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22/49)
  • “어려웠죠. 어렸던 저는 더 어려웠고요. 그 날 이후로는 힘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도 해보고 했는데… 어려서 그런가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힘이 컨트롤 되지 않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힘을 쓰고 있었죠. 그게 숨을 쉬듯 당연한 거라서… 숨을 참는 방법을 알 때까지는 계속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가이딩이 필요했고, 같은 일들이 반복해서 벌어졌어요.”

    “음… 가이딩에 대한 거부는 그 감각이 싫어서 그랬던 거라 치고, 그럼 가이드에 대한 혐오는 왜 있는 건데?”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가이딩 뿐만이 아니라 가이드도 싫어한다는 거.”

    놀란 듯 물어오는 한태화의 모습에 깜박깜박 눈을 깜박였다. 그걸… 왜 몰라? 어떻게 모르지?

    “네가 딱히 숨기려고도 안 했잖아. 있는 대로 다 티 냈으면서 어떻게 알았냐는 소리가 나와?”

    “…보통은 가이딩을 싫어해서 가이드도 싫어하는 줄 알던데요.”

    어깨에 기대고 있던 한태화가 얼굴을 들어 올리는 기척에 슬쩍 고개를 돌리자 코앞에 그 예쁘장한 얼굴이 놓여있었다.

    “다들 눈치를 밥 말아 먹었나 보지.”

    지나치게 가까운 얼굴이 민망해서 부러 더 퉁명하게 대꾸하며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자 다시금 한쪽 어깨 위가 묵직해지며 허리가 놈의 양팔에 끌어안겼다.

    “요한 눈치가 빨라서 그런 거 같은데요.”

    그럴 수도 있고. 삐죽 어깨를 추어올리며 수긍하자 한태화가 작게 웃음소릴 냈다. 고아인 채로 오래 살다보면 눈치는 늘 수밖에 없다. 그게 생존법이니까.

    “그래서 가이드는 왜 그렇게 싫어하는데?”

    “…역겨워서요.”

    “뭐?!”

    우리가 왜 역겨워!! 눈에 힘을 준 채 고개를 돌리려는데 놈에게 끌어안긴 몸이 꼼짝도 하질 않아 한태화를 떼어놓을 수가 없었다. 이 새끼가! 진짜 숨 쉬듯 힘을 쓰네?!

    “이거 놔 봐! 가이드가 뭘 어쨌다고 역겹대!”

    “폭주 중이면 그렇게 멋대로 가이딩 해도 돼요?”

    “…뭐?”

    “살려달라 한 적 없어요. 오히려 가이딩을 멈춰 달라 부탁했죠. 그런데도 강제로 링크를 하고, 가이딩을 했어요. 그리곤 자신이 살렸다는 뿌듯한 얼굴로 날 보죠. 마치 오롯이 날 위해서 그랬다는 듯 말이에요. 그런 이기적인 만족감이 역겨웠어요. 에스퍼를 살리는 것만이 가이드의 삶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근데 그게 무슨 천명이라도 되는 양 사명감을 가지고 나대는 꼴이-.”

    “야!”

    결국 소리를 지르며 힘을 써 놈을 떼어냈다. 이건 도저히 같은 가이드로서 묵과해 줄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게 진짜.

    “사명감이든 자기 만족적 이기심이든 그게 왜 나빠? 에스퍼야 지가 힘을 쓴 대가로 폭주를 일으키는 거고, 그것만 아니면 네 말대로 능력을 펑펑 써대며 편히 살겠지! 근데 가이드는? 가이드는 무슨 죄냐? 자기가 쓴 힘 때문도 아닌데, 그저 폭주 하나 막아 보겠다고 힘을 나눠주는 거라고! 자칫하면 에스퍼의 세계에 먹혀 코마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데 재능 기부조로 봉사해 주는 거란 말이다! 그런데 고작 그런 만족감 하나 가졌다고 욕을 들어야겠냐? 사명감이 없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하냐고! 아니, 왜 하겠어?!”

    내 격한 반응에 놀랐는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듣고만 있던 한태화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을 되받아쳤다.

    “그래서 돈 많이 받잖아요. 같은 등급이라도 에스퍼보다 가이드가 더 많이 받는 걸로 아는데요?”

    “그거야 에스퍼들이 하도 여기저기 부수고 다니니까 보험료가 많이 나가서 그러는 거고! 아니, 그 전에 너는 한 번이라도 가이드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에스퍼가 일으킬 피해를 막아 보겠다고 가이딩 해주는 가이드의 마음을 생각해 본 적 있냐고. 가이드 계약이 왜 당사자 계약 원칙인지도 모르지? 가이드가 상대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없으면 가이딩도 없으니까 그런 거라고. 가이드의 허락 없인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가이드의 대표라도 된 양 격분해서 소리치자 단단히 표정을 굳히고 있던 한태화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어졌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네요. 내 상황이 급급해서 가이드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분명 가이드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근데… 그렇더라도 강제 가이딩은 좀 아니지 않아요? 그게 폭력이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요?”

    “…그건….”

    격분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있다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도로 소파 위로 앉았다.

    세가에 들어와 인턴직 요원으로 활동하는 가이드들은 모두 교육을 받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교육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바로 공익을 위한 도덕성이었다.

    에스퍼의 폭주는 인재다. 그것도 아주 무섭고 강력한 인재.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건물이 무너지면 그만큼의 인프라와 세금이 낭비되었고, 시민들의 안전 역시 보장받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강제 가이딩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아니, 그런 것이라고 배운다. 모두를 위해, 그리고 아무 잘못이 없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세뇌당하듯 학습 받는 것이다.

    그러나 한태화의 말대로 에스퍼의 입장에서 강제 가이딩은 폭력에 가까운 행위였다.

    “폭주로 죽기 싫은 에스퍼들은 알아서 가이딩을 받겠죠. 근데 가이딩을 거부하는 에스퍼들에게까지 강제 가이딩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뭔데요. 사랑하는 가이드를 잃고 다른 이의 가이딩을 거부하며 도망 다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에스퍼들이 제법 많다는 건 요한도 알고 있죠?”

    “…….”

    물론 안다. 그 이유도 알고.

    에스퍼는 국가적으로 자원 취급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한 에스퍼일수록 폭주로 잃는 것을 아까워해 파트너를 잃고 실의에 빠진 에스퍼들에게 강제로 가이드를 연결 시킨다. 에스퍼도, 졸지에 그사이에 끼이게 된 가이드도 모두가 고통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에요. 처음엔 가이딩을 거부하며 정중히 요청했죠. 내버려 둬 달라고. 폭주 증상이 나타나면 알아서 피해가 가지 않게 삶을 마감하겠다고.”

    “…….”

    “그랬더니 내 가족들을 매수해서 사람한테 마취총을 쏴 재운 뒤에 억지로 가이딩을 해놓더라구요.”

    “…….”

    “그래서 사실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려고 더 멋대로 행동했어요. 일부러 내내 가이딩을 거부하다 폭주 증상을 보여줬죠. 너희가 날 가만히 내버려만 뒀어도 이런 위험은 없었을 거란 걸 보여주고 싶어서.”

    세가에서도, 정부 차원에서도 S등급의 에스퍼를 쉽게 포기할 순 없었을 것이다. 정식으로 등록만 한다면 에스퍼와 가이드의 인권을 보호를 해주지만, 그게 A등급을 넘어가면 종종 상식 밖의 일들이 벌어진다는 소문 역시 있었고. 그리고 한태화는 그 상식 밖의 일을 무척 많이 겪은 듯했다.

    “그러다 최근엔 힘이 강해진 내게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손을 뗀 거예요. 그제서야 말이에요.”

    “…….”

    “요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편히 삶을 마감했겠죠.”

    한태화의 그 마지막 말이 어쩐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죽으려던 놈을 억지로 살려 놓은 걸까. 순간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굳게 입을 다문 나를 보며 살짝 웃어 보인 한태화가 내 손등 위로 손끝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처음 만났을 때 요한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링크를 열라고 했던 거 기억나요?”

    갑자기 바뀐 화제에 당혹스러워할 새도 없이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처음 만났을 때라….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 기억이 생생했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대도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좀 인상적이었어야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손등에 닿아있던 손끝이 미끄러지며 손이 잡혔다.

    “그때 저절로 링크가 열렸죠. 절대 열지 않으려던 마음과는 다르게 그냥 열려버렸어요. 나중에 깨어나고 나서도 그게 이상해서 한참을 고민했는데…. 요한, 내가 왜 그랬을 것 같아요?”

    “…네가 살고 싶었으니까.”

    답은 쉬웠다. 그 당시에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녀석의 무의식은 살고 싶어 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름을 부르자 저절로 링크를 연 것이라고.

    “맞아요. 나도 그거 외엔 답이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으로 깨달았죠. 아, 나는 살고 싶었구나, 하고. 근데 지금까지 그 어떤 가이드도 내가 그 감정을 느끼도록 기다려주지 않았어요. 요한이 처음이었죠. 링크부터 가이딩까지, 모두 내 의견을 구하듯 시간을 주고 기다려 준건.”

    #51

    “…태화야, 그건….”

    “그래서 요한을 찾기 시작한 거예요. 나한테 처음 그 감정을 알려준 사람이 궁금했거든요. 그리고 사실 다른 속셈도 있었어요. 링크를 열어주길 기다렸다가 가이딩만 마친 후에 바람처럼 사라진 사람.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자신의 감정에 취해 나를 살려냈다는 만족감도 내보이지 않았던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원할 때만 가이딩을 받을 수 있겠다, 필요할 때만 잠깐 이용하고 내가 싫다고 하면 그대로 방치해 줄 사람이겠구나, 그렇게 생각해서 요한을 찾아 나섰어요.”

    “…….”

    뜻밖의 말이었다. 왜 그렇게 무섭게 찾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히나 했더니… 그런 속셈이 있었던 거였구나. 어쩐지 맥이 풀리는 기분에 흥분으로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어깨를 내렸다. 그러자 한태화가 애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어깨 위, 옷 위로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근데 만날수록 재밌는 거예요. 티격태격 말싸움을 하는 것도, 다 아는데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도, 요한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도 정말 다 재밌고 즐거워서… 정말 내가 살고 싶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바보같이 내 상태를 잊은 거고요. 위태로운 상황이란 것도 잊고… 샐러맨더에게 잡혀 있는 요한을 보자마자 화가 나서 힘을 썼어요. 그러다 폭주가 시작됐고, 이제야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다 틀렸구나 했죠. 근데 그때 또다시 요한이 날 구해준 거예요. 처음으로 살고 싶다고 느낀 순간, 내 눈앞엔 또 요한이 있었죠.”

    “…….”

    “기적 같았어요. 그 모든 게 다.”

    손등 위로 가볍게 닿아있던 손끝이 내려와 손등을 덮으며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이 사람이면 되겠다, 아니, 이 사람밖에 없구나, 나를 이렇게 살게 만들어 줄 사람은 요한뿐이구나- 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보통 에스퍼가 가이드에게 느낀다는 그 감정을 나는 그제야 안 거예요.”

    “…….”

    “내가 지금껏 품고 있던 생각들이 전부 다 핑계였다는 사실도요. 나는 그냥 요한을 찾아 곁에 두고 싶었던 거예요. 그로 인해 세가에 이용당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냥 이용당해 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요한 외엔 아무것도 의미가 없어졌으니까요. 요한만 곁에 있어 주면 돼요.”

    어쩌다 이 대화가 이렇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이게 뭐라고 얼굴에 열이 오르나. 벌게졌을 게 뻔한 얼굴을 한태화의 시선을 피해 돌리며 눈을 깜박였다. 아까 수혁이로부터 고백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무섭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미치겠네, 진짜. 곤란함에 입술을 깨물었을 때였다.

    “요한, 사랑해요.”

    와-.

    순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당황으로 한태화 쪽은 바라보지도 못한 채 눈만 빠르게 깜박였다.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 좀 전의 편했던 분위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까처럼 정강이를 까볼까? 사람이 심하게 당황스러우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만 들었다.

    “그… 각인 효과 같은 거… 아닐까. 처음, 그, 마음에 드는 가, 가이딩을 해줘서-.”

    떠벌떠벌. 스스로가 바보스러울 만큼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입을 타고 흘러나갔다. 머릿속이 하얘지니 얼간이처럼 떠드는 입만 남아 버린 듯했다.

    “요한, 제가 요한 앞에서 애처럼 굴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애는 아니에요. 제 감정을 모를 만큼 바보도 아니고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이게, 이런 건 원래 신중하게 결정을 해야 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널 생각해서-.”

    “제 생각 말고요, 저는 요한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뭐야, 이 돌직구는. 뭐라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그저 눈만 깜박이고 있자 한태화가 작게 웃음소릴 내더니 봐줬다는 듯 어깨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시간 줄게요. 그러니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해 주세요. 그리고 그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잠시 녀석의 말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 잠깐을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다음 말을 보챘다.

    “…긍정적이면, 뭐?”

    “우리 전속 가이드 계약 맺어요.”

    “…….”

    “걱정 안 해도 돼요. 요한은 제가 지킬 거니까요.”

    어째 말을 들을수록 더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바로 했다. 그런 나를 더 보챌 생각은 없는지 한태화도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눈을 감았다. 그에 잠시 머뭇거리다 손을 들어 놈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아직 감정을 입 밖으로 내보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봐, 우리 붕어.

    말을 대신한 손길만이 한태화의 머리를 오랫동안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예감이 들었다. 나는 얘의 전속 가이드가 되겠구나, 하는 그런 예감.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이다.

    ***

    “아, 너! 그 가이드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고쳐! 알았어?”

    도끼눈을 한 채 근엄하게 다그치는 요한을 보면서 한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네.”

    “…너무 순순히 나오니까 별로 믿음이 안 가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태화는 요한의 어깨를 끌어안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요한 외엔 누가 뭘 하든 이젠 정말 상관없다고. 요한이 다른 사람 가이딩만 안 하면 저는 정말 누가 뭘 하든 관심이 없어요. 누가 누굴 강제로 가이딩을 하든 말든 내가 알게 뭐예요.”

    “아니… 그것도 별로 바람직한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씁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요한의 목소리에도 한태화의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참 이상한 부분에서 쓸데없이 정의롭고 도덕적인 연인이라고, 요한이 들었다면 누가 연인이고 화를 냈을 만한 생각을 하며 한태화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하루 끝에 서요한과 한태화가 서로 함께 있었다. 그는 정말 그것으로 족했다.

    ***

    생각해볼 시간을 주겠다던 한태화의 말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동안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오성파 놈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사고를 쳐댔기 때문이다.

    한태화의 감시와 방해로 보조 가이딩 업무를 할 수 없게 된 나는 덕분에 현장팀 차출 요청이 들어오면 무조건 배정되고 있었다. 그런데 오성파 놈들 때문에 현장 지원 요청이 많아져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생각이란 걸 할 새가 없었다. 피곤해서 집에 도착하면 뻗기 일쑤였으니까. 그나마 오성파와 관련된 일들이라 현장에 나가면 항상 청산팀이 있어 한태화의 그 잘난 얼굴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형, 이게…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아, 수혁아. 마침 잘 왔다. 이 아이 좀 받아봐.”

    오성파 놈들은 이번에도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벌이는 세 번째 테러였다. 서울 외 다른 지역에서 터진 테러까지 합치면 그 수가 훨씬 더 늘어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체로 저녁 시간 후, 직원들이 많이 빠져나간 회사 건물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 인명 피해가 적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고층에서부터 폭탄이 터지는 경우가 많아 대피할 시간도 벌 수 있었고. 그러나 어쨌든 폭탄 테러였다. 건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폭탄이 터지는데 주변으로 피해가 가지 않을 리 없었다.

    오늘도 요원들을 도와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일을 돕고 있던 나는 폭탄이 터진 여파로 무너질 듯 금이 간 옆 건물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조심해서 건물 안으로 진입해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나가려는데 어느새 떨어져 문 앞을 막아버린 철근에 당황해하던 순간이었다.

    “위험하게, 형이 왜 여기 있어요!”

    무너진 철근 사이로 기어 나오는 아이를 받아든 차수혁이 화가 난 얼굴로 끊임없이 잔소리를 했다. 아이를 먼저 내보내고 나서 철근 사이로 몸을 빼내고 있던 나는 그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손을 들어 근처에 있던 구급대원을 불렀다. 달려온 구급대원에게 아이를 맡기자 그가 얼른 구급차와 경찰차가 모여있는 곳으로 아이를 안고 갔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서 힘이 빠져 길가로 철푸덕 주저앉았다.

    “제 말 듣고 있어요?”

    “어. 귀가 따가울 지경이니까 잠깐 좀 있어 봐. 숨 좀 돌리게.”

    “…왜 안 보이나 했더니만, 대체 지원팀 사람이 왜 현장에서 뛰어다니고 있냐고요.”

    “후우-, 실적에 눈이 멀어 그렇지 뭐. 이미 한번 겪어 봤잖아?”

    웃으며 돌아보니 클럽에서의 일을 떠올린 듯 녀석이 찡그린 채 단단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손 부족한 게 뻔히 보이는데 그걸 보고도 노냐? 손 하나라도 보태면 집엔 일찍 가겠지.”

    먼지가 묻어 더러워진 검은 유니폼 상의를 털어내며 성의 없이 대꾸하자 표정을 굳히고 있던 놈이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원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일어나 봐요.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응, 없어. 멀쩡해. 그냥 애만 데리고 나온 거야. 대체 이런 곳에 왜 애가 있냐고.”

    “형 들어간 건물 2층에 키즈카페가 있었으니까요.”

    “아…, 그랬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주는 차수혁 덕분에 한결 편하게 일어나며 흰 면장갑에 묻은 먼지를 박수를 치듯 털어냈다. 하필 싸구려 흰 면장갑을 주니 이렇게 현장만 나왔다 하면 장갑 꼴이 말이 아니다.

    “임시 본부로 가요. 위험하게 이런 데 있지 말고.”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대충 상황은 마무리돼가고 있지?”

    “예.”

    “가자. 우리 둘이 붙어있는 거 보면 한태화 새끼가 또 도끼눈을 뜨고 노려볼 테니. 너는 나 봐도 모르는 척하라니까, 왜 계속 알은 척을 해서 상사한테 찍혀. 마조히스트야?”

    #52

    툭툭, 바지에 묻은 먼지까지 털어낸 뒤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옆으로 따라붙은 수혁이가 씨익 하고 심술궂게 웃는다.

    “당연히 일부러 그러는 거죠. 보고 열 좀 받으라고. 형만 보면 좋다고 들러붙는 거 보는 제 기분도 그리 좋은 건 아니거든요. 걔도 좀 당해봐야 해요.”

    “…중간에서 나는 무슨 죄냐? 작작해라. 이거 은근 또라이라니까.”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자 차수혁이 어깨를 한번 추어올리며 먼저 본부 쪽으로 달려갔다. 그 뒤를 느긋하게 따라가니 이제는 우리 지원팀 팀장님보다 더 자주 보는 것 같은 현장팀 팀장님이 본부 안에 설치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하세요? 무슨 문제 있어요?”

    한참 동안 모니터를 보고 있는 모습에 따라서 목을 빼자 품을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문 팀장님이 미간으로 짙은 주름을 만들어냈다.

    “좀 이상해서.”

    “뭐가 이상한데요?”

    자연스럽게 팀장님이 건네는 담배를 받아 들고 입에 물자 얼굴을 확- 구긴 수혁이가 얼른 몸을 움직여 자리를 피한다. 저 새끼, 긴장할 때마다 담배를 피운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오히려 녀석은 담배 연기 혐오자에 가까웠다. 그걸 긴장할 땐 어쩌고 하며 앙큼하게 거짓말을 한 거다. 단지 나랑 얘기를 좀 더 나눠볼 요량으로.

    “며칠 전부터 계속 지켜봤는데 이게 액션만 크지, 실질적인 피해는 적단 말이야.”

    “피해가 적으면 좋은 거 아니에요? 그게 왜 문제-.”

    “요한!! 여기 있었네요!”

    그 순간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한태화가 활짝 웃으며 양팔을 벌린 채 다가왔다. 그러자 짜증스러운 얼굴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팀장님의 눈치를 살피며 놈의 벌어진 양팔을 잡아 내렸다. 그러자 대번에 한태화의 눈이 뾰족해진다.

    “또 담배 피우고 있었어요? 건강에 나쁘다니까요.”

    “…현장에 있어야 할 놈이 여긴 왜 왔는데.”

    요사이 담배를 피울 때마다 눈치를 주기 시작한 한태화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며 묻자 그제야 아, 하고 본부로 온 이유를 떠올린 놈이 팀장님을 돌아보았다.

    “뭐가 좀 이상해서요. 지난번부터 테러가 너무 작위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너도…? 팀장님도 똑같은 소릴 하던데.”

    방금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소리에 팀장님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담배를 문 채 아직까지도 모니터를 살피고 있던 팀장님이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머리를 벅벅 긁어대는 손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거칠었다.

    “이상하지. 원래는 최대한 기관 눈을 피해 일을 꾸미던 놈들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눈에 띄게 나서는 것도 이상하고, 그럴 놈들이 아닌데 사람들 피해가 적은 곳만을 노리는 것도 이상하고. 이건 마치-.”

    “일부러 시선을 끄는 것 같죠. 다른 데로 신경을 돌리려는 것처럼.”

    나직한 한태화의 말에 놀라서 놈을 쳐다보는데, 팀장님도 다시 한번 끙하고 앓는 소리를 내다 동조하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에서 나는 멍청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시선을 끌려고 한다고? 왜?

    그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달려온 수혁이가 다급하게 한태화를 불렀다.

    “팀장님!!”

    빠르게 달려온 수혁이는 곧장 3대가 나란히 설치된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 위성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다.

    “이걸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잔뜩 굳은 얼굴의 수혁이가 튼 화면에선 뉴스 특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듯 부감도처럼 보이는 커다란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에서부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의 좌측 상단엔 작은 글씨로 『천안 구치소 화재, 죄수들 탈옥』 이란 글자가 떠 있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시선을 빼앗은 것은 화면의 아랫부분에 보이는 붉은 박스 안에 쓰인 하얀 글자였다.

    『오성파 밤나비와 샐러맨더 탈옥』

    “…….”

    “…….”

    “…….”

    순식간에 사위가 조용해지며 본부에 있던 모두가 말을 잃은 사람들처럼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머릿속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성파의 수장, 밤나비가 탈옥했다는 것, 그것은 짧았던 평화가 깨어졌다는 소리였다.

    ***

    세가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유야 뻔했다. 오성파의 수장인 밤나비의 탈주가 그 원인이었다.

    그 덕분에 세가(CEGA)를 책임지고 있는 기관장님은 검찰에 불려갔다가 기자 회견까지 열어야 했다. 밤나비가 왜 아직까지 감옥이 아닌 구치소에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과 어째서 샐러맨더를 밤나비가 있는 구치소에 수감 했는지를 해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가에 속한 에스퍼나 가이드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금이나 축내는 유명무실한 기관이라는 비난과 함께 우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 기자들은 이때다 싶었는지 기관 소속 에스퍼들에 의해 피해가 컸던 사건들을 끌고 와 앞으로 얼마나 더 피해가 더 커질 것인가에 대한 예측 기사를 써대고 있었다. 당연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었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이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순간 오성파의 테러가 잠잠해졌다. 마치 육식 동물이 사냥 직전 사냥감을 물색하며 숨을 죽이듯 말이다.

    그러니까 현장 팀장님이나 한태화가 느꼈던 것처럼 요사이 발생한 테러들이 정말 시선 끌기용 이었다는 말이 된다. 밤나비와 샐러맨더가 탈옥할 때 투입할 에스퍼가 없어 대응이 늦었다는 점만 봐도 그랬다. 그래서 현재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었고.

    “으아- 오늘도 기관 앞에 시위대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었어요. 어제 지원2팀의 어느 가이드는 퇴근하다 계란 테러도 당했다는데, 그게 이제 남 일이 아니겠는데요.”

    서울 북부 지부 쪽으로 외근을 나갔다 돌아온 상원이가 앓는 소리를 내며 들어오자 사무실 내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여튼 저 눈치 없는 새끼.

    “그냥 계란이면 맞아. 썩은 거면 피하고.”

    “선배는 그게 구분이 가요? 그리고 맞고 싶어서 맞나? 던지니까 맞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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