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세화는 얼굴 옆에 두고 있던 손을 들어 귀를 막아 버렸다. 기태정의 말이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붉어진 귓불을 감추고 싶어서였다. 남창 대하듯 할 거면 끝까지 그렇게 하든가. 왜 이상한 말을 곁들여서, 자꾸….
“어딜.”
수줍음을 건방진 행동이라 오해한 기태정이 세화의 손을 떼어 내곤, 아예 상체를 딱 붙여 왔다. 귓불을 잘근잘근 씹더니, 그 아래로 점점 입술을 내렸다. 자기 소유라고 도장을 찍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게 아니라, 아…!”
“씨발 약을 피부에다가 처발랐나, 뭐 이렇게 손에 짝짝 붙어? 어?”
세화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믿을 수 없지만 발기해 버렸다. 이렇게 함부로 만져 주는데도 성기의 심이 조금씩 단단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세화는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읏, 저, 이상… 이상한데….”
“뭐가?”
“뒤가, 뒤에… 아마도 아직 약이, 이상해요….”
당황한 세화가 두서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벌어진 구멍이 조금씩 젖어 드는 기분이었다. 젤을 잔뜩 머금었을 때처럼. 혹은… 애액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약효는 진작 다했을 텐데. 목에 아직도 이상한 걸 감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비싸고 좋은 패치는 처음 착용해 봐서 원래 이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게, 알아서 잘 젖네?”
그제야 세화의 몸 상태를 깨달은 기태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약 때문인 거 맞아? 원래 이렇게 젖는 구멍 아니고?”
“아뇨, 아니에, 요, 아, 이상… 해….”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어? 정말로?”
“없어, 없는… 데, 아앗!”
“구멍 이렇게 된 거 다른 새끼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으응, 없어요, 없… 어…, 응…!”
세화는 머릿속이 진탕이 된 채로 더듬거렸다. 낯선 감각에, 받아들이기 힘든 몸의 변화에, 그에 더해 기태정은 자꾸 심란한 소리나 해서. 그래서 자꾸 애 같은 울음이 삐죽 흘러나왔다.
“그래? 그럼 아직 약 기운이 도나 봐.”
검지와 중지가 동시에 구멍 안으로 침입했다.
“진짜, 원래… 이러는 거 맞죠, 이거, 목에 하고 있으면….”
“응. 자기 원래 그런 몸 아니었다며.”
“네, 아닌, 아니…, 아…!”
“그럼 패치 두르고 최음제 같은 거 주워 먹어서 그런 거겠지. 괜찮아. 잘 젖으니까 오히려 좋네.”
가위질이라도 하듯 손가락 한 마디 정도만 넣은 채로 이리저리 벌려 대자, 젤로 떡칠했을 때처럼 찔꺽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제 먹은 약이 뭐였지…. 세 개를 다 흡입하면 구멍에서 애액이 흐르기도 하나? 그 세 개를 한 번에 먹어 봤다는 손님이 없어서, 세화도 이게 정상적인 반응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멍하니 고민에 빠진 사이, 가슴을 붙들린 채로 시야가 또 한 번 뒤집혔다. 셔츠 단추에 쓸린 살갗이 따끔따끔했다. 민망하지만 딱 기분 좋을 정도의 고통이었다.
“자기 지금 자위해? 내 가슴에 자기 젖꼭지 문지르면서?”
“네? 그게 무슨….”
“그런 거 아니라면 허리 똑바로 세우고 일어나.”
뭐 저런 트집이 다 있나 싶었다. 세화를 던지듯 자기 몸 위로 올려놓은 건 기태정 본인이었다. 그래놓고서 스스로 유두를 문지르는 거냐고 묻다니.
“그렇지. 그렇게 있어야 내가 잘 빨아 주지.”
“…아!”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댄 기태정이, 세화의 젖꼭지를 손잡이라도 되는 양 움켜쥐고 끌어당겼다. 몸이 휘청이며 딸려오자 그대로 엉덩이를 받쳐 안고는 가슴살을 깨물었다. 무서웠다. 밀어 내려 짚은 어깨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것도. 셔츠 너머로 느껴지는 잔뜩 딱딱해진 기태정의 복근도. 이렇게 엉덩이를 들고서 있는데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거대한 좆도.
“여긴, 흣, 빨겠다고… 안 했잖….”
“그랬지. 그랬는데 가슴 만져 주니까 네 뒤가 다 젖었잖아.”
유두를 문 채로 기태정이 속삭였다.
“그래야 나도 빨아 주는 재미가 있지.”
따뜻한 입김 때문에 간질간질한 느낌이 확 올라와서, 세화는 저도 모르게 달팽이처럼 몸을 움츠렸다. 결과적으론 그 바람에 기태정이 더욱 쉽게 가슴살을 주무를 수 있게 되어 버렸다.
“잘 먹고 열심히 단련했으면 제법 몸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어느새 끈적끈적해진 손을 하고서 기태정이 세화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고 품평했다. 아까 먹던 사과의 과즙은 아닐 테니, 뒷구멍으로 흐른 정체 모를 물 때문에 저렇게 흠뻑 젖은 게 분명했다.
“어깨 골격도 있고. 그런데 허리는 가늘고…. 허벅지랑 엉덩이 볼륨도 나쁘지 않고, 종아리는 곧고 예쁘네.”
포주가 사들인 남창을 점검이라도 하는 것 같은 사무적인 손길이었다. 그런 평가는 원하지 않는다는 듯 세화가 도리질을 치자 기태정이 가소롭다는 듯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아프긴 했지만, 싫지는 않은 아픔이었다.
“칭찬해 주는 거야. 앞으론 잘 먹이고 살 좀 찌워야겠다. 그래야 여기도 만질 맛 좀 나지.”
더듬고 빨리기 좋은 몸이라는 게 어떻게 칭찬이라는 거야. 세화는 붉어진 얼굴로 몸을 뒤틀었다. 기태정이 귀엽게 군다는 듯 코끝을 깨물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 행위에 대단히 재미가 들었는지, 뺨이며 턱이며… 얼굴 중 씹을 수 있는 부분은 모조리, 크게 빨아 댔다. 한쪽 손으론 여전히 가슴을 주무르고, 반대편 손은 아래로 내려 구멍 안을 쑤시면서.
“…자기야.”
“흣, 흐읏….”
“나 이대로 가다간 그냥 너 엎어 놓고 박을 것 같아서 미리 허락을 좀 구하고 싶은데.”
“네?”
“한 번만 쌀게. 응?”
“안 한다고… 약속,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강간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거잖아. 해도 되냐고.”
제각기 처박힌 손가락이 멋대로 육벽 안을 긁어 댔다. 뭐라도 확인하려는 것처럼.
세화는 자신의 구멍 안이 확실히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스위치라도 누른 것처럼 오직 뭔가를 물고 조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신체 기관으로 변해 버린 기분이었다.
“지금 넣게 해 주면 1점 더 까 줄게. 그럼 다시 원점 되는 거야.”
“아, 으응, 응…!”
“너는 빚도 다 갚고, 새로운 신분도 얻고. 나만 손해 보는 걸로 끝나는 거라고. 어때?”
“흐앗…!”
기태정의 체형은 보통 사람들의 몸을 가로세로로 쭉쭉 늘려 놓은 것 같았다. 그게 뭐든지 간에 비현실적일 정도로 커다랗고 기다랬다. 지금 구멍 안으로 짓쳐들어온 손가락 세 개만 하더라도, 그야말로 좆만 한 보통 남자들의 성기보다 길고 두툼할 것 같았다.
“한 번에 최소 2억이야. 신분 세탁할 때 드는 돈 생각하면 2억이 뭐야, 20억으로도 모자라지.”
그러면서 기태정은 걸치고 있던 재킷을 벗어 던졌다. 얇은 옷감에 휘감긴 조각 같은 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을 들어 세화의 몸을 주무르고 희롱할 때마다 남자의 두툼한 핏줄이 툭툭 일어섰다. 그 태에 넋을 놓은 사이, 기태정이 세게 손을 쳐올렸다. 손바닥인지 손목인지, 하여튼 단단한 그의 손과 세화의 엉덩이가 마찰하며 탁탁 음란한 소리를 냈다.
“네가 이 구멍으로 2억이나 받아먹을 날이 언제 또 오겠어. 이건 고 해야지.”
세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고개도 돌리지 못 하게 해서 당장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모멸감과 자존심. 체념과 기대. 그런 단어들이 정신없이 세화를 짓눌렀다. 그리고,
“아흑!”
자꾸 도망치려는 세화가 괘씸했는지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왔다.
“안 돼요, 찢어… 져…, 아!”
빠듯하게 벌어지는 구멍이 아려 왔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찢어질 것 같았다. 이렇게 벌어져 다물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흐아앗!”
퍽, 하고 물이 튀는 소리가 났다. 내벽에 고여 있던 애액이 기태정의 손놀림을 따라 물총이라도 쏜 것처럼 흘러내렸다. 사정감과 닮은 그러나 익숙하지 않을 오르가슴에 세화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잔뜩 흐무러진 낯을 하고서, 세화는 제가 흘린 물로 엉망이 된 기태정의 옷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했다고 이렇게 됐어? 너 잘하면 분수도 싸겠다.”
기태정은 세화의 목을 질겅질겅 씹었다. 잡아먹히라고 푹 숙이고 있던 모가지가 아니었는데, 그냥 저 꼴을 보고 있으니 절로 입이 갔다.
“아, 앗…!”
멍 같은 순흔을 만들면서, 남자가 악독하게 웃었다. 뒷구멍이 처음으로 이상한 반응을 보이니까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원래도 민감한 편인 것 같고…. 뭐, 상관은 없었다. 혼란을 쾌감으로 착각한 덕에 이렇게 자지러지고 있으니, 결국은 이세화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할, 게요…, 할, 으응…!”
“정말로? 안에 싸도 되는 거지?”
고장 난 인형처럼 이세화가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응, 안에, 아… 그러니까 이런 거, 그만…!”
안을 후벼 파던 손으로 엉덩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삐죽 넘친 뽀얀 살을 보며, 기태정은 내심 감탄했다. 미색이라곤 전혀 없이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였다. 체모도 거의 없고, 좆이나 구멍도 살구 즙을 들이부은 것 같은 옅은 색이었다. 몸 중에서 오직 입술만 빨갰다.
“처음이니까 나도 부드럽게 하고 싶은데….”
기태정은 이세화의 몸을 붕 띄운 다음, 그대로 휙 돌려 버렸다. 그리곤 허리만을 튕겨 상체를 완전히 일으켰다. 마른 몸이 앞으로 풀썩 엎어졌다. 물침대 같은 걸 대체 어디다 쓰나 싶었는데 이런 식으로 체위를 바꾸기에 용이했다. 무엇보다 여진처럼 계속 오는 미미한 떨림 덕에, 이세화의 엉덩이가 푸딩처럼 파르르 흔들려서 보기 좋았다.
“임신하려면 이렇게 뒤로 하는 게 좋대.”
CCTV를 어디쯤 설치했더라? 이세화를 개처럼 엎드리게 하고서 기태정은 느릿느릿 몸을 겹쳤다. 그리곤 자꾸 숙이려고 드는 이세화의 턱을 치켜들게 했다. 꺼진 TV 화면에 그 낯이 고스란히 보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