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28)화 (28/144)
  • #028

    “…너 울어?”

    기태정은 조금 당황했다. 이세화가 제 앞에서 몇 번 울곤 했지만…, 아니 섹스를 포함해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언제나 울기는 했지만. 그래도 쉽게 그치는 편이었다. 그게 신기하고 재밌기도 해서 일부러 섹스할 때 몰아붙이는 것도 있었다. 펑펑 눈물 쏟다가도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괜찮은 척하는 얼굴이 꼴리고 예뻤다. 빨간 입술이 하얀 윗니에 눌려 연한 분홍빛이 되었다가, 통 튕기어 나오는 순간이 특히 그랬다.

    아마 습관일 터였다. 기댈 사람도 없었을 거고, 끙끙 앓아 봤자 자기 손해였을 테니까. 잘은 기억나지 않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 기태정 또한 그런 감정을 느껴 보긴 했기에 이것만큼은 충분히 이해하는 바였다.

    그러니 이세화는 웃어야 했다. 퉁퉁 부은 눈과 볼을 하고서, 눈물은 뚝 그치고, 이제 괜찮다고 웃으면서 케이크 상자를 열어야 했다. 그간 몰래 훔쳐보았던 CCTV 속 모습처럼.

    “왜 울어, 너.”

    “아, 안 울게요, 그냥…, 이건 그냥….”

    이세화는 가운 소매로 얼굴을 덮어 버렸다. 상자를 다 구길 것 같아서 잠시 빼앗았더니 더 서럽게 울었다.

    “야. 안 뺏어.”

    “…네.”

    “너 그러다 망가뜨릴까 봐 잠깐 치워둔 거야.”

    “네, 알아…, 흑….”

    눈물에 콧물에…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진정했다는 듯 한숨을 쉬며 팔을 내렸다가, 마약 가루 위에 떡하니 놓인 케이크 상자를 보고 또 글썽거렸다.

    “누가 보면 서방이라도 죽은 줄 알겠네.”

    허리를 덥석 쥐고 한쪽 허벅지 위에 앉히자, 이세화가 놀라 떨었다.

    “이사님….”

    “이야, 너 마른 줄 알았는데 은근히 무겁다?”

    “그, 그거야… 이렇게 있으니까….”

    저도 남자고, 키도 그렇게 작지 않고… 이세화가 더듬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가운을 묶은 매듭이 허술하게 풀어지는 것도 모르고서. 그러다 얼굴에 꽂히는 기태정의 시선이 아주 가깝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우물쭈물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몰골이 어떨지 뒤늦게 자각이 든 모양이었다.

    “어이구, 이제 뚝 그쳤어? 안아주니까 좀 괜찮아져?”

    “…그러지 마세요….”

    과장되게 놀리자 이세화가 뺨을 붉혔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지 싶었다. 정상위로 한 적도 있었지만, 그땐 목이나 어깨나 가슴을 씹어 놓느라 얼굴을 바라볼 새가 없었다. 부챗살처럼 펼쳐진 기다란 속눈썹 끄트머리엔 아직도 눈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핥아 볼까. 그러고 보니 전에 울 때 뺨이라도 빨아 볼 생각을 못 했다. 땀에서도 단내가 나는데 눈물에선 무슨 맛이 날지 궁금했다.

    “…아, 이사님? 갑자, 기….”

    벌어진 가운을 활짝 열어젖히며 하얗고 부드러운 살을 움켜쥐자, 이세화가 다급히 몸을 웅크렸다. 갑작스러운 성적인 접촉에 놀라야 하는 건지, 엉망진창인 얼굴을 가까이서 보이게 된 것을 놀라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

    판판하고 마른 가슴을 움켜쥐다, 손가락 사이로 젖꼭지를 끼워 넣고 돌리자 이세화의 숨이 단박에 거칠어졌다.

    “저거, 장부. 이제 내 거 아니야?

    “이, 사님….”

    기태정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바람에 벌어진 다리를 수습하지도 못하고서 이세화가 헐떡거렸다.

    “자기 빚 내가 다 갚아 줬잖아. 그러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채권도 나한테 넘어온 거지.”

    ‘엄밀히 따진다’는 말은 여기서 쓰기엔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었다. 애당초 그것은 내기의 일환이었고, 기태정에게 음란한 희롱을 당하는 것으로 등가 교환이 성사된 거래였다. 이세화의 남은 빚을 갚아 줬다고 해서 기태정이 새로운 채권자가 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렇지만 기태정은 뻔뻔하게 주장했다. 이제 저 장부는, 아마도 이세화의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삶이 녹아 있을 그 기록은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아까 얼핏 듣기로는 사장이 삼십 몇 억 내놓으라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37억 8천이요….”

    힘없이 중얼거리곤, 이세화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반사적으로 흩트리던 신음도 죽이고서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왜 그렇게 봐?”

    “네?”

    “나는 못 갚아 줘. 공직자는 원래 가난하거든.”

    “무슨…!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이세화가 기태정의 어깨를 짚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봤자 힘이라곤 하나도 없어서, 기태정의 손장난을 돕기 위해 얌전히 팔을 얹은 것처럼 보일 뿐이었지만.

    “저는, 그냥… 부당하다고… 그래서 갚지 않을 생각이라고만… 이사님한테 기댈 생각은, 조금도….”

    그건 진심일 거다. 하지만 손병규가 돈 앞에서 순순히 물러설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을 테니…. 이세화 성격상 저더러 또 갚아 달라고는 못 할 게 뻔했고, 그래도 빌려 달라는 말 정도는 해 볼까 고민하던 중이었을 거다. 아직 김석철이라는 좋은 핑계가 남아 있었고, 지금 이상으로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며 무모한 패나 내던졌겠지.

    기태정은 도톰하게 일어선 살구색 유두를 꼬집듯 비틀고, 짓이기듯 비볐다. 견디기 어려운지 이세화의 고개가 푹푹 꺾였다. 땀으로 푹 젖은 정수리에서 단내가 훅 올라왔다. 따뜻하게 끓인, 설탕 친 우유 향이.

    “그래, 그 돈 안 갚아도 돼.”

    “…네?”

    “여기 법대로라면 채권이 내 손으로 넘어온 이상 타인은 더는 딴죽 걸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손병규한테 2억 주고 산 거잖아, 저 장부.”

    “…….”

    “난 자기 빚 대신 다 갚아 줬고, 대가로 받기로 한 게 있지.”

    “…이사님.”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분수 싸 줄지나 고민하고 있어.”

    하얀 볼기를 움켜쥔 기태정의 손이 무도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떡 반죽이라도 하듯 주물럭거리다, 양쪽으로 크게 벌리고, 그러다 목덜미에 코를 묻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는 행동만 봐선 이세화의 몸을 내내 그리워했던 사람처럼 보였다.

    “장부는 그때까지만 가지고 있다가, 태워 줄 테니까.”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인 거친 손가락이 젖은 구멍 부근을 은근히 더듬었다. 겉으로 보기엔 길고 매끈해 보이는데 의외로 관절도 툭 불거져 있고, 가늘지도 않았다. 아주 오래 훈련을 받은 사람의 투박한 손이었다. 여러모로 버거운 감각이 밀려와서, 이세화는 모자란 숨을 채우느라 마른 가슴을 할딱거렸다.

    “또 우네, 이거.”

    “우는 거, 아니라….”

    “야, 울어서 눈 부은 건 약도 안 들어.”

    “그게, 으, 그러려던 게…, 죄송….”

    “뚝 안 그쳐?”

    “흐, 흐읏…!”

    구멍을 푹푹 쑤시며 다그치는데도 이세화는 기태정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선, 서럽게 눈물만 흘렸다. 무섭고 서러운 울음 같지는 않았다. 기태정은 이세화가 그럴 때 짓는 표정과 흘리는 소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지금 이세화의 이 얼굴은,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기태정에게 겁을 먹은 것도, 자기 처지가 서글퍼서 우는 것도 아니라면.

    “내가 자리 비운 동안 구멍 잘 쑤셔 놓고 있으라고 했지? 오자마자 박을 수 있게.”

    “아, 이사, 님…!”

    “이렇게 좁아서 언제 내 자지 다 받아먹을래?”

    “하, 으응…!”

    뜨끈뜨끈한 귓바퀴와 귓불을 입에 넣고 굴리며, 이세화의 가랑이를 넓게 벌렸다. 가뜩이나 길도 덜 났는데 다리가 조금밖에 안 벌어지니 불편했다.

    “이, 사님, 이거….”

    한쪽 허벅지가 아니라 양쪽 허벅지 위로 걸터앉을 수 있도록 자세를 다시 잡아 주자, 이세화는 부끄럽고 불안한 듯 자꾸만 몸을 뒤척였다.

    “봐, 이만큼이나 다리 벌리고 있는데도 구멍은 자꾸 다물리잖아. 아다도 아니면서 자기 구멍은 왜 이 모양이야? 응?”

    “이사님은 대체, 아, 응… 왜 그러시는…, 왜 이럴 때 꼭….”

    이세화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선 말을 더듬거렸다. 기태정이 이세화를 본 이래 가장 못난이 같은 꼴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옷을 걸치고서, 울긋불긋한 태닝 스프레이를 바르고 있을 때도 이렇게 못생기진 않았는데.

    “왜? 감동이라도 했어?”

    “네? 제, 제가 언제…!”

    가볍게 혀를 차며 놀리듯 묻자, 이세화의 낯이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붉다 못해 아주 펑 터질 것 같았다.

    “이제 안 우네.”

    깨문 코끝이 축축했다. 내친김에 부은 볼도 빨아 봤다. 입술로 머금기만 했는데도 아픈지, 이세화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사흘에 피죽도 못 얻어먹은 개새끼처럼.

    “그럼 케이크 먹을래?”

    “…네.”

    이세화가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케이크에, 기태정의 수상한 위로에 정신이 빠져서는 최음제를 먹지 않고도, 빨아 주지 않아도 애액으로 젖어 드는 제 뒷구멍의 상태는 의심도 못 한 채로.

    “그래. 자기 생각해서 일부러 사 온 거니까 위아래로 먹는 거 다 보여 줘야 해?”

    기태정의 속삭임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세화가 정확히 이해하게 된 건 조금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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