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106)화 (106/144)

#103

잠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망.”

기태정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방금 들은 이야길 따라읊조렸다.

“…죄송합니다.”

헤아릴 수도 없이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치료제 복용과 크고 작은 처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무슨 약을 먹든, 어떤 조치를 취하든 말미엔 언제나 최악을 상정하는 안내가 뒤따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기태정은 여태 단 한 번도 그 말을 귀담아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차피 별다른 이상 없이 금세 나을 거라는 타성에 젖어 있었던 탓이다.

휘하의 부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선봉에서 실컷 구르고 오면, 이런저런 처치가 필요하다 제안을 하긴 했으나그 누구도 저를 걱정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잘못될 리 없다는 확고한 믿음 속에, 크게 수선 떨 것 없이 치료 절차는 조용히 마무리되곤 했다. 그래서 부작용을 사전 고지하는 절차는, 기태정에겐 그야말로 명목상의 행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나 중위의 말은 이제껏 들어 왔던 것과 무게가 달랐다. 듣는 자신의 어깨가 내려앉을 정도의 중압감이 느껴졌다. 나 중위는 정말로, 이세화의 죽음을 예비하고 있었다.

“이세화 씨는 로봇이 아닙니다. 이건 받아들이고 저건 흡수하지 말아라, 입력할 수 있는 장치 같은 게 없죠. 그러니 신체 내부에 나름대로 약물을 거르는 기준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걸찾아보려 했습니다. …원래 일정대로, 5개월 경에 수술 들어가기 전까지요.”

“…….”

“일단 급히 세워 본 가설은… 워낙 미흡해서 가설이라고도 하기 민망할 정도긴 합니다만, 이세화 씨의 몸이 아이를 해로운 것으로 판단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갑자기 생긴 아기집은 터무니없이 약했고, 그 와중에 제대로 뭘 먹지도 못해 영양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계속해서 받았을 극한의 스트레스로 인한 여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배 속에 자리 잡은 태아는 무척이나 건강했다. 정작 이세화는 다 죽어 가는데도 말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부를 방어하려는 성질이 강한 체질이니, 신체 기능이 저하되자마자 태아를 적으로 판단하고 어떻게든 밀어 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

“그 외의 변수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세화 씨가 단 한 번이라도 패치를 두르고서 2환의 공기를 쐰 적이 있다면, 아니… 그냥 방독면을 벗었던 것 자체가 악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마약을 제조할 땐 아주 적은 양을 잠깐 맛본 정도였겠지만, 이번엔 숨 쉴 때마다, 그것도 제법 오랫동안 유해 물질을 들이켠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이세화 몸속의 필터에 과부하가 온 상황이라는 건가.”

“제가 보기엔 그렇습니다. 마취약을 먹고, 수술로 아이를 꺼내니 위험 인자가 사라진 것으로 인식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출혈이 계속되니 긍정적 결과가 도출될 거라 판단한 거죠, 말씀하신 대로 이세화 씨 몸속의 필터가요.”

미처 다 거르지 못한 독이 구석구석 쌓이기 시작하자, 견디다 못한 몸이 피를 전부 흘리는 것으로 응수하기 시작한 것 같다.불확실한 가설뿐이라 죄송하다며 나 중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침착한 추론이 불가능한 건 기태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타당성 같은 걸 따지고 헤아릴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세화가 가진 체질의 특수성을 떠나, 기태정은 인간의 무의식과 그 의지가 어떤 기적을 만들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단신으로 이루어 낸 혁혁한 무공까지 갈 것도 없었다. 언젠가의 전투에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게 다친 병사가 있었다. 귀환정 안에 시신을 감쌀 커다란 국기까지 준비해 두었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끝까지 버티고 버티다, 마중을 나온 연인의 손이 몸에 닿고 나서야 임무를 완수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나중에 퍼진 소문으론, 그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연인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크게 싸운 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 말은 꼭 해 주고 눈을 감고 싶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가슴에 맺힌 말을 들려주겠다는그 결심이, 평범한 군인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래도록 버티게 했던 거다.

그러니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이세화는 정말로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지긋지긋해진 것이다. 살고 싶은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어서, 이대로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나 중위의 말대로 세화의 몸도 더 이상의 방어를 포기해 버리고, 그의 뜻대로 정신마저 놓아 버린 거라면….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

“…죄송합니다. 이 수술이 아니고선… 출혈이 기적적으로 멎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 수술을 진행하거나, 아니면 손도 쓰지 못하고 이세화가 죽어 가는 걸 바라보거나…. 선택지는 둘 중 하나뿐이다.

기태정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천천히 미끄러지던 손은 잠시 눈가에 머물렀고, 그 끝은 약간이나마 떨리는 것도 같았다. 무언가를 견뎌 내려는 듯 그림처럼 툭 불거진 목울대가 몇 번이나 느리게 움직였다.

이윽고 눈을 덮고 있던 커다란 손이 이내 코와 입 그리고 턱을 순식간에 쓸고 갔다. 표정을 지운다고 지웠는데도, 잔뜩 얼룩진 감정은 좀처럼 덜어지질 않았다.

그리고 기태정의 그 행동에서 무언의 허락을 읽은 나 중위가 잽싸게 호출 버튼을 눌렀다. 내부에선 이미 논의가 끝났던 모양인지, 담당자가 기다렸다는 듯 태블릿을 들고 달려왔다.

“여기에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새카만 눈길이 이세화의 이름 부근에 머물렀다. 펜을 든 손은 가시덤불이라도 쥐고 있는 듯 따끔거렸다. 기태정은 눈을 깊이 감았다가 뜨고, 보호자의 서명 칸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었다.

“그럼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 중위가 다시 자동문 너머로 사라졌다. 소독약 뿌리는 소리, 환복하는 소리, 각종 알람 소리와 지시를 내리는 고함 등이 부산스럽게 울렸다.

“저, 준장님. 죄송합니다만 인큐베이터의 상태도 확인해 주셔야 합니다.”

기태정은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에 긴 숨을 토해 냈다. 지금 그딴 게 뭐가 중요하냐고 일갈을 하려다, 저에게서 ‘그딴 걸’ 지켜 내려 지금껏 꾸역꾸역 버텨 온 세화가 떠올라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라면 눈을 뜨자마자 아이는 어떻게 됐는지 그것부터 물어볼 것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거다.

아기는 무사하다고, 부족한 것 하나 없이 건강하다고 그렇게 답해 주면…. 데려온 이후로 저만 보면 딱딱하게 얼어붙던 그 얼굴도 조금은 펴질 것 같다.

“…어디 있지, 아이는.”

“인큐베이터 보호실 안에 있는데,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등급의 보호실이고, 내부에서 총 세 대까지 케어 가능합니다. 현재는 준장님의 자제분 인큐베이터 외엔 예약이 비어 있는 터라 더욱 세심하게 돌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담당자는 아이가 보호실에서 어떠한 보살핌을 받을 것인지, 인큐베이터 속에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인지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당연히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세화가 곁에 있었더라면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이것저것 물어봤을 텐데. 정말로 이렇게 일찍 꺼내도 문제가 없는 거 맞냐며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잔뜩 긴장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보호실로 향했겠지.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보호실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달려 있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똑같은 흰색 벽인데도 어쩐지 바깥과는 채도가 달라서, 그 안만 병원이 아닌 듯 포근하게 느껴졌다.

- 이세화 산부님 보호자, 기태정 준장님오셨습니다.

바깥에 설치된 스피커를 타고 보호실 안쪽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가운데 옹기종기 모여 있던 간호사들이 흩어지고, 그중 누군가가 인큐베이터가 실린 왜건을 밀며 다가왔다.

- 예정보다 다소 이른 시기긴 하지만, 아이 상태는 매우 안정적입니다. 건강한 아드님이세요.

크림색 인큐베이터 겉면에 떠오른 수치와 그래프는 평온하기만 했다. 세화가 그렇게나 걱정하던 심장 박동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 따로 주문하신 사항이 없어 우선 기본 프로그램만 가동하였습니다.

콧노래라도 부르듯 부드럽게 일렁이는 작은 그래프를 눈길로 덧그리면서, 기태정은 이세화와 함께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었던 날을 떠올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현실을 부정하는 와중에도 홀린 듯 초음파 화면을 바라보던 옆얼굴, 경이로움을 숨기지 못하고 반짝이던 눈동자, 저렇게 빨리 심장이 뛰어도 괜찮은 거냐고 걱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던 어느 날의 이세화를.

- 최상위 기종의 인큐베이터인지라 기본 프로그램만으로도 발달 과정엔 전혀 문제없습니다만, 다른 옵션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추가하실 수 있습니다. 단 빠르게 적용하실수록 효과가 좋으니 이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인큐베이터의 한가운데에는 홀로그램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세화와 판박이라 출력된 화면을 보고서 말문을 턱 막히게 했던, 성장 예상도 속 신생아의 모습이었다.

기태정은 저도 모르게 유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홀로그램은 인큐베이터 내부에 있는 아이의 실제 움직임을 그대로 구현한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는 안에서 저런 자세를 하고서 잠들어 있다는 거다.

물론 겨우 4개월에 불과하니 양수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이상하게 그 모습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잠도 똑같이 자네.”

세화도 저렇게 작은 짐승처럼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그러면 저는 무방비하게 내보인 그의 뒷덜미에 코끝이며 입술을 파묻고, 살결 특유의 단내를 한참 음미하다, 애초에 한 쌍이었던 것처럼 몸을 딱 붙이곤 눈을 감았다.

“아….”

기태정은 목이 따끔거려 침조차 제대로 삼키기 어려웠다.

이세화가… 만약 이대로 눈을 뜨지 않는다면.

생의 마지막 기억이, 제가 몇 번이고 자신을 기만한 것뿐이라면.

처음부터 쓸데없는 영상이나 찍을 계획을 세웠던 거라 오해한 채로,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 버린 거라면….

기태정은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었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조금 세게.

…어떻게 하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지?

처음엔 재판장에 이세화를 세우겠노라 계획했었다. 그러다 증언하는 내용이 담긴 홀로그램 같은 걸로 대체하자고 마음이 바뀌었고, 이젠 그마저도 싫어졌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에게 물어뜯길 것이 뻔한 자리에 이세화를 내보이지 않을 거다.

자연스레 흐른 감정의 변화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세화가 알아서 해석해 주었고, 기꺼이 받아들여 주었기 때문에… 기태정은 다소 방만하고 오만하게 그와의 관계에 임해 왔다.

그러니 세화가 사라진 지금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 부표처럼, 어두운 바다 위를 헤매고만 있었다.

- 혹시 정해 둔 이름이 있으신가요? 태명도 좋습니다.

알려 주시면 입력해 두겠다는 간호사의 말에, 기태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이에겐 새싹이라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태명이 있다. 그러나 그건 저에게 허락되지 않은 부름이었다. 아니,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조차 함부로 드러내선 안 되는 이름이었다.

유리 벽에 대고 있던 손끝이 허옇게 질릴 정도로 힘이 바짝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큐베이터 속 아이가 작게 하품을 했다. 그 무구함을 보고 있자니, 심장 부근에서 시작된 아픈 울림이 큰 파문이 되어 몸 전체로 번져 나갔다. 내내 버티고 있던 기태정의 손이 삐뚜름한 궤적을 그리며 주르르 미끄러졌다.

***

이세화는 며칠째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수술은 제법 긴 시간 동안 계속됐다. A7을 몇 통이나 퍼부은 끝에 출혈은 다행히 잡을 수 있었고, 이후로도 크게 눈에 띄는 이상 징후는 없다고 했다. 염증 수치나 심장의 반응, 호흡… 기타 모든 것들이 안정적이었다. 그저 당사자가 죽은 듯 눈만 뜨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기태정은 중환자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대기실에 머무르는 중이었다. 5성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병원답게 보호자들을 위해 꾸민 공간마저 호화로웠다. 저 안에서 고군분투 중일 환자들에게 다소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부관들이 혹은 담당자가 가져다주는 식사를 적당히 해치우고, 때가 되면 씻고… 그러곤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업무를 봤다. 안건을 살펴보고, 기계처럼 결재하고… 그 와중에도어떻게든 짬을 내어 A7의 부작용에 대해 훑어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들여다보면, 이상하게도 시간은 별로 흐르지 않았는데 날짜만 불쑥 바뀌어 있었다.

세화가 쓰러진 직후로 제대로 잠을 잔 적이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도 같다. 뻑뻑해진 눈꺼풀 안이 타들어 갈 것 같으면 앉은 채로 잠깐 눈을 붙이긴 했으나, 그나마도 오래가진 못했다.

자신이 만든 꿈속에서, 세화는 작게 부푼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살풍경하던 관사의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꽃이 질서 없이 자라나는 중이었고, 그는 자신이 사다 준 신발을 신고서 볕을 쬐었다. 서성이는 발치에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작은 묘목이 여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기태정은 그런 세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환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은 어여쁜 태였다.

가져 본 적도 없는 그 기적 같은 순간이 벌써부터 그리워져서 견딜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최소한 이런 식으로 이세화를 무너지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풍경이 내 것이었을 것만 같아서….

나도 네 배를 쓰다듬어 봐도 될까. 아이를… 새싹이라고 불러 봐도 괜찮을까. 꾹꾹 참아 보다 결국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견디지 못해 입을 떼려고 하면, 어김없이 꿈에서 깨어났다. 상상으로라도 그런 기회는 영영 누릴 일 없을 거라는 듯,차가운 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이 대목에서 언제나 눈이 떠졌다.

“…아.”

기태정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저는 여전히 호텔 객실 같은 커다란 대기실 안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이세화에게선 오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곧게 펴고 있던 상체를 천천히 무너뜨리고, 기태정은 마른 얼굴을 연신 문질렀다. 수십 개의 안건에 서명하는 내내, 세화의 추가 수술 동의서에 자신의 이름을 써 넣었던 그때가 자꾸만 겹쳐졌다.

사망까지 염두에 두라던 나 중위의 목소리가, 손이나 입으로 대신할 테니 섹스는 싫다며 애원하던 세화의 음성이… 준장님, 그렇게 저를 부르던 언젠가의 다정했던 목소리가 아무렇게나 뒤엉켜 귓전을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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