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76화 (176/178)

Chapter80. 돌 위에 핀 꽃(2)

며칠 뒤 연락이 왔다.

내부에서 격론이 일어나고 있으니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쉽게 될 일은 아니었다.

진호의 영화 자체가 중국 체제를 정면에서 부정했다.

이를 받아들이는 건 중국 내부에서도 큰 모험수였다.

“하지만 그래도 모두를 막을 수는 없지.”

중국 웨이보에서는 연일 진호에 대한 기사가 검색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만큼 관심과 갈증이 강하다는 얘기였다.

중국 중심의 정책으로 많은 것들을 배척해온 이들이지만 한계는 있었다.

남들 다 누리는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건 인간 본연의 욕구에도 반대되는 일이었다.

눌렸던 감정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아마 갈등하고 있을 거다. 이걸 힘으로 찍어 눌러야할지 아니면 풀어줘야 할지.”

“이게 힘으로 될 일은 아니죠.”

“그렇지. 언론을 통제한다고 해도 저들끼리 말하는 것까지 전부 때려잡을 수는 없잖아. 안 그래도 안팎으로 일이 많은 중국인데, 이런 일까지 떠맡긴 힘들 거다.”

이런 기류를 쥐옌은 이용했다.

정치적 권력이라는 건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쓸 수 있느냐는 것.

다른 이들이 우물쭈물거리고 있을 때, 그는 적극적으로 개방을 원호했다.

이런 태도가 많은 이들을 편으로 끌어들이는 작용을 했다.

[중국 정부. 공식적으로 개봉 금지를 철회하여······]

결국 영화 개봉 2달 만에 금지 처분이 해제됐다.

#

개봉 허가가 나는 순간 배급 계약은 순식간에 처리되었다. 이들도 개봉 허가가 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중국 전역에 굉장한 숫자의 관을 확보하고 발 빠르게 홍보를 시작했다.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꽉 차 있던 탄산이 뚜껑을 여는 동시에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강한 갈망에 허덕이던 중국인들은 개봉과 동시에 엄청난 기세로 몰려들었다.

관이 부족해서 다른 지역으로 원정 관람을 갈 정도였다.

“무섭네, 무서워.”

“관람객 숫자 올라가는 거 봐요. 이래서 중국 시장을 다들 포기하지 못하는구나.”

“확실히 구매력 자체는 아시아를 다 합쳐도 중국 만 못 할 거다.”

업계 공룡이라는 말에 어폐가 없었다.

기록이란 기록은 모조리 깨면서 관람객 숫자를 갱신해 나갔다.

하루가 지나면 그 다음 날이 또 기록일 만큼 오르는 속도가 가팔랐다.

게다가 그 주제라는 것이 자유 아닌가.

알게 모르게 눌려 왔던 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

소문은 소문을 타고 펴져서 더 많은 사람을 불러왔다.

“20억 불은 손쉽게 돌파하겠어.”

“그 금액에 손 쉽다는 말이 붙는군요.”

“흐흐. 잘하면 월드 레코드도 가능하다.”

“상상이 잘 가진 않지만······좋긴 하네요.”

탄력 받은 흥행은 멈출 줄을 몰랐다.

미국과 한국 등지에서는 재개봉에 들어가며 2막을 올리기도 했다.

흥행 성적이 워낙 기록적이라 이걸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정도면 J.H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겠네요.”

“그럼. 성공은 다른 어떤 걸로도 대체 할 수 없는 홍보 수단이야. 이미 우리와 제휴하고 싶다는 회사들이 줄을 섰다고.”

“규모를 늘릴 생각이세요?”

“그건 너랑 상의를 해 봐야지. 어디까지나 J.H의 대표는 너니까.”

“대표님 의견을 따라갈게요.”

“에헤이. 그러면 안 되지. 넌 회사 대표이자 얼굴 마담이야.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결국 네 의사를 따르게 될 거라고. 미리 연습을 해 둬야해.”

J.H는 황천과 갈라섰지만 자본과 인력 면에서는 아시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게다가 이번 성공의 여파도 있을 테니, 규모의 확장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의 드림이나 C.C 스튜디오 같은 거물로의 성장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책임감이 어깨를 팍팍 누르네요.”

“하하, 익숙해지라고. 네 밑에서 일하는 사람만 수백이야. 원대한 꿈을 꾸려면 그만큼의 각오도 수반돼야 하는 거라고.”

“아시아 통합 미디어 회사.”

“그래. 꿈같지만 이제 첫 발을 뗀 셈이라고. 세상 누구도 널 무시 하지 못해. 갈 수 있는 길이 쫙 펼쳐진 거라고.”

아직 신생아에 불과하지만 역량은 보여줬다.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힘을 보여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꿈에 불과했던 일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까지 대표님도 함께 해 주실 거죠?”

“그럼. 나 아니면 누가 네 무리수를 다 받아주겠냐.”

“하하. 그것도 그러네요.”

웃음으로 시작을 기념했다.

#

“그래. 무리 없이 흥행하고 있다고?”

병실 침대에 누운 왕호룽.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웃었다.

“역대급 스코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월드 레코드가 깨질 거라 예상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후후. 확실히 난 사람은 난 사람이야. 기회가 왔을 때 잡는 자가 용이라 하지 않는가.”

“회장님의 눈이 그만큼 빼어나신 거죠.”

“아부 실력이 자꾸 느는군.”

가볍게 웃고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을 다 감고 있던 기계 장치들은 많이 간소화 돼 있었다.

몸을 회복했다는 증거였다.

“알아보라고 한 건 어찌 됐나?”

“확실히 회동이 있었습니다. 산동 쪽 지부에서 움직임이 있었던 걸 우리 쪽 세작이 알아냈습니다.”

“역시 그런가. 멍청한 것들. 외세에 휘둘리기나 하고.”

“또 다시 움직일 거라 보십니까?”

“아마 그러겠지. 저들끼리 악 바쳐 막으려 한 영화가 역대 급으로 흥행하고 있지 않나. 잘난 저들의 눈에서는 인정 할 수 없는 결과겠지.”

피습으로 왕호룽은 쓰러졌지만 그의 힘까지 완전히 마비 된 건 아니었다.

이미 정해놓은 방침대로 인력이 움직였고 정보를 수집해 둔 것이다.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 하리라 보십니까?”

“아니. 지금은 아니야. 이미 세계 정상급의 배우로 명성을 떨치고 있지. 이 상황에서 그를 죽인다면 그 명성은 시대에 새겨질 거네.”

“시대의 화신이 되는 거군요.”

“그렇지. 좋은 비유네. 동양에서 온 용. 화신은 숭배자를 낳고, 숭배자는 결국 기존의 틀을 부수러 할 거네. 저들 입장에서는 가장 꺼려지는 결과겠지.”

“그럼 수수방관 할 거란 말입니까?”

“아니.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방법은 상징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것. 아마도······”

왕호룽이 마른 입술을 손끝으로 긁었다.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영화제를 노릴 거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

유일한 기회였다.

#

“수고하셨습니다.”

화보 촬영을 끝내고 은사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진호의 연인으로 더 유명한 그녀지만 나름의 커리어는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언니, 수고했어요.”

새로 온 매니저가 냉큼 물병을 가져왔다.

조금 전까지 냉장고에 있었는지 차가웠다.

은서가 한 모금 마시며 잘했다는 듯 웃었다.

“일은 익숙해졌어?”

“네.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거 같아요. 운전만 제대로 하면 될 거 같은데.”

“천천히 해. 하다보면 익숙해지니까.”

“네, 언니.”

여동생 같아서 참 귀엽다.

은서가 끄덕이는 매니저를 잠시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냈다.

기다리는 님의 톡이 와 있었다.

“와. 진호 배우님이에요?”

“응. 화보 찍으러 간다니까 응원 톡 남겼네. 봐봐, 이모티콘도 썼다고. 귀엽지?”

“헤에. 의외네요. 저는 되게 무뚝뚝하고 카리스마 있는 분인 줄 알았는데.”

“보통은 그런데 나한테는 아니지.”

은서가 기분 좋게 웃었다.

남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건 어지간히 기뻤다.

“언니, 부러워요. 엄청난 슈퍼스타랑 연애도 하고. 얼굴도 엄청 예쁘시고.”

“어쭈? 그 사이에 아부만 늘었니?”

“진심이거든요? 여자 매너저끼리 모여서 얘기하면 다 언니 부럽다는 말밖에 안 해요.”

“그래? 뭔가 그렇게 부러운데?”

“일단 뭐, 진호 배우님 엄청난 스타잖아요. 돈도 상상을 초월하게 벌고. 게다가 사생활 문제가 있기를 하나 구설수가 복잡하기를 하나. 진짜 완벽한 남친상이잖아요.”

아부라도 이 정도면 좋아해 줘야 할 거 같다.

은서가 말려 올라가는 입 꼬리를 막지 못했다.

자기도 다 아는 얘기였지만 남에게서 듣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아, 그리고 오스카에 후보로 올라간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거 받으면 완전 탑이잖아요.”

“오스카? 그 얘기는 어디서 들었어?”

“아직 못 보셨어요? 맞다, 맞다. 일하시냐고 못 보셨겠네. 조금 전에 올라온 기사거든요.”

매니저가 폰을 꺼내 기사 하나를 보여 주었다.

오스카의 각 수상 항목 별 후보군이었다.

변동 가능성은 남아 있었지만 기사화 된 거면 대부분은 확정이라 봐도 좋았다.

“남우주연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거의 전 부문에 올라갔네?”

“그래서 놀랐다니까요. 이러다가 몇 관왕 하는 거 아닐까 하고요.”

“어. 그래. 남우주연상하고 작품상은 확실히 노려 볼 만하지. 조연상도 있고. 각본이나 촬영상도 가능성은 있을 거야.”

물론 경쟁작이 없는 건 아니다.

이미 상반기에 어마어마한 히트를 친 ‘로드 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아 오스카를 예약해 두었다고 평 받았던 영화다.

하지만 후반기는 진호의 영화가 거의 모든 부분을 휩쓸고 있었다.

흥행은 물론이거니와 평단의 평 역시 압도적.

굳이 비교하자면 수상 확률은 후자가 더 높았다.

“그거 다 석권하면 완전히 세계 톱 배우겠네요?”

“그러게. 세계 톱이라.”

이렇게 함축하니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은서가 ‘세계 톱’이라는 말을 두어 번 중얼거리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차 시동 걸어 둬.”

“회사로 가세요?”

“아니. 오빠 좀 보러 가야겠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

집으로 향하던 은서의 차는 블루 아이 사옥으로 방향을 틀었다.

진호가 집이 아닌 회사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어, 왔구나.”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회사 사람들도 그 기사 보고 모인 거구나.”

“응. 조금 전에 확인하고 나도 올라왔어. 너도 그거 때문에 급하게 온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오스카잖아. 기사 내용 확실 한 거 맞지?”

“확실하다. 내가 확인해 봤어.”

마지막 말은 최현석의 것이었다.

그의 얼굴은 꽤나 상기되어 있었다.

“내부 컨펌을 받고 올린 기사래. 후보군은 이걸로 확정이야. 여자 배우가 거의 없던 터라 몇 개 후보군은 빠지지만 이 정도면 석권이라고 봐도 좋다.”

“대표님. 아직 수상 안했거든요.”

“아니 우리 말고 상 받은 곳이 없잖아. 각본상이든 감독상이든 남우주연상이든 작품상이든. 누가 뭐라고 해도 올해는 우리 영화가 완전 씹어 먹었다고.”

비속어를 사용 할 만큼 흥분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무려 오스카였다.

예전에도 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긴 하지만 이번과는 경우가 달랐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함께 제작했다.

순전히 모든 공로가 자신들의 것으로 돌아오는 경우였다.

“오빠, 우리 미리 샴페인이라도 까야 하는 거 아냐?”

“아이고. 너까지 왜 이러냐. 아직 수상 결과도 안 나왔어. 가봐야 아는 거라고. 게다가······”

“게다가?”

“우리를 고깝게 보는 사람도 꽤 많다고. 오스카가 개방적인 건 맞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존재하니까.”

“차별이라도 받는 거야?”

“가능성은 열어두자 이거야. 지금 너무 기대했다가 미끄러지면 실망만 커.”

진호는 오릭스에 대한 것도 염두에 두었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자신이 상을 타면 그 무엇보다 상징적인 결과가 되는 거니까.

반드시 막고 싶을 것이다.

“지금은 그냥 후보군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을 축하하자. 그것 만해도 엄청난 영광이라고.”

“오빠가 그렇게 말한다면. 하지만 난 오빠가 꼭 상을 탈거라고 믿고 있어.”

“그래, 그래. 그리고 말마따나 나도 내가 탈 거 같다. 이제 됐냐?”

“응! 히히.”

그제야 은서가 웃고 최현석도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어린애든 어른이든 상이라는 건 그렇다.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었다.

“오스카라.”

매력적인 이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