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4/49)
  • 김동원이 나를 보며 씨익 하고 웃는다. 깜박깜박 눈을 깜박이며 그 모습을 보다 확 하고 인상을 찌푸리며 손으로 그 얼굴을 밀어냈다. 순간 기운이 일렁이긴 했지만 얼른 손을 떼어낸 탓에 링크가 되진 않았다.

    #79

    “징그럽게 처 웃지 마. 그리고 하나도 안 궁금하거든? 밤나비 사정 같은 건?”

    “그러니까 좀, 이제라도 관심을 가져보라고!!”

    “내가 왜?”

    “그 죽을 날 받아 놓은 것처럼 살던 인간이 이제야 좀 산사람 같아 보이니까! 그래서 부탁하는 거다! 밥이며 커피는 다 뇌물이고! 이제 됐냐?”

    “…….”

    얼굴을 밀어내니 성질을 부리며 손을 피해 고개를 돌리던 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냅다 소리를 지른다. 그런 놈을 황당하다는 얼굴로 바라보다 커피잔을 내려두고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찾아와서 성질이야? 그리고 네가 뭔데 끼어들고 지랄이지? 그 인간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데?”

    “너무 답답해서 그런다! 그냥 좀 봐주면 안 되냐? 몰랐다잖아! 몰라서 못 찾은 거라는데, 그게 그렇게 죄- 윽!”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놈을 가만히 바라보다 무릎 부근을 차올리며 그대로 팔꿈치를 꺾어 침대로 넘어뜨렸다. 졸지에 침대로 얼굴은 박은 김동원이 꺾인 팔을 풀어내려 몸을 들썩였지만, 놈의 뒤통수를 잡고 매트릭스로 처박자 신음을 삼킨 채 얌전히 늘어졌다.

    “몰랐다는 게 어디서나 통용되는 면죄부는 아니지. 그리고 그걸 왜 네가 나서서 하라 마라 지랄이야. 내가 네 조언이 필요한 애새끼도 아닌데. 가뜩이나 생각할 게 많아서 머리까지 아파 죽겠는데, 왜 너까지 나서서 일을 보태냐고. 네가 뭔데.”

    “야, 이거 놓고, 윽, 말해!”

    다시금 팔을 풀어보려 들썩이는 놈의 등을 무릎으로 찍어 누르자 끅- 하고 소리를 낸 놈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네 보스란 인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내가 결정할 일이니까. 하여튼 꼭 남의 일에 끼어들어서 뭐라도 되는 양 훈계질 하는 꼰대들이 있어요. 누가 원했다고.”

    “…씨발, 시간이…… 아, 비키라고!”

    그 순간 주변으로 불길이 한번 확 하고 일었다 가라앉았다. 놀라서 몸을 물리는 순간 풀려난 김동원이 그대로 내 멱살을 잡고 몸을 돌렸다. 순식간에 시야가 반전되며 놈의 손에 목이 눌린 채 침대에 등이 닿았다.

    “너, 어디서 좀 놀았냐? 무슨 놈의 새끼가 성질이-.”

    녀석이 화를 내며 악을 쓰는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는 기척이 났다.

    “혀엉, 저랑 산책가실…….”

    “……어, 재, 재원아? 잠깐만, 이게, 그러니까, 그….”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던 재원이라던 녀석이 놀란 얼굴로 서서 눈을 크게 키웠다. 김동원의 몸에 깔려 침대에 누워 있던 내가 고개를 치켜들자 거꾸로 된 시야 사이로 눈이 마주쳤고, 그렇게 잠시 시선이 오고 갔다. 그러자 재원이란 놈이 나와 김동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내 멱살을 쥔 김동원의 손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 순간 입술이 크게 벌어지며 녀석이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이! 동원이 형이 미쳤나 봐요!”

    “아니야! 재원아, 내 말 좀-, 야, 손재원! 저 미친놈이!”

    “아버지! 아버지이-!”

    와다닥 뛰쳐나간 재원이란 놈을 따라 몸을 벌떡 일으킨 김동원이 재빨리 방을 나선다. 웃기지도 않은 개그 프로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몸을 일으키며 멱살이 잡혔던 목 부근을 손으로 문질렀다. 옷깃에 쓸린 곳이 따가운 걸 보니 살이 붉게 올라올 것 같았다.

    “개새끼가 힘만 좋아서는….”

    손끝에 닿는 살 부근이 까슬하게 걸리는 것을 느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 재원이라….

    시선이 반쯤 열린 문을 향했다.

    ***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손재원이란 녀석 덕분에 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뒤를 따라 나가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서니 거실에 나온 밤나비 뒤로 숨은 손재원과, 그런 손재원을 험악하게 노려보면서도 주인 만난 개처럼 얌전해진 김동원이 보였다. 잠시 후 손재원이 나에게 한 김동원의 행동을 이르듯 손으로 목을 쥐는 시늉을 하며 아래를 향해 꾹꾹 눌러 내렸다.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계단에 앉아 과장된 행동으로 이르는 모습을 보며 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별다른 말 없이 구경만 하고 있자 밤나비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와 동시에 김동원과 손재원이란 녀석의 시선 역시 나를 향했고. 그들의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받으며 멀뚱히 앉아 있는데, 이 정도로 열렬한 시선을 받았으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슬쩍 눈을 굴리다 손으로 목 부근을 잡고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

    “저, 개새!”

    “김동원. 따라와.”

    “…보스으-.”

    여전히 웃는 낯이었지만 서늘해진 시선으로 김동원을 부른 밤나비가 제 방으로 향하며 김동원을 향해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잔뜩 풀이 죽은 김동원이 우울한 얼굴로 그 뒤를 따르면서도 손재원을 향해 주먹질을 해 보인다.

    근데 그럼 뭐 하나. 애를 얼마나 오냐오냐 길렀으면 전혀 쫄지를 않는데. 방긋방긋 웃고만 있는 녀석을 보며 작게 고개를 내젓는데, 홀로 거실에 남아 있던 손재원이 계단에 앉은 나를 올려다봤다.

    “형, 저랑 산책가실래요?”

    “…….”

    그래서 첫 만남부터 줄기차게 형, 형, 거렸구나. 넉살이 좋은 게 아니라…. 저놈 입장에선 내가 진짜 형이었나 보다.

    띠동갑은 돼 보이는 어리고 말간 얼굴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자 신이 난 얼굴로 현관문을 연 녀석이 먼저 나가 들뜬 얼굴로 나를 기다렸다. 산책가자고 조르는 강아지 같은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천천히 집을 나섰다.

    집 밖의 풍경은 확실히 서울이 아니었다. 어디쯤일까. 산자락 밑에 자리를 잡은 듯 숲에 둘러싸인 풍경을 돌라보며 외딴곳에 홀로 자리 잡은 전원주택을 살폈다. 집 뒤로 들어선 나무가 우거진 숲과 잔디가 깔린 바닥을 내려다보다 먼저 앞장서서 가고 있는 손재원의 뒤를 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나흘 만에 나와보는 바깥이었다.

    신이 난 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바쁘게 쏘다니는 손재원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 천천히 멈춰 섰다. 어디 앉을 만한 곳이 있나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그 기척에 저만치 앞에서 꽃을 보던 녀석이 번쩍하고 고개를 들어 내 쪽을 돌아봤다.

    “뭘 봐.”

    “…아니, 아닌데요….”

    감시라도 하듯 작은 움직임에도 기민하게 고개를 돌렸던 녀석이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침 앉을 만한 바위를 발견해서 그곳으로 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기온이 낮긴 했지만 쏟아지는 햇살 덕분이 추운 것보단 따뜻하단 느낌이 먼저 들었다. 가만히 주위 풍경을 살피는데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온 손재원이 옆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더니 낮은 풀 사이로 난 들꽃을 손으로 톡톡 건드린다.

    “형….”

    “왜.”

    “…가고 싶으면 가도 돼요. 아버지가 형이 간다고 하면 보내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날 감시하는 게 아니라고?”

    “어-, 예.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그 말을 하고 싶은걸?”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얼굴로 쳐다보는 녀석을 무심히 내려보다 시선을 돌려 풍경을 살폈다.

    “눈치로. 네가 나 위험할까 봐 따라 나온 거 아니까 신경 쓰지 마. 나도 아직 여기서 나갈 생각이 없으니까.”

    “…와. 형 대단해요! 근데 왜 나갈 생각이 없어요?”

    순박한 목소리는 정말 궁금해 묻는 듯 거짓이 없었다. 음흉함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 물음에 가만히 시선을 가라앉히다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공기가 이렇게 좋은데, 왜 담배가 땡길까. 주머니에 넣어둔 손을 아쉽게 꼼지락댔다.

    “내가 지금 나가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녀석이 있어서. 고민 중이야.”

    “그게 누군데요?”

    “…내 에스퍼.”

    “아- 형, 가이드시죠? 진짜 세가에서 일했어요?”

    “뭐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

    연신 질문이 끊이질 않는 녀석을 잠시 귀찮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보니 기가 죽은 얼굴로 푹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 모습이 꼭 혼이 난 강아지 같은 모양새라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전생에 뭐였는지 주변에 꼬여 드는 놈들이 죄다 개과다. 개판이란 소리다.

    “넌 에스퍼지?”

    “-네!”

    이번엔 내가 묻는 게 기쁜지 고개를 바짝 쳐든 녀석이 생글생글 웃다가 한텀 늦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능력이 뭔데?”

    “에니멀 테이커요. 그거랑 일루전도 쓸 줄 알아요!”

    …특수 능력이랑 정신계열 능력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조금 놀란 얼굴로 손재원을 바라보았지만, 생글생글 웃기만 하는 얼굴로 봐선 이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게 확실했다.

    “…애니멀 종이 뭔데?”

    특수 능력 계열인 애니멀 테이커는 어떤 동물로 변신하거나, 그 동물의 특징을 쓸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니까 토끼라면 그 토끼로 변신할 수 있고, 평소에도 토끼처럼 소리를 잘 듣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애니멀 테이커의 경우 보통 일반적인 짐승들의 능력을 베껴온 일반종과 전설속에서나 나올 법한 신수의 능력을 가진 특이종으로 나뉘게 되는데, 곰, 새, 개, 호랑이, 사자 등의 모습으로 변신하면서 그 동물의 특징에 따른 능력을 발휘하는 일반종과, 기린, 해태, 용과 같은 현실에 없는 것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비를 불러오거나 안개를 불러오는 등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쓰는 특이종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일반종보단 이 특이종일 경우가 더 강한 능력자일 때가 많았다. 특히 중국 쪽에서는 신수일 경우 아주 귀한 대접을….

    “웨어울프요.”

    …응? 뭐라고…?

    놀란 얼굴로 시선을 맞추자 어린 얼굴이 말갛게 웃음을 띠더니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늑대인간요!”

    ……어, 그래. 내가 영어를 몰라서 못 알아들은 건 아니고….

    “…특이종이네?”

    “네!”

    “너… 등급이…?”

    “몰라요. 측정해 본 적은 없어서요. 근데 아버지나 형들이 아마 S등급일 거랬어요. 특이종도 특이종인데, 일루전 능력이 현실화되거든요.”

    “…….”

    이 미친 오성파놈들! S등급 애를 이렇게 방치해? 미쳤나, 진짜? 이러다 갑자기 얘가 폭주라도 하면…, 아, 그건 밤나비가 있어 괜찮은 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얘는 이렇게 방치돼서 키워질 애가 아니었다.

    “너, 몇 살이라고?”

    “저요? 19살이요!”

    어리다…. 아주 많이. 그러니까 나랑 열 살 정도 차이가 났다.

    #80

    “학교는?”

    “……아…. 음….”

    “아, 음이 아니라. 공부는 해? 너 설마 오성파 놈들이 여기저기 부려 먹으면서 사고 칠 때마다 끌고 다닌 건-.”

    “아니에요! 형들 안 그래요! 아무도 안 그래요!! 오히려 어리다고 맨날 나만 따돌려요. 아버지 곁에나 붙어 있으라고 하고, 맨날 나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쑥덕거리고….”

    그게 퍽 불만이었는지 불퉁하게 볼을 부풀린 녀석이 다시금 작은 들풀을 손으로 콕콕 건드리며 괴롭힌다.

    그래도 오성파 놈들이 양심은 있었나 보네. 다행히 범죄에는 연관되지 않은 것 같은 아이의 뒤통수를 내려다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왜 공부하고 있냐는 말에는 대답 안 하냐?”

    “…공부… 못 해요. 그래서 형들이 맨날 아버지 몰래 돌대가리냐고 놀렸어요…. 대학 나온 형이 과외 해주다 막 화내면서 때려치우라고 하고…. 형은 공부 잘했어요?”

    말간 눈이 순식간에 반격을 해온다. 순간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었다가 머쓱하게 목덜미를 문질렀다.

    “아니. 나도 더럽게 못했지.”

    “…….”

    “눈 깔아라.”

    “……네.”

    눈에 힘을 준 채 흘겨보던 녀석이 다시 푹하고 고개를 숙인다. 하긴,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좀… 신경이 쓰일 뿐.

    햇살이 있다고 해도 슬슬 서늘해지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쪼그려 있던 녀석도 벌떡 일어나 곁으로 붙어 섰다. 떨어지라고 한마디 할까 하다가 말은 이유는… 그래,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처음 본 사람을 향해서도 쏟아지는 애정의 갈구. 그게 꼭 어릴 때의 날 보는 것 같아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다급하게 허기를 채우듯 그 빈속을 드러내는 결핍은…. 그건.

    “너… 사실 아는 거지?”

    “뭘요?”

    순하게 눈꼬리가 내려간 말간 눈이 올려봐 오는 것을 힐끔 내려보다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얘기하기 싫으면 말고. 그런 마음으로 입을 다물고 걸어가려는데 한발 앞으로 나서서 걸어가던 녀석이 씩- 하고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아버지가 사실 제 진짜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요?”

    “…….”

    “그거 물어보신 거 아닌가? 다른 거예요?”

    그래, 모를 리가 없지. 저 나이대에, 눈치만 보며 자랐을 아이가 그렇게 둔할 리 없었다. 나흘 내내 지내면서 보아온 손재원의 눈은 무척 바빴다. 여기저기 눈치를 살피고, 상대의 기분을 살피듯 움직이는 눈은 어릴 적 나를 연상시켰으니까.

    그러니 모를 리가 없었다.

    “…아네, 역시. 근데 왜 자꾸 나보고 형이래?”

    서운하게 느껴질 말임에도 동그란 눈매가 이내 길게 휘어지더니 웃음기를 담는다. 순박하게 웃던 손재원은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걸어가며 기분 좋게 입을 열었다.

    “형이랬어요, 아버지가. 네 형을 찾았다고 그랬거든요.”

    “…….”

    “사실은… 아버지가 세가에 잡히기로 정했던 때에 찾아가서 막 따졌었어요. 진짜 우리 아빠가 맞냐고. 형들이 하는 얘기 다 들었다고,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울면서 막 따졌는데…. 근데 아버지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도 있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주 오랫동안 슬픔에 차서 죽어 가던 마음이 나 때문에 한 번씩 따뜻해졌다고, 그러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버지께 큰 기쁨인 아들이었다고. 그래도 제가 원하면 친아빠를 찾아주겠다고 하긴 하셨어요.”

    “…….”

    “친아빠를 찾아도 너는 내 아들일 거니까 눈치 보지 말라고. 우리 아버지 진짜 멋있죠!”

    멀리 소담한 전원주택의 모습이 드러났다. 병풍처럼 숲을 등에 진 전원주택은 한가롭고 고즈넉했다. 매번 잔잔히 웃어 주는 밤나비처럼.

    “예전에 할머니가 저를 길러주셨는데, 맨날 네 아빠는 오성파에 있다고 했어요. 거기 수장이 네 아빠라고….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그 말씀을 하셨는데,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빠란 작자가 나타나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화가 나서 직접 오성파를 찾아 나섰었어요. 막 능력이 생겼던 때라 늑대로 변신해서 매일 매일을 찾아 헤맸는데….”

    …강한 아이구나. 어리고, 여린데, 강하다.

    “그러다 죽겠구나 싶을 만큼 지쳤을 때 드디어 아버지를 찾아냈어요. 그래서 아버지 앞에 찾아가 당신이 내 아버지냐고 막 따졌는데, 그랬더니 아버지가… 아무 말 없이 그냥 꼭 안아 주시더라구요. 많이 지쳐 보이는구나-, 하시면서. 그러다 정말 지쳐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떴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곁에 계셔 주셨고요. 그러고 나니까 아버지가… 진짜 아빠 같았어요.”

    “…….”

    “그래서 사실 형한테는 미움받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랑 형은… 이제 제겐 유일한 가족이니까요.”

    두세 걸음만 가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멈춰선 녀석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웃는 게 보였다. 진심으로 잘 보이고 싶다는 듯 웃고 있는 모습에 나도 걸음을 멈추고 잠시 하늘을 봤다.

    파란 하늘 위로 새털 같은 구름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여전히 해가 좋았다. 그래서일까. 쉽게 입이 열렸다.

    “저 집에 있는 사람들 중에… 굳이 하나 꼽으라면 나도 네가 제일 나아. 너만 안 싫어. 그러니까 눈치 그만 봐라.”

    “…왜요?”

    “…….”

    “왜 저만 안 싫으신데요?”

    기쁜 말을 들었다는 듯 떨림이 담긴 의아한 목소리에 하늘을 보던 시선을 내려 앞에 선 어린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싫어하려야 싫어할 수가 없었다.

    “나랑 닮아서.”

    “…….”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분노를 키우고 있는 게 닮았다.

    “근데 또 달라서.”

    그러나 나는 저렇게 곧고 강하지 못했다. 내 분노는 매번 엉뚱한 곳으로 튀어 오르곤 했으니까.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해도 안 되겠는지 끙끙 앓으면서도 미간을 찌푸린 녀석을 보다 피식하고 웃으며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돌대가리.”

    “―형!!”

    억울하다는 얼굴로 뒤따라 들어오는 녀석을 단 채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 집이 아닌 집으로.

    이제 슬슬 정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길 때였다. 그리고 그렇게 결심하기가 무섭게, 다음날 아침 뉴스로 나와 밤나비의 관계가 밝혀졌다.

    ***

    - 이곳은 세가 내 직원들이 머무는 사옥 아파트로, 이 집이 바로 현재 밤나비의 아들로 밝혀진 서요한 가이드가 사는 집입니다.

    카메라를 쳐다보던 남자가 반쯤 몸을 돌린 채 대문 옆에 달린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나 안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다.

    - 보시다시피 집안은 빈 것으로 확인됩니다. 세가의 동료 직원들의 말에 의하면 벌써 닷새째 출근도 하지 않고 있고, 모습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요, 일각에서는 일이 이렇게 될 것을 알고 미리 도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경직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고 보도를 이어가던 기자는 어깨를 펴며 좀 더 진지하게 표정을 굳혔다.

    - 저희 TTP 에서는 서요한 가이드의 행적을 조사하던 중 서요한 가이드가 밤나비의 탈옥을 위해 세가 내에 잠입한 것이라는 제보를 받고, 그 증거 자료를 입수하였습니다. TTP 기자 김하용이었습니다.

    화면이 전화되며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진중한 인색의 남자 아나운서가 비추어졌다.

    - 들으신 대로 저희 TTP에서는 그간 서요한 가이드가 세가에서 통칭 오성파로 분류되는 반정부 단체를 위해 일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입수하였고, 이를 단독 보도합니다.

    그 뒤로 길게 이어진 뉴스 화면으로는 이전 감찰팀에서 봤던 조작된 증거 서류들이 비추어졌다.

    “이야…. 이걸 기어이 터트리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멍하니 뉴스를 보다 짝짝짝 박수를 쳤다.

    언제고 터질 거란 걸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진짜로 뉴스를 통해 내 이야기가 나오자 입맛이 썼다. 화면에는 조작된 증거 서류와 함께 밤나비의 사진과 내 입사 서류에 붙였던 증명사진이 비추어졌다.

    아직 확실히 수사에 들어간 것은 아니라서 내 증명사진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이미 인터넷으론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사진들이 돌고 있을 것이 뻔했다.

    “아- 욕 엄청 먹고 있겠네…. 장수하겠어, 아주.”

    씁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문 쪽으로 걸어가 두어 번 문을 발로 차자 금세 방문이 열리며 손재원이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형, 왜요?”

    “밤나비 어딨어?”

    내 물음에 말간 얼굴이 흐려지며 우물쭈물하는 기색의 손재원이 눈치를 봤다.

    “지금 나가는 건 위험할 것 같은데….”

    “어디 있냐고.”

    단호하게 말을 끊자 한숨을 내쉰 손재원이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아래층을 가리켰다.

    “1층 방에 계세요.”

    말없이 곧장 걸음을 옮기자 평소 같으면 냉큼 곁으로 따라붙었을 녀석이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다. 눈치 하나는.

    마뜩잖게 혀를 차며 1층으로 내려가 안방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방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왔구나.”

    “…….”

    “들어 와.”

    문간에서 옆으로 물러나 공간을 만들어준 밤나비의 안내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가서 중간쯤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방문을 닫으며 따라 들어온 밤나비가 한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잠시 고민하다 자리로 가서 앉으니 맞은 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밤나비가 희미하게 미소 띤 얼굴을 해 보였다. 말없이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니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긴장을 한 듯 파르르 떨린다. 마주하고 있던 시선 역시 금세 테이블 위로 떨어지며 내 시선을 빗겨나갔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편하게 해.”

    잔뜩 긴장한 것이 다 티가 나는데도 어른스러운 척을 해 보이는 밤나비를 보며 웃어야 할지 찡그려야 할지 몰라 잠시 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간이 왜 없습니까.”

    “응?”

    “샐러맨더, 아니, 김동원이 그러던데요. 시간이 없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동원이가 그런 소릴 했어?”

    정확히는 시간이 어쩌고 하는 혼잣말을 작게 중얼거린 것이 다였다. 그 뒷말은 듣지도 못했고. 그러나 앞뒤 정황상 그 말을 추측해 보자면 그런 의미였다.

    시간이 없다. 아마도 밤나비의 시간이.

    #81

    “별일 아닌데.”

    “…대답하기 싫은가 보네요.”

    “…….”

    정말로 대답하기 싫은지 밤나비가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잠시 더 기다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얘기가 안 되겠네. 그럼 저는 이만 갑니다. 감금한 게 아니라고 하셨으니 막지 않을 걸로 알겠습니다.”

    “…앉아.”

    “앉아 봐야 별 얘기가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일단 앉아. 나가긴 어딜 나간다는 거야. 언론이고 경찰이고, 널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을 텐데.”

    “뭐, 물어 뜯기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괜찮아요. 원래도 그런 삶이었어서. 익숙하니까.”

    일부러 더 껄렁하게 대꾸하며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긴 한숨과 함께 밤나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얘기해 줄 테니 앉으라고.”

    “…….”

    다시 몸을 돌리면서도 자리에는 앉지 않았다. 그런 뒤 밤나비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밤나비가 머뭇거리다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병에 걸렸어. 아마 얼마 안 남았겠지.”

    담담한 목소리에 멈칫하고 몸을 굳혔다가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자세히 말해 봐요. 무슨 병에, 어떻게 걸렸다는 건지.”

    “후우…. 세가에서 날 잡고 나서도 억지로 살려두면서 너까지 끌어다 붙인 이유를 알아?”

    “…나를 가지고 협박했다는 얘긴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S등급의 가이드라서 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고요.”

    그 대답에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밤나비가 편하게 의자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

    “맞아. 세가에선 내 힘을 이용하고 싶어 했어. 그런 소리가 있거든. S등급 가이드의 가이딩은 에스퍼의 근원의 크기를 넓게 만들어준다는 말.”

    그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들어 본 적 있는 이야기긴 했다. 가이딩으로 근원을 넓혀준다는 허황된 이야기. 근원을 넓힌다는 건 에스퍼의 힘을 강하게 만들어준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근원의 크기에 따라 힘의 차이가 났으니까.

    그러나 사람의 근원은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있는 거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고 기관이-.”

    “사실이야. 일시적이긴 해도.”

    “…그 말이… 사실이라고요?”

    “응. 약간의 접촉만 있으면 가능해.”

    “…….”

    말이 끊어졌다. 깜박깜박 눈을 깜박이며 밤나비를 바라보다 테이블 아래로 내려가 있던 주먹에 힘을 실었다. 그러니까 지금… 세가에서 그 힘을 이용했다는 건가? 나를… 이용해서?

    “사실 나도 네 엄마 외의 사람에겐 써보지 않아서 많이 해본 건 아냐. 그 사람 외의 다른 사람에겐 내키지 않았으니까. 그랬는데 세가에서 그 힘을 빌미로 신분을 세탁해서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제안해 왔어. 나야 당연히 거절했고. 그렇게 한 일 년 반쯤 버텼나? 그랬더니 결국 나도 모르던 네 존재를 알려주며 협박하더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해 줬어. 그리고 바로 나왔지. 너도 아는 방법으로.”

    처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던 밤나비는 이제는 태연히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처음만 조심스러웠을 뿐 지금은 평소처럼 여유로운 태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말을 잃었다가 혼란스럽게 마른세수를 했다.

    “……그냥 계속….”

    나를 가지고 뭐라고 협박하든 굴복하지 말지 그랬냐는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거의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밤나비는 세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을 것이다. …나를, 자신의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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