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월 (1)화 (1/144)
  • 3월

    지은이│모스카레토

    펴낸곳│비욘드

    투고메일│[email protected]

    ⓒ 모스카레토,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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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작품은 픽션으로 작중 배경과 설정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인물 및 지명, 기관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약물의 이름과 용도는 소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허구입니다.

    ※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오니 도서 이용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 작품에 드러난 모든 사상은 작가의 사상과 같지 않습니다.

    #001

    “어, 사쿠라 왔네?”

    요즘 호구 하나 물었다고 얼굴이 활짝 핀 매조가 세화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챙겨 주려고 곁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알고는 있지만, 놈이 자리 잡은 쪽 말고는 끼어들 만한 곳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세화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드럼통 앞에서 잠시 몸을 녹일 수 있는 자리마저 마음대로 고를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한심했다. 하긴. 여태까지 살면서 안 그랬던 적이 있었겠냐만.

    “뭘 그렇게 사뿐사뿐 걸어. 못 먹은 괭이 새끼처럼.”

    세화는 매조의 시비를 무시한 채 조심조심 발을 뗐다. 바닥에 고인 게 빗물인지 시체 썩은 물인지 알 길이 없었다. 물론 용을 쓴다고 한들 발이 젖는 걸 피할 순 없을 거다. 대충 지은 창고의 바닥은 균일하지 못했고, 기원을 알 수 없는 쿰쿰한 물웅덩이는 한 뼘 걸러 포진해 있었다.

    “윽….”

    아니나 다를까 결국 발목까지 꿉꿉한 구정물이 튀고 말았다. 불빛에 손을 쬐던 다찌들 몇몇이 세화를 비웃었다. 어차피 더 깊거나 조금 덜 깊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인데, 매번 오물을 피하려 애쓰는 꼴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기도 새끼들이 처웃든 말든, 세화는 다시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원래 성격이 좀 그랬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달려들었고, 바꿀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새로운 패를 모색했다. 좋게 말하자면 근성이 있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주제 파악을 못 했다.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시선으로 세화를 바라보았다. 성 밖의 삶이라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바닥에 고인 물은 어차피 폐수다. 아무리 공을 들여도 돌연 성수나 샴페인이 될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세화는 꼿꼿하게 허리를 폈다. 저 창놈 새끼는 걷는 꼬라지도 어쩌고, 하는 뒷말을 들으면서도, 곧은 자세를 하고 부드럽게 걸음을 놀렸다.

    물론 그런 세화도 저를 비웃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신은 믿지 않았지만, 돈은 믿었다. 혀에도 얼굴에도 얄팍한 거짓말을 두르고서,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아 치우면서 살아왔다. 당장 어제도 손님 팔뚝에 주삿바늘을 찔러 주면서, 약속했던 금액의 몇 배나 되는 금액을 슬쩍했다. 세화는 샤킹이니 밑장 빼기니 하는 것보다 이런 쪽으로 훨씬 더 능숙했다.

    그런 주제에 고고한 척 굴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다만 쓰레기도 다 같은 쓰레기는 아니라고들 하니까. 의미가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똑같은 오수여도 음식물 찌꺼기와 시체 썩은 물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적어도,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라도 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세화는 자신을 싸구려로 만들지 않으려 애썼다. 괜히 여기저기 구정물을 튀기며 걷지도 않았고, 아무 곳에나 가래침을 칵칵 뱉지도 않았다. 가끔은 아픈 선수들을 대신해 벌금을 내 주기도 했고, 배곯는 꼬맹이들을 보면 기꺼이 가진 돈을 털기도 했다.

    그 무의미한 발악이 세화를 오늘날까지 살게 했다.

    이 어중간한 위선이 세화를 성 밖의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으로 살게 했다.

    “아니, 너는 볼 때마다 낯짝이 왜 그러냐?”

    지문이 반쯤 지워진 거친 손이 세화의 얼굴을 배려 없이 움켜쥐었다.

    “가진 거라곤 상판대기밖에 없는 새끼가 왜 자꾸 이런 그지꼴을 하고서 돌아댕겨? 거 있는 손님도 다 떨어질라.”

    “돈 잘만 갚고 있는데 네가 무슨 상관이야.”

    세화는 덤덤한 표정으로 제 뺨을 뭉개는 불쾌한 손을 걷어 냈다.

    “넌 거울도 안 보고 사냐? 내가 잡은 호구들까지 네 꼴 보고서 도망가겠다, 씨발아.”

    매조의 지적대로 썩 보기 좋은 몰골이 아니긴 했다. 허여멀건 피부를 숨기려 몇 번이나 태닝 스프레이를 덧칠하고, 다듬지 않아 덥수룩해진 머리를 대충 빗어 넘긴 탓에 멀리서 보면 거대한 막대 사탕이 걸어오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뿐일까. 베이지색 깅엄 체크 셔츠 위에는 LV 로고가 조잡하게 박혀 있었고, 유행이 다 지난 색안경의 다리엔 구구찌라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브랜드가 적혀 있었다. 시장통에서도 팔지 않을 조악한 짝퉁들의 조합이었다.

    이런 조잡한 분장을 하면 몰래 구역을 넘나들기 좋았다. 정신 사나운 차림새는 오히려 외관의 특징을 덮기 좋다. 무엇보다 얼굴을 덮은 싸구려 태닝 스프레이의 효과가 제법 괜찮았다. 어떤 원리인진 아직도 모르겠다. 제품의 성분 중 하나가 검문 기기를 잠시나마 무력화시키는 건 아닐까, 추측할 따름이었다.

    “너 요즘 잘 번다며? 돈 벌어서 뭐 하냐고. 옷이나 좀 사 입지.”

    귀찮다는 듯 놈의 손이 닿았던 어깨를 툭툭 털어 내자 듣기 역한 욕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세화는 평생 이런 꼴로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광대 같은 분장 덕에 구역 너머까지 약을 팔 수 있었다. 상당 부분의 빚을 덜게 해준 기특한 남루함이었다. 게다가 구질구질한 행색 덕에 귀찮게 추근대던 새끼들도 상당수 떨어져 나갔다. 돈도 돈이지만 귀찮게 꼬이던 놈들이 사라지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세화에게 이런 조잡한 수를 알려 준 건 김 소위였다. 처음엔 그가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돈도 많고 신분도 좋은 것 같은데 왜 여기서 약이나 빨고 있을까, 그게 김 소위에 대한 감상의 전부였다. 뭐, 원래 성 밖의 하우스를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그런 인사들이었기에 세화도 그 이상으론 관심을 두진 않았다. 어차피 돈만 벌 수 있다면 손님의 신분이나 직업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한심한 아저씨가 거절할 수 없는 거래를 제안해 왔다.

    유독 석연찮았던 저녁 장사를 정리하고 나오던 세화는, 난데없이 튀어나온 남자들에게 머리채가 붙들렸다. 뒤이어 나오던 선수 몇몇은 질질 끌려가는 세화를 보고 놀라서 가게 셔터를 내리고 숨어 버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던 터라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시커먼 지프차 안에는 무서운 얼굴의 사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하우스나 지키는 양아치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느껴졌다. 놈들에게선 사람을 잡아 죽이는 데 이골이 난 꾼들의 냄새가 났다.

    상황 파악을 마친 세화는 모든 반항을 포기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얌전히 모가지를 드리울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사라지는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 판돈을 다 꼬라박고 눈이 뒤집힌 손님들이 가끔 벌이는 짓이었다. 물론 하우스에서는 다 알면서도 묵인했다. 선수의 장기를 팔아 번 돈이든, 몸을 팔아 번 돈이든 도박과 약에 눈이 먼 손님들이 하우스로 돈을 바칠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으니까.

    여기서 더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면 최대한 고통 없이 죽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나 하며 한껏 구겨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지프차가 멈춰 선 곳은 3성의 경계에 있는 검문소 앞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놀랐어? 여기로 안 데려오면 내가 누구라고 말해도 안 믿어 줄 것 같아서.’

    단골인 배불뚝이 약쟁이가 환하게 웃으며 세화를 반기는 것이었다.

    남자는 하우스를 찾을 때와는 달리 제법 멀끔한 모양새를 하고선 자신의 계급은 소위라고 고백했다. 소위. 세화는 그게 어느 정도로 높은 사람인지도 가늠이 되질 않았다. 어쨌든 김 소위는 저에게 긴히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어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했다. 어이없게도 세화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발끝에서부터 전기가 찌릿찌릿 올라왔다. 언제고 각오했던 일인 양 덤덤한 척 굴었지만, 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던 거다.

    살고 싶은데, 정말로 이렇게 끝일까 봐.

    걸레짝처럼 나뒹굴어야 한대도 조금만 더 살고 싶었다. 이렇게 죽기 싫었다. 산 채로 장기나 뜯기는 개죽음은 싫었다. 내심 그런 비굴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자신에게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간절하고 강렬하게.

    세화의 굳은 낯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김 소위는 그답지 않게 자꾸만 말을 빙빙 돌렸다. 평소에도 너의 손재주를 높이 사고 있다느니, 너만큼 기차게 약을 말아 주는 사람을 못 봤다느니, 네가 취급하는 물건은 뒷맛이 깔끔해서 좋다느니…. 세화는 그제야 긴장이 훅 풀렸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수였다. 뻔했다. 이젠 약이 아니라 몸뚱이도 같이 팔라는 거겠지.

    당연히 거절하고 싶었다. 속사정을 잘 모르는 놈들이야 저더러 남창이니 걸레니 그런 소릴 해 댔지만, 사실 세화는 함부로 몸을 내돌리지 않았다.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약을 놔 주면서 일부러 섹슈얼한 분위기를 조성할 때도 있었다. 제한된 향락을 계산하는 일은 제법 능숙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저를 덤핑처럼 손님에게 안겨 주진 않았다.

    판 깔아 줄 때 몸도 같이 내어 주면 장사가 좀 더 수월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한번 공짜를 맛본 손님들은 절대 제값을 내려고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더한 것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순결에 대한 거창한 지조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영업 방식으론 이 바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쉽게 굴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지만 소위라는 계급까지 드러낸 손님을 거절할 방법이 있을까? 나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세화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했다. 조금 전엔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살고만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리고 따지고 싶어졌다.

    이래서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러니까 구역 밖의 하층민으로, 영문도 모를 빚이나 갚으면서 사는 것 아니겠냐고. 입버릇처럼 최소한의 품위와 존엄을 부르짖어 놓고선, 고작 이 정도 겁박에 초개처럼 가진 모든 걸 내던져 버렸다. 역겹고 초라한 본능이었다.

    ‘앗, 아냐. 이상한 부탁 하려는 거 아니야.’

    한숨을 들이마시느라 크게 들썩이는 세화의 어깨를 보고, 김 소위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더러운 거래나 물고 온 게 절대 아니라고, 오히려 저와 손을 잡으면 그런 쪽으로 요구하는 손님들을 전부 물리쳐 줄 수 있다며 자기 가슴을 툭툭 두들겨 보였다.

    ‘혹시 나랑 같이 약 좀 팔아 볼 생각 없어? 구역 밖으로도. 그러니까 성 너머로 말이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거든.’

    그러면서 김 소위가 조건으로 내민 것은….

    “어? 사쿠라 오랜만이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오동이 실실 웃으며 세화의 어깨를 툭 쳤다. 하…. 욕지거리를 삼키며 천장 쪽으로 데굴 눈을 굴리자, 매조가 또 살살 시비를 걸어왔다.

    “새끼, 사람 무안하게. 같은 식구한테 뭐 그렇게 까칠하게 구냐?”

    “사람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엥? 사쿠라를 사쿠라라고 그러지, 그럼 뭐라고 부르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3월 하기 싫으면 다른 놈 죽이래도? 죽이고 네가 그 달 차지하면 되잖아.”

    이 하우스에서는 실장부터 화투 패에서 딴 별칭을 가질 수 있었다. 1월은 송학, 2월은 매조, 11월은 오동… 뭐 그런 식으로. 세화의 상징은 3월이었다. 원래 모란이나 억새가 될 뻔했는데, 3월이라고 불리던 화투 기사 하나가 갑자기 죽어 나가서 엉겁결에 그 감투를 쓰게 됐다.

    “형님들도 싫다는 애한테 왜 자꾸 그래요. 삼월이도 있잖아, 홍단이도 있고. 쪽발이들 쓰는 말 말고 예쁜 우리말.”

    모란이 툭 끼어들었다. 세화의 것이 될 수도 있었던 6월을 차지한 선수였다. 원래 때리는 놈보다 말리는 놈이 더 얄미운 법이다. 기가 막힌 세화가 흘끗 시선을 주자, 놈이 모닥불을 들쑤시던 부지깽이를 하복부 부근까지 끌어 내리곤 저질스럽게 흔들어 댔다.

    세화는 상대하지 말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뻔한 도발이었고 매일 있는 시비였다. 그렇지만 익숙해졌다고 해서 저를 막 대하는 취급이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저러는 걸 아니까, 놈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넘기는 것일 뿐이다.

    사쿠라, 홍단이, 또 가끔은 삼월이….

    그따위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고 이미 골백번도 더 말했건만 한낱 빚쟁이의, 호구의, 약팔이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세화는 매번 지치지 않고 말했다.

    내 이름은 사쿠라도 아니고, 홍단이고 아니고, 삼월이도 아니고

    세화,

    이세화라고.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조심조심 창고 바닥을 걷는 것과 비슷했다. 함부로 취급하지 말라고 저라도 화를 내지 않으면, 정말로 그런 후진 사람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이상하게도 화투 패 중 3월만 제대로 된 별칭이 없었다. 모란이 말했던 것처럼 벚꽃이라는 예쁜 우리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어를 입에 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밑바닥에 사는 놈들은 그런 고운 말을 입에 올리면 자신의 남성성이 훼손된다고 굳게 믿었다. 등신 새끼들. 여긴 구질구질하고 한심한 새끼들 천지다. 물론 세화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3월.

    이세화에게 3월은 쓸모없는 계절이었다. 3월은 겨울의 끄트머리에 불과하다. 체감되는 온도만 보더라도 봄보다는 겨울이라 분류되는 게 옳다.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저뿐인 듯싶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3월이 되면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느라 바빴다. 자식새끼가 학교에 간다, 누가 결혼한다… 갖가지 이유로 손님들의 판돈이, 약을 살 대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다. 그 덕분에 꽁지를 가져다 쓰는 사람들은 늘어난다곤 하는데, 어차피 꽁지 이자는 세화 같은 선수들의 것이 아니었다.

    대체 뭐가 좋다고 뉴스에서는 3월을 예찬하는 것일까. 이 좆같은 달만 되면 모두가 궁핍해지는데. 여기저기서 아귀 떼처럼 먹고 죽을 것도 없다고 돈, 돈 노래만 불러 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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