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49)
  • “이런, 미친! 갑자기 비가 오고 지랄이야!!”

    그사이 투명한 물줄기에 양팔과 다리, 허리가 잡힌 김동원이 몸을 들썩이며 불을 피워 올렸지만, 이전과는 달리 정승원의 힘을 상쇄시키지 못한 채 허무하게 소멸했다. 비가 오니 그가 만드는 불의 위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손재원 역시 환영으로 만들어냈던 분신들을 잃고 바닥에서 몸조차 일으키지 못했다. 그 덕에 시간을 번 한태화가 웃으며 끝을 내기 위해 주먹을 들어 올렸다.

    범위조차 설정하지 않은,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릎 꿇릴 거대하고 강한 중력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태화가 주먹으로 허공을 내리쳐 전부를 찍어 누르려던 때였다.

    “당장 그만둬!!”

    집에서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이가 달려 나와 모두를 향해 소리 질렀다.

    “모두 그만! 다들 아무도 움직이지 마! 경고했다?! 한태화, 너도 당장 내려와!”

    “……요한?”

    크게 소리를 치며 손으로 한명 한명을 가리키며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하던 서요한이 마지막 이에게서 멈칫하고 손가락을 접었다. 그의 얼굴에 황당함과 의아함이 떠올랐다.

    “…팀장님? 팀장님이 왜 여기 계세요?”

    거실에 난 창으로 봤을 땐 안 보였던 정승원이 그곳에 서 있자 서요한이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멀뚱히 서서 힘을 쓰고 있던 정승원이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너 구하러 왔지. 내 자식 같은 새끼가 흉악한 범죄자들한테 납치가 됐다는데, 그럼 손 놓고 구경만 할까?”

    “누가 납치를 해?! 우리가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서 네놈들로부터 보호하고 있던 건데!!”

    “…응?”

    정승원이 뭔 개소리냐는 얼굴로 김동원을 쳐다본다. 그러자 김동원도 아직 물줄기에 잡힌 채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너희 쟤 잡으러 온 거 아냐?”

    “…네놈들한테서 구해낸 뒤에 보호해 주려고 온 건데….”

    “…….”

    “…….”

    서로가 할 말을 잃어버린 그 황당한 대화에 서요한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세게 문질렀다.

    “야 이… 미친 작자들아, 대화를 하라고요, 대화를. 무식하게 쌈박질부터 하지 말고. 양아치 새끼들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 짓이야.”

    “…….”

    “…….”

    “저런, 다 오해였나 보네.”

    그 순간, 뒤로 물러나 구경만 하던 밤나비가 가벼운 어조로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엎어져 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손재원도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치를 보며 천천히 힘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왜곡되어 기괴하게 변형되어 있던 공간이 원래대로 돌아와 잔디가 깔린 마당이 드러났다.

    서요한은 여기저기가 움푹움푹 파인 엉망인 마당 꼴에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들어 한태화를 쳐다보았다. 아직도 공중에 떠 있던 한태화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한태화가 그대로 요한쪽으로 날아와 어깨를 안으며 달려들었다.

    “요한!!”

    “으악!”

    무섭게 달려든 한태화에 밀려 넘어진 서요한이 소리를 질렀다.

    능력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던 싸움은 그렇게 어이가 없게 끝이 났다.

    #84

    온갖 능력을 써서 싸우느라 서로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다독여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하자 팀장님이 불퉁한 얼굴을 해 보였다. 김동원 역시 질색인 표정을 지어 보였고. 그러나 밤나비나 손재원은 이미 냉큼 집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남아서 의미 없는 눈싸움을 하며 버티는 둘을 다독여 집 안으로 들여보내며 아직도 좀 멍한 얼굴로 서 있는 한태화를 돌아보았다. 기묘하게 가라앉은 눈을 한 채 눈만 깜박이고 있는 녀석이 묘하게 낯설어서 선뜻 말을 걸기가 뭐했다. 그러나 이내 놈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문을 향해 걸었다.

    “들어가자니까.”

    “…요한?”

    “왜.”

    “…정말 요한이네.”

    “그럼 가짜 요한도 있어? 정신 차려. 왜 넋이 빠져선-.”

    앞서 걸어가던 몸이 억지로 멈춰 세워진다. 잡은 손을 아플 만큼 강한 힘으로 그러쥔 한태화가 멍한 얼굴로 엉망이 된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게 마치 지금의 녀석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아 한소리 하려던 입을 다문 채 가만히 녀석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서 시선으로만 나를 살피던 녀석이 입술을 달싹이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손….”

    손?

    “…내 손 좀 세게 잡아주면 안 돼요? 너무… 너무 무서운데….”

    “…….”

    “잠깐, 정말 잠깐 눈을 뗀 건데…, 요한이 없어져서…. 그래서 지금도… 너무 무서워요, 요한.”

    여전히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있던 녀석이 다른 손으로 자신의 눈가를 가렸다. 그 모습이 정말 겁을 먹은 어린아이처럼, 혹은 지독히 피곤한 사람처럼 보여서 가슴 안쪽으로 싸르르한 통증이 번졌다.

    이런 애가 아닌데. 약한 척은 해도, 진짜 약해지던 애가 아니었는데…. 꼭 내가 저놈을 저렇게 한계까지 몰고 간 것만 같아서 미안하고… 아팠다.

    “…야.”

    “…….”

    나직이 부르는 말에도 녀석은 눈가에서 손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잡은 손을 놓지도 않았다. 저도 이러는 모습을 보이긴 싫은데, 내가 잡아준 손 역시 놓고 싶지 않아 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결국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몸을 완전히 돌려세워 녀석을 마주 보았다.

    “내가 그렇게 야무진 사람이 아니거든.”

    “…….”

    “네가 나한테 네 손을 놓을 자격은 박탈됐다며. 꿈도 야무지다고 뭐라고 할 땐 언제고, 뭐가 그렇게 무섭냐.”

    “…….”

    그제야 눈가를 가리고 있던 손이 조심히 내려갔다. 그러나 아직 눈치를 보듯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쓴웃음이 나왔다. 진짜 안 어울린다. 녀석에게 저런 모습은.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손목을 비틀었다. 그렇게 한태화를 잡고 있던 손을 떼어내려고 하자 녀석이 허겁지겁 더 세게 내 손을 잡아챘다.

    “이봐…. 너도 아직은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아니야?”

    “요한….”

    일자로 예쁘게 난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미간에 짙은 주름을 만들어낸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한태화를 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근데 태화야.”

    “…예.”

    이제야 평소처럼 돌아오는 대답에 나도 안심이 됐다. 내가 알던 한태화라서. 그래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힘들면 놔도 돼.”

    “…….”

    순간 악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힘 조절이 안 되는 듯 잡은 손에 무섭게 힘을 준 한태화가 찌푸렸던 표정을 지운 채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픈 손에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말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세상이 무너진 듯,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서.

    “지금 네가 잡고있는 그 손, 잡으면 잡을수록 네가 더 힘들 거야. 그래서 하는 말이야. 지금도 봐. 상황이 장난 아니지?”

    “…요한.”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그런데도 네가 계속 버텨준다면… 적어도 내가 먼저 네 손을 놓는 일은 없을 거란 소리야.”

    그제야 멈칫하며 손에서 힘이 풀렸다. 그래서 다른 손으로 녀석의 손을 떨쳐내며 가볍게 양팔을 벌렸다.

    “이리 와.”

    품을 열자 옅은 색소를 품은 갈색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러나 이내 질끈 눈을 감은 녀석이 그대로 달려들어 어깨를 세게 끌어안았다.

    “안 놔요. 죽어도 안 놔요. 내가 먼저 놓는 일은 없어요. 요한도 못 놔요. 놓기만 해요. 진짜 죽어버릴 거예요.”

    이 와중에도 죽여 버린다가 아니라 죽어버리겠다는 황당한 협박이나 하는 녀석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울음을 참듯 잘게 떨리는 어깨를 손으로 다독이며 웃음을 터트리다 손을 올려 녀석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들어가자.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네.”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네가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

    “뭐든지요. 뭐든지 요한이 하자는 대로 다 할게요.”

    그렇게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으려고 드는 녀석을 어깨에 매단 채 집 안으로 향했다. 분명 심각한 상황임을 아는데도 피식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

    집 안으로 들어가자 소파로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밤나비는 소파에 앉아 김동원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싸우느라 힘을 많이 썼을 녀석에게 간단히 가이딩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이지 않는 꼬맹이의 모습에 거실을 두리번거리다 뚱한 얼굴로 앉아 가이딩을 받고 있던 김동원에게 물었다.

    “꼬맹이는?”

    “옷 갈아입으러. 한번 변신했다가 돌아오면 옷이 다 찢어지는데, 그걸 일루전 능력으로 입은 척하고 있는 거거든. 옷 다 입으면 나올 거야.”

    김동원의 말대로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방에서 나온 손재원이 새 옷을 입고 나와 쪼르르 밤나비 옆으로 가서 앉는다. 그러자 김동원의 가이딩을 끝낸 밤나비가 이번엔 손재원의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살피다 맞은편에 홀로 뚱하게 앉아 계신 팀장님의 곁으로 가서 앉으며 눈치를 살폈다. 이분도 힘 좀 쓰셨을 텐데. 상태가 걱정되면서도 어느새 곁을 차지하고 앉은 한태화의 눈치가 보여 조금 머뭇거리다 조심히 입을 열었다.

    “보조 가이딩이라도 해 드려요?”

    그 질문이 끝난 순간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한태화가 허리를 끌어안으며 강하게 힘을 준다. 그러자 녀석의 팔이 숨 막히게 조여와서 억- 하고 숨을 멈췄다. 그러는 사이 오른쪽 어깨 위로 녀석의 턱이 올라왔다. 안 봐도 뻔했다. 한태화가 팀장님을 노려보고 있겠지…. 하아. 아까의 애틋했던 분위기는 어디 갔는지 보자마자 5분도 안 돼서 한숨이 나온다.

    그 사나운 시선을 받은 팀장님도 인상을 팍 찡그리며 못마땅하게 입을 열었다.

    “옆에 매단 그 흉물스러운 거라도 좀 치우고 물어보지?”

    “…자력으로 치울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그래도 잘 다독여보면….”

    “됐어. 그 정도로 급한 상태 아니야.”

    “…네.”

    “손 줘 봐요. 링크는 열어 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러나는데 맞은편에서 막 가이딩을 끝낸 밤나비가 팀장님을 향해 선뜻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호의에도 팀장님은 개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오만상을 찌푸렸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면서도. 그래서 얼른 팀장님의 팔을 잡아끌어 맞은편으로 내밀었다.

    “야, 너 뭐 하는-!”

    불같이 성질을 내려던 팀장님이 움찔하고 입을 다물며 묘한 얼굴로 밤나비를 바라보았다. 밤나비는 내가 억지로 잡아 내민 손의 검지를 더러워하는 사람처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쉽게 가이딩을 시작했다. 그러자 화를 내던 팀장님이 기가 막힌다는 듯 허-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무슨 가이딩을 이렇게-.”

    “간단히 응급 가이딩만 했으니까 나머진 알아서 하시죠.”

    “…….”

    “S등급 가이드래요.”

    손을 물리고 있던 팀장님께 작게 속삭이자 팀장님이 놀란 시선으로 밤나비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손재원까지 살피다 허탈하게 웃었다. 하나 보기도 힘들다는 S등급들이 도처에 널린 게 황당한 듯했다. 나도 그랬으므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그 놀라운 소식에도 관심이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물론 한태화였다.

    “요한 살 빠졌어요? 지난번보다 더 마른 것 같은데….”

    “응? …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찔리는 게 많아 슬쩍 시선을 피하자 역시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동원이 팔짱을 낀 채 빈정거렸다.

    “뭔 개소리야. 매 끼니때마다 밥을 두 공기씩 처먹던 놈이 살이 왜 빠져? 오늘 아침에도 시리얼 주니까 두 그릇이나 처먹던데.”

    “…흠흠.”

    삐쳐서 방으로 들어간 새끼가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민망함을 감춰보려 헛기침을 하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손재원이 그 말이 맞다고 동조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팀장님이 그 상황에서도 밥이 넘어갔냐며 비난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는데, 왜 먹는 걸로 구박을 하나 싶어 억울한 얼굴을 해 보이는데, 옆구리에 매달려 있던 한태화가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대신 답을 했다.

    “너한테 안 물었으니까 끼어들지 말고 닥쳐.”

    “저…새끼가, 안 그래도 내가 너한테 빚이 좀 있는데, 다시 붙어볼래?”

    화를 내며 벌떡 일어난 김동원이 기분 나쁘게 웃으며 곧장 시비를 걸어왔다. 지는 가이딩 끝났다 이거지? 치사한 새끼. 아직 상태도 살펴보지 못한 한태화가 걱정돼서 그런 김동원을 말리려는데, 이번에도 그런 나보다 한태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누가 나 내려다보는 거 싫어해. 기분 좆 같아서.”

    “…뭐?”

    “앉으라고. 거슬리게 알짱대다 또 얻어터지지 말고. 생각 안 나? 나한테 죽도록 얻어터졌던 거?”

    “이 새끼가-!”

    “동원아, 앉아.”

    험악하게 얼굴을 구긴 김동원이 테이블 위로 발을 올린 채 달려들 것처럼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나직하게 울린 밤나비의 명령에 차마 테이블을 넘진 못하고 한참 동안 씩씩대며 한태화를 노려보다 결국 욕설과 함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러자 거실 안이 순식간에 적막해졌다. 그 어색해진 분위기에서 혼자만 초연한 밤나비는 이제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듯 시선을 맞춰왔다.

    이 분위기에서 무슨 말을 하라고.

    황당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다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85

    어렵게 입을 열었지만, 금세 단어의 장벽에 부딪혀 다시 말을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이 앞에 계신 분과 제 관계가 다 까발려진 이 상황에서 제 계획을 말씀드리자면-.”

    “앞에 계신 분은 무슨. 아버지겠지.”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김동원이 또다시 끼어들어 빈정거렸다.

    “…입 안 닥칠래?”

    “왜? 난 사실을 말- 읍!”

    “요한이 닥치라잖아. 아까부터 자꾸 말이 많네.”

    얌전히 곁에 매달려 있던 한태화가 손을 한번 휘젓자 김동원이 입을 뻥긋거리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근데 그 모습이 꼭… 코까지 막혀서 숨을 못 쉬는 사람의 모습이라 나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정말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태화야.”

    “…네, 요한.”

    “너도 작작하지?”

    “…….”

    나직한 경고에 뺨에 공기를 넣어 부풀리던 한태화가 아랫입술을 삐죽하게 내밀었다. 이제야 내가 아는 얼굴로 돌아온 한태화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어 힘을 풀더니 그대로 내 어깨에 뺨을 비볐다.

    “푸하! 아오, 저 씨발 새끼!!”

    “왜 또 쟤 편만 들어요? 나는 요한 생각해서 한 일인데.”

    “…….”

    가증스러운 한태화. 그리고 짜증 나는 김동원.

    막혔던 숨이 터진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쉰 김동원이 무섭게 한태화를 노려보며 손을 움찔거린다, 금방이라도 불을 만들어 낼 분위기라 결국 손을 들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선이 몰린 그 손으로 문 쪽을 가리켜 보였다.

    “아, 씨발. 말 안 들을 새끼는 다 나가. 나가서 치고, 박고 싸우든지 쎄쎄쎄를 하든지 니들 좆대로 하세요.”

    “…….”

    “…….”

    “안 나가? 왜? 나가서 니들 멋대로 하라니까? 멍석 깔아주니까 쪼냐? 이 입만 산 새끼들아.”

    어깨에 뺨을 비비던 한태화가 모르는 척 어깨로 얼굴을 묻으며 작게 고개를 젓는다. 다신 안 그러겠다는 모양새라 사나운 눈으로 김동원을 노려보니 녀석이 시선을 천장에 둔 채 휘휘, 소리도 제대로 못 내는 휘파람이나 불고 자빠졌다. 지랄들 하네, 진짜.

    “너희 둘, 다시 한 번만 더 주둥이로 싸워라? 평생 어금니로는 음식물 못 씹게 만들어주는 수가 있다.”

    “…….”

    “…….”

    “열 받게 중요한 얘기 하려는데 자꾸 말을 막고 지랄이야.”

    사납게 두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며 화를 삭이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손재원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한 얼굴로 눈만 깜박이고 있던 손재원은 내 시선에 화들짝 놀라며 어깨를 떨더니 밤나비 뒤로 숨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속삭여봐야 워낙 가까워서 뭐라고 하는지가 다 들렸지만.

    “아버지… 형은 좀, 무서운 사람인 것 같아요….”

    “속은 따뜻할 거야. 그런 점은 우리 진이를 아주 똑 닮았다니깐.”

    “…….”

    아… 내가 어쩌자고 이것들을 데리고 그 큰일을 계획한 걸까? 하…. 진심 다 때려치우고 싶다, 정말.

    남이 흉을 보든 말든 울고 싶었다.

    ***

    간신히 분위기가 정리됐다. 여전히 한태화는 옆구리에 매달려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지만, 놈을 제외한 모두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마쳤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는 부담스러운 상황에 작게 헛기침을 하다 다시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저와 오성파가 관련이 있다고 보도가 된 이 상황에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그 오성파가 10년도 더 전에 해체한 중립 단체라는 것을 알리고, 그 사이 활개를 친 가짜 오성파를 밝혀내 제 일을 덮는 거죠.”

    “햇수를 세어보니까 14년 됐더라. 우리 해체한 지.”

    “아, 그래? 어쨌든 그사이에 아무 짓도 안 한 거잖아.”

    “응.”

    나와 김동원이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팀장님의 경악한 시선이 와 닿았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던 팀장님은 이내 사나운 시선으로 앞에 앉은 오성파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니들 우리 요한이한테 뭔 짓 했어! 여기 뭐, 정신계열 에스퍼라도 있냐? 아니면 약이라도 먹였어? 얘가 왜 헛소리를 해?!”

    “팀장님.”

    “뭐!!”

    믿지 못하는 팀장님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겠지. 내가 해야 할 일은 저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려야 하는 일이고.

    “저 멀쩡해요. 그리고 오성파가 옛날 옛적에 해체돼서 활동한 적이 없었다는 말도 믿고요.”

    “그래서 내가 이러는 거 아니야! 너 정말 저 말을 믿어?”

    “예.”

    “…뭘 믿고?!”

    “저 작자가 아버지랍시고 절 찾아왔으니까요.”

    “…무슨 소리야, 대체.”

    팀장님은 내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험악하게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나 밤나비는 여전히 희미하게 미소 띤 얼굴로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사실 팀장님이 이런 반응일 줄은 알고 미리 할 말을 준비해 두긴 했는데…, 설마 그 말을 밤나비 앞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머쓱하게 입가를 문질렀다.

    “그러니까, 제가요, 음… 그렇게 목숨 걸고 팀장이 되려던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어요. 엄마가 폭주를 일으킨 걸 눈으로 봤고, 그래서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고 싶었는데, 그걸 조회하려면 적어도 팀장급의 보안코드가 필요하더라고요.”

    “…….”

    팀장님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제일 잘 알고 있던 사람이라 그렇다. 내가 얼마나 간절하게 팀장급으로 올라가려고 했는지를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이라서.

    “물론 최초로 D등급 팀장이 되고 싶던 것도 맞는데… 사실은 그거 때문이었어요.”

    “…말을 해야지, 이 새끼야. 너랑 내 사이에 그런 말도 못 해? 말을 했으면 내가 대신 알아봐 줬을 거 아니야.”

    험악하던 얼굴이 풀어지며, 힘이 빠진 목소리로 팀장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저런 분이라 얘길 못 한 거니까.

    “꼭 제 손으로 알아보고 싶었어요. 저랑 엄마가 누군가에게 쫓겨 다녔다는 건 알겠는데…, 엄마가 어떤 분이셨는지 아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거든요. 그리고 적당히 친했으면 말씀드렸을 거예요. 근데 그게 아니니까, 어쩌면 팀장님한테 피해를 끼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어요.”

    “……그래서, 그거랑 쟤들 말을 믿는 거랑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데?”

    잠시 생각에 잠겼던 팀장님은 그 부분을 이해하고 넘어가 주기로 한 듯 다른 것을 물어왔다. 그래서 천천히 시선을 돌려 밤나비를 보았다.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줄곧 나를 향해 있던 밤나비와 시선이 얽혔고, 쉽게 그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 허리에 감겨 있던 한태화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얘가 바빠서 뉴스를 못 봤나? …설마 저 인간을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남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근데 갑자기 나타난 저 사람 때문에 알게 됐어요. 엄마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내 손을 놓았는지까지. 그래서 그런지 기억도 다 나더라고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인사하던 엄마가.”

    “…….”

    웃고 있던 밤나비의 입매가 허물어졌다. 그는 거짓으로도 더는 웃지 못했다. 그저 또다시 한 명의 남자, 손학경으로 돌아가 있었다.

    “저 남자는 그걸 알아요. 엄마가 자신의 존재를 지우면서까지 내가 평범하게 살길 바랬다는 거. 오성파의 그늘에 잡아먹히길 바라지 않았다는 거.”

    “…….”

    “그러니 그 그늘을 매단 채로 내게 왔을 리가 없죠. 저는 아직 저 남자를 음…, 아버지로 인정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엄마를 사랑한 남자란 건 받아들이기로 했거든요.”

    아마 저 남자가 아직도 오성파의 밤나비였다면, 그는 차라리 뒤에서 몰래 보호해 주고자 했을지언정 절대 표면 위로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엄마가 떠나자마자 저 남자는 더이상 오성파의 밤나비가 아니지 않았을까. 그것 때문에 엄마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김동원도 산송장처럼 살아왔다고 했고.

    “그걸 믿어보려고요.”

    “…하아. 미치겠네, 진짜.”

    밤나비를 쳐다보던 시선을 돌려 팀장님을 바라보았다. 그런 내 눈빛을 읽은 팀장님이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리다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소파로 깊이 등을 기댔다.

    “아, 그래서. 그게 사실이라 치고, 넌 어쩔 생각인데?”

    “뭐… 맞불을 놔야죠.”

    “맞불?”

    “기관장이 고맙게도 남의 가정사를 언론 보도를 통해 전체공개 해줬잖아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려고요. 가짜 오성파의 전체공개.”

    할 말을 잃은 듯 팀장님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밤나비가 대신하듯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네가 내 탈옥을 도왔다는 혐의는 어쩌려고? 계속해서 그 증거라는 가짜 자료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이대로면 너도 나랑 같이 구치소에 들어갈 판이야. 근데 그런 거면 나는 너 못 도와. 난 내 아들을 구치소로 보낼 생각이 없거든. 애초에 내가 움직인 이유는 그런걸 막기 위해서니까.”

    “…….”

    단단하게 굳은 얼굴은 절대 고집을 꺾지 않을 결심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 말에서 짚어낼 오류들이 너무 많아 당황한 채 입을 다물었다.

    아주 이제는 은근슬쩍 지 아들이라고 공표를 하네? 와….

    그때 팀장님이 손을 들어 흔들더니 태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그건 이미 해결했어. 한태화가 감찰팀에서 빼돌려준 그 가짜 증거들을 가지고 인우랑 애들이 3일 밤낮을 새워서 조작된 증거라는 걸 밝혀냈거든. 상원이 새끼, 맨날 뺀질거리기만 하길래 서류도 못 보는 얼간이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걔가 큰 몫 하더라고.”

    “…상원이가요? 최선배나 강선배가 아니고요?”

    “응. 상원이가 이번에 좀 열심히 했어. 인우랑 세현이도 이 부서, 저 부서로 관련 서류 빼돌리려고 고생 좀 했고. 나중에 보면 저녁이라도 한 끼 사주던가.”

    “…….”

    #86

    예상치 못했던 말에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 어깨에서 기운을 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거 참. 야근을 죽기보다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3일 밤낮을 샜다니.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가 머릿속으로 빤히 그려져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런 내 기척에 어깨에 매달려 있던 한태화에게서도 작게 웃는 기척이 났다. 서류를 빼돌려준 녀석에게도 고맙다는 의미로 어깨를 다독여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뭐, 당분간 잡혀갈 일은 없겠네요. 그럼 탈옥한 분들이 자수해 주시고, 가짜 오성파 사건만 터트리면 되겠어요. 그리고 태화야.”

    “네, 요한.”

    “너 지금 임시기관장이지?”

    “예.”

    “그럼 네가 임시팀이든 특별팀이든 좋으니까 가짜 오성파 진상 규명팀 같은 특수팀 좀 하나 신설해봐. 거기에 나 좀 꽂아 넣어 주고.”

    “예.”

    한태화는 가타부타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해 달라는 듯 제 머리만 들이밀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질색하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흘겨보던 팀장님이 대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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