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73화 (173/178)

Chapter79. 누군가 나를 욕할 때(1)

이때다 싶은 사람들이 많았다.

기사나 방송에서 진호의 행적을 폄훼하고 댓글에서는 온갖 비방이 넘쳐났다.

심각한 것들은 추려서 고소로 때려잡고 있지만 그 숫자가 정도를 넘어섰다.

마치 혐오를 하고 싶어서 혐오의 말을 다는 것 같았다.

두서없는 악의가 넘쳐났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 너 같은 쌍판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건 국격을 낮추는 행위다. 아주 지랄 나셨네.”

“그 정도면 순한 거지. 이쪽은 패드립이 일상이야. 어머니 아버지가 이런 거 보면 안 될 텐데.”

몇 개 골라서 읽던 진호가 포기했다.

멘탈이 강철 같은 그이지만 계속 보고 있자면 속이 울렁거리고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 새끼들은 잡았데?”

“아직 마땅한 성과가 없는가 보다. 싹 다 자취를 감추었어.”

“하. 무슨 닌자도 아니고 도심 한 복판에서 자취를 감추냐. 경찰에도 의뢰를 한 거지?”

“응. 근데 협조가 영 미지근하다. 위에서 무슨 압력이라도 받은 건지 대충대충이야.”

“쯧. 하여튼 윗대가리들이 문제라니까.”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건 악플러만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돈 받고 편의를 봐주던 공위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은 건수가 없어서 나서지를 못하던 걸 이제 슬그머니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진호를 훼방 놓아서 잘 보이겠다는 심산.

뻔하고 저열한 수단이었다.

“역시 이 상태로는 어렵겠네. 정식으로 인터뷰를 한 번 해서 흐름을 바꿔야해.”

“대표님은 꺼려하던데. 지금 상황에서 공개 석상에 나가는 건 때려달라는 말과 같다고.”

“맞아야 한다면 맞아야지. 어차피 방향을 잃은 악의는 우리가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 막연하게 이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들을 내편으로 만들어야지.”

무작정 악의를 쏟아내는 것들은 제어가 불가능하다.

어떤 설명을 하든 어떤 변명을 하든 그들 귀에는 들리지 않을 테니까.

대신 분위기에 휘둘려 멋모르고 끼적이는 이들은 아우를 가능성이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두 눈으로 판단 할 수 있게끔 단초를 제공하면 되니까.

“그리고 나. 탱커지만 딜도 세다고.”

“어련하겠냐.”

맞고만 있을 생각도 없었다.

#

종편에서 하는 프로그램 뉴스 포인트.

가장 핫 한 이슈만을 뽑아서 사회자와 함께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생방송 특유의 난해함과 사회자의 집요함이 합쳐져서 ‘꺼려하는 프로그램’ 1위에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시청률이 높고 발언에 대한 자유도가 높아서 필요한 사람에게는 알맞은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진행자 손무열입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홍 진호입니다.”

프로그램 대기실에 손무열이 직접 찾아왔다.

내로라하는 사람을 다 다뤄 본 그이지만 진호 정도 되는 급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기피하는 프로그램이니까.

이건 그에게도 굉장한 기회였다.

“진행 방향은 전달 받으셨죠?”

“네.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먼저 나열하고 질답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네. 방송 특성 상 불편한 질문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염두에 두고 계시겠죠?”

“물론입니다. 그 정도 각오 없으면 안 나왔죠.”

“그나저나 영화는 재밌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적인 인사를 뒤로 하고 손무열이 떠났다.

세간의 평가와는 다르게 꽤 싹싹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진호야. 생각보다 방송이 부드럽게 흘러갈 거 같다.”

“그러면 나야 좋지.”

“응. 보니까 네 팬인가 봐. 이래서 사람이 평소에 공덕을 쌓아야 한다니까.”

“뭘 또 공덕까지 나오고 그래. 가지고 오라고 한 건 다 챙겨왔어?”

“응. PD에게 전달해 뒀지.”

“흠.”

“왜, 긴장돼?”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묘하게 떨려서.”

진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거울을 응시했다.

딱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흥분이 느껴졌다

“이제 와서 캔슬은 어려운데······”

“아니, 괜찮아. 생방송이라 나도 모르게 굳었던 모양이야. 나, 갔다가 올 테니까 형은 여기서 기다려 줘.”

“응. 떨지 말고 잘 해.”

생방송 30분 전이었다.

#

수십 대의 카메라 앞에 진호가 앉았다.

그 앞, 사회자 자리에서는 예의 손무열이 위치했다.

대기실에서와 다른 어딘가 매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의 초대 손님으로는 그야말로 거물이 등장하셨습니다. 인사하시죠, 영화배우 홍진호입니다.”

“반갑습니다, 홍진호라고 합니다.”

신호에 따라 진호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번뜩이는 카메라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고 따라다녔다.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흥행중인 영화에 대해서 잠깐 거론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저야 영화 이야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최근 국내 700만을 돌파. 기세라면 국내 영화 기록을 깰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일단은 감사하죠. 많은 분들이 영화를 사랑해 주고 계시니까요. 결과에 자만하지 않고 항상 겸손하려고 합니다.”

“근데 향간에서는 이런 호성적인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들어보셨나요?”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거죠?”

손무열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마치 지금부터 시작이야, 라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홍콩과 중국의 문제를 직접 가지고 와서 영화 흥행에 이용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런 얘기가 있었나요? 저는 처음 들어보네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리가 있을까요?”

“글쎄요. 어떤 부분에서 그리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의 주제는 명료합니다. 현실과 부합되는 면이 있다면 그만큼 영화가 현실을 잘 다루고 있다는 얘기겠죠.”

“의도는 아니었다?”

“만약 그 상황만을 꼬집기 위해 영화를 구성했다면 보다 더 노골적으로 만들었겠죠. 영화는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손무열이 살짝 실망한 얼굴로 물러났다.

덥석 물기를 바란 표정.

‘대기실에서는 사람 좋은 얼굴을 하더니.’

이게 본모습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아직 안 들어갔던 겁니까? 식은땀이 다 나는군요.”

“하하, 이 정도에 긴장하시면 곤란합니다. 아직 할 얘기가 많거든요.”

“미리미리 물을 많이 마셔둬야겠군요.”

물로 입술을 축이며 진호가 가볍게 웃었다.

애초에 각오했던 일.

진행자가 거칠게 나온다고 당황 할 건 없다.

“자, 그럼 시위대에 대한 것부터······”

깊어가는 밤.

이야기도 점차 깊어져갔다.

#

시위대 사건에서 객관적인 증거는 꽤 많다.

일단 시위대를 찍고 있던 행인들이 상당히 많았던 터라 영상 증거가 다양했다.

회사에서는 발 빠르게 이런 영상을 수집했고 이미 경찰에 제출한 상태였다.

“보셨다시피 시위대와 저 이름 모를 사람들이 마찰을 빚으면서 중간에 아이가 곤경에 처했습니다. 전 회사 휴게실에서 이걸 보다가 급하게 달려 나갔던 거죠.”

“그렇군요. 이것만 보자면 확실히 진호 씨가 훌륭한 일을 한 것 같네요.”

“칭찬을 받으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앞뒤 상황을 알지 못한 채 근거 없는 비난이 많아지는 걸 막고 싶을 뿐이죠.”

진호는 차근차근 말을 풀었다.

근거를 가지고 말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화가 나도 설득이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향간에서는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듣기 무섭네요.”

“하하. 어찌 보면 그렇습니다. 저 시위대와 맞붙은 무리. 저들을 진호 씨. 혹은 블루 아이가 사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 도 안되는 질문입니까?”

“회사나 진호 씨 입장에서는 시위대가 골칫거리 아니었나요? 사람을 부려서 이들을 쫓아낸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발상은 아닐 텐데요?”

이걸 이런 식으로 왜곡 한단 말인가.

진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 무리와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죠. 저희는 되레 그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경찰에도 의뢰를 해 놓았으니 궁금하시면 확인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찾는 시늉이 증거는 되지 않죠.”

“생각이 있다면 굳이 저희가 그런 악수를 들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겠죠. 고작 시위대 몇 명을 해산시키기 위해서 힘쓰는 분들을 고용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다음 주제로 넘어가죠.”

이 새끼가.

진호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속으로 꾹 눌렀다.

수많은 카메라가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침착성을 잃는 쪽이 지는 게임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아이가 다쳤다는 사실입니다. 맞습니까?”

“동의합니다. 저도 아이가 휘말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향간에서는 돈 때문에 더 중요한 걸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건 납득하기 어렵군요. 사고가 벌어진 건 제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굳이 그걸 돈과 결부시키는 의도를 모르겠군요.”

“굳이 자극적인 주제를 써서 영화 외적인 마찰을 빚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아시다시피 진호 씨는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아닙니까. 그런 분이 공공연하게 중국을 비판하고 있으니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것이······”

“그게 돈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건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민감한 주제가 더 돈이 되니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 영화의 가치를 그렇게 평가하시는 건가요?”

공격적인 진호의 발언에 손무열이 살짝 움찔했다.

“곡해하셨습니다. 이건 제 사견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입니다. 어디까지나 세간의 평가를 두고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일부는 그렇게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 지금껏 영화를 하며 한 번도 돈에 혹해서 무언가를 그릇되게 호도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제 인생을 걸고 장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문제는 넘어가고 다시 본래 주제로 돌아와 보죠. 진호 씨는 지나치게 민감한 주제가 이번 사건을 일으켰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발 빼는 속도가 참 빠르기도 하다.

진호가 속으로 비웃으며 말을 다듬었다.

“지금껏 영화의 역사를 살펴보면 민감한 주제라는 건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금지된 사랑을 다룬 영화, 학살자를 조명한 영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일대기. 갈등의 불씨가 되고도 남을 영화들이 수두룩했죠.”

“그러니까 영화에서 민감한 주제를 다뤄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잘못은 아니다. 이런 건가요?”

“흔한 논리입니다. 폭력적인 영화가 폭력을 부른다. 거친 게임이 문제를 만든다. 규제는 틀을 잡는 거지 어떤 하나의 티끌을 잡아서 전체를 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다친 건 무분별한 두 무리가 난폭하게 다투었기 때문입니다. 영화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 같은데요?”

“그럼 사회자님께도 묻죠. 전날 본 댄스 영화가 마음에 들어서 길가에서 춤을 추다가 실수로 누군가를 쳤습니다. 이 경우에 영화를 탓할 겁니까?”

“비약 아닙니까?”

“같은 논조입니다. 영화가 잘못이 아닌, 길에서 생각 없이 춤을 춘 사람이 잘못인.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는 아닐 텐데요?”

생각 없이, 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손무열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진호 씨는 달변가네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을 뿐입니다.”

“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관계자를 이 자리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

이건 사전에 공지받지 못한 내용이다.

손무열이 씩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한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방송국 조명이 그 쪽으로 쭉 뻗고 한 여인과 소년이 그 너머에서 걸어 나왔다.

“하.”

사고 당사자와 그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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