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49)
  •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걸 네가 한 짓이랑 비교하면 내가 많이 빡치지.”

    “…뭐?”

    “내가 너랑 뭐가 다른지 보여줘?”

    “…….”

    “태화야, 손.”

    되도록 화를 전가시키지 않으려 부드럽게 부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질 않았다. 딱딱한 목소리로 한태화를 부르며 끼고 있던 면장갑을 벗어서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쳐다보던 한태화가 무슨 생각이냐는 얼굴로도 착실하게 손을 내밀었다. 말없이 그 희고 긴 손가락을 잡아채자 잡은 손 위로 기운이 일렁이며 링크가 이루어졌다. 이제는 링크를 열어라, 말아라, 하는 말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폭주를 막는 가이딩을 해준 이후, 내 앞에서 태화의 링크가 막히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앞으로 누가 또 나를 좆 같이 휘둘러서 곁에 있지 못하더라도, 아니면 얘한테 또 다른 피티스트가 생겨서 나를 버리고 간대도, 나는, 이 링크가 열리는 한은 다시 이 손을 잡을 거야. 죽어도 죽게 안 놔둬.”

    “…….”

    “그게 너와 내 차이인 거 같은데.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사실 한태화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었던 건 말 그대로 운이었다. 김동원의 말대로 오성파는 중립단체였고, 정확히는 에스퍼와 가이드의 인권을 위해 힘쓰던 인권단체였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부모를 뒀다. 어린 자식에게 그런 것을 전부 이해시킬 수 없었던 엄마는 내게 놀이처럼 그 생각을 주입 시켰다. 가이드의 가이딩은 에스퍼에게 베풀어지는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고, 둘은 동등한 존재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 관계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놀이처럼 이루어진 가이딩을 통해 내게 알려주었다.

    한태화에겐 그런 존중이 필요했고, 우리 관계의 시작은 그런 우연이 맞아떨어진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혹, 이 모든 게 사실 그런 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한태화가 혼자 죽게 두지는 않겠다는 마음. 녀석이 살고 싶어 하는 한 나는 녀석을 끝까지 살릴 것이라는 마음이 달랐다. 내가 살려주고 싶을 때만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게 바로 너와 나의 차이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근데 확실한 건 난 더이상 너한테 한태화 안 맡겨. 네가 또 언제 변덕을 부려 이 녀석을 두고 가버릴 줄 알고? 그럴 바엔 죽으나 사나 내가 끼고 살아.”

    “…….”

    “그러니까 힘으로든, 마음으로든 나 이길 자신 있는 거 아니면 그만하라고. 사실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웃기잖아. 버리고 보니 남의 손에 있는 게 아까워서 그걸 꼭 빼앗아 가야 직성이 풀리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 말에 진성현이 잠시 멍한 얼굴을 해 보이다가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네가 뭔데, 네가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진성현의 말에 그때까지 얌전히 자리를 지키던 한태화가 잡히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뻗었다. ‘볼 일은 다 끝났어요?’ 하는 웃음기가 담긴 나직한 목소리 역시 귓가에서 들려왔다. 그러나 하얀 손이 진성현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런 한태화의 손을 붙잡아 막았다. 행동이 막힌 게 불만스러운지 한태화가 작게 ‘요한.’ 하고 불러왔다.

    그러나 녀석이 뭐라건 너무 싫었다. 그게 무슨 의도든지 한태화에게 진성현이 털끝이라도 닿는 게 싫었다. 상상만으로도 부글부글 속이 끓는 기분이다. 아니, 사실 이 복도에 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속은 이미 끓고 있었다.

    그래서 한태화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그 안에서 바스락대는 종이의 질감이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던 해지 합의서와 같았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맞아. 지금 난 아무것도 아니지. 심지어 한태화와도 아무 관계가 아니야.”

    “…그럼 지금 이 관계에서 빠져야 할 사람은 너 아닌가?”

    “아니, 그래서 이제 그 관계라는 걸 만들어 볼 생각이거든. 끝까지 가 보려고.”

    그 말과 동시에 주머니에 있던 것을 꺼내 잡고 있던 한태화의 손에 넘겨주었다. 그러자 멈칫하며 손을 움찔거리던 녀석이 한걸음 물러나 종이를 펼쳤다.

    종이 위에 프린트 된 글자를 읽어나가던 한태화가 꿈을 꾸는 사람처럼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요한… 이게, 이건….”

    “전속 계약서. 네가 달라며?”

    #94

    “…….”

    세가로 다시 복귀하면서부터 준비해 뒀던 전속 계약서가 이제야 주인을 찾아갔다.

    이런 분위기에서 주고 싶었던 게 아닌데. 부글부글 속이 끓는 와중에도 그게 못내 속상했다.

    착잡한 마음으로 한태화를 쳐다보는데, 방방 뛰며 기뻐할 줄 알았던 녀석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게 또 묘하게 서운해서 불퉁한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싫어? 싫으면 다시 내놓든-.”

    다시 거둬갈 것처럼 손을 뻗자 한태화가 종이를 품에 안은 채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를 피해 뒷걸음질 치는 한태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 신선한 감각에 눈을 깜박였다.

    오, 이거… 생각보다 재밌네.

    다시 한번 손을 뻗으며 다가가자 이번엔 녀석이 후다닥 뒤로 물러나 벽에 등을 박았다. 손에도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종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스락거렸다.

    “안 싫어요! 내가 왜 싫어요?!”

    “…음.”

    “무르기도 없어요! 못 물러!”

    정색하고 진지하게 소리치는 모습에 결국 작게 웃음이 터졌다. 그러자 한태화가 전속 계약서를 높이 쳐들고 복도 전등 빛에 비춰보더니 내가 먼저 서명해 놓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더듬었다. 녀석의 손가락이 여러 번 그 서명 위를 따라 움직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좀 쑥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헛기침을 하는 척 고개를 돌리는데,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던 상원이가 그제야 슬쩍 다가와 ‘눈꼴셔 죽겠네.’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진성현의 어깨를 톡톡 하고 두드렸다.

    “눈치가 왜 그렇게 없어요? 저 둘 커퀴된 지가 언젠데. 지옥 갈 거야, 저 사람들. 그러니까 괜히 더 버티다 얻어터지지 말고 방해꾼은 이만 사라집시다. 아니, 한태화가 뭐라고 다들 이러나 몰라. 트럭째 주면 트럭도 싫다고 할 판에. 쯧쯧쯧.”

    뭐래, 저 새끼가.

    “쟤 담겼으면 트럭도 귀여울 것 같은데.”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은 얼굴로 가늘게 눈을 접은 채 전속 계약서를 보고 있는 녀석을 가리키며 한 말에 상원이가 기겁을 하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야? 도? 트럭‘도’ 귀여울 것 같다고 했어요, 지금? …선배 미쳤어요? 왜 갑자기 미친 소릴 하고 그래요? 아씨, 일단 귀부터 씻으러 가야겠네. 뭐합니까? 빨리 안 따라오고. 지난번부터 느낀 건데 여기 복도는 전등부터가 재수가 없어. 아씨, 내 귀 어쩔.”

    한 손으로는 제 귀를 막고 다른 손으로는 진성현의 팔을 붙든 상원이가 빠르게 복도를 가로질러 사라졌다. 하여튼 눈치만 빨라선.

    적당한 때에 방해꾼을 치워 준 상원이의 뒷모습을 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상원이가 보기엔 나와 한태화 사이에 낀 진성현이 좀 안 돼 보였나 보다. 그럴 녀석이 아닌데도 이 불편한 상황에 굳이 나선 걸 보면. 저 등신. 지금 가면 현장 잠입 일은 확정인데. 하여튼 이상한 데서 착해 빠졌다.

    그래도 덕분에 복수의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쟤나 손재원이나, 현장에 투입 시키려면 한 2주쯤 교육이 필요했다. 상원이의 교육은 당연히 팀장인 내가 맡을 생각이고.

    있는 대로 굴려주마, 윤상원. 그때 가서도 서태후니 뭐니 하면서 까불 수 있는지 보자고.

    이를 갈며 다짐을 하다 아직도 행복해하고 있는 한태화의 모습을 돌아보았다.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렇게 진성현과의 일이 일단락되고 난 후 태화와 함께 퇴근을 했다. 내가 운전을 하는 내내 녀석의 품에는 전속 계약서가 안겨 있었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야살을 떨어댔고.

    “요한, 아까 질투한 거 맞죠? 그죠?”

    “…….”

    “으흠- 질투한 거 맞는 거 같은데. 부끄러워서 그래요? 안 부끄러워해도 돼요. 나는 요한이 질투해줘서 너-무 좋거든요”

    “…….”

    “이제야 요한이 내 마음을 좀 알겠네요. 사실 그동안 차수혁이고 연장우고, 다 마음에 안 들었어요. 요한 곁에서 알짱거리는 에스퍼라면 다 싫긴 하지만요.”

    곱게 계약서를 품에 안고 한시도 입을 쉬지 않는 녀석 덕분에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일부러 저러나? 아니면 못 본 새에 눈치를 엿 바꿔 먹었나? 저게 영 분위기를 못 읽는다.

    “다 왔어. 내려.”

    “…….”

    “뭐해, 안 내려?”

    집에 도착해서 별채와 이어지는 차고에 차를 주차한 후 시동을 끄고 안전벨트를 풀며 돌아보자 녀석이 곱게 손을 모은 채 눈만 말똥거렸다. 눈을 콱! 아오, 씨.

    “…안 내리면 나 먼저 내린다?”

    “잠깐만요, 이거 풀어 안 풀어줘요?”

    정말 먼저 내릴 것처럼 굴자 그제야 한태화가 손을 뻗어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짜증난 얼굴로 그 손을 쳐내며 녀석을 흘겨보았다.

    “알아서 풀어. 넌 손 없어?”

    “…요한?”

    “내 이름 그만 부르고, 알아서 풀라고요, 한태화씨.”

    그대로 세게 차 문을 닫고 난 후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러자 그 뒤로 급하게 차 문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빠른 발걸음 소리가 따라붙었다.

    “저기 요한, …혹시 지금 화났어요?”

    “아니.”

    “근데 왜-. 화 난 거 같은데….”

    “아니라고. 지금까지 뭐 들었어. 네 말대로 질투 중이잖아. 누가 자기 피티스트랑 다정히 서 계신 모습을 봐서.”

    “…….”

    그 말에 뒤따라 오던 한태화가 멈칫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가 금방 다시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 연신 내 눈치를 보더니 안절부절못하는 태도로 제 품에 안긴 계약서와 나를 번갈아 살폈다. 그런 것을 모두 무시한 채 현관문 앞에 도착해 익숙한 손길로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곧장 집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의 목덜미를 낚아채 입술을 붙였다.

    순간 코앞으로 다가온 옅은 갈색빛의 눈알이 곧 쏟아질 것처럼 커진 것을 확인하며 길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질투를 해줘서 좋았다고? 다신 그런 소리가 안 나오게 해주마. 흘러가는 분위기를 읽었는지 금세 눈을 반짝이며 몸을 붙여오는 한태화를 안아 다독이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였다.

    오늘 혼 좀 나보자, 태화야.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 녀석의 눈이 기대감을 담고 예쁘게 반짝였다.

    ***

    아래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려오며 침대 시트가 크게 들썩였다. 그러나 굳이 신경 쓰지 않은 채 눈을 감고 감각을 즐기다 길게 내벽을 휘젓는 손가락의 느낌에 목을 울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한 번씩 저절로 허리가 튕길 만큼 익숙해진 쾌감에 온몸이 징- 하게 울렸다. 그러자 순간 아래에서 숨을 참는 소리와 함께 애타게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 요한, 저 이러다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옅게 울음기가 깔린 목소리가 숨을 참는 사이사이로 뚝뚝 끊어졌다. 그에 시선을 내리자 아랫배 부근에 이마를 묻은 한태화가 고개를 들어 빨개진 눈으로 애원을 해왔다. 가늘어진 눈으로 그런 한태화를 바라보다 손에 들고 있던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녀석에게 빼앗아 들고 있던 전속 계약서가 잡힌 부분 위주로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 모습에 작게 혀를 찬 후 침대 옆 협탁으로 그것을 던졌다.

    그러자 살짝 풀려 흐려져 있던 눈빛이 또렷하게 바뀌며 던져진 궤적을 따라 집요하게 따라갔다. 어딜. 이 상황에도 한눈팔 정신이 남아 있다는 게 못마땅해 무릎으로 녀석의 뺨을 밀어 내 쪽을 보게 만들었다.

    “집중해야지, 태화야? 저딴 종이 쪼가리 말고, 나한테.”

    “…종이 쪼가리라니… 그렇게 말하지, 읏, 요한, 이, 이러다 진짜 좆이 터지겠어요.”

    울 것처럼 찌푸려진 얼굴을 감상하다 그 말에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밑둥 부근에 사정방지 링을 찬 커다란 성기가 퉁퉁 부어올랐다 싶게 발기해 있었다. 옅은 색의 예쁜 성기는 여전히 질릴 만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조금만 작았어도 좋았을 걸, 쯧.

    “안 터져. 터질 거면 진작 터졌겠지. 아, 그래도 터지면 사정은 한번 하고 터지겠네. 그치?”

    벽에 걸린 시계의 시간을 확인하면서 실소를 터트리자 아니라는 듯 아랫배에 묻은 이마를 문지른 한태화가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그러느라 발기해 있던 성기에 녀석의 뺨이 닿아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기다란 손가락을 물고 있던 아래 역시 무섭게 조여들었다.

    “아-!”

    “…요한,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손가락을 조이는 내벽의 움직임에 녀석이 그 안에서 가위질을 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세 개나 물려있던 안이 길게 휘저어지자 위아래로 들썩이던 허리가 옆으로 비틀렸다.

    “읏-.”

    “아, 요한, 흣, 진짜 터질 것 같은데…. 잘못했어요, 네? 제가 잘못했어요.”

    허리를 뒤틀며 발버둥 치느라 접힌 무릎이 녀석의 성기를 문질렀다. 이미 발기할 대로 발기해서 내내 시각적인 자극을 당한 성기는 사정방지 링을 한 채로도 찔끔찔끔 선액을 흘리며 묽게 젖어있었다.

    “뭘, 아, 뭘 잘못- 으, 손 좀 멈, 아!”

    “요한, 아, 요한. 죽을 것 같아요. 진짜, 죽겠어요, 이러다, 흣!”

    결국 참다 못한 녀석이 아래를 넓히던 손을 거칠게 빼낸 후 하체에 대고 무작정 허리를 치대기 시작했다. 심각한 얼굴로 미간을 잔뜩 찌푸린 한태화가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허리를 올려붙일 때마다 내 몸도 거칠게 흔들렸다. 그 감각에 앓듯이 신음을 뱉으며 흔들리는 시야 사이로 녀석을 노려보자, 한태화가 손을 내려 링을 벗겨낼 것처럼 움직였다. 그래서 얼른 녀석의 손을 잡고 몸을 뒤집었다.

    #95

    “아- 흣!”

    “후우, 이거 생각보다, 나도 힘드네.”

    “요하안-. 읏, 으읏-.”

    “태화야.”

    “흣-.”

    “그거 빼면 전속 계약서도 확 찢어버린다?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까? 내가 저게 왜 저러나 하고 널 피하던 것부터 다시 시작해?”

    그 순간 한태화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멎었다. 링을 벗겨내려 제 아래를 헤집던 손도, 가쁘게 숨을 쉬던 것도 멈춘 채 한태화가 무섭게 굳은 얼굴로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

    “왜, 뭐?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요한, 아무리 화가 나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는데. …내가 꿈도 야무지단 소릴 다시 해야겠어요?”

    지금껏 신음을 참으며 끙끙대던 놈답지 않게 살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그래 봤자 싸고 싶어 안달인 아래를 바짝 세운 채였다. 이 상황에서 분위기를 잡아봐야… 음, 역시 얼굴이 무기다. 그래도 분위기가 나는 걸 보면.

    “화가 났는데 할 말 못 할 말 가리는 게 더 웃기진 않고? 내가 질투해서 좋다며? 그러니 즐겨. 지금 난 질투로 눈이 돌은 가이드니까.”

    “요한!”

    “시끄러. 벌 받고 있는 주제에 어디서 큰 소리야. 조용히 남은 벌이나 마저 받아.”

    “요- 아!”

    꺼덕이며 서 있는 성기를 손에 쥐고 그대로 입구에 맞춘 후 허리를 내렸다. 그러나 언제봐도 참 무기다 싶게 흉악한 것을 한 번에 넣기란 쉽지 않았다. 악하고 올라오는 비명을 간신히 삼키며 허리에 힘을 주자 반사적으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악, 씨발, 이 망할 콜라병! 어디 축소술 같은 거 없나? 내가 내일 당장 그거부터 알아본다!

    “아윽- 미치겠네. 그렇게 풀어줬는데 왜, 아, 진짜. 악!”

    그래도 난 혼잣말할 정신이라도 있지, 한태화는 그대로 고개를 꺾은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녀석의 것을 품어보려 안이 저절로 조였다 풀리며 입구마저 빠끔거리고 있었으니 그 안에 들어간 녀석은 정말로 죽을 맛일 거긴 했다. 근데도 사정방지 링 때문에 제대로 쌀 수도 없을 테고.

    예상대로 식은땀까지 흘리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인 녀석이 또다시 애원해 오기 시작했다.

    “요한, 아, 제발, 그만- 읏, 잘못했어요! 잘못, 흣!”

    “우으, 야, 누가 들으며, 후, 내가 너한테 박는 줄, 읏-.”

    “요한! 아픈, 아파요! 진짜 터져요-.”

    “…으- 좀, 알아서, 읏, 움직여봐. 나도 더는 못 하겠-.”

    성기에 맞춰 빠듯하게 벌어지던 입구가 사정을 막기 위해 묶어 놓은 링 위에서 더는 벌어지지 않아 진입을 멈추었다. 아프기도 아파서 허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움직임을 멈춰버리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내젓던 한태화가 잔뜩 굳은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나 이내 눈을 희번덕거리며 허리를 잡아 푹- 하고 끌어내렸다.

    “악!”

    아파! 소름이 비죽 올라올 만큼 아파서 힘이 들어간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사이 한태화가 아래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더니 새빨개진 눈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허리를 들썩였다.

    “…요한, 이거, 벌, 언제 끝나요? 네? 잘못, 아, 제가 잘못 했, 읏, 어요.”

    “아- 아!”

    툭, 툭, 느릿하게 쳐올리는 허리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눈꺼풀 안으로 튀는 빛무리에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녀석의 물음에 어렵게 답을 했다.

    “나, 한번, 쌀, 읏- 아!”

    이럴 땐 또 귀신같이 눈치가 빠른 녀석답게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내 것을 손에 쥐고 세게 문지르며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체 전체가 점차 뜨겁게 달아올랐다. 녀석이 쥐고 있는 아래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열기에 입에서 새어 나오는 숨 역시 짧게 짧게 끊어지며 뜨겁게 쏟아졌다. 녀석이 느릿하게 쳐올리는 허리에 조금씩 자세가 무너져 삽입도 계속해서 깊어졌다.

    그리고 그 깊어진 삽입에 뭉툭하고 거대한 성기 끝이 느끼는 부분을 연신 문질러대며 툭툭 대가리를 가져다 박았댔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 어설픈 손길에 사정을 할 만큼 뒤에서 느껴지는 쾌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아―!!”

    “요한, 살려줘요, 미치겠어. 이러다 진짜, 좆은 터지고, 머리는 돌겠어요.”

    사정을 하는 사이에도 연신 아래를 들락날락하는 성기 탓에 몇 번이나 전기가 오른 사람처럼 몸을 떨며 숨을 집어삼켰다. 제가 쌀 때까지 계속해서 허리 짓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그에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얼른 녀석의 허리에서 내려와 링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지금껏 참아왔던 것을 표출이라도 하듯 사정액이 턱까지 튀어 올랐다.

    “…….”

    “하아, 하아-.”

    “무슨 양이….”

    턱과 뺨까지 튄 것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아래를 보자 그 아래는 더 난장판이었다. 까만 음모는 희끗하게 젖어 야하기 그지없었고, 단단한 가슴도 흰 정액을 묻힌 채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시선을 빼앗았다.

    이미 한 번의 사정으로 죽어 있던 성기가 단번에 설 만큼 색스런 모습에 아쉽게 침을 삼키며 위기감에 얼른 허리를 뒤로 물렸다. 자칫 잘못하면 오늘 밤은 밤샘 섹스 확정이다. 밤새 정기를 쪽쪽 빨릴 게 아니라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저게 꼭 생긴 걸로 사람을 낚는다니까?

    그런 생각에 자꾸만 내려가려는 시선을 녀석의 얼굴로 고정시킨 채 어색하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정작 위기감을 준 녀석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한태화는 여전히 발씬 거리며 질금질금 액이 새어 나오는 성기를 손으로 한번 추켜올려 닦을 뿐, 달려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 멍해 보이는 모습에 뒤로 물러나던 것을 멈추고 힐끔 눈치를 살폈다.

    …내가 좀… 심했나? 으음.

    “그….”

    “…….”

    “이제는… 좀, 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두 번은 안 봐준다?”

    완전히 넋이 나간 얼굴로 숨만 몰아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죄책감이란 게 들것 같기도 했다. 너무… 오래 괴롭혔나?

    미안한 마음이 슬슬 고개를 쳐드는 기분에, 말없이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는 녀석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리고 물렸던 상체를 가까이 붙인 채 쪽 하고 입을 맞췄다. 벌이라는 이유로 지금껏 입도 한번 맞춰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가이딩 할까?”

    눈치를 살피며 녀석의 가슴에 기대어 묻자 한태화가 고요히 가라앉은 시선을 내렸다. 잠시 후 녀석에게서 섬뜩하게 가라앉는 목소리가 거칠게 흘러나왔다.

    “근데…, 그럼 내가 요한 때문에 질투가 나도… 이렇게 하면 돼요?”

    “아니? 당연히 안 되지? 이건 내 방법이니까, 넌 딴 방법 알아봐야지?”

    “…….”

    미쳤냐? 이 성고문에 가까운 걸 내가 당하게? 그런 마음에 한껏 눈을 치켜뜨자 한태화가 피식하고 웃으며 입매를 길게 늘어뜨렸다.

    “딴 방법…이라…. 재밌겠네요.”

    무섭게 왜 혼잣말을 중얼거려. 음산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녀석의 몸 위로 기어 올라간 후 그 위로 몸을 붙였다. 그리고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의미로 가슴을 턱으로 꾹- 하고 눌렀다.

    얘가 그새 또 채널이 바뀌었다. 귀엽게 아파요, 터져요, 따위의 말을 하던 한태화는 사라지고, 본래 성격의 한태화가 길게 늘어진 눈매로 사람을 집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걸 또 어떻게 달래주지? 기선제압을 하려다 오히려 제압을 당하게 생겼다.

    “우리 귀엽고 애교 많던 태화는 어딜 갔을까…?”

    “글쎄요…. 좆이 터져서 죽었나?”

    “…야, 왜 그렇게 성격이 이랬다 저랬다야. 사람 적응 안 되게.”

    등 뒤로 소름이 죽죽 하고 올라 불만스럽게 중얼거리자 녀석이 웃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요한은 약한 사람한테 약하니까요. 거짓으로라도 약한 척하면 그게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져주잖아요.”

    “그걸… 알면서 이용해 먹었어? 진짜 나쁜 놈이네.”

    “그래서 싫어요?”

    길게 늘어진 눈매로 사르르 웃던 녀석이 손을 들어 뺨을 쓰다듬는다. 어디 한번 싫어할 테면 싫어해 봐라 라는 태도로 뺨을 감싼 녀석이 부드럽게 얼굴을 훑는 것을 느끼며 졌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건 아닌데, 나쁜 놈이 내 취향이었던 건가- 싶어서. 어쨌든 계속 그렇게만 해. 그럼 적당히 봐줄 테니까.”

    “그런 것치곤 오늘은 안 봐주던데요. 계속 잘못했다고도 했는데…. 그리고 사실 내가 진성현 새끼랑 뭘 한 것도 아니잖아요. 손도 쳐냈고, 접촉도 없었고. 요한은 차수혁 새끼랑 손도 잡았으면서…. 다른 새끼 가이딩도 해주고, 임시 가이드 명령받은 놈이랑 공룸도 가고…. “

    “아니, 그건 다 사정이…. 가, 가이딩이나 할까, 태화야?”

    말을 하면 할수록 불리해지는 기분에 얼른 말을 돌리며 어색하게 웃는데, 놈은 그 표정 그대로 시선을 가라앉힐 뿐이었다. 그 시선에 또다시 번뜩하고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녀석의 위에서 물러나려고 슬금슬금 내려오는데,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던 놈이 내 허리로 손을 올리더니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졸지에 다시 한태화의 아래로 몸이 내려갔다.

    “으앗-.”

    “아뇨. 일단 섹스부터 한 번 더 해요. 제대로 못 했잖아요, 우리.”

    “뭐? 무, 무슨, 할 거 다 했- 읏-!”

    “다 하긴요. 아직 멀었는데.”

    순간 한번 벌어졌던 아래가 또다시 끝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삽입은 쉽지가 않아 성기는 반밖에 들어오질 못했다.

    아니지, 반이나 들어온 거지. 저 무식하게 큰 게! 억- 하고 입을 벌린 채 어깨를 띄우며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바르르 몸을 떨자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한태화가 음산하게 웃었다.

    “노력한다고 하는데…, 역시 요한한테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매번 이렇게 부족해서 어쩌죠? 죄송해요. 제 마음, 아시죠?”

    “읏- 모, 몰라! 그, 그만-.”

    “노력할게요. 계속, 계속. 그러니까 다른 새끼 좀 만나지 마요. 말도 섞지 말고요, 네?”

    아니야, 노력하지 마! 제발 노력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숙맥인 채로 살아!

    소리 내지 못한 진심이 목 안으로 삼켜지며 길게 신음이 나왔다.

    매번 질투로 사람을 잡길래 너도 한번 당해봐라 싶은 마음으로 저질렀던 일인데,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이래서 애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되는 건데….

    원래 애들이 나쁜 건 참 빨리 배우는 법이다.

    #96

    명동에서도 제법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환전소는 화려한 도심 거리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이 골목 자체가 명동의 분위기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골목으로 들어선 앳된 얼굴의 두 사람도 메인 스트릿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이런 어두운 골목과는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아 이질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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