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95)화 (95/144)

#092

“놀라운 거 말해 줄까? 지금 공기가 안 좋아서 이게 그나마 덜 더운 거다?”

숫자가 작아질수록 환경은 열악해진다. 2환의 더위는 4환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 날씨에 방독면을 쓰고 있어야 하는 게 좀 불편하긴 해도, 하늘에 촘촘히 드리운 시커멓고 뿌연 것들 덕에 불볕더위는 덜하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총각, 있어?”

“아, 네!”

세화는 허둥지둥 방독면을 쓰고, 닫혀 있던 창문을 조금 열었다. 나쁜 공기가 많이 몰려오지 않도록, 새싹이가 괴롭지 않도록. 아주 조금만.수상쩍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얼굴을 드러내는 건 되도록 삼가고 싶었다.

“무슨 일이세요?”

“으응? 창문은 왜 열어 두고 있었어?”

식당의 고참 직원인 송 씨가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 옷 빨았는데 환기가 안 되어서 그런가, 퀴퀴한 냄새가 나서요.”

“그래도 그렇지… 옷에 몹쓸 거 묻으면 어떡하려고. 몸에 안 좋아.”

나중에 휴게실 뒤쪽에 있는 낡은 건조기라도 쓰라며, 송 씨가 쯧쯧 혀를 찼다. 오른쪽 끄트머리찬장 열면 사장이 가끔 쓰는 세제나 섬유 유연제도 있으니 조금 훔쳐다 쓰라는 조언은 덤이었다. 여기서 제법 오래 일한 송 씨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일은 할 만하지?”

“그럼요.”

세화는 배달로 나가는 도시락 검수 담당이었다. 고작 이런 일을 하면서 돈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쉬웠다. 안에 빠진 찬이 없는지 확인하고, 포장한 국과 수저만 끼워 넣으면 끝이었다.

심지어 서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구석이긴 했으나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세화의 자리는 오래 일했다던 다른 직원들도 인정한 주방 제일의 명당이었다.

아늑한 곳에 앉아서 하는, 돈은 많이 주는 쉬운 일….당연히 수상쩍다고 느끼고 있다. 갑자기 숙소를 옮긴 것도 지금 하는 것과 비슷한 벌잇자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서였다.

세상에 쉽고 편하게 돈 버는 방법 같은 건 없다. 한참 고민하던 세화는 찜찜한 마음에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기로 했다.

메뚜기처럼 분주히 뛰어다니며 여관방을 두어 차례 옮기고, 그러고도 이틀쯤 지나고 나서야 근처의 인력 사무소에 조심스레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수상쩍은 구인 공고가 이 사무실의 벽에도 줄줄이 붙어 있는 것 아닌가.

당황해서 빤히 바라보고 있자, 곁에 선 사람이 요즘 자주 뜨는 공고라며 입맛을 다셨다. 불이 난 이후로 2환에 군인이며 경찰이며 하여튼 온갖 공무원들이 엄청나게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양반들 먹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 꼼꼼히 봐줄 사람을 급히 구하는 거라고. 아무나 꽂아 주지 않는 자리라 저 같은 사람은 꿈도 꿀 수 없다며 아쉬워하는 남자의 얼굴은 충분히 진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꿀 같은 밥벌이는 이번에도 세화에게로 돌아왔다. 손도 허옇고 야물어 보이는 것이, 이래저래 꾀만 피우는 아재들보다야 실수가 덜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사무소 직원은 몇 번이고 당부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여도 높으신 분들 지랄에 벌금 먹은 식당이 적지 않다고, 잘해야 한다고.

도시락 검수 같은 쉬운 일자리가 생긴 것도, 인력 사무소의 담당자들이 유독 저를 선호하는 이유도 납득은 갔으나… 그래도 석연치 않은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이렇게 짝짝 붙는 패는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인데.

세화는 더는 행운 같은 걸 믿지 않았다. 저에게 다가오는 좋은 것은 언제나 가시를 숨기고 있었다. 겉으로 좋아 보일수록 결국은 더 크게 저를 울리곤 했다.

물론 지금 이 식당은 마음에 쏙 들었다. 방세와 식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돈도 예상보다 빠르게 모였다. 무엇보다 몸이 편해서 좋았다. 따로 관리비를 내지 않아도 에어컨을 틀 수 있고, 따뜻한 물로 마음껏 씻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자꾸만 고개를 드는 어떠한 예감, 의심, 촉… 그런 것들을 애써 무시했다. 모르는 척 여기서 버티다가 오선란 대장을 만나러 가면 되지 않을까. 알아서 해 달라고 부탁하고서, 잠이라도 편히 자고 싶은데….그렇게 스스로를 속여 보려고 했다.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게으른 몸을 일으키게 된 건, 새싹이 덕분이었다. 저만 입에 풀칠하고 끝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아이에게 거창한 태명까지 지어 줬으니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내내 망설이던 세화는 결국 어제 송 씨에게 슬쩍 말을 흘렸다. 지금 제가 하는 일과 맞바꿀 사람이 있냐고, 단 옮기게 될 일터의 수당이 더 높았으면 좋겠다고.

“나 아는 동생이 마침 사흘 후에 하선하는데, 그 자리에 들어올 생각 없냐고 하대?”

“하선… 그러면 배에서 일하는 거예요?”

“엉, 컨테이너 들어가는 엄청 큰 화물선 알지? 그런 큰 배 조리실에서 잡일하고 있어.”

“거기서 밥하고 그러는 거예요?”

“그렇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밥도 짓고 주방 청소도 하고….”

“지금 하는 일이랑 비슷하네요. 저는 좋아요.”

“좋기는? 일당은 더 많이 준다만 도시락 검수처럼 편하진 않아. 내가 총각이었으면 여기서 쫓아낼 때까지 무조건 버틸 거야. 돈 모지라면 쉬는 날에 공장이나 공사장 나가고.”

어선은 아닐지라도 배 타는 것만큼 고된 일이 없다며, 송 씨가 아프지 않게 세화의 등짝을 몇 대 때렸다. 어려서 그런지 세상 물정 모른다는 구박은 덤이었다.

“공기 안 좋은 2환보다는 바다 위가 나을 것 같아요. 거기선 방독면도 안 쓰잖아요.”

“나 원망할까 봐 그래. 배 타는 거 싫다고, 도로 이 자리 내놓으라고 해도 그때 가선 무를 수도 없으니까 잘 생각해 봐.”

“진짜로 괜찮아요. 전 여기가… 2환이 더 싫어서요.”

송 씨 말대로 작은 어선도 아니고 거대한 화물 선박이니 분업은 얼추 되어 있을 거다. 저더러 갑자기 지게차를 몰라고, 팔레트를 나르라곤 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삼시세끼 밥도 차리고 청소도 하려면 온종일 조리실 안에 틀어박혀 있을 테니, 다른 사람과 부대낄 일도 적지 않을까? 규모가 크다고 했으니 응급 상황에 대비해 의사나 간호사도 있을 테고…. 지금보다 몸은 고될지 몰라도 조건 자체는 세화에게 딱 맞았다.

“돈 많이 주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빨리 빚 갚을래요.”

이제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건지 모호해진 채무까지 들먹이자 송 씨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에휴. 암만 봐도 스물 갓 넘었을 것 같은 어린 것이….”

4환도 그랬지만 2환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비슷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빚이 어깨 위에 얹혀 있고, 죽도록 일을 하는데도 그 액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굳이 과거사를 주고받진 않았어도 송 씨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2환 사람 아니라고 했지? 나도 그래.”

과연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송 씨는 어깨를 푹 떨어트리며 주섬주섬 지난 이야길 끄집어냈다. 내 탓이 아닌 채무가 주는 서글픔만큼 유대감을 쌓기 쉬운 것도 없었다.

“…하여튼 그러던 와중에 아들놈이 도박에 미쳐서 사채를 크게 썼지 뭐야? 애 아빠랑 둘이 쉬쉬하다가 이자가 산더미처럼 불어나서….”

도박, 이라는 말에 괜히 찔린 세화는 침만 크게 삼켰다.

“사람 일 모르는 거더라고. 나도 내가 말년에 이러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지….”

송 씨는 사모님 소리를 듣던 4성 사람이었고, 집에선 야트막한 강줄기가 보였다고 했다.

“…그러셨어요.”

“사는 게 이렇게 얄궂어…. 하여튼, 배 들어오기 전날 다시 알려 줄게.”

“네. 감사합니다.”

“아, 이번에도 신분증 안 보여 줄 거야? 그러면 거기서도 똑같이 삯에서 3할 까고서 줄 텐데.”

“아뇨, 어떻게 구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세화는 식당에 처음 온 날,그 어떤 서류도 제출하지 못했다. 빚쟁이들이 주민증을 가지고 가 버렸다고 얼버무리자, 사장은 그러냐며 턱을 쓸기만 했다. 명의를 묶어 놓으려 사채꾼들이 실제로도 자주 하는 짓인데다, 기존 직원 중에도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몇 있어서 크게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일급에서 30%를 떼이게 됐다.

“그거 가라로 구한 거지?”

“…네.”

“잘했어. 눈 가리고 아웅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아. 나 이런 거라도 구할 능력도 있고, 정보도 있다는 소리니까. 뱃사람들이 얼마나 험한데. 얕보여서 좋을 거 없어.”

세화도 동의하는 바였다. 주민증도 보여 줄 수 없고 계좌 번호도 줄 수 없다는 건 그만큼 약점이 많다는 뜻이다. 일당이야 어쩔 수 없이 현금으로 받더라도, 가짜 신분증 정도는 마련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조금은 여유가 생겼는데도 온갖 잔업을 도맡고, 쉬는 날만 되면 부지런히 다른 일자리를 기웃거렸던 이유가 이거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참, 그… 가기 전까지 다른 직원들한텐 비밀로 해 줄 수 있을까? 우리 뒤에서 이렇게 짬짜미한 거 말이야. 총각 언제 관두나, 저 자리 내가 가고 싶다 벼르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잽싸게 사람 잡아다 들이미는 게 임자 아니겠냐면서 송 씨가 민망한 듯 말을 덧붙였다.

“나 빈손으로 2환까지 내려왔을 때 신세 진 동생이라서 그래. 걔도 몸 편한 것보단 돈 많이 버는 게 좋은 애긴 한데… 이번에 하선하면 조금만 숨 돌리라고 하고 싶어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 어려 보인다고 일감 잘 안 들어와서 고민이었거든요. 챙겨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죠.”

진심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 달라는 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꺼낼까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송 씨가 먼저 언급해 준 덕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내가 다 아깝네. 총각 목이랑 손등만 봐도 이렇게나 뽀얗고 예쁜데. 아무리 조리실에 틀어박혀 있어도 배만 타면 다들 홀라당 타 가지고 오더라고.”

돌아서려던 송 씨는 괜히 세화의 손을 몇 번 꾹 쥐었다가 놓았다. 처음엔 머쓱해서 한 행동 같았는데, 나중엔 진심으로 감탄하며 이곳저곳을 주물럭거렸다.

“엄마야… 어쩌면 살결이 이래? 나가기 전까지 아재들한테 들키지나 말어. 괜히 질투해서 총각한테 설거지라도 잔뜩 시킬라.”

“하하…. 저야 일당 더 주시면 하죠.”

“으이그, 실없기는. 그럼 이따가 보자고.”

“예, 들어가세요.”

세화는 문을 잠그고, 열어 두었던 창문도 닫았다. 방독면을 벗자마자 이마며 목덜미를 타고 땀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그러다 문득, 방독면을 움켜쥐느라 붉은 기가 올라온 손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태정은 색이 옅은 자신의 몸을 좋아했다. 유두나 좆, 구멍은 물론이고 손톱이나 발톱도 신기해했다. 움켜쥐는 대로 자국이 남는 허연 살결도 마찬가지였다.

송 씨 말대로 되면 좋겠다. 바닷바람에 머리카락도 부스스해지고 살도 보기 좋게 그을렸으면, 고된 일에 인이 박여 거칠고 단단해졌으면…. 그래서 기태정이 마음에 들어 하던 것들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화는 잠긴 문에 등을 기댄 채로 무릎을 그러모았다. 피곤한데 막상 잠은 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지치지도 않고 기태정의 잔상이 나타난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저를 끌고 갈 것처럼 무섭게 굴기도 했고, 부탁만 하면 뭐든 다 해 줄 것처럼 다정히 제 얼굴을 쓸어 주기도 했다. 별 웃긴 꼴 다 보겠다는 듯 가소로워하기도 했고, 작게 미소를 띠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악몽인지 가위인지 모를 환영에 실컷 시달리다 보면, 끝에 가서는 언제나 유리 온실이 펼쳐졌다. 세화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태정을 받아들이겠노라 결심했던 그곳이었다. 그는 서럽게 우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세화, 하고 가만히 불러 주었다. 그럴 때면 눅눅한 이불 냄새도 일순 가시고, 언제나 저를 꽉 조여 안던 남자의 체온과 체향만 남았다.

“…생각해 보니까 멋있다. 새싹이 너는 땅이 아니라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가 되는 거야. 바다는… 바다는, 나도 제대로 본 적은 없는데….”

세화는 범람하는 기억을 밀어내려 작게 도리질을 쳤다. 그러곤 애써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던 바다에 관한 얕은 상식을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바다는 소금물이 가득한, 넓은 곳인데… 엄청 깊대. 그 아래에는 물고기도 살고….”

어쭙잖은 말을 읊을 때마다 망망대해로 나간다는 공포가, 거기선 이런 어설픈 도망조차 불가능할 거라는 두려움이 선뜩하게 등줄기를 내달렸다. 지금은 숨겨도 언젠간 아이를 가진 걸 들키게 될 텐데… 그럼 어떻게 될까, 무사히 배에서 내릴 수는 있을까?귀찮게 됐다고 바닷가에, 아니면 먼 나라 항구에 버려지는 건 아닐까?

“엄청 멋있을 거야. 나는 멀리서 본 건데도….”

세화는 무서움을 이겨 내려 일부러 말도 안 되는 희망 사항을 떠들어 대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기태정과 함께 새파란 물 위로 추락하던 순간이, 백화점에서 함께 보았던 청량한 홀로그램이 폭격처럼 쏟아져 이미 가루가 된 마음을 부수고 또 부수고 갔다.

***

- 10분이 지나도 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그리고 처음 불러 준 장소에서부터 시계 정방향으로 이동하고, 옮긴 곳에서도 아무도 보이지 않으면 다음 날 다시 오는 것으로 하자. 나 또한 그렇게 하마.

기태정은 지직거리는 오선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홀로그램 속 지도를 확인했다. 이세화가 도망친 이후로 새로 생긴 습관이었다.

붙들린 장물아비는 기태정의 계급을 확인하자마자 가진 걸 전부 내놓았다. 특히 핸드폰과 녹음기를 진상하듯 공손히 내밀고선, 여기에 궁금해하실 내용이 전부 있다고 했다. 또한 저는 포트를 오갈 수 있는 배지 몇 개만 겨우 챙겼을 뿐이니, 사정 좀 봐 달라며 애원했다.

배지라. 그건 1환의 대피소에서 기태정이 이세화에게 별 뜻 없이 건네주었던 물건이었다. 챙겨 두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제가 준 물건이 저를 벗어나려는 수단으로 쓰였다. 그리고 이게… 사람 기분을, 정말 좆같이 구겨지게 했다.

“저, 준장님. 3주 후면 당장 내일모레입니다.”

2환 지도는 매일같이 들여다보면서 관련해서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자, 최 원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여기에도 사람을 붙이실 계획인지….”

오선란이 지정해 준 장소는 지금 이세화가 묵고 있는 식당에서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충분히 제지할 수도 있고, 까딱 소요에 휩싸이면 놓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신중하게 행동해서 나쁠 것 없을 정도의 거리.

“이세화는 지금 뭐 하고 있지?”

“곧 저녁 도시락 검수 시작할 시간입니다. 다만….”

“다만?”

“얌전히 일하고 있기는 한데… 위조 신분증을 만들 생각인지, 그쪽 업자와 접촉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박 소위는 아슬아슬한 상관의 눈치를 보다 말끝을 흐렸다. 신분증까지 위조하려는 거면 조만간 무슨 일을 벌이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기태정은 조금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숨바꼭질도 이 정도면 충분히 했지.”

기태정은 날카롭다 못해 베일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서, 눈앞에 떠오른 2환의 지도를 흔들림 없이 응시했다.

“지금 일하는 식당에서 여기로… 오선란과 만나기로 한 곳으로이동할 수 있도록, 이세화 몰아가.”

더는, 정말로 더는.

“혹 오선란 대장과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땐….”

이세화의 부재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딱 잘라 말하는 남자의 눈에 짙고 컴컴한 것이 훅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이세화는, 자기 입으로 내 곁에 머무르겠노라 오선란에게 호소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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