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기태정은 기습을 앞둔 사령관처럼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 침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당황스럽게도 꼼지락거리는 기척은 점점 선명해졌다. 발이라도 구르는 건지 시트가 사락거리는 소리도 들리고, 입술을 뻐끔거릴 때 살갗이 붙었다 떨어지며 나는 소리도 들렸다.
세화의 곁을 지키는 동안 기태정 또한 아이의 생활 패턴에 제법 익숙해졌다. 떨어져 지내기 전 세화의 마음을 돌리겠답시고 나름대로 육아 서적을 탐독했던 덕에, 기초 상식 정도는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분명 불편하고 답답할 때 엥엥 우는 것 말고는 소리 내어 자기 뜻을 전할 수 없는 개월 수다. 옹알이는커녕 자기 손발도 뜻대로 뻗기 어려울 거다. 그런데 왜…. 왜 갑자기 깬 거야, 그것도 하필 시터 놈이 나가자마자.
조심스럽게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 햇볕에 푹 데친 것 같은 뽀송뽀송한 침구의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아기가 쓰는 물건에서 나는 향과 세화의 체향이 한데 어우러져, 어지러울 정도로 달았다. 문가에 우뚝 정지해 있던 기태정은 연신 마른세수만 하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아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라면, 내버려 뒀다가 혹시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모든 게 끝일 거다. 그러니 조심해서 살펴보자. 보기만 하자.
일주일간 무시무시한 무기들을 직접 만지고 다루면서도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손바닥에 살짝 땀이 고일 정도였다.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자, 움직임이 확연히 보였다. 다행히도 아기는 울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고 있었다.
손과 발이 다 막힌 우주복 같은 걸 입고 있었는데, 그 덕에 불가사리처럼 보였다. 가오리 같기도 하고…. 속싸개처럼 몸을 조여 주는 옷인가? 어쨌든 병아리에게 우유를 잔뜩 부어 놓은 것 같은 옅은 노란색 옷을 입고서, 자그만 몸통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건… 귀엽긴 했다.
괜히 침대 이곳저곳에 무의미한 시선을 던지던 기태정은, 한 번 더 짧게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통통한 뺨이었다. 헤 벌어진 분홍색 입술, 그만큼이나 쪼그만 귀와 코, 그리고….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커다랗고 동그란 눈.
숨 쉬는 것조차 잊고서, 기태정은 뚫어져라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진짜 똑같네.”
저조차 움찔할 정도로 낮게 갈라진 목소리였는데도, 아기는 놀라지 않고 유순히 눈만 깜빡였다. 그러다가도 헤헤 웃는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린다.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 착각일 게 분명하지만… 자신의 중얼거림에 아이가 꿍얼꿍얼 대꾸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똑같이 생겼네, 세화랑.”
불가사리나 가오리 같다는 멋없는 감상은 취소하기로 했다. 그딴 것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세화의 아이는… 음, 뭐가 좋을까. 어떤 표현이 적당할까. 세화의 앞에선 기름칠이라도 한 듯 잘도 놀렸던 혓바닥이 굳은 듯 딱 멈춰 버렸다. 어이없는 옷을 입고 있는, 저 어이없게 귀여운 모습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지?
온도 조절을 위해서인지 아기는 조그만 머리통에 모자도 쓰고 있었는데, 거기엔 심지어 귀도 달려 있었다. 강아지인지 곰인지 하여튼 손톱만 한 동그란 귀 두 개가 위풍당당하게 붙어 있는 모습이,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예뻐서 헛웃음이 나왔다.
세화랑 똑 닮은 얼굴을 한 작은 생명체는 저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타고난 건지 멀거니 있어도 웃는 것처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뭘 알고서 그러는 거겠냐만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해칠 수 있다는 건 생각조차 못 하는 듯 천진하기만 했다.
아. 조약돌처럼 반질반질한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기태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발밑이 훅 꺼지는 것만 같았다. 해림, 이해림. 저는 아직도 허락받지 못한, 아니 관여조차 할 수 없었던 아이의 이름만 혀끝에서 맴돌았다. 견뎌 낼 틈도 없이 속에서 울컥 튀어나와 버렸다. 이해림, 그 말이 아니고선 어떤 예쁜 말로도 이 아이를 설명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눈꺼풀 안쪽을 스쳐 가는 것은 어느 날의 잔인했던 기억이다. 세화에게 빈정거리는 제 목소리가 귓전을 사납게 때린다. 만신창이가 된 세화에게 뭐라 모진 말을 했더라. 시터의 말대로 자다가 깨서도 울지도 않고, 낯선 사람을 보고서도 칭얼대지도 않은 착한 아기에게 대체 무슨 저주를 퍼부었던 거지.
그랬던 주제에 여기서 너 세화 닮았다고 감탄하는 게, 귀엽다고 놀라워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세화의 아이에겐 엄청난 능력이 있었다. 세화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여전히 좆같이 대하는 기태정조차 절로 무릎 꿇고 싶게 만드는, 살아온 나날을 절로 반성하게 만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네가 세화를 닮지 않았어도, 이렇게 반가웠을까?”
기태정은 상체를 완전히 숙여 코앞에서 아기를 들여다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세화가 아니라 나를 닮았다면. 아니, 둘 중 누구도 닮지 않아 못난 얼굴이었다면… 그래도 나는 널 보고 이렇게 감탄하고, 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답안이 울려 퍼졌다. 씨발,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당연히 그랬을 거라고. 죽도록 미안했을 거고,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을 거라고.
숨이 막힐 듯한 죄책감에 자꾸만 속에서 길어 오르던 한심한 우문을 밀어 냈다. 그래. 어떤 형태였더라도 예뻤을 거다. 누구도 아닌 세화의 아이니까. 이제 자신에겐 아무런 권리도 없지만… 세화와 저의 아이인데, 예쁘지 않을 리가 없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콧잔등을 씰룩이다 기지개를 켜듯 팔을 쭉 뻗었다. 그 바람에 머리맡을 장식하던 토끼 인형이 살짝 밀려 났는데, 저딴 솜뭉치에 눌린 자국조차 남기지 못하는 여리디여린 악력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분명 발육 상태는 정상이라고 했는데. 원래 저렇게 힘이 없는 게 당연한 건가. 책이나 홀로그램으로 보고 익혔던 것과 실제의 아기는 너무나 달라서, 농담이 아니라 저러다 당장이라도 어딘가 부러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기태정은 맥을 추리지 못했다.
“흐잉….”
한참 혼자서 꼼지락거리던 아이가 뭐가 불편한지 입술을 삐죽였다. 옥수수 알갱이처럼 작게 벌어졌던 입은 꾹 다물려 세모꼴을 그리고, 조그만 턱에 그만큼이나 작은 주름이 잡힌다. 눈썹은 아래로 쭉 휘었고 큰 눈에는 물기가 아롱아롱 어렸다.
아, 울면 큰일인데. 지금 아무도 없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태정은 저도 모르게 크게 웃고 말았다. 이 쪼끄만 게, 우는 얼굴도 자기 아빠랑 똑 닮았네.
“왜, 뭐가 불편한데.”
갓 구운 빵처럼 하얗고 따끈따끈한 뺨을 톡톡 두드려 주자, 칭얼대는 목소리가 조금 더 터졌다. 슬쩍 아래를 확인해 보니 뜨끈뜨끈하지도 않았다. 기저귀를 갈 때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사람의 체온을 원하는 걸까.
한참 망설이던 기태정은 조심스레 침대 안으로 손을 뻗었다. 안아 주려 자세를 취하려다, 뒤늦게야 정복 재킷에 걸친 여러 가지 장식들이 연약한 아이의 피부를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는 부랴부랴 옷부터 벗었다.
그러곤 잠영이라도 하듯 숨을 멈춘 채로 신중하게 아이를 건져 올렸다. 진짜로 물속에서 하늘하늘한 해산물 같은 걸 건져 낸 기분이었다. 그 정도로 너무 가벼워서 안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두 팔을 다 써서 안았는데, 제 손이 커서인지 아이가 작아서인지 오히려 불편했다. 한쪽 팔로만 받쳐 안는 게 차라리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기는 한바탕 크게 울려던 것을 멈추고 울음기가 싹 가신 눈으로 기태정을 올려다보았다. 울려다 말아서 그런가, 눈동자가 엄청나게 반짝거렸다.
세화와 있을 땐 일부러 아이에 관한 이야길 꺼내지 않았다. 보여 달라는 말은 물론이고, 관련한 일을 묻지도 않았다. 오선란 대장에게 우기고 우겨 보호실에서 아이에게 쓰는 비용만큼은 제가 부담하고 있었지만, 이마저도 세화는 모르고 있다.
이 주제로 입술을 감쳐무는 건 저뿐만이 아니었다. 세화 또한 저를 침실로 들이지 않았다. 잠시 저를 거실에 방치해 놓곤 안에서 아이를 살피면서도, 안으로 들어와 보라는 권유는 일절 없었다.
세화는 지금의 이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한다. 허심탄회한 속내를 나누는 건 아직은 어려웠고, 물꼬를 튼다고 한들 결국은 저를 향한 지탄으로 흐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고, 그게 당연하다. 세화는 아무 잘못 없으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 버리면 세화는 또 울 거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지긋지긋해할 것이다. 저야 세화가 같은 말을 반복한대도 몇 번이고 받아 줄 의사가 있었으나, 정작 당사자가 견디기 어려워하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시원한 속풀이를 종용하는 것도 상처가 많은 사람에겐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요즘의 세화를 보면서 배우고 있다.
그래서 요즘의 두 사람은 서로가 어렵고 불편할 이야기는 어떻게든 도려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나는 이제 너 못 안아 줘.”
지금 이것도 몰래 안아 준 거란 말이야. 작게 속삭이자 아이가 답이라도 하듯 아까처럼 입을 오물거렸다. 자신의 단단한 가슴팍에 기대어 뺨이 살짝 눌린 모습이, 상황도 잊고서 당장 세화부터 부르고 싶을 만큼, 얼른 이 얼굴 좀 보라고 채근하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왜 깼어, 잘 자다가.”
아기는 웃는 낯으로 눈만 깜빡였다. 인식과 교감이 어우러져 보이는 반응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기태정은 아이에게 자꾸만 아무 말이나 걸어 댔다.
“사람 손 타는 거 안 좋다던데….”
산부 수첩 속 홀로그램에 불과했을 때에도 제가 함부로 수첩을 내던지면 와앙 울던 녀석이었다. 손가락으로 투박하게나마 얼굴을 간질여 주자 그제야 웃었지. 가상의 데이터 주제에.
보기 좋게 꾸민 홀로그램이었다고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이유 없이 울다가 저에게 안기자마자 방긋방긋 웃는 걸 보고 있자니 제법 연관성이 있는 것도 같았다.
입을 다물고 있자니 애가 심심할 것 같고, 그렇다고 자꾸 혼잣말하는 건 더 이상하고…. 아이에게 할 말이 떨어져 조금 어색하게 침실 안을 서성이고 있는데, 마침 시계의 알림이 울렸다.
짧게 손목을 털어 창을 활성화하자, 물품을 가지러 갔다던 시터의 동선이 둥실 떠올랐다. 놈의 곁에 누가 붙어 있고, 근방의 무전 교신 상황은 어떤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오선란 대장에게도 보고 들어갔으며, 시터들의 신상 조사 진행 중이라는 박 중위의 메시지도 곧장 들어왔다.
지도를 들여다보던 기태정은 아기의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터 놈이 오기 전에 도로 이 쪼그만 것을 뉘어야 하는데… 떡 반죽처럼 손에 찰싹 달라붙은 감각이 아쉽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제 나에게도 아이를 보여 달라는 말은 할 수 없는 노릇이니까….
항구에서 세화에게 퍼부었던 못돼 먹은 말이 미안해서 그러는 것도 있지만, 혹여라도 자신의 태도가 아이로 인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어떤 외부 요인과 관계없이 너에게 미안해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은 거라고, 세화가 그렇게 느끼길 바랐다.
이 지경이 되었어도 나는 널 사랑한다는 걸, 뻔뻔하게도 네 사랑을 다시 돌리고 싶어 하는 중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하는 거지,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 매달리는 것으로 오해해선 곤란했다. 아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날 받아 주길 바라는 게 아니었으니까.
저는 세화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준장님?”
세화의 축소판을 차마 품에서 떼어 놓질 못하고 홀로그램 속 일사불란한 족적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현관문이 덜컥 열리고 난데없이 세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은 있는데…. 준, 아니, 소장님?”
자신이 침실에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는 듯 어리둥절한 세화의 목소리가 부엌과 거실을 배회했다. 기태정은 볼 안쪽을 세게 짓씹으며 서둘러 그러나 조심히 아이를 내려놓았다. 아기용 침대 난간에 걸쳐 두었던 정복 재킷을 걸치고, 빠르게 단추를 잠그고 있는데 누워 있는 어린 것의 눈이 심상치 않게 그렁그렁했다.
“여기서 뭐 하….”
“으아앙!”
마침내 저를 발견한 세화가 의아해하며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덜렁 침대 위로 눕혀진 아이가 진짜로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