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섹스는 그렇게 끝이었지만 씻고 나온 이후에도 뒤에 연고를 발라 준다는 명목으로 한참을 시달려야 했다. 다음에는 두 손으로 직접 엉덩이 잡아 벌리고서, 안에 쌌던 정액 전부 내보내는 거 보여 달라는 요구에 세화는 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눈가가 벌겋게 되어선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자, 기태정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구멍 안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사람이 대체… 왜 이렇게 저질스러운지….
무엇보다 세화를 두렵게 하는 건, 언젠간 기태정이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될 것 같다는 거였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섹스만은 피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한 번으로 끝나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국은 그가 바라는 대로 몸뚱일 다 내어 주다 못해, 박을 거면 곱게 박아 달라는 애원이나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 기태정의 음탕 난잡한 말들이 아무렇지 않아지는 날이 올까 봐 무서웠다. 알아서 허리를 흔들고 구멍을 벌리며 그가 하던 말을 앵무새처럼 읊게 되면 어쩌지, 무서웠다.
‘나 없는 동안에도 이렇게 잘 풀어 주고 있어. 얼굴 보자마자 박아 줄 테니까.’
세화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서, 아니 무슨 생각을 하든 관심도 없을 남자는 다 됐다며 엉덩이를 두드렸다. 여린 살은 기태정의 몸과 손에 하도 얻어맞아 화투짝처럼 시뻘겋게 물들어 버린 채였다.
‘한 번이라고… 하셨잖아요, 섹스는….’
‘그랬지. 그랬는데 네가 먼저 좋다고 구멍 벌려 줬잖아.’
‘제가 언제…!’
‘아, 싫으면 위로 올라오라니까? 분수라도 싸고서 끝내. 그럼 되잖아.’
계속되는 꼬투리 잡기에 지친 세화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대체 그놈의 분수가 뭐길래 자꾸 싸 보라는 타령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왜. 못 할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보기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런 행위에 관심도 없고 의지도 없었건만, 기태정은 충분히 쌀 수 있다며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세화는 말을 말자는 듯 고개를 돌렸다. 제가 할 수 있는 소심하고 유일한 반항이었다.
‘참. 나 없는 동안은 이거 감고서 약 열심히 먹고 있어.’
‘…약이요?’
‘응. 엉덩이 들어.’
기태정은 언제 가져왔는지 첫날 붙였던 패치를 몸에 둘둘 감아 주었다. 다만 이번엔 목이 아니라, 양쪽 허벅지였다. 정확히는 엉덩이와 허벅지가 이어지는 바로 그 부근이었다. 스트리퍼들이 속옷이나 다름없는 핫팬츠를 입고 지나갈 때마다 다찌들이 저거 엉밑살 좀 보라고 손가락질하던 그 부위.
‘아…!’
무릎이 거의 가슴에 닿도록 하체를 들어 올리는 바람에 헐벗은 하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세화는 축 늘어져 덜렁거리는 성기를 가려 보려고 했지만, 기태정이 손등을 세게 내리치는 통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혹시 꼴리라고 그러는 거야? 그럼 계속하고. 이거 다 두르고 박아 줄 테니까.’
갈 곳 잃은 손을 가슴 위에 잽싸게 올려 두자 기태정이 픽 웃었다.
‘아무 짓도 안 해. 나도 가 봐야 하거든.’
그가 핀잔을 주며 패치를 감는 데 집중했다.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세화는 기태정이 하는 말은, 특히 섹스와 관련된 주제로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했다.
‘어때? 불편해?’
‘조금요….’
사실 많이 불편했다. 일부러인지 다소 타이트하게 패치를 옥죄는 통에 살집이 봉긋하게 밀려 올라온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어나 봐.’
엉거주춤 무릎만 일으키자, 역시나 살이 조금 비집고 나왔다. 다른 부위보단 살이 붙었다곤 해도 원체 마른 체형인지라, 있는 살 없는 살 억지로 쥐어짠 것처럼 보였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고.
기태정이 무슨 그림을 염두에 둔 건진 모르지만, 세화가 보기엔 그냥 흉했다. 꼴리는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기태정은 무척 마음에 든다는 듯 휘파람까지 불었다.
‘이사님, 조금만 더 아래에 해 주시면….’
‘걷는 덴 지장 없잖아?’
‘그래도….’
‘다른 새끼 앞에서 옷 벗을 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엔 좋으니까 됐어.’
기태정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패치를 갈무리했다. 세화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그래서 도로 툭 드러누워서는, 콩벌레처럼 몸을 둘둘 말았다. 차라리 목줄처럼 차고 있는 게 훨씬 나았다. 몸통을 잇는 세로 선이 싹둑 잘린 가터벨트라도 차고 있는 것 같은 이 꼴은, 기태정의 명백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져서 더 민망했다.
‘자기야.’
그렇다고 부름에 감히 대답을 안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래도 기분이 조금 상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미약하나마 티를 내고 싶었다.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은 아니라고, 소심하게 반항하고 싶었다. 그저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답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악!’
기태정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발목이 붙들린 채 몸이 아래로 죽 당겨졌다. 커다란 손이 다리를 X자로 교차시키고는, 가슴에 딱 붙을 정도로 하반신을 완전히 접어 버렸다. 억지로 들린 허리와 세게 짓눌린 발목이 욱신거렸다.
‘찾아보니까 섹스 끝나고서 이렇게 있는 게 좋다더라.’
‘이사님, 아, 아파요….’
‘그래야 빨리 아이 가질 수 있대.’
‘자, 잘못 했…, 너무 아파서, 그랬어요, 허리 아파서….’
일부러 말을 씹은 건 아니라고 변명했지만, 기태정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다행스럽게도 최음제 같은 건 아니고, 이전에도 기태정이 몇 번 먹인 적 있던 치료제였다.
‘저번에 먹은 그거랑 똑같아. 몸에 좋은 거. 내상에 효과 있고, 해독에도 제법 잘 들어.’
빨리 먹으라며 기태정이 손을 휘휘 흔들었다. 세화는 입을 벌리고, 어떻게든 목을 쭉 빼려 애쓰다 겨우 약을 받아먹었다. 물도 없이 꿀꺽 삼키는 통에, 애매하게 식도에 걸려 있는 느낌이었다.
‘네 몸 상태가 정확히 어떤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간 몸에 안 좋은 거 존나게 처먹고 다녔잖아.’
여전히 아프게 발목을 움켜쥐고서, 기태정이 뜻 모를 소리를 했다.
‘앞으로 마약은 주사기에나 처넣고, 너는 앞으로 약 같은 건 입에 댈 생각도 하지 말고 있어. 알았어?’
‘그런데… 그럼 저는….’
‘말대꾸하지, 또.’
‘악, 그런 게, 아… 아니라, 아파, 아파요, 이사님!’
이 패치가 없어야 중독되지 않은 채 약을 맛보고, 정확히 구별하고, 제조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는 저의 쓸모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기태정은 단호한 얼굴로 명령했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패치 잘 동여매고서, 보내 주는 거나 잘 처먹고 있으라고.
기태정은…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아프게 하면서. 무섭게 굴면서. 그런데 다른 누구도 세화에게 건네준 적 없던 것들을 자꾸만 안겨 주었다.
“…언제 오는 거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세화는 화들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두리번거리면서, 실린더를 매만졌다. 가운 아래 헐벗은 몸에는 그가 둘러 준 패치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고, 발목을 시뻘겋게 물들였던 손자국은 푸르스름한 멍으로만 남았다.
남는 시간 내내 약 담는 연습만 했더니,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검사해 줄 사람은 보이질 않으니, 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내가 사장인데 누굴 막아!”
“그게 아니라, 안에서 지금 약을 제조 중이라….”
“미쳤냐? 내가 손님 물건에 손대게?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왔다잖아!”
괜히 레스트 부분을 밀었다 당기며 멍하니 있던 세화는 저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 저기 있네. 야, 삼월아!”
사장이 손을 휘휘 흔들며 웃었다. 드디어 소원 성취했는지 금을 박아 넣은 윗니가 환히 빛났다. 언젠가 꼭 진짜 금니 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더니….
“날 한번 잡아서 저것들 싹 조져야지, 어디 사장한테….”
지키고 서 있던 남자들을 툭툭 쳐 내고선 꾸역꾸역 안으로 밀고 들어온 사장이, 세화를 보고서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와…. 그나저나 너 삼월이 맞냐? 진작 이렇게 좀 꾸미고 다니지.”
뱀 같은 시선이 슬쩍 벌어진 가운 속을 비집었다.
“하긴. 기 이사가 네 빚 다 갚아 줬는데. 이렇게라도 충성이라도 해야지.”
더러운 상상 속에선 이미 안을 들쑤시고 있는지, 사장의 손가락만 한 좆이 뾰족하게 부푸는 게 보였다. 세화는 역겨움에 시선을 피했다. 그래, 저런 꼴이나 보느니 기태정에게 시달리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한 제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인수인계로 바쁘긴 하겠지만 내가 계약 문제로다가 너한테 확인 좀 할 게 있어서.”
사장은 두툼한 장부를 펄럭이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바로 앞 테이블 위엔 약과 주사기가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사장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시선으로 물건들을 흘끔 살폈다.
“계약이요? 무슨 계약이요?”
“너랑 쓴 근로 계약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