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42)화 (42/144)
  • #042

    세화는 퉁퉁 부은 양손을 축 늘어뜨린 채로 기태정이 퍼붓는 입맞춤을 묵묵히 받아냈다. 혓바닥의 오톨도톨한 부분이 입천장을 문지르고 갈 때마다 선득한 소름이 등줄기를 내달렸다. 어찌나 욕심껏 혀를 놀려대는지 목구멍 안으로 꾸역꾸역 삼키는 신음마저 모조리 빼앗기는 것만 같았다.

    “팔 둘러.”

    입술을 맞댄 채로 기태정이 명령했다. 매달려 안기라는 걸 보니 장소를 옮길 생각인 것 같았다. 세화는 팔뚝을 들어 뺨을 적신 눈물 닦아내고, 어떻게든 무거운 손을 들어보려 애썼다. 남자의 목을 감든, 어깨를 짚든 해야 한다. 그래야 그가 움직이기 편할 거다. 그러라고 저더러 안기라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한 박자 늦게 찾아온 무시무시한 동통 때문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웠다.

    “하여튼 손만 많이 가서….”

    이도 저도 못 하고서 헐떡이고만 있자, 기태정이 낮게 뇌까리며 세화의 엉덩이를 단단히 받쳐 안았다. 성인 남자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선 힘들어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마른 편이긴 했어도, 여태 어디 가서 작다는 얘긴 들어본 적 없는데… 기태정은 세화가 무슨, 조그맣고 비루먹은 짐승이라도 되는 듯 너무도 쉽게 다루었다.

    세화를 바스러뜨릴 듯 세게 안은 채, 기태정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몸이 위아래로 흔들릴 때마다 바투 맞닿은 성기가 은근히 비벼졌다. 이 와중에도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반응이 올라오는 게 기가 막혔다. 고작 몇 번 나누었던 섹스가 벌써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으니까 오히려 다행인 건가….

    “으, 음….”

    세화는 축 늘어진 채 기태정이 흔드는 대로 흔들렸다. 귀두 끝이 벌써 말갛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에 이마라도 기댈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편해지겠지만, 아까부터 성이 난 입술을 빨아대는 통에 그럴 수도 없었다. 기태정은 세화와의 키스에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우지끈, 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순식간에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물에 잠기기라도 하듯 기태정과 침대 위로 함께 쓰러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무실의 물침대처럼 출렁거리는 매트리스는 아니었다.

    몸 아래 깔린 손이 조금 아릿해 조금씩 꾸물거려보는데, 일순 마주 보고 누운 기태정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생각인지 읽을 수 없는 어둡고 먹먹한 시선이 정면으로 쏟아졌다. 세화는 서둘러 눈을 내리깔았다. 부디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길 바라며, 천천히 뒤로 몸을 물렸다.

    뭘 하려는 건지 지켜보겠다는 듯 방관하고 있던 기태정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울컥 일어섰다. 이리저리 꿈틀거리는 세화의 꼴이 거슬렸던 모양이다. 단숨에 허리가 덥석 잡힌 채로 몸이 훅 위로 치솟았다. 애쓴 보람도 없이, 기태정의 위로 뚜껑처럼 얹어진 채였다.

    그는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로, 세화를 올려다보았다. 한 소리 들을까 봐 허겁지겁 허리를 바로 세우자, 기태정이 무슨 말을 할 듯 입을 달싹였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이제 폭언이 쏟아질 타이밍이었다. 그게 아니면 너저분한 희롱이라도. 뭐든 견뎌낼 생각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만 했다.

    “…….”

    잠시 뭔가를 고민하던 기태정은 이내 하, 하고 짧게 한숨을 토해내곤 세화의 몸통을 붙들고 힘을 줬다. 그의 복부 중간쯤에 걸터앉고 있던 몸이 아래로 쭉 밀려났다. 슬금슬금 흐르기 시작한 애액이 쩍쩍 갈라진 근육을 따라 희미한 자국을 남겼다. 총알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단단한 몸 위로, 부드러운 엉덩이 살이 잔뜩 흐무러졌다.

    기태정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뒤집던 세화는 문득,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약도 안 먹었고 패치도 안 붙였는데… 뒤가 왜 젖은 거지? 내벽을 따라 끈적끈적하게 흐르고 있는 이건… 분명 최음제를 먹었을 때나 나오던 애액이 맞는 것 같았다.

    “…아!”

    그러나 허벅지를 세게 움켜쥐는 손길에 희미하게 피어오르던 생각은 이내 툭 끊어지고 말았다. 엉덩이가 위로 쭉 잡아당겨졌다. 주름을 다 펴버릴 기세로 둔부를 잡아 벌리는 통에 뻐끔거리는 구멍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갈라진 엉덩이골에 코끝이 닿고, 습윤한 숨이 민망한 곳에 닿았다.

    기태정은 동그란 음낭을 실컷 물고 둥글리다, 여전히 색이 옅은 회음을 크게 빨아당겼다. 쯔읏, 하고 얕은 살갗이 먹혀들어 가는 마찰음이 질척질척 울렸다. 세화는 팔꿈치를 시트에 괸 채로 겨우겨우 몸을 지탱했다. 깊은 곳에서부터 츄웁, 하고 물기를 빨아들이는 소리에 귓불이 터질 듯 붉게 물들었다. 부끄럽고… 또 피곤했다. 그냥… 오늘 겪었던 모든 일을 지우고 싶었다. 애써 괜찮은 척 굴기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남자가 세화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슬쩍 쳐올렸다. 하긴. 그런 걸 고려해줄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식으로 저를 꺾어 누르지도 않았을 거다….

    세화는 눈치껏 눈앞에 벌컥 일어선 거대한 좆을 붙들었다. 어차피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으니 쥐고 물 수 있을 정도로만 잡고, 어떻게든 자세를 잡으려 바닥을 짚어보았다. 손목이 지끈거리다 못해 날카로운 칼로 썰리는 것만 같았지만, 어차피 기태정에겐 고려할 대상이 아닐 테니 앓는 소리는 속으로 삼켰다.

    “으…, 읏….”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렸는데도, 간신히 귀두만 삼킬 수 있었다. 벌린 입매가 따끔거리는 걸 보니 조금 찢어진 것 같기도 했다.

    “흐읍….”

    혀를 굴려 선단을 문지르는 것과 동시에 기태정이 구멍 안으로 양쪽 검지를 푹 찔러넣었다. 문을 열 듯 뒤를 잡아 벌리고, 원을 그리듯 혀를 움직이자 얄팍한 아랫배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샅을 타고 올라온 뱀 같은 혀가 안을 푹 쑤시더니, 자지라도 되는 것처럼 빠르게 출납을 반복했다.

    반면 귀두를 빠는 세화의 혀 놀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곁눈질로 확인해보니 이만큼이나 받아들였는데도 기둥이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나름대로 조심하려고 했지만 크기가 크기인지라 어쩔 수 없이 선단에 이가 슬쩍 닿기도 했다.

    지적을 받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서툰 펠라인데도, 입에 머금고 있는 좆은 계속해서 부풀기만 했다. 그냥 어디에든 쑤셔 넣고 있으면 그만인 걸까. 저라면 서지도 않을 것 같은 어색한 행위였는데도 기태정의 자지는 완전히 발기해, 이제 선액까지 흘리고 있었다.

    “…으읏!”

    허튼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기태정이 골반을 콱 움켜쥐었다. 팡, 하고 아래에서 거품 터지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뒤를 쑤시던 손과 혀가 전부 빠져나갔다. “흣…!”

    들쑤셔진 구멍이 얼얼하다고 느낄 틈도 없었다. 가만히 있기만 하면 기태정이 알아서, 멋대로 몸을 주물럭거리다 자세를 바꿔주었다. 세화는 어느새 매트리스에 등을 맞대고서, 쓰러지듯 흐트러져있었다.

    저절로 벌어진 다리 사이로 기태정이 자리를 잡고, 곧장 구멍에 자지 끝을 문질러댔다. 곧 박히겠구나, 숨을 잘게 끊으며 이어질 격통에 대비하는데… 이상하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 갸름하게 실눈을 뜨자, 기태정의 숙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세화의 엉망이 된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태정은 띠라도 두른 것처럼 짙은 분홍빛으로 부푼 살갗을 손가락으로 몇 번 문지르다…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두 번째였다. 무슨 말을 할 것처럼 굴어놓고선 입매를 굳히는 게.

    “아…!”

    퍽, 소리와 함께 귀두가 구멍 끝에 걸렸다. 또 무슨 짓을 하려나 싶어서 졸아붙어 있었는데, 그런 생각이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의 격통이 엄습했다. 깎은 나무처럼 단단한 성기가 부드러운 내벽 안을 후벼파며 자꾸만 안으로 전진했다.

    “후, 이게….”

    자지를 죄 녹여 먹는 감각에 기태정이 나른하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는 아직 입가에 남아있는 달짝지근한 애액을 빨아먹고, 다시 몸을 숙였다. 진득하게 입을 맞추며 허리를 쳐올리자 우웅, 하고 뭉그러진 숨소리가 입 안에서 흩어졌다. 야릇하기는커녕 색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앓는 소리였는데 그게 또 존나게 꼴렸다.

    “갈수록 조이는 게 아주….”

    안에 꿀이라도 발랐는지, 내벽 전체가 좆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았다. 쫀득하게 엉기는 감촉을 즐기며 잘게 치받았다. 이세화도 조금은 행위에 익숙해졌는지, 이전보다는 확실히 깊게 삽입할 수 있었다.

    손을 내려 마른 가슴을 훑다, 마찰로 부풀기 시작한 유실을 둥글리자 육벽 안에 잔뜩 고여있던 샘이 툭 터지며 물길을 내주었다. 기태정은 헉헉 앓느라 빼꼼 내밀고 있는 이세화의 혀를 입술로만 촉촉이 감싸주었다. 쭉쭉 빨다가, 혀를 단단히 얽고서 흐르는 타액을 전부 받아마시자, 윗입과 아랫입 모두 엉망으로 젖어서 쿨쩍쿨쩍 음탕한 소리를 냈다.

    여태 박았던 것 중 가장 깊이 찔러넣고 있는데도 자꾸만 허기가 졌다. 크게 원을 그리듯 허리를 돌리자, 이세화의 안이 꽉 오므라들었다. 긴가민가해서 그 부근을 긁듯이 후벼파주자, 안 그래도 파들파들 떨리던 고개가 이젠 뒤로 퍽 꺾였다. 도드라진 결후가 크게 울렁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태정은, 작정이라도 한 듯 이세화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거의 수평이 되도록 마른 다리를 크게 벌리고서 방아를 찧듯 좆을 세게 꽂아 넣었다.

    “하, 씨발, 뭐 이런….”

    분칠이라도 한 것처럼 새하얀 몸뚱이가 성감의 여운에 젖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꾸물거리며 자지에 척척 달라붙는 야들야들한 살결에 욕이 절로 터져 나왔다. 기태정은 좆만큼이나 거대한 음낭을 철썩이며 이세화의 아랫도리를 후려쳤다.

    “아읏…!”

    견디다 못해 신음을 내지르려던 이세화가 피딱지가 앉은 입술을 감쳐물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제 숨을 틀어막았는지 마른 가슴이 크게 들썩일 정도였다. 아직 울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가 말갛게 반들거리고 있었다. 기태정은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길을 뚫어버릴 생각으로 퍽퍽 좆을 욱여넣었다.

    몸을 굽히자, 무게에 눌려 더욱 깊이 삽입하게 되는 바람에 이세화가 끙끙 앓았다. 붓으로 공들여 그린 듯 부드럽고 기다란 눈매가, 꽉 다물린 채 잘게 떨리고 있었다. 저긴 자지로 치지도 않았는데 벌겋게 붉어져선 난리였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이세화의 성감에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일부러 혼자서만 즐긴 건 아니었다. 경험이 없지는 않아서 어찌어찌 뒤로 물 줄은 알았고,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박아대다 보면 혼자서 어딜 쿡 눌렸는지, 야해 빠진 게 잘도 싸댔다.

    그래서 삽입의 패턴은 다소 단순했다. 대신 기태정은 이세화에게 외설적인 말을 잔뜩 쏟아내는 것을 즐겼다. 느끼다 못해 혼절하게 만들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기태정은 이세화가 몸만 느껴서 애가 닳아 매달리는 것보다 비교적 또렷한 정신으로 제 말에 휘둘리는 게 마음에 들었다. 수분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이사님, 하고 근본 없는 호칭으로 저를 불러대거나.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냐며 흐려진 낯으로 어물어물 뒤를 돌아볼 때면, 당장 좆을 뽑아내 그 어룽어룽한 눈알에 대고서 잔뜩 싸지르고 싶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삽입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여태 그와 한 모든 섹스를 통틀어 가장 괜찮은 것 같았다. 제 눈치를 보는지 이세화는 한계까지 좆을 받아먹으려 용을 쓰는 중이었는데, 그 움직임이 가소롭기도 했지만 기껍기도 했다. 자기 좀 봐달라고 풀이 죽어있는 꼴은, 그래, 솔직히 제법 귀여웠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자꾸만 거슬리는 게 있었다.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고, 기분 나쁜 경고가 계속 머릿속을 갉작였다. 뭘까, 이 위화감은. 기태정은 생각에 잠긴 채 이세화의 빗장뼈를 간질였다. 뻣뻣하게 일어선 젖꼭지를 눕히듯 문지르자 벌게진 얼굴로 흣, 숨을 참는다. 아래를 세게 짓찧으며, 너덜너덜해진 이세화의 입술을 집어삼키려던 기태정은… 그제야, 불현듯, 이 씹스러운 기분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까 전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바로 이거였다.

    “…이세화.”

    역린과도 같은 이름을 툭 부르자 잔뜩 구겨져 있던 이세화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옴짝달싹 못 한 채로, 간신히 속눈썹만 팔락거렸다. 눈물을 머금은 미인의 얼굴은 이제 제법 익숙해진 것 같은데,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런데….

    “너 왜 아무 소리도 안 내.”

    쑤셔주는 대로 달게 울며 애원하던 이세화가, 지금은 꿀이라도 바른 것처럼 입을 딱 다물고서 아무런 소리도 흘리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세게 꺾이는 바람에 퉁퉁 부어오른 손목을 하고서도, 피가 맺히도록 입술을 깨물지언정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으려 미련하게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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