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65)화 (65/144)
  • #065

    “보자, 눈을 뜨면… 이런 느낌일 거예요.”

    스위치가 켜지는 소리와 함께 프로그램 속 아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상의 신생아는 자길 품은 사람 속도 모르고서 태평하게 하품을 했다. 평화롭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 나 중위는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세화를 돌아보았다. 화면 속 아기와 의자에 누운 세화가 똑같은 표정으로 느릿느릿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반면 옆에 앉은 상관은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기태정은 아까 이세화가 위험한 거냐고 물었을 때를 제외하곤 입을 열지 않았다. 삐딱하게 턱을 괸 손이 입과 턱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짐작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는 건 아니었다. 정말 싫었다면 애가 누굴 닮았든, 임부를 앞에 두고서도 그래서 언제 지울 수 있냐고 닦달했을 위인이다. 아니면 그딴 예측 프로그램 같은 거 돌릴 시간에 쓸모있는 정보, 이를테면 이세화의 몸에 아기집이 자리 잡은 시기나 알아내라고 독촉하거나.

    “흐흠, 요즘은 4개월 중반에도 수술하는 추세인데 전 반대예요. 그거 그냥 자기들 돈 많다고 자랑질하는 거라서.”

    나 중위는 작게 헛기침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만약 낳게 된다면 이세화 씨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5개월은 꽉 채우는 걸 권하고 싶어요. 예정일을 그쯤으로 잡는다면, 적어도 8주 차 때 안정제와 유도제를 써야….”

    예정일 이야기에 다소 흐려졌던 세화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아뇨, 안 낳을 거예요.”

    제법 단호한 목소리에 옆얼굴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세화는 옆에 앉은 남자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다시 한번 자신의 뜻을 강조했다. 싫다고.

    “어… 그래도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바로 단정 짓기보다는….”

    “어제 저 상태 많이 안 좋다고 하셨죠?”

    말을 끊으며 묻자 나 중위는 애매하게 웃기만 했다. 멋쩍은 듯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사실인가 보다. 하긴. 그러니까 기태정에게 보고하기도 전에 저에게 솔직하게 말해 주려고 했던 거겠지.

    “그러니까 빨리 결정짓고 준비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쪽이 아이… 에게도 좋을 것 같고.”

    아이, 라고 말할 때 세화는 저도 모르게 머뭇거렸다. 벌써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데…. 그러니 저 둥그런 점 같은 것이 눈도 달리고 코도 달리고 귀도 달리기 전에. 아직 심장이 눈곱만할 때. 화면 속 모습처럼 쑥쑥 자라나기 전에…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두 가지 방법 모두 준비하고는 있을게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합시다.”

    오늘은 좋은 얘기만 해주려고 했는데, 하며 나 중위가 출력된 홀로그램을 내밀었다. 어쩐지 씁쓸한 얼굴이었다.

    배 속의 강낭콩과 예측 프로그램 속의 아기가 홀로그램 안에서 꼼질꼼질 움직이고 있었다. 세화는 머뭇거리다가 결국 두 장 모두 받아들었다. 이렇게 뽑아줄 줄 알았으면 미리 필요 없다고 말해둘걸. 어차피 지우게 될 거, 가지고 있어 봤자 심란해지기만 할 텐데….

    “이세화 씨는 태블릿 없다고 했죠? 주의 사항 출력해 왔으니까 읽어 봐요. 몇 번이나 말했듯 당장은 지울 수 없으니 그동안은 이세화 씨도 보통의 임부들이 겪는 일은 다 겪게 될 거라서.”

    나 중위가 젤을 닦으라며 도톰한 수건을 건네줬다. 양손에 홀로그램을 쥐고 있던 세화는 어어, 하며 허둥지둥했다. 주머니 속에 넣기엔 홀로그램의 크기가 조금 컸다. 어떡하지? 나 중위는 손을 내밀고 있고, 테이블은 너무 멀고. 잠시 홀로그램을 내려놓을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얼굴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기태정이었다. 커다란 손으로 타월을 낚아챈 그가 투박한 손길로 세화의 복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가 할게요.”

    깜짝 놀라 홀로그램을 한 손에 몰아 쥐고서 수건 끄트머리를 살살 잡아당겼다. 진작 이렇게 할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쳐 갔다.

    “준장님, 제가….”

    꿈쩍도 안 하길래 한 번 더 그를 부르자, 기태정이 눈만 슬쩍 치켜들었다. 입도 벙긋 안 하고서 눈빛만으로 욕을 퍼붓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세화는 별수 없이 천을 붙들고 있던 손을 툭 떨구었다.

    “참. 이세화 씨도 보호자 등록을 해 둬야 할 거예요.”

    뻘쭘해진 세화가 보기 딱했는지 나 중위가 말을 걸어 줬다.

    “보호자 등록이요?”

    “비상시 연락 가능한 사람을 주민등록부에 내 보호자로 올리는 거예요. 아이 낳고 나면 자동으로 삭제되고요. 이건 법적 의무예요.”

    배우자나 파트너를 올리는 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해주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그 어떤 것이든 저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서, 세화는 조금 풀이 죽었다.

    애초에 낳을 생각도 없긴 했지만 아이는 역시 안 될 말이었다. 무슨 일 생겼을 때 찾을 연고자도 하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애를 낳고 기른다고. 화면 속 작은 얼굴이 워낙 저를 닮아서 감상에 잠겼던 게 민망했다. 세화는 짧게 도리질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중위님, 혹시 그거 중위님이 해주실 수 있어요? 보호자요.”

    기기를 정리하던 나 중위가 돌연 생선 가시를 씹은 듯 캑캑 잔기침했다.

    “저, 쿨럭, 제가요?”

    “꼭 가족이 아니어도 되는 거라면 제 사정 다 알고 계시는 중위님이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어, 그렇긴 한데….”

    나 중위의 시선이 세화를 애매하게 비껴갔다.

    “으음, 이것도 급한 문젠 아니니까 나중에 정합시다. 괜히 사서 스트레스받으면 이세화 씨만…. 아!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까 말한 출력물 가져다줄게요.”

    괜히 데굴데굴 눈만 굴리던 나 중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봐도 난처해 보이는 모양새라 세화는 머쓱하게 코끝만 매만졌다.

    하긴. 잘 알지도 못하는 하층민의 보호자라니… 나 중위 입장에선 당황스러운 게 당연하다. 세화는 마른 입술만 꾹꾹 짓씹었다. 이따가 제대로 사과해야겠다. 막막한 마음에 괜한 사람만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이세화.”

    “네?”

    “잘 알지도 못하는 나 중위한테 부탁할 정도로 누가 해도 상관없는 거면.”

    배를 닦아 주던 수건을 바닥으로 내던지며 기태정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니, 목소리만 들었을 땐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럼 그거 내가 해도 되지 않나? 법적 보호자.”

    세화는 저도 모르게 움찔 뒤로 물러섰다. 그래봤자 의자 깊숙이 몸을 묻은 수준이었지만…. 남자는 전혀 덤덤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가 이런 표정을 지었던 순간을 알고 있다. 예전에 밥 먹자는 걸 거절했을 때. 그렇게 싫으면 아랫입으로 먹여주는 수도 있다며 살 떨리게 협박하던 그때의 얼굴과 똑같았다.

    “아니, 내가 하는 게 맞지. 곧 죽일 거긴 해도 내 새끼잖아?”

    “…그렇지만, 그건….”

    기태정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세화를 내려다보았다. 드리운 그림자 탓인지 유독 안광이 형형하게 느껴졌다.

    “민간인들 떼다 보는 기록에서나 삭제되는 거지, 군부 서버엔 고스란히 남아.”

    그러니 친하지도 않은 나 중위, 심지어 군인에게 민폐 끼치지 말라는 뜻인 걸까? 하지만… 세화는 그 말을 들으니 더더욱 기태정을 보호자로 올리고 싶지 않아졌다. 어딘가에 내가 저 사람의 아이를 가진 적이 있다고, 저 남자가 내 법적 보호자였던 순간이 있다고 영구히 기록이 남는다는 소리 아닌가.

    “그런 거라면… 준장님은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요. 공문서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세화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기태정이 아 씨발, 하며 고상한 목소리로 상스럽게 욕을 내뱉었다. 담배를 찾는지 주머니를 더듬던 그는 안이 텅 비었다는 걸 깨닫고는 주먹만 세게 움켜쥐었다. 희게 질린 남자의 손끝이 반짝였다. 배를 닦아주다가 젤이 묻은 모양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격렬한 기태정의 반응에 세화는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호의를 거절당한 게 그렇게 무안했나? 어차피 진심에서 우러나는 선의도 아닐 거면서. 그냥 또 저를 괴롭히고, 놀리고 싶어서 저러는 것 같은데…. 고작 그런 이유로 공문서에 손댈 필욘 없잖아.

    “왜. 언젠가 씹질하게 될 사람이 예전에 다른 남자 애 뱄던 거 알면 지랄할까 봐?”

    “네? 제가 언제 그런….”

    “좋아하는 사람이랑 떡칠 때 창놈처럼 보이기 싫다고, 내가 그렇게 걸레 같냐고 물어보면서 엉엉 울었잖아, 너.”

    뭐? 세화는 할 말을 잃고 기태정을 쳐다보았다.

    “그게 왜….”

    갑자기 그 얘길 꺼내는 이유도 모르겠고…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지 싶은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진 모르겠는데… 등록부에 보호자라는 기록 남아 봤자 서로에게 좋을 거 하나 없고, 저도 준장님께 그런 식의 책임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말을 다 마칠 새도 없이 종잇장처럼 세화의 몸이 번쩍 들렸다. 잡아끄는 힘이 대단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손목을 부러뜨릴 듯 세게 움켜쥐는 건 아니었다.

    “준장님?”

    “일어나.”

    세화가 작게 부르는 것을 무시하며 기태정이 문을 향해 턱짓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바로 등록하게.”

    ***

    “오 대장님!”

    김석철이 번개처럼 문가로 뛰쳐나갔다. 경례를 올릴 때 어찌나 힘이 들어갔는지 손톱의 거스러미까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심려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풍채가 제법 헌앙했다. 김석철이 그간 준비했던 변명을 구구절절 읊는 동안, 오선란 대장은 영창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고급 시설에 속했다. 물론 여기에 수감될 수 있었던 건 소위라는 계급보다 집안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래. 그 빌어먹을 원로들이 문제였다. 부의 세습은 좋은데, 그럴 거면 자식새끼가 사람 구실은 하게 만들어놨어야지. 지금도 무려 대장에게 경례를 올리면서 건방지게 성을 붙여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어차피 저쪽도 명확한 증명은 어려울 테니….”

    “적힌 죄목들이 무시무시하던데.”

    더 듣기 싫다는 듯 오선란이 종이 뭉치를 바닥에 내던졌다. 기태정이 제출한 고발장의 사본이었다. 품속에 넣을 수 있게 또 언제든 파쇄하기 쉽도록 일부러 작은 크기로 출력한 거라, 김석철은 글자를 읽으려 종이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얼굴을 가까이해야 했다.

    “이게 무슨….”

    정신없이 눈을 굴리던 김석철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법전 목차에 있을 굵직한 범죄는 모조리 적혀있었다. 살인, 살인 교사, 납치, 마약 유통 및 밀매, 증거 인멸 시도… 뭐 이런 건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니요? 기태정 이 새끼가 미쳤나, 사람을 이렇게 모함해 놓고 자긴 무사할 거라고….”

    “김 소위가 알려준 방법대로 검문소를 통과한 사람이 여럿 있더군. 물론 기태정은 관련 증거 전부 확보했다고 보고했고.”

    “검문소라면…. 혹시 스프레이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김석철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불법 스트립쇼를 하는 놈들이 즐겨 쓰는 싸구려 태닝 스프레이를 뿌리면 일시적으로 열 감지가 어려워진다. 유해 성분이 다량 함유된 탓에 성 안에서는 유통이 금지된 물건인데, 바로 그 성분들 덕에 감지기가 잠시나마 오류를 일으키는 거였다.

    스프레이 좀 뿌렸다고 검문을 통과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하우스 떨거지들이 몇 번 성 안을 오갈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김석철이 뒷주머니로 찔러 넣어준 돈의 힘 덕이었다. 어차피 효과는 고작 몇 초 정도라, 검문소 놈들에게 면피할 핑곗거리나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1성이나 2성에서나 먹히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대장님. 그건 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김석철은 진심으로 억울했다. 성 밖에서 매춘부를 불러들이는 사람들에겐 알음알음 소문난 방법인데, 이걸로 국가보안법이 어쩌고 트집을 잡았다고?

    “그럼 다른 사람들처럼 책잡힐 거리를 만들지 말든가.”

    메기처럼 축 늘어진 볼을 씰룩이던 김석철은, 칼날 같은 호령에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기태정은 뒷배 하나 없는 놈이고 저는….”

    흩어진 고발장 사본 옆으로 뭔가가 툭툭 떨어졌다. 군인들이 착용하는 여러 가지 표식이었는데, 개중엔 정복에만 달 수 있는 계급장도 있었다.

    “그 대단하신 자네 집안 어르신들이 나한테 이걸 보냈던데.”

    핏자국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물건들을 바라보던 김석철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어르신들이… 왜 이걸 대장님께….”

    “앞으론 자네의 아버지가 충실한 연락망이 되어 주겠다고 하더군. 미욱한 아들놈을 대신해서.”

    김석철은 인중에 고인 식은땀을 빠르게 훔쳐냈다. 피 묻은 표식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죽었거나 그에 준하는 상태일, 제법 큰 돈을 들여 구워삶았던 오선란의 전속 부관들이었다.

    오선란은 건강을 핑계로 국외에 머무르는 일이 잦았다. 원칙대로라면 장관급 장교의 장기 해외 체류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흘려듣기론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맞물렸다곤 하던데, 어쨌든 최종적으로 국가 원수의 승인이 떨어졌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오선란이 대장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평소엔 그림자처럼 묵묵히 원수를 모시다, 결정적인 순간에 윗분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고 들었다. 장교들끼리 결탁하는 걸 막아보겠다고 대장씩이나 되는 인사가 밖으로 나도는 걸 허락해주다니, 말세는 말세였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추수’엔 반대하는 입장일세. 이미 예전에 비슷한 일 진행해봤고, 그래서 결과가 어떨지도 뻔히 보이니까. 그런데도 내가 자네의 헛짓거리를 눈감아주는 이유가 뭐라고 했나?”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으시다고….”

    “그래. 21년 전에 벌어졌던 그 실험의 관련자들이, 그때의 브로커 새끼들이 냄새를 맡고 또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오선란이 서서히 한쪽 무릎을 굽혀 앉으며 김석철과 눈을 마주했다.

    “어억, 대, 대장님!”

    머리채를 붙들린 김석철이 끄윽, 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가뜩이나 없는 머리털이 뭉텅뭉텅 뽑히고 있었다.

    “제가…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김석철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추한 몰골로 오선란에게 매달렸다. 가뜩이나 약도 못 빨아서 돌 것 같은 와중에 면역 없는 고통까지 가해지니 죽을 맛이었다.

    “김 소위가 모자란 거야 그쪽 어르신들 사정이니 내 알 바 아닌데, 자네의 멍청함이 나한테까지 피해를 주는 건 곤란하지.”

    “대, 대장님…!”

    “국가 원수에게도 허락받은 일을 자네가 뭔데 망쳐 놓고 있나, 어?”

    오선란은 20대 초반의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름도, 성별도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처음엔 10대 후반이라고 하더니 시간 지날수록 점점 나이를 올리기에, 영계나 찾으면서도 주제에 양심은 챙기나보다 싶었다.

    애초에 그와 연을 맺게 된 것도 이 문제 때문이었다. 김석철이 성 밖으로 자주 나다니는 것을 알게 된 오선란은 약간의 비행은 눈감아 줄 테니, 외곽에서 보이는 수상쩍은 놈들의 리포트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추수’ 프로젝트가 물망에 올랐을 때, 김석철은 당연히 오선란이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그가 찾는 브로커들이 딱 좋아할 미끼였으니까. 과연 자신의 추측은 옳았다. 표면적으론 반대했지만, 뒤에서 그의 이름을 파는 건 묵인해준 덕에 쉽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오선란은 이전처럼 ‘추수’의 피실험자를 제공하겠노라 접근하는 브로커들의 정보만 주면 된다고 했다. 물밑에서 오래 활동한 놈일수록 좋다고. 돈이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거면 된다고.

    브로커가 아니라 20대 초반의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을 찾게 된다면 더더욱 좋겠다고 하긴 했다만, 오선란도 거기까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자기도 단서를 찾지 못한 일을 김석철이 알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이기도 했다. 대장급 인사도 찾아내지 못한, 주민등록부에도 올라가지 못한, 심지어 성별조차 알 수 없는 사람을 한낱 소위가 어떻게 찾아내란 말인가.

    그래서 매조며 모란이며 하는 선수들과 작업 중이라는 거짓 정보만 흘리고, 이세화에 관한 얘기는 감춰왔다. 언제까지고 오선란이 모를 거라곤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차피 다른 일에 정신 팔려 국외를 전전하는 사람이니 당장만 말이 안 들어가게 하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그 대단한 집안 어르신들 말씀과 자네가 그간 보고했던 내용은 전혀 다르더군. 나에겐 매조란 놈이 약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그게….”

    그거야… 예쁘장한 어린놈이 취향이라면 이세화를 보자마자 당연히 낚아챌 것 같았으니까. 영영 숨기려던 건 아니었다. 이세화를 들어 앉히고 나면, 사실 얘도 일을 돕기는 했는데 그다지 쓸모가 있지도 않았고 대장님이 찾으시던 사람과도 거리가 멀어서 굳이 말씀 안 드렸다… 뭐 그렇게 설명하면 될 거라고 여겼다. 집안 어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오선란도 저를 크게 꾸짖진 못할 거라고. 그런데….

    “지나가듯 말씀드린 적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얼굴 반반한 게 전부인 놈이라, 으아악!”

    김석철의 뒤통수를 움켜쥔 손에 점점 힘이 더해졌다. 생각보다 오선란의 분노가 대단했다. 이세화 사진이라도 봤나? 그래도 최근까진 후줄근하게 하고 다녀서 원래 상판대기와는 느낌이 좀 달랐을 텐데.

    “대, 대장님!”

    김석철은 꺽꺽 넘어가며 오선란에게 매달렸다. 두피가 죄 뽑힐 것 같았다. 아니, 이미 뽑혔을지도 모른다.

    “별 볼 일 없는 놈인데다, 찾으시는 분과 다르게 신원도 확실합니다. 그래서….”

    틀린 말도 아니었다. 노름에 미친 아비가 갓난쟁이일 때 판돈으로 걸었다곤 하지만, 어쨌든 이세화는 주민등록부엔 떡하니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돈 다루는 꾼들에게 들은 이야기니 거짓일 리 없다. 도박 중독자였어도 애 아빠란 작자는 확실히 있었으니, 이세화는 오선란이 내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이세화가 마약상으로 이름 좀 날렸다고 한들 놈은 파벌 같은 걸 만들 깜냥도 없었다. 나이도 어린데다 생긴 것도 그 모양이라 여기저기 치이기만 하던 놈인데. 그 주제에 군인들과 연이 닿는 거물 브로커와 안면을 텄을 리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세화의 정보를 누락한 게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첩으로 두기 좋은 어린 애들이야 제가 얼마든지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김석철이 더듬거리며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내가 찾는 건.”

    오선란이 김석철의 뺨을 세게 올려붙였다. 손날이 아니라 망치로 아귀를 내려치는 것 같은 파열음이 울렸다.

    “첩 같은 게 아니라.”

    변명을, 아니 비명을 내지를 틈도 없이 김석철의 투실투실한 고개가 좌우로 팩팩 돌아갔다.

    “내 자식이야, 이 더러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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