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
“아, 아…!”
견디기 어려운지 이세화의 고개가 앞으로 푹 쏟아졌다.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칼이 하얀 목에 휘감겼다. 대비되는 그 색감이 아찔해서, 기태정은 이를 악물었다. 퍽 처박는 좆은 어제의 발길질과 닮아 있었다. 속이 뒤집히는지 이세화가 작게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이세화는 거의 몸에 힘이 풀린 채, 기태정의 손에 붙들린 채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제대로 다리 벌리라고 윽박지르거나 수치를 줬겠지만,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에 정신이 없을 테니 넘어가 주기로 했다.
“쌀 것, 같… 아, 아…!”
부드러운 내벽이 흉흉하게 일어선 성기에 흡반처럼 달라붙어 쫀득하게 감싸 주었다. 특히 조여대는 곳을 퍽퍽 쑤시자, 이세화가 우는 소리를 냈다. 젖힌 등의 근육이 전부 팽팽하게 당겨지더니, 이내 파르르 흔들렸다. 앞은 만져 주지도 않았는데 뒤로 박혀서 사정한 모양이었다. 긴장으로 촘촘하게 당겨지는 곧은 선이 예뻤다.
기태정은 이세화의 젖은 등 뒤로 상체를 딱 붙이고,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이세화가 아무리 용을 쓴대도 당장은 끝까지 제 좆을 받아먹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깊게 처박고 싶었다. 목이며 어깨를 씹는 힘이 점점 강해져서 살짝 피가 비칠 정도가 됐을 때,
“아, 아아, 앗!”
“…하아.”
기태정 또한 사정했다. 맞물린 곳에서 흘러넘친 액이 뚝뚝 시트 위로 떨어졌다. 혈맥을 타고 도는 더운 피는 발끈거리다 못해 피부를 뚫고 흘러넘칠 것 같았다. 기태정은 눈을 깜빡이며 목을 젖혔다. 천장을 보고 크게 숨을 고르고,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온 건 아래에서 작게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하얗고 매끈한 피부는 제가 남긴 자국으로 울긋불긋했다. 실컷 깨물린 목 부근과 단단한 몸에 짓눌린 엉덩이가 짙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여튼 더럽게 야해 빠진 몸이었다.
“자기 이제 큰일 났다. 여기 누가 봐도 자지로 후려맞은 것 같이 돼 버렸네.”
접합부를 어루만지며 장난을 걸었다. 일종의 유희 같은 거였고 섹스의 공식이기도 했다. 다른 새끼한테 여기 이렇게 된 거 보여 줄 거냐고 추궁하거나. 아니면 이렇게 됐으니 이젠 나만 넣게 해 달라고 억지를 부리거나. 그러면서 다시 구멍 안을 짓이기고, 처음보다 좀 더 집요하게….
“……요?”
입맛을 다시며 다시 찰진 내벽을 후벼 팔 준비를 하는데, 이세화가 뭐라고 작게 웅얼거렸다.
“뭐라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느라 몸을 숙이자, 가느다란 허리가 얕게 떨렸다. 구멍 안에 여전히 성기를 처박은 상태라 달라지는 각도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잘 안 들려.”
“제가 그렇게….”
아프고 서러운지 눈물을 크게 삼키고는, 코찔찔이 같은 목소리로 묻는다.
“걸레 같이, 보였나요?”
그러고는 눈물만 뚝뚝 흘렸다. 어째 토할 정도로 발로 까였던 어제보다 지금이 더 서러워 보였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아까 그러셨, 잖아요. 걸레는 누가 봐도 걸레라고. 티가 다 난다고….”
“뭐?”
기태정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야. 내가 언제 너더러 걸레라고 했어.”
“그렇지만… 저 만지면서….”
“그래서 내가 네 뒷구멍 다 까지고 헐었다고 했어?”
“…그건….”
“너랑 떡 치겠다고 하니까 다른 남창 사다가 하라며? 그러기 싫어서 이유 말해 준 것뿐인데 말이 왜 그렇게 튀지?”
“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니까….”
문맥상 걸레라고 말하는 것 같은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거의 흩트려서 들리지도 않았다. 그런 품평이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다.
“이게 어리다, 어리다 해 줬더니 자기가 진짜 애긴 줄 아네.”
남의 말을 멋대로 곡해해서 듣는 건 어이가 없었지만… 사정 직후여서 그런가? 이세화의 꼴값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태정은 조금 더 너그러움을 베풀어 주기로 했다. 뺨을 올리거나 좆을 처박는 대신 잠자코 놈의 울음이 가라앉길 기다려 주기로 했다는 거다.
이세화가 이를 악물고 서러운 울음을 참을 때마다 턱 끝에 쪼글쪼글 주름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자지를 물고 있는 구멍은 부드럽게 풀어지고 벌름대기를 반복했다. 꺼진 화면은 제대로 색을 담아내지 못했지만, 물기가 어린 조막만 한 얼굴은 기태정의 복근에 떡이 되도록 짓눌렸던 몸과 똑같은 분홍빛을 띨 것 같았다.
“다 울었어?”
“…….”
“뭐 조루도 아니고 고작 그만큼 울 거면서 뭘….”
겁도 없이 내기나 하자고 할 땐 언제고 뭐가 그렇게 속상해서 우는지. 기태정은 혀를 가볍게 차고는 땀으로 흠뻑 젖은 마른 등을 툭툭 쓸어 주었다.
“대답 느린 거, 주제도 모르고 객기 부리는 건 딱 질색이지만… 사실 당돌하게 구는 건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
“…네?”
“앞으로도 처맞기 싫으면 아까처럼 귀엽게 굴면 된다고. 내기할 생각 없냐고 엉겼던 건 재밌었거든.”
“귀엽… 게요?”
“그래. 건방진 거 말고, 귀엽게.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네.”
신기한 놈이었다. 걸레 취급에는 눈물 줄줄 흘리면서 발끈하는 주제에, 살고 싶으면 애교 있게 굴어 보라는 말에는 순순하게 수긍하다니.
“근데 누가 너 걸레라고 놀린 적 있어?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으음, 하면서 자꾸 말을 늘이기에 가만히 이세화를 쳐다보았더니, 시선을 느꼈는지 흠칫 몸을 떨고는 빠르게 입을 열었다. 꾸물거리지 말아야겠다는 것 정도는 학습이 된 모양이다.
“…다 그랬어요. 일부러 사람들이 오해하게 방치한 것도 있고요. 사실 저는….”
이세화는 뭔가 말을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그래야 저한테 방심했거든요. 저를 얕볼수록 다른 선수들한테서 손님 뺏어오기 좋으니까… 그런 소문 도는 거 알았어도 굳이 바로잡지 않았어요. 중요한 사람들은 사실 아니라는 거 다 알고 있었고….”
원래 하려던 말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이세화는 기태정이 일러 준 취향을 반영하고자 나름 애쓰고 있었다. 여전히 코맹맹이 목소리였지만, 대답은 빠르게, 내용은 흥미롭게,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건방지게 굴지 않는.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굳이 추궁하진 않기로 했다.
싫지 않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보고 있으면 재밌었다. 어떻게든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놈들이야 많았지만, 그런 놈들은 이세화처럼 희한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일급 범죄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주제에 돈보다는 평범한 삶 같은 걸 열망하다니. 자존심이 있는 것 같다가도 없고. 눈치도 빠른 것 같으면서도 둔하고. 해 왔던 일을 생각하면 이미 닳아 빠진 놈인데, 엉엉 우는 것만 봐선 순진하기도 하고….
“하우스 내의 소문과는 별개로 손님들이 널 진짜 가만히 내버려 뒀어?”
“네? 아…!”
내벽 안에 묻어 두고 있던 성기를 뽑아내자, 어울리지도 않게 퐁 하고 귀여운 소리가 났다.
“엉덩이 들어. 구멍 조이고. 그래야 정액 안 흘리지.”
이세화의 목덜미를 꾹 눌러 도로 침대 위로 처박고, 골반을 붙들며 위로 훅 당겼다. 벌어진 구멍이 쉽게 다물리지 않는지, 놀라 어물어물 뒤를 조이는 꼴은… 음, 그래, 이건 확실히 귀여웠다.
“아주 없는 얘기가 돌진 않았을 것 같은데. 아, 너 걸레라고 놀리는 게 아니라 여기선 그런 식의 손님 접대도 흔하니까.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또 찔찔 짤까 봐 말을 덧붙이자, 이세화가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는 듯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쩍 드러난 옆얼굴은 퉁퉁 부은 구멍을 억지로 조여 대는 모습과는 달리 말갛고 순하기만 했다.
“처음 선수가 됐을 땐 억지로 당한 적도 있긴 한데… 이후론 그런 일 없었어요. 정말 거절하기 힘든 높은 사람이 아니면요.”
억지로…. 기태정은 이세화가 울먹이며 섹스는 안 된다고 애원하는 꼴을 상상해 보았다. 지금처럼 젖어 들지도 않았을 몸을 열고 가르치는 재미를 느꼈을 다른 새끼들에게 괜한 짜증이 났다. 일 끝나면 다 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이런 범죄 소굴 따위, 싹 다 밀어 버리고 말 거다. 씨발. 이런 게 성 밖에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주워와서 실컷 따먹었을 텐데.
“영업 목적으로 대주기 시작하면 그 뒤로 험한 꼴 당하는 거 많이 봤으니까… 소문 듣고 치근덕거리는 놈들한테는 그냥 주사 찔러 넣어 주고,”
“…뭐?”
애먼 하우스 놈들 잡아 죽이는 상상이나 하고 있는데, 흘러가는 이세화의 말 중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추근대는 놈들한테 네가 뭘 어떻게 했다고?”
“주사 놔줬는데요….”
“네가? 억지로?”
“음… 그 사람들이 원하진 않았을 테니까… 아마도요?”
“그게 돼?”
그럴 악력이 있는 놈이었던가? 기태정은 제 앞에 구겨진 몸을 훑어보았다. 이세화가 멸치처럼 깡마르기만 한 건 아니었다. 아까도 생각했듯 골격 자체는 좋았다. 선도 곧고 길쭉길쭉하니 예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저 몸에 험한 놈들을 물리칠 만한 힘이 숨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제 소문 들으셨다면서요.”
뺨을 시트에 맞대고 있는 탓에 발음이 입 안에서 뭉그러졌다. 처음 봤을 때도 저보고 유명한 꽃이라고 하셨잖아요, 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유독 음란하게 느껴졌다.
“원래 섹스보다 그 짓을 더 잘해요,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