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50)화 (50/144)
  • #050

    아직 안 끝났다고? 아무리 볕이 잘 들지 않는 건물이라지만 환한 낮이었다. 빛살이 꽂히는 창문 바로 아래에서 좆에 리본을 단 채 섹스하고 싶진 않았다.

    “잠깐만요, 이렇게는….”

    당황한 세화가 발버둥을 치자, 기태정이 엉덩이를 찰싹 내려쳤다. 아프진 않았다. 은근하고 은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는, 딱 그 정도의 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무심한 손길에 묶인 아래가 뻐근하게 당겨오기 시작했다. 이어질 일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배 안쪽이 미열로 들끓었다. 이제 그는 엉덩이를 주무르고 내리치는 것만으로도 세화의 몸을 열 줄 알았다.

    “사람 부르셨잖아요, 그만….”

    “그러니까. 남들 앞에서 이 꼴 보여주고 싶어?”

    “아, 아파요…, 아!”

    기태정의 소매에 달린 둥근 것이 사방으로 빛을 난사했다. 시트 위로 잔물결 같은 빛 그림자가 일렁였다. 커프스가 아니라 보석이라도 달고 있는 건가. 반짝이는 것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셔츠 소매를 뚫고 나온 커다란 손이 예고도 없이 세화의 양 발목을 움켜쥐었다. 기태정은 언제나 손쉽게, 그것도 한 손으로 세화의 발목을 덥석 거머쥐곤 했다.

    골이 팬 미간을 따라 세화의 기분도 옅게 구겨졌다. 그의 좆은 한 손으로도 다 잡히질 않는데… 저는 이렇게 쉽게 붙들릴 일인가? 아무리 기태정의 손이 크다고는 해도 제 발목은 그가 한 손으로도 그러쥘 수 있다는 게 이유도 없이 억울했다. 그의 좆과 자신의 발목은 딱히 상관관계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괜히.

    “금방 끝나.”

    기태정은 다른 쪽 손을 뻗어 브리프 케이스 안을 더듬거렸다. 그가 물건을 찾느라 손을 휘저을 때마다 세화의 몸도 덩달아 거세게 흔들렸다. 꼭 그의 좆을 받아낼 때처럼.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얼러주는 기태정의 목소리에 세화의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원래도 남 울리는 재미로 섹스하는 인간이었다. 몸으로 얼마나 괴롭히려고 저렇게 상냥하게 말하는 걸까.

    그리고 다른 것보다 지금 취한 자세가 너무 민망해서… 이것부터 어떻게 좀 해줬으면 좋겠다. 엉덩이만 치켜들고서 그에게 구멍을 빨린 적도 있으니 그에 비하면 양반이긴 하지만… 묶인 아랫도리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있자니 창피함에 눈꺼풀 안쪽이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대충 둘둘 감아 놓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니 귀두를 감고 음낭을 조이는 선의 생김이 야하기 짝이 없었다.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 묶어준 티가 났다. 또 타인의 손이 아니면 절대 풀 수 없을 것처럼 생겼다. 스트리퍼들도 이런 태를 하고 손님들 앞에 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이런 꼴로 밖을 나서도 되는 걸까. 제 잘못도 아닐뿐더러 어차피 들킬 일도 없을 텐데, 벌써부터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리는 것 같아 발바닥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세화는 마음을 다스리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래가 조인다는 생각조차 밀어내고 싶었다. 의식하지 않으면 발기한 건 곧 가라앉을 거다. 원래 좆은 어떤 형태로든 자극을 받으면 일어서게 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서는 것처럼 지금 힘이 들어간 것도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준장님?”

    나는 묶여서 발정하는 변태가 아니다, 열심히 되뇌던 세화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수상쩍은 물건이 아랫도리를 쿡쿡 쑤셔대기 시작했다.

    “이 자세론 안 되겠는데. 무릎 잡아.”

    뭘… 넣으려는 거지? 세화가 머뭇거리자 기태정이 코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같은 소리 또 하게 했다간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서 손에 든 물건을 쑤셔 넣을지도 모른다. 머뭇거리며 오금 뒤로 손을 걸자, 기태정이 무릎으로 세화의 꼬리뼈 부근을 쿡쿡 찔렀다. 볼기짝이 다 보이도록 열어젖히라는 뜻 같아서, 세화는 무릎 뒤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줬다. 그의 성엔 차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가 세화의 한계였다.

    기태정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툭툭 털어댔다. 팔뚝만 한 성인용품이라도 들이미는 건 아닐까 생각했는데, 세화의 음탕한 상상을 꾸짖기라도 하듯 그가 흔드는 건 라이터만 한 크기의 조그만 물건이었다.

    “한 번에 안 끝나면 자기만 피곤해지니까.”

    ‘잘하자?’ 하며 기태정이 묶인 음낭을 위로 쓸었다. 그의 무릎이 지렛대라도 되는 듯 세화의 허리 아래를 들어 올리는 바람에, 반쯤 일어선 성기가 마른 뱃가죽에 덜렁 올라붙었다.

    “…어?”

    뒤따를 격통을 참으려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세화는 저도 모르게 의문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이 뒷구멍을 헤집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차가운 감촉이 닿은 곳은 다소 생뚱맞게도 음낭 바로 아래 회음부였고… 그나마도 살 위를 몇 초 꾹 누르는가 싶더니 금방 떼어졌다.

    기태정은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걸 매트리스 위로 내던졌다. 출렁이는 무게마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그것은….

    “잘 찍혔다.”

    도장, 이었다.

    “아. 자기 눈에는 안 보이려나?”

    검지와 중지로 가위질하듯 얇은 살갗을 이리저리 늘여보던 기태정이 대뜸 세화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보여줄게.”

    “네? 아뇨, 저는… 저는, 싫, 준장님, 이 자세….”

    몸을 돌려세우는 것과 동시에, 그가 세화의 무릎 아래 팔을 끼워 넣었다. 아기 오줌을 누일 때 같은 자세였다.

    “얌전히 있어. 떨어지기 싫으면.”

    안고 있는 세화의 무게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 기태정이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무슨 의도인지 뻔히 느껴졌고, 동시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보여주려는 거다. 남자에게 안겨 다리를 훤히 벌리고서, 아랫도리에 온통 이상한 걸 달고 있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스스로 확인하게 하려는 거다.

    “안 볼래요, 싫어요….”

    이 이상의 수치는 세화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왜, 얼마나 예쁜데.”

    발버둥을 치는 성인 남자를 들쳐 안고 있으면서도 기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발로 뻥 걷어차 욕실 문을 열었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건 엉덩이와 허벅지 안쪽을 받쳐 든 그의 손뿐이라서, 세화는 결국 더듬더듬 손을 뒤로 뻗고서 그의 팔뚝을 붙들어야 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믿을 사람 말을 믿어야지. 눈물을 꾹 참느라 코안이 매웠다. 불안정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저를 불안하게 만든 남자에게 기대야만 하다니. 이건… 너무 이상했다. 전부 다, 이상한 일뿐이다.

    “얼른.”

    그의 키가 훌쩍 큰 탓에, 세면대 위로 자신의 헐벗은 꼴이 숨김없이 드러냈다. 세화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맥없이 시선을 떨어트렸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나신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아까는 좆을 묶은 형태가 야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형편없었다. 그냥 우습고 추잡하게만 느껴졌다.

    “좆 잡아서 들고.”

    “…….”

    “왜. 박아줄까? 박아서, 알아서 자기 좆 서게 만들어줘?”

    긴 손가락이 엉덩이와 안쪽 허벅지를 욕심껏 움켜쥐고 있었다. 쩍 벌어진 가랑이로 작게 열려 뻐끔거리는 뒷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망설이던 세화는 결국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적어도 이런 주제로 기태정은 단 한 번도 허언을 한 적이 없었다.

    좆을 따라 음낭 또한 위로 당겨지자, 바로 아래 회음부에 찍힌 날인이 선명하게 보였다. 특수 안료라도 발린 도장인지 짙은 남색으로 번쩍번쩍 빛이 났다. 별과 새와 꽃. 요 며칠 자주 본 문양이었고… 옷에 새겨진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 아래 글자도 쓰여있다는 거였다. 준장 기태정. 뉴스에서 자주 보던 모난 곳 하나 없는 또박또박 예쁜 글씨체로 그의 계급과 이름이 표식 아래 적혀있었다.

    “어차피 다 전자 날인 하는 거 도장 같은 걸 왜 파주나 생각했는데….”

    기태정이 아프지 않게 세화의 귓바퀴를 물었다. 축축한 숨결이 귓불부터 목빗근까지 타고 내려갔다. 세화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자신의 좆만 붙들고서 끙끙 앓았다.

    “이러라고 준 건 가보다.”

    “내려… 내려주세요….”

    평범한 사람은 사들일 엄두도 못 낼 비싼 패치가 자지를 묶고 있고, 회음부엔 남자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이 찍혀있다. 이 모든 걸 자신의 눈으로 똑바로 보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았다. 애원하는 세화의 목소리 끝에 소금기가 묻어났다.

    “봤잖아요, 다 봤으니까… 이제 그만….”

    울든 말든 이대로 박을 거라 생각했던 게 전연하게도, 기태정은 세화의 몸을 툭 내려주었다.

    세화는 세면대를 짚고서 간신히 서 있었다. 크게 벌어졌던 허벅지 안쪽이 경련하듯 파르르 떨렸다. 그대로 주저앉다가 다칠까 봐 걱정이라도 됐는지, 기태정이 뒤에서 딱 붙어 제 몸을 지탱해주었다. 그래봤자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혹시 연락할 일 생기면 이걸로 하고.”

    기태정이 재킷 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세면대 위에 올려두었다. 기분이 좋은 듯 작게 휘파람을 불기까지 하면서.

    “제가 이걸 가지고 있으라고요?”

    “응. 연락 오면 무조건 다 받아.”

    어차피 군에서 오는 긴급한 메시지는 전용 시계를 통해 들어온다. 핸드폰으로 오는 연락이라고 해봐야 무시해도 좋을 것들이었지만, 세화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귀엽고 재밌어서 기태정은 일부러 묵직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긴급한 사안일 수도 있으니까.”

    “그, 그런데 왜 저한테 이걸….”

    “바깥은 위험하니까.”

    세화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저를 가장 위험하게 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이 남자일 거다.

    “그리고 이건… 나중에 줄 생각이었는데.”

    그가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무늬 없이 단출한 앞면의 한 귀퉁이에는 은행의 로고만 홀로그램으로 박혀있었다. 5성에 사는 주민들 몇 명의 보증을 받아야 겨우 계좌를 틀 수 있다던 그 은행이었다. 물론 세화도 풍문으로 들어보기만 했지, 실물 카드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편하게 써. 자기 좋아하는 케이크도 많이 사 먹고.”

    “이걸로요?”

    여전히 기태정의 품 안에 갇혀있어 도망칠 곳이 없었다. 거울 속에 비친 새까만 카드가 뱀 비늘처럼 위협적으로 번쩍였다.

    “남의 신용 카드 쓰면 잡혀가요.”

    “우리가 왜 남이야. 그리고 신용 카드 아니니까 편하게 써.”

    체크 카드라면 더 문제 아닌가? 장교는 한도에 제한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신용 카드도 아니고 체크 카드를, 잔고가 얼마나 있을 줄 알고 편하게 쓴단 말인가. 무엇보다 무슨 꿍꿍이로 이걸 주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꽁돈을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빚으로 달아두려는 거라면 정중히 사양하고 싶었다.

    “그래도 준장님….”

    기태정은 벌어진 세화의 입술 틈으로 카드를 물려주었다. 더는 질문도 반박도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몸짓이었다. 플라스틱보다 단단하고 묵직한 것이 입가를 찢을 듯 벌리고 세화의 치아를 거세게 두드렸다. 치솟았던 열기와 수치스러움이 잠시나마 가라앉을 정도로 차갑고 섬뜩한 감촉이었다.

    “나간 김에 집에 있는 그 거적때기들 좀 버리고 예쁜 꼬까옷도 좀 사.”

    사 오면 입게 해주긴 할 건가? 아니면서. 기태정은 손을 내려 세화의 아랫도리를 촘촘히 쓸었다. 특히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회음부를 문지르는 움직임이 적나라했다. 거기 적힌 글자를 음미라도 하듯 나릿한 손길이었다. 양각으로 새긴 것도 아니라 뭐 느껴지는 것도 없을 텐데.

    “그런데 돌아왔을 때 지금 이 상태보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져 있으면….”

    세화의 은밀한 곳을 온통 음란하게 꾸며놓은 남자가 선한 얼굴로, 거울 너머 눈을 맞춰왔다.

    “자기 씹물로 도장 다 지워질 때까지 나한테 박힐 줄 알아.”

    고리처럼 구부린 손가락이 간지럼이라도 태우듯 민망한 부근을 툭툭 두드렸다.

    “알았지?”

    세화는 눈을 깜빡였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은 남자가 물려준 카드를 입에 물고서, 볼을 붉히고 있었다. 굳은살이 박인 엄지가 그의 이름이 새겨진 부근을 파헤치듯 문질러댔다. 막힌 입으로도 으응, 하고 우는 소리가 잘도 흘러나왔다. 단단한 끈이 발기한 귀두를 세게 조여댔다. 세화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툭 떨어트렸다. 앞에 접싯물이 있다면 코라도 박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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