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현재 서요한 가이드는 어디 있습니까!”
누군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그제야 팀장님이 슬쩍 웃음을 지어 보인다. 드디어 자신이 무대에서 내려올 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곳에 와 있습니다. 이후 브리핑은 서요한 가이드가 직접 이어갈 겁니다.”
그 순간 강선배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쳤다.
“네 차례네. 가라.”
“예, 다녀올게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선배.”
“서선배, 화이팅! 떨면 평생 놀릴 거예요!”
“그래. 너도 고생했어. 다녀올게.”
양손을 불끈 쥐어 보이는 상원이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 표정을 가다듬고 빛이 새어 나오는 입구로 걸음을 돌렸다.
밝게 빛나는 무대 위, 그곳에 서서 연기를 하는 연기자처럼 주변을 크게 둘러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마이크 앞으로 다가가자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 기세가 무척 사납고 흉흉했다.
순간 흠칫하며 뒤로 물러날 뻔한 발에 힘을 준 후 어렵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진행 요원의 조언대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난 뒤, 한태화가 했던 것처럼 마이크로 다가가 상체를 기울였다.
“안녕하십니까. 서요한이라고 합니다. 현재 저에 대한 오해와 루머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직접 해명을 하기 위해서긴 하나 예고 없이 이 자리를 빌리게 된 점,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마이크 뒤로 한걸음 물러나 다시 한번 허리를 숙여 보이자 회견장 안의 사람들이 조금씩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내 이름을 불러대는 기자들을 바라보다 아직도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김하용 기자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친 남자가 움찔하고 몸을 떠는 것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짓자 뒤에서 익숙한 한숨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른 사람한테 웃어주지 마요.’ 하는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하여튼 상황을 못 가린다니까, 저 새끼는.
“죄송하지만 질문은 끝나고 받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제가 드릴 이야기에 조금만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무척 충격적일 수 있고, 믿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로써, 국민분들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일이기에 이렇게 부득이하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말이 훗날 가짜 오성파 게이트라고 불리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
세간이 연일 시끄러웠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폭로 때문이었다.
밤나비와 샐러맨더가 자수를 한 다음 날, 세가에서는 사건 발표를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그 기자회견 이후 세상이 시끄러워진 이유는 자수한 밤나비나 샐러맨더 때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밤나비의 아들로 밝혀진 나 때문도 아니었다.
지금껏 오성파의 짓이라고 믿어 왔던 일들이 사실은 가짜 오성파에 의한 일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기사들도 모두 드라마틱 했다. 그동안 세가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온 내가 어느 날 밤나비가 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그를 회유하여 자수하게 만들었다는 기사가 난 것이다. 물론 한태화가 언론사와 짜고 일부러 낸 기사였다.
그러나 역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가짜 오성파와 관련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물꼬를 튼 SG란 이름의 마약에 관한 기사로 모든 포털사이트가 시끄러웠다. 김동원이 넘긴 자료를 바탕으로 한 보도 자료들이 매일같이 TV 화면을 타고 있었다.
세가의 임시 기관장인 한태화는 오성파 사건의 전담팀이었던 특별 청산팀을 특별진상규명팀으로 변경하여 새로운 가짜 오성파 전담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줄여서 특진팀이라 불리는 곳의 사무 지원 팀장이 바로 나였다.
물론 그 파격적인 승진에 여러 말들이 나왔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말들은 없어졌고, 큰 무리 없이 일이 진행됐다. 오성파의 밤나비를 자수시키고, 가짜 오성파 사건을 알아내 폭로한 내가 사건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의의 상징이라나, 뭐라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의의 상징이라니. 덕분에 팀장님은 지금도 양아치 새끼가 국민들을 속였다고 노려보기 일쑤였다. 나라고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뭐. 아- 억울해.
“일어났어요?”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기사를 검색하고 있는 사이 물소리가 그치고, 욕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목욕 가운 하나만을 걸친 한태화가 유독 얼굴을 빛내며 침대로 다가왔다. 그게 가이딩을 빙자해 내 생기를 빨아먹은 탓인지, 막 씻고 나와서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르겠다.
#89
“어. 근데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야 하는데? 얼추 일도 정리됐는데, 이제 그만 내 집으로 가면 안 될까?”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언제 체포 영장이 떨어져 잡혀갈지 모른다며 무턱대고 제집으로 끌고 왔던 한태화가 그 말에 아랫입술을 삐죽이며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가버린다.
“아직 완전히 다 정리된 거 아니잖아요.”
“설마 나보고 가짜 오성파 놈들이 잡힐 때까지 여기서 지내란 소린 아니지?”
옷장 안에서 하얀 셔츠를 꺼낸 한태화가 아무렇지 않게 목욕 가운을 벗고 나체로 셔츠를 입었다. 그 모습에 대놓고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답을 기다렸다. 이제 와 벗은 몸에 얼굴을 붉힐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안 돼요?”
나를 따라 인상을 찌푸린 한태화의 말에 기가 막혔다. 안 되냐고? 당연히 안 되지! 뭔 당연한 말을 처하고 있어?
“그럼 되겠냐, 이 새끼야?”
“왜 안 되는데요?”
임시 기관장이 되고 나서부터는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하게 된 한태화가 셔츠에 팔을 끼우고 단추를 잠그며 불퉁하게 뺨을 부풀린다. 그 모습에 애먼 가슴만 주먹으로 두들겼다. 환장하게 답답해서.
“그야-!”
똑똑-
정중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입을 다물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런 나를 흘겨보던 한태화가 차갑게 대답했다.
“예.”
“사모님께서 준비 끝나셨으면 본채로 오라세요. 아침상 다 봐놨다고요.”
“출근 준비 끝나면 가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그렇게 중단됐던 대화는 그 이후로도 잠시 동안 이어지질 않았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야 긴장을 풀고 한숨을 내쉬자 한태화가 삐친 얼굴로 비스듬히 섰다. 그래 봐야 하체는 헐벗었고, 셔츠만 입은 채라 꼴이 우스웠지만.
아니, 보통 팬티부터 입지 않나?
“왜 안 되냐니까요?”
“이 미친놈아 그걸 말이라고…, 불편해 죽겠으니까!”
그렇다. 한태화가 끌고 온 곳은 녀석의 집이었다. 그러니까… 녀석의 가족들이 전부 살고 있는 그 으리으리한 본가 집 말이다.
하, 세상일이라는 게 참, 내 마음대로 되질 않는다.
***
이곳에서 지내게 된 후, 매일 아침 본채로 가서 아침을 먹었다. 한태화가 원래 지내던 방은 별채로 따로 떨어져 있어 지내기에 불편한 점은 없었으나, 아침저녁으로 이어지는 식사자리는 무척 불편한 자리였다.
지난 저녁 식사자리를 망친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건… 내 지나친 망상일까?
“저희 왔어요.”
“어서 오렴. 와서 앉아. 요한이도 잘 잤니?”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 회장님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사모님의 환대에 어색하게 웃어 보이다 상석에 앉아 계신 회장님을 향해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자, 역시나 아침마다 듣고 있는 잔소리가 날아왔다.
“편하게 할아버지라 부르래도. 그거 부르기가 그리 힘들어?”
“…음, 예, 뭐. 다음에요.”
머쓱하게 말을 넘기며 지정된 자리로 가서 앉자, 그 옆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한태화가 앉았다.
“할아버지, 요한한테 너무 부담 주지 마세요. 그러니까 자꾸 나간다는 소리를-.”
“-아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할아버님!”
헛소리를 하려고 드는 입을 막은 채 어색하게 웃다 한태화를 노려보았다.
너 정말 이럴래? 그런 눈빛으로 노려보자, 한태화가 새치름한 얼굴로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 저거 아직도 삐쳤어?
“요한아, 우리가 부담스럽니? 그러지 말라니까….”
“아뇨,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그… 아침에 태화랑 말다툼을 했는데, 그거 때문에 아직도 좀 꽁해있나 봐요. 야, 미안하다니까. 화 풀어, 응?”
내 앞으로 아침상을 차려준 사모님이 시무룩한 얼굴로 서운해하는 모습에 한태화 놈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퍽퍽 찔렀다.
일단 휴전하자, 휴전.
그 의미를 알아들었는지 작게 피식대며 웃던 녀석이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제 앞에 놓인 빵을 뜯어 남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그러니까, 내 입가로 말이다.
“화는 무슨. 내가 요한한테 어떻게 화를 내요. 자, 요한, 아- 해요. 아-.”
아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빠르게 눈을 굴려 우리만 보고 있는 가족들을 돌아보다 어색하게 입매를 끌어올렸다.
“나 손 있다. 내가 먹을게?”
“안 먹을 거예요? 역시… 아침에 말한 대로 우리가 불편-.”
“이야-, 빵 맛있겠다. 너도 어서 먹-, 씹….”
이 새끼가 미쳤나 싶어서 녀석의 발을 밟으며 얼른 빵을 받아먹었다. 일부러 크게 입을 벌려 빵과 함께 녀석을 손을 씹었는데, 하마터면 이가 나갈 뻔했다.
개새…. 손가락 강화했어, 이 새끼.
씨발이라고 내뱉을 뻔한 입을 손으로 가린 채 한태화를 노려보자, 개새끼가 생글생글 웃으며 ‘맛있어요? 또 먹을래요?’ 하고 가증을 떨어댔다.
넌 출근하고 보자.
“아침부터 아주 사이가 좋네? 애인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그때 마침 기지개를 켜며 식당 안으로 들어선 한태현이 아직도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맞은편 식탁으로 가서 앉았다. 하품을 쩍쩍 해대며 불량한 자세로 앉은 아들의 모습에 눈꼬리가 뾰족해진 사모님이 그의 등짝을 세게 내리쳤다.
“제대로 앉아서 먹어!”
“아, 아파요-. 맨날 나만 미워해, 나만.”
“조용히 안 해? 먹고 얼른 출근이나 해.”
“몰라, 몰라. 오늘 그냥 반차 쓸 거예요. 내가 쟤 때문에 일에 치여 죽을 지경이라고요오-.”
한태현이 우는 소리를 하며 한태화를 흘겨보았다. 일이 많아 제대로 못 잤는지 눈 밑이 거뭇해서 그 기세가 나름 사나웠다.
“재심 청구가 얼마나 예민한 사안인데, 그거 하나 빨리 처리 못 하냐고 구박이나 하고…. 내가 서러워서 정말.”
그 말에 수저를 들려던 손을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현재 한태현은 밤나비의 변호인을 맡고 있었다. 이미 1심 재판이 확정되어 끝이 난 후라 그걸 뒤집을 방법이 재심 청구밖에 없었고, 한태화가 한태현에게 그 사건을 맡아달라 직접 부탁을 했다. 그리고 그 재심 청구는 가짜 오성파 사건까지 모두 뒤집어쓴 채 재판을 받았던 밤나비가 그 오명을 벗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절차였다.
예민한 사안이라는 한태현의 말에 슬쩍 눈치를 보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 정말 죄송-.”
“요한, 이것도 먹어봐요, 자.”
“웁, 야!”
갑자기 입안으로 욱여넣어 진 빵 조각에 놀라 사납게 눈을 치켜떴지만, 한태화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쟤가 요새 좀 심하게 기세가 등등하다.
임시 가이드를 해지하자고 했던 날 이후부터, 묘하게 관계가 좀 역전된 것 같은 기분에 슬슬 불안감이 피어난다. 나 이러다 잡혀 사는 거 아냐?
“그리고 요한, 형한테는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형들은 내가 뭐 부탁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좋아서 하는 일이니 미안해할 것도 없고요. 대신 나한테는 고마워해도 돼요. 미안해해도 되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저게 꼭 나한테는 생색을 내네. 그러나 차마 녀석의 가족들 앞에서 야단을 칠 수가 없어 그런 개소리를 듣고도 빵이나 질겅질겅 씹으며 노려만 보는데, 그런 나를 대신해 거칠한 얼굴의 한태현이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왜 지가 생색이야….”
“됐으니까 형은 부탁한 것들이나 빨리 끝내. 능력이 그거밖에 안 돼?”
“저게 진짜, 오냐오냐하고 다 해주니까 이게 쉬운 일인 줄 아네? 밤나비 사건이 좀 큰일이냐? 매스컴도 달라붙을 사안인데, 그게 빨리해달라고 하면 짠- 하고 끝날 줄 알아?”
하나하나 옳은 말이었다. 일을 맡긴 주제에 빨리 끝내라고 채근하는 한태화는 내가 봐도 좀 얄미웠다. 고마운 마음과 함께 심히 공감 가는 말들만 내뱉는 한태현에게 조용히 내적 친밀감을 키우고 있는데, 묵묵히 식사만 하고 계시던 회장님이 작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젊은 게 어디서 자꾸 엄살이야. 기껏 돈 벌어서 재벌 3세 만들어 줬더니, 그거 하나에 빌빌대? 돈은 뒀다 뭐에 써? 국 끓여 먹을 게냐? 돈을 풀어, 돈을. 돈 있고, 빽 좋은 놈이 그거 하나 빨리 못 해주고 앓은 소리는. 쯧쯧쯧.”
“…법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에요, 할아버지.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차마 할아버님께 대들 수는 없는지 무척 억울한 표정의 한태현이 변명하듯 말을 꺼내보았으나, 옆에 앉아 계시던 사모님에 의해 그 변명 역시 무참히 짓밟혔다.
“엄마가 알아봐 줄까? 나 아는 사람 보니까 쉽게 쉽게 하던데?”
“…아, 엄마…. 엄만 좀 제발, 그만 알아봐요. 엄마 쪽 외가가 법조계 가문인 거 다 알거든요? 그러니까 쉽게 쉽게 하는 거지! 내가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어머, 얘는. 내가 언제 너 능력 없댔니? 괜히 찔리니까 큰소리치는 거 봐.”
“와하…. 내가 앓느니 죽지…. 나 밥 안 먹어!”
“세상에, 너 낳고 미역국 먹었던 게 후회되려고 한다, 얘.”
사모님이 뭐라든 완전히 삐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던 한태현은, 그러나 금세 다시 자리에 앉아야만 했다. 지금껏 과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계시던 한태화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한태현, 앉아.”
“…아버지.”
“엄마한테 대들지 마라.”
“…….”
“태화 일도 빨리 끝내주고.”
“…예, 예. 제 잘못이죠. 다 능력 없는 제 잘못입니다.”
그렇게 무능함의 상징이 된 한태현이 모든 걸 포기한 모습으로 고개를 처박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정작 이 일의 발단이 됐던 한태화는 계속해서 빵을 찢어 내 입에 넣어주며 ‘이번엔 강화했게요, 안 했게요?’ 따위의 말이나 지껄여대며 맞춰보라고 성화다.
정말 심하게 개성이 강한 가족들이었다. 아주 상식적이고, 매우 평범한 일반인인 나로선 감히 끼어들 엄두가 안 날 만큼 말이다.
#90
불편하지만, 어쩐지 묘하게 익숙해지고 있는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오자 한태화가 차를 끌고 왔다. 운전석에 앉아 내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며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안전벨트를 매어 주는 척 가까이 다가와 뽀뽀를 쪽 하고 남긴 한태화가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요사이 매일 같이 있는 일이라 나 역시 편하게 조수석 시트로 몸을 기댄 채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차를 몰던 녀석이 문득 입을 열었다.
“특진팀 일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아니.”
운전을 하느라 전방을 주시하던 한태화의 시선이 잠시 내 쪽을 향하는가 싶더니 다시 앞을 향한다. 그 모습을 창틀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보고 있다가 인상을 조금 찡그렸다.
특진팀이 만들어지고 난 후, 나와 상원이는 특진팀 전담으로 차출되었다. 나는 특진팀의 사무 지원팀 팀장으로, 그리고 상원이는 사무 지원 및 특진팀 전담 보조 가이드로 차출된 것이다.
상원이는 B등급의 가이드였다. 하도 일을 안 하고 뺀질거려서 쌓은 실적이 없다 보니 지원 3팀에 왔을 뿐, 원래라면 지원 2팀이나 1팀으로 갔어야 할 나름의 우수한 인재였다.
그런 상원이를 포함해서 지원 2팀과 지원 1팀에서 나온 사무 지원팀 팀원들은 요사이 향정신성의약품 중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는 SG의 제조처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래야 가짜 오성파의 자금줄이 좀 보일 것 같아서. 그러나 암시장에서만 거래되는 SG의 제조처는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잠시 조사가 중단된 상태였다.
“샐러맨더는 만나 봤어요?”
“응. 지난주에 감찰팀으로 면회 가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놈도 육성파에 오래 있던 게 아니라서 잘 모르더라고. 원래 약을 하던 녀석도 아니니까. 그래서 말인데, 태화야.”
밤나비와 김동원은 탈옥 이력이 있다 보니 구치소가 아닌 감찰팀 내부에서 따로 보호관찰을 받고 있었다. 능력자들이라 감옥 수감시 다시 한번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짜 오성파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 유죄 판결에 대한 진정성 문제도 불거졌고.
“요한이 ‘태화야.’라고 부르면 좀 긴장되던데.”
“…….”
“말해 봐요. 무슨 문제 있어요?”
“SG의 제조처 말이야, 그거 알아보려면 유통처를 알아봐야 할 것 같고, 그럼 장우를 한번 만나보긴 해야 할 거 같은데….”
“장우? …아. ‘그’ 친구요?”
“…친구였었지. 그걸 꼭 알아줬으면 좋겠네.”
말투가 묘하게 날카로워진 것을 느끼며 눈치를 살피니 녀석이 운전대에 올려둔 손가락을 톡톡 내리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에 안 드는 게 분명했다. 하긴 연장우 얘기에 당장 퍽룸인지 톡룸인지로 가자고 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었다.
“요한이 직접요?”
“아니, 굳이 내가 만날 필요는 없지. 일단 특진팀 사람을 보낼 생각이긴 한데….”
“제가 싫다고 하면 안 만날 거예요?”
앞을 보고 있던 녀석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맞춰오는 것을 바라보다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니.”
“…그럴 거면 뭐하러 물어봐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불퉁하게 볼을 부풀린 녀석이 아랫입술을 내밀고 삐죽거린다. 그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짓다 웃는 것을 감추려 턱을 괴고 있던 손으로 입 부근을 가렸다.
저게 자꾸… 갈수록 귀여워져 큰일이다. 실없이 웃음만 많아지고.
“음, 너 삐치지 말라고?”
“……이미 삐쳤는데.”
삐치지 말라는 한마디에 곧장 풀려 놓고 아닌 척은.
어느새 세가의 본관 주차장에 도착한 차가 멈추어 섰다. 부풀어 있던 한태화의 뺨도 도로 홀쭉해져 있었다. 아랫입술만 불룩하게 내민 채 입을 삐죽이던 녀석이 안전벨트를 풀며 곧장 상체를 숙여왔다. 그러고는 내 안전벨트를 풀어주는 척하며 또다시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춘다. 금세 풀린 분위기에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자 녀석도 봐줬다는 듯 선심 쓰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대신 절대 둘이서만 만나진 마요. 만날 거면 나 꼭 부르고요. 알았죠?”
“…그래, 알았다. 그리고 그전에 암시장 쪽으로 사람 하나 보내볼 생각이야. 정팀장님께 전달받았지?”
“네, 보고 받았어요. 근데 그런 보고는 요한이 와서 해주면 안 돼요? 나도 특진팀에서 요한이랑 같이 일하고 싶은데…, 거기 현장팀 팀장 자리가 원래 제꺼라고요.”
아침부터 왜 그런 무서운 소릴. 요즘 들어 같이 있을 때마다 뭔가 잡혀 지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회의감마저 들고 있는데.
“헛소리 말고, 오늘도 일이나 열심히 합시다, 임시 기관장님?”
“-칫.”
스물다섯이나 처먹은 녀석이 칫은. 길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니까 저런 게 자꾸 귀여워 보여 큰일이라고….
***
출근하기 싫다고 칭얼거리며 달라붙어 오는 녀석을 잘 달래 보낸 후, 본관 3층에 있는 특진팀 사무실로 향했다. 원래 오성파 전담팀이 있던 곳이 진상규명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출근해 있던 팀원들이 반갑게 아침 인사를 건네왔다. 따라서 인사를 마친 후 자리로 가자 심술 난 얼굴의 상원이가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요놈 봐라? 한쪽 눈썹이 삐죽하게 올라갔다.
“넌 이제 인사도 없냐?”
“…오셨어요.”
“응, 그래. 이런 게 엎드려 절 받기인가?”
“아, 뭐요. 괜히 시비 걸지 마세요. 선배 얼굴 보기 싫단 말이에요.”
약하게 미간을 찌푸린 녀석이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둔 채 새침하게 흥흥거린다.
쯧쯧쯧. 아직도 삐쳐있네, 저거. 이제 그만 포기할 때도 됐는데. 이상한 데서 고집을 부린다.
“아직도 삐져있어?”
“…아, 진짜! 그러니까 인우 선배나 세현 선배를 데려올 일이지, 왜 하필 절 데리고 오냐고요! 일이 너무 많잖아요, 일이!”
양손으로 머리를 마구 휘저은 녀석이 까치집이 된 머리로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침마다 보아온 익숙한 광경이기에 출근한 팀원 중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저거 또 시작이라고 웃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그럼 지원 3팀에서 팀장님이랑 내가 빠지는데 누굴 데려와? 우리가 없어도 지원 3팀은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그나마 제일 할 일 없는 애를 데려와야 선배들한테도 덜 미안하지. 그러게 일 좀 열심히 하지 그랬어.”
“아아악! 저 악마! 그때 도와주는 게 아니었어!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예, 예. 악마 같은 선배 둬서 참 좋으시겠어요. 근데 그 악마 같은 놈이 이젠 네 상사기까지 하네? 그럼 뭐 좀 느끼는 거 없을까? 꼬박꼬박 공손히 인사도 하고, 말대꾸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 그런 거.”
“이… 이, 서태후!”
“…….”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친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흘겨보자 상원이가 씩씩대던 얼굴로 용감하게 ‘뭐요, 내가 뭐 틀린 말 했나?’라는 듯 턱을 치켜들었다.
그래, 서태후.
서달기 후 복직한 나를 두고 또다시 새로운 별명이 만들어졌다. 서데렐라와 서달기를 이은 ‘서’ 시리즈의 완결작, 서태후. …어떤 새낀지 별명 만들고 다니는 새끼는 잡히면 죽인다, 진짜.
“…손가락이 향해선 안 될 방향을 향하기 전에 치워라.”
이를 악문 채, 경고하듯 말을 내뱉자 꼬깃- 하고 손가락을 접은 녀석이 우는 척을 하며 책상 위로 엎어졌다.
“으흑, 못됐쪄! 나빠쪄! 요정이는 너무 불쌍해. 흑흑.”
“요정은 무슨. 요괴면 모를까.”
그 애처럼 구는 모습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짜증 난 속을 다스리고 있는데, 문제는 이 팀 사람들이었다.
“아이고, 서팀장님이 또 우리 요정씨를 괴롭히네. 요정씨 울지마.”
현장팀 사람인 박지환 에스퍼가 상원이의 어깨를 다독여주더니 들고 온 커피를 책상 위로 놔주었다. 그러자 빼꼼히 고개를 든 윤상원이 커피를 양손에 쥐고 빨대를 쪽쪽 빤다. 당연히 운 티는 하나도 나지 않았다.
아, 미치겠네. …대체 저걸 왜 받아주냐고!
“팀장님, 요정씨 좀 괴롭히지 마요.”
지원 1팀에서 차출된 김영민 가이드가 상원이의 편을 들며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다들 윤상원의 헛짓을 반쯤 재미로 여기고 즐기고 있었다. 이건 뭐 거의 마스코트 내지는 심심풀이 땅콩이다.
“요정씨 또 우네. 요한 형이 또 괴롭혔어요?”
막 출근을 해서 제 자리로 가 컴퓨터를 켜던 차수혁조차도 상원이 놈을 요정씨라 부르며 이 짓에 같이 놀아나고 있었다. …차가운 눈길을 함께 보낼 동지가 없으니 내가 이상한 사람 같잖아. 외눈박이 세상에 나온 양눈박이가 된 기분이다.
…이게 왕따인가? 직장 내 따돌림?
그렇게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팀장님이 들어왔다. 특진팀의 총괄팀장으로 승진한 우리 정팀장님은 평소와 달리 멀쩡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들어와 상쾌한 아침 인사를 건넸다.
“뭐야, 아침부터 왜 이리 시끄러워, 요괴 새끼가 또 지랄 떨었어?”
그렇지! 저거야! 저 반응이지!
“팀장님, 제가 사랑하는 거 알죠?”
유일하게 나와 같은 마음인 정팀장님을 향해 다가가 손으로 작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애정이 담긴 그윽한 시선을 보냈다. 비록 그 눈빛을 받은 정팀장님의 눈길은 나에게도 차가웠지만. 아, 이런 얼음 심장을 지닌 차가운 남자 같으니.
“미친놈들이 아침부터 쌍으로 난리네. 굿을 한번 하든가 해야지, 에잇. 됐으니까, 당장 모여. 아침 회의 시작한다!”
아침부터 우렁차게 소리를 지른 후 회의실로 향하는 팀장님의 뒷모습을 보다 상원이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시선이 마주친 녀석이 여전히 삐친 얼굴로 홱 하고 고개를 돌리며 커피를 쭉쭉 빨아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