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49)
  • SZ

    갠소/공금..

    *장르: 현대물, ㅇㅇ버스, 판타지물

    *관계: 첫사랑, 계약, 신분차이

    *인물(공): 미인공, 다정공, 호구공, 능글공, 초딩공, 집착공, 복흑/계략공, 연하공, 재벌공, 사랑꾼공, 짝사랑공, 절륜공, 존댓말공

    *인물(수): 강수, 까칠수, 츤데레수, 평범수, 무심수, 군림수, 연상수

    *소재: 초능력, 질투, 사내연애, 전문직물, 정치/사회/재벌, 할리킹

    *분위기, 기타: 기다리면무료, 코믹/개그물, 달달물, 사건물, 성장물, 수시점

    *인물 소개:

    -한태화(공): 태화그룹 회장의 막내 손자. S등급 능력자에 능력을 네 가지나 갖고있으나, 가이딩을 거부하여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 배경과 능력 때문에 거칠 것 없는 제멋대로인 성격에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사는 편.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순정남?!

    -서요한(수): 어린 시절 좀 놀았지만 지금은 착실(?)하게 기관에서 D등급 보조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승진하여 팀장을 다는 것이 목표인 속물 적이고 물욕 있는 남자. 조금 까칠한 성격이다. 가이딩률이 평균적으로 38%밖에 되지 않아 38광땡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럴 때 보세요: 성질 더러운 광견 내숭공을 조련하는지 조련당하는지(?!) 모를 매우 세속적인 까칠수의 인생 잘살아보려는 이야기

    *공감 글귀: “미친, 왜 콜라병을 달고 다녀??”

    #에스퍼공 #가이딩거부하공 #애교계략공 #보조가이드수 #매우세속적이수 #차가좋수

    “더러운 손 치우고, 당장 꺼져.”

    “더러운 손에 세운 놈이 할 말은 아니네요.”

    미친놈에게 된통 걸렸다.

    S급 에스퍼이면서 가이딩을 거부하는 성질 더러운 녀석을 성심성의(?)껏 가이딩해줬더니,

    이젠 가이딩을 해달라고 따라다닌다.

    미친 개처럼 쫓아다니며 나를 자신의 가이드로 만들려고 하는 한태화.

    나는 이 미친 개를 떼어내고 무사히 진급할 수 있을까…?

    까고, 까고, 또 까지만 거절은 거절하는 한태화를 달고 평범하게 살아보려는 요한.

    다 가졌지만 요한만은 못 가진 한태화의 서요한 공략법!

    #현대물, ㅇㅇ버스, 판타지물, 첫사랑, 계약, 신분차이, 미인공, 다정공, 동정공, 능글공, 집착공, 연하공, 재벌공, 사랑꾼공, 짝사랑공, 절륜공, 존댓말공, 강수, 까칠수, 츤데레수, 평범수, 연상수, 초능력, 질투, 전문직물, 정치/사회/재벌, 할리킹, 코믹/개그물, 사건물, 수시점

    [미리보기]

    잡힌 팔목에 경악하며 한태화를 내려다보니 희미한 시야 사이로 까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놈이 소름 끼치게 고요한 얼굴로 방독면을 쓴 나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수면 가스로 진작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들었어야 할 놈이 아직도 버티고 있던 것이다.

    “하지 마.”

    “…….”

    “더러운 손 치우고, 당장 꺼져.”

    그 상황에 말까지 하는 놈을 보고 놀라서 숨까지 참고 있던 나는 그의 마지막 말에 경악했던 감정을 지우고 슬쩍 눈썹을 들어 올렸다. 더러워? 하, 별?, 오늘 일진이 진짜 왜 이러지? 부적이라도 써야 하나?

    짜증으로 뻣뻣해진 목덜미를 느끼며 가볍게 목을 돌렸다. 그리곤 아직도 방 안을 가득 채운 수면 가스에 눈빛이 조금씩 더 흐릿해져 가는 한태화를 바라보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팔을 붙잡아 무릎으로 눌렀다.

    “윽-, 뭐 하는-!”

    “가만히 있어요. 팔 부러집니다.”

    한태화에게 가볍게 경고하며 남은 팔을 잡고 온몸으로 누른 채 바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었다. 어디 그 더러운 가이드 손에 가이딩 한번 당해 보라지.

    근육이 풀리면서 힘이 빠졌는지 꼼짝도 못 하는 놈을 비웃으며 버클을 풀고 상의가 접혀 들어간 사이로 손을 미끄러트리자 몸이 크게 요동을 쳤다. 그러나 수면 가스로 기운이 없긴 한지 이내 다시 잠잠해지는 것을 느끼며 고무 밴딩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헐.”

    크다. 저 예쁘장한 얼굴 아래에 이런 게 달려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미친?, 왜 콜라병을 달고 다녀?”

    성인 남자의 손으로 귀두 부근을 감싸고도 길게 남는 길이에 질려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도 조금씩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더럽다고 했던 놈치곤 빠르게 앞이 젖으며 정신 간 경계가 흐려졌다. 그러나 링크가 열리지 않아 가이딩을 할 수가 없었다. 놈이 힘으로 링크를 막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억지로 열고 들어가자면 못 들어갈 건 아니었다. 어차피 링크를 여는 것은 가이드의 고유 능력이고, 상대가 열어주길 기다리기보단 그냥 열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가이딩이었으니까.

    그러나 제 근원이 되는 공간으로 타인이 들어와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것이 좋은 기분일 리 없었다. 코마 상태에 빠진 가이드도 다른 가이드로부터 가이딩을 받아야 해서 그것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는데, 그때 들어본 바에 따르면 그건 정말 더러운 기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평소처럼 상대가 링크를 열어주길 기다리다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링크 열어요. 죽고 싶은 거 아니면.”

    “…….”

    “한태화, 열어.”

    임시 가이딩 한 번 해줬다가 코 꿰이게 생긴 요한. 요한을 자신의 가이드로 만들고 싶어 안달 난 태화.

    태화가 그간 가이딩에 거부감을 느껴왔던건 요한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남들에게는 성질 더러운 미친놈이지만, 요한에게는 음흉애교댕댕이인 태화는 과연 요한을 자신의 가이드로 만들 수 있을까? 까칠한 요한과 사랑꾼공 태화의 케미가 인상적인 본 작품을 까칠수와 사랑꾼공 조합을 좋아하는 독자, 에스퍼/가이드물을 좋아하는 독자, 그리고 코믹/개그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1

    0. 프롤로그

    4호실이라고 적힌 명패를 떨떠름하게 쳐다보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숫자 한번 참 좆같기도 하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퉁퉁퉁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네- 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잠시 후 무겁게 열린 문 사이로 떨리는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지원 3팀에서 나온 서요한이라고 합니다. 보조 가이딩을 요청하신 김한서씨 맞으십니까?”

    “…일단 들어오시죠.”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한걸음 뒤로 물러난 남자의 뒤로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다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지? 왜 둘이야? 당황한 기분으로 두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자, 문을 열어줬던 창백한 안색의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저는 김한서씨의 전속 가이드 이재윤이라고 합니다. 제가 지금 가이딩을 할 수 없는 상태라 급히 지원팀으로 보조 가이딩을 요청한 겁니다. 서요한씨라고 하셨죠? 일단 앉으세요.”

    “…그렇군요.”

    설마 가이딩 하는 걸 지켜보기라도 할 셈인가? 불편한 마음이 들어 나도 모르게 대답이 불퉁해졌다. 남자가 가리켜 보인 의자에 앉아 가이딩이 필요하다는 에스퍼를 쳐다보았다. 기묘한 열감이 서린 흔들리는 눈동자가 한 곳에 고정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배회하고 있었다. 폭주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곳은 흔히 세가(CEGA)라고 불리는 정부 산하 기관으로 그 정식 명식은 ‘Corea Esper & Guide Agency’였다. 그러니까 정부에 등록된 에스퍼들과 가이드들이 소속된 기관으로 나나 저 앞에 두 남자도 등록된 에스퍼와 가이드라는 의미였다.

    “능력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B등급의 애니멀 테이커(Animal Taker)입니다.”

    “아….”

    생각보다 높은 에스퍼 등급에 당황해하자 그 곁에 서 있던 가이드로 보이는 남자가 예민해진 얼굴로 대신 입을 열었다.

    “죄송한 물음입니다만, 서요한씨의 가이딩 등급은 어떻게 되십니까.”

    죄송한 질문인 걸 알면서도 묻는 건 뭐지? 자꾸 톡톡 끼어드는 남자를 뚱하게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D등급입니다.”

    역시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가이드란 남자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사실 저 마음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에스퍼란 말 그대로 초능력에 가까운 특별한 힘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힘의 대가라도 되는 것처럼 과도하게 능력을 사용하면 힘의 통제를 잃는 경우가 생겼고, 그 경우 기운이 폭주하여 죽기도 했다. 이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가이드였다. 가이드는 에스퍼의 통제를 잃은 힘을 가이딩 하여 다시 원래의 평온했던 상태로 되돌리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니까.

    이러한 에스퍼나 가이드들은 그 능력치에 따라 등급이 나누어졌다.

    에스퍼는 크게 물리계열, 정신계열, 특수계열로 나누어졌고, 그 안에서 상위 등급인 S등급부터 하위 등급인 F등급까지로 나누어지게 된다. 앞의 앉은 남자의 경우 애니멀 테이커의 능력은 특수계열에 속했고, 그 능력치가 B등급으로 상당히 높은 등급에 해당한다.

    그에 반해 나는 D등급의 가이드였다. 보통 가이드는 에스퍼와의 친밀도에 의해 가이딩의 효율이 달라진다. 즉, 에스퍼가 가이드를 얼마나 신뢰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가이딩률이 달라지게 된다는 의미로, 사실 그 등급을 나누는 게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가이드에겐 등급이 존재했다. 가이딩을 할 때 얼마나 쉽고 빠르게 효율적인 가이딩을 할 수 있는지를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보통 가이딩은 에스퍼의 힘의 근원이 있는 정신세계로 링크하여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가이딩을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그 가이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원거리면서도 치료율이 높으면 높은 등급이, 근거리면서 치료율이 떨어지면 낮은 등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가이딩률이 평균적으로 38%밖에 되지 않는 D등급의 가이드였다. 그것도 38 광땡이란 우스꽝스러운 별명까지 달린 지원팀의 보조 가이드.

    그런 사람에게 제 에스퍼의 가이딩을 부탁해야 하는 상대 가이드의 불안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폭주 증상을 치료나 할 수 있을까 싶겠지. 그러나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남의 가이딩에 끼어드는 것까지 용납해 줄 마음은 없었다. 기관에 속해 활동한다고 해도 가이딩이란 원래 무척 사적인 영역의 일이었으니까.

    “D등급이라니… 피부 접촉만으로 B등급의 에스퍼를 응급 가이딩 할 수 있겠습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가이드를 빤히 바라보다 기관에서 보급품으로 나눠주는 하얀 면장갑을 벗었다. 그런 뒤 폭주의 전조 증상으로 몸에서 열기를 내뿜고 있는 에스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단 한번 해보죠. 급하니까요.”

    그 태연한 말에 창백하게 질려있던 가이드의 얼굴이 이제는 파르스름하게 변했다. 일반적으로 가이딩을 할 때 권장하는 가이딩률은 80%였다. 그쯤 돼야 폭주 중인 에스퍼를 치료할 수 있었고, 전속 가이드 계약 역시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이딩률은 에스퍼가 가이드의 가이딩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조금씩 그 수치가 변했고, 보통 성적 접촉도를 올리면 가이딩률 역시 올라가게 된다. 그렇기에 가이딩률이 낮은 보조 가이드들도 가이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결국 눈앞에 있는 이 에스퍼와 내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와 전속 가이드 계약을 맺은 가이드의 입장에서야 싫은 게 당연했다. 전속 가이드 계약은 가이딩률도 가이딩률인데, 서로가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파트너임을 계약하여 기관에 신고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혼인신고와 그 효력이 같았다. 즉, 앞에 선 저 둘은 부부 사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저 가이드가 아까부터 계속 예민하게 굴고 있는 것이고.

    “잠시만요, 가이딩을 그렇게 함부로 하게 둘 수는-.”

    “이보세요.”

    김한서라는 에스퍼의 곁에 서 있다 다시금 앞으로 나서는 남자를 뚱하게 바라보다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끊고 나섰다. 왜 저러는지 이해 못 할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사람을 불러놓고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있는 남자가 마음에 들 리도 없었다.

    “급해서 부르신 거 아니었습니까? 전속 가이드 분께서 가이딩이 힘들 때 지원 나오는 게 저희 지원팀입니다. 근데 아까부터 자꾸 끼어들면서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잖습니까. 저도 바쁜 사람입니다. 이럴 거면 본인이 직접 하든가, 아니면 나가든가 하세요. 거슬려 죽겠으니까. 그러기 싫으면 그 입 좀 다물고 계시던가요.”

    “…B등급 에스퍼입니다. D등급의 가이드가 쉽게 가이딩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걸 아니까 저도 이러는 거 아닙니까.”

    “아, 거, 진짜. B등급이 뭐 벼슬이에요? 아까부터 그걸 왜 그렇게 강조합니까? A도 아니고, S도 아닌데. 제가 할 응급 가이딩은 그냥 폭주 증상에 의한 열만 좀 잡으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응급인 거고요. 그 이후엔 전속 가이드 분께서 상태를 회복하고 나서 가이딩을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그쪽도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가서 치료나 받으세요. 그게 진짜 당신의 에스퍼를 위한 길이니까요.”

    짜증이 나서 조목조목 따지고 든 말에 가이드란 남자가 입술을 깨물며 그제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게 그냥 얌전히 치료나 받고 있을 일이지,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모를 일이다. 나라고 전속 가이드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가이딩을 하게 된 이 상황이 달가울 리 없는데, 그것에 대한 배려가 한 줌도 보이지 않아 짜증도 났다.

    무엇보다 이렇게 수다나 떨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앞에 앉은 에스퍼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으니까. 에스퍼가 폭주를 일으키면 보통 그 몸에서 엄청난 열기를 내뿜게 된다. 남자는 이제 곁에서 느껴질 정도로 피부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이성이 흐려진 듯 눈빛도 흐리멍텅했다. 그런데도 전속 가이드란 놈은 피부 접촉이 어떻고, 등급은 어떻고 하는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분한 얼굴을 한 채 한 걸음 물러난 가이드를 마주 노려보다 천천히 에스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라리 빨리하고 끝내버려야지. 내뻗어진 손 위로 닿아오는 시선을 느끼며 짜증스레 그런 생각을 한 때였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단단한 문이 나가떨어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니 문이 떨어져 나간 사이로 키가 큰 인영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아주, 몹시, 심하게 익숙했다. 불길하게도 말이다.

    “요한, 여기서 뭐 해요.”

    “…….”

    그러는 넌 여기서 뭐 하냐? 멀쩡한 문은 왜 망가트려? 노크할 줄 몰라? 손은 장식인가? 그렇게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 많은데 뭐 하나 입을 통해 나오는 게 없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문이 막히는 거구나. 와, 미치겠네.

    “설마 다른 놈한테 가이딩을 해주고 있던 건 아니죠?”

    그 설마가 맞는데. 뭐라 대꾸할 말이 없어 그저 멍청한 얼굴로 바라만 보고 있자 문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 잔해를 발로 툭툭 차던 놈이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매달리고 애원해도 안 해주던 가이딩을, 지금 다른 놈한테 해주고 있는 게 맞냐고 묻잖아요. 왜 답이 없어요, 요한.”

    “…아니, 그게… 이게 제 일인데요, 한태화씨.”

    그 말에 한태화가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시선이 방 안에 있던 세 명을 한 명씩 훑더니 내게 닿았을 때 정확히 고정되었다.

    “일, 이라…. 그럼 나도 내 일 하면 될까요? 여기서?”

    네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어?! 솔직히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일단 말려볼 요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태화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런 나를 보고 예쁘게 웃어 보인 놈이 그대로 힘을 터트렸다. 무형의 기운이 느껴진다 싶어 놀란 얼굴을 해 보이는데, 순식간에 4호실과 3호실 사이의 경계를 나눠주던 단단한 벽이 허물어지며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야, 이 미친놈아!”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천장에서 새하얀 수면 가스가 터져 나와 방 안으로 자욱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숨을 참으며 방 밖으로 도망을 치려는데, 그런 내 팔을 잡아챈 놈이 어느새 방독면을 끼고 있었다. 이런 철두철미한 씨발놈을 봤나! 애초에 이럴 생각으로 온 거였어, 이 개새끼는!

    “너! 너!”

    언젠가 봤던 장면처럼 강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손으로 놈의 면상을 가리키다 그대로 무릎을 꺾으며 몸을 무너뜨렸다. 수면 가스가 호흡기를 통해 들어오는 순간 눈앞이 흐릿해지며 온몸의 근육이 풀렸다. 이런 씨발.

    “나한테… 왜 이러냐, 진짜….”

    어느 순간부터인가 졸졸 쫓아다니며 사람을 괴롭혀대는 놈을 향해 억울하게 중얼거리다 대답도 듣지 못한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이 숫자도 좆같은 4호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그 거지 같았던 날 이놈을 처음 만난 후, 놈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정말이지 좆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2

    1. 가이드 찾기

    가이딩 지원팀이라는 거창한 명칭에 비해 실제 지원팀이 하는 일들은 매우 소소했다. 지원팀이 하는 일이라곤 보통 자료 입력을 하는 일이나, 기관 내의 비품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일, 또는 아주 가끔가다 있는 보조 가이딩을 해주는 일 등이 주 업무였다.

    그럼에도 아주 드물게, 현장에 나가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반정부 단체라 주장하는 사이비 단체들이 날뛸 때나, 폭주를 일으킨 에스퍼로 인해 대규모 진압 작전에 들어갈 때가 그랬다. 물론 현장 지원을 나갔다고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니었고, 주로 안전한 뒤쪽에 배치되어 있다가 응급 가이딩이 필요한 에스퍼들이 이송되어 온 경우 그들에게 가이딩을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폭주를 일으킨 에스퍼를 진압하러 여러 명의 에스퍼들이 차출되면서 나와 다른 지원팀의 보조 가이드 몇이 현장으로 나갔다. 그리고 큰 인명피해 없이 작전을 마치고 난 뒤, 보고를 위해 다시 돌아온 사무실에서 팀장님을 대면했던 나는 잠시 멀쩡했던 청력이 의심되어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작전 수행하면서 귀를 다쳤나?

    “…뭐라고요?”

    “공룸 3호로 가보라고.”

    “……지금 제 꼴 안 보이세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검지를 들어 젖은 모습을 가리켜 보이자 팀장님의 시선이 가볍게 내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좀 젖었네? 밖에 비 와?”

    “…….”

    비? 비라고? 비 내리는 날 먼지 나게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것 같은 팀장님의 헛소리에 짜증이 깃든 헛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평소엔 문제가 없던 힘이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폭주였다. 그리고 그렇게 폭주를 일으킨 에스퍼에게선 엄청난 열기가 뿜어져 나오게 된다. 이러한 폭주는 에스퍼들의 말을 따르자면 몸 안에 흐르고 있던 힘의 틈새가 벌어져 미친 듯이 기운이 날뛰며 이성마저 붕괴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에스퍼들은 그 틈새가 벌어지는 기분을 ‘어긋났다.’고 표현했고, 가이드들은 그 어긋난 틈새에서 문제가 되는 열점을 찾아 거기서부터 날뛰는 기운을 진정시키며 그의 능력의 근원을 치료했다.

    즉, 폭주한 에스퍼를 가이딩하기 위해선 일단 그 열점부터 잡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열점을 잡기 전까지는 폭주한 에스퍼로부터 어마무시한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는 의미였고.

    오늘 차출됐던 현장도 그 열기가 대단했다. 폭주한 에스퍼의 등급이 높은 편이었는지 현장팀 에스퍼들도 그를 제압하는 데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덕분에 그 에스퍼의 주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웠고, 아스팔트는 드글드글 끓어올랐다. 결국 그 피해를 막기 위해 살수차가 동원되었다. 시민들의 대피를 돕던 나 역시 살수차에서 내뿜어진 차가운 물을 맞으며 내도록 뛰어다녀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일이 끝나고 정신을 차렸을 땐 온몸이 으슬으슬 떨렸고, 목도 칼칼했다. 열기와 한기 사이를 오가며 뛰어다닌 덕분이었다. 그렇게 지칠 대로 지친 몸에 이러다 된통 감기라도 걸리는 게 아닌가 싶어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것을 참고, 보고라도 하고 나자빠질 생각으로 사무실에 왔건만, 그런 사람을 상대로 뭐? 또 일을 하라고? 심지어 가이딩을?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에 표정이 사나워지자 팀장님의 기세가 그제야 조금 수그러들었다.

    “아니, 내 말은… 고생했다고. 근데 너 나간 사이에 또 일이 터졌단 말이야. 웬 미친놈들이 백화점에 폭탄을 설치해서 터트렸다고. 그것 때문에 다들 그쪽으로 지원을 나가서 가이딩할 가이드가 없어. 근데 그렇다고 폭주하려는 에스퍼를 그대로 두면 여기서 폭주할 거 아냐. 그럼 큰일이고, 그치?”

    “…….”

    “그러니까 광땡아, 내가 부탁 좀 하자, 응?”

    이제야 나를 달랠 요량인지 부드럽게 타이르는 팀장님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해졌다. 물론 씨알도 안 먹힐 일이었다. 추가 근무니만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럼 저 휴가 주세요. 병가랑 같아 쓸 거니까 길-게. 비 맞으면서 뛰어다녔더니 죽을 것 같아요. 5일. 딱 5일만 쉬고 올게요.”

    “야, 그건!”

    “안 그럼 안 해요.”

    “…….”

    “싫으세요? 그럼 보고 끝냈으니 저는 이만 갑니다. 내일 봬요.”

    “야! 알았어! 해주면 될 거 아니야, 해주면! 하여튼 그 잠깐의 기회를 안 놓치지, 아주.”

    팀장님의 투덜거리는 목소리에도 기분 좋게 웃으며 팀장실을 나섰다. 5일간 쉴 생각을 하니 힘이 절로 났다.

    지원팀들은 잡무 처리를 위해 건물 각 층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말단에 속하는 편인 지원 3팀은 1층에 있었고, 가이딩을 위한 별도 공간인 공룸은 3층에 있었다. 총 4층짜리의 기역자 모양의 거대한 기관 건물에서 나는 2개의 층을 더 올라간 후, 긴 복도를 걸어 응급 가이딩 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급 가이딩 룸은 보통 공룸으로 불리는데 비하의 의미를 담아 퍽룸으로도 불렸다. 총 10개의 작은 원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가끔 사정이 급한 이들이 모텔방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관의 명성에 비하면 별것 없는 조악한 시설이었지만, 사실 응급 처치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곳인 만큼 그곳을 모텔처럼 사용하는 놈들이 미친놈들이었다. 짐승들도 아니고 말이지.

    보조 가이드인 나만 해도 혼자 살기 나쁘지 않은 정도의 월급이 나왔고, 퇴직 후엔 연금에 퇴직자 지원용 주택도 나오기 때문에 이곳은 흔히 꿈의 직장으로 불렸다. 특히 더 높은 등급을 받은 에스퍼나 가이드들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고액 연봉자들이었다. 그런 놈들이 한낮 욕정에 눈이 멀어 멀쩡히 코앞에 있는 호텔을 놔두고도 이곳에서 일을 치는 것이 어이없었다.

    “3호랬나?”

    가이딩 룸들이 쭉 늘어선 복도에 들어서서 방문 앞에 걸린 호수 명패를 살피다 3호실 앞에 멈춰 섰다. 벌써부터 안에서는 희미한 열기가 느껴지는 게 묘하게 기분 나쁜 기운이 감돌았다. 어쩐지 들어가기가 싫어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한숨을 내쉬다 느린 움직임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허리를 숙여 자세를 낮췄다.

    퍽!

    “꺼져!”

    거친 고함 소리와 함께 장식장 위에 놓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탁상시계가 날아들었다. 순발력을 발휘해 피하지 않았다면 대가리가 깨졌을 위치로 던져진 시계 잔해를 쳐다보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재수 옴 붙은 날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저- 지원팀으로.”

    “꺼지라고! 나는 내 가이드 외의 놈한텐 가이딩 안 받아! 세화를 데려와, 세화를!”

    “…….”

    가끔 이런 미친놈들이 있었다. 아무리 전속 가이딩 계약을 맺었다지만 일의 경중을 모르는 사람들이. 짜증으로 부글대는 속을 참으며 남자를 자극하지 않을 만큼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사람 좋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속 가이드분께서 가이딩을 하실 수 없는 위급 상황이실 때 저희가 나오게 되어있는데, 혹시 지금 그분이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세화는…. 내가 병신같이 지켜주질 못해서… 지금 병원에….”

    아, 저 병신 새끼.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을 삼키며 계속해서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사실 눈앞에서 다친 걸 보고도 아픈 사람을 불러오라는 새끼가 미친놈이 아니면 누가 미친놈일까. 간혹 저렇게 제 가이드 외의 사람에겐 가이딩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머저리 같은 놈들을 볼 때마다 짜증을 넘어선 분노를 느꼈다. 입으로만 위해 주는 척하면서 실상은 사람 아낄 줄 모르는 놈이 제일 싫어하는 부류의 놈 중 하나였다.

    “저런, 마음이 많이 안 좋으시겠습니다. 많이 다치셨나요?”

    “…피가… 피가 났….”

    그럼에도 슬슬 폭주의 조짐이 보이는 남자를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정신이 없는 듯 눈동자를 잠시도 가만두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남자의 시선을 피해 조금씩 걸음을 옮기며 걱정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꾸몄다. 다행히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미소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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