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2)화 (2/144)
  • #002

    “사장님은?”

    담뱃대에 불을 붙이며 세화가 물었다.

    “…어?”

    “사장님은 아직이냐고.”

    “엉. 그…, 새로 오는 그 이사 놈하고 같이 온다잖어.”

    매조는 놈답지 않게 자꾸만 말을 버벅댔다. 세화를 둘러싸고 있던 놈들도 하나둘씩 입을 다물었다. 놈들은 연기 너머로 느리게 깜빡이는 세화의 내리깐 눈을, 필터를 물고 빠느라 뺨이 홀쭉해지는 것을, 마른 가슴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것을, 입술이 벌어졌다 다물리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도마 위 횟감처럼 사람을 쳐 대고 썰어 대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고요하고 진중한 눈길들이었다.

    그리고 세화 역시, 그 질척이는 시선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 온 이사가 마약 전담이라고 했던가?”

    모두의 분노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주제를 툭 건드렸다. 자욱하게 고이던 다수의 음심이 단박에 박살 났다. 놈들은 잠시 세화의 태에 홀렸던 것이 부끄러운 듯 더더욱 거칠게 굴었다.

    “씨펄, 개나 소나 다 파는 뽕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듣도 보도 못한 놈한테 이사씩이나 내주냐?”

    “그러니까. 지문 닳도록 패를 돌리면 뭐 하냐고. 맨날 선수들 대접은 뒷전인데.”

    놈들의 의미 없는 푸념에 점점 힘이 실려 갔다. 어디에든 분풀이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세화는 묵묵히 돛대를 빨았다. 자고로 사람은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을 더 얹었다간 핑계 없는 욕이나 손찌검이 대차게 쏟아질 게 뻔했다. 이럴 땐 묵묵히 입에 물고 있는 거나 빠는 게 정답이었다.

    “그래도 그 이사 영입한 덕에 3성에 떡하니 땅 샀다잖아, 사장님.”

    “엥? 3성에? 진짜로?”

    “엉. 근데 개천 보인다는 건 아무래도 사기 같더라고. 손바닥만 한 공사판이라던데?”

    “아무렴 물줄기 보이는 자리가 여태 놀고 있었겠어? 당연히 의심했어야지.”

    그러게 누가 부동산을 실제로 보지도 않고 덥석덥석 사느냐고, 매조가 드럼통 가까이 손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성 밖의 사람들은 3성은커녕 2성이나 1성으로도 출입이 어렵다. 구역 밖에서 제일 큰 도박장을 가지고 있는 사장이라고 한들 예외는 아니었고, 매조도 그걸 몰라서 하는 소린 아닐 터였다.

    “그러고 보니까 나 어제 손님한테 들었는데, 성. 그 말이 별을 뜻한다더라? 너흰 알았냐?”

    뒤에 기립한 덩치들에게 얕잡아 보이긴 싫었는지 오동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것도 몰랐냐는 뒤늦은 타박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아마 역정을 내는 놈들 대부분 몰랐을 거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성 바깥의 주민들이었으니까.

    수도는 강에서 제일 가까운 제5성星부터 물줄기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1성까지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구역으로, 희귀하고 아름다운 것은 모두 좋은 구역에 몰려 있었다. 이를테면 강이라거나. 산이라거나. 꽃이라거나.

    한때는 국토 전체를 가로질러 바다까지 닿았다는 거대한 물줄기는 조금씩 가물어, 이제는 혜택받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귀한 자원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3성까지는 일부 주택 인근에는 조그만 천이 흐른다고 했다. 그 지대를 4성으로 편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매번 치열한 정쟁이 벌어진다고 했던가. 강은커녕 성 안의 시내를 구경해 본 적 없는 세화에겐 어차피 와닿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서 성 밖의 구역을 환環이라고 하는 거잖아. 성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어서.”

    “그, 그래?”

    오동이 괜히 코끝을 매만졌다. 민망한지 불을 피운 드럼통을 툭툭 걷어찰 때마다 검은 재가 휘날렸다.

    “아, 하지 말라고! 어제 여기서 작업 있었던 거 몰라?”

    “작업?”

    “그래. 그러니까 차지 마. 여기서 뒤진 놈들 태워서 생긴 재 가루일지도 모르니까.”

    “아, 씨발!”

    매조와 오동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펄쩍 물러섰다. 불을 지피던 모란은 실실 웃기만 했다. 세화는 여전히 뚱한 표정을 하고서, 소매에 들러붙은 이름 모를 꽃잎을 떼어 냈다. 그래도 여긴 1성과 멀지 않은 곳이라고 꽃이 좀 피었다. 그래 봤자 구정물을 받아먹고서도 쑥쑥 자라나는 잡초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꽃은 꽃이라고 보고 있으면 기분은 좋아졌다.

    성 밖은, 세화 같은 하층민들이 사는 이 구역은 유독 봄이 늦었다. 방어선 구축을 위해 군부에서 매번 심혈을 기울여 정비하고 있는 계획도시인데도 볕이 들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4월 중순까지도 가을처럼 으슬으슬하다가, 방비할 틈도 없이 벼락같은 불볕더위가 몰려왔다. 그렇게 땀 삐질삐질 흘리며 뺑이 치다 보면 금세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겨울이 왔다.

    제대로 된 꽃이 피지 않는 성 밖의 구역은 별을 뜻하는 예쁜 글자를 부여받지 못했다. 주요 지대를 둥글게 감싸는 외곽이자 방어선이라고 해서 환이라는 성의 없는 이름이 붙여진 행정 구역은 다시 제4환, 3환, 2환, 1환 이렇게 세분되었다. 숫자가 작아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는 건 성이든 환이든 똑같았지만, 성과 환이 주는 무게는 천지 차이였다.

    공문서나 뉴스에서나 환이라고 하지, 대부분은 편하게 원이라고 불렀다. 조롱과 자조가 뒤엉킨 멸칭이었다. 말마따나 1성 너머의 사람들은 4원짜리, 3원짜리 같은 싸구려 같은 환락을 팔며 목구멍에 풀칠하고 있었으니까.

    세화는 4원, 3원도 아닌 2원에서 태어났다. 이씨 성을 쓰게 된 것도 2원에서 나고 자라서였다. 모체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아비란 작자는 노름에 미쳐 갓 태어난 핏덩이도 판돈으로 내건 쓰레기였다.

    이세화. 얼핏 들었을 땐 독특하고 예쁜 이름 같지만 사실 뜻은 시시했다. 이왕 판돈으로 내걸렸으니 패라도 짝짝 붙으라고, 쿰쿰한 녹색 모포 위에서 아주 그냥 존나게 센 꽃이나 되라고 어떤 선수가 즉석에서 지어 준 이름이라고 했다.

    과연 세화는 이름처럼 살았다. 연유도 모를 빚을 갚느라 불법 도박장을 전전하며, 언제고 꺾기 좋은 꽃처럼 꾸역꾸역, 하늘하늘 잘도 피어났다. 그나마 특이한 체질을 이용해 간신히 4원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다. 고작 2원짜리 인생이 겨우 4원짜리가 되었을 뿐이었다. 0에는 무엇을 곱해도 결국 0인 것처럼, 이세화는 여전히 별 밖의 주민이었다.

    질긴 우울과 체념 위로 조금씩 희망이 움튼 건 김 소위와 거래를 트게 된 이후였다. 처음엔 갑자기 굴러들어 온 행운이 믿기질 않았다. 당연히 총알받이 같은 걸로 저를 몇 번 쓰다 버리려는 건 줄 알았다. 언제쯤 목이 잘릴까, 전전긍긍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무색하게 계약은 벌써 이 년째 순조롭게 이어지는 중이었다. 지시대로 약물을 배분하고 빼돌리면 새로운 신분을 주겠다던 김 소위의 그 약속이 어쩌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뭘 해 보려고 해도 잘된 적이 없어서. 아니, 애초에 마이너스에서부터 시작했던 삶이라서. 그래서 처음엔 갑자기 술술 풀려 가는 신수가 의심스럽기만 했다. 하우스에 내야 하는 사납금이 30만 원가량으로 줄었을 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삼천도 아니고 삼백도 아니고 삼십이라고? 앞으로 여섯 달만 삼십만 원씩 갚으면 이제 다 끝난다고? 원죄처럼 얹혀 영영 줄어들지 않을 거라 여겼던 그 빚이, 정말로 거의 사라졌다고?

    세화는 믿을 수가 없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하우스 경리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기뻐하는 방법을 몰라서, 쫓기는 사람처럼 잔뜩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네 사나운 팔자가 어디 바뀔 줄 알았냐고, 어둑어둑한 불행이 당장이라도 제 목을 조를 것만 같았다.

    거래가 막바지에 다다른 요즘 들어서야 세화는 조금이나마 경계를 풀게 됐다. 이제 세 번만 더 약을 운반하면 김 소위와의 일도 완전히 끝난다. 나머지는 성 안으로 반입하는 건도 아니라 훨씬 부담이 덜했다.

    세화는 그제야 저에게 뚝 떨어진 행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보았다. 도박 중독자의 2원짜리 자식으로 태어난 건 제 잘못이 아니었다. 남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는 게 일상인 사장 놈도 큰돈 만지면서 잘만 사는데. 그런 놈들에 비하면 저는 조금이라도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래서 주어지는 보상일 거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1성으로 옮겨 갈 수만 있다면. 패 돌리고 약 파는 일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면. TV에서 보던 것처럼, 또래들처럼 평범한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공원이나 산책하면서 다음 달 먹고살 걱정 같은 걸 할 수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가슴 안쪽이 간지러워졌다. 몇 달만 버티면 저도 1성의 주민이었다. 2원짜리도, 4원짜리도 아닌 별들의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된다. 앞으로는 사쿠라도, 삼월이도, 홍단이도 아닌 이세화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슬쩍 듣기로는 그 이사 놈이 되게 젊다 그러더라?”

    “우리는 뭐 늙었냐?”

    “씨발 내가 그런 뜻으로 한 말이겠냐? 사쿠라, 너는 뭐 들은 거 없어? 요즘 하우스에서 약 돌리는 건 네가 꽉 잡고 있었잖아.”

    쥐어 본 적 없는 평안을 상상하던 세화는 그제야 표정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저었다. 드럼통 안으로 꽁초를 내던졌다. 손가락 마디보다 짧은 쓰레기는 흉측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다, 이내 재가 되어 사그라들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사장에게 남은 빚을 갚는 대로 선수 노릇을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저만 있었으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았을 사장도 소위라는 계급장 앞에선 꼼짝도 못 했다. 사장은 김 소위가 저를 빼돌려 첩질이라도 하려나 보다, 그렇게 여기는 것 같았다. 딱히 불리할 건 없는 오해여서, 세화는 사장이 멋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두었다.

    하우스 사람들 대부분이 약을 말아 돌리긴 했지만, 개중에서도 세화의 성적은 월등했다. 애초에 김 소위가 저에게 거래를 제안했던 것도 알음알음 이쪽으로 소문이 돌아서였다. 매달 적지 않은 수수료를 꽂아 주던 알짜배기가 당장 몇 달 후 그만두겠다고 하니, 사장은 썩어 가는 얼굴을 하고서 술만 퍼마셨다. 그나마 얼마 전 매조가 호구 하나 크게 물어 와서 좀 나아진 거였지, 하우스 분위기는 내내 울적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어제. 사장은 어쩐 일로 싱글벙글 웃는 낯을 하고선 하우스 식구들을 죄 불러 모았다. 저기 밑에서부터 올라온 조그만 조직이 하나 있는데, 약 다루는 게 특출해 보이기에 살살 꼬셔서 내가 먹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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