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49)
  • 아… 역시, 그랬어야 했나. 얌전히 있다 사실대로 말을 하고, 그랬으면… 경위서다 뭐다 폭탄을 떠안았겠지. 씨발. 분쟁 위원회로 안 불려가면 다행이었다.

    “그게요, 팀장님… 사실 제가 지금 지원 1팀으로 도망을 와있는 처지라서요….”

    -…응? 뭐라고? 휴대폰이 이상하네? 왜 헛소리가 들리지?

    “…덤터기 쓸까 봐 도망쳐 나와서 숨어 있다고요. 저 좀 도와주세요.”

    -…….

    “팀장니-임.”

    -이 미친놈이! 거기서 도망을 왜 쳐, 도망을! 야, 이 또라이야!

    왁하고 질러진 소리에 황급히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며 눈을 찌푸렸다. 거, 목청 하난 여전하시네.

    “…그러고 있다 뒤집어쓸까 봐 그랬죠, 뭐…. 발소리가 나니까 나도 모르게 그런 걸 어떡해요.”

    -그게 지금 할 소리야? 뭐 이런 또라이가 내 밑에 있지? 응?

    “……어쩌죠?”

    -뭘 어째! 거기 그대로 있어! 데리러 갈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죄송한데 빨리 와 주시면-.”

    -닥쳐!

    팀장님의 말을 따라 얌전히 입을 다물자 곧장 전화가 끊어졌다. 그렇게 끊어진 휴대폰을 내려다보다 기운이 빠져 문간 옆 벽에 등을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정리를 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피곤함에 절은 머리가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았고. 그러니 이런 미친 짓도 저지른 거겠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길게 한숨을 내쉬다 어떤 예감 같은 것이 느껴져 바르르 몸을 떨었다.

    눈앞이 어질어질한 것이 진짜로 감기 몸살이 올 것 같았다.

    #5

    그렇게 급히 달려온 팀장님은 요원들을 정리해서 보내고 난 뒤, 지원 1팀 사무실의 문을 열고 나를 사납게 노려보셨다. 피곤함에 깜박 잠이 들었다가 문이 열리는 기척에 눈을 떴던 나는 그 시선에 얌전히 눈을 깐 채 몸을 일으켰고, 팀장님을 따라 세가 기관을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5일간 꼼짝없이 쉬어야 했다. 무리를 하긴 했는지 지독한 감기 몸살이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황금 같은 휴가 기간 내내 앓다가 휴가가 끝날 때쯤에야 몸이 나아 간신히 출근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내일 하루만 더 출근을 하면 주말 이틀을 쉴 수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을 해서 1층의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팀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 뭐야, 분위기 왜 이래요?”

    밝은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섰다가 눈을 굴려 분위기를 살폈다. 줄초상이라도 난 듯 사무실 안 분위기가 음울했다.

    “…왔냐? 어서 와라.”

    “…선배, 저 쉬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사무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시커먼 안색을 한 강선배에게 묻자, ‘사직서’ 라고 쓰인 문서에 본인 이름을 써놓고 넋을 빼고 있던 선배가 마약 중독자처럼 풀린 눈을 한 채 돌아보았다. 뭐야, 이 선배 눈이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지…. 그것도 아주 큰 일이… 이제 곧 우리 지원팀에도 몰아닥칠 거야.”

    “…예?”

    책상으로 다가가 컴퓨터를 켜며 헛소리를 하는 강선배를 돌아보자 마찬가지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후배가 대신 입을 열었다.

    “서선배….”

    “왜?”

    “혹시 한태화라고 알아요?”

    “…뭐?”

    휴가 동안 간신히 잊고 지내던 이름이 후배의 입을 통해 들리자 왠지 모르게 등 뒤로 소름이 돋았다. 왜 기분 좋게 출근한 첫날, 그 재수 없는 이름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절로 눈썹을 모이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알지. 기관 사람 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근데 한태화가 왜?”

    “이제 곧 그 괴물 새끼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거예요.”

    “…뭐?”

    시체 같은 안색의 후배가 손가락으로 방금 들어왔던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마치 그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문이 열리며 사람 그림자가 비쳤다. 그러자 후배와 강선배, 그리고 그때까지 희게 질린 얼굴로 아무 말이 없던 최선배까지 모두가, 잔뜩 쫄아 붙은 얼굴로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덕분에 나까지 쫄아서 문을 바라보았고.

    “…팀장님?”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핼쑥한 안색의 팀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부모를 죽인 원수를 보듯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시선을 마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후배 놈이 책상을 쾅 치고 일어났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저게 미쳤나 하는 시선을 보냈고.

    “아오, 한태화 그 미친 새끼가 지 몰래 가이딩한 가이드를 잡겠다고 온 기관 내 가이드 부서들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다고요! 아니 씨발, 지가 신데렐라에 나오는 왕자야 뭐야? 다짜고짜 찾아와서 씨발이라고 욕 좀 해보라고 죽일 듯이 괴롭히다가, 막상 씨발이라고 하면 욕했다고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노려본다는데, 그거 미친 거 아니에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욕을 시키질 말던가! 아오, 그 몰래 가이딩 했다는 새끼를 찾아내면 내가 먼저 죽일 거예요!”

    “……어?”

    과다한 스트레스로 미쳐버린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는 후배를 멍하니 쳐다보며 입을 벌렸다. 한태화를 몰래 가이딩한 사람? …그거 난데?

    “서요한, 너 잠깐 나 좀 보자.”

    “……예.”

    팀장님이 날 서요한이라고 불렀다. 서요한- 이라고. 광땡이가 아니라.

    어쩐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깨갱하고 기가 죽어 조용히 팀장실로 따라 들어가는데 벌써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좆같던 날은 그 날 다 끝난 거 아니었나? …찾고 있다는 가이드가 난 아니겠지? 아니, 씨발을 왜 하라고 시켜본대? 아오, 씨발. 하여튼 미친 새끼. 억울함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

    팀장님을 따라 팀장실로 들어가자 앞서 들어갔던 팀장님이 어둡던 사무실의 불을 밝혔다. 탁하고 눌리는 스위치 소리와 함께 불이 들어온 팀장실 안은 깔끔했지만 책상만큼은 심하게 너저분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좀 치우고 사세요. 저게 다 뭐예요?”

    “저거 다 제자리에 맞춰 둔 거야. 헛소리 말고 여기 와서 앉기나 해.”

    서류가 엉망으로 쌓여 있는 책상 위를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다 그 옆으로 보조 의자를 하나 끌어와 앉았다. 그 사이 팀장님은 창문을 열고 그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입이 심심해져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는데, 창밖을 보고 있던 팀장님이 험상궂은 얼굴로 돌아보며 필터를 잘근잘근 씹어댔다.

    “너 이 새끼, 네가 지금 무슨 사고를 쳤는지 알아?”

    “제가 뭘요? 저 5일 동안 끙끙 앓다 나온 사람이에요.”

    아팠다는 말로 슬쩍 밑밥을 깔아봤지만 전혀 통하질 않았다.

    “뭘? 지금 ‘뭘’이라고 했냐? 거기서 왜 도망을 가서 일이 이렇게 꼬이게 만들냐고!”

    “아니, 그건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니까 쫄려서…, 무서워서 그랬다니까요.”

    불퉁한 얼굴로 대답을 마치자 곧장 사나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그래서 얼른 반성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이 미친놈아! 이게 지금 무서워서 그랬다는 말로 해결될 일인 줄 알아? 그리고 거기서 대체 한태화 가이딩은 왜 해? 네 일도 아닌데!”

    “…그럼 그냥 두고 와요? 폭주 증상 보이는 놈을?”

    “두고 와야지! 그럼 기관에서 알아서 다른 가이드를 붙였을 거 아니야! 이게 뭐냐, 대체! 일이 이상하게 꼬였잖아!”

    목소리를 낮춘 채 이를 가는 팀장님의 낯선 모습에 당황했다가 욱 하고 성질이 일어났다. 별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왜 이리 유난이신지 모르겠네.

    “어쨌든 무사히 다 해결됐잖아요? 팀장님이 알아서 정리해 주신 거 아니에요?”

    “한태화가 그냥 안 넘어가고 날뛰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야! 걔가 지금 지 가이딩한 가이드 잡겠다고 기관을 이 잡듯이 뒤지고 다니고 있다니까?”

    “…괜찮아요. 폭주 중이던 놈이 수면 가스까지 마셨는데, 제정신이었겠어요? 그리고 방독면도 쓰고 있었으니까 들킬 염려도 없어요. 팀장님만 입에 자물쇠 채워 주고 계시면 돼요.”

    “네가 가이딩 해준 그 다른 에스퍼 놈은 어쩔래? 한태화가 그놈한테서 네 인상착의 받아다 찾아다니고 있다는데!”

    “아… 그 병신 새끼. 끝까지 귀찮게 구네, 개새끼가.”

    야! 하고 소리를 치던 팀장님이 잠시 밖의 눈치를 보듯 문 너머를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낮아진 목소리로 나를 다그쳤다. 아오, 억울해.

    “한태화를 왜 건드려? 기관에서도 건들길 꺼려하는 놈을, 대체 왜!”

    “아니, 나는 건든 게 아니라 도움을… 아, 진짜. 그 새끼가 뭔데요? S등급이 뭐 벼슬인가? 왜 다들 그 새끼 눈치를 보는데요?!”

    “걔가 태화그룹 사람이니까 그렇지! 이 멍청아!”

    그 말에 말을 멈추고 눈을 굴렀다. 태화 그룹? 우리 기관 최대 후원사이자 유명 재벌가 중 하나인 거기? …뭐어!?

    “…태화그룹이라뇨? 그 이름이 거기서 왜 나와요? 한태화가… 태화 그룹 사람이에요?”

    갑자기 튀어나온 ‘태화’ 라는 단어에 시선이 자연스레 컴퓨터를 향했다. 그러자 모니터 뒤편에 적힌 TH전자라는 익숙한 로고가 보였다. 컴퓨터뿐만이 아니라 갖고 있는 휴대폰도, 그리고 그 휴대폰의 통신사도 TH전자에 TH통신사였다. 뒷주머니에 꽂힌 지갑 안에 든 신용카드는 태화카드사의 카드였고, 내 이름으로 몇 개나 든 상해보험이나 암보험도 TH손해보험 거였다.

    근데 그 한태화가… 태화그룹 쪽 사람이라고? 놀라서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아니, 어느 상식 없는 인간이 자식 이름에 그룹명을 붙여요! 미친 거 아냐?”

    “오죽 귀한 자식이면 붙였겠냐! 그 태화 그룹 회장이 막내손주라고 끼고 돈다던데! 그래서 이름도 한태화라고 직접 지어 준 거고! 아니, 기관에서 일한다는 놈이 왜 그걸 몰라? 남들은 다 아는 걸!”

    “아, 그런 얘긴 없었다고요!”

    억울한 얼굴로 소리를 높이며 씩씩대자 팀장님이 답답하다는 얼굴로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무셨다. 근데 나도 할 말이 있는 게 걔가 또 작전엘 나가서 건물을 때려 부쉈다더라, 어떤 가이드를 엿 먹였다더라 하는 얘긴 들어봤어도, 이런 얘긴 금시초문이었다. 억울하다고!

    “그리고 내가 걔 팬클럽도 아닌데, 가족 사항까지 어떻게 다 알아요!”

    서로 당황하여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자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은 팀장님이 몸을 숙이며 험악하게 눈을 부라렸다.

    “목소리 줄여, 이 새끼야. 소문나고 싶어? 한태화가 찾는 그 미친 가이드가 너라고?”

    “…폭주 증상을 보이길래 좀 잡아준 건데, 내가 왜 미친 가이드예요. 은인이면 모를까. 내가 걔 목숨을 구해준거나 마찬가진데 나한테 고마워하면서 사례금을 줘도?.”

    “야, 이! 수면 가스로 못 움직일 동안 강제로 했다며! 너, 그거 형법상으로 문제될 거 알아, 몰라? 고소당하면 끝이야, 끝. 공무원이 유죄 판결 나면, 알지?”

    “폭주 같은 특수한 경우엔 예외 조항 있어서 괜찮아요. 그래도… 비밀로 잘 처리해 주셨죠? 네?”

    도록도록 눈을 굴리다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비굴하게 묻자 팀장님이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 앞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나만큼이나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제발 그 성질 좀 죽이고 살라고 했잖아! 양아치 시절에 놀던 버릇 좀 고치라고!”

    아니, 이 양반이 왜 갑자기 남의 흑역사를 끄집어내? 저절로 눈매가 뾰족해지며 팀장님을 흘겼다.

    “아, 안 한다고요.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손 씻었다니까? 누가 양아치 짓을 했다고 애먼 사람을 잡아요?”

    “…수면 가스로 사람 재워 놓고 강제로 가이딩 했다는 대목이 그럼 평범한 사람이 할 짓이야?”

    #6

    “아니, 수면 가스 터진 게 내 탓이냐고요. 그 새끼가 가이딩 거부하느라 벽을 터트린 걸 왜 나한테 따져요. 그리고 폭주를 하려는 놈을 그냥 둬요? 응? 내가 알기론 그것도 형법상 문제 되는 걸로 아는데? 그리고 나도?!”

    “…나도 뭐?”

    그 새끼가 남의 젖꼭지를 막! 응? 막 이렇게… 아오! 이걸 얘기할 수도 없고!

    “됐어요. 별거 아니에요.”

    억울했지만 자랑스럽게 할 말은 아니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망할 놈이 대놓고 사람을 더럽다고 해서 좀 막 나가긴 했어도, 어쨌든 폭주하려는 놈을 가이딩도 해줬는데 왜 나만 잡냐고!

    어쩌다 보니 운이 안 풀려 20년 가까이 고아로 자라온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육원을 나왔을 당시 할 짓 없이 거친 생활을 좀 했다. 마음 맞는 놈들하고 어울려 다니며 흔히 말하는 건달 짓도 하고 다녔고, 나쁜 짓도 좀 했다. 팀장님 말대로 양아치였다. 그러나 기관으로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과거의 연들도 싹 정리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 과거 반성차 오히려 더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고 있는 사람의 과거를 꼭 그렇게 콕 집어서 끄집어내야겠냐고!

    “요한아… 너 우리 기관 최대 후원사가 어딘지 알지?”

    “…태화그룹이죠.”

    지친 팀장님의 목소리에 일단 나도 흥분을 가라앉히려 길게 심호흡을 했다. 어쨌든 양아치 짓이나 하던 내가 운 좋게 기관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끌어 주신 감사한 분인데, 마냥 더 대들 수도 없었다. 그런 내 태도에 머리를 쥐어뜯다시피 하고 계시던 팀장님도 기세를 누그러트리며 5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소식은 들었어? 우리 기관도 슬슬 민영화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

    “…들었어요.”

    “그럼 그것도 알겠네? 여길 인수할 천문학적인 금액을 댈만한 곳이 태화그룹뿐이라 태화로 인수될 것 같다는 소문.”

    “…….”

    요즘 모두 모였다 하면 그 얘기들뿐이라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얘기였다. 근데 그 얘길 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한태화가 그 그룹 사람이란 얘긴 안 해 줬다고!

    “그런 상황에서 한태화한테 찍히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좆 되겠죠, 뭐.”

    “근데 왜 그랬어. 왜 그랬냐, 요한아….”

    “아 진짜, 몰랐다니까요.”

    알았으면 그랬겠냐고요.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주워 담을 수도,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자연히 목소리가 불퉁해졌다. 진짜 어쩌나 싶어서.

    “일단 내가 3호실에서 들어왔던 가이딩 요청은 보류한 걸로 돌려뒀으니까 네가 거기 간 건 안 들켰겠지만… 한태화가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다고. 너 어쩔래?”

    “뭘 어째요. 그냥 모르는 척해야지.”

    고개를 숙인 채 불퉁히 대답하자 팀장님이 한심하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셨다. 그 한숨 소리가 무거워 내 어깨도 쳐졌다.

    “그래, 모르는 척하고 숨겨. 죽어라 숨겨서 너인 줄 모르게 해, 응? 팀장 자리까지 올라오는 게 목표라며. 그럼 이번 일을 무조건 잘 숨겨서 넘겨야 해, 알지?”

    “…예, 감사해요.”

    “씨발, 감사해야지. 너 대신 내가 경위서를 쓰게 생겼으니까. 더군다나 한태화한테는 누구 본 사람 없냐고 3일 내내 시달리고 있다고! 내가 진짜, 너네 보육원 원장님이 매년 보내주시는 과일만 안 받았어도 그냥 다 불었어. 알아?”

    팀장님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걸 아직도 보내고 계세요? 하지 말라니까, 말도 더럽게 안 들어요.”

    처음 기관에 들어와 수습 기간을 보내며 인턴 요원 생활을 하게 됐을 때, 그 요원 팀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지금의 팀장님이셨다. 그래서 과거도 다 아시는 거고. 그때 얼굴을 트고 친해졌다가 수습 기간이 끝난 후 지방으로 발령받아 근무지를 옮기면서 헤어졌다. 그러다 목숨 걸고 쌓은 실적을 인정받아 다시 서울로 발령을 받았고, 그 새로 발령받은 곳이 바로 지금의 지원 3팀이었다. 그리고 이 팀에 들어왔을 때, 팀장님과 다시 재회했다. 팀장님은 빽 하나 없는 내게는 기관 내에서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 분이니 내 일을 어련히 알아서 처리해 주셨을까.

    “운이나 좋은 줄 알아. 그날 폭주 진압에 백화점 테러, 한태화 폭주까지 겹쳐서 각 부서별로 정신이 없어서 숨길 수 있던 거니까. 그러니까 죽어도 모르는 척해. 알았냐?”

    “알았다니까요. …감사해요. 제 맘 알죠?”

    “몰라, 이 새끼야.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며 나가보라는 팀장님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걸어 나갔다. 그러다 아, 하고 생각나는 게 있어 문을 열기 전 몸을 돌렸다.

    “경위서 대신 써드려요? 서류 작업 싫어하시잖아요.”

    “…그래주든가.”

    불퉁한 대답에 웃음을 터트리며 팀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그러나 고개를 들자마자 바로 보이는 익숙한 인물의 모습에 천천히 웃음을 지우며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 하나 더 있었네.”

    “…….”

    “안녕하세요. 나 알죠?”

    해사한 얼굴과는 다르게 장신인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에 몸을 물리며 문으로 등을 붙였다. 한태화였다. 재수 없게도 마음의 대비를 하기도 전에 마주한 인물이 저놈이라니. 신은 날 버린 게 분명하다.

    “뭐야, 인사도 해줬는데 왜 말이 없어요? 그러는 거 예의 없는 거라고 못 배웠나?”

    “…무슨 일이십니까?”

    “음? 정말 몰라서 물어요? 알 텐데?”

    “…모르겠는데요.”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여기 있네요.”

    지지 않는 말대꾸에 의미 없는 미소를 짓고 있던 한태화가 눈을 가늘게 찢으며 진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 더 불안해져 슬쩍 시선을 피하는데, 창백한 안색으로 병풍처럼 서 있던 강선배가 나를 대신해 설명을 해주었다.

    “그, 걔가 휴가를 받아서 쉬다가 나온 거라, 사정을 잘 모를 겁니다.”

    “…휴가? 언제부터?”

    “아니, 그, 어, 언제부터더라, 요한아?”

    “…5일 전이요.”

    강선배의 말에 작게 대답하자 선배를 쳐다보던 한태화가 다시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뒤통수가 문에 닿을 만큼 고개를 뒤로 빼며 질색한 얼굴을 해 보이는데, 갑자기 입매를 길게 늘인 놈이 흥미롭다는 듯 웃는 게 보였다. 아주 불길하게도 말이다.

    “인상착의는 제일 비슷한 것 같은데… 이름이 요한이에요?”

    “…그런데요.”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요.”

    “근데요.”

    “욕 좀 해봐요. 씨발이라고.”

    “…….”

    뭐야, 진짜 씨발로 찾아다니고 있었어? 근데 나는 씨발이라고 한 기억이 없… 있나? 하, 한 것도 같고? …아닌가?

    “…저 욕 못하는데요?”

    “그거야말로, 그럴 리가.”

    “진짜 못합니다. 제가 욕을 잘하게 생겼어요?”

    “네.”

    음, 그랬구나. 양아치 물이 아직 덜 빠졌나? 새로운 사실을 깨달으며 인상을 찌푸리는데 등 뒤에 닿아있던 팀장실 문이 열리며 몸이 뒤로 넘어갔다.

    “어??”

    순간 뭐야, 씨발! 이라고 소리칠 뻔한 걸 가까스로 참으며 팔을 허우적거리데 그런 내 어깨를 잡아준 팀장님이 사람 좋게 웃으며 한태화에게 인사를 건넸다.

    “또 뵙네요, 한태화씨. 근데 얘는 아닙니다.”

    “…그건 내가 알아볼 일이죠. 정팀장님은 그날 아무도 못 봤다면서요.”

    한태화가 허리를 펴며 몸을 바로 세웠다. 서늘하게 웃고 있는 그에게선 험악한 기운이 풍겼다. 나는 놈의 눈치를 보며 팀장님의 옆으로 슬쩍 걸음을 옮겼다. 와 씨, 저렇게 웃으니까 존나 무섭네. 도와줘요, 팀장님.

    “…나서서 미안한데, 얘가 우리 팀 팀원이라 내가 얼굴을 몰라 볼 리도 없고, 그날 현장 진압팀에 차출됐다가 보고만 하고 돌아간 녀석이기도 해서 애먼 사람 잡을까 봐 미리 알려주는 겁니다.”

    “…….”

    팀장님의 말에 한태화의 시선이 진짜냐는 듯 나를 향했다. 팀장님 뒤로 반쯤 몸을 감추고 있던 나는 고개가 떨어질 듯 크게,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태화가 시선을 내리며 생각에 잠기듯 손으로 턱을 쓸었다.

    “인상착의하며 어깨너비나 목 길이가 딱 떨어지는데….”

    뭐라는 거냐. 내 어깨너비랑 목 길이를 언제 쟀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눈을 깜박이고만 있는데, 한태화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요?”

    “예.”

    “…오라고요?”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시간을 끌자 웃고 있던 한태화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 웃음에는 누가 봐도 명백한 짜증이 스며있었다. 괜히 더 성질을 긁을세라 얼른 팀장님 뒤에서 튀어나와 놈의 앞으로 다가갔다. 앞으로 고용주가 되실지도 모르는 분인데 괜히 거슬리지 말고 잘 보여 놔야지. 이미 좀 늦은 것 같긴 하지만.

    “손 좀 줘 봐요.”

    “…예?”

    “손요. 오른손.”

    “…….”

    남의 손은 갑자기 왜? 마음에 안 든다고 댕강 자르는 거 아냐?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끔찍한 상상에 오른손을 등 뒤로 감추자 그 꼴을 본 한태화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을.

    “신사적으로 굴 때 말 듣는 게 좋을 텐데.”

    짜증에 지수가 있다면 지금쯤 한태화의 짜증 지수는 아슬아슬하게 위험 수준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걸 기민하게 알아챈 나는 얼른 오른손을 곱게 내밀었다. 그러자 한태화가 눈짓으로 장갑 낀 손을 가리키며 웃었다.

    “벗어요.”

    “…예?”

    “장갑 좀 벗어보라고요. 두 번씩 말하게 하지 말고. 그럴 눈치로는 안 보이는데.”

    “…….”

    가이드한테 장갑 좀 벗어보란 말은 실례인데, 놈은 그런 것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나도 욕이나 댓발 해주며 무시했을 테지만 혹시나 입에서 씨발이란 말이 튀어나올까 봐 긴장을 하고 있던 터라 얌전히 장갑을 벗어 손을 내밀었다.

    “원래 이렇게 누구한테나 쉽게 구나?”

    “…방금 뭐랬습니까?”

    #7

    “아, 혼잣말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요.”

    어떤 덜떨어진 새끼가 혼잣말을 그렇게 크게 하니? 기분이 나빠져 표정이 굳은 게 나조차도 느껴졌건만 한태화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내 오른 손목을 잡았다. 그러더니 강한 힘으로 팔을 끌어 내 손으로 제 눈가를 덮었다. 그게 어디서 많이 보던 모양새라 나도 모르게 손가락 끝을 움찔하고 떨었다. 당황하여 손을 잡아 빼내려 하자 더 강한 힘으로 팔을 잡아끈 한태화 때문에 놈의 코앞까지 몸이 끌려갔다.

    “…….”

    “물어볼 게 있는데요.”

    “…….”

    짙은 까만색의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서 보이며 긴 속눈썹이 나붓하게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 투명해 보일 정도로 희고 맑은 피부에 속으로 감탄하며 오똑한 콧날 아래에 위치한 붉은 입술을 감상하고 있을 때, 놈의 고개가 목덜미 쪽으로 내려앉았다.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잠시 숨을 멈췄다. 이게 뭐 하는 개수작인가 싶어서.

    “바디워시 뭐 써요?”

    “…예?”

    “향이 좋아서요.”

    까만 눈동자가 가득 차게 눈매가 좁아지며 눈웃음이 지어졌다. 진짜 생긴 거 하나만큼은 끝내줬다. 질문이 좀 시답잖게 작업 거는 병신 같아 보여서 그렇지.

    “그냥… 마트에서 제일 싸고 큰 거 사다 쓰는데요.”

    “그래요? 그럼 그걸 쓰는 사람이 많을까요?”

    “많겠죠. 싸고 양이 많으니까.”

    “아, 안 되는데.”

    한태화가 아쉽다는 듯 웃던 얼굴 그대로 눈가를 찡그렸다. 그러나 아직도 손목이 잡혀있던 게 신경 쓰였던 나는 한태화와 잡힌 손목을 번갈아 쳐다보다 손목에 힘을 주며 물었다.

    “뭐가 안 되는데요?”

    뭐야, 무슨 힘이… 손이 꼼짝을 안 하네? 헐? 나도 힘 좀 쓴다면 쓰는데?

    “내가 찾는 사람이랑 향이 같거든요, 그쪽이.”

    “손 좀 놔… 예?”

    아무리 힘을 써도 빠져나올 수 없는 아귀힘에 부아가 치밀어 확 이로 물어 뜯어버릴까를 고민하느라 말을 놓쳤다. 그러니까… 향이 뭐, 어쨌다고?

    “몸에서 나는 향이 같다고요. 근데 흔히 쓰는 바디워시 향이면 찾기가 더 어려울 테니까요. 그죠?”

    “…….”

    순간 뱀 앞의 쥐가 된 것처럼 몸이 굳었다. 이 새끼가… 설마….

    “그래서 말인데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요?”

    “……뭐요.”

    아니, 하지 마!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의심스러운 얼굴로 한태화를 살피는데, 갑자기 한태화가 생글생글 참 예쁘게도 웃었다. 그 예쁜 입에서 나온 말이 청천벽력 같아서 그렇지.

    “젖꼭지 좀 만져 봐도 돼요?”

    “…….”

    “안 돼요?”

    되겠냐? 이 미친놈아! 내가 정말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한태화가 좀 더 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