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10)화 (10/144)
  • #010

    “주, 준장님! 잠시만…!”

    몸이 팽이라도 된 듯 시야가 또 휙 돌고, 코앞에서 문이 쾅 닫혔다. 침대 위로 내던져진 세화는 눈치껏 숨을 죽였다. 사무실 한편에 딸린 작은 방은 침실이라기엔 스산했고, 휴게 공간이라기엔 다소 부족했다. 거대한 물침대가 중앙에 있었고, 맞은편 벽엔 어울리지 않게 큼지막한 벽걸이 TV가 걸려 있었다. 수상쩍게 생긴 작은 소파의 왼편에는 욕실이 있었는데, 미닫이문에는 전신 거울이 부착되어 있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섹스만을 위해 설계된 방이었다.

    “아!”

    두리번거리는 몸짓마저 거슬린다는 듯, 기태정이 대뜸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세화는 소리를 지르고서도 아차 싶어 그의 눈치를 봤다. 부리는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는 사람이, 자기 같은 사람을 사지 멀쩡히 살려 둘 리가 없는데….

    “자, 잠깐, 뭐…, 뭐 하는…!”

    당장이라도 뺨을 내칠 것처럼 굴던 기태정은 대뜸 세화의 아랫도리로 손을 뻗어 왔다.

    “아까 쌌어?”

    “가,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건지….”

    직전까지 사람 죽일 것처럼 눈을 번뜩여 놓고선. 지금은 또 만족스럽다는 듯 웃는다. 세화가 헐떡이며 답하는 꼴이 보기 좋다는 듯이.

    “흠…. 잘 모르겠네. 다 젖어서. 이거 물이야, 정액이야?”

    “이것 좀 놓고…, 아, 그렇게…!”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야. 이렇게 물 같은 정액이나 쌀 정도로 생긴 값을 하고 돌아다녔던 거라면….”

    기태정이 기미라도 보듯 젖은 엄지를 핥아 올렸다. ‘왜, 자주 싸면 정액도 좀 묽어지잖아.’하고 저질스러운 농담을 덧붙이면서.

    “만약 그랬으면 앞으로 좀 피곤해질 것 같아서. 너나, 나나.”

    “…그런 식으로, 영업하고 다닌 적… 없습니다.”

    “하긴.”

    그건 그렇겠다며 기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랬으면 진작 휠체어 신세 지고 있었겠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하우스 밖에서 살아 본 적 없다며, 너.”

    “…….”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내 뒷구멍 따였으면 이렇게 멀쩡히 두 발로 돌아다닐 수가 없었을 테니까. 내가 괜한 걸 물었다. 미안.”

    단 1g의 미안함도 담겨 있지 않은 태도였다. 세화는 울고 싶어졌다. 물벼락을 맞으면서 사정할 때도 느끼지 못했던 수치스러움이 밀려왔다. 이미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긴 했지만, 감정적인 동요 때문은 아니었다. 아까 걷어차여서 울었던 건… 그건 저도 모르게 보인 반사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다 내려놓고 엉엉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거지? 기껏해야 저는 김 소위의 장기짝이라는 걸 다 알면서. 말마따나 평생을 하우스에서 뺑이 치던 놈이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높으신 분이 지폐 흔들면서 나타나면, 넙죽 엎드려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하는 처지라는 거, 이미 다….

    “자기야.”

    지금 목소리를 내면 꼴사납게 훌쩍일 것 같았다. 그래서 기태정에게서 슬쩍 시선을 비낀 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고 있었는데,

    “악!”

    퍼렇게 힘줄이 돋아난 남자의 손이 직전처럼 단숨에 머리채를 붙들었다.

    “너 부르잖아. 안 들려?”

    “아, 아뇨….”

    “그런데 왜 무시해. 자기는 처맞아야 대답이 나와? 그렇게 해 줘? 어디 매달아 놓고 두들겨 팰까, 그냥?”

    “흐…, 자, 잘못….”

    “잘못한 건 알겠어?”

    “네, 네….”

    “내가 뭐 싫어한다고 했어?”

    “간 보는, 거요….”

    옳지, 하며 그가 악력을 풀었다. 어찌나 아팠는지 본격적으로 맞은 것도 아닌데 잔기침이 씨근씨근 터져 나왔다.

    “예쁘니까 이번만 봐줄게.”

    정말로 봐준다는 듯 기태정의 길고 고운 손가락이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을 훔쳐 갔다. 조금 전엔 유리판 위에서 마약을 훑고, 방금까지 세화의 바지에서 정액을 수색하던 바로 그 손이었다.

    “아까 하던 얘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기태정은 손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보란 듯 툭툭 털어 내고는, 세화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물침대가 얕게 흔들거렸다. 절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야릇하고 천박한 출렁임이었다.

    “어차피 이제 자기는 김 소위 말이 아니라 내 말만 들어야 하는 신세잖아? 살고 싶으면.”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세화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대충 나는 김 소위 잡을 때까지 여기 있을 생각이거든.”

    얼마나 심심하겠어, 하며 기태정이 세화의 얼굴 이곳저곳을 꾹 눌렀다.

    “그러니까 나 심심하지 않게, 여기 있는 동안 나랑 놀아 줘.”

    “놀아… 달라고요?”

    “응. 놀아 주면, 뭐든 줄게.”

    볼품없이 젖은 세화의 뺨이며 입술을 성의없이 누르던 기태정의 눈은 정염으로 들끓고 있었다. 그가 말한 놀이의 함의를 눈치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김 소위 그 새끼한텐 뭐 받기로 했어? 돈? 집?”

    세화는 뭐라고 대꾸도 못 하고 속으로만 질색했다. 미칠 거면 껍데기처럼 곱게 미치든가. 대체 저 사람은 말버릇이 왜 저런 건지 모르겠다. 나이도 많지 않으면서 옆구리에 어린 첩 끼고서 노는 졸부처럼….

    “아, 이건 확실히 제안 맞으니까 편하게 대답해도 돼. 나는 억지로 하는 취미는 없거든. 기분만 더럽더라.”

    어쨌든 강제로 해 본 적은 있다는 소리 아닌가? 세화는 흔들리는 눈으로 아무 곳에서 시선을 주었다. 편하게 대답하라고? 뭐든 주겠다고? 그 말을 믿기엔 기태정이 보이는 태도가 영 미심쩍었다. 왜 나를…? 왜 굳이….

    “또 다른 생각 하네.”

    기태정이 세화의 손을 잡아끌더니 허벅지 위에 툭 올려 두었다. 그러고선 손등을 덮으며 멋대로 몸을 물릴 수 없게 깍지까지 꼈다. 손을 겹친 채로 돌덩이 같은 그의 몸을 몇 번 문지르자, 아래 감춰져 있던 살덩이가 정장 바지를 뚫고 나올 기세로 부풀기 시작했다.

    “어때? 처음엔 조금 버거워해도 익숙해지면 다들 좋아하던데.”

    세화는 말문을 잃고서 부피감을 키워 가는 남자의 좆을 바라보았다. 뭐? 조금? 조금 버거워한다고? 과장 조금 보태서 다찌들이 휘두르는 경광봉만 했다. 혹시 이젠 이걸로 고문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난데없이 섹스 타령이나 하는 것도 이해가 갈 것 같다. 기태정은 저를 죽일 셈인 거다. 입에 물든 뒤에 품든 저게 몸 안에 들어오면 틀림없이 죽고 말 거다.

    “…억지로, 안 하신다고….”

    “안 한다니까?”

    미친 새끼. 하마터면 튀어나올 뻔한 욕설을 겨우 집어삼키며, 세화는 고개를 팩 돌렸다. 다 싫었다.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자기 좆을 주물럭거리게 하는 것도. 일부러 시정잡배처럼 구는 저 말투도. 그런 와중에도 저 얼굴과 목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만큼은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나사 빠진 제 머릿속도.

    “아마 진짜로 넣으면… 여기까진 쑤실 수 있지 않을까.”

    기태정이 반대편 손으로 배 어딘가를 더듬었다. 치골부터… 배꼽보다 반 뼘 위. 그쯤을.

    “보통 뒷구멍으로 하면 좀 더 깊이 들어가긴 하니까.”

    “다 못 넣… 어요, 그리고 저는 애초에….”

    임신 가능한 체질도 아니었다. 같은 성별을 받을 수 있는 남자들처럼 알아서 뒤가 젖는 것도 아니라 매끄러운 성교가 불가능하다. 그냥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부끄러워져서, 세화는 우물쭈물 말을 삼켰다.

    “알아. 임신 가능한 남성체든 창놈이든 어차피 내 자지 다 못 물어. 그냥 저 정도까진 박힐 각오 하라는 거지.”

    얼굴도 다 덮을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손이 마른 뱃가죽 여기저기를 배회했다. 아까 걷어찼던 곳을 건드릴 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 떨렸다. 기태정은 여전히 덤덤한 얼굴이었지만, 세화는 어쩐지 그가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섹스 성향이 좀… 그래. 패고 피 보는 것까진 아닌데 좀 집요한 편이야. 그래서 선택할 기회를 주는 거야. 하겠다고 하면 죽기 전엔 못 무르게 할 거니까.”

    “…….”

    “여태 나 하는 거 봐서 알지? 굼뜨게 구는 거, 싫다고 빼는 거 제일 싫어해. 먼저 대 주겠다고 해 놓고서 너 좋을 대로만 굴면, 도박장 한가운데 엎어 놓을 수도 있어.”

    자기가 뒷구멍으로 몇 번이나 가는지 판돈 걸게 할 거야.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끔찍한 말을 속삭이며, 이번엔 기태정이 진심으로 웃었다.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저 얼굴만 본다면 사랑 고백이라도 하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달콤한 미소였다.

    “제가 싫다고… 하면….”

    “상관없어. 어차피 섹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우리에겐.”

    말만 그렇지 세화가 거절할 거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한 어투였다.

    “대신에 나랑 놀아 주면 김 소위가 약속한 대가에, 자기가 바라는 거 하나 더 얹어서 줄게.”

    기태정이 고개를 기울여 왔다. 꼭 키스라도 할 것처럼.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고려해 주면 좋겠어.”

    화들짝 놀라 턱을 당기며 물러서자, 맞부딪힌 수갑이 절그럭대며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 손 아래 닿은 기태정의 자지는 이제 완전히 발기해서, 옷감 밖으로도 우툴두툴 일어선 핏대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랑 자자, 자기야. 내가 꼭 임신시켜 줄게.”

    …진짜, 미친 새끼.

    ***

    당연한 말이지만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세화의 옷을 벗길 것 같았던 기태정은, 폭탄 같은 말을 던져 놓곤 이만 쉬라며 방을 나가 버렸다. 손에는 여전히 거대한 성기의 촉감이 남아 있는데. 이대로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게 더 불안하고 무서웠다. 원래 낙하 직전의 놀이 기구가 더 무서운 법이었다.

    “으으….”

    세화는 묵직한 손목을 툭툭 털어 보았다. 제 손목에 맞게 꼭 조여든 수갑이 얄밉게 짤랑거렸다. 여전히 목에 감겨 있는 패치인지 뭔지도 거슬렸다. 정말 쉬게 해 줄 생각이었으면 이것부터 풀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덕분에 세화는 젖은 옷도 벗지 못한 채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젤리처럼 탱글탱글한 감촉의 침대 커버는 수분기를 전혀 흡수하지 못해서 젖은 몸을 시트에 닦아 낼 수도 없었다. 피든 정액이든 뭘 쏟아도 닦기 쉬우라고 평범한 천 쪼가릴 올려 두지 않은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 방의 구조 자체가 문제였다. 물침대는 약간의 뒤척임에도 파르르 흔들렸다. 이렇게 예민하게 꿀렁거리는데 여기서 섹스를 할 수는 있긴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리면 전면 거울이 떡하니 있었고, 똑바로 누우면 꺼진 TV 화면에 제 모습이 전부 비쳤다. 숨 돌릴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