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45)화 (4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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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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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5

    “H1 한 통을 다 먹이셨다고요? 민간인에게요? 그 짧은 시간에요?”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하던 나 중위가 기겁하며 기태정을 돌아보았다.

    “세상에. 열이 나는 것 외에 다른 증상이 없다는 게 신기할 정돈데요….”

    군의관은 계급과 관계없이 특수한 취급을 받았다. 숫자가 워낙 적기도 했고, 허구한 날 싸우러 나가는 사람 처지에선 의료 관계자와 척져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감이 담긴 굼뜬 드레싱 때문에 당장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본인들도 그걸 잘 아는 탓에, 군의관 모장을 달고 있는 놈들은 대체로 목에 뻣뻣하게 힘을 주고 다녔다. 물론 나 중위도 예외는 아니었다.

    “혹시 고문이라도 하신 겁니까? 단순 외상 치료가 목적이었다면 그만큼이나 약을 퍼먹일 이유가 없지 싶은데요.”

    그렇지만 상대는 기태정이었다.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좆밥으로 보는 그에게 군의관이라는 특수성 같은 게 통할 리 없었다.

    기태정이 격 없이 구는 나 중위를 봐주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그가 동기이기 때문이었다. 나대포 중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설명하기 귀찮으니 남들에겐 동기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끈끈하고 우애 좋은 수식어보단 서로의 생존을 기억해주는 사이, 뭐 그 정도의 표현이 좀 더 적합하긴 했다. 이젠 실험을 자행했던 놈들마저 거의 다 죽어버려서, 그 무간지옥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이제 몇 없다. 어찌 됐건 생존자들은 다들 한 자리씩 하고 있으니 오히려 실험체였던 게 행운이지 않냐는 개소리도 종종 듣곤 했다. 멀쩡히 잘 지내다가도 과거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면 맥락 없는 분노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데, 눈 감아도 선명한 그 시절을 모두가 없는 취급 하려고 한다. 나 중위는 박 소위와 더불어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이 감각을 이해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태정의 사람이었다.

    “아무리 준장님이 백업 다 맡아주셨다지만 민간인이 대피소 테러에 동원된 건 상당한 스트레스였을 텐데, 심지어 직후에 쉬지 않고 관계까지 가지셨다니… 병이 안 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섹스는 왜 하셨어요, 왜.”

    보통 이 정도로 잔소리를 퍼부으면 입 좀 닥치라는 일갈이나 재떨이 정도는 날아와야 정상인데… 기태정은 생각에 잠긴 채, 불을 붙이지 않은 시가의 헤드를 일정한 리듬으로 툭툭 두드리기만 했다.

    “감히 준장님의 사생활을 비난하려던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준장님, 군에서 쓰는 치료제도 한계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복용하면 당연히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아니라 사람이잖습니까.”

    박 소위가 기태정 뒤에서 입만 벙긋거리며 손으로 작게 엑스 표를 그렸다. 이제 정말로 그만하라는 뜻이었다. 나 중위는 뺨을 긁적이다 결국 입을 다물었다. 미처 퍼붓지 못한 잔소리는 긴 한숨이 되어 흩어졌다.

    “…귀찮아하실 얘기, 더는 안 하겠습니다. 박 소위 말로는 이 사람이 증거 확보에 꼭 필요하다던데… 중요한 인물이라면 숨통은 트이게 해주세요. 너무 몰아붙여도 안 좋습니다. 쇼크 증세 보이지 않으면, 이대로 푹 쉬게 해주면 눈 뜰 겁니다. 아무리 비실거려도 H1 같은 건 절대 먹이지 마시고요. 유동식 먹어야 할 사람한테 스테이크 썰어줘봤자 독밖에 안 되는 거랑 똑같습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미인은 여전히 눈 밑이 어두웠다. 입술도 바짝 말라 있었다. 그래도 링거를 꽂기 전보단 안색이 훨씬 나아지긴 했다. 기력이 쇠한 상태에서 고급 치료제를 과하게 때려 부어 생긴 문제였으니, 잘 먹고 잘 자면 금방 괜찮아질 거다.

    감옥 같은 창살을 뚫고 희미한 빛무리가 창백한 몸 위로 못 박히듯 내려앉았다. 나 중위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하우스 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도무지 편히 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두꺼운 쇠 봉이 촘촘하게 십자로 박힌 커다란 창문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우울하게 했다. 붉은색과 금색으로 도배된 집기는 존재 자체로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고, 곳곳에 놓인 철제 소품과 가구에선 생활감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에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온갖 범죄가 넘실대고 있기까지 하다. 군부의 수용소와 사람을 굴리는 방식만 다를 뿐, 이곳 또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갈 때도 포트로 돌아가면 되는 건가요? 혹 문제가 될 것 같다면 차로 이동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오늘 비번이어서요.”

    “나 중위.”

    한참을 골몰하던 기태정이 드디어 결단을 내린 듯, 자리에서 성큼 일어섰다. 어찌나 손에 힘을 꾹꾹 주고 있었던지, 피우지도 않은 비싼 시가가 반으로 뚝 찢겨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지금 수액이 효과를 보이는 건가?”

    거대한 기태정의 그림자가 이세화의 몸 위를 전부 덮어버리는 바람에, 보이는 것이라곤 한데 엉킨 새카만 덩어리뿐이었다.

    “예. 열은 서서히 내려가고 있습니다. 별다른 이상 반응도 없고요.”

    이마 위의 냉각 시트가 빨간색에서 초록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정상 체온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약에 중독되지 않는다고 했어.”

    무슨 소리지? 나 중위는 눈만 껌뻑였다. 역광 때문에 그가 선 자리에선 기태정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타고난 체질이 그렇다던데. 그 덕에 운반책으로 유명해져서 김석철하고 거래 트게 된 거라고.”

    “아아, 이 사람이요? 흠… 그럴 수도 있나? 마취약에 반응 안 하는 사람은 봤어도 마약에 중독되지 않는 체질은 저도 처음 들어봅니다.”

    “비슷해. 마취약도 안 듣는다고 했으니까.”

    ‘뭐, 그렇다면….’ 하고 나 중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긴 했지만, 당장 자신의 눈앞에 세상의 모든 상식과 편견을 깨부수는 남자가 서 있었다. 나 중위는 피를 뚝뚝 흘리며 절벽에서 기어 올라오던 기태정을 떠올렸다. 그래. 죽여도 죽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마약이든 마취약이든, 뭐든 잘 안 듣는 체질이 있을 수도 있지.

    “거기에 더해서, 이세화는 맛만 보고 약을 전부 구별할 수 있어. 마약뿐 아니라, 그야말로 약이란 약은 전부 다.”

    음 이탈이 날 정도로 새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수긍해보려던 나 중위였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예? 그게 말이 됩니까?”

    “내가 직접 확인했어. 맞아.”

    박 소위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바로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최음제 종류를 전부 맞추더군요. H2도 처음 복용한 이후로는 곧장 식별하는 것 같았습니다.”“허어…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윗사람들 귀에 들어갔다면 어떻게든 군부에 묶어뒀을 대단한 인재였다. 독과 약물의 맛은 감별해내면서 조금의 내상도 없다니. 충전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감식기나 다름없지 않은가.

    “와. 김석철 멍청한 건 알고 있었는데… 진짜 모자란 새끼네요. 그런 사람을 데려다가 마약이나 말게 했다고요?”

    저였다면 결과도 불확실한 ‘추수’ 같은 프로젝트에 매달리느니, 차라리 이세화를 데려다 상부에 들이밀었을 거다. 오갈 데도 없는 처지 같으니, 이세화의 후견인을 자처하면서 요직으로 밀어주면 앞으로 떨어지는 콩고물이 쏠쏠했을 거다. 군량과 식수 감별부터 장교들의 안전 확보까지, 나 중위는 당장 이세화가 맡을 수 있는 보직을 열 개도 넘게 헤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약에 미쳐선 생각해낸 묘수가 고작 ‘추수’ 같은 역겨운 것이라니.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좀 이상해서. 이세화의 말대로라면 마약은 몰라도 최음제를 먹였을 땐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게 맞잖아.”

    “그렇… 죠? 최음제랑 마약은 다르니까. 마약과 마취제만 듣지 않는다고 했다면서요.”

    “그래. 그런데 아무런 반응도 없었어. 패치를 붙이고 새로 최음제 퍼먹이기 전까지는.”

    “그러게요? 준장님 말씀만 들으면 이 사람, 패치 없인 모든 약에 반응하지 않는 것 같이 보여요. 마약에만 중독되지 않는 게 아니라요.”

    자신이 뱉은 말을 곱씹던 나 중위가 아리송한 얼굴로 침대 위의 이세화를 한 번, 폴대에 걸린 수액 팩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에엥? 잠깐만요. 그렇다기엔 영양제는 잘 듣는 것 같은데….”

    “H1도 효과 있었어. 외상은 싹 다 나았잖아.”

    이세화는 처음부터 자신의 모순을 감추려 들지 않았다. 아니, 본인조차 자신의 몸과 말에 어떤 허점이 숨어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처음 테스트 해봤던 약이 비슷하게 음습한 종류여서, 기태정 또한 무의식중에 이 혼란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어쩌면 이세화가 약을 맛보고 구별하는 모습이 제법 강렬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네요. 마약, 마취약, 최음제는 안 듣는데… 또 치료제는 먹히는 체질이라니. 이건 꼭….”

    “자기 몸에 불리한 성분만 알아서 해독시키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

    낮게 깔린 목소리만큼이나 무거운 내용이었다.

    나 중위는 으음, 하며 콧잔등만 문질렀다. 기태정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길 꺼낸 건지 짐작이 가질 않아서, 섣불리 대꾸하기가 어려웠다. 만약 그가 세운 가설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이세화의 처지는 더더욱 고달파질 거다. 잡혀가서 무슨 독과 약을 어디까지 해독할 수 있는지 온갖 실험을 당할 바에야, 차라리 무슨 약도 먹히지 않는 체질인 게 나을 수도 있다. 후자는 고달파도 팔자라도 펼 수 있지, 전자는….

    “내가 알기로는….”

    이미 결론을 내린 듯, 기태정이 나 중위가 있는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벌건 태양 빛이 기태정이 걸치고 있는 슈트를 따라 핏물처럼 흘렀다. 뚜벅뚜벅 내딛는 걸음에 맞춰 이세화가 누운 침대 위와 기태정이 선 공간이 반으로 가르듯 벌어졌다. 분명 같은 시간대, 같은 풍경 속에 있는데 기태정이 그리는 그림만 다르게 보였다.

    “예전에 군부에서 화학 전투에 대비한답시고 크게 설쳐댄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거 국제기구에서 거하게 욕 처먹고 그만뒀잖아요. 민간인들 무작위로 잡아들여서 약 투여한다고. 그때 일 경험 삼아서 우리 끌고 왔을 때는 군사 훈련인 것처럼 위장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던 나 중위의 눈이 이내 경악으로 벌어졌다.

    “잠시만요, 준장님. 혹시….”

    “맞아. 아직은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도 기태정은, 그때 벌어졌던 실험과 이세화의 수상쩍은 체질이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세화의 체질은 어쩌다 타고난 거라곤 설명할 순 없는 인위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것도 군대에서 특히 좋아할 만한 방향으로.

    “그렇지만 이 사람이 실험 대상이었다기엔… 말씀하신 사건은 저희 바로 윗세대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나이대가 맞지 않아요.”

    “그래. 그렇지만 거기 끌려갔던 사람이 낳은 애가 저만큼 자라기는 충분한 시간이지.”

    시가 케이스와 성냥갑을 한 손으로 움켜쥐며 기태정이 침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오는 길에 그 실험 관련자들 명부를 대충 훑어봤는데… 익숙한 이름이 있더라고.”

    짜악, 뺨이라도 올려붙이는 것 같은 먹먹한 소리를 내며 성냥에 불이 붙었다. 기태정은 시가의 풋에 시뻘건 성냥 대가리를 가져다 대며 폐부를 뚫고 들어오는 먹먹한 향을 음미했다.

    “오선란이 부책임이었던데, 그 망한 실험.”

    “오선란 대장이요?”

    “그 당시에는 대령이었지.”

    뭔가 수상쩍은 낌새가 느껴지지 않냐며, 기태정이 길게 연기를 내뱉었다. 잘 엮으면 뭔가 새로운 단서가 풀릴 것도 같은데, 아직은 피부 위로 스미는 이 예감을 명확한 단어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 막연한 본능을 구체화하려면, 좀 더 알아내야 할 것들이 있다. 잘만 하면 비자금 같은 게 아니라, 더 큰 사건으로 오선란을 보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험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마지막엔 어떻게 처리됐는지, 오선란이 그 당시에 무슨 역할을 맡았었는지 전부 알아 와.”

    뿌연 연기가 가시고 드러난 어두운 눈동자가 나 중위의 왕진 가방 속, 주삿바늘로 향했다.

    “이세화의 진짜 체질도.”

    ***

    그만 잠에서 깨고 싶었다. 눈을 감고서도 뿌연 멍울 같은 잔상이 둥둥 떠다녀서, 눈꺼풀 아래로 실핏줄이 벌컥벌컥 일어서는 게 다 보여서 정신만 사나웠다. 그런데 몸이 도통 말을 듣질 않았다.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뚜렷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이 희미했다. 머릿속의 스위치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아주 잠깐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은 온통 하얬다가, 벌겋다가, 또 검게 물들어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왜 누워있는 거지, 아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렇게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보면 저항 없이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젠 정말 일어나야 한다. 세화는 어떻게든 눈을 떠보려 버둥거렸다. 아프다고 일을 째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물론 그 액수를 정하는 건 사장 마음이었다. 하우스 안에서 쓰러지더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빚을 덜 쌓는 길이었다.

    “으으….”

    남은 빚과 오늘의 사납금, 습관처럼 제 몫이 아닌 돈을 떠올리다 보니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매트리스의 가장자리가 조금 출렁였다. 마치 곁에서 세화의 몸부림을 전부 지켜보기라도 한 것처럼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낯선 기척에 놀랄 새도 없었다. 훅 뻗어온 손이 거침없이 세화의 이마를 어루만지고는,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부드러운 천 같은 걸 떼어냈다.

    애써 밀어 올린 눈꺼풀이 천근만근이라 버티기 어려웠지만, 어룽거리는 시야로 희미하게 남자의 손이 들어왔다. 커다랗다. 손가락은 길고 마디는 단단해 보인다. 손목 아래로 도드라진 힘줄마다 짙고 시원한 향이 고여있었다. 세화는 어쩐지 코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묵직하지만 싸한 어른 남자의 향이 낯설었고… 또 조금은 익숙하기도 했다.

    체온을 재려는 듯 뺨을 꾹꾹 눌러보던 손등이 떨어지는 게 아쉬워서, 세화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멀어지려는 온기를 소심하게 붙들고 어설프게 볼을 묻었다. 굵은 뼈가 툭 불거진 타인의 살갗 위로 열이 오른 볼이 뭉개지는 느낌이 좋았다. 세화가 늘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른의 손이었다.

    “이게 아주….”

    어이가 없다는 듯 헛숨을 들이키는 목소리. 세화는 자꾸만 떠오르려는 어떤 기억을 힘껏 구기고서, 마음껏 어리광을 부렸다. 이건 꿈이다. 좁아터진 더러운 숙소에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날 리도 없고, 아프다고 절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으니까.

    “…아플 때….”

    쩍쩍 갈라져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났다. 잔뜩 말라붙은 입술은 고작 그 정도 움직임으로도 쩍쩍 갈라져 금세 피를 보였다. 아가미가 뜯긴 물고기처럼 헐떡이며, 세화는 손의 주인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아플 때, 누가 있어 준 거… 처음이라서요….”

    세화는 낯선 이에게로 온몸을 기울였다. 어차피 깨어나면 사라질 꿈이라는 거 안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기댈 수 있게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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