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143)화 (143/144)
  • #140

    “해림아.”

    성큼 다가온 세화가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왜 울까, 우리 착한 아기가?”

    세화는 아래로 손을 뻗어 기저귀 상태부터 살펴보고는, 별일 없다는 걸 확인하자 덥석 아이를 안아 올렸다. 목과 엉덩이를 척 받쳐 주는 손길에서 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숙함이 묻어났다.

    “우리 해림이.”

    해림이이, 하고 끝을 길게 늘이는 부름은 어쩐지 노래 같았다. 처음 들어 보는 말투였고 목소리였다. 아이와 둘만 있을 땐 이런 식으로 말하는구나. 진짜로 아빠 같네. 배에다 대고 속삭이던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속으로 작게 감탄하던 기태정은 뒤늦게야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시터는 젖병을 가지러 갔어.”

    빠르게 시계를 흔들어 홀로그램 창부터 열었다.

    “무전이 고장 나서 직접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하던데.”

    “아… 맞아요. 받을 물건이 뭔지 미리 전달 안 해 놓으면 담당자도 함부로 보호실에 접근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어, 그래서 갔어.”

    변명하는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사실 기태정은 몹시 당황하는 중이었다.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자리를 비우자마자 아이에게 접근한 거라고 오해할 것 같다. 허둥지둥하고 있는 자신과 빽 울고 있는 아기. 누가 봐도 제가 울린 게 분명해 보일 테니까.

    “안심해도 돼. 감시 몇 명 따라붙었고 통신 상태도 별 이상 없는 걸 보면.”

    둥실 떠오른 지도를 가리키며 슬슬 결백을 주장할 준비를 하는데, 세화는 시터의 부재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제가 침실로 난입한 이유를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저 그랬냐며 선선히 대꾸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아이를 봐줘서 고맙다고 기태정에게 감사의 인사까지 건넸다.

    “놀라셨죠, 갑자기 울어서….”

    기태정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이젠 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것도 내심 각오하고 있었는데, 세화는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 옆으로 돌아서서 자신의 어깨에 꼭 붙어 울먹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저에게 보여 주기까지 했다.

    “원래 해림이 잘 안 울거든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오늘은 기분이 좀 안 좋았던 모양이라고, 세화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렇게 심하게 우는데?”

    “에이, 이게 뭐가 심하게 우는 거예요.”

    “…그래?”

    찹쌀떡을 떼어다 붙인 것 같은 아기의 양 볼 위로 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 속상하고 서러워 보이는데, 이게 별것도 아니라고? 그럼 정말 아프고 힘들어서 울면 대체 어느 정도라는 거지?

    “저기… 소장님.”

    “어.”

    “한번 안아 보실래요?”

    습관적으로 또 어어, 하고 대꾸하던 기태정은 뒤늦게야 세화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어?’ 하고 고장 난 로봇처럼 굼뜨게 반응했다.

    “해림이 안아 주려고 재킷 벗으시려던 거 아니었어요?”

    기태정은 그제야 엉망진창인 자신의 차림새가 떠올랐다. 탈의하는 중이었다고 착각할 법도 했다. 흘끗 보니 중간 부분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고 있었고, 견장이며 훈장의 술 같은 게 아슬아슬하게 뒤엉켜 있었다.

    “…음, 그런데 계속 울고 있잖아.”

    거절하고 싶진 않았다. 세화의 시혜를 놓칠 수 없어 주섬주섬 재킷을 벗으면서도, 기태정은 조금 걱정됐다. 제가 도로 안았다가 더 큰 울음이 터지면, 이번엔 진짜로 심하게 울어 버리면… 그러면 큰일인데.

    “아기니까 우는 게 당연하죠.”

    세화는 히끅대는 아이의 엉덩이를 통통 두드려 주고는, 기태정의 품 안으로 냅다 따끈따끈한 어린 몸을 밀어 넣었다.

    “아, 잠깐만…!”

    “어, 그렇게 안으시게요?”

    조금 전 한 팔로 품에 뉘듯 아이를 안았던 것처럼 자세를 고치자, 세화가 신기해했다.

    “저는 팔이 아파서 그런 자세로는 오래 못 안겠던데.”

    “…그래? 가벼운데.”

    높아진 시야가 어리둥절한지 아기가 잠시 울음을 멈추었다. 그 정도로 구체적인 사고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기태정은 아까부터 아이의 행동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는 중이었다.

    “아, 이걸 왜 먹으려고 해.”

    자세를 고치다 아기의 입가에 모자의 리본 끈이 닿았는데, 이도 안 난 주제에 야무지게 끈을 물고는 쪽쪽 빨아 대려 들었다. 놀라 물고 있던 걸 떼어 내자 아쉬운지 입을 찹찹 다시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아이는 연신 방긋거렸다.

    이래서 갓난쟁이를 강아지에 비유하는 건가? 입에 닿는 건 다 먹으려고 드네. 사람 손도 타고…. 그래도 그렇지 천 쪼가리를 왜 물어.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려고. 기태정은 저리 얇고 흐물흐물한 끈이 사람의 숨통을 틀어막을 수 있는 사례를 몇십 개는 읊을 수 있었다.

    “싫어하지… 않으시네요?”

    다시 봐도 경이로운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데, 세화가 의외라는 듯 작게 중얼거렸다.

    “누구를, 아기를?”

    “네.”

    “내가?”

    “네.”

    이미 예쁘게 묶인 리본의 매듭을 괜히 당겼다가 풀면서 한참이나 망설이던 세화는, 이윽고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 하셨던 얘기도 있고… 아, 항구에서 했던 말 말고요.”

    기태정은 사레들린 사람처럼 크게 기침을 했다.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2환에서 있었던 일을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아이 가져 봤자 뭐가 좋겠냐고, 팔자 뻔하지 않겠냐고 하신 적 있잖아요.”

    “…그건,”

    “딱히 해림이에 대해 묻지도 않으셔서…. 관심이 있으셨다면 진작 해림일 찾고도 남으셨을 분인데, 소장님 성격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으시길래 역시 아기는 싫어하시나 보다, 했죠. 물론 저도 처음에야 보여 드릴 생각 없긴 했는데요….”

    “아니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다급하게 부정하는 통에 몸이 얕게 흔들리자, 저와 놀아 주는 것인 줄 알았는지 아이가 신나게 발을 굴렀다. 손발을 꽁꽁 싸매 놓은 탓에 가동 범위가 넓지는 않아 그걸 발구르기로 봐야 할진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하찮은 꼬물거림이었다.

    “말했잖아. 내 유일한 예외는 너라고.”

    “…….”

    “그런 네가 낳은 아이인데, 내가 왜 싫어해. 다만 나는….”

    주절주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준비를 하던 기태정은, 문득 이전과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에 잔잔한 웃음을 흘렸다. 심각한 이유가 있어서 아이를 감춘 게 아니었구나. 서로 말을 안 해서 빚어진 오해였을 뿐이다. 이 이상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고 싶지 않아서, 또 상대방을 아프게 할퀴고 싶지 않으니 각자 적당히 체념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도 네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랬어. 싫어하는 게 당연하잖아, 배 속에 있는 애한테 그딴… 소리를 했는데.”

    “…….”

    “그리고 네 말마따나 내 성격이 지랄 맞아서 그래. 난 아이와 관계없이 네가 날 받아 주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넌 착하잖아.”

    밑도 끝도 없는 자신의 말에 세화는 턱을 뒤로 당기며 얕게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 잉잉 우느라 잔뜩 표정을 구기던 아기와 똑 닮은 모습이었다. 기태정은 결국 크게 웃고 말았다. 아까부터 소성이 실실 새어 나오고 있긴 했는데,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고 싶지 않아졌다.

    “이렇게 계속 네 곁에서 뭉개고 있다 보면, 또 내가 아기 보면서 좋아하면… 넌 별수 없이 받아 줄 것 같았어.”

    “…….”

    “근데 난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어쩌다 보니, 그런 식으로 너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아이가 싫지 않은 건 사실이야. 그렇다고 가족이 아쉽다는 핑계나 대면서 너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나는 너처럼 마음이 곱지 않으니까. 개과천선도 싹수가 있는 새끼들이나 할 수 있는 거더라. 난 아직도 욕심이 많아서 안 될 것 같아.

    “아이 안 보여 줘도 돼. 그와 상관없이 네가 진심으로 괜찮아졌을 때, 그때 나 다시 받아 줘.”

    어떠한 변수도 허용하지 않고, 오로지 너만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세화가 눈썹을 까딱였다. 이기심이 철철 넘치는 기태정에게 뭐라 대꾸는 하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나는 것이 없는 듯 입술만 달싹이면서 한참을 망설였다.

    한때 폐허와도 같았던 하얀 낯에 다시 물든 생기를, 기태정은 새삼스러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갓난아기가 꼼지락거리는 걸 배냇짓이라고 하던가. 이세화 저건 스물두 살인데도 왜 아직 배냇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입술을 오물거리고 눈썹을 움찔 떠는 게, 아이만큼이나 무구하고 어린 그 태에 심장이 다 저릿저릿했다.

    “정말 소장님은… 어쩌면 그렇게 욕심이 많으세요.”

    “그러니까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고는 있었지만 사실 많이 떨렸다.

    “나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고. 너한테 달라진 모습도 보여 주고 싶고, 그러면서도 네가 마음껏 미워할 수 있게 너무 변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거짓말.”

    “진짠데.”

    품에 안긴 아이가 추임새라도 넣듯 차압, 하는 소리를 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이 난 아기는 새부리 같은 입으로 뭐라 열심히 웅얼웅얼하고 있었다.

    “참, 검사는 왜 받으러 간 거야.”

    “아, 저 체질이 바뀌고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는 가질 수 있나 봐요.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아.”

    그 이유로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며, 세화가 자신의 배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기태정은 아이를 안지 않은 손으로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하다, 조심스럽게 세화에게로 뻗었다. 고리처럼 검지를 구부려 배 부근을 톡 두드리자, 세화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게 전부였다. 진절머리를 내며 기태정의 손을 털어 내지도, 매몰차게 손등을 때리지도 않았다. 낯선 곳에 떨어진 어린 짐승처럼 숨조차 아껴가며 조심조심 배를 쓸어 주는 커다란 손을 응시할 뿐이다.

    “…많이, 아팠지.”

    “…….”

    “미안해.”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세화가 어물거리는 사이, 제가 대신하겠다는 듯 아이가 흥겹게 발을 휘저었다. 꼬물꼬물한 발차기 한 방에 축 가라앉을 뻔했던 분위기가 단박에 되살아났다.

    “…나무처럼 쑥쑥 자라길 바랐어요.”

    난감한 듯 혹은 쑥스러운 듯 묘하게 웃던 세화는 수건을 가져와 아이의 입가를 톡톡 두드리듯 닦아 주었다. 마약을 감별하려 거즈가 감겼던 하얀 손에, 분유 냄새가 폴폴 풍기는 부드러운 가제 수건이 들려 있다.

    갖은 격랑에 떠밀린 세화의 눈은 예전보다 깊어졌고, 때론 어둑어둑해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캄캄한 밤에도 수면 위를 어룽거리는 윤슬처럼 쉬지 않고 힘을 내서 차랑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기태정은 먼저 다가와 준 세화 덕에 숨을 쉴 수 있었다. 사람이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손을 내밀어 주는 건 언제나 이세화다. 곁에 있어도 된다고 허락해 준 것도, 자신이 싫어할 수도 있다고 짐작하면서도 머뭇머뭇 아이를 안아 보지 않겠냐고 권해 준 것도 세화의 용기 덕이었다.

    “숲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랗고 튼튼한 그런 나무가 되었으면 싶었어요. 새싹이라는 태명과 어울리기도 하고….”

    뒷짐을 지며 축축해진 수건을 감추고는 세화가 흠흠 헛기침했다.

    “그리고 그때는 바다가 너무 좋아서… 바다로 나가면 뭐든 해결될 것만 같아서….”

    “…….”

    “그래서 해림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오선란 대장님이 주신 책 보고서, 뜻에 맞는 글자 찾아서요….”

    그러니까, 하고 세화가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해림이라고 불러 주세요.”

    “…….”

    “아이나 아기라고 하지 마시고… 해림이라는 이름이 있으니까요….”

    창을 비집고 들어온 오후의 햇볕이 세화의 어깨와 정수리, 그리고 또 반대편 어깨를 느리게 훑고 갔다. 구름이 움직이는 궤적이 대리석 바닥에 뭉글뭉글 흩어지는 게 다 보일 만큼 날씨가 좋았다.

    기태정은 말도 안 되게 평화로운 정경에 넋을 놓다가, 언젠가 침대 위에서 아이에게 가만가만 속살거리던 세화를 떠올렸다.

    돌고래를 보고 싶다던 목소리. 부채꼴로 펼쳐진 미색의 불빛. 좁은 틈으로 보이는 세화의 얼굴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던,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상에 사로잡혔던 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억지로 세화를 옆에 끼고서도 혼자서 꿈을 꾸기 시작했던 게. 어떻게든 그 따뜻한 환상에 자신을 끼워 넣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할 줄 몰라서 한참을 멀리 돌아왔다.

    “…세화야.”

    “왜 저를 부르세요.”

    웃음기가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세화가 재촉했다. 마침 안고 있기도 하니, 해림이 얼굴 보면서 이름 한번 불러 보라고.

    기태정은 목구멍 뒤로 자꾸만 울컥 넘어가는 무언가를 꾸역꾸역 삼키다, 뒤늦게야 입을 열었다.

    “…이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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