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22)화 (22/144)
  • #022

    하우스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근사한 도시락이라거나. 싱싱한 과일을 비롯한 각종 간식이라거나…. 특히 처음으로 먹어 본 생크림 케이크는 너무 맛있어서 세화는 새우잠을 자는 와중에도 꿈까지 꿨을 정도였다.

    크림이면 크림이지, 앞에 생이라는 수식어는 굳이 왜 붙이는 건가 싶었는데, 한 입 먹자마자 바로 깨달았다. 말 그대로 생生이었다.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은 생생한 맛이었다. 혀끝에 닿자마자 녹아 없어지는 부드럽고 촉촉함이 신기해서,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포크만 쪽쪽 빨았다. 어찌나 맛있는지 눈물까지 핑 돌 정도였다.

    기태정에게도 보고가 들어갔는지, 이후론 달콤한 후식도 꼬박꼬박 배달되었다. 세화는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는 낯을 하고선 오늘 분의 케이크를 떠먹었다. 언젠가 하우스를 나가서 살게 되는 날이 오면… 생일에 꼭 자신만을 위한 케이크를 사 먹어 보겠다고 다짐하면서. 사람들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케이크 같은 걸 먹으면서 축하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진짜 멍청하네, 나.”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 덜덜 떨었던 것도 잊은 채 세화는 희망에 부풀었다. 기태정에게 실컷 얻어맞고, 키스조차 베풀어 주지 않던 거친 섹스를 받아 내며 엉엉 울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아프게 했던 남자가 준 음식이 너무 귀하고 황홀해서, 이런 걸 선물해 준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던 터라… 입속의 단맛에 얼렁뚱땅 녹아내려선, 지금 이런 상황도 그리 나쁘진 않지 않냐며 스스로를 설득하려 들었다.

    어차피 제 몫으로 주어진 건 남루하고 쓰레기 같은 것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뭘 해도 재수가 없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밑바닥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태정은 저를 때리고서 케이크라도 줬지, 다른 사람들은 쌀 한 톨도 안 주면서 발로 걷어차기만 했다. 그렇다면. 어차피 그런 삶이라면, 차라리. 지금 이런 생활이 어쩌면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인 것 아닐까.

    게다가 오늘은 색칠 놀이 공책 같은 것도 받았다. 기태정은 일부러 완구 같은 걸 보내서 세화를 놀리고 싶었던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이번엔 그의 연패였다. 세화는 원래 이런 유치한 것들을 좋아했다. 한 번도 마음 놓고 써 본 적이 없어서, 아니 가져 본 일조차 없어서 솔직히 소중하기까지 했다.

    이번엔 밥값으로 얼마나 빚이 달릴까, 그런 걱정 없이 맛있는 걸 먹고 노트 속 장난감 병정과 공룡에게 스티커를 붙이며 자투리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불현듯 초조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장난감이 도착했다.

    허여멀겋던 피부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제가 보기에도 근래 들어 본 모습 중 가장 괜찮은 몰골이었다. 물론 잠시 쉴 때를 제외하곤 계속 주사기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야 일하는 축에도 못 꼈다.

    단 하나의 불만이 있다면 저놈의 물침대 정도일까? 다른 방에 멀쩡한 침대가 있다는 걸 아는데도, 기태정은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가 붙여 준 감시인들은 준장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다른 방에는 발도 못 들이게 했다.

    그래서 어쩔 도리 없이 부드럽게 출렁이는 매트리스에 몸을 뉘고 있으면, 의식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와 보냈던 시간이 절로 떠올랐다. 특히 합쳐서 몇억은 족히 넘을 약봉지를 밖에 내팽개친 채로 정신없이 붙어먹었던 마지막 섹스가.

    ‘이사, 님, 그, 만… 아, 으응!’

    ‘다리 더 벌려.’

    ‘다 하셨, 잖아요, 아!’

    ‘다 하긴 뭘 다 해?’

    기태정이 짓궂게 물었다.

    ‘응? 말 좀 해 봐, 자기야. 뭘 했냐고, 우리가.’

    ‘아까, 아, 하다 만 거…, 다 하셨, 는데… 흐, 흐읏…!’

    기태정은 기함할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걸로도 모자라서, 세화의 입으로도 그 비슷한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구멍이니 자지니 하는 노골적인 단어들은 차라리 양반이었다. 지금 세화의 몸 상태가 어떤지, 뒤가 어떻게 자지를 씹어 먹는지, 그리고 그럴 때 세화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속삭이는 말이 너무 야해서, 웬만한 희롱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세화조차 부끄러움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기태정이 시킨 무수한 음담 중 그나마 세화가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던 건 ‘더 깊이 넣어 주세요, 이사님.’ 정도였다. 그마저도 바보처럼 더듬거린 데다 목소리는 염소처럼 떨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말의 대체 어디가 그렇게 꼴리는 건지, 기태정은 음미하듯 목을 울리고는 미친 사람처럼 깊게 허리를 쳐올렸다. 아마도 이사님이라는 호칭이 그의 흥분을 꽤 돋우는 모양이었다.

    처음엔 그가 본인이 했던 말은 지키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아귀에 움켜쥐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참을 땐 참는 유형일 거라고 멋대로 판단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과거의 저를 때려 주고 싶을 정도로, 기태정은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기태정은 군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떻게든 쟁취하고, 깃발을 내리꽂고, 표식까지 새겨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섹스는 한 번만, 응, 한다고, 아으응…! 하셨, 잖아요….’

    ‘응. 그런데 너 내 얼굴 위로 안 올라왔잖아. 내가 내건 조건 잊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미 여기로 끌려오자마자 소파 테이블을 짚은 채로 기태정에게 실컷 뒤를 빨렸다. 침대로 옮겨 와 삽입한 이후에도 구멍이 너무 빡빡하다며 몸을 물리곤 도로 혀를 가져다 댔다.

    가뜩이나 몽둥이 같은 좆이 계속해서 꽂히는 통에 마찰열이 오른 상태였는데, 계속 물고 빨아 대기까지 하는 바람에 뒷구멍은 퉁퉁 부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 부근을 모조리 씹어 놔서 회음부터 엉덩이 살까지 잇자국이 촘촘히 난 채였다. 물론 세화는 제 뒷구멍 사정 같은 건 알고 싶지 않았지만, 기태정이 억지로 보게 만들었다. 무릎 뒤 오금에 팔을 건 채로 거울 쪽을 바라보게 하고는, 다리를 활짝 벌려 새빨갛게 익은 아래를 전부 눈에 담도록 종용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더럽게 음란한 꼴이긴 했다.

    ‘흐, 하앗…, 앗!’

    ‘넌 어떻게 여기에만 살이 붙었어? 씨발 존나 야하게.’

    기태정이 발갛게 일어선 통통한 회음을 툭툭 두드렸다. 그러다 재미가 들렸는지 세화의 등을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한 채로 그 부근만 계속 괴롭혀 댔다.

    ‘이렇게 건드리면… 여기까지 물이 튀어. 보여? 이거 네가 싼 씹물이잖아.’

    ‘응, 아, 아파… 요….’

    ‘거짓말. 좋다고 자지 세우고 있으면서.’

    기태정은 구멍 만지는 데 방해된다며 잔뜩 일어선 세화의 성기와 음낭을 배 쪽으로 꾹 붙이고는, 회음과 구멍을 연신 쓰다듬고 주무르고… 그러다 가볍게 때리길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안에 잔뜩 고여 있던 정액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불투명한 허연 액으로 범벅이 된 다리 사이를 보고서, 또 잔뜩 흥분한 기태정이 세화의 허리를 세게 붙들었다.

    ‘헉, 이사님, 아, 안 돼요, 이렇게는, 안…!’

    그대로 재차 삽입하려고 하기에, 제발 다른 자세로 해달라고 빌고 빌었다. 흘끔 거울에 비치는 모습을 보고서, 기태정이 정말 많이 봐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저 흉흉한 물건이 반의반도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인데. 배면좌위로 그의 것을 물었다간 장기가 다 망가질지도 모른다.

    ‘그래? 그럼 자기가 좀 열심히 해 볼래?’

    혀끝을 살짝 내밀고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장난기 많은 소년처럼 싱그럽기만 했다. 예전에 어디서 아이 캔디라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기태정이 딱 그랬다. 눈으로만 봐도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사탕 같은 얼굴.

    ‘맨날 개처럼 뒤로만 받아먹으려고 하니까 점점 재미가 없잖아.’

    ‘그런 게 아니라….’

    ‘아아. 아니면 후배위로 하면 임신 잘 된다는 말 듣고서 그러는 거야? 흠…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고.’

    그런데 그 얼굴을 하고서 내뱉는 말은 왜 전부 저따위인 걸까?

    ‘자기가 그렇게까지 임신하고 싶다는데. 봐줘야지, 내가.’

    ‘흐, 흐으… 읏!’

    ‘엉덩이 더 들고…, 음, 좀 더 졸라 봐.’

    또 얼마나 더한 말을 시켜 댈까 싶어 발발 떨고 있었는데, 그는 너그럽게 마음을 바꿔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처음에 했던 것처럼 엎드린 체위였다. 이제 이 정도면 확실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세화는 기태정이 바라던 것처럼 감질나게 구멍을 조였다가 풀었다. 단단하게 일어선 기태정의 자지를 나긋나긋하게 내벽 안으로 끌어들이려 애썼다. 물론 기태정은 이번에도 사납게 욕을 중얼거렸고, 드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칠게 좆을 놀리다가 그대로 사정했다. 몇 번이나 쌌는데도 여전히 양도 많았고 색도 진했다. 만약 세화가 정말 임신 가능한 남성체였다면, 진작 애를 배고도 남았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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