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뭐야? 기사들 뭐냐고? 나쁜 짓은 뭐였는데? 오전 10:48]
[너 진짜 이럴래? 오전 10:50]
[너야? 이거 진짜 네가 한 일이야? 아니지? 응? 오전 11:48]
[태화야… 오전 11:54]
[너… 나 안 보고 싶냐? 오후 13:06]
[보고 싶지…? 오후 13:09]
[보고 싶다… 오후 13:33]
[. 오후 13:35]
[. 오후 13:36]
[. 오후 13:37]
…이거 생각보다… 미친 짓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분 단위로 점을 하나씩 찍어 보내며, 예전에 놈이 보내던 점으로 된 테러 메시지를 떠올렸다. 이게 생각보다 멀쩡한 정신으로도 할 수 있는 짓이었다. 이 얼마나 연락이 닿길 바라는 간절함을 표현하는 방법이란 말인가.
그새 1분이 지난 것을 확인하고 점을 하나 찍고 보내기를 눌렀다. 그리고 또 점을 하나 찍고 보내기를 누르고, 또다시 점을 하나 찍고 보내기를….
“선배, 미쳤어요?! 왜 메시지를 점만 찍어 보내고 있어요?!”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었는지 뒤로 다가왔던 상원이가 막 보내기를 누르려던 오른손을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뭐야, 사생활 보호 좀 해달라니까.
“놔 봐. 보내기를 아직 안 눌렀단 말이야.”
“정신 차려요, 미쳤나 봐, 이 선배가!”
“멀쩡하니까 놔 보라고. 지가 어디까지 씹나 보게 좀 놔두라니까?”
오른손을 잡고 미쳤냐고 소리를 지른 상원이가 굳은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시선을 돌려 시계를 확인하니 또 1분이 지나있었다.
아씨, 1분 지났잖아!!
“…놓으라고 했다?”
“과, 광땡아? 여기 봐라, 자, 여기 보고 정신 좀 차려봐!”
상원이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외려 더 꼭 잡고 울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최선배가 다가와 우는 아이를 달래듯 손을 마구 흔들며 저를 보라고 난리였다.
다들 미쳤나. 왜 저래, 진짜.
#65
“말로 할 때… 놓지?”
“…무, 무서워….”
슬쩍 노려보며 경고하듯이 말을 내뱉자 우는 시늉을 하고 있던 놈이 팔을 놓고 물러났다. 그에 다시 보내기를 누르려는데, 이번엔 누군가 그 휴대폰을 홱 하고 낚아채 갔다. 아 진짜, 메시지 하나 보내기 더럽게 힘드네.
“…강선배, 휴대폰 줘요.”
휴대폰을 채 간 강선배를 향해 손을 내밀자 선배의 표정이 심히 구겨졌다.
“…미쳤냐? 정신 안 차릴래? 하루 종일 휴대폰만 붙잡고 있더니, 이런 미친 짓이나 하고 있어?”
“휴대폰 줘요. …달라고요!”
“저 봐, 서선배 눈 좀 봐요, 완전히 맛이 갔다니까요?!”
“이게 어디 선배한테! 이리 와, 너 오늘 맞고 정신 좀 차리자. 예쁘다 예쁘다 하고 봐줬더니, 눈에 뵈는 게 없지?”
상원이가 얼른 강선배의 곁으로 가 남의 눈을 손가락질해댔다. 그에 놈을 쏘아보자 슬그머니 손을 내린 놈이 얼른 강선배 뒤로 숨어든다. 그러다 제일 골치 아픈 상대인 강선배를 보며 한 번 더 손을 내밀었다. 내 휴대폰 달라고요!
“누가 예쁘다 예쁘다 해줬는데요? 강선배가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휴대폰이나 내놔요.”
“말 같지도 않아? 이리 와, 넌 진짜 죽었어.”
“아이씨,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래!! 너희 둘 다 미친 것 같으니까 그만두라고!”
나에게 달려들려는 강선배를 말리며 그 사이로 끼어든 최선배가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그러자 팀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팀장님이 나왔다.
“무슨 소란이야? 왜들 이래?”
팀장님까지 나오자 강선배와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때 강선배 뒤에 숨어있던 상원이가 쪼르륵 달려가 팀장님의 팔에 매달렸다.
“팀장님! 서선배 봐요! 한태화한테 막 점만 찍어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길래 하지 말라고 말렸더니 저래요! 눈을 막 이렇게, 이렇게 하면서 노려보는데, 그 눈도 완전 맛이 갔다니까요?”
“…그 맛 간 눈이 지금은 널 노려보고 있는데, 괜찮겠냐, 상원아?”
“…예?”
열심히 지껄이던 놈이 말을 하다 멈추며 그제야 나를 돌아보는 모습에 손을 들어 검지를 까닥거렸다. 그러자 하얗게 질린 놈이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슬그머니 팀장님 뒤로 몸을 물린다.
어쭈, 안 와? 쟤가 한 대 맞을 거 두 대로 늘리네?
“말로 할 때 와라. 몸 쓰게 만들지 말고.”
“…티, 팀장니임~. 서선배 좀 말려봐요.”
“…….”
팀장님이 그런 상원이를 애물단지 보듯 내려보다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작게 고개를 젓더니 내게 그만하라는 시선을 보내왔다. 그에 불만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불퉁하게 표정을 굳혔다.
왜 자꾸 걔만 예뻐해요? 이러면 나 삐뚤어질 건데? 응?
그런 의미를 담아 시선을 던지자 팀장님이 한심해 하는 얼굴로 혀를 차다 분위기를 정리했다.
“다들 그만 놀고 일들 해. 사무실이 놀이터야?”
“일이 없어요. 우리 팀 진짜 왕따 당하나 봐요. 찔끔찔끔 자질구레한 일들만 주더니 어제 점심 이후로는 그것마저도 끊겼어요.”
“…….”
상원이의 말에 모두 안색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제일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바닥으로 고개를 숙였다.
인사팀에 김재상과의 해지 합의서를 제출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또다시 일이 끊겼다. 그러니 이런 시답잖은 놀이나 하고 있는 거고. 상원이 말대로 할 일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네가 왜 죄송해? 아직 정신 못 차렸지?”
“그래, 요한아. 마음 쓰지 마. 네 잘못이 아니라니까.”
툭 하고 나온 사과에 강선배의 표정이 대번에 사나워졌고, 혹시 우리 둘이 또 싸우기라도 할까 봐 불안한 얼굴을 해 보인 최선배가 강선배를 슬그머니 밀어내며 내 어깨를 다독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상원이가 불만스럽게 표정을 구겼다.
“일 못 해서 죽은 귀신들이 붙었나…. 전 일 없어서 좋은데요? 그러니까 그냥 좀 즐겨요! 월급 받으면서 놀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올 줄 알고? 이게 아무 때나 오는 그런 날이 아니라니까요?!”
헛소리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 상원이의 태도에 다들 피식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상원이의 손이 턱 부근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포즈였다.
안 돼, 하지 마! 너 그거 하면 죽는다?
“막내는 농땡이 요정-.”
“실례합니다. 서요한씨 계십니까?”
또 요정 어쩌고의 개소릴 하려는 상원이의 말을 막듯 사무실의 문이 열리면서 처음 보는 남자 셋이 우루루 들어왔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의 표정은 하나 같이 딱딱해서 어쩐지 심상치 않았다.
뭐지?
“제가, 서요한입니다만. 누구시죠?”
“저는 감찰팀의 배치혁이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잠깐 저희랑 같이 가주시죠.”
“…감찰팀이 나를 왜, 뭐하는 짓입니까?!”
배치혁이라는 사람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남자가 다가와 다짜고짜 내 양팔을 하나씩 잡고 몸을 구속했다. 당황한 얼굴로 잡힌 팔을 빼내 보려는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에스퍼구나.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 얌전히 몸에서 힘을 빼는데 놀란 강선배와 최선배가 달려오는 것과 동시에 팀장님이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들이야!”
그 순간 허공에 물방울들이 맺히더니 사방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달려오던 강선배와 최선배가 멈춰 서며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팀장님?!
“…정팀장님. 이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일입니다. 저희도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인데…, 이러지 마시죠?”
“아, 그래? 그럼 일단 내 팀원부터 놓고 말해. 내 사무실에 쳐들어와서 다짜고짜 내 팀원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
팔짱을 낀 채 단호하게 대답하는 팀장님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배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물방울들이 뾰족하게 그 형태를 변화한 채 곧 쏘아질 것처럼 일렁였다. 배치혁은 골치가 아프다는 얼굴로 그것들을 돌아보다 결국 나를 잡고 있는 두 남자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제야 긴장한 기색의 남자 둘은 내 팔을 놓고 물러났다.
나 역시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금 팀장님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팀장님은 표정 없는 얼굴로 배치혁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음… 저런 분인 줄은 또 몰랐네. 현역으로 뛸 땐 A등급 능력자로 날아다녔다는 소문을 듣긴 했지만, 그 능력을 보는 것은 거의 처음에 가까웠다. 매번 노안으로 눈이 침침하다고 칭얼대며 일하기 싫다고 노래나 불러대던 양반이….
물로 되어있으면서도 날카로운 형태로 위협적인 물방울들을 바라보다 감찰팀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야말로 나를 왜 데려가려 하는지가 궁금했다.
“감찰팀에서 저를 왜 데려갑니까?”
“…내사 중인 사건의 주요 용의자라서요. 그러니 수사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세가 쪽에서 먼저 파악할 수 있게 협조 좀 해주시죠. 경찰 쪽으로 넘어가 검찰 송치까지 되면 세가에서도 아무 도움을 드릴 수가 없으니까요.”
“…용의자?”
안 그래도 그 단어가 유독 거슬리던 참이었다. 그런 나를 대신해 팀장님이 용의자가 무슨 의미냐고 물어주었고. 그 뒤에 서 있던 상원이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선배 또 누구 팼어요?’라는 뇌에서 주름 펴지는 소리나 내뱉었다.
“오성파와의 내통 혐의 및 밤나비의 탈주에 가담한 혐의로 내사 중에 있습니다.”
“……예?”
“…어디? 오성파? …우리 광땡이가?”
황당함에 되묻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 나만큼이나 황당한 얼굴의 팀장님과 팀원들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턱을 뺐다. 감찰팀 팀원들만이 딱딱한 얼굴로 협조해 달라고 다시 청해오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어쩐지 그 순간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게… 아무래도 그 사람 짓 같았다. 아니, 그 사람밖에 없었다.
“그 내사 중이라는 거 알려준 사람이 혹시 기관장님입니까?”
“…아닙니다.”
“아니기는.”
조금 머뭇거리며 나온 대답에 그럼 그렇지 하고 비웃음을 터트렸다. 기관장을 압박하는 듯한 일련의 사건들 후에 나를 잡아가듯 들이닥친 기관장 휘하의 감찰팀. 길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기관장은 한태화에 대항해 한 놈만 패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분이 싸움 좀 할 줄 아시네.
터지듯 나온 비웃음을 막지 않으며 나는 어깨에서 힘을 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눈치챈 들, 힘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문제니까.
“…가시죠.”
감찰팀의 배치혁이 다시 고갯짓을 함에 따라 다른 두 명이 도로 내 양옆으로 다가왔다. 팀장님이 아직 힘을 거두지 않은 탓에 아까처럼 막무가내로 거칠진 않다는 게 좀 위안이 됐지만.
“정팀장님도 이제 그만하시죠?”
“…….”
그 말에 팀장님이 고민하는 표정을 해 보이다 허공을 향해 손을 한번 휘둘렀다. 그러자 둘러싸고 있던 물방울들이 허공으로 녹아 사라지듯 자취를 감췄다. 볼수록 신기한 능력이네.
태평하게 그런 감상이나 하고 있는데 팀장님 뒤에 숨어있던 상원이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제 서랍에서 야구모자를 하나 꺼내 내 쪽으로 달려왔다.
“잠깐만요, 가기 전에 이것 좀 쓰고 갑시다!”
“뭐야, 갑자기 무슨-.”
억지로 모자를 씌우는 손길에 목을 뒤로 빼며 거절하려는데 상원이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봐야 손톱의 때만큼도 무섭지 않았지만.
#66
“얌전히 써요. 가뜩이나 서달기의 몰락이라고 말들이 많은데, 여기서 감찰팀에 끌려가는 모습 보였다가 무슨 말이 또 어떻게 나돌지 알고 그대로 가요?”
“…그런 소문이 돌고 있었어? 다들 미친 거 아냐?”
서달기의 몰락이라니. 아주 영화를 찍지 왜?
어이가 없어 한숨을 터트리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강선배가 의자 등받이에 걸쳐놨던 자켓을 들고 와 아주 머리에서부터 푹하고 씌웠다. 이건 또 뭐야? 내가 범죄잔가?!
“선배!”
“가만히 있어. 소문 더 키우기 싫으면 얼굴부터 감추라고. 이대로 가죠? 용의자일 뿐 피의자나 피고인도 아닌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요?”
내게 작게 주의를 준 강선배가 감찰팀에게 동의를 구하자 못마땅하게 보던 감찰팀 사람들이 팀장님의 눈치를 보다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나는 진짜 범죄 사건이라도 저지른 피의자의 모습으로 감찰팀 사람들에게 잡혀 끌려나갔다. 눈앞이 안 보이니 혼자 걸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와… 인생 진짜. 버라이어티하다.
그러다 휴대폰에 생각이 미쳤다. 아, 내 휴대폰. 한태화한테 연락해 봐야 하는데…. 큰일 났네.
길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
서요한이 죄인처럼 끌려나가고 난 뒤, 지원 3팀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 너무 황당하다 보니 할 말이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그러길 잠시, 가장 먼저 윤상원이 입을 열었다.
“기관장님 그렇게 안 봤는데, 엄청 치사하네요.”
“…그러게. …우리 광땡이 어쩌지?”
“…….”
“…….”
“…….”
최인우의 물음에 다들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어쩔 도리가 없으니 그 물음에 답할 거리가 없는 이유에서였다.
그때, 어쩌다 보니 가지고 있게 된 서요한의 휴대폰이 강세현의 손안에서 길게 진동했다.
“…어? 한태화다….”
‘붕어대가리’라고 뜬 화면을 확인한 강세현의 말에 최인우를 비롯한 윤상원과 정승원 팀장이 휴대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어쩌지?”
“받아야죠!! 받아서 우리 서선배가 감찰팀에 끌려갔다고 얘기해 줘야죠!”
곤란한 얼굴로 묻는 강세현의 물음에 윤상원이 답답하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그 말에 강세현은 진동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큰마음을 먹고 통화 부분을 눌렀다.
- 요한! 메세지 봤….
“여보세요?”
한태화의 웃음기 담긴 목소리와 강세현의 여보세요가 동시에 울리더니 상대가 말을 끊고 침묵했다. 강세현은 다시 한번 어쩌지? 하는 얼굴로 팀원들을 보다가 다음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 너, 뭐야? 누군데 요한 전활 그쪽이 받지?
방금 전 웃음기가 담겨 있던 활기찬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낮게 가라앉은 싸늘한 목소리에 강세현이 얼른 윤상원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얼떨결에 휴대폰을 손에 쥔 윤상원은 울상을 지으며 그것을 귓가에 가져다 댔다.
- 야… 누구냐고, 너.
“…….”
안 되겠어요. 윤상원이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내민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줘 봐.”
그 꼴을 보고 있던 정승원 팀장이 나서 휴대폰을 가져가며 입을 열었다.
“나 지원팀 정팀장입니다.”
- …정팀장님이 왜 우리 요한의 전활 받습니까? 요한은요?
감정이 배제된 싸늘한 목소리에 정팀장 역시 진저리를 치면서도 선선히 대꾸했다.
“우·리 요한이가 자리에 없으니까 제가 받겠죠?”
- …무슨 소립니까?
“끌려갔어요. 감찰팀으로. 왜 끌려갔는지는 한팀장이 더 잘 알 것 같으니 길게 설명 안 할게요.”
- ……끌려가? 누가?
한태화도 기가 막힌 듯 날카로운 숨소리를 냈다. 정팀장은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누구긴 누구야, 네놈의 '우리 요한'이지. 너는 이 새끼야, 그 '우리 요한'이 무사히 돌려놓지 않으면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 남의 팀원을 이따위로 휘둘렀으면 뒷일도 책임졌어야지. 이럴 줄 몰랐던 거 아니잖아, 너.”
“티, 티, 팀장님?”
“팀장님, 미쳤어요? 왜 그래요. 끊어요, 빨리 끊어!”
최인우와 윤상원이 놀라서 휴대폰을 뺏을 듯 달려들자 정승원은 상체를 물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아에 뒷빽도 없는 애가 목숨 걸고 실적 쌓아 여기까지 온 걸 이렇게 주저앉혀? 너는 이거 해결 못 하면 내 손에 먼저 죽어!”
정승원이 험악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최인우와 윤상원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런 정승원을 말리지도 못한 채 몸을 굳혔다. 그러자 그때까지 팔짱을 낀 채 구경만 하던 강세현이 그런 정승원에게서 휴대폰을 뺏더니 제 할 말만 다다다 쏟아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일이 이렇게 돼서 요한이는 전화 못 받습니다. 그러니까 전화 통화 다시 하고 싶으면 우리 요한이부터 빼내세요. 그럼 수고하십시오.”
“…….”
“…….”
“아오씨, 놔 봐! 나 아직 할 말 안 끝났는데, 그걸 왜 가져가?”
아직도 뻗친 성질을 어쩌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는 정승원을 내버려 둔 채 전화를 끊고 깔끔한 얼굴을 하고 있는 강세현을 최인우와 윤상원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미쳤어. …그게 요한이 있을 때나 순한 척하지… 본 성질 다 알면서….”
“…요한 선배, 빨리 와요… 제발제발제발.”
“뭐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얘라도 나서야죠.”
태연한 강세현의 말에 최인우와 윤상원이 질린 얼굴을 해 보이다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문을 아예 막을까요? 짐을 옮겨서 막아버리는 거 어때요?”
“그보단 반차 쓰고 튀는 게 낫지 않아? 우리 할 일도 없잖아. 반차를 쓰든 말든 신경들도 안 쓸 텐데.”
“그거 좋네요. 반차 써요, 우리. 쓰고 같이 도망가요!”
윤상원과 최인우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세현이 태연한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왜들 저래. 우리가 도망을 왜 가.”
강세현의 시선이 잠시 비어있는 서요한의 자리를 향하더니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곤 팀 전체의 반차 사유를 적기 위해 문서 창을 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한태화는 강세현으로서도 사실 반갑지 않았다.
***
범죄 피의자만큼이나 수상한 모양새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둘에게 붙들려 세가 건물의 맞은편에 있는 별관 건물로 향했다. 감찰팀 외 일부 행정부서의 경우엔 별관에 따로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끌려온 후 몇 시간 동안이나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입이 마를 때까지 해야 했다.
“밤나비는 지금 어딨지?”
“…자동 응답기예요? 모른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고. 밤나비가 어디 있는지만 불면 형도 감경해 준다니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하라고! 내통을 했으면 알 거 아냐!”
쾅하고 책상을 내리치는 중년 남자의 손을 의자에 삐뚜름히 앉아 뚱하게 쳐다보았다. 남자는 아까부터 저렇게 험악한 기세로 겁을 먹도록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런 거로 쫄 사람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만.
“내가… 지금 피의잡니까? 아니면 피고인? 조사에 협조해 달라고 사람을 끌고 와 놓고 이게 어디가 협조를 요구하는 태도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말에 중년 남자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그거야 네 체면 생각해서 해준 말이고. 이 증거들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남자의 손이 위로 높게 쌓인 서류철 위를 또다시 세게 내리쳤다. 손바닥도 안 아픈가. 뭘 자꾸 탕탕 쳐대. 그런다고 누가 쪼나. 그리고 왜 자꾸 반말인지 모르겠네? 누군 성질 없나. 내 참.
“그러게요. 이 정도 양이면 만드느라 야근도 했겠어요. 누군지 몰라도 엄청 개고생했겠네.”
“…이게 전부 조작된 증거다?”
“내가 한 적이 없는 일들이니 누군가 만들긴 했겠죠.”
남자가 펼쳐 보인 서류에는 화질이 낮은 CCTV의 한 장면이 사진으로 떠 있었다. 어두운 주변, 간판 조명에 의지한 어딘가의 뒷골목의 풍경은 나도 기억이 나는 장소였다. 바로 클럽 와썹의 뒷골목의 풍경이었다.
다만 내 기억엔 그곳에서 분명 한태화를 만났던 것 같은데, 사진이 찍힌 화면엔 놀랍게도 샐러맨더가 찍혀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샐러맨더와 대화를 하는 모습이었고 말이다.
이걸 어떻게 조작한 걸까. 세가 내에 이런 류의 특수 능력을 가진 에스퍼가 있었나?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에스퍼에 대해선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전문가에게 맡겼던가… 등록하지 않은 불법 에스퍼를 고용했을 확률이 높았다.
“…서요한씨, 우리 이렇게 어렵게 가지 맙시다. 빨리 인정하고 끝내자고요.”
중년 남자는 이제는 날 회유할 생각인지 다시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꿨다. 그 모습에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도 의자 등받이로 편하게 몸을 기댄 채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저녁때 지나지 않았어요? 배고픈데 밥이나 먹고 하죠. 서로 같은 말만 반복하느라 일찍 끝날 거 같지가 않은데.”
“…아주 여유만만하시네? 그렇게 나오겠다면 좋아요. 끝까지 가봅시다. 밥은 끝나고 나가서 본인 돈으로 직접 사 드시고. 기관이 범죄자에게 밥까지 사줄 자선단체는 아니잖아요?”
“…….”
…인권위에 확 고소해 버릴까? 밥도 안 주고 사람을 가둔 채로 취조한다고?
짜증이 나서 뚱한 얼굴로 노려보자 비죽이 비웃음을 지어 보인 남자가 담배를 새로 하나 빼문 채 조사실을 나갔다.
하.
지치는 기분에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로 목을 걸친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회색빛의 거친 천장은 차갑고 삭막했다. 방 전체적인 분위기도 거뭇한 회색빛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라 위압감을 주었다. 잘못한 게 없이도 주눅이 들 분위기였다.
“…피곤하다.”
취조하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남자가 들이미는 증거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그래서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기관장이 밤나비 탈주 사건을 내게 뒤집어씌울 생각이란 사실을.
#67
현재 기관장에 대한 기사 중 가장 크게 공분을 사는 부분은 밤나비의 탈옥에 따른 오성파의 재건에 대한 공포였다. 탈옥 전에 시선을 끌기 위해 일어났던 무차별적 테러가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명 피해가 적은 편이었어도 피해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고, 그 피해자들이 인터뷰에 발 벗고 나서면서 오성파에 대한 공포가 만연해 있었다.
그리고 이때를 노린 채애현은 그 일을 내게 뒤집어씌운 뒤 사건을 반전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럼 한태화도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줄 테니까.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다 슬그머니 상체를 바로 세웠다. 닫힌 문을 살펴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맞은 편에 쌓여있던 증거들을 앞으로 끌고 와 살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부 원본이 아닌 사본들이라 내가 본다고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분명 보다 보면 무언가 조작된 증거임을 밝혀낼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빠르게 서류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안 됩니다!”
“막아!”
“저, 미친놈이!”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문틀이 문과 함께 주변 벽을 뜯어내며 떨어져 나갔다.
…설마 아니겠지?
그 우악스러운 모습에 아연해진 얼굴로 눈을 굴리는데, 그 문 앞에 익숙하면서도 무척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인물이 서 있었다. 역시 설마는 매번 사람을 잡는다.
“…한태화?”
“…요한.”
“…….”
쟤가… 여길 왜 왔지?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나 아직 연락 못 했는데?
찡그린 얼굴로 눈을 깜박이는 사이 그런 한태화의 뒤로 검은 양복을 입은 감찰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그 위협적인 모습에 몸을 반쯤 일으켜 세우며 위험하다고 소리를 치려는데, 달려들었던 사람들이 무형의 힘에 부딪혀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아, 잠깐 잊고 있었다. 세가 내에서 저놈을 이겨 먹을 사람은 없다는 걸. 물리계열 중 유일한 S등급의 에스퍼는 그렇게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조사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쫓아 들어오려던 사람들은 문 근처에서 갑자기 치솟아 오른 불길에 당황하여 얼른 뒤로 물러나며 곤란하게 표정을 구겼다. 저 불을 끄려면 적어도 같은 등급 대의 상반된 물 능력자를 데려와야 하는데, 기관 내에 그런 에스퍼가 있을 리 없었다.
허탈감을 느끼며 긴장을 푼 채 반쯤 일으켜 세웠던 몸을 의자로 주저앉혔다. 그러자 빠르게 다가온 한태화가 상체를 숙여 멋대로 남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음, 쳐다보는 눈이 많은 이곳에선 심히 부담스러운 자세구나, 태화야.
“요한,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누가, 감히, 요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