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49)
  • 21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내내 허리에 척추가 없는 생물처럼 들러붙어 있던 한태화가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러자 눈앞에 단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걸 보고 얼추 예상했던 바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술 처먹고 필름 끊기면 집은 못 찾아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한태화님, 확인되셨습니다.

    근데 이건 좀 놀라운데? 한태화가 문 앞에 서자마자 기계음이 들리더니 저절로 문이 열렸다.

    “이게 뭡니까?”

    “인공지능 시큐리티요. 이번 우리 회사 신제품이라는데, 상용화 전에 시범으로 사용해 달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근데 제법 편해요.”

    “…….”

    “요한 집에도 하나 달아 줄까요? 안 그래도 방범은 잘되나 걱정됐는데.”

    “…아뇨. 거기 달긴 좀 과하네요.”

    기관 사원 사옥의 12평짜리 원룸에 달긴 심히 과한 장치였다. 둥글게 거절하며 한태화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서니 현관 센서 등이 켜지며 불이 들어왔다. 남자 혼자 사는 집답지 않게 깔끔한 모습에 머뭇대는 사이 슬리퍼를 내준 한태화가 편하게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동선을 따라 켜지는 센서 등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 뒤를 천천히 따라 들어가니 복층 형식의 높은 천장이 보이며 시원하게 확 트인 거실이 나타났다.

    “…집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요한이 들어온다고만 하면 저는 언제든 환영이에요.”

    “아뇨, 그 말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이 집이 이제 제 거가 될 수도 있단 거잖아요. 그걸 생각하니 좋아서 말입니다.”

    “…전속 가이드 계약을 맺으면 그렇죠.”

    “음.”

    여유롭게 집 안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워하자 뒤에서부터 커다란 몸이 등으로 달라붙는다.

    “그럼 지금 당장 전속 계약서 가져올까요?”

    이놈이, 그 새를 못 참고 또?

    “그건 임시 가이드 끝나고 생각해 보기로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리고 일단 좀 씻읍시다. 현장에서 바로 와서 찝찝해요.”

    “…같이요?”

    어허, 요 요망한 놈이?

    “미쳤어요?”

    “-쳇. 요한은 저기 게스트 룸에 있는 욕실 써요.”

    입을 삐죽이 내민 한태화가 가리킨 방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기운 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먹히지도 않을 연기를 하던 놈이 제 방으로 들어갔다.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차다 모르는 척 놈이 알려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옅은 파스텔톤의 하늘빛 방에는 짙은 푸른색 침대와 간이 테이블, 옷장 등이 놓여 있었다. 아무리 봐도 게스트 룸 치고는 지나치게 좋았다.

    진짜 확 들어와 살아? 그런 생각이 들 만큼 깨끗하고 좋은 방의 모습을 뚱하게 바라보다 일단 욕실로 짐작되는 곳의 문을 열었다. 내 집 욕실의 5배는 돼 보이는 크기에 작게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이놈의 세상은 참 불공평하기도 하지. 무슨 놈의 손님방이 내 집만 하더니, 욕실은 하얀 대리석으로 번쩍거린데? 과해. 그렇게 작게 투덜거리며 옷을 벗어 한쪽 편에 개어두며 샤워 부스로 가서 물을 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설마 이번에도… 나한테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때야 응급으로 했던 거니까 그랬다 쳐도 이번에도 설마…? 갑자기 따뜻한 물을 쏟아지고 있었는데도 목덜미를 덮친 한기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에이, 설마. 그 새끼가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겠지.

    놈의 양심을 믿어보기로 했다. 진작 엿 바꿔 먹은 걸 모르고.

    ***

    샤워를 마친 후 욕실에 비치된 샤워가운을 입고 나와 입었던 옷을 테이블 위로 올려두었다. 또 입긴 찝찝한데. 샤워 후 욕조에 물을 받아 짧게 반신욕까지 즐기고 났더니 그 위로 입었던 옷이 닿는 게 불쾌했다. 혹시나 싶어 맞은편에 놓인 붙박이장을 여니 텅 빈 장이 하얀 속을 내보였다. 역시, 아무것도 없네. 아쉬워하며 문을 닫으려는 때,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났다.

    “네.”

    “요한, 다 씻었어요?”

    머리에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를 단 한태화가 열린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다 장 앞에 선 내 모습을 쭉 훑어보더니 냉큼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서 뭐 해요?”

    “…입을 만한 게 있나 살펴보던 중입니다. 근데 아무것도 없네요.”

    “구색만 갖춰 놓은 거지 집에 사람을 들일 생각이 없어서 안 채워놨어요. 근데 왜 옷을 입어요?”

    “…….”

    뭐부터 물어야 할까. 사람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놈이 나는 왜 데려왔는지를 먼저 물어야 하나, 당연히 입어야 할 옷을 왜 입냐고 묻는 속셈이 뭔지를 먼저 물어야 하나. 움츠러든 손으로 열었던 옷장 문을 닫으며 몸을 돌리자 마찬가지로 샤워 가운 하나만을 걸친 한태화가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하, 저 갓 딱지 뗀 동정새끼가.

    “…씻고 나왔더니 추워서요.”

    딱 알맞게 훈기가 도는 방 안의 온도에도 일부러 그리 말하자 불쑥 다가온 한태화가 남의 몸을 멋대로 안아 들었다.

    “그럼 제 방으로 가요. 거기가 여기보다 더 따뜻해요.”

    “…태화야, 어디서 자꾸 개수작이지?”

    “…티 나요?”

    “그럼 안 날까?”

    “요한은 눈치가 너무 빨라요.”

    아니, 이건 내 눈치가 빠른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대놓고 수작질을 하고 있는 건데. 그러나 그런 타박에도 내 몸을 내려놓지 않은 한태화는 후다닥 게스트 룸을 나가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게스트 룸과는 달리 채도가 낮은 어두운 톤의 방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조차도 까만 시트인 곳에 날 내려놓은 한태화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눈을 반짝였다.

    “집에 왔으니까, 이제 약속 지킬 거죠?”

    안 지키면 큰일 날 분위기다.

    “…집, 집, 노래를 부르더니.”

    한심해하는 말에도 모르는 척 고개를 갸웃해 보인 놈이 슬쩍 손을 뻗어 가운을 묶고 있던 끈을 풀었다. 그에 손등을 세게 내리쳤다.

    “아야-.”

    “어딜, 일단 상태부터 좀 봐. 손.”

    #37

    “…….”

    내 말에 눈치를 보던 놈이 슬쩍 손을 내민다. 지난번처럼 쉽게 가이딩을 끝낼까 봐 불안해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러나 링크를 통해 살펴본 한태화의 상태는 그리 만만하게 가이딩을 끝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살펴보니 놈의 몸이 따끈따끈했다. 따뜻한 물에 씻고 나와 그런 줄 알았는데 힘을 많이 써서 몸에 열이 오르고 있는 거였다. 그러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제대로 된 가이딩이 필요하단 의미였다. 그렇게 힘 낭비를 해대더니, 결국 성공했네, 한태화.

    “어차피 딴 거 하자고 해봐야 말도 안 들을 거고… 대신 이 세우지 마. 알았지?”

    내 당부에 한태화가 고개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심쩍은 얼굴로 그를 살피다 가운 자락을 풀며 슬쩍 고개를 돌리자 한태화가 빠르게 다리 사이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쩐지 목부터 뜨거워지는 느낌이 나며 소름이 돋았다.

    “무조건 넣으려고 하지 말고 일단 혀부터, 읏.”

    핥는 거부터 시키려던 의도와는 달리 다리 사이로 파고든 놈이 대뜸 아래를 물어왔다. 시작부터 앞니에 성기가 긁히자 허리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당황하여 다리를 움츠리다 놈의 머리로 손을 내렸다. 손끝에 젖은 머리카락이 느껴지더니 두피 위로 손가락이 미끄러지자 어깨를 떨던 놈이 기어코 이를 세웠다.

    “읏!”

    “악!”

    “읍-.”

    “빼, 빼라고! 아! 아파! 이 미친!”

    머리며 이마며 뺨을 닥치는 대로 밀었다. 손에 닿는 모든 부분을 잡고 밀어내니 그제야 놈의 입 밖으로 성기가 뱉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예민한 살갗 위로 생경한 이의 감촉이 아프게 느껴졌다. 악, 씨발!

    “아프잖아, 이 붕어 대가리야! 내가 이 세우지 말랬지!”

    “아, 아니, 요한이 만져주니까…. 저도 모르게… 너무 좋아서….”

    당황한 얼굴의 한태화가 얼른 고개를 숙이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아파!

    “안 해! 한 번만 더 빨겠다느니 어쩌니 하기만 해! 진짜 죽는다, 너!”

    “…다, 다시 한 번만-.”

    “이걸 콱!”

    아프니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다리 사이에 파고든 놈을 무릎으로 밀어내다 아예 발로 차내며 아직도 욱신거리는 성기를 손에 쥐고 엎드렸다. 숨이 차오를 만큼 진짜 눈물 나게 아팠다. 이럴 땐 보통 슬픈 생각, 엄마 생각을 하라던데 그거 다 거짓말이다. 진짜 너무 아프면 아무 생각도 안 나니까.

    “으, 아파아-.”

    “요, 요한,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

    괜찮냐고? 많이 아프냐고? 어디 한번 네 것도 물려볼래? 이를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며 노려보자 흠칫하고 몸을 떨던 놈이 배시시 하고 겸연쩍게 웃어 보인다.

    “미안해요. 생각보다 좀 커서… 이제 크기 알았으니까 내가 연습해 올게요. 그러니까 다신 안 한다는 말은 하지 마요, 네?”

    뭐?! 저 똥강아지 새끼가!

    “이딴 걸 누구한테 연습할 건데?! 딴 놈이라도 만나게?”

    “아, 아뇨. 내가 요한 말고 누굴, 어떻게 만나요. 손에 닿는 것도 싫은데. 그냥 아무거나 큰 거 물고 연습을… 설마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 요한?”

    놈이 눈을 반짝 뜨며 고개를 휙 들이민다. 그 얼굴을 손바닥으로 밀어내며 짜증스레 혀를 차는데도 기대로 물든 얼굴은 찌푸려지지 않았다.

    “뭐래. 네가 딴 놈 만나면 나는 딴 놈 가이딩 할 건데 질투는 무슨.”

    “…그게 질툰데… 근데 딴 새끼 누구요? 어떤 새끼요?”

    그 말에 또 맛이 갔는지 눈을 번들거리며 집요하게 물어오는 놈을 난감하게 바라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놈만 만났다 하면 내가 코미디를 찍고 있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니라고!

    “태화야.”

    “네, 요한.”

    “그-.”

    “아니, 다른 말 하기 전에요, 딴 새끼 누구 가이딩 할 건데요? 방금 전에 그 말 하면서 누구 떠올렸어요? 차수혁? 아니면 또 딴 새끼가 있어요?”

    “…알면 뭐 하게?”

    “당연히 죽, …아니, 미리 좀 알아두게요. 혹시 모르잖아요.”

    죽 뭐? 찡그린 얼굴로 한태화를 가만히 살피다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얘가 이상한 데서 집요해지는 성향이 있으니까.

    “아무도 생각 안 했어. 그냥 한 말이야.”

    “…거짓말.”

    “어허, 의심 많은 놈은 싫어한다니까.”

    “…….”

    가늘어진 눈이 의심스럽게 쳐다봐오는 것을 손바닥으로 얼굴을 밀어냈다. 사실 지금 가장 중요한 얘기는 따로 있었다. 펠라라도 잘해주면 분위기를 봐서 가이딩을 빨리 끝내려고 했는데 그건 이미 물 건너간 것 같다. 이놈 새끼는 S등급인 거 외에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어. 이런 게 어떻게 S등급이지?

    “…태화야.”

    “요한은 꼭 내가 하기 싫어하는 거 시킬 때 그렇게 부르는 거 알아요?”

    “…….”

    내가 그랬나?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그럼 너무 치사해 보이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말에 슬쩍 미간을 찌푸리자 침대 위로 팔을 올린 채 턱을 괴고 있던 놈이 해사하게 웃으며 톡톡 무릎 위를 두드렸다.

    “그래서, 무슨 얘길 하려고요?”

    “…아니, 그….”

    “네.”

    “가이딩 시작하기 전에 말이야… 누, 누가 넣을 건지, 크흠, 생각은 해봤어?”

    그 물음에 침대 위로 얼굴만 올린 채 웃고 있던 한태화가 당연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아, 요한 혹시… 나한테 넣고 싶어요?”

    참, 별거 아니라면 별것도 아닌데, 얼굴로 열이 몰렸다. 보나마나 뻘게졌을 게 뻔해서 손등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문지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전에… 그래도 된다며.”

    “음, 맞아요. 그랬죠.”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놈이 잠시 생각에 잠기듯 시선을 내렸다. 뭐, 고민되겠지. 처음인데 어느 정도 고민하는 것쯤은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얌전히 한태화의 답을 기다리는데 시선을 내리고 있던 한태화가 슬쩍 눈을 들어 올렸다.

    “근데요 요한, 그 가이딩률이 오르려면 성적 접촉을 통해 제가 느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파하거나, 싫어하면 오히려 가이딩률이 떨어지지 않나?”

    “…어? 그, 그렇지?”

    성적 접촉이 필요한 이유도 결국 에스퍼로부터 친밀감과 호감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그 감정이 강렬할수록 가이딩률이 올라간다. 에스퍼가 오롯이 가이드를 믿어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등급은 의미 없다는 얘기가 있는 거고. 오래된 연인 사이의 가이드와 에스퍼는 가이딩률의 계산이 무의미해지니까.

    “근데… 제가 처음부터 느끼면서 좋아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저번에 보니까 요한도 많이 힘들어하던데.”

    “…….”

    “자신 있어요, 요한?”

    자신 있냐고? 그야 당연히! …없지. 처음인데 느끼기가 쉽나. 그것도 처음 받아들이는 입장이라면 아파서 뭐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포기할 확률이 더 높다고 알고 있었다. 지난번 나 같은 경우가 좀… 특별했던 경우고.

    그 말에 고민을 하며 대답을 미루는데, 한태화가 은근한 몸짓으로 침대 위로 기어 올라오더니 단단하게 여민 가운의 끝자락을 잡고 손을 꼼지락거렸다.

    “요하안, 저 자꾸 몸에서 열나는 것 같아요.”

    “…알아.”

    그러니까 보채지 좀 마라. 생각 중이니까.

    “음, 그러니까 이런 건 어떨까요?”

    “……뭐?”

    해결책이 있는 것 같은 한태화의 목소리에 미심쩍게 묻자 놈이 요사스럽게 웃으며 제 가운의 끈을 풀어냈다.

    “제가 먼저 넣어서 가이딩을 끝내고, 요한은 그다음에 천천히 즐기는 거요.”

    “…그게 뭔 개소리야. 애초에 가이딩을 하려고 하는 건데, 가이딩이 다 끝난 후에 굳이 뭘 또 해?”

    “아니, 요한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요. 요한도 같이 좋으면 좋잖아요.”

    “…….”

    거야, 그렇지. 나도 모르게 한태화의 고운 얼굴을 살피다 흠흠, 하고 시선을 떨궜다. 저 해사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 말에 살짝 혹하긴 한다.

    “그러니까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구요. 가이딩을 빨리 끝내면 되잖아요.”

    입고 있던 목욕 가운을 벗어 침대 아래로 던진 한태화가 슬금슬금 몸을 붙여 오며 침대 위를 기어왔다. 그 아래로 달랑이는 콜라병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다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자 따끈한 열을 품은 손이 허벅지 위로 올라와 맨살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 손을 못 본 척하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가이딩을 하면서… 꼭 넣을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그럼 가이딩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다 보면 요한 기운도 다 빠질 텐데… 괜찮겠어요?”

    그런가? 고민으로 도록도록 눈을 굴리는데 허벅지 위를 쓰다듬던 손이 장골을 타고 뒤로 넘어간다. 그 노골적인 손길에 놀라 몸을 물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그, 하려면 거길 풀어야 한다고 배워서요.”

    풀… 아 씹. 이전의 첫 가이딩 때 혼자 풀었던 기억이 떠올라 또다시 열이 몰리는 얼굴을 손으로 마구 쓸어내리며 손가락 사이로 한태화를 노려보았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누구한테 배웠는데?”

    날카로운 추궁에 한태화의 목이 혼이 난 아이처럼 움츠러들었다.

    “……영상으로요.”

    “…영상? 무슨 소리야. 무슨 영―. 너 설마, …야동 봤어?”

    설마 하고 물은 말에 한태화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뭘 봐? 그걸 진짜 봤다고? 네가? 왜?!

    “요한이… 안 알려주니까…. 그래서 아는 사람한테 몇 개 추천받아서 봤어요. 교육용으로 좋은 거라고 추천해줘서.”

    “어떤 미친 새끼가 게이 야동을 교육용으로―! 됐고, 누구야! 어떤 새끼야, 그거?”

    성을 내며 다그쳐도 한태화는 배시시 웃기만 하고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그 순진하던 애를 누가 버려놓은 거냐고, 대체! 어떤 새낀지 잡히면 가만 안 둔다, 진짜!

    “누구냐고!”

    “요하안- 일단 푸는 거 먼저요. 가이딩 먼저 해야죠.”

    놈이 애교로 넘어가려는 듯 실실 웃었다. 어딜, 감히!

    “가이딩이고 자시고 어떤 새끼가 남의 순진한 에스퍼한테 그딴 걸 알려 주냐고! 잡히면 진짜, 가만 안 둔다!”

    악을 쓰며 화를 내는데도 한태화 놈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진짜, 잡히면 가만 안 둘 거라고 내가! 순진한 애한테 대체 무슨 짓이야!

    기관 사람들이 들으면 ‘누가 순진한 애라고?’ 경악해 할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화를 냈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로.

    #38

    암막 커튼이 쳐진 채 중간중간 무드 등만 밝혀 놓은 넓은 침실 안으로 질척한 야한 소리가 퍼졌다. 시트를 그러쥔 채 베개를 안고 얼굴을 묻고 있던 나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세게 깨물었지만 그럴수록 아랫배로 힘이 들어가며 뒤가 움찔거렸다. 환장할 일이었다, 진짜.

    “요한, 왜 자꾸 벌름거려요? 하나 더 넣을까요?”

    젤을 묻힌 손가락을 이제 겨우 두 개 넣었을 뿐인데도 입구가 빠듯했다. 입구 주변을 문지르며 풀어주던 한태화의 말에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찢어질 것처럼 힘든데 뭘 더 넣어! 씨발, 아무리 봐도 완전히 속았다. 나중에 대주겠단 저놈 말에 혹해서 해선 안 될 선택을-.

    “윽!”

    “진짜 세게 무네요, 요한.”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기가 섞인 목소리에 숨이 거칠어지며 화가 났다. 어느새 입구 주변을 풀고 있던 손가락이 깊게 들어와 안쪽 깊은 곳을 문지르며 입구에 고여 있던 젤을 가져다 묻혀왔다. 그 소름 돋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져 목 뒤로 소름이 돋으며 입에서 잘게 앓는 소리가 새어나갔다.

    “아―으.”

    “전에 이걸 진짜 혼자 했어요? 어떻게 혼자 했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여기에 보조개도 생겼네요. 힘 좀 풀어 봐요, 요한.”

    혼잣말을 하듯 두서없이 중얼거리던 한태화가 볼기 부분은 어느 부분인가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젠장, 저 새끼 입부터 막아 놓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몰려드는 건 금방이었다.

    “링, 으, 링크 좀 풀어, 이 새끼야.”

    간신히 고개를 돌려 한 말에도 놈은 그저 길게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링크를 전혀 열지 않았다. 그 순간 화가 나서 그냥 확 강제로 열고 들어갈까 하다가, 강제 링크 당할 때의 더러운 기분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실은 나도 내가 이걸 왜 참아주고 있는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요한이 또 몰래 가이딩을 해버린 뒤에 끝이라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그때 그러지 말지 그랬어요.”

    “이, 윽, 이놈 뒤끝 좀 보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아, 씨발!”

    “하하. 요한의 씨발 발음, 엄청 섹시한 거 알아요? 그러니까 다른 새끼들한테는 씨발이라고 해주지 마요. 나한테만 해줘요. 알았죠?”

    변태냐? 욕 듣고 싶어하는 변태였어? 나는 지금 변태랑 놀고 있는 거고? 충격에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으니 놈이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답해줘야죠, 네?”

    “아윽, 이, 개새- 그만 좀!”

    갑작스럽게 손가락이 늘어나며 입구 주변을 느릿하게 훑으며 둥글게 저었다. 주름진 입구가 찢어질 듯 늘어나며 내벽이 침입자를 밀어내려 수축한 채 올라붙었다. 그 사이를 우악스러울 만치 힘껏 파고든 손가락들은 밀어내려 저항하는 내벽을 파헤치며 안쪽을 깊게 짚어냈다. 그러자 무릎을 굽힌 채 엎드려 엉덩이를 세우고 있던 수치스러운 자세가 무너지더니 힘이 풀린 허벅지가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으- 아파, 아프다고오-.”

    “그러니까 안 아프려면 잘 풀어줘야 한대요. 어서 다시 허리 들어요, 요한.”

    “이 미친! 그 야동 뭐야?! 뭔데 네가 이렇게 변했어? 내가 그거 다 부숴, 으으- 말을 하는 동안은 좀, 그만- 이 개새끼야!”

    입구 주변에서 흘러넘친 젤을 끌어 모으던 엄지가 입구 사이를 파고들며 젤을 밀어 넣었다. 한꺼번에 네 개의 손가락이 물린 입구가 반사적으로 오므라들 때, 다른 손가락들이 다시 안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아픈 듯 생경한 감각에 말을 하다 멈추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못 해. 이제 진짜 더는 못하겠다고! 아픈 것도 아픈 건데, 이건 수치스럽다 못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배 속 깊은 곳에서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게, 이러다 진짜 뱃가죽을 뚫고 에어리언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마디로 기분이 좆같았다.

    “나, 안 할래! 그만할 거야! 한태화, 태화야아-, 그만, 나, 아!”

    “꼭 자기 불리할 때만 이름 불러 주고, 진짜 못됐어. 여기 맞죠? 그때 요한이 말한 전립선.”

    대답할 정신이 아니었다. 순간 욕이 멈출 만큼 온몸으로 소름이 돋으며 근육들이 제멋대로 수축하더니 입이 벌어졌다. 눈을 깜박이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최대치로 들어온 손가락들이 내벽을 짚고 어느 부분인가를 세게 문질렀다.

    “아- 아!”

    “요한 말처럼 이게 원래는 찾기 어렵대요. 요한 것도 좀 숨어있는 편이고요. 근데 그걸 이렇게 한 번에 찾다니, 우린 진짜 운명 같죠?”

    “아-! 그, 그만!”

    “그럼 요한, 그만하고 이제 넣어도 돼요? 넣으면 링크 열어줄게요. 좋죠?”

    모르겠다. 이게 내가 좋을 일인가? 이성적으로 사고가 흘러가지 않고 뚝뚝 끊어지니 생각이란 걸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만한다는 말에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안을 괴롭히던 손가락들이 빠져나갔다.

    내내 벌어진 채 괴롭힌 당하던 내벽이 천천히 오므라드는 느낌에 그제야 안정감을 찾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이성이란 게 좀 돌아왔다. 깜박깜박하는 것이 여전히 위태롭긴 했지만.

    “잠깐만, 태화야- 진정하고 잠깐-!”

    “요한, 우, 움직이지 마세요. 힘 풀고요. 아, 이러다 터질 것 같은데… 좆이 너무 아파요. 잘 풀었는데, 왜 이러지?”

    “……!”

    정말 예고도 없이 미친 콜라병이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천천히 쪼그라들고 있던 입구는 금세 다시 찢어질 것처럼 늘어나 고통스러웠다. 아파아! 아프다고!

    “아, 흐, 파-.”

    “조금만, 읏, 참아요. 금방 다, 아, 귀두만 잘 들어가면 된댔는데.”

    대체 그 좆같은 야동이 뭔데! 거기 나온 새끼가 앞만 좀 넣으면 다 들어간다디? 이, 씨발, 그 새끼 게 엄지손가락만 한가 보지! 이 씨발 새끼, 내가 얼마만 한지 확인해본다, 꼭!

    “아파! 아프다고! 그만 넣, 악!”

    “아니, 그게 아니라, 자, 잠깐, 요한, 힘 좀 풀어 봐요. 진짜 잘라 먹겠어요.”

    “그럼 그냥 빼!”

    그 말에 멈칫한 한태화가 허리 짓을 멈추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엎드린 등 위로 쏟아진 숨에 목 뒤로 솜털이 서는 기분을 느끼다 조금씩 허리를 뒤틀며 몸을 보챘다.

    “태화야, 나 진짜 아파. 응? 오늘은 그냥 가이딩만―.”

    “요한… 차라리 그냥 육체 강화 능력을 사용해서 좆만 단단하게 만들어서 한 번에 밀어 넣는 게 어떨까요? 그럼 요한도 한 번만 참으면 될 것 같은데. 그게 더 빠르게 끝나지 않겠어요?”

    뭐? 너 지금 뭐라고…. 육체 강화가… 좆만 강화시키는 게 가능해? 그게 된다고?

    아니, 그보단… 한 번에 뭘 어째?

    충격으로 몸을 굳히고 있다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진지하게 얼굴을 굳힌 한태화가 진짜로 고민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저 미친놈이!

    “하지 마! 너, 그, 그거 하면 진짜 죽는다? 다신 너랑 이런 거 안 해! 가이딩도 안 해! 이게 누굴 죽이려고!”

    “그럼 어떡해요. 빨리 넣고는 싶고… 요한이 아픈 건 싫단 말이에요.”

    “…아오, 씨발!”

    개새끼가, 안 넣으면 아프지도 않고 끝날 일에 죽어도 넣겠다고 고집이다. 링크는 열어주지도 않고. 너는 이따 가이딩 끝나고 두고 보자!

    “―손!”

    “…네?”

    “손 줘 보라고!”

    “손은 왜요?”

    한태화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해 보이다 슬쩍 손을 내밀었다. 하는 수 없이 그 손을 잡고 힘을 잃고 축 늘어져 있는 성기로 가져다 대며 입술을 깨물었다.

    “잘 만져 봐. …나도 기분이 좋아야 힘을 풀든가 말든가 할 거 아니야!”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영상에서도 그러긴 했어요. 몸이 이완되게 여기저기 만져주라고. 여기도 같이 만져주면 좋대요.”

    성기를 쥔 손이 움직이기도 전에 다른 손이 복근을 타고 올라와 유륜 주변을 문질렀다. 그에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도로 베개로 고개를 박았다. 그러자 한태화의 커다란 손이 부드럽게 성기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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