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96)화 (96/144)
  • #093

    “4시까지 공원 앞 사거리로 가라고?”

    “네. 거기 있는 신호등 앞으로요.”

    “아, 답답하네. 거기 오가는 사람이 한둘이냐? 누구를 만나면 되는 건지 그걸 알려 줘야지, 새끼야.”

    “저도 자세히는 몰라서… 그렇지만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사람도 누굴 찾고 있을 테니까.”

    “뭐? 야. 주는 돈에 비해 미션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니냐? 그냥 보면 알 거라니?”

    “으음, 확신할 순 없는데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나올 확률이 높아요.”

    머뭇거리며 덧붙인 말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남자는 황당하다는 듯 세화를 쳐다보다 허허 웃었다.

    “별, 아오…! 그래, 아재든 할배든 만났다고 치고, 그다음엔 뭐 어떡하라고.”

    “기다리는 사람 여기 안 올 거라고, 2환에서 좀 더 버텨 보겠다고 전해 주세요. 만약 10분 지나서도 아무도 안 오면 그냥 가셔도 괜찮아요.”

    어제였다. 오선란과 만나기로 했던 날이. 세화는 내내 고민하다, 약속 장소로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오선란이 저에게 큰 도움을 준 건 사실이라 마음이 쓰였다. 장물아비가 저를 2환까지 무사히 보내 준 건 제가 가진 배지 때문만이 아니다. 오선란 대장이라는 뒷배를 의식해서일 거다.

    그게 고마워서,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 혼자서 잘해 보고 싶다고… 그 정도는 전해 주고 싶었다. 신세를 진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최대한 저와 체구가 비슷한 식당 직원에게 대신 나가 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다.

    물론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는 건 안다. 이 사람이 돈만 떼어먹고 걸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세화의 상황에선 이 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오선란의 계급이 대장이라서, 준장보다는 높아서…. 혹시 기태정이 따라붙었다고 한들 절 도왔던 오선란에겐 해코지를 할 순 없을 것 같다는 것 정도였다.

    “아, 나갈 땐 이거 입어 주실래요?”

    “엥? 너 입던 옷 아니냐?”

    남자는 꾀죄죄한 남방을 받아 들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야. 이건 얘기가 다르지. 너인 척하라는 건데. 이러고 나갔다가 너 대신 뒈질 수도 있는 거잖아.”

    “…위험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믿지 못하시는 것도 이해는 가요. 그러면 그냥,”

    “됐고, 세 배로 줘.”

    “…네?”

    “딱 봐도 수상한 냄새가 나는데 위험수당도 안 주고 꽁으로 먹으려고 했냐?”

    남자는 기분 나쁘다는 듯 세화의 옆머리를 몇 대 후려갈겼다.

    “어린 게 벌써부터 못돼 처먹어 가지고. 지금 아쉬운 게 누구야. 너야, 나야? 어?”

    손매에 삐뚤어진 방독면을 바로 쓰고서, 세화는 텅 빈 가방 안을 괜히 쓸어 보았다. 그런다고 없는 돈이 생길 리가 없었지만.

    “…아까 돈 다 드려서 이제 없어요.”

    망설이던 세화는 바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약간의 돈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사실 반대편 주머니에 숨겨 둔 비상금과 배지가 있긴 했다. 그렇지만 저 사람 말마따나 확실하지도 않은 이런 일에 귀한 물건을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배지는,오선란 대장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새싹이의 몫이었다. 혹시 모를 순간을 대비해 끝까지 쥐고 있어야 했다.

    “장난하냐?”

    “제 사정 다 아시잖아요.”

    “구라치네. 너 반대편 주머니 안에 든 건 뭐야.”

    “돈 아니에요.”

    “아니면 뭔데, 내놔 봐.”

    “…그냥 없었던 일로 해요. 돈 다시 돌려주세요.”

    “뭐? 이 새끼가 진짜…!”

    “총각, 슬슬 가야지.”

    또 남자에게 얻어맞을 뻔한 세화를 구해 준 것은 송 씨였다.

    “으응? 아니, 너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게 왜 어린 앨 괴롭히고 있어?”

    “이모가 이 시간에 여긴 왜 나와 있어. 낮잠 안 자시고.”

    세화의 멱살을 쥐고 짤짤 털던 남자가 머쓱하게 뒤로 물러섰다.

    “잠깐만. 오택이 너 그 돈 뭐냐? 설마 총각한테 뺏은 거야?”

    “아 뺏기는! 이거 심부름 값으로 쟤가 준 거라고!”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엉?”

    이를 악문 송 씨가 남자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할 일이 없어서 코 묻은 돈을 뺏어? 그것도 사정 뻔한 사람들끼리?”

    “아, 아니라고! 저게 심부름 값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돈을 부르고 있잖아!”

    송 씨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조리대에 놓인 행주를 쭉 짜서 손에 물기를 묻히더니, 그 길로 남자에게 달려가 등짝을 쫙쫙 내리쳤다.그러곤 몽둥이 같은 밀대를 휘둘러 기어이 세화의 푼돈을 도로 빼앗아 주었다.

    “철 좀 들어라, 좀! 총각은 나 얼른 따라오고! 오늘 하루 짐꾼 해 준다며!”

    “아, 네….”

    세화는 품이 넉넉한 상의를 툭툭 털고, 송 씨를 따라나섰다. 짐 들어 준다는 약속 같은 건 한 적 없었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나름대로 만든 알리바이인 모양이었다. 세화로서는 다행이었다. 배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 제가 식당을 벗어났다는 걸 아무도 몰랐으면 했으니까.

    방독면을 고쳐 쓰고, 뒷문으로 나서기 전… 세화는 어릴 때부터 내내 들고 다녔던 낡은 크로스백을 몇 번 쓸어 보다, 쓰레기통 안으로 내던졌다. 기껏 송 씨에게 옷 좀 구해 달라고 해 놓고선 저인 것이 티가 나는 물건을 가지고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얼른 타.”

    식당 뒷문에 대 놓은 차는, 뭐랄까…. 차라기보단 폐지 주우러 다닐 때 쓰는 리어카에 가까운 생김이었다. 여기저기 뭉개지고 떨어져 나간 곳도 많아서 제대로 굴러가긴 할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 차가 좀 낡긴 했는데, 출입 등록이 되어 있어서 검문 절차는 약식으로 한다더라. 간단한 것만 거치면 된다던데.”

    “검문이 있어요?”

    “아, 얼굴 보여 주고 주민증 확인받고 그런 건 아니야. 불법 무기 같은 거 들고 왔는지 스캔하는 정도? 항구에서 불이라도 내거나 싸움이라도 거하게 하면 큰일이니까.”

    어차피 기술자도 아니고 잡역으로 가는 거라며 달래 주는 목소리가 너그러웠다. 지난번에 빚 얘기를 꺼낸 이후로 송 씨와의 거리감이 확 좁혀진 기분이었다.

    비록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고 살 사이가 되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생면부지의 남에게 조금이나마 온정을 나누어 주는 송 씨가 신기했다.

    어쩌면 송 씨는 사람이 그리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몸도 마음도 가난해서 구석까지 내몰렸을 땐,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나아지곤 한다. 세화 또한 그랬으니까.어쩌면… 아들 생각이라도 났던 걸 수도 있고.

    세화는 송 씨는 모르게 자신의 배를 톡톡 두드렸다. 새싹아, 만약에. 너 무사히 낳고, 그 이후로도 쭉 같이 있을 수 있게 되면… 그러면 나도 저 이모처럼 따뜻하고 용감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까? 귀찮음을 무릅쓰고 너 생각이 나서 다른 사람 도와주고 그럴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짐 가방은 없어? 설마 비닐 봉다리가 끝이야?”

    “딱히 챙길 게 없어서….”

    “아니, 그래두 그렇지….”

    손목에 걸린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패치와 안정제가 들어 있었다. 어제 송 씨, 아니 이모에게 물어보니 배 안엔 의료팀이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럼 주사기는 안 챙겨도 될 것 같았다. 옷이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를 굳이 챙겨 가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것도 없는 주제에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전부 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아이고, 오래간만에 차 몰고 바다 보러 가니까 기분 좋네.”

    이모는 왕년에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성에서 살던 집, 크게 벌였던 사업, 대학 시절 이야기… 이미 다 바스러진 꽃다발 같은 그런 과거를.

    해가 질 때쯤 되니 에어컨을 아무리 세게 켜도, 낡은 차는 잔열을 이기지 못해 점점 퍼지기 시작했다. 이모는 대낮도 아닌데 왜 이렇게 덥냐며 연신 손부채질했고, 세화는 방독면 안에 숨어 혀를 쏙 내밀고는 똥강아지처럼 헥헥거렸다.

    “다 와 간다.”

    그러기를 한참,어찌어찌 꾸불꾸불한 2환의 도로를 잘도 달려, 드디어 외곽까지 다다랐다.

    “아, 저게 검문소인가? 그냥 이렇게 차 몰고 슝 지나가면 끝인갑네.”

    별것 아니라던 이모의 말 그대로였다. 이름만 검문소였을 뿐, 고속도로에서 요금 체크하는 기기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새카맣게 기름때가 앉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몇 번이나 주변을 흘끔거리던 세화도 그제야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안심했다.

    “어휴, 이 고물….”

    항구에 다다르자 이모의, 아니 이모 아는 동생의 낡은 차는 별 이유도 없이 몇 번이고 멈추어 섰다. 그럴 때마다 상체가 앞으로 훅훅 쏠리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모가 내뱉는 걸출한 욕이 재미있어서 세화는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맞춰서 왔네. 배 9시면 떠난댔거든. 한 시간 반 남았으니까 충분하네.”

    세화는 몸을 낮추고 전면 유리 너머를 힐끗거렸다. 화물선은 꼭 산을 옮겨다가 놓은 것처럼 거대해서, 지금 이 각도에선 선체가 보이지도 않았다.

    “진짜 크지?”

    “그러네요….”

    “개인 차량은 더는 못 들어가. 원래 여기까지도 오면 안 되는데, 출항하는 날 가족들이 짐 들어 주러 오는 건 봐주더라고.”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그러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가족…. 서로를 가족으로 여길 만큼 정이 두터웠던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이모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다.

    알고는 있지만… 뭐라 관계를 정의 내리지도 못했을 정도로 부족했던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조금 더 오래 알고 지냈더라면, 분명 서로 의지하며 잘 지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지? 총각 보고 있으면 자꾸 우리 아들 생각이 나.”

    이모도 아쉽다는 듯 세화의 손을 몇 번이나 쥐었다가 놓았다.

    “그놈의 자식은 만약 살아 있었대도 총각처럼 성실하게 못 살았을 거야. 사채나 더 안 썼으면 다행일 건데… 아는데도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지네.”

    아…. 이모 아들은 죽었구나.

    “젊은 친구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세화는 조개처럼 입술을 꽉 다물곤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였다.긍정의 의미가 아니었다. 당신 이야길 듣는 중이라는 성의 표시였다. 이모 또한 이 주억거림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식 앞세운 부모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모는 일전에 아들이 도박으로 어마어마하게 사채를 끌어다 써서 2환까지 내려오게 된 거라고 했다.

    굳이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아도… 뻔했다. 꽁지꾼들한테 장기나 털린 게 아니라, 차라리 피치 못한 사고 같은 것이었길 바라는 것이 전부였다.

    “…감사해요.”

    세화는 머뭇거리다 이모의 손을 마주 잡았다. 어쩌면 이모의 망가진 삶과 그 아들의 죽음에, 4환의 하우스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던 삼월이가 저질렀던 못된 수가 조금이나마 원인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겨우 이만큼 이모의 슬픔에 공명해 주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착해서… 홀라당 사람 좋아해서 어떡해, 총각.”

    아무것도 모르는 이모는 부스스한 세화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슨 사정인진 몰라도 잘 댕겨와. 하선하고 찾아오면 내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저를 인자하게 바라보는 이모가 기대하는 답을 알고 있다. 꼭 연락할게요, 나중에 뵈어요. 희망으로 가득 찬, 헤어질 때 평범하게 나누는 그런 인사.

    “이모, 바다에도 국경이 있다고 하셨죠?”

    그렇지만 무엇을 읊든 거짓말인 것이 죄송해서, 세화는 머뭇거리다 괜히 말을 돌렸다.

    “그렇지.”

    “…다행이에요.”

    고래처럼 거대한 선박은 앞으로, 앞으로 잘도 미끄러져 나갈 것 같다. 얼마나 나아가야 남의 나라 바다까지 닿을 수 있을까. 빨리 여길 벗어날 수 있었으면. 기태정도 함부로 사람을 풀고, 쫓아올 수 없는 구역까지 멀리 갔으면….

    세화는 자꾸만 콕콕 쑤셔 대는 아랫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래도 지금 2환 하늘길이 꽉 막혀 있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기태정이 장난감처럼 부리는 것들… 예를 들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라거나, 헬기 같은 것들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게 어찌나 안심되는지.

    “…이모 덕분이에요.”

    “뭐가.”

    “이렇게 빨리 2환 벗어날 수 있게 된 거요.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모 덕에 일이 너무 잘 풀려서 얼떨떨해요, 지금….”

    실없는 소리 한다며 픽 웃던이모가 이내 부드럽게 어깨를 떠밀었다. 이제 갈 시간이라고. 여기서 배까지 제법 멀어서,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고.

    “그럼… 저 가 볼게요.”

    “오야.”

    세화는 몇 번이고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하다, 차 문을 닫고 나와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고물 세탁기처럼 털털 진동하며 후진하는 낡은 차를 한참 바라보다, 겨우 발을 뗐다. 기약 없는 이별이 처음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서러운지 모르겠다. 너무 속상해서, 이것마저 괜히 기태정 탓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가자, 새싹아.”

    아…. 생각해 보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이모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있었다. 아마도 저를 배려해 준 걸 테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알고서, 차 안에서도 방독면을 쓰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핑곗거리를 만들어 준 게 분명하다.

    뭐라 정의 내릴 수 없는 우울과 연민이,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던 따뜻함이 밀려와서. 세화는 배를 향해 걸어가다가도, 자꾸만 멈춰 서서 발끝을 꿈지럭거렸다.

    소금기를 머금은 습한 바람이 팔뚝에 척척하게 감겼다. 선적이야 진작 끝났고, 저처럼 편한 옷을 걸쳐 입은 사람들이 배가 드리운 그림자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렇게 보니 직원과 잡역들이 확실히 구별되었다.

    담배를 다 태운 사람들은 조그만 철계단 같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배 안으로 들어가기 전정체가 있는 것을 보면 거기서 신분 확인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소란은 없는 것을 보니형식적으로 하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세화는 주머니 속의 배지와 현금,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온 주민증을 손끝으로 훑어 보았다.

    “우와… 저게 뭐다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우와와, 감탄하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응달진 곳으로 막 발을 들인 세화 또한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저 멀리서 하늘을 가르며 무언가가 날아오고 있었다. 헬기? 제트기? 자동차? 알 수 없는 무언가는 바닷물에 추락하려는 낙조를 그림처럼 두르고서,우아하게 하늘을 유영했다. 그것은 위태로이창공을 수직으로 내지르다가도 새카만 분진과 연기를 뚫고 나비처럼 표표히 날았다.

    “…아.”

    그리고 세화는 저렇게 기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잘알고 있었다.

    “어떻게… 왜….”

    허망한 탄식을, 길 잃은 물음만 몇 번이고 내뱉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손가락 한 마디쯤 될까 싶던 헬기가 점점 커다랗게 부풀었다. 이쪽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전선이 엉킨 로봇처럼 잠시 삐걱거리던 세화는, 이내 손에 든 것을 모조리 내팽개친 채 무작정 내달렸다. 머릿속에 어떤 단어가, 문장이, 잘 알고 있는 얼굴이 떠오르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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