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55)화 (55/144)
  • #055

    “흐, 으읏, 응….”

    순종을 독려하듯 입을 맞춰 줬다. 주춤거리던 이세화도 이내 서툴게나마 응해왔다. 쉴 틈을 주려 가만히 입술만 마주하고 있으면 먼저 혀를 내어 점막을 훑어 보기도 했다. 키스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하는 행동 같지는 않았다. 온몸을 두드리고 가는 감각이 버거워서 다른 쪽으로 열기를 돌려보려 애쓰는 몸짓에 불과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설프긴 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이세화도 행위를 주고받는 법을 깨우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멋대로 질질 끌고 가는 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제 눈치나 보며 찌그러져 있는 것보다야 조금이라도 호응을 보이는 쪽이 훨씬 좋기는 했다. 일단 몸의 감도 자체가 달라지니까. 삽입의 강도며, 쾌락의 밀도며… 지금의 섹스가 예전보다 훨씬 고될 텐데도, 이세화는 여태까지 보았던 것 중 가장 순순한 태도로 기태정에게 안겨 있었다.

    “으읏…!”

    혀로 젖은 입안을 휘저으며 샤워부스의 벽에 이세화를 밀어붙였다. 물기를 머금은 몸뚱어리가 뿌옇게 서린 김을 지우고 간 궤적이 선연했다. 그 자체로도 한 폭의 음탕한 그림이었다.

    “아, 준장, 님….”

    혀를 빼꼼 내밀고서 이세화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댈 곳이 있으니 조금 편해지긴 한 모양인지 속살이 조금 더 풀어졌다. 구멍이 헐렁해졌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유연하게 풀려 조금 더 수월하게 좆을 물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이제 끝이라고, 다 왔다고 살살 얼러준 건 이번이 처음이지 싶었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픽 터졌다. 고작 그 정도로 이렇게 마음을 풀었다고? 하긴. 꽝꽝 얼어있는 얼음을 깨트릴 때보다 반쯤 녹은 걸 부수는 게 훨씬 더 쉽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세화는 그런 성향이 특히 두드러지는 편이긴 했다.

    저한테 처맞을까 봐 빌빌거릴 때도 감도 자체는 좋았다. 감정 따윈 배려하지 않고 오직 몸이 느끼는 곳만 짚어줬을 때도 흡반처럼 달라붙어 자지를 먹어 치운 구멍이었다. 기태정은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열락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세화가 스스로 몸을 열고 받아들이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나니, 이전과 같은 섹스는 하기 싫어졌다. 구멍이 잘 조이고 내벽이 뻑뻑하고… 비단 이런 것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잔뜩 얼어 죄송하다는 말이나 겨우 내뱉던 입술이 다디단 울음을 흘리고, 먼저 키스를 졸라온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살이 기둥에 일어선 핏대 하나하나에 전부 달라붙는다. 내벽은 자지의 모양 그대로 부드럽게 녹아, 단단한 살덩이를 나긋하게 주무르고 빨아들였다. 굳이 제가 허릴 흔들지 않아도, 이대로 넣고서 이세화가 뒤를 조여주기만 해도 쌀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너무…, 아, 제발…!”

    제지하는 말이야 이전과 똑같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거부라기보다 이 느낌 좀 어떻게 좀 해달라는 애원에 가까웠다. 아까는 목에 두르는 것도 겁냈으면서 이젠 제 팔뚝을 더듬더듬 붙들기도 하고, 어깨에 손을 얹기도 했다.

    “주, 준장… 님….”

    말끝을 길게 늘이며 이세화가 저를 올려다보았다. 기태정은 순간, 일부러 재생 속도를 늦춘 것처럼 흘러가는 풍경이 느리게 느껴졌다. 천천히 유영하는 시간만큼 눈에 보이는 것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준장님, 하고 부를 때. 첫음절에선 입술이 부리처럼 뾰족해졌다가 우물 같은 입안이 얕게 드러난다. 붉은 혀가 하얀 치아를 톡 튕기면 흥건히 고인 타액 덕분에 모래알이 같이 작고 하찮은 비말이 퐁 터진다. 물막을 두르고 있는 말간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오직 기태정 뿐이었다.

    이목구비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서로의 숨결이 닿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기태정을 바라보던 이세화의 얼굴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잡아먹을 듯이 굴어놓고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니 의아해진 모양이다. 커다란 눈을 느릿느릿 깜빡이자 긴 속눈썹에 매달려있던 물기가 볼을 타고 턱으로 똑 떨어졌다. 그 순간 저에게만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이 비로소 제 자리로 돌아왔다. 기태정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던 감각의 유실을 보상받고 싶기라도 한 듯 과육 같은 입술을 조급하게 집어삼켰다.

    “하, 준… 준, 아…, 아앗!”

    “숨 쉬어.”

    “진짜, 저 너무 이상, 흐, 아앗….”

    천천히 그러나 공들여 삽입하자 끙끙 앓던 이세화가 못 견디겠다는 듯 입술을 가져다 댔다. 어떻게 하려나 가만 지켜봤더니 젖은 입술만 애타게 비비고 문질러댔다. 흐무러진 여린 살이 질척이며 달라붙었다. 애액으로 범벅이 된 젖은 볼기가 유리에 짓눌려 통통 튕기고, 흠뻑 젖은 차진 구멍에선 새어 나온 애액이 방울져 떨어지고 있었다. 전부 이 야해 빠진 몸에서 흘리는 소리였다.

    “…흐, 으읏…!”

    이번엔 좆을 뒤로 물렸다가 단번에 처박았다. 단단한 귀두가 내벽 안 도톰하게 부푼 곳을 모조리 후비고 갔다. 이세화는 이젠 입맞춤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서 축 늘어졌다. 드러난 목덜미를 간질이듯 깨물고, 핥을 때마다 요동치는 맥박이 느껴졌다.

    “아, 준장… 님, 이거, 아, 앗, 아으, 응…!”

    잘게 할딱거리던 이세화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좆을 품느라 볼록해진 아랫배 부근이 잘게 진동했다. 무언가를 예감한 듯 이세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기태정 또한 알 것 같았다. 이제 곧이었다. 뒤로 고개가 퍽 꺾이고, 가느다란 목울대가 크게 울렁이고, 그리고.

    “……!”

    이세화는 앓는 소리조차 흘리지 못하고, 몸을 크게 떨어 댔다. 하도 싸서 끝이 퉁퉁 부은 좆이 빳빳하게 일어서더니, 팍하고 물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말간 물을 뿜어 냈다. 아까 쌌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세기였다.

    “씨발, 아….”

    기태정 또한 이세화의 정수리에 코를 처박고서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극점에 다다른 이세화의 차진 속살이 빨랫감 쥐어짜듯 기태정의 자지를 씹어댔다. 길고 아득한 절정이 밀려왔다.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이었을 뿐인데. 오직 내벽의 조임만으로 사정한 건 기태정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흣, 응, 흐읏….”

    입술 색보다 옅은 요도 끝에선 아직도 샘처럼 야한 체액이 퐁퐁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의 아랫도리 상태를 확인한 이세화는 당황해서 어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꼬리에 아롱아롱 눈물방울을 매달았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밀려온 모양이다. 몸의 수분기는 모조리 빠져나갔을 것 같은 요란한 사정이었는데 아직도 울 기운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제 안 해.”

    귓가에 속삭이며 뺨에, 턱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제야 잔뜩 힘이 들어갔던 어깨가 둥글게 내려앉았다. 쌕쌕 가늘게 숨만 내쉬던 이세화의 몸이 갑자기 또 몸이 흠칫 굳었다. 뭔가 싶어서 시선을 따라가 보니, 벽면의 사전에 귀여운 부사가 적혀있었다. 인공지능이 듣기론 아까 이세화가 싸면서 내질렀던 신음이 그렇게 들렸던 모양이다.

    “어린아이가 크게 우는 소리, 앙탈을 부르며 보채는 소리.”

    눈에 들어오는 인상적인 뜻을 읽자 이세화가 고개를 비스듬히 돌렸다. 어찌나 새빨갛게 익었는지 볼에서 김이 폴폴 날 것 같았다.

    “음, 확실히 그렇게 울긴 했지.”

    “…제가 언, 으응…!”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안에 파묻고 있던 좆을 빼내기 시작하자 구멍이 무섭게 조여들었다. 또 박히고 싶은 거 아니면 힘 빼라고 하자, 이세화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했다. 사실 그대로 뽑아내면 그만이긴 했다. 자지가 속살을 세게 긁고 나갈 때의 쾌감을 아는 몸이니, 또 한 번 가버릴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기태정은 뺨에 쪽 입을 맞춰주는 쪽을 택했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흣….”

    정말로, 이세화는 별것 아닌 입맞춤에도 마음이 사르르 풀렸는지 조금씩 긴장을 덜어 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확연한 반응의 차이었다.

    “아, 잠, 잠깐만…!”

    죄 풀어져 키스에 열중하던 이세화가 맞붙은 몸을 허겁지겁 떼어 냈다. 좆을 물리자 구멍에 고여있던 정액이 투둑 흘러내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구멍이 크게 개폐를 반복하고, 찐득찐득한 크림 같은 게 뽀얀 살결에 엉겨 붙었다. 꿀타래 같은 애액 또한 손자국이 남은 엉덩이와 허벅지 위로 줄줄 쏟아져 내렸다. 아까 말간 좆물을 뿜어내던 때만큼이나 외설적인 광경이었다.

    “자기.”

    “제, 제발… 아무 말도… 준장님….”

    “뒤로도 분수 쌀 줄 알았어?”

    “흐으….”

    이세화는 끝이 다 갈라진 목소리로 결국 울음을 토해 냈다. 술기운이 올라온 탓인가, 다른 때보다 유독 코끝이 붉었다.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에 얼굴 이곳저곳을 잘근잘근 깨물고 짧게 입을 맞췄다. 눈두덩이, 광대 아래, 입술 옆… 평소엔 잘 건드리지도 않던 곳에 일부러 키스하자, 왜 이런 곳에 입술을 대냐는 듯 훌쩍이며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 게 웃겼다. 생각해보니 후희로 키스를 퍼부어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의 섹스는 여러모로 처음인 것이 많았다.

    “좆도 퉁퉁 붓고. 구멍도 퉁퉁 부었을 거고. 눈도, 입술도 다 부었네.”

    엄지로 젖은 입술을 문질러주었다. 이세화는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듯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내기만 했다. 갓 태어난 짐승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오랜 시간 한계까지 벌리고 있었으니 제대로 다물리지 않을 법도 했다. 구멍을 포함한 하반신 전체가.

    기태정은 솔직히 몇 번이고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하고 싶었다. 끝까지 밀고 들어가, 아랫배에 쫀득한 볼기가 뭉개지는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더 몰아붙이면 이세화의 몸은 정말 망가질 거다. 제 좆이 처박힌 곳이 결장인지 새로 움튼 아기집인진 모르겠지만, 나 중위 말마따나 당장 쓰고 버릴 게 아니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찌릿찌릿 올라오는 저린 감각을 떨치고 싶었는지 이세화는 허리를 둥글게 말고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따뜻한 탕에서 몸을 녹이면 좀 나아질 텐데. 그러면서 이것저것 좀 해볼 수도 있는 거고…. 굳이 삽입하지 않더라도 즐길 방법이야 많으니까.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 건물엔 욕조가 없었다.

    “기분은 좀… 나아지셨어요?”

    쟬 어떻게 씻겨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이세화가 뜬금없이 물어왔다.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뭐?”

    말의 내용을 이해한 것은 수 초가 흐른 후였다. 기태정은 저게 무슨 헛소릴 하나 싶었다. 지금 기분이나 풀 용도로 자기랑 섹스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아서… 그래서 아까 최 원사도 저한테 그, 부… 군, 그런 말 해 보라고 알려 준 것 같고….”

    기분이 더러웠던 건 사실이다. 역겨운 소리를 들었는데 심기가 편할 리가. 도박장에 모아둔 놈들은 기태정이 제일 혐오스러워하는 부류였다. 능력도 없으면서 탐욕스럽기만 하고, 그런 자신이 정당하다 못해 가엾다고 자위하는 놈들. 그런 새끼들이 가진 게 많으면 김석철처럼 되는 거고, 없이 살면 이세화 같은 애들이나 등쳐먹고 그러는 거였다. 정의 구현 같은 차원에서 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입단속 할 필요도 있는데 보기 역하기까지 하니 그냥 다 죽여버린 거였다.

    그렇지만 ‘청소’와 지금의 섹스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오전에 패치로 이세화의 좆을 묶었을 때부터 돌아오면 엉엉 울리겠노라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이세화로선 상상해 본 적도 없을 음담을 입에 올리게 하고, 제발 싸게 해달라고 허릴 흔들며 빌게 할 작정이었다.

    무엇보다 이세화에겐 오늘 있었던 일을 함구할 생각이었다. 그런 새끼들 다 물리쳤노라 공치사하기엔 뭐 대단히 힘을 쓴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세화가 사실을 알게 되면 혼자서 청승이나 떨게 뻔했다. 그런 꼴을 보겠다고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럴 바엔 제 좆을 받아내며 우는 얼굴이나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색낼 생각은 없었다지만 저한테 빨대 꽂았던 새끼들에게 대신 복수해 주고 온 사람한테. 지금 뭐라고?

    “저… 씻고 나와도 되나요? 너무 끈적끈적해서….”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예전과 비슷했다. 경계심. 혹은 공포로 잔뜩 물든.

    왜 저러는 거지? 기태정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전과는 달리 어르고 달래주며 섹스했다. 이세화도 흐물흐물 녹아 먼저 키스까지 했을 정도로. 손목이 꺾이고서도 입 맞추는 건 싫다고 피하던 게 이번엔 먼저 매달리며 안겨 왔다. 마무리도 여태 했던 섹스 중 가장 다정했고 더 안 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그런데 왜?

    예전에 이세화가 열에 들떴을 때 늘어놓았던 헛소리가 제법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술을 먹여 볼 생각을 한 거였다. 취하면 또 얼마나 엉망이 되어 저에게 달려들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아 있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굴까. 아니면 또 시답지 않은 애교를 부리려나. 그런데 이건 웬…. 기태정이 기대하고 예상했던 것 중 이런 상황은 없었다.

    조금만 달래주면 알아서 마음을 연다. 이 명제가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생각에 잠겨 가만히 아무 곳이나 바라보고만 있자, 이세화의 눈썹이 시무룩하게 꺾였다. 그럼 그렇지… 하는 체념마저 느껴졌다. 머뭇거리던 마른 몸이 서서히 돌아섰다. 애초에 기태정이 약속을 지켜줄 거라곤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이세화는 벽을 짚으며 크게 숨을 골랐다. 소파에서 그 난장을 칠 때부터 이번엔 네가 알아서 해보라고 했으니 지금도 그 연장선이라 여기는 모양이었다.

    마른 팔이, 간신히 버티고 선 허벅지며 종아리가 쉼 없이 파들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이세화는 기태정의 몸에 부딪혀 벌건 자국이 난 엉덩이를 어설프게 내밀고 있었다. 긴장을 여실히 드러내듯 퉁퉁 부은 구멍이 크게 움찔거렸다. 아랫배에 따끔한 감각이 뭉쳤다 사라졌다. 기묘한 불쾌함이 기태정의 속을 갉작였다.

    이세화에게 손을 뻗은 건 무의식에 가까웠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저 꼴은 보기 싫었다. 더 할 생각 없다고, 씻으러 가자고 몸을 돌려세우려고 했던 거였는데… 다가오는 손길을 느낀 이세화의 몸이 크게 움츠러들었다. 곧 이어질 행위를 견뎌내려는 듯 몸에 잔뜩 힘이 주며 버틴다. 기태정은 자신의 텅 빈 손을 내려다보다 관절에서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움켜쥐었다.

    씨발, 못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이세화는 거부하지 못할 거다. 본인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아서 이렇게 순종적으로 굴고 있지 않은가. 만약 반항하더라도 가둬두고, 묶어두고서 범하면 그만이었다. 재판이 있기 전까지 허튼짓 못 하게 하려면 그쪽이 안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이세화가 먼저 몸을 열어젖힌 것을 겪고 나니, 더는 강제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체념과 수용이 빠른 것은 좋은데, 풀이 죽어 제 눈치나 보는 것보다는 조금 전처럼 나긋나긋하게 안기는 걸 보고 싶었다.

    기태정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뒤늦게 술기운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었다. 지금 멋대로 취하고서 앞으로도 겁에 질릴 이세화를 보거나, 살살 달래서 아까처럼 먼저 안기게 하거나.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효율적이다. 폭력과 공포로 다시 길들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깨진 마음을 다시 봉합해주려면 시간과 품이 더 들어간다.

    기태정은 잠시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손을 뻗어 이세화의 어깨를 붙들었다. 아무 짓도 안 하고 돌려세우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조금만 달콤한 걸 던져 줘도 흐물흐물 녹는 몸 아닌가. 쉽게 즐거워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씻겨 주려고 그런 거야.”

    “…….”

    “그러고 잘래? 정액에 애액으로 범벅이 돼서, 구멍에 씹물 넣은 채로 자고 싶었던 거라면,”

    “아, 아니에요….”

    제 눈치를 보던 이세화가 기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보다야 나아졌지만, 경계심은 여전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고민하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준장님이 왜 저를 씻겨 주시려는….”

    “그럼 여태 너 기절했을 때마다 몸 닦아준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했는데? 박 소위? 최 원사?”

    이세화가 어물쩍 입을 다물었다. 합, 입술을 깨무니 볼에 바람이 들어가 빵빵해졌다.

    “그러니까 빨리 안겨. 씻고 자게.”

    “그, 그때처럼 차라리 제가 정신이 없으면 몰라도 지금은 그런 것도 아니고… 또 지금 걷기도 어려워서… 그런 걸, 준장님이 해 주신다는 게….”

    이것 봐. 저렇게 있는 말 없는 말 다 끄집어내며 조잘대는 건 이세화의 습관이자 신호였다. 꽁한 걸 풀고 마음을 완전히 놓았다는 뜻이었다.

    “팔 둘러.”

    이세화는 망설이다 손을 뻗었다. 기태정의 허리에 얹듯이 팔을 두르고선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기태정은 이세화의 허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자신의 발등 위로 이세화의 발을 올려 두자,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몸이 완전히 맞붙었다.

    “주, 준장님?”

    “자기 발론 못 걷겠다고 그러고. 안아 들었다가 구멍에서 물 쏟아지는 거 보면 또 처박고 싶어질 게 뻔한데… 더는 안 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이세화를 몸 위에 올린 채로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옮기자, 품 안에서 작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맞닿은 피부로 심장이 콩닥콩닥 내달리는 게 느껴졌다. 제 가슴에 기대고 있는 하얀 볼이 둥글게 올라붙어 있었다. 흘끗 이세화를 내려다보던 기태정 또한 픽 웃었다. 고작 이 정도로도 좋다고 웃을 거면서.

    “참. 며칠 후엔 관사에 들릴 거야. 며칠 머무를 수도 있고.”

    “관사요?”

    “군의관이 직접 설명해 줄 거야, 네 체질. 저번에 말해 주지 않았나?”

    “아아… 네.”

    나 중위는 딱딱한 목소리로 이세화의 이야기는 직접 와서 들으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외부로는 반출할 수 없는 문서를 보면서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다고. 역시 그 화학 실험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다. 관사로 가면 이세화에게 여러 가지 검사를 받게 할 계획이긴 한데, 그래도 임신 여부는 알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간 딱히 눈에 띄는 증상도 없었고. 오늘의 섹스로 애가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필요할 테니까.

    그래도 나 중위는 이세화에게 네 체질은 정확히 이러하며, 앞으론 임신도 가능하니 조심하라고 일러줄 거다. 기태정도 그걸 제지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고 밝혀질 일이었으니, 환자라면 끔찍하게 구는 나 중위의 입으로 듣게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진짜로 애를 품을 수 있다고 했을 때 이세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글쎄, 기태정도 예측이 어려웠다. 다 알면서 자길 속였다고 울려나? 그렇지만 나도 모르고서 했던 소리라고, 내 입버릇 원래 걸레 문 것처럼 더럽지 않냐고 달래면 이세화는 또 어물어물 수긍할 것 같았다. 임신할까 봐 무섭다고 조잘거릴 수도 있고. 나중에 테스트 결과를 받아들고서 이거 어떡하냐고 끙끙 앓을 것 같기도 하고…. 뭐든 전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준장님은, 여기… 그러니까 하우스에는 안 계시고….”

    “무슨 소리야? 일 전부 끝날 때까지 여긴 점거하고 있어야지. 하우스 자체가 증거물인데.”

    잠깐 들렀다가 다시 돌아올 거고 당연히 관사엔 너도 데려갈 거라고 하니, 이세화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왜. 영영 꺼질 줄 알았는데 계속 같이 있을 거라고 하니까 실망했어?”

    “그, 그런 게 아니라….”

    놀리듯 묻자 이세화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봤자 기태정에게 안긴 채라서 단단한 가슴에 뺨을 비비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 두 시간 정도는 외출하는 거 허락해 줄 테니까, 심심하면 나가서 놀고 와.”

    힘없이 비비적거리던 이세화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대신 오늘처럼 좆에 패치를 묶어야 한다고 했을 땐 도로 시무룩하게 시들어 버렸지만. 젖은 엉덩이를 토닥이며 수전을 열었다. 오늘 수고했어, 귓가에 속삭이자 이세화는 가만히 눈을 내리깔았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이세화가 작게 입을 뻐끔거렸지만, 거센 물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어쨌든 졸아붙어서 우는 게 아니라면 됐다. 기태정은 쏟아지는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세화의 짓무른 눈가를 실컷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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