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당황한 세화가 있는 힘껏 몸을 버둥거렸다. 기태정은 쉿, 하며 등 언저리를 토닥여 주었다. 마치 기르는 애완동물 어르듯이.
“똑똑하게 굴어. 산 채로 찢겨 죽기 싫으면.”
검지와 중지가 한 번에 입 안으로 침입했다. 손이 아니라 총이라도 욱여넣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단단했고, 거칠했다. 다독여 주는 손길과는 정반대였다. 기태정은 타액으로 흠뻑 젖은 엄지를 빼내고는, 턱 아래를 억세게 눌러 고정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그대로 입 안쪽까지 뚫려 버릴 것 같았다.
“으, 우…, 흣…!”
얼굴은 반질반질 곱게도 생겨서는, 몸뚱이는 무슨 돌로 빚은 건지, 아무리 난리를 피워도 꿈쩍도 안 했다. 지금 그가 하는 짓은 변태 손님들과 다를 바 없었다. 입은 얼마만큼 벌어지느냐고, 얼마 주면 빨아 줄 거냐고 약에 꼴아서 더듬대던 놈들.
“음… 기대와는 조금 다른데.”
고리처럼 구부린 검지가 볼 안쪽의 살 이곳저곳을 노크하듯 두드리고 갔다. 꼭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백치처럼 타액을 줄줄 흘리면서, 세화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 밑도 끝도 없는 짓거리가 성적인 희롱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있다. 남자에겐 다른 목적이 있다. 그와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싸하게 뒷덜미를 스치고 갔다.
“여긴 아닌가?”
검지가 어금니 옆의 공간을 꾹 눌렀다. 파헤치기라도 하듯 일부러 갉작이는 행동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그래. 알 것 같다. 아까 기태정의 부하가 시가를 줍는 것을 봤을 때. 그때 느낀 위화감과 비슷했다.
짐작이 맞는다면 지금 기태정은… 확인해 보는 거였다. 혹시라도 제가 몸 안에 약물을 숨겨 운반했던 건지. 몸을 포장지처럼 쓰면 알게 모르게 흔적이 남는다. 비닐에 뭉친 가루를 밀어 넣느라 자연히 치아가 휘고, 볼살 안쪽과 치아 사이의 공간이 비정상적으로 벌어진다.
기태정은 세화의 몸이 저장 창고였다면 어느 정도의 운반이 가능했을지, 혹은 지금도 몸 안에 숨기는 것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 목적으로 이렇게 입 안을 더듬어 대는 거라면, 곧….
“아까도 느꼈지만….”
남자의 탁한 음성을 듣고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몰랐는데,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느라 잠시 멍하니 있었던 사이, 기태정 또한 안을 쑤셔 대던 손길을 멈추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무례할 정도로 빤히 세화의 얼굴을 뜯어보다 옅게 웃었다.
여러 의미를 품은 침묵이 흘렀다. 멀거니 손을 받아 내고 있던 세화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그리고 침이 넘어가는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듯,
“……!”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매서운 주먹이 명치 아래로 내리꽂혔다. 입에는 여전히 기태정의 손가락이 물린 채라서, 세화는 소리도 내지르지 못했다. 얄밉게도 가위질하듯 교묘하게 손을 벌리고 있어서, 그의 살점을 물어뜯지도, 씹어 자국을 남기지도 못했다.
“이걸 둔하다고 해야 해,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해.”
기태정이 타액으로 범벅이 된 반대편 손을 탁탁 털어 내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끄윽, 하는 괴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절로 무릎이 꺾였다. 분명 몸통 가운데를 얻어맞았는데, 늑골까지 전부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아.”
그러나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낼 틈도 없이 단단한 구둣발이 같은 부위를 뻥 차고 갔다.
“그래도 이게 내 일이라서.”
몇 번이나 축구공처럼 뻥뻥 차이다, 등이 벽에 부딪혔다. 골이 쪼개진 것처럼 둥둥 울렸다.
“미안해, 자기.”
발길질은 기습적이었다. 이쯤 되면 또 차겠거니 할 무렵엔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기만 했다. 이번에도 아닌가 싶어서 숨 좀 들이켜려고 하면, 그땐 또 마른 뱃가죽을 사정없이 후벼 팠다. 발끝으로 살갗을 뚫을 것만 같은 괴력이었다. 세화는 초점이 다 나간 눈으로 기태정을, 아니 기태정의 발을 바라보았다. 구두코에 묻은 핏자국이 제 입에서 흐른 것인지, 내장을 뚫고 묻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 그래도 멀쩡하네?”
다 토하다 못해 피까지 쏟아 낸 사람을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긴 했지만,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 건진 알 것 같았다. 입 안을 죄 쑤시고, 안에 든 걸 전부 토해 보라고 배를 뻥뻥 걷어차도 포장지로써 활약했던 흔적이 드러나질 않으니 의아한 모양이었다.
동시에 치가 떨렸다. 몸으로 마약을 운반하는 일은 이미 골수까지 중독된 놈들이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약하는 놈들은 대부분 도박도 같이했다. 빚은 쌓였는데 장기를 뗄 수도 없으니 운반책으로라도 돌리는 거였다.
그렇지만 제 눈동자 상태나 손톱, 입술 색 같은 것만 봐도 중독자가 아니란 건 알 수 있었을 거다. 충분히 상황 파악 마쳐 놓고선, 몸 안에 약을 담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과시하듯 사람을 패는 거였다. 자신이 약물 운반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는 걸 흘리면서, 고문에도 얼마나 능숙한지 보여 주려고. 두려움에 굴종하게 만들려고.
“…있, 어요.”
“뭐라고?”
기태정의 손아귀에 머리채가 죄 붙들렸다. 불쑥 고개가 들리는 바람에, 두피까지 전부 뽑혀 나갈 것만 같았다.
“저는, 대부분의… 약을…, 마약뿐만 아니라 약물을 구별할 수, 있어요.”
축 늘어진 손끝이 움찔 떨렸다. 코에서고 입에서고 피가 한 움큼씩 쏟아졌다. 그렇지만 억울함과 분노보다 더 크게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공포였다. 두들겨 맞는 건 익숙했다. 그렇지만 이 지경이 되는 건 대여섯 명에게 두어 시간은 맞았을 때다. 고작 몇 대 걷어차였다고 금세 이런 몰골이 되다니…. 폭력에 이골이 난 본능이 말한다. 이 남자는 여태 자신이 겪었던 그 이상의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절로 몸을 납죽 엎드리게 됐다. 고통 없이 죽고 싶으면 순순히 굴라던 기태정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화는, 살고 싶었다, 소박하지만 사람답게 살아 보는 걸 언제나 꿈꿨다, 그렇지만 그게 영 어렵다면. 그렇다면 다만, 죽음이라도 평화롭길 바랐다.
“자기야, 감식은 누구라도 할 수 있어. 난 사람이 아니라 기계를 신뢰하는 쪽이기도 하고.”
“저는…, 중독되지, 않아요.”
도저히 몸이 움직이질 않아 아래로 고갯짓하자, 그가 알아서 소매를 둘둘 말아 올렸다.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해?”
세화가 걸치고 있는 옷이 어이가 없는지 픽 웃으면서.
“…원, 래부터, 체질이라, 마취 약도 안 듣고, 조금만 맛을 봐도, 구별할 수 있고….”
늘 그렇듯 쉽게 포기했는데. 순순히 무릎 꿇자고, 살려달라고 빌자고 결심했는데. 나오는 말에는 아직도 뻣뻣함이 묻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다르게 살아 보겠다 발악하던 버릇이 쉬이 가시질 않았나 보다. 문득 웃음이 새어 나왔다. 1성의 주민증 같은 걸 꿈꿨던 몇 시간 전의 자신이 우스웠다. 부질없는 욕심을 내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으론 체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고 이렇게 될 거라고. 사쿠라, 삼월이, 홍단이가 아니라 이세화라고 불릴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라고. 결국은 구정물 위를 구르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게 될 거라고.
“중독도 안 되니까…, 제조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쉽게 잘했고….”
주삿바늘 자국을 찾아볼 수 없는 허여멀건 팔뚝을 보고서, 기태정이 느리게 턱을 쓸었다. 엉성한 문장 속에서 용케도 필요한 정보를 전부 채취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계의 버튼을 꾹 눌렀다. 호출 기능이 있는 모양인지 박 소위라는 사람과 이하 검은 정장을 입은 놈들이 안으로 줄줄이 들이닥쳤다.
“가지고 온 거 설치하고, 박 소위.”
“네.”
“피 뽑으면 종합 검사 결과 얼마나 걸리지?”
“희귀병 질환 파악 용도가 아니라면 십 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기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닌지, 박 소위가 익숙하게 왕진 가방 같은 것을 펼쳤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구들을 스쳐, 그가 꺼내 든 것은 평범한 주사였다.
“확인해 볼 거 있으니까, 가지고 온 것 좀 꺼내 봐.”
피가 찰랑이는 시약병과 주삿바늘을 갈무리하며, 박 소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군인일 게 분명한 한 무리의 남자들은 정신없이 사무실을 오갔다. 저 많은 인원이 번잡한 소음 같은 건 하나도 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난 고문해서 자백 받는 거 안 좋아해. 더 쉬운 방법이 있거든.”
기태정이 얇은 유리판 위에 가루를 톡톡 털어 냈다. 흰색 두 가지, 옅은 미색 한 가지였다.
“이게 효과가 제법 센 최음젠데….”
어느새 박 소위가 깨끗하게 피를 닦아 낸 바닥 위로, 유리가 덜렁 놓였다.
“이거 다 빨고도 좆 안 세우면, 자기 말 믿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