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74화 (174/178)
  • Chapter79. 누군가 나를 욕할 때(2)

    두 모자는 큰 걸음으로 들어왔다.

    방송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당당한 걸음이었다.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흰 그저 진실을 밝혔으면 싶은 거죠.”

    “이해합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소년의 어머니.

    중년 여성은 스쳐가는 걸음에 진호를 슬쩍 흘겨봤다.

    뭔가 긍정적인 시선은 아니었다.

    “앞선 내용은 대기실에서 전부 들으셨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도하지 않은 사고라는 얘기 말이죠.”

    “네.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진호 씨가 그 사건을 막을 수는 없었겠죠.”

    “아, 그렇습니까?”

    손무열은 살짝 실망하고 진호는 눈빛을 달리했다.

    의외로 긍정적인 답을 내어놓고 있었다.

    “다만, 사건이 벌어지고 난 다음에 사람 됨됨이가 나오는 법이죠.”

    “그 말씀은?”

    “개인적으로 진호 씨에게 실망했습니다. 일이 터졌을 때나 잠깐 얼굴을 비췄지 그 다음 부터는 나 몰라라 하더군요.”

    “이게 사실입니까?”

    진호는 답을 멈추고 중년 여자를 물끄러미 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떠드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차라리 돈을 뜯어내면 이해하도 할 터.

    하지만 이런 비방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제가 어떤 부분에서 나 몰라라 했는지 묻고 싶네요.”

    “다친 애 확인하러 한 번 오기라도 했나요? 사과 전화도 안 와, 제대로 된 성의도 안 보여. 이러니 제가 실망을 안 할 수 있습니까?”

    “······”

    “진호 씨. 이에 대한 반박은 없는 건가요?”

    손무열은 희희낙락했다.

    이야기가 자극적이 될 수록 기쁜 건 그였다.

    “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군요.”

    “뭔데요?”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사람 사이에 끼어서 많이 놀랐을 텐데.”

    “흥. 이제 와서 걱정하는 시늉인가요?”

    “아뇨.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 어머님께서는 아이 병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으셨더군요.”

    “무, 무슨 소리에요?”

    진호는 권모술수에 익숙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조조나 제갈량.

    심지어 주왕마저도 온갖 권모술수에 통달할 이였다.

    상황을 의심하고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것은 숨 쉬는 당연한 일이었다.

    “입원한 병원에 직원을 보내 두었습니다. 24시간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라고 했죠.”

    “거짓말이에요.”

    “아이와 찍은 사진, 영상, 기록 모두 남아 있습니다.”

    진호가 가볍게 손짓하자 대기 중이던 매니저가 카메라 앞으로 들어와 자료를 넘겼다.

    손무열은 살짝 놀랐지만 막지는 않았다.

    “사실 좀 이상했습니다. 아이가 다쳐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저와 회사 측에서 건 모든 통화를 거부 하시더군요. 보낸 돈은 그대로 받으시면서.”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갑자기, 우연히 사고에 휘말린 모자가 보상을 하겠다는 회사의 연락을 모조리 무시한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당신에게 실망했기 때문 아닙니까?”

    “무엇에 말입니까?”

    “사고를 방치 한 거 말입니다!”

    “그건 납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게 실망한 건 후처리에 대한 태도라고 들었는데. 연락을 받아야 보상을 하든 대면을 하든 할 거 아닙니까.”

    자기 말이 자기를 걸었다.

    중년 여자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분위기가 냉각됐다.

    “게다가 아드님 말입니다. 한국말을 전혀 못 하더군요.”

    “그,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어머님은 이렇게 유창한데 아드님은 한 마디도 못하는 것이 이상해서요. 제 직원 말에 따르면 중국어는 매우 유창하다고 하더군요.”

    “나, 남편이 중국 사람일 뿐입니다. 그게 잘못인가요?”

    “아뇨. 그런 말은 안 했습니다. 다만, 남편 분 말입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오롱전자에 다니시고 계시죠?”

    중년 여자의 얼굴은 더욱 더 굳어졌다.

    “그리고 그 오롱 전자는 황천의 계열사고요. 확인된 바에 의하면 얼마 전까지 황천의 미디어 나눔, 아시아 지부에서 일하다가 급히 발령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전혀 상관도 없는 오롱 전자로.”

    “그게 지금 상황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오롱 전자의 회사원 숫자는 전부 스물 남짓. 그 중 일부가 최근에 한국으로 출장을 왔더군요. 입국 후의 행적이 묘연해서 추적이 어렵다가 최근에 그 행적을 발견했습니다.”

    방송 출연 직전에 알아낸 정보들이다.

    국내 행적이 워낙 묘연한 터라 방향을 중국으로 돌린 것이 적중한 케이스.

    황천에서 넘어온 직원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얼굴들입니다. 익숙하지 않나요?”

    진호는 송학이 넘겨준 파일 중 얼굴이 나온 사진을 들어 올렸다.

    중년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처, 처음 보는 얼굴입니다.”

    “그런가요? 전 모두 익숙한데. 그 날, 사고가 발생 할 때 이 사람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한 명 한 명 모두 기억하고 있죠. 그리고 주변 행인들이 제출해 준 영상에서 모두 대조 완료했습니다.”

    “우연입니다······”

    “신기하군요. 남편 분의 회사 직장 동료들이 단체로 한국에 들어와 시위대와 마찰을 빚었는데 우연이다.”

    진호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중년 여자는 그 시선을 마주 보기를 포기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럼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 볼까요? 이옌 씨.”

    “······네?”

    “이옌. 화교더군요. 한국 이름으로는 최만순. 맞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연락도 안 받고 뭔가 수상하다 싶어서 찾아봤습니다. 그렇다고 불법적인 일은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은근히 허술해서 찾기가 매우 쉽더군요.”

    황천에서 넘어온 직원이 알려준 방식이다.

    화교는 화교 나름의 네트워크가 있고, 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돈을 풀어서 사람을 구하니 쉽게 찾아냈다.

    “재미있는 건 주변 분들의 이야기로는 최근까지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애는 물론이거니와.”

    “······그 사람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그럼 남편 분과 언제 결혼했는지 물어도 괜찮겠죠?”

    “그건 제 사생활입니다!”

    “최근 한 달 내에 결혼했다는 것에 전 재산을 걸죠. 어때요? 받아들일 자신이 있습니까?”

    진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여자를 응시했다.

    이건 도박이 아니다.

    이미 2주 전에 결혼한 사실을 알고 있다.

    황천 직원의 도움으로 여자의 남편을 찾았을 때 자세한 정보를 획득했다.

    이건 그저 화풀이일 뿐이다.

    “아하하. 진호 씨. 방송에서 그런 말씀은 좀 부적절해 보입니다.”

    “그렇군요. 제가 실례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조금 흥분했던 모양이네요.”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도 될까요?”

    “아. 다음 주제 말이군요. 대신 이건 어떤가요? 저 아이. 최근까지 위탁시설에서 있었다는 사실.”

    “······!”

    의심을 시작한 이후로 가닥이 잡혔었다.

    소년, 여자, 남편.

    그리고 시위대와 붙은 사람들.

    모든 상황이 작위적이고 어색한 냄새가 났다.

    방향을 알면 길을 찾는 건 쉽다.

    진호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내막을 파해졌다.

    “이제 그만하시죠. 가짜 부부에 가짜 아들. 그리고 만들어진 사고. 속셈이야 뻔하지만 들어나 봅시다. 무슨 의도로 이런 짓을 벌인 겁니까?”

    “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네요. 자꾸 이상한 소리 하시면 전 방송에 출연 할 수 없습니다.”

    “이미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아마 사람이 찾아가겠죠. 그 전에 자백 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거, 거짓말. 당신 이런 짓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는 있는 거야?”

    “그럼 나한테 이런 짓을 하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하고 한 건가?”

    진호가 몸을 기울여 중년 여자를 직시했다.

    잘나가는 연예인, 공인이라 불리는 배우.

    세간의 시선을 신경 쓰고 항상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 자신을 욕할 때, 그것을 마냥 참고만 있을 만큼 도량이 넓지 못하다.

    맞으면 맞은 만큼 때려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어디 두고 보자고. 어느 쪽이 더 무서운지.”

    생방송에서 카운터를 날렸다.

    #

    방송은 미친 듯 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진호의 출연부터 기대감이 올랐는데, 내용마저 충격적이었다.

    마치 추리 영화나 스릴러의 한 장면처럼.

    진호가 사기꾼 여자를 조곤조곤 파고 들어서 박살내는 장면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시청자 게시판이며 온갖 커뮤니티에 그 날의 영상이 편집되어 돌아다녔다.

    [개쩌는 카리스마.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완전 이미지 탈바꿈]

    [진짜 치밀한 사람이더라. 증거 다 찾아와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몰아넣는 거 봐]

    [연예인이라고 마냥 당하고 있을 필요는 없어. 조질 때는 확실하게 조져야 하는 거라고]

    [완전 후련하다! 내가 사건 이상하다고 말 할 때는 정신병자라고 놀리더니 이제 와서 물 타기 하는 거 봐라!]

    차고 넘쳐서 터질 만큼 글이 올라왔다.

    정도를 넘어서 국민청원에도 글이 개재되고 정치인이나 동료 연예인들도 발언을 하나 둘 뱉었다.

    증거가 탄탄하고 영상에 남은 반응이 증명했다.

    이미 상황은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하하하.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하고 있었냐?”

    “방송 잡기 전에 마무리 했어요.”

    “아이고. 그런 거면 미리 좀 알려주지 그랬냐.”

    “괜히 걱정 끼치기 싫었어요. 승리 할 자신감도 있었고.”

    회사 분위기도 한 번에 폈다.

    사건 이후로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라 바뀐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이런 분위기면 악플을 단 놈들을 대거 고소해서 때려잡기도 편했다.

    “오빠,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나머지는 경찰에 맡겨야지. 증거랑 다 확보해 줬으니까 알아서 조사 한 후에 검찰로 넘길 거야.”

    “그럼 역시 중국에서 꾸민 짓이지?”

    “아마도. 황천의 다른 무리나 우리가 꼴 보기 싫은 중국 쪽 사람이겠지.”

    “으. 치사해라.”

    치사하지만 효과적이었다.

    진호가 작정하고 파헤치지 않았으면 그대로 여론의 포호를 받아서 영화에도 타격이 갈 뻔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람은 휩쓸리기 쉬우니까.

    “그보다 진호 너 말이야. 이번에 이미지 한 번 제대로 심어 줬어. 찬양 글이 수두룩하다고.”

    “해야 할 일을 한 거지. 아무리 연예인이라고 해도 맞고만 살 수 있나. 억울하게 맞으면 되레 때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음. 그렇지. 사람들이 너무 연예인을 때리기 좋은 샌드백으로 본단 말이야. 그들도 엄연히 사람이고 감정이 있는데.”

    안 그래도 비슷한 논조의 칼럼이 대거 올라왔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연예인에 대한 고찰이었다.

    억울해도 참고 공인이니 억눌러야 했던 이들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들이 많아졌다.

    “근데 좀 걱정인 것도 있어요.”

    “뭐가?”

    “보면 막 영화처럼 하잖아요. 사람도 구해서 가족을 만들고. 이런 짓까지 하는 사람들이 한 번으로 그만 두겠어요?”

    은서가 조심스럽게 걱정을 드러냈다.

    일이 잘 끝난 건 좋지만 앞으로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이번 방송으로 진호는 칼을 뽑은 것과 마찬가지.

    어찌 보면 상대에 대한 선전포고라 할 만 하다.

    연인이 걱정되는 은서였다.

    “아마 당분간은 괜찮을 거야. 영화 흥행도 문제없고 메신저를 공격하는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으니까. 여기서 더 나가면 자기들이 역풍을 세게 맞는다는 걸 모르진 않을 거야.”

    “그럼 그 뒤에는?”

    “경계하고 나아가는 거지. 지나치게 두려워 할 건 없어. 세상사 어차피 쉬운 일은 없잖아. 상대가 크다고 지레 겁먹으면 될 일도 되지 않아. 눈앞의 것에 집중하고 먼 것을 대비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면 되는 거지.”

    “갑자기 거북이래.”

    “하하. 생각나는 게 거북이 밖에 없더라.”

    농담조의 말에 그제야 은서가 웃었다.

    그 말대로.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긴다 해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결국에는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다.

    적어도 그와 함께하면 그럴 터.

    이건 사랑 이전의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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