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103)화 (103/144)

#100

열어 둔 창으로 따뜻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밤인데도 하늘이 참 맑았다. 시럽이라도 흘린 듯 길게 늘어진 회색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이, 손톱만 하게 둥실 떠오른 달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였다. 5성의 여름밤은 풀벌레 우는 소리마저 이토록 운치가 있었다.

세화는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아, 오늘 새로 받은 새싹이의 홀로그램만 내도록 들여다보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훌쩍 자란 그러나 여전히 강낭콩 같은 초음파 한 장, 여전히 저를 쏙 빼닮은 성장 예상도 한 장이었다.

새싹이의 심장은 언제나 기운차게 뛰었다. 어서 자라고 싶다는 듯 콩콩콩 빠르게 내달리는 그 소리가 좋았다. 한 뼘도 되지 않는 몸을 부지런히 둥글리며 사람 같은 형상을 갖추려 애쓰고 있는 걸 들여다볼 때마다… 사실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처음엔 지워 버릴 거라고 했고, 이후엔 잘 모르겠다며 매번 부정부터 하고 봤지만, 사실 그 여린 심장 고동을 처음으로 들었던 순간부터 새싹이에게 온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인제 와서 인정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저 소중히 아껴 주고만 싶었다.

그런데 오늘 찍은 홀로그램 속 새싹이의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 느리고 우울한 약동을 믿을 수 없어서, 처음엔 기기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새싹이는 거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성장 예상도 속 아기 또한 장밋빛 혈색을 잃은 채 눈만 꼭 감고 있었다.

진찰을 봐 준 나 중위는 입에 발린 위로도 못 하고서 그저 푹 쉬라고만 했다. 그래도 아직 유산의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으니 다행인 걸까.

세화는 그 이후로 하염없이 배만 쓰다듬었다. 미안해서 새싹아, 그리 불러 주지도 못했다. 피곤해서 쉬고 싶은 아기를 눈치도 없이 자꾸 찾는 것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정물처럼 앉아 있노라면, 최 원사가 알아서 끼니를 챙겨 주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도 당기질 않았다. 아니, 뭘 떠올려도 역하기만 했다. 오기로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밥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뭐라도 먹어야 약발도 받을 수 있고, 그래야 배 속의 아이도 건강해지지 않겠냐는 최 원사의 간곡한 호소만 아니었으면 마냥 굶었을 거다.

몇 번이나 토하면서 겨우 죽을 몇 숟갈 삼키고, 허락받은 치료제 한 알을 먹고서… 그렇게 세화는 밤이 올 때까지 멀거니 혼자 있었다. 몇 사람이 누워도 끄떡없을 널따란 침대 위, 세화의 옆자리엔 잠금장치가 풀린 목줄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맞춤 제작했다던 침대의 헤드 한가운데엔 새까만 말뚝이 위협적으로 박혀 있었고, 그 끝에 걸린 쇠사슬이 세화가 차고 있던 물건의 고리에도 연결되어 있었다.

어제 제대로 확인도 못 하고서 덜컥 목에 이걸 두르게 됐을 땐 굉장히 무겁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눈으로 확인하니, 그건 생각보다 얇았고 그렇게까지 무게가 나가는 것도 아니었다.

재질이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쇳덩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상당한 공을 들여 세공한 것이 느껴지긴 했다. 뒤쪽에 큼지막하게 자리한 고리만 아니었다면 평범한 목걸이라고 우겨 볼 수도 있을 만큼. 심지어 길게 늘어진 사슬마저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웠으니까.

하지만 기태정은 이 반짝이는 물건을 개 목줄처럼 사용했다. 사람들 앞에서 잠금장치를 채우고는, 말 그대로 개처럼 질질 끌고 갔다. 그런 와중에 이 물건의 생김이 어떻든, 값어치가 얼마든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저는 기태정에게 사람이 아니라 한낱 짐승일 따름일 뿐인데.

물끄러미 목걸이를 응시하던 세화는 곧 흥미를 잃곤, 모아 세운 무릎 위로 이마를 툭 기댔다.

어젯밤 잠시 정신을 차렸을 땐 기어이 사슬까지 걸어 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는데, 웃기게도 다시 한숨 자고 일어나자 구속이 전부 풀려 있었다. 놀라 옆을 더듬어 보았으나, 누군가 누워 있던 흔적은 딱히 보이질 않았다. 그냥 자는 사이 불쑥 들어와선, 목을 죄던 걸 풀어 주곤 자기 성질대로 내팽개치고 가 버린 것 같았다.

대체 뭘까. 저런 끔찍한 걸 목에 달아 놓고선 자는 사이에 몰래 와서 풀어 주고 가고. 그렇다고 저 무시무시한 말뚝과 물건들을 완전히 치우지도 않고….

세화는 아직도 불편한 오른쪽 발을 꼼지락거렸다. 그래도 좋은 약 먹었다고 상태는 호전되고 있었다. 그러나 나 중위의 경고대로, 몸만 멀쩡해졌을 뿐 마음은 여전히 나아갈 방향을 모르고서 자꾸만 비틀거렸다.

이렇게 끌려왔어도 순순히 굴지 않으려고 했다. 기회를 봐서 기태정에게 수면제를 마시라 종용했던 것보다 더한 짓도 벌이겠다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새싹이를 언급한 순간 모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간 고민해 본 적 없던 문제들이 머릿속에 넘실거렸다. 잊고 있었는데, 어쨌든 기태정은 새싹이의 친부였다. 제가 오선란 대장의 양자로 들어간다고 한들 그에게서 친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재판이 다 끝나더라도 수틀리면 저에게서 새싹이를 빼앗아 갈 수도 있는 거다.

기어이 새싹이를 4환에 처박아 두고, 제가 그랬듯 밑바닥이나 허우적거리면서 살아가게 만들겠다고 하면….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붕대의 매듭을 눈으로 덧그리며 답도 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덜컥 문고리 잡히는 소리가 났다. 세화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시간대도 그렇고… 가장 내밀한 공간의 문을 저렇게 함부로 열어젖힐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이 관사의 주인뿐일 테니까.

“…….”

과연, 문가에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는 익숙하다 못해 눈을 감고서도 그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빗어 넘긴 머리의 형태, 걸치고 있는 옷의 실루엣… 어느덧 남자의 모든 것이 세화에게 지나치게 당연해졌다.

기태정은 문설주에 손을 얹은 채로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복도에 켜진 센서를 등지고 있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남자의 상像이 더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침실 안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고, 그래서 그가 뭔가를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내뱉는 아주 작은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울렸다.

그러길 얼마간, 이내 기태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의 망설임은 실수였다는 듯, 네 존재는 신경도 쓰고 있지 않다는 듯 곧장 침실 안에 딸린 욕실로 향했다.

무거운 정복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물줄기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야 세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창고 같은 곳이 아니라 침실에 저를 가둬 둔 이유가 있을 거였다. 독한 수면제까지 먹이고 달아난 놈이 뭐가 예쁘다고 좋은 침대 위에서 편히 쉬게 해 주겠는가. 뻔하다, 씻고 나오면 기태정은 저를 안을 것이다.이제야 이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이 한심했다.

“…아.”

세화는 두 손을 오목하게 만든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고작 탄식이긴 했어도 오늘 처음으로 소리를 내뱉은 목구멍이 타들어 갈 듯 뻣뻣했다. 그렇지만 이런 아픔이야, 곧 기태정이 벌일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전에야 제 몸을 위한답시고 삽입 섹스까진 하지 않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기태정은 저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한다. 더는 불필요한 위선을 떨 것도 없이 모든 일이 까발려진 참이니… 이번엔 삽입까지 강행할지도 모르겠다. 개처럼 목줄을 걸어 두고서 그간 쌓인 욕구를 실컷 풀려고 들 거다.

차라리 때리는 건 괜찮다. 배만 걷어차지 않는다면, 손목이나 발목을 다시 부순대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기태정은 세화가 어느 지점을 건드리면 무너지는지 정확히 조준할 줄 알았다. 시키는 대로 대 주지 않으면 이번엔 새싹이에게 무슨 위협을 가할지 모른다.

자신의 감정 같은 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오직 몸만 열려 그의 것을 받아들이고, 결국은 좋다고 흐느껴 우는 그런 거…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새싹이만 괜찮다면 상관없었다.

내가 당신 좆집이나 구멍이라고 복창하는 거? 낯뜨겁고 외설적인 말?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깊은 삽입으로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새싹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 그것만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세화는 부기가 가라앉은 손목을 탈탈 털어 보았다. 여전히 저리긴 했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발목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지만, 무릎은 꿇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손이나 입으로 대신 하겠다고 빌어 볼까.

아니면… 아니면, 분이 풀릴 때까지 때리라고 할까. 아, 계약서를 쓰자고 하는 건 어떨까. 새싹이만 낳고 나면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니까, 그전까지만 섹스는 참아 줄 수 없겠냐고….

부지런히 머리를 굴려 보던 세화는 이내 깊이 절망했다. 답이 없었다. 기태정이 뭐가 아쉬워서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줄까 싶었다. 지금도 얼마든지 자기 멋대로 박고 쌀 수 있는데, 남의 사정까지 고려해 가며 참아 줄 사람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그 문장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사이, 기태정이 욕실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버튼을 누르자 헤드에 달린 미색의 독서등이 켜지고… 그제야 두 사람은 서로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기태정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대충 털어 내고 있었다. 아래엔 검은색 드로어즈만 걸치고 있어, 온몸의 도드라진 근육과 뼈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다 보였다. 그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세화는 굳이 남자의 행동 하나하나에 성적인 함의를 짚어 내며, 홀로 작게 몸을 떨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여전히 물기 어린 앞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며, 기태정이 중얼거렸다.

“겨우 죽만 넘겼고, 그마저도 거의 다 토했다고.”

세화는 고개를 푹 숙이고서 쏟아지는 시선을 묵묵히 받아 냈다. 그러는 사이 매트리스 한쪽이 살짝 가라앉았다. 그 무게감에 세화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이불 끝을 젖히고서, 기태정이 곁으로 다가오려고 하고 있었다.

“일 다 끝나면 새 신분 주겠다고 약속했던 거, 기억하지?”

“…….”

“네 처지가 위험해질 걸 알면서도 굳이 재판에 네 이름을 올린 건…. 어차피 누구든 이 일을 들쑤시면 네 존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드러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어. 이참에 네 행적도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

“상급자, 그것도 군인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4환 주민이라는 점을 재판 내내 어필하면, 오히려 여태 네가 해 왔던 불법적인 일들도 공식적으로 무혐의라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토록 간구하던 성 안의 주민증을 가질 수 있다고, 떨치고 싶어 하던 과거마저 깨끗하게 지워 주겠다고 했는데도 세화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기태정은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쨌든 네가 재판장으로 불려 갈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알고 있고…. 오선란 대장도 오늘 부관 보내서, 양자 입적 관련 절차 밟기 시작했다고 통보했어.”

가장 궁금해할 주제를 던졌는데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다.

일단 물꼬를 트면 이것저것 따져 물을 줄 알았다. 하다못해 어제처럼 울며 소리라도 지르지 않을까 생각했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라도 대화를 이어 나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세화는 묵묵부답이었다. 하다못해 송 씨 이모의 행방 같은 것도 묻지 않고, 빛이 다 꺼진 어둑한 눈동자를 하고선 자기 발끝만 고집스레 바라보고 있었다.

새싹아, 그렇게 속삭이며 부드럽게 웃던 어제의 잔상이 어른거렸다. 그렇게 부드러이 녹은 태도를 보일 거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아무런 반응도 되돌려 주질 않으니 기태정 또한 난감했다.

“…일단 이리 와.”

낮에 겨우 죽 몇 숟가락을 들긴 했지만, 최 원사의 말로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나 중위의 소견을 들을 것도 없었다. 척 보기에도 세화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였으니까.

그래서 일단은 품에 안고 다독여 주려 했다. 숨 좀 쉴 수 있게 해 주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세화는 자신의 품 안에서만 살아 있었다. 체향을 들이켜고서야 긴장을 풀고, 안심하며 눈을 감곤 했다. 한데,

“……, 하면, 안 될까요.”

세화는 도리어 딱딱하게 경직되어선 기태정을 붙들었다. 자신에게 뻗은 팔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막으며, 작은 목소리로 뭐라 연신 중얼거렸다. 이마며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까지 뚝뚝 흘리고 있었다.

“왜 그래. 너 어디 아파?”

“세, 섹스는… 아이 무사히 낳고 나서 그때 하면 안 될까요….”

“…뭐?”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반사적인 물음부터 튀어나왔다. 몇 초 뒤에야 이세화가 한 말의 의미를 인지한 기태정은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내가, 네 몸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붙들고서 씹질이나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건가?

“나 중위님이 치료제 주셨어요. 그래서 이제 손은 멀쩡히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화는 기태정의 반문을 부정이라 해석했는지, 더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아니면… 입으로 빨아 드릴까요? 그건 정말로 문제없을 것 같은데….”

“…이세화.”

기태정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다 죽어 가는 몰골을 한 세화를 바라보았다. 아니, 일전에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던가. 아기집이 조금 내려온 것이 걱정되어서, 당분간은 삽입 같은 건 안 할 거라고.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세화는 그 일은 다 잊어버린 것 같았다. 덜덜 떨면서, 제가 멋대로 강간할 거라고, 끝내 배 속의 아일 아프게 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오전에 초음파를 봤는데 아이 상태가 정말로 좋지 않아서….”

“…….”

“주민증 같은 거… 안 주셔도 괜찮아요.”

“주민증 같은 거?”

어이가 없어서 되물은 거였다. 그게 갖고 싶어서, 별 안의 주민이 되겠다고 지금껏 그렇게 독하게 버텨 왔으면서. ‘주민증 같은 거’라고 말하는 이세화가 당황스러워서. 그 오랜 꿈마저 포기해도 괜찮을 정도로 자신과의 아이를 소중히 여기는 이세화는, 제가 내건 약속엔 더는 아무런 무게도 두지 않는 이세화는… 진정으로 삶에 그 어떤 의미도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고, 그게… 조금 무서워져서.

“죄, 죄송합니다.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저 정말 아무것도 없어도 된다는 뜻이었는데….”

더듬거리는 말투는 처음 하우스에서 그를 추궁하던 때와 닮아 있었다. 저에게만 보이던 어린 투정도, 부드럽게 늘어지는 말미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울음이 가신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저에 대한 공포뿐이다.

“아, 앞으로는 제 몸 가지고 협박도 안 하고 어제처럼… 말도 짧게 하지 않을 거고, 또… 소리도 지르지 않겠습니다.”

이세화는 발목에 댄 부목 때문에 어설프게 무릎을 꿇고는, 연신 애원했다. 아니, 빌었다.

“손이나 입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게…잘… 해 보겠습니다.”

몸을 판다는 오해를 그 무엇보다 끔찍하게 여겼던 세화는, 이제 스스로 몸뚱어리를 내걸고서 하룻밤을 흥정하려고 들었다.

“제발… 부탁, 드립니다….”

기태정은 차게 얼어붙은 손끝을 움찔거리다, 세게 주먹을 쥐며 아릿한 감각을 견뎌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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