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91)화 (91/144)
  • #088

    잘 빚은 눈썹산이 크게 움찔거렸다. 뭐라고 말할 듯 입술을 달싹이는 기태정의 얼굴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그래서 아팠다. 이 와중에도 한 폭의 그림 같은 남자의 미모는 주제도 모르고 그를 욕심냈던 자신을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세화는 그대로 돌아섰다. 어떠한 미련도 없는 것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 육중한 사무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곤 눈을 감고서 잠시 숨을 멈추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저에게 총구를 들이미는 장면을 막연히상상했다. 뒤에서 저벅저벅 걸어온 기태정이 당장이라도 제 머리채를 휘어잡고서, 어디서그딴 조잡한 물건을 자기에게 들이밀었냐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벌벌 떨었던 것이 무색하게도, 슬쩍 눈을 뜨자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세화는 잔뜩 몸을 옹송그린 채로 비상구 계단 근처까지 걸어갔다. 어찌나 형편없이 떨리던지 벽을 짚지 않았더라면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발작이 온 듯 경련하는 손으로 겨우 두꺼비집 뚜껑을 열고, 어지러이 얽혀 있는 선을 막무가내로 잡아 뜯었다. 뒤늦게야 전원을 내리는 것으로도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하게 이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어쩐지 멍해져서 빠른 판단이 어려웠다.

    퍽.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어둠이 풀썩 내려앉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바로 근처에 군인들이 모여 있다. 기태정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면서….

    “…진정해, 침착해.”

    이제부터 정신 똑바로 안 차리면 다 끝나는 거야. 자꾸만 멍하게 구는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세화는 통신함을 뜯어냈다. 기기 버튼을 끄고, 손목시계를 그 뒤쪽으로 내던졌다. 혹시 몰라 장물아비에게 찔러주고 돈이나 좀 뜯어내 볼까 싶었는데… 그러기엔 너무나 위험한 물건일 것 같았다.

    세화는 몸을 움츠리고서 구불구불하고 좁은 철계단을 내려갔다. 손님들 눈에 띄지 않게 이동하라고, 선수들이나 용역들을 위해 터 준 샛길이었다.

    퀴퀴하게 쌓인 먼지와 기름때 냄새로 속이 뒤집혔으나, 그보다 기태정에게 붙들리는 것이 더 무서웠다.

    층마다 있는 전기선과 통신 설비를 망가뜨리면서, 세화는 힘겹게 지하로 내려갔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온통 진이 빠져서, 끝에 다다랐을 무렵엔 뚜껑을 열고 전원을 내릴 기운마저 없었다.

    “아…, 윽….”

    세화는 순간 훅 치미는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벽을 짚은 채 밭은 숨만 몰아쉬었다. 가쁘게 할딱이는 호흡을 따라 누군가 배 안을 콕콕 쑤셔 대는 것 같았다. 지금 피 흘리면 안 되는데… 2환 넘어갈 때까지는, 장물아비와 밀수꾼 앞에서는 멀쩡해야 하는데….

    “…미안한데 제발 조금만 버텨 주라….”

    크게 침을 삼키며 자꾸만 올라오는 토기를 꾹 누르고서, 세화는 손등으로 코끝이며 입가를 뭉개듯 문질러 댔다. 반대편 손에는 여전히 주사기를 움켜쥔 채였다.

    “조금만….”

    얇은 가판 너머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신기루처럼 흩어졌다.

    당장 사장 불러오라는 손님들의 성화, 자기들도 요즘 하우스 사정이 말이 아니라 돌아 버리겠다는 몇몇 새끼 선수들의 애원, 기물들이 부서지는 소리….

    매점으로 향하는 길목에 놓인 박스 더미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때론 세화 혼자선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것도 있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치워가면서, 장물아비와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나아갔다.

    좁은 틈으로 몸을 욱여넣고 버러지처럼 버둥대다 겨우 빠져나오니, 흐릿하게나마 매점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당부대로 손전등을 여러 대 켜 두었는지, 뿌연 빛을 따라 걷기만 하면 끝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벌인 일이 실감이 났다. 부디 잡히지 말라며 차게 웃던 기태정의 얼굴이, 낮은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래서 앞으로 대체어떻게 될까…. 이제 내세울 만한 패는 오선란뿐이다. 그를 무서워하든 혹은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든… 뭐든지 간에 오선란의 눈치를 봐서라도 장물아비가 저를 2환까지 무사히 보내 주기만을 바랐다.

    세화는 눈속임용 화투패가 가득 담긴 박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아무도 믿지않는다고 오선란에게 뾰족하게 굴어 놓고선, 결국 남에게 기생하지 않으면 당장 하우스 건물을 벗어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처지다.

    같은 도박을 해도 누구는 갬블러나 딜러 소리를 듣는데 왜 나는 하우스에서 구라 치는 선수 소리나 듣고 있는 걸까…. 일 다 했으면 자빠져 잠이나 잘 것이지, 어울리지도 않게 그딴 철학적인 고민을 했던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게 새삼 억울해서 이왕이면 양지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왕 하우스 밖에서 살겠노라 마음먹었으면 더러운 일에선 완전히 손 떼고 떳떳하게 살아 보자… 그런 헛된 꿈을 품기 시작했다. 다음 달 이자 갚기도 빠듯했으면서.

    사람도 동물도 그려지지 않은 유일한 패, 수상쩍은 검은 장막만 드리워진 어중간한 화투장. 고작해야 3월이었던 주제에….

    “…아윽….”

    후들후들 떨리는 무릎을 짚으며, 세화는 거의 엉금엉금 기다시피 걸음을 옮겼다.너무 힘이 들면 잠시 멈춰 서서 가방 안을 뒤적여 배지가 잘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내가… 넌… 이런 꼴로 안 살게 할게. 차라리 죽고 말지….”

    자꾸만 울컥 치밀어 오르는 여러 가지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세화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미안한데… 사실은 정리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긴 했어…. 이렇게 사는 거 너무 구질구질하잖아.”

    세화는 배 속의 아이에게 몇 번이고 사과했다.

    진찰을 보러 갈 때마다 의사는 이제 아기의 얼굴 윤곽이 점점 선명해진다고 했다. 세화가 보기엔 여전히 곰돌이 젤리 같기만 했지만, 어쨌든 그 손가락만 한 것에게도 눈이며 귀며 없는 것 없이 다 생겼다고 했다.

    그러니 듣고 있을 터였다. 밖에서 쏟아지는 이 와글와글한 소란을.

    “…무섭지, 너도.”

    한번 물꼬가 트이니 자꾸만 주절주절 중얼거리게 됐다.그리고….

    “이런 일 아니었으면… 놀라긴 했어도, 결국은 너 좋아했을 거야.”

    어이가 없게도 아이에게 말을 붙일수록조금씩 긴장이 잦아들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그런가, 외로움도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내 아이라니, 가족이라니… 그런 거 상상도 해 본 적 없었으니까….”

    판판한 아랫배를 받치듯 감싸 안고서, 세화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떼어 낼 계획이라고 실컷 말해 놓고. 여태 한 번도 살갑게 말 붙여 준 적 없었던 주제에. 염치없게도 기태정의 핏줄에게 다 해진 마음 한 조각을 기대고서….

    “…어쨌든 절대로 나처럼 살게 하지 않을게, 너는. 이렇게 사느니 태어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잖아….”

    다 꺼져서 쉭쉭 바람이 새어 나가는 목소리로, 마른 입술을 겨우 들썩이며 속삭였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이렇게 아프게 살게 하진 않을 거야.그 누구도 널 도구로 쓰지 못하게 지켜 줄게.

    ***

    “…아.”

    씨발. 기태정은 눈을 덮고 있던 손을 툭 떨구었다. 약에 취해 잠들었던 적이 별로 없어서 기분이 더러웠다. 눈을 감은 와중에도 미쳐 날뛰는 자신의 오감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제 얼굴을 쓸던 이세화의 떨리는 손끝과 문을 열고 나가던 발소리도. 아주 선명히.

    창밖의 풍경은 아까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벌겋고 검기만 하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결국 기태정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향했다.

    바깥에는 오늘도 변함없이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사장이 제구실 못 하고 있다는 거야 이미 소문 다 났을 거고…. 심지어 오늘은 군용 차량까지 포진해 있으니 하루쯤은 쉬어 갈 법도 한데. 도박과 약에 전 한심한 놈들은 알 바 아니라는 듯 꾸역꾸역 안으로 밀려드는 중이었다.

    약에 취해 골목에 널브러진 새끼들은 없는 걸 보니 이제 막 장사 시작한 모양이고… 그럼 8시 좀 못 됐으려나.

    품 안에서 핸드폰을 꺼냈으나, 통신이 희미하다는 알림만 떴다. 이 또한 이세화가 벌인 짓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내 유순히 굴긴 했어도, 독한 구석이 없는 놈은 아니었다. 자기랑 내기할 생각은 없냐고 대뜸물어봤던 것도 그랬고, 약 파는 시범 보일 때도 그랬고…. 생각도 못 한 방향으로 튀어 가는 성격이라는 걸 간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혀를 차며 핸드폰의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르려던 기태정은, 불시에 떠오른 메시지 화면에 흠칫 놀라 잠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준장님 식사는하셧ㅆ어요

    많이밥쁘시져」

    “…….”

    가장 마지막에 나누었던, 맞춤법이 엉망진창인이세화의 메시지였다.

    시계만 있으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터라, 핸드폰은 쓸 일이 잘 없었다. 그나마 요즘엔 이세화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용도로 썼더니, 똑똑한 기계가 알아서 자주 쓰는 기능을 활성화해 주었다.

    「큰일이다 사과가다 떨어졋어요」

    「준장님 최원사님이 푸딩을 사왔는데요

    이거요너무신기한 맛이에요」

    「준장님 심부름이라고하던데 진짜에요??」

    「감사합니다

    아주맛있어요」

    「하나 남겨ㅇ놨으니까

    집에오면 드셔보세요 꼬기요」

    「꼭이요인데 잘ㅁ봇쓴거예요

    저 달ㄹㄱ아니에요

    고기먹고싶은것도 아니구요」

    「닭」

    「바쁘시죠

    병원에왔는데 조금심심해서요」

    이세화는 최 원사의 핸드폰으로 혹은 관사에 둔 태블릿으로 하루에도 몇 번이나 메시지를 보내왔다. 뒤늦게야 무뚝뚝하게 단답형으로 답장을 보내면, 시차를 두지도 않고서 와다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 내곤 했다.신이 난 걸 감추지도 않는 그 솔직한 메시지에서, 기태정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뭉클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화면 속 어설프고 삐뚤빼뚤한 메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태정은, 상념을 지워 내듯 홈 화면으로 돌아가 비상 호출 버튼을 눌렀다. 박 소위를 비롯해 등록이 된 부관들 전원에게 알림이 갈 것이다.

    “하….”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한숨도 헛웃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자꾸만 튀어나왔다.

    이세화의 절망과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이나 그를 가볍게 속였고, 얼버무려 왔으니까. 그런데….

    제가 뒈지든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가 되든… 알 바 아니라는 듯 저 약을 먹으라고 종용했던 게 지금도 믿기질 않았다. 차라리 김 소위 손에 죽고 말겠다던 이세화의단호한 목소리가, 자꾸만 기태정의 속을 뒤집었다.

    “준장님?”

    기태정은 가슴께를 손바닥으로 퍽퍽 두들겼다. 약이 세긴 셌는지 어릿하고 따끔한 감각이 아직도 속에 잔뜩 고여 있었다.약 기운인지 뭔진 모르겠다만….

    “무슨 일 있으십니까? 비상 호출이 떠서….”

    박 소위와 최 원사가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섰다. 바깥에도 군화 소리가 일사불란하게 울리는 것을 보아하니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 중인 것 같다.

    “안 그래도 갑자기 이동하라고 하시고, 잠시 불도 꺼져서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별일 없으신 거죠? 이세화 씨는….”

    “통신선은?”

    “아, 다 끊겼습니다. 그래도 시계가 있으니….”

    큰 문제는 없다고 말하려던 박 소위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텅 빈 기태정의 손목이 뒤늦게 눈에 들어온 탓이다. 고위 장교에겐 신분증이자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보이질 않는 와중에, 상관은 핸드폰으로 비상 호출을 하면서 통신 상태를 굳이 확인했다. 마치 그간 벌어진 소란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듯이.

    최 원사의 눈빛 또한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이세화의 기척과 난데없이 끊긴 전기 회선 같은 것들이 어쩐지 뻔한 비극의 복선처럼 맞물렸다.

    “불도 꺼졌었다고? 그럼 예비 전력이 있다는 소린가? 아… 하긴, 게임 도중에 이런 일이 생겼다간 손님들이 가만두지 않았을 테니 대비는 해 뒀겠네.”

    기태정은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일단 장물아비라던 그 사람부터 잡아들이고. 밀항 가능한 항구 위주로 국외 출입국 루트 전부 봉쇄해. 검문소와 포트도.”

    “…예?”

    “여객선이 아니라 물류 운반하는 선박에숨었을 확률이 높으니 그쪽 검문 특히 강화하고,어느 구역이든 사람 오가는 곳이라면 지금으로부터 2시간 전후로 기록 다 가지고 와.”

    박 소위와 최 원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화등잔만 하게 키웠다. ‘숨었을 확률이 높다’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 너무도 명확히 가리키고 있긴 한데,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준장님, 설마….”

    “오선란 쪽 통신망도 체크해. 우회 시도나 전파 방해 쐈다면 그 날짜와 시간만 알아도 상황 예측하기 충분하니까. 그리고….”

    기태정은 엄지와 중지로 이마와 관자놀이를 꾹 짚은 채 잠시 말을 골랐다. 별일 아닌 듯 가벼이 지시를 내리고 있긴 하지만, 사실 조금도 이성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당장 이세화를 잡을 수 없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지금 그를 마주했다간….

    “…어차피 이세화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야. 위로 올라가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텐데, 이건 티가 날 수밖에 없고.”

    국방부 건물에서 오선란과 접촉한 적이 있으니, 그의 도움을 받아 상위 구역으로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그래도 기태정은 이쪽엔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다.

    높은 등급으로 갈수록 치안이 촘촘했다. 아무리 오선란이라고 한들, 이세화 한 명 숨기겠다고 블록마다 달린 CCTV를 떼어 낼 순 없는 노릇이다.이걸 이세화도 모르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이세화의 성격상, 오선란의 도움 없이는 외출조차 불가능할 성의 중심부로 가는 건 거절했을 것 같다. 빚지는 게 싫어서 애를 갖고서도 뭐가 먹고 싶다던 말도 어려워하던 사람이다. 심지어 오선란이 호의를 베푸는 연유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모든 걸 의탁하려 들진 않았을 거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세화가 몰래 막노동이라도 해서 푼돈이나마 쥘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게 몇 가지 가능성을 소거하고 나니, 범위가 단번에 좁혀졌다. 감시망도 느슨하고, 어디에 뭐가 붙어 있는지 이세화가 훤히 꿰고 있는 곳.

    “2환 사태 때문에 1환까진 넘어갈 수도 없으니, 3환 아니면 2환에 있을 가능성이 큰데….”

    기태정은 소파의 등받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손아귀 안에서 싸구려 가죽 시트가 빠드득 뭉개지다 못해, 뒤틀려 찢어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좀 더 익숙한 곳으로 갔겠지.”

    “그럼 2환에 바로 사람 풀까요?”

    “…아니. 천천히 몰아가.”

    손을 탁 털어 내자 새카만 피혁 찌꺼기가 공중에서 흩날렸다. 기태정은 그 잿가루 같은 것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제 괜찮은가 보다, 안심하고 방심했을 때. 그때 잡아 올 거야.”

    그래야 다시는, 자기 목숨 쥐고 흔드는 그딴 못된 짓거릴 안 하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