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나타난 낯선 사람이라니. 당연히 수상했다. 세화뿐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거 호구 낚고 공사 칠 때 하는 전형적인 수법 아닌가?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했고, 사장 혼자만 신이 났다. 자기 사무실에 대표라고 새겨진 새 명패를 두라느니, 우리 기 이사에게 좋은 방 하나 내주라느니 하면서 같잖은 지시를 내리느라 바빴다.
세화는 최근 몇 년간의 약물 유통 계보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별의별 하꼬 조직까지 헤아려 봐도 모두가 수군거릴 정도로 젊은 오야는 더더욱 찾기 어려웠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다. 확실히 없었다. 애초에 그 정도로 잘나가는 신생 조직이 있었다면 사장 놈이 진작 사람 풀었을 거다. 적절할 때 밟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먹히는 건 이쪽이 되니까.
그런데 사장은 얼결에 얻게 된 대표라는 직함에, 자기 밑에 이사란 놈을 두게 되었다는 것에, 그야말로 약이라도 빤 것처럼 취해서 해롱거리고 있었다. 온갖 사기에 도가 튼 선수들도 가끔 다른 하우스의 허튼 수법에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도박판 끌려오는 호구들이고 선수들이고 대체 저런 허접한 수에 왜 속는 걸까, 이해가 안 갔는데 요즘 사장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알 것도 같았다. 다 아는 뻔한 수작질이 이렇게나 무서웠다.
뭐… 한편으론 사장이 이성적으로 굴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가질 수 없는 게 있다며 회식 때마다 주정을 부리곤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와중에 처음으로 ‘양지로 나가자’, ‘이젠 대표님 회장님 그런 소리 들으실 때도 되지 않았냐’ 하는 사탕발림을 들었으니 눈이 돌아 버릴 법도 했다.
가끔 성 밖의 주민들은, 특히 여기 하우스 사람들은 남들이 들으면 헛웃음이 나올 법한 사소한 것에도 목숨을 내던지곤 했다. 원인을 따지자면 애인이니 사랑이니 하는 허튼 것이 가장 많았고, 세화처럼 채무가 없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제법 있었고, 사장처럼 어느 구역의 사람에게도 무릎 꿇고 싶지 않다는 권력욕도 있었다.
다들 마음이 가난해서 그렇다.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버러지 같은 인생들이라,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 보겠다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쨍하고 볕 들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사실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사실 잘 알면서도.
“어? 왔나 보다.”
입구에 선 다찌들이 수런거리는 것을 보니 사장 놈과 문제의 이사… 아니 사기꾼이 등장한 모양이었다. 세화는 몸 여기저기 튄 정체 모를 것들을 툭툭 털어 냈다. 소맷부리는 알 수 없는 검댕과 꽃물이 엉켜 금세 엉망이었다. 넌 꼴이 그게 뭐냐며 일그러질 사장의 얼굴이 벌써부터 눈에 선했다.
사장 놈은 어디서 의전이라는 말을 배워 와서는, 저더러 착실히 이사를 의전하고 섬기라고 했다. 의전…. 난데없는 있는 척에 코웃음만 나왔다. 뭐, 세화로서는 힘들 거 하나 없는 주문이었다. 어차피 그 사람도 믿고 부리는 놈들은 따로 있을 테니 하우스 굴러가는 방향만 대충 일러 주면 될 터였다. 사기꾼 보필하는 일쯤은 패 돌리고 약 돌리고 손님도 꼬시던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까 너. 당분간 그 이사 놈 시다바리 해 준다며? 진짜야?”
“그만두기 전까지만.”
“야. 너 진짜 관둬? 진짜? 진짜로?”
날카로운 주변의 눈총에 큰 소리를 내던 매조가 거북이처럼 목을 움츠렸다.
“아니, 나는 사장 놈이 그냥 하는 소리라고…. 허허…. 아니, 진짜? 그래서 관두면 뭐 할 건데? 아니, 이게 아니라…. 잠깐만, 그럼 여태 네 족보 새로 오는 놈한테 꽁으로 다 내주란 소리네?”
“아니, 랑 진짜, 를 대체 몇 번이나 말하는 거야.”
“지금 그런 태평한 소리나 할 때냐고! 하던 일 다 접고 남 수발이나 들라는 거 보면 모르겠냐? 지금 네 돈줄 그놈한테 생짜로 다 넘기라는 거잖아!”
“이제 관둘 건데 그런 거 쥐고 있어 봤자 어디에 쓴다고.”
제가 듣기에도 지나칠 정도로 미련이 없는 목소리였다. 세화의 무심한 대꾸에 가슴만 퍽퍽 내리치던 매조는 주변을 둘러보다 다시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단골손님하고 살림 차린다는 거…. 그것도 맞냐?”
“…….”
“하이고. 이 답답아. 그 아재 골수 약쟁이잖아. 어디 믿을 놈이 없어서 약쟁이를 믿어. 씨바, 처맞기나 하다가 석 달 안에 도로 쫓겨난다에 내일 먹을 피 싹 다 올인한다, 내가.”
매조의 추측을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은 것 또한 고의였다. 사장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은 얘길, 뭐 하러 저런 놈들에게 알려 준단 말인가. 득이 될 게 없었다. 포상금에 눈이 멀어 당국에 신고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야. 너 그럴 거면….”
매조는 그럴 거면, 하면서 한참이나 입을 달싹였다. 놈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얼굴이었다. 세화는 눈썹을 콱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이어질 얘기는 뻔했다.
“너 그럴 거면, 차라리 나랑….”
“들어와, 들어와.”
입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사장의 목소리 때문에, 매조는 어정쩡하게 하려던 말을 삼켰다. 세화는 앞이나 보라며 작게 고갯짓을 했다. 흘끗 시선을 돌릴 때 매조의 눈동자에 서렸던 불티를, 세화는 모르는 척했다. 이후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동생이 보기에 여기 꼴이 좀 누추할 수도 있긴 하지마는, 얼라들 데리고 있으려면 이런 작업장도 가지고 있어야 하더라고. 그래야 밑의 놈들도 정신머리 바짝 쪼이고 파이팅하지.”
“그렇군요.”
시큰둥한 낯으로 불이나 쬐고 있던 하우스 사람들의 고개가 스르륵 들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가 그러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 절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게 되는 신기한 음색이었다. 남자의 말투는 나긋나긋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대꾸만으로도 절로 주목하게 되는, 귓전에 꽂히다 못해 죄 찢고 가는 것 같은 파괴력이 있었다.
“날도 추운데 이렇게까지 다 불러 모으실 것까지야.”
“아, 기 이사도 이제 우리 식군데 당연히 그래야지. 게다가 기 이사가 어디 보통 인물인가? 이제 여기선 나 다음가는 사람인데. 우리 애들이 없이 자랐어도 경우가 없진 않아. 자, 들어와.”
사장의 야단법석에 도열했던 다찌들이 종잇장 찢듯 반으로 나뉘었다. 사람들 끄트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서 있던 세화 또한 느리게 몸을 물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소문의 이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원래 부리던 사람들도 전부 데리고 왔는지 까만 정장을 입은 놈들을 한 무더기 거느리고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사방에서 받쳐 주고 있던 장우산이 일제히 접히느라, 남자의 뒤로 물방울이 특수 효과처럼 산란했다.
“아니 씨발, 저게 대체….”
누군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뒷말은, 아마도 ‘뭐야’였을 것이다. 세화의 심정 또한 그 감상 그대로였다. 뭐야. 저런…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인사들 해라. 이제부터 우리 하우…, 아니 회사를 크게 키워 주실 기태정 이사님. 새 식구 들어와서 당분간 어수선하겠지만 앞으로도 내 말 잘 듣고 이사님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는 거야. 알았냐?”
세화는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쩌면 이거 사장 놈도 꾼한테 물리는구나, 그렇게 비웃고 말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새로 온 이사는 누가 봐도 사장 아래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저런 인간이 넙죽 자기 조직을 가져다 바쳤다고?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했다고? 그럴 리가 없다. 그럴 수가 없다.
남자의 이름부터가 그랬다. 기 이사? 이사 같은 직함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 이사, 그런 부드러운 연음보다… 그래, 기 대표. 기 사장. 그런 고압적인 수식어가, 뚝뚝 끊어지는 각진 발음이 차라리 저 남자의 것인 듯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저 수상한 남자는, 기태정은. 여기 사는 쥐새끼들이, 버러지들이, 쓰레기들이 너무나도 꿈꾸던 누아르 영화 그 자체여서. 오로지 자본과 환상으로만 치덕치덕 빚어 놓은 뒷골목 사람들의 이상향 같은 모습이라서. 저런 남자가 먼저 다가와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면 누군들 경계를 풀고 헤벌쭉 풀어질 것만 같았다. 사장을 멍청하다 욕할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을 밑에 두게 되면 저라도 스스로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워서 거들먹거리게 될 것 같았다.
세화는 너무 빤히 남자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사장에게 듣기론 아직 서른은 안 됐다고 했는데. 스물여덟이랬나, 아홉이랬나. 그래서 그런가? 앳된 것 같지만 설익은 느낌은 또 아니었다. 가지런히 넘긴 머리 아래 드러난 이마와 눈썹 뼈, 높은 콧대와 턱까지 흐르는 선이 오묘했다. 날카롭고 또 부드럽다. 오밀조밀 예쁜데 한편으론 시원시원하게 잘생겼다. 어쩌면 이런 상반되는 느낌이 남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기태정은 걸치고 있던 코트에 달라붙은 꽃잎을 떼어 내며 시가를 물었다. 곁에 선 기도가 불을 붙여 줄 때, 사장에게 공손하게 양해를 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깍듯하니 젊어서부터 성공한 거라며 남자를 띄워 주는 사장의 목소리가 역했다.
번뜩이는 라이터 불빛이 기태정의 동공에 소슬히 머물렀다 사라졌다. 아름다운 남자는 온통 어둡고 무겁기만 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 곱고 환하고 예쁜 것들로만 조형되어 있는데도, 전부 합쳐 놓으니 남는 것은 해로운 수식어뿐이었다.
“야, 사쿠라! 뭐 하냐, 퍼뜩 튀어 와서 인사 안 올리고!”
혹시 아닌 척 훔쳐보던 시선이 들킨 걸까. 세화는 파득 어깨를 튀며 뻘쭘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기 이사가 이해해라. 저게 워낙 맹해서…. 그래도 우리 하우스 돌아가는 사정 같은 건 잘 알려 줄 거야. 어릴 때부터 여기 붙박이였거든.”
분명 아까까지는 자신의 행색에 당당했다. 오히려 귀찮은 일이 줄었다며 속으로 좋아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자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세화는 제 꼴이 조금 부끄러워졌다. 달린 단추마저 고급스러운 셔츠나 몸통을 죄는 베스트 같은 건 살면서 단 한 번도 걸쳐 본 적 없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데도 각이 무너지지 않는 코트 같은 것도 처음 보았다. 아마 본인이 손쓰지 않아도 모든 것을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일 테다.
그래서 세화는, 밀려오는 민망함과는 별개로 새로 온 이사가 더더욱 수상하게 느껴졌다. 단순히 돈이 많아 보여서가 아니었다. 저런 식의 관리가 당연한 사람은, 저런 종류의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약을 말았다고? 저 밑에서부터? 심지어 그렇게 차근차근 키워 온 조직을 냅다 사장에게 바칠 생각이라고?
“아….”
쭈뼛쭈뼛 소심하게 옮기던 걸음이 일순 멈칫한 건, 발목에 구정물이 튀어서였다. 조금 전에 그렇게 조심했던 보람도 없이 양 바짓단이 흠뻑 젖어 버렸다. 찰박이는 물소리에 어슷하게 고개를 틀고 연기를 뱉어 내던 남자의 눈이 슬쩍 들렸다. 유려한 시선이 세화를 천천히 훑었다. 덥수룩한 머리, 주워다 걸친 것 같은 엉성한 옷, 그 와중에도 깨끗하게 관리하려 애쓴 듯한 구두…. 초라한 자신의 몰골을 발라 먹을 듯 헤집는 눈길에 세화의 몸이 어색하게 굳었다.
이사는 그제야 묘한 안광을 거두고 세화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무언의 품평에 무안해진 세화는 두 손을 뒤로 감췄다. 음울한 날씨를 등지고 점점 선명해지는 그의 모습은 떠오르는 태양보다는 저무는 낙조 같았다. 불길한 주홍빛 하늘, 해를 저 밑으로 처박는 것만 같은 어둑어둑한 손아귀,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그런 불분명한 시간대.
“자기였구나.”
노을을 발아래에 둔 아름다운 남자가 오만하게 웃었다.
“그 유명한 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