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49)

손재원은 숫제 신을 목도한 신도처럼 신실한 눈으로 윤상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제 어쩌죠?”

그러자 윤상원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기는. 일단 복귀한 후에 보고하고, 다시 움직여야지.”

“…아.”

“가자.”

말을 마친 윤상원이 먼저 걷기 시작하자, 나눠 쓰던 이어폰을 잘 접어 챙긴 손재원도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말없이 걷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까지 나왔을 때, 불현듯 윤상원이 팔을 뻗어 손재원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우리 멍멍이, 앞으론 많이 먹고 쑥쑥 커야겠다.”

#101

상원이와 재원이가 사무실로 복귀했다. 아주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상원이의 모습에 표정을 일그러트리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책상 앞으로 다가온 녀석이 양손으로 꽃받침을 해 보이며 가증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너 뭐 하냐?”

“선배, 저한테 뭐 해줄 말 없어요?”

“무슨 말. 욕?”

“이이잉-.”

꽃받침을 유지한 채 어깨를 떨며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는 모습에 쥐고 있던 볼펜에 힘이 들어갔다. 저게 미쳤나.

“요정이는 서팀장님 칭찬이 받고 시포욤-.”

“칭찬은 모르겠고, 매는 벌고 있는데?”

“…현장 보고 안 받고 싶으신가 봐요, 선배?”

“그만 살고 싶은가 봐, 상원아?”

“씨이-.”

“씨? 씨 뭐. 이젠 욕도 하네, 이게?”

“욕 안 했- 잉?”

적립한 매를 돌려주고자 기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데, 책상 앞에 있던 상원이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이 들어오더니 덜렁하고 몸이 들렸다가 옆으로 다시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 바닥을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악! 간지러워! 끄핫!”

“…….”

“형, 잘 지내셨어요?”

아, 정말 아는 척하기 싫다…. 양손으로 겨드랑이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상원이를 짜증스레 쳐다보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조금 난처한 얼굴로 웃고 있는 손재원이 보였다.

“…응, 너야말로 고생 많았겠네.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예.”

칭찬과 함께 안부를 물으니 쑥스러운 얼굴로 뺨을 붉히는 손재원은 지금까지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이씨, 저 멍청이가!”

바닥이나 구르고 있던 상원이 녀석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브레이크 댄스를 추듯 누워서 다리를 휘둘렀다. 그러나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다리를 살짝 들어 피한 손재원은 귀찮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러더니 지금껏 쥐고 있던 가이드 보급용 면장갑을 상원이의 손에 쥐여 주곤 진저리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할퀴듯 날아오던 손은 허망하게 허공을 가른 채 끝이 났다.

“-쳇. 저 댕청한 게 쓸데없이 눈치만 빨라져선….”

“…안 일어나세요?”

“너 때문이잖아. 일으켜줘.”

“…….”

손재원을 향해 일으켜 달라고 손을 뻗는 상원이의 모습은 파리지옥 풀을 연상시켰다. 나라도 가까이 안 갈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질색하는 얼굴로 오히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난 손재원이 아무것도 못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돌리고 윤상원을 외면했다. …저 순한 애가 그럴 애가 아닌데, 근데도 상원이를 무슨 역병 걸린 사람처럼 피하고 있었다.

“하하, 같이 잠입 수사 나가 있는 동안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네. 일어나요, 상원씨.”

평소 상원이를 예뻐하던 박지환 에스퍼가 대신 나서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러자 상원이가 가당치도 않게 가련한 척을 하며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은 눈가를 세게 문질렀다. 그런다고 안 나오는 눈물이 억지로 나오냐?

저 정도면 역병처럼 피해야 할 대상이 맞다. 호환, 마마보다 위험한 새끼.

“놀고들 있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정팀장님이 한소리 하자 코끝을 찡그린 상원이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팀장님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고생이 많았다는 의미로 손재원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혀엉-.’ 하고 기운 빠진 얼굴로 돌아본다. 어린 녀석에게 어울리지 않는 지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미안하다, 복수에 눈이 멀어, 내가 너를….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러냐는 사나운 눈빛으로 상원이를 노려보자 슬그머니 팀장님 뒤로 숨은 녀석이 샐쭉 눈을 늘어뜨렸다. 마치 심술궂은 고양이처럼. 저 꼴을 보고 있자니 일은 제대로 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며 깊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그래, 내가 미쳤지. 믿을 놈이 없어 저런 놈을. 그저 손재원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

“손재원 에스퍼와 저는 계획대로 명동의 솔잎꾼으로 유명한 장덕수를 타깃으로 잡고 SG를 구매하고 싶다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곧 SG를 구하기 위해 두 사람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그중에 한 명이 강남 지역의 마약 딜러로 유명한 '제비',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바로 이 '조교수'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거기까지 설명을 한 상원이가 붉은색 마카를 들고 백보드에 쓴 세 사람의 이름 중 ‘조필상’이라고 쓴 이름 위로 붉은색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우리는 이 조교수란 인물에 집중했습니다. 일단 교수란 마약 쪽 세계에서 마약제조업자를 뜻하는 은어입니다. 아무에게나 붙는 별칭이 아니며, 이 조필상이란 자가 마약 쪽으로는 꽤 유명한 거물이라는 것 역시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손재원 에스퍼의 감청 도중 이 조교수란 인물이 SG의 제조처인 설탕 공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는 사실이죠. 그쪽 세계에선 이 자가 SG의 직접 판매자 중 한 사람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고요.”

백보드 앞에 서서 막힘없이 브리핑을 이어가는 녀석을 본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저게… 일을 꽤 제대로 했네? 박살 났던 믿음이 다시 조각조각 이어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날 장덕수의 뒤를 밟아 이 조교수란 자의 집으로 보이는 곳엘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가 무등록 에스퍼란 사실을 알아냈죠. 저는 이 조교수, 그러니까 조필상이라는 인물이 가짜 오성파쪽의 일원이거나, 적어도 그들과 가까운 사이의 마약제조업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찾는 SG 제조자일 가능성도 높고요.”

특진 팀원 모두가 잠시 말을 잃은 채 잠입 수사 내용을 보고하고 있는 상원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심지어 함께 수사에 나갔던 손재원도 언제 이런 것을 준비했냐는 얼굴로 상원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비서를 대동하고 나타나 함께 회의에 참석해 있던 한태화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가장 상석에 앉아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몸을 늘어뜨리고 있는 녀석은 녀석을 예뻐하는 내가 보기에도 좀 재수 없고 고까워 보였다.

“그럼 그 중요 인물인 조필상과는 어떻게 접촉할 생각입니까?”

상원이는 한태화의 질문을 예상하고 미리 답을 준비해 놓은 사람처럼 막힘없이 말을 받았다.

“그건 문제가 없는 게 현재 조필상 측에서 먼저 접촉해오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장덕수에게 우리 중 가이드가 있었는지를 물으며 자신에게 저희를 넘기라고 했거든요. 제 생각엔 아마, 무등록 에스퍼와 함께 다니는 가이드를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요사이 무등록 능력자들에 대한 단속이 심해져서 몸들을 사리다 보니 가이드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SG를 찾는 사람들 중에서 가이드를 물색하고 있는 거죠.”

“그럼 다음 접선이 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한태화가 전혀 걱정스럽지 않은 얼굴로 태연히 말했다. 그러나 상원이는 눈을 빛내며 그 말을 기다린 사람처럼 반응했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접선 때 현장팀 사람들이 나서서 조필상을 잡아들이는 게 어떨까요? 이 이상 일을 진행하기도 무섭고, 또 임시 기관장님 말씀대로 위험할 것 같거든요. 너무 길게 끌기도 싫고요….”

진심은 항상 맨 뒤에 나오게 되어있다. 상원이는 팀원들의 눈치를 보며 속셈이 뻔히 보이는 제안을 해왔다. 그러나 상원이의 말대로 위험한 것도 사실이라, 팀원들이 모두 심각한 얼굴로 조필상에 관한 신상명세서를 보며 고민하듯 얼굴을 굳혔다. 그런 팀 분위기에 계속해서 눈치를 살피던 상원이가 쐐기를 박듯 제 주장을 이어갔다.

“조필상은 무등록 에스퍼면서 마약 관리법을 위반한 현행범입니다. 그러니 일단 붙잡은 후에 정신계 에스퍼를 통해 정신 감정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분명 뭐가 나올 거예요. 이건 진짜 빼박이라니까요?”

저놈의 빼박. 또 시작됐네. 다시 도진 상원이의 입버릇에 내심 고개를 저었다. 말이야 쉽지, 정식으로 정신계 에스퍼를 붙여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칫 불법적인 일이 되어 감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정상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곤 현행범인 에스퍼나 가이드와 같은 능력자들에게만 정신 감정이 가능했다. 그마저도 팀장급 이상의 전체 승인과 기관장의 인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고, 그 절차를 전부 준수했다고 해도 감사가 나오면 여러 가지로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여러모로 복잡하고, 성가신 일인 것이다.

“그러다 그놈이 가짜 오성파와 별 관련이 없는 놈이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일 거 같은데요? 밑에서 시키는 일이나 하던 놈이라면 차라리 그냥 그놈 뒤로 꼬리를 붙여서 가짜 오성파 놈들의 본거지를 알아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그렇지. 그게 더 확실하긴 하지….”

“그래도 무등록 에스퍼까지 등장한 이상 더 깊이 파고드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소영 가이드의 말에 최주용 에스퍼가 동의를 했으나,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던 차수혁이 상원이의 편을 들어줬다. 그런 차수혁의 말에 박주환 에스퍼는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김영민 가이드는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점차 편이 나뉘자 어떻게 해서든 빨리 일을 끝내려고 들던 상원이가 울 것처럼 표정을 바꿨다.

“그치만… 다음에 조필상을 만나면 다짜고짜 가이드인지부터 알아보려고 들 것 같단 말이에요. 장덕수가 재원이를 가이드인 것 같다고 해버려서, 위험할 것 같은데…. 그 새끼가 저 어린 애한테 몹쓸 짓이라도 하려고 들면 어떡해요!”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조필상이 누굴 가이드로 알고 있다고?”

#102

팀장님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상원이의 손길을 따라 손재원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얼굴로 손재원을 바라보는데, 어? 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손재원이 점점 당황한 얼굴로 팀원들을 돌아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그게… 저희 둘 중의 한 명을 가이드로 의심하고 있는 거 같긴 했어요.”

“거봐요! 제 말이 맞죠? 이대로 가면 저희가 위험하다니까요?”

상원이의 외침에 사람들이 다시 할 말을 잃고 고민에 잠겼다. 아무래도 손재원이 세가 소속 요원이 아닌 데다, 정식으로 교육받은 적이 없다 보니 팀원들도 일을 진행함에 있어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이라면 억지로 일을 진행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근데 쟤가 어쩌다 가이드로 오해를 받았지? 진짜 가이드인 상원이를 옆에 두고도 그런 오해를 받았다고? 그 새끼들은 찍는 것도 영 거지 같네.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길게 내쉬는데, 같은 생각에서인지 팀장님도 짧게 한숨을 내쉬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냥 잡자. 길게 끌어봐야 우리가 꼬리 붙여 놓은 것만 들킬 수 있어. 가짜 오성파 놈들도 대부분 다 무등록 능력자들일 텐데, 우리는 그놈들의 능력에 대해 정보가 너무 없어. 자칫 잘못해서 깊이 따라붙었다 해괴한 능력을 가진 놈한테 걸리면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러니까 너무 욕심내지 말고 일단 그놈부터 잡아보자.”

팀장님이 그렇게 말하며 동의를 구하듯 한태화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턱을 괴고 앉아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서류를 뒤적이던 한태화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럼 조용히, 이 팀만 움직이는 걸로 하죠.”

“좋습니다. 그럼 내일 바로 접선하는 순간을 노려서-.”

“아뇨, 지금 바로 움직이세요.”

“……예?”

지금 당장 움직이라는 말에 팀장님이 아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나 역시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하듯 한태화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태화는 태연하기만 했다.

“조용히, 빠르게. 그렇게 움직일 생각이라면 잡음이 나기 전에 바로 움직이는 게 낫습니다. 팀장급들 승인받아서 정신 감정에 들어갈 생각이라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하고요. 기관장 인가가 필요한 사안이라면 제가 기관장일 때 일을 처리하는 게 나은데, 저랑 기 싸움하겠다고 나서는 얼간이들이 생기면 팀장급들의 승인을 받는 게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잡을 거면 빨리 움직이죠.”

그 말에 잠시 회의실 안으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나 역시 인상을 구긴 채 팔짱을 끼고 천장을 잠시 노려보았다. 그래, 그런 얼간이들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긴 했다. 한태화가 등급은 높아도 나이가 어린 편이라….

주총이 5일 남은 시점이었다. 한태화의 말대로 정신 감정 승인에 시간이 걸릴 경우 주총이 끝나고 한태화가 기관장이 되지 못했을 때 문제가 커진다.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 수 없으므로. 아마 태화도 그런 것을 고려해서 빨리 움직이자는 이야길 한 것일 텐데….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하다 슬쩍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저랑 상원이가 현장 지원을 나가는 걸로 하겠습니다.”

“요한이 왜요?”

“제가 왜요?”

말 끝나기가 무섭게 따라붙은 불만에 일단 한태화는 무시한 채 윤상원을 보고 가늘게 눈매를 좁혔다. 무척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왜 하필 자신을 데려가려고 하냐며 인상을 쓰고 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사실 이미 나는 유감스러운 게 무척 많았다.

“윤상원 가이드,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장덕수의 전화 상대 두 명은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그 정보의 출처가 어디죠?”

“그야 당연히 정보 지원팀에 수신자 확인 요청을….”

“그러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요청했냐고. 그건 팀장급 이상의 승인 없인 못 하는 건데. 근데 난 그런 보고 받은 기억이 없는데?”

팔짱을 끼고 앉아 사납게 묻자, 상원이가 힐끔 팀장님을 쳐다보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중간에서 눈치를 보던 팀장님이 자수를 하듯 조심히 손을 들어 올렸다.

“그거… 내가 승인해 줬는데…. 상원이가 문자로 해 달라고 졸라서….”

내 그럴 줄 알았지. 가늘게 눈매를 좁힌 채 두 사람을 노려보다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이럴 거면 보고 체계는 뭐 하러 뒀습니까? 팀내 균형적인 정보 교류를 위한 체계였던 거 같은데, 사무 지원팀 소속이란 새끼가 보고 사항 줄여보겠다고 날뛰는 거야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런 거라 치고, 정팀장님까지 그러실 줄은 몰랐는데요.”

“아니, 서팀장, 그게….”

아무리 팀장님이 총괄팀장이라고 해도, 일단은 같은 팀의 팀장이었다. 가뜩이나 낙하산이다 뭐다 말들도 많고, 그런 이유로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것조차 생각해 주지 않고 깔아뭉개듯 행동할 줄은 몰랐다. 저들에게조차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님을 지적받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씁쓸했다.

“선배, 아니, 팀장님, 제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요, 절차가 너무 복잡하고 길어질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상원이와 팀장님이 서로를 쳐다본 채 어떻게 좀 해보라는 눈짓들을 보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러자 그 상황을 지켜보던 한태화가 이미 제 손을 떠난 사안임을 눈치챘는지 작게 한숨을 내뱉는 게 보였다.

“이따위로 보고 받을 바에야 현장에 함께 갑니다. 다들 불만 없으시죠?”

확답을 받듯 팀장님을 쳐다보자, 팀장님이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

“요한, 꼭 가야겠어요? 위험할 거 같은데.”

“위험하기는. 에스퍼를 다섯이나 데리고 움직이는데. 재원이도 갈 거고.”

“그럼 뭐 해요. 제가 없잖아요.”

…저 자신감은 어디서 파는 걸까? 나도 좀 살 수 없나?

너는 그걸 어디서 샀냐고 묻고 싶은 것을 참으며 현장에서 쓸 물품을 챙기기 위해 비품 캐비닛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 안에서 통신 장비와 능력자 전용 수갑을 챙기며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런 내 곁을 얼쩡거리던 한태화가 걱정스럽다는 듯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그 끙끙거리는 모양새가 마치 함께 산책을 나갈 줄 알았던 주인이 혼자 나갈 걸 눈치챈 강아지 같았다.

“채애현 때문에 검찰에 들어가 봐야 해서 스케줄도 못 미루는데…, 괜히 지금 가라고 했나 봐요.”

“오늘 채애현 만나? 검찰에서 허가가 떨어졌어?”

“예. 그래서 만나서 협상해 보려고요. 검찰 측에서도 조용히 넘어가길 바라는 눈치니까 며칠 내로 정리될 것 같아요.”

그 말에 가만히 한태화를 바라보다 고생했다는 의미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어깨에 매달려 온 녀석이 애처럼 칭얼거렸다.

“그러니까 요한은 그냥 사무실에 있어요. 대체 왜 자꾸 위험한 곳으로만 현장을 나가요. 갈 거면 나를 데려가든가요. 전속 가이드가 현장 나갈 땐 원래 전속 에스퍼 동반이 원칙인 거 몰라요?”

“태화야.”

“…예.”

태화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움찔한 녀석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저 말이 나오면 아무리 떼를 써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이미 학습했기 때문이다. 개로 치면 아주 눈치가 빠른 똑똑한 개였다.

“내가 낙하산은 맞는데, 낙하산이라 일 못 한다는 소린 듣기 싫거든?”

“……누가 그렇게 용감한 소릴 하는데요? 무병장수는 모든 사람의 꿈인 줄 알았는데.”

“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내 말은 위험한 현장엔 팀원만 보내는 게 아니라 팀장도 함께 나가는 게 맞다는 소리야. 나는 그렇게 배웠어.”

물품들을 꺼내 책상 위로 늘어놓은 후 캐비닛을 닫으며 몸을 돌리자 뚱한 얼굴이 코앞에서 입을 삐죽이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딴 걸 알려줬는데요?”

“우리 팀장님. 그리고 너.”

“…저요? 제가요?”

“전에 임시 가이드일 때 보니까 너도 위험하다 싶은 작전에선 팀원들 전부 주변 경계로 물리고 혼자 진행하던데? 괜찮겠다 싶은 일엔 아예 참여도 안 했지만.”

“…제가요? 아닌데요….”

“아니, 맞아. 내가 봤다니까. 그리고 누가 전속 가이드야? 우리 아직 전속 계약서 인사과 제출 안 해서 전속 계약 관계 아니야. 내 가이드 등록부는 아직 깨끗하거든?”

내 말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눈을 한 바퀴 굴리던 녀석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불퉁했던 얼굴을 풀었다.

“나는 요한이 가족이 생긴 것도 싫고, 팀장이 된 것도 싫어요.”

갑자기 투정처럼 나온 말에 그저 웃음을 터트리다 달래줄 겸 해서 어깨를 다독이는데, 그 사이로 불쑥 얼굴이 끼어들었다.

“사무실 내에선 연애질을 금합니다.”

“…깜짝이야. 놀랬잖아. 그리고 나 모르게 언제 그런 규칙이 생겼지?”

“지금 방금요. 꼴 보기 싫으니까 둘이 좀 떨어지세요.”

갑자기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 차수혁이 툴툴거리는 얼굴로 한태화를 밀쳐내며 늘어놓은 현장 물품들을 챙겨 품에 안았다. 그 탓에 뒤로 밀려난 한태화가 팔짱을 낀 채 사납게 노려보고 있는데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주의를 주듯 녀석의 팔을 팔꿈치로 툭 하고 쳤다.

“이제 저 눈길 받는 게 취미가 된 거야? 쟤가 임시긴 해도 기관장인데,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냐?”

“…형, 그런 말 알아요? 이생망이라고. 어차피 전 이번 생은 망했어요.”

#103

진지한 얼굴로 이생망을 중얼거리는 차수혁의 모습에 풋- 하고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러나 차수혁은 여전히 진지했다.

“이왕 망한 거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어요. 출셋길 포기한 셈 치고 막 나갈 거니까 말리지 마요.”

아아, 우리 수혁이가 진짜 출세를 포기했나 보다. A등급 에스퍼면 뭐하나. 이번 생은 망했다 싶게 한태화한테 찍혔는데…. 걔는 이제 기관장이 되게 생겼고. 어쩐지 좀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으나, 그보단 놀리는 말이 먼저 나왔다. 사람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수혁아, 사실 넌 태화를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왜, 초등학생 남자애들 보면 좋아하는 애를 괴롭히고 싶어 하는 그런 심리가 있-.”

“아, 형! 끔찍한 소리 좀 하지 마요!”

품 안 가득 물품을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진저리를 치며 소리를 지르다 삐친 얼굴로 휙 하고 몸을 돌려 가버린다. 그러더니 현장을 나가는 사람들에게 물품을 나눠주며 연신 툴툴거렸다. 이제는 한결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차수혁의 모습을 보며 낄낄대며 즐거워하고 있는데, 그런 옆으로 얼핏 그림자가 지며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으흠-.”

“…뭐야? 할 말 있으면 해.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곁으로 와서 사람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한태화를 보며 그렇게 말하자, 녀석이 삐죽이 입술을 내밀며 볼을 살짝 부풀렸다.

“그런 눈이 어떤 눈인데요?”

“…집착을 기반으로 한 감시자의 눈?”

“애정을 기반으로 한 관심의 눈이라니까요.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그래, 나는 존나 나쁜 사람인가 보다. 고개를 저으며 팀원들이 모인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그 뒤를 한태화가 졸졸 쫓아왔다. 아직도 볼일이 남았나. 혹시나 하고 시선을 들자 역시나 싶게 시답잖은 질문이 날아왔다.

“근데 왜 아직도 차수혁이랑 친하게 지내요?”

“같은 팀원이니까.”

“왜 같은 팀원인데요?”

“뭐라는 거야. 네가 꾸렸잖아요, 이 팀. 왜 이러세요, 기관장님?”

“…내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

“그래, 너도 너 미친놈인 거 인정한다며. 그러니까 그만하고, 일하러 가라.”

헛소리를 늘어놓는 한태화의 어깨를 밀며 가보라고 등을 떠밀자 그제야 녀석이 비서를 뒤에 달고 사무실을 나설 준비를 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불퉁한 얼굴을 하고서도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주 기특하게도 말이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너무 늦지 마시고요.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거죠? 요새 자꾸 뼈가 만져지던데, 제가 더 잘 챙길게요. 반성의 의미로 저녁 차려놓고 기다릴 테니까 늦지 말고 오세요.”

이 새끼가… 지금 무슨 소릴…. 응?

“이따 집에서 봐요, 요한.”

방긋 웃으며 말을 마친 한태화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꾸준히 개새끼였는데, 잠시 잊고 있었다. 한 번도 아닌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는데, 왜 잊고 있었지? 하-.

모여있던 팀원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 ‘안 알고 싶은 얘기였다, 정말.’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것도 같았다. 애써 못 들은 척 했지만 말이 없어진 팀 사람들의 눈엔 ‘둘이 벌써 살림도 차린 거야?’라는 선명한 의문이 떠올라 있었다. 그런 시선을 피해 애써 고개를 돌리며 속으로 욕을 삼켰다.

앓느니 죽지. 아…, 적당히 놀리고 달래줄걸. 부질없는 후회만이 남았다.

***

멋대로 폭탄을 투하하고 난 후에야 만족한 한태화는 그제야 제 할 일을 하러 갔다. 그리고 남은 팀원들 사이에서 홀로 어색하게 웃고 있던 나는 현장 나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척을 하며 애써 그 시선들을 외면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너 미쳤냐고 소리 칠 줄 알았던 정팀장님이 박수를 한 번 크게 쳐서 주의를 환기시킨 뒤, 착실히 현장에 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우리 특진팀은 차수혁과 김영민 가이드, 그리고 이소영 가이드를 백업팀으로 남겨 둔 채 박지환 에스퍼의 공간 이동 능력을 통해 목표 지점으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뒤로 팀원들을 모은 박지환 에스퍼는 양손으로 허공을 잡고 무언가를 찢듯이 손을 엇갈려 벌렸다. 그러자 허공이 길게 갈라지며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고, 박지환 에스퍼의 안내를 따라 한 사람씩 그 안으로 들어갔다. B등급의 공간 이동 능력자인 박지환 에스퍼의 능력은 한 번에 한 명씩만 이동이 가능했고,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사람 수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타 팀에 지원 요청을 하지 않고, 사무실 내에서 조용히 이동을 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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