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준장님. 제대로 된 소리도 아닌 까슬한 부름이 입 안에서 허망하게 흩어졌다. 그 기색을 모를 리가 없는데도 기태정은 왜 불렀냐고 되짚어 주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또 사람 속 터지게 한다며 핀잔을 줬을 텐데…. 아니, 요즘의 그라면 어쩐 일로 먼저 날 불렀냐며 반색했을지도 모르겠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어느 날의 기태정이 빠르게 스쳐 갔다.
폐수가 고여 있던 창고, 싸구려 집기로 도배된 가라로 만든 사무실, 불길을 뚫고 그와 달렸던 1환의 대피소와 하늘을 날았던 스포츠카, 창문 하나 없었던 벙커, 허름한 제 숙소에서 나누었던 입맞춤, 까맣고 하얀 기태정의 거대한 관사, 유리로 지어진 청사의 온실, 함께 사과를 골랐던 어느 한적한 오후, 신전처럼 지어진 웅장한 병원과 국방부 건물의 차가운 바닥, 몸을 웅크리고 있던 컨테이너 속 쿰쿰한 곰팡내, 2환의 낡은 여관방, 기름에 찌든 2환의 바닷가와 눈이 멀 것처럼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던 조명, 그리고….
그 순간마다 저를 부르던 남자의 목소리가 탑처럼 층층이쌓여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압적이던 그의 말투는 점점 부드러워졌다. 대체 왜 저렇게 말을 하는 걸까, 속상함에 눈물을 고이게 했던 저질스러운 놀림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조금씩 어리기 시작했다. 끝에 이르러서는 다 타 버릴 듯 뜨거워, 도저히 외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화는 끈덕지게 달라붙는 잔상을 떼어 내려 눈을 깊이 감았다 떴다. 앞에 서 있는 것은 여전히 그 남자, 기태정이다.
독한 약을 마시고도 꿈쩍도 안 했던 주제에 눈앞의 그는 몇 번이나 죽었다 살아난 사람처럼 보였다. 파리하게 질린 눈동자, 깎아지른 듯 날카로워진 턱선….어느 순간부터 자기야, 가 아니라 이세화, 그렇게 자신을 부르고 있는 남자의 새카만 시선이 세화의 속을 아프게 헤집었다.
이마에서 관자놀이로, 뺨으로, 마지막으로 턱 끝까지 기태정의 손길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갑옷처럼 그의 몸을 두르고 있던 담배 향은 이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
기태정은 세화에게 한 마디라도 더 붙이고 싶어, 속에 켜켜이 얹힌 문장을 계속 뒤적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덕지덕지 붙은 초라한 수식어를 죄 밀어 내고 나면 결국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만 남았다.
세화에게 또 거짓말을 했다. 뉴스에 자주 얼굴 내비칠 거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매체에서 제 이름이 흘러나오는 건 이 나라 영공이 뻥 뚫려 침공이 시작됐다는 비보를 전할 때뿐일 거다. 혹여 불의의 사고라도 당하면 짤막하게 부고 소식 정도는 보도될지도 모르겠다만… 현실적으로 둘 다 불가능할 테니, 어떤 식으로든 세화가 제 낯짝에 습격당해 속상할 일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전쟁터로 돌아간다고 하면, 그것도 아주 위험한 곳만 골라서 가게 될 예정이라고 하면 이세화는 분명 울고 말 거다. 이제야 저에게 날을 세우고, 거부도 하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는데…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별일 아닌 듯 굴어야 한다.
주려던 때가 한참이나 지난 세화의 신발 위로 모래바람이 나부꼈다. 기태정은 다시 몸을 굽혀 그 위로 손차양을 만들었다. 바다 쪽으로 등을 등지고 선 채 곧 떠나야 할 소중한 이의 발 위로 그 무엇도 얹히게 하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 만났던 날, 세화는 더러운 물웅덩이를 첨벙거리며 걸어왔고, 무언가를 눈치챈 듯작게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땐 괜찮으냐 묻는 대신 네가 그 유명한 꽃이냐고 조롱이나 했으니, 떠날 땐 백사장의 모래조차 그의 발에 닿지 않게 해 주고 싶었다.이제는 너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끝이 닳기 시작한 장작더미 일부가 덜그럭거리며 무너져 내렸다. 그 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건지 저 멀리서 정적을 가르는 희미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오선란 대장이 도착한 모양이다.
“내가 했던 못돼 처먹은 말들은 다 잊고… 잘 살아.”
“…….”
“아이랑 같이, 행복하게.”
비가 오는 것도 아닌데 기태정의 정수리 위로, 세화의 신발 앞코 위로, 하얀 모래 위로 동그란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기태정은 모르는 척 고집스레 세화의 새 신발만 쓰다듬었다.
더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굉음이 커졌다. 기태정은 그제야 결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툭 떨구고 있는 세화의 가느다란 목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갖은 감정으로 얼룩진, 제가 망쳐 버린 사랑하는 사람의 서글픈 얼굴.
“이젠 아프지 말고.”
어차피 눈물이 잔뜩 번져 저를 제대로 보지도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기태정은 애써 옅게 웃어 보였다. 모진 말을 퍼붓고 목줄이나 걸던 야차 같은 얼굴이 아니라, 지금 이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했다.
차 문이 열리고, 열을 맞추어 바닥을 긁는 군홧발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마지막이었다. 기태정은 세화의 신발을 감싸던 손을 놓으며 길게 몸을 일으켰다.
…사실은, 미안하다거나 행복하라거나 더는 아프지 말라는 그런 말 대신
사랑한다고
세화 널 사랑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
“그래서 Z2 안에 봉해 두었던 것들 다 꺼내고 성분 검사 시작하는데, 김 소위, 아니 김석철 그놈이 어찌나 발악을 하던지….”
오선란 대장의 목소리는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정말로 신이 나서 그러는 게 아니라, 아직도 눈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저를 위해서 애써 밝은 척해 주고 있는 거였다.
“참, 세화야. 너 태닝 스프레이 얼굴에 뿌리고서 검문소 오갔던 적도 있다며?”
“…아, 네.”
“그 스프레이도 증거물로 나왔는데, 검수하는 과정에서 이 방법으로 성 밖으로 몰래 드나들었던 고위직 명단도 나왔지 뭐냐? 이참에 싹 잡아들이기로 했다. 끽해야 가벼운 벌금 수준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
저도 모르게 기태정의 이름을 입에 담으려던 오선란 대장이 멈칫하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흐흠, 하여튼… 여태 남들한테 꼬투리 같은 거 잡혀 본 적 없는 놈들이라서, 길길이 날뛰는 꼴이 볼만했다.”
거대한 차체가 포트 밖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제법 눈에 익은 5성의 거리가 저 멀리에서 환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오선란 대장의 차는 기태정의 것보다 커다랬다. 번호판의 색도 조금 달랐고, 여기저기 박힌 장식들도 훨씬 화려했다. 밖에서 들리는 엔진 소리는 굉장하지만 안에 타면 조용하다는 것만큼은 기태정의 차와 똑같지만….
아, 이제 준장이 아니고 소장이라고 했나? 그건 또 얼마나 높은 직급이고, 얼마나 대단한 자리일까.
세화는 반질반질 윤이 흐르는 가방을 어색하게 무릎 위에 올려 두고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장 다음 중장이라고 했으니, 그럼 그다음이 대장일 거고…. 그렇다면 지금 제가 타고 있는 이 차도 기태정이 그토록 소망하던 것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물 좀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마른 입술을 축이자 어이가 없게도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툭 흘렀다. 몸 안의 모든 수분기가 우는 데 쓰이는 모양이었다.
환자복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새 신발을 신은 우스꽝스러운 차림새였는데도, 오선란 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기태정과 무슨 얘길 나눈 건지, 앞으로 어떻게 하기로 한 건지… 오선란 대장은 무엇도 묻지 않았다. 가벼운 한숨조차 허투루 흘리지 않으며, 조용히 손수건을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격렬한 울음이 잦아들 때쯤이 되어서야 오선란 대장은 재판의 후일담을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배경 음악 삼아 편하게 들으라면서.
저와 아기를 들먹이던 악인들이 매우 곤란해졌으며, 한몫 챙길 생각에 잔뜩 흥분한 늙은이 하나가 가발까지 벗어 던졌다는… 그런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한담을 듣고 있자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도 같았다.
세화는 카디건 소매로 눈가를 꾹 누르며 익숙하지 않은 상실에 대해 생각했다. 끝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울겠지? 그러니까 이건… 반사적인, 습관 같은 눈물인 거겠지? 기태정에게 미련 같은 게 남아서가 아니라….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을 게다. 나도 지금 그렇거든.”
세화가 조금 진정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그제야 오선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회를 털어놓았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내 목표는 하나뿐이었단다. 진우의 아이, 너를 찾는 것… 오직 그것뿐인 삶이었어.”
“…….”
“무조건 해내리라 맹목적으로 굴어 왔던 건 너도 잘 알겠지만… 사실은 말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이미 틀렸다고 체념하고 있었다. 남겨진 단서는 하나도 없는데 시간은 20년이 넘게 흘러 버렸으니…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브로커들을 뒤지고, 국외를 떠돌았단다. 왜냐면….”
“…….”
“왜냐하면 그게 없으면,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거든.”
그야말로 온통 눈이 멀어 있었다며 오선란 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데 기적처럼 널 찾게 됐지. 나는 아직도 자다가 깨서 한참을… 한참을 생각한다. 21년 전 그날이 이렇게나 생생한데, 널 떠올리며 울던 진우의 얼굴이 아직도 아른거리는데… 너와 무사히 만나게 된 걸 좀처럼 믿을 수가 없어서….”
“…….”
“그런데 말이다, 분명 기쁜 와중에도 문득 이 이후가 불안해지더구나. 진우의 아이를 찾으면 진우 몫까지 잘 살게 해 주겠다고 막연히 그리 다짐은 해 왔는데, 구체적으론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계획은 세운 적이 없어서….”
내가 정말로 널 찾을 수 있을 거라곤, 이렇게 다시 웃을 날이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며 오선란 대장이 희미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아마 세화 너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
“내가 널 찾아 헤맨 시간만큼 너도 간절히 뭔가를 바라며 살아왔겠지. 빚을 다 갚고 1성으로 가고 싶다거나, 그…, 음, 기태정 준장… 에게 사랑받고 싶다거나, 아이를 지키고 싶다거나… 하는 일들. 물론 나는 짐작조차 가지 않을 소소한 소원들도 많았을 거고….”
“…….”
“어떤 건 이루어지고, 또 어떤 건 영영 닿을 수 없는 일로 남기도 했겠지. 널 찾아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긴 하지만, 슬프게도 네가 절대로 채워 줄 수 없는 지난 시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감정은 물물 교환 같은 게 아니라서, 뭔가를 얻었다고 해서 뻥 뚫렸던 자리가 메워지는 것은 아니더구나.”
슬쩍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리는 오선란 대장의 목소리에 쓸쓸함이 잔뜩 묻어났다.
“그래도… 어쩌겠어, 살아야지.”
“…….”
“나는 천천히 고민해 보려고 한다. 양부와 양자가 아니라 너와 진짜 가족이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하면 되는 건지, 이제 국내로 들어와야 할 텐데 여기서 내가 무슨 업무를 수행할 수 있고 또 어떻게 자리를 지켜야 새로 지은 이 울타리를 튼튼히 할 수 있을지, 숙원을 기어코 이룬 나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는 건지….”
“…….”
“그리고 나는, 세화 너도 이런 고민을 해 봤으면 한다.”
오선란 대장이 몸을 기울여 떨리는 세화의 손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좋아했든 싫었든 온통 그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꽉 차 있었을 텐데… 그게 한순간 뻥 뚫려 버렸으니 눈물도 나고, 속이 허전한 것도 당연해. 그 자리 억지로 채우려고 할 것 없다. 안 그래도 돼.”
말도 안 되는 액수의 빚을 갚겠다거나, 하층민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슬픈 소망 말고. 오늘은 뭘 먹어 보겠다거나, 이도 저도 싫으니 쿨쿨 잠만 잔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행이라도 훌쩍 떠난다거나….앞으론 그런 시시콜콜한 걸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도 된다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날이 올 거라고… 오선란 대장이 달래 주었다. 그건 어쩌면 저보다도 그 자신에게 건네는 위로 같기도 했다.
“하우스에 있을 때 네 상징이 3월이라고 들었는데… 맞니?”
세화는 유리 가루라도 들이켠 것처럼 목구멍 안쪽이 따가워서, 무거운 고개만 간신히 끄덕였다.
“처음 부관에게 보고 받았을 때 3월이 제일 멋있는 패라고 생각했어.”
저도 모르게 자조 섞인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거창한 위로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3월은 사쿠라, 홍단이, 삼월이… 그렇게 아무렇게나 막 불러도 되는 손톱만 한 꽃잎에 불과했다. 존나게 센 꽃으로 자라라던 덕담과 함께 붙여진 세화라는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장 초라한 화투짝이었다.
“괜찮아요, 그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진심이야. 내가 화투는 잘 모르지만 보아하니 3월에만 장막 같은 게 있던데?”
그건 맞았다. 다른 달에는 동물이나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인데 3월엔 그 무엇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흐드러진 꽃 뒤로 새까만 천개만 덜렁 둘려 있다. 3월은 살아 있는 것이라곤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 외로운 패였다.
“장막 너머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건 그야말로 무엇이든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 아닐까? 3월만 딱 그렇길래 역시 진우 아들, 아니, 우리 아들이다 싶었지.”
과분하기만 한 해석이었다. 자신의 멸칭에 이렇게 멋진 의미를 부여해 주는 오선란 대장에게 고마웠고, 그리고…. 어이없게도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투둑 쏟아졌다. 자꾸 울기만 하는 제 자신이 이해도 가지 않고, 지겹기만 한데…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멈추질 않았다.
“세화야, 우리 살아 보자.”
듣는 사람의 속이 다 아리는 목소리로, 오선란 대장이 간곡히 애원했다.
“애써 괜찮아지려고는 하지 말고, 굳이 그 흔적 지워 내려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다시 잘 살아 보자.”
“……, …네.”
멍하니 주억거리던 세화의 고갯짓이 점점 커졌다.
오선란 대장의 말이 맞았다. 이 자리는 영원히 기태정의 것이다. 그에 대한 감정이 어떻게 변했고, 이젠 함께할 수 없게 됐다고 하더라도 텅 비어 버린 이 공간은 다른 누군가로 대신할 수 없다. 해림이가 더없이 소중하고 오선란 대장이 눈물 나게 고맙더라도, 이건 그들이 채워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시간을 되돌릴 순 없으니 스스로 일어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아마 아주 오랫동안 구멍이 난 가슴을 안고 살아가야겠지만, 적어도 속에 새카맣게 내려앉은 재는 씻겨 내려갈 수 있도록 노력은 해 봐야겠다.
이제는 해림이가 있으니까, 저는 몰라도 아기는 행복해졌으면 하니까….
그래, 살자.
“저도 계속… 생각해 볼게요, 앞으로… 어떻게 하면….”
“…….”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건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무뎌질 거다. 견디다 보면 또 어떻게든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세화는 몇 차례 심호흡하다가 결국 상체를 와락 무너뜨렸다.
기태정에게서 멀어지고 싶었다. 아이 친권을 다 넘겨 달라 했던 건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다. 전부 진심이었다.
고치겠다, 바뀔 거다… 그런 말,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를 속이고 도망쳐야겠다 결심했던 그날부터 우리 사이는 끝이 난 거나 다름없었다.
이미 다… 끝난인연인 거다.
코끝에 닿은 가방의 표면에서 기태정의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곧 사라질 잔향을 깊이 들이켜며, 세화는 오늘까지만 울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