폭탄을 터트릴 줄은 몰랐어요. 다만, 채애현이 갑자기 세가에서 치료를 진행하고 싶다고 해서 혹시 몰라 대비해 두긴 했었죠. 두 번이나 당해 줄 순 없잖아요.”

    “채애현? 채애현이 이 짓을 벌였다고?”

    “예. 뭔가 할 것 같긴 했는데…. 그 비서도 그렇고, 아무래도 채애현이 가짜 오성파와 관련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적지 않게요.”

    “…대체 무슨 짓들을 벌이는 거야. 넌 그걸 알고도 안 막았어?”

    그 말에 태화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그러나 이내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세가 내로 잠입해 있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것 같았거든요. 채애현이 기관장으로 있는 동안 심어 둔 사람들이겠죠.”

    “…뭐?”

    기관장으로 있으면서… 가짜 오성파 놈들을 심어둔 건가?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들을 전부 색출해 내기 위해선 전체적인 내부 조사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럼 시간도 너무 오래 걸리고, 그 안에서 누가 또 결과를 조작할지도 모르고, 여러모로 귀찮아지겠더라고요.”

    “그래서?”

    “정신 감정에 관한 규정, 기억나요?”

    정신 감정에 관한 규정? 그거라면…. 생각을 이어가기 전 그 규정이 태화의 입에서 나왔다.

    “팀장급 이상의 전체 승인과 기관장의 인가를 통해 현행범인 에스퍼나 가이드에겐 정신계열의 에스퍼를 통한 정신 감정이 가능하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승인 및 인가가 없이도 가능하다.”

    “…너, 설마….”

    “이보다 특별한 사정은 없죠.”

    그 말과 동시에 한태화가 씩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때, 깨진 3층의 창문을 타고 무엇인가가 뛰어들었다.

    “선배! 다들 밖으로 대피했어요. 어서 나와요!”

    커다란 늑대의 품에 안겨 있던 윤상원이 그렇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한태화가 고개를 들어 늑대와 눈이 마주친 후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손재원이 그대로 다시 아래로 뛰어내렸다.

    “으아아악! 말하고 뛰라고, 이 개새야!”

    악을 쓰는 윤상원의 목소리가 들리고 난 후 그대로 한태화가 나를 안고 몸을 띄웠다. 그리고 우리가 깨진 3층 창을 통해 허공으로 날아오른 순간, 거대한 건물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사정.

    그래, 이게 특별한 사정이지. 세가 본청이 무너졌는데 누가 딴지를 걸 수 있을까.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 사이로 폭삭 주저앉은 건물을 보며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시선을 돌리니 건물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있는 게 보였다. 그러나 저 큰 건물에서 나온 사람들 수라기엔 그 숫자가 몹시 적었다. 나에게 연장우를 만나고 오라고 했던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을 일을 보내는 척 밖으로 빼돌려 둔 것이 아니라면 저렇게 숫자가 적을 리 없었다.

    “…미리 좀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냐고.”

    “그럼 분명히 또 요한은 그 가장 위험한 곳으로 움직였을 거잖아요.”

    천천히 땅으로 내려앉는 몸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안 알려줘도 이렇게 됐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러게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땅에 발이 닿은 순간 다시금 폭발음이 들렸다. 이번엔 가까운 곳이 아닌 맞은편 별관 쪽이었다. 둘 다 동시에 말을 멈춘 채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별관을 바라보았다. 본청 본관뿐이 아니라 별관도 공격받고 있었다. 아주 여러 명이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생각에 고개를 돌려 윤상원을 안고 으르렁거리며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손재원을 보았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알 수가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 세가가 공격받았다는 경악이 채 가시기도 전에, 모두가 간격을 벌린 채 떨어져 서서 경계심이 선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모두의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자, 이제 어쩌지.

    “어쩔 거야? 미리 대비하고 있던 거면 생각해둔 계획도 있을 거 아냐.”

    “음.”

    “음이 아니라, 어쩔 생각이냐고.”

    “사실 이미 도착했어야 하는데…. 다들 느려터져서요.”

    “뭐?”

    그 말이 끝난 때였다. 한태화가 갑자기 무언가를 감지한 듯 건물이 무너진 허공 위를 가늘어진 눈으로 살폈다. 그러자 공간이 찢어지며 길게 이공간이 들어섰다.

    “우리가 왔- 으악! 뭐, 뭐야? 왜 공중에 떠 있…, 어떤 미친 새끼가 세가 건물을!!”

    “우와, 이게 뭐야? 아주 폭삭 내려앉았네? 기관장 호출이 있어서 심상치 않다 싶긴 했지만…. 이건 상상도 못 했다.”

    “그러게 정문으로 들어가자니까 어떤 새끼가 옥상으로 좌표 잡았냐?”

    “옥상에서 등장해야 간지난다고 한 새끼가 누구야?”

    순식간에 공중이 소란스러워졌다. 공간 이동을 위한 이공간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총 다섯 개.

    밖으로 조사를 나가 있던 우리 특진팀 팀원들부터 특수팀, 내사팀, 현장팀, 그리고 타 지부에서 지원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순식간에 허공에 나타난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말을 나누다 뭘 믿기라도 하는 것처럼 곧장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 모습에 누군가 했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기관장 호출.

    원하는 모든 부서의 에스퍼들을 모을 수 있는 기관장에게만 부여된 특권이었다. 그 기관장 호출을 발동했을 한태화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공중에서 뛰어내리면서 가속도가 붙어 곤두박질치던 사람들이 모두 약 1m 되는 공간 위에서 한번 멈췄다가 안전하게 땅으로 착지했다.

    “요한아! 상원아!”

    그때 제일 먼저 무식하게 뛰어내렸던 우리 정팀장님이 빠르게 뛰어와 나를 살피려다 가이딩을 하고 있는 모습에 멈칫하고 물러섰다.

    “요한, 이만하면 됐어요. 고마워요. 요한은 괜찮아요?”

    한태화가 목덜미를 덮고 손을 다독이다 천천히 링크를 닫는다. 사실 더 버틸 기운이 없긴 해서 그 말대로 가이딩을 멈추고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억지로 힘을 주고 버티고 있던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으-.”

    “요한!”

    “광땡아!”

    “선배!”

    핑- 하고 눈앞이 돌아가는 느낌에 쓰러지려는 몸을 다급히 잡아챈 한태화를 필두로 정팀장님과 상원이가 달려와 귓가에서 소리를 질러댄다. 아니, 누가 죽냐고!

    “으- 귀 아파 죽겠네. 괜찮아요. 잠깐 어지러워 그런 거니까.”

    힘이 풀린 다리로 억지로 힘을 주고 일어서며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제야 팀장님과 상원이가 안심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물론 태화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 사이 정팀장님은 인우 선배와 세현 선배의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뛰어나갔고, 그 뒤를 상원이가 급하게 따라갔다. 덕분에 소란스러웠던 주변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선배들은 괜찮겠지? 당장 따라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태화에게 시선을 맞추자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숨겨진 걱정이 읽혔다. 정말 잠깐 다리에서 힘이 풀렸던 것뿐인데 녀석의 눈가가 잘게 경련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말란 의미로 어깨를 다독여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 이건 뭐, 개판이네.

    도착한 에스퍼들이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일단 힘을 합치기 위해서 모이긴 했는데, 서로 눈치만 보느라 나서질 못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건 그들을 지휘할 총 책임자였다. 그리고 그 총 책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을 불러 모은 한 사람밖에 없었고. 문제는 그 유일한 한 사람이 내 상태에 놀라 얼이 빠져있다는 거지.

    난감함에 한숨을 내쉬는데, 별안간 별관 쪽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저건… 폭탄 터지는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

    순간 별관 쪽에서 얼음 기둥이 생겨나는 걸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싸움이 난 것이다. 그것도 에스퍼들끼리의 싸움이. 아무래도 본 싸움은 이곳이 아닌 별관 쪽인 듯 했다.

    “태화야.”

    “요한, 정말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이 일이나 빨리 수습하자. 이곳이랑 별관 둘 다 사람이 필요할 것 같-.”

    “여기저기 다친 곳도 많은데, 일단 치유계 에스퍼 찾아서 치료부터 하죠.”

    폭탄이 터진 파편에 맞아 긁힌 곳 부근을 손으로 쓸던 녀석이 사람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이 폭발에 이만큼 안 다친 사람이 어딨을까. 짧게 한숨을 내쉰 후 하얗게 질려 있는 태화의 뺨을 톡톡,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 뒤 작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아주 단호하게 태화를 불렀다.

    “한태화.”

    너는 지금.

    “지금 우리한테 필요한 건 한태화가 아니라 이 상황을 지휘를 해줄 기관장인데.”

    그냥 한태화인 거면 내 손에 죽었어. 그러니 기관장으로서 이 일을 빨리 수습해라.

    하고 싶은 말을 살짝 돌려 한 말에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내 눈에서 고집을 읽은 듯 길게 한숨을 내쉰 태화는 그제야 좀 나아진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녀석은 곧바로 에스퍼 한태화가 아닌 세가의 기관장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가벼운 바람을 일게 만든 손짓 하나로 에스퍼들의 시선을 모은 후, 대뜸 본론부터 꺼내서 그렇지.

    “지금부터 모든 정신계열 에스퍼들의 텔레파시 능력을 허가합니다.”

    #110

    그 순간 모인 에스퍼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나 한태화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사이에 서 있던 차수혁을 지목했다.

    “차수혁 에스퍼.”

    “예, 기관장님.”

    “여기서 모든 정신계 에스퍼들을 모아 한 번에 텔레파시 장을 펼치세요. 지금부터 우리 세가 직원이 아닌 자들을 전부 골라낼 겁니다. 그리고 이후 행동은 특수팀 팀장님의 지시를 따르면 됩니다.”

    텔레파시 장. 그건 정신계 에스퍼가 사람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는 일정 범위를 구축하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은 그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잘못하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기도 했고. 차수혁도 그 예외 조항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정신계 에스퍼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문제였다.

    “특수 상황입니까?”

    “예. 임시 기괸장의 권한으로 특수 상황에 따른 능력 사용을 허가합니다. 그에 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집니다.”

    그 단호한 말에 잠시 한태화를 빤히 쳐다보던 차수혁이 손을 올려 허공을 향해 둥글게 휘저었다. 그러자 일정 범위를 둘러싸는 반투명한 반원이 생겨났다. 그를 따라 다른 정신계 에스퍼들도 그와 비슷해 보이는 것을 따라 만들었고, 그러고 나자 그 범위가 제법 컸다. 이제 저 안에서는 모든 거짓말이 불가능하다. 그걸 읽어내는 사람이 있으니까. 텔레파시 장을 펼치자마자 차수혁을 비롯한 정신계 에스퍼 몇이 사람을 지목하며 손으로 가리켰다. 그에 그 근처에 서 있던 에스퍼가 달려들어 그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텔레파시 장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던 몇몇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시작하면서 무너진 본관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한태화가 특수팀의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팀장님에게 다가가 태연히 입을 열었다.

    “팀장님은 특수팀 팀원들과 정신계 에스퍼들을 지원하면서 이곳을 지휘해 주십시오. 최우선 순위는 가이드 및 일반 사무원들의 보호입니다. 텔레파시 장 안으로 들어오는 이들 중 정신계 에스퍼가 지목한 이들은 무조건 타격하세요. 단, 그 범위를 벗어나 도망치는 이들까지 쫓진 마십시오. 철저하게 보호 위주로 갑니다.”

    “도망가는 이들을 쫓지 말라고요?”

    태화의 명령에 막 앞으로 튀어 나갈 것 같던 특수팀 팀장님이 재차 반문하며 확인을 했다. 그러자 태화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리 쪽을 향해 달려드는 에스퍼 몇을 염력으로 날려버렸다. 그 손짓에선 누가 봐도 귀찮음이 묻어났다.

    근데 왜 저게 더 듬직해 보이는 걸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 그쪽은 따로 맡아 주실 분이 계십니다. 곧 별관 쪽 사람들도 이쪽으로 합류할 겁니다. 팀장님은 그들까지 해서 모두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면 됩니다.”

    “…예!”

    놀라 하던 특수팀 팀장님이 그 말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곧장 차수혁 근처로 다가가 범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자신의 팀원들을 배치시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태화는 이번엔 청산팀 시절 자주 같이 일했던 현장 지휘팀 팀장님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타 지부 지원팀을 데리고 도망치는 놈들을 잡아 주시면 됩니다. 그들을 잡아 두기 위해서라면 모든 정신계열의 능력 사용을 허가합니다.”

    “텔레파시 장에다 그런 거까지 허가하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했다시피 그건 제가 책임질 문제죠. 팀장님께서 신경 쓸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저쪽은?”

    걱정해서 해준 말 같았는데, 태화는 있던 정도 떨어질 것 같이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저 피식하고 웃어넘긴 현장 팀장님이 아직도 싸움이 한창인 것 같은 별관 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별관 건물에서 별안간 불기둥이 치솟아 오르더니 창문을 깨트렸다. 그 모습을 본 태화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어 바닥으로 내던졌다.

    “제가 갑니다.”

    “그럼 뭐.”

    그 한마디에 바로 수긍한 현장 팀장님은 곧바로 에스퍼 몇몇을 지목해서 수색 대형을 짜나갔다. 그때 언제 왔나 싶은 정팀장님이 뚱한 얼굴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막 달려들려던 에스퍼 몇이 위협적으로 쏟아지는 작은 물방울들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나는 뭐해?”

    “정팀장님은 남은 에스퍼들과 요원들을 데리고 저와 함께 별관으로 갑니다. 가서 피해입은 가이드와 사무원들을 이쪽으로 데리고 와 보호하세요.”

    “예, 예.”

    정팀장님은 성의없이 대꾸를 하면서도 현장에 투입할 사람들을 정렬시켰다. 그때였다.

    “차수경, 가자.”

    넥타이까지 풀어 내던진 뒤, 소매 부근을 접어 올리고 있던 태화가 가만히 서 있던 차수경 에스퍼를 불렀다. 서로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던 듯 친근해 보이는 부름이었다. 차수경 에스퍼 역시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던 사람처럼 당연하다는 얼굴로 태화의 곁으로 걸어왔다. 한소리 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넌 부탁하는 태도부터가 글러 먹었어.”

    “부탁 아니고 명령. 기관장이니까.”

    “임시 주제에….”

    차수경 에스퍼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가볍게 제자리 뛰기를 하며 몸을 풀었다. 그러자 한태화가 고개만 돌려 손재원을 바라본다.

    “손재원, 너도 와.”

    윤상원의 곁에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멍하니 눈만 깜박이고 있던 손재원이 얼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막 출발하기 전, 태화가 슬쩍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맞췄다.

    “제발 여기 있으라고 해도 말 안 들을 거죠?”

    “알면서 뭘 물어.”

    “…정팀장님, 가이드 보호가 최우선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짧게 한숨을 내쉰 태화가 그렇게 당부하자 정팀장님이 알았다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믿음직한 태도가 아니었음에도 태화는 고개를 돌려 별관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어깨를 돌렸다.

    “손재원, 일루전을 굳이 모든 지역에 다 쓸 필욘 없어. 필요한 부분 부분을 상황에 맞춰서만 쓰면 돼.”

    “아…, 예!”

    “가자.”

    한태화가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차수경 에스퍼도 빠른 속도로 달려 맞은편 별관을 향했다. 어정쩡하게 남아있던 손재원은 금세 늑대로 변해 날듯이 뛰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뒤에서 에스퍼들을 모아 정비하고 있던 정팀장님이 모아놓은 요원들을 향해 출발을 지시했고, 그 명령에 모여있던 에스퍼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별관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에 나도 다급히 상원이를 찾아 부탁했다.

    “상원아, 다친 사람들이 있으면 텔레파시 장의 가장 안쪽으로 옮긴 후에 치유계 에스퍼를 찾아서 바로 치료부터 시작해.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움직일 수 있는 가이드가 있으면 모아서 방어 대형으로 서 있고. 가이드라도 다들 교육받은 사람들이라서 초반 대형만 잘 갖춰 놓으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선배는요?”

    “난 내 에스퍼 따라가야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하아…. 선배랑 한태화 볼 때마다 전속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 드는 거 알아요?”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라.”

    “…가세요, 그냥. 욕하고 싶지 않아요.”

    찡그리고 있는 상원이의 뒤로 최선배와 강선배가 달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행히 둘 다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런 두 선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정팀장님을 필두로 달리기 시작한 이들 뒤로 따라붙었다. 어쩐지 결전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단 한 번에 점프로 가장 먼저 앞으로 뛰어나간 한태화가 낮게 날았다. 그 곁을 거대한 늑대가 날듯이 뛰어 함께 달리고 있었고, 그 뒤로는 정신계 에스퍼인 차수경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 앞장서서 별관을 향하고 있던 한태화가 손으로 별관 가운데를 가르며 왼쪽을 가리켰다.

    “넌 왼쪽. 난 오른쪽.”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두 사람이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졌다. 한태화는 오른편에 서서 자리를 잡았고, 늑대로 변해 있던 손재원은 왼편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달려 정 가운데로 간 차수경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미끄러지면서도 최대한의 범위로 텔레파시 장을 펼쳤다. 별관의 절반이 뒤덮일 만큼 말도 안 되게 넓은 범위였다. 그녀의 정신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만큼.

    그러나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것에 그친 차수경은 머릿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나가며 그때그때 손가락을 튕겼다.

    “세가 사람이 아닌 자들에겐 표식을 달아둘 거야! 그거 보고 알아서 움직여!”

    그냥 자신을 공격해 오면 반격을 하는 식으로 막싸움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멈칫거리며 싸움을 멈췄다. 가이드건 에스퍼건 할 것 없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던 싸움이 아주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그 사이로 차수경이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몇몇 사람들의 이마 위로 붉은 별이 하나씩 떠올랐다. 텔레파시 장에 이은 일루전 능력이었다.

    두 능력을 동시에 쓰고 있음에도 붉은 별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수가 많았다. 함께 등을 맞대고 싸우다 갑자기 별이 떠오른 사람을 보고 놀라 몸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별이 없는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드디어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엉켜 있던 현장이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태화와 손재원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별이 떠오른 순간 상대를 제압해 나가기 시작한 두 사람의 모습에 당황해하던 사람들이 우와좌왕 했다. 그러나 별이 나타난 사람들은 그 즉시 힘을 합쳐 한태화와 손재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111

    그 조직적인 공격에 손재원이 조금 밀리는 것 같았던 순간이었다. 한 마리였던 늑대가 다섯 마리로 늘어나더니 자신을 공격한 사람들을 노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의 늑대가 날카로운 발톱을 이용해 위협적으로 휘두르자 그를 피해 사람들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순간 땅이 솟구치며 돌기둥이 덮쳐와 그들을 두꺼운 돌벽 안에 가뒀다.

    반대편에선 한태화가 아낌없이 힘을 쓰고 있었다. 엄청난 압력으로 표식이 나타난 자들을 찍어누른 한태화는 강화된 신체를 이용해 표식이 있는 자들의 팔다리 한군데를 분질러두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속도로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른 한태화를 간신히 피한 첩자 한 명이 크게 파이는 땅을 보고 하얗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곧 그자가 서 있던 자리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어디에도 사각지대가 없었다.

    그렇게 누구 하나 도망가지 못하게 견제를 하면서도 차례차례 첩자들을 처리해 가는 한태화와 손재원은 이미 한번 합을 맞춰 본 것처럼 물 흐르듯이 움직였다. 앞서 싸워본 경험으로 서로의 능력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였다. 노르스름한 색의 검은 무늬가 화려한 거대한 표범이 한태화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 기척을 느낀 한태화는 재빨리 몸을 강화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러나 표범의 이빨에 닿아 얇게 생채기가 난 팔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한태화는 귀찮게 됐다는 듯 얼굴로 표범을 피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표범의 이마 위로 떠오른 붉은 별을 확인한 뒤 작게 혀를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저 멀리 주변을 감싼 불벽에 갇힌 늑대가 보였다.

    늑대는 잠시 당황한 얼굴로 자신을 둘러싼 불타는 벽을 바라보다 튕기듯이 크게 도약했다. 순간 공중에서 시선을 교환한 한태화와 손재원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맞부딪칠 것처럼 가까워진 순간, 한 끗 차이로 스쳐 지나가며 자리를 바꿨다.

    다시 한번 크게 도약한 한태화는 공중에 생겨 난 불덩이에 더 큰 불을 둘러막고, 염력을 이용해 능력을 사용 중인 에스퍼를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그 사이 오른편으로 옮겨간 늑대는 곧장 표범의 목덜미를 물고 뛰어다니며 곳곳에 있는 붉은 별 표시자들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공격했다. 그렇게 서로 능력에 따라 영역을 바꿔가며 싸우고 있을 때였다.

    “재원아!”

    익숙한 목소리가 손재원을 불렀다. 물고 있던 표범을 바닥으로 집어 던진 손재원이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별관 창문이 깨지며 그 사이로 또다시 불길이 솟더니 무엇인가가 고민도 없이 뛰어내렸다. 손재원은 순간 눈을 가늘게 좁혀 대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무언인가가 김동원과 밤나비란 것을 알아챈 순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빠르게 위로 솟아오른 손재원은 김동원과 밤나비를 품에 안고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듯 몸을 웅크렸다. 그러나 창문에서 뛰어내린 이들은 그 둘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였다. 깨진 창문을 통해 줄줄이 뛰어내리는 이들을 보며 손재원이 당황했다. 그러나 위로 솟아올랐다 땅으로 떨어지고 있던 손재원은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팔만 휘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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