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63화 (163/178)

Chapter74. 변화하는 정세(1)

알 베르노의 합류 이후로 영화는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필요 인력이 채워지고 장소 섭외와 시나리오 수정 등이 가열 차게 진행되었다.

진호는 메인 디렉터의 입장으로 몇 몇 서브 감독을 둔 채 전체를 지휘했다.

많은 사람을 이끄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나름대로 잘 수행했다.

“최종 시나리오는 이쪽으로 가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내용 확인하고 수정 사항 있으면 따로 메일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연락드리죠.”

이제는 제법 태가 나기도 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다 보니 는 것이다.

“정식 촬영 날짜 정해졌다. 스케줄 문제로 촬영 순서를 조정해야 할 거 같은데, 확인해 봐.”

“많이 꼬이나요? 캐릭터 감정선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쪽으로 촬영 순서를 배정하고 싶은데.”

“대형 선박을 대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딜레이 되고 있나 봐.”

“황천에서도 그래요?”

“그쪽은 또 무슨 일 있나 봐. 되게 바쁜 모양이더라.”

“그래요? 그 건은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촬영 순서는 꽤 중요하다.

배우는 배역에 몰입하고 그 감정을 이어가려고 한다.

순서가 바뀌어서 감정선이 깨지면 전체적인 퀄리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근데 황천에서는 무슨 일이래요?”

“글쎄다. 나도 모르겠어. 연락을 담당하는 친구가 계속해서 연락이 안 되더라. 중국 내부에서 어떤 일이 터진 거 같긴 한데······”

“하필 이럴 때.”

이 바쁜 시기에.

진호가 나직이 혀를 찼다.

제작에만 총력을 가해야 할 시기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건 달갑지 않았다.

특히, 중국에서.

“별 일은 아니어야 할 텐데.”

어쩐지 불안함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

촬영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주연인 진호와 악역이 될 알 베르노부터 우선적으로 시작했다.

지독한 차별과 멸시를 받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촬영 환경은 상당히 혹독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홑옷으로 버티고 계란을 머리에 맞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처절 할 수록 결말이 극적이다.

그 사실을 아는 만큼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춥지. 괜찮냐?”

“버틸 만 해. 머리가 끈적끈적한 게 좀 그렇지만.”

“하, 새끼들. 적당히 던지라니까.”

“됐어, 형. 적당히 던지면 모양 이상하잖아. 더 맞고 더 비참해야 나중이 빛이 나는 법이라고.”

“보는 내가 힘들어서 그렇다.”

당사자인 진호보다 매니저인 송학이 더 속을 끓였다.

퀭한 눈으로 머리에 계란 맞은 채 비적거리는 진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쓰렸다.

촬영은 또 얼마나 긴지.

추위에서 몇 번이나 같은 장면을 촬영하고 또 촬영했다.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싶은데, 감독이자 배우인 진호가 계속 하자니 할 말도 없다.

“장면 확인하고 올게.”

“그래, 그래. 있다가 먹을 수 있게 라면이라도 좀 끓여놓을까?”

“아니야. 최대한 수분끼 빼고 앙상하게 나가야 해. 배고프면 형 먼저 먹고 있어.”

“아우, 야. 어떻게 나 혼자 먹냐.”

“흐흐. 촬영 내내 이럴 건데 벌써부터 그러면 형도 못 버텨. 나랑은 역할이 다르잖아. 잘 먹고 든든해야 옆에서 보조해주지.”

“하. 너도 참 징하다.”

진호가 가볍게 웃고는 촬영분을 확인하러 갔다.

3자가 보기에는 완벽한 장면이었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앵글 좀 바꿔서 다시 갈게요. 사이드에서 너무 당기지 말고 담담하게 잡아주세요.”

모든 것을 쏟아 낼 때 까지.

진호는 계속해서 촬영했다.

#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진호도 알 베르노도 다른 출연자들도 역량을 다해서 촬영에 임했다.

시나리오는 훌륭했고 연출은 빼어났다.

많은 감독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 빼어남에는 진호의 특출남이 바탕이 됐다.

입을 모아 말하기를 ‘재능’이라 했다.

진호는 어떤 장면이 어떻게 그려져야 더욱 더 멋있고 실감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배우가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야 하는지도 꿰뚫었다.

마치 좋은 요리사처럼.

주어진 재료들을 잘 사용해서 요리를 만들어갔다.

“갑자기 촬영 금지라니? 무슨 소리야?”

하지만 불행은 늘 그렇듯 불쑥 찾아왔다.

중국에서 날아온 소식이었다.

“홍콩에서 큰 일이 터졌거든. 무슨 송환 문제라나? 중국이 개입해서 시위가 커지고 비행까지 통제 당했어.”

“그거랑 영화 촬영이랑 무슨 관계인데?”

“홍콩 내 모든 촬영이 금지됐어. 정해진 기관의 정해진 방송만 가능한 거야.”

“이건 완전 독제잖아!”

“어쩌겠어. 실제로 그런 걸.”

홍콩에서 벌어진 대형 시위가 발단이 된 것이다.

이미 일대 로케이션이 스케줄이 잡혀 있었던 터라 이는 꽤 큰 타격이었다.

“차라리 장소를 바꾸는 건 어때?”

“안 돼. 이미 후반 씬을 홍콩에서 찍어 뒀다고. 이제 와서 장소가 달라지면 그 어색함을 어떻게 할 건데. 게다가 장소는 내가 직접 다 선정한 곳이야. 이제 와서 다른 곳을 고르면 영화가 이상해져.”

촬영장소는 씬의 분위기를 그려내는 매우 중요한 연출 도구다.

진호는 홍콩의 거리를 영화의 메인 배경으로 정했다.

그걸 이제 와서 바꾸는 건 영화를 엎으란 말과 같았다.

“있어 봐. 일단 왕 형님하고 얘기부터 해 봐야겠어.”

진호가 다급하게 핸드폰을 꺼냈다.

중국과 이어지는 가장 빠른 핫라인은 누가 뭐래도 왕호룽이었다.

“네, 형님. 접니다. 소식 들으셨죠?”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 역시 밝지 않았다.

#

왕호룽은 난감함을 지우지 못했다.

그로서도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설마하니 홍콩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의 입장이 워낙 강경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하네.”

“그럼 진짜로 촬영이 아예 안 되는 겁니까?”

“완전히 통제에 들어갔어. 당에서도 이건 자존심 싸움이야. 이걸 좌시하면 통제권을 잃는다고 두려워하는 거지.”

“하.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답답한 건 왕호룽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이상은 아시아, 그리고 중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그림이다.

홍콩의 상황은 되레 시대를 역행하는 행위.

진보가 아닌 퇴보에 불과했다.

“일단 당의 고위층과 약속을 잡아 놨네. 개인적으로 만나서 타개책을 한 번 찾아보자고.”

“고위층이면 많이 높은 사람입니까?”

“적어도 열 손 안에는 들 거네.”

그 정도면 매우 높다.

진호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

홍콩의 상황은 둘째 치고 촬영만이라도 재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아, 오고 있다는군. 바로 가지.”

“네.”

망설이지 않고 왕호룽과 함께 움직였다.

#

“뭐라고 했습니까?”

고위층 간부와 만난 자리.

진호는 황당한 제안을 들어야 했다.

“······홍콩 상황에 대해서 중국 입장을 두둔해 준다면 촬영을 허가해 준다는 이야기네.”

“하. 지금 홍콩 시위에 대해서 중국 입장을 들라?”

“그게 조건이네.”

진호도 오가며 홍콩 시위에 대한 내용을 공부했다.

시작은 범죄자 송환에 대한 홍콩 행정장관의 발언.

자유에 대한 억압이라 여긴 홍콩 시민들이 이에 반발했고 이것을 홍콩 정부는 폭동이라 비난하며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다.

물론, 배후에 중국이 있음은 안 봐도 뻔했다.

[간단한 조건이네. 홍콩 시위가 불법적인 것이고 자네는 중국과 홍콩 정부를 지지한다는 얘기만 하면 되네. 그럼 촬영을 허가해 주고 많은 지원도 약속하지]

중국 고위층의 속셈이야 뻔했다.

진호처럼 인지도 높은 인물이 중국을 지지하면 그만큼의 영향력이 생기는 것이다.

봐라, 한국의 유명 배우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가.

이런 헛소리로 말이다.

“왕 형님.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설마 저 사람하고 같은 의견인 건 아니겠죠?”

진호가 혹시나 싶은 얼굴로 왕호룽을 봤다.

그래도 중국 사람이라고 같은 편을 든다면 크게 실망인 일이었다.

“나는 중국을 사랑하고 중국이 세계 제일의 강국이 됐으면 하는 사람이네. 하지만 옛 중국의 수많은 왕조들이 어떻게 몰락했는지도 알고 있지. 이런 방식으로는 시대를 역행 할 뿐이네. 억압과 통제로 지배를 유지하는 시대는 끝났어. 아니, 끝나야 하네. 나는 홍콩 시위에 한해서 중국을 비판하는 입장이라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역시 깨어있는 분이네요.”

“칭찬은 고맙지만 상황은 난감하네. 여기서 거부하면 우리 입장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이 되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할 수는 없죠.”

진호가 왕호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사 정당함 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신념을 버리고 각오마저 꺾으며 이루는 것은 모래로 지은 성일뿐이다.

둘 모두 옳은 것을 신봉했다.

[죄송합니다. 진호도 저도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겠군요]

[······당과 척 지어 좋을 리 없을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당이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저는 지지할 수 없습니다]

[흥! 성공한 사업가라고 당의 손밖으로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그 정도는 각오해야죠]

중국의 고위 간부는 두 사람을 사납게 쏘아 본 뒤 자리를 박찼다.

관계가 틀어졌음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앞으로가 문제네요.”

“그러게.”

두 사람의 한숨 소리가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

여러 가지 루트로 접촉을 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중국의 태도는 강경했고 촬영 허가는 나지 않았다.

결국 촬영 장소 변경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앞선 촬영분을 전부 폐기하고 다시 가자는 겁니까?”

“당장 방법이 없으니까. 비슷한 장소를 찾아서 다시 찍는 편이 빠를 거다.”

“진짜 사람 욕 나오게 하는군요.”

진호가 아무리 용빼는 제주가 있어도 이번에는 무리였다. 홍콩 시위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격렬해졌고 이에 반응하는 중국 정부도 강경했다.

이 틈바구니에서 촬영을 강행하는 건 무리였다.

“이렇게 된 거 그냥 국내에서 촬영하자.”

“국내에서 말인가요. 찾아보면 비슷한 곳이 없진 않겠지만······”

“마음에 안 드는구나.”

“촬영분을 폐기하는 것도 그렇지만 장소가 바뀌면 분위기가 또 달라져요. 하아. 진짜 정세에 영화 촬영이 휘둘리기나 하고.”

요즘 같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왕호룽의 말대로 중국은 시대를 역행하고 있었다.

“어쩌겠냐. 그런 나라의 사람들과 손잡고 움직이는 것도 현실이잖아. 적이고 아군이고 딱 잘라서 편 가르기가 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것도 꽤 서글픈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예 쌍욕을 박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아서라. 우리 스텝 중 절반이 중국인이야.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영화가 통째로 박살날 거다.”

배우 개인일 때와 총괄 책임자일 때의 무게가 다르다.

유독 현실이라는 것이 쓰리게 다가오는 진호였다.

“지, 진호야! 진호야!!”

그때였다.

송학이 다급하게 외치며 사무실로 달려 들어왔다.

얼마가 급했는지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급하게 뛰고.”

“화, 황천에서 일이 터졌다. 급보야, 급보.”

“응? 황천에서? 또 무슨 일이야?”

“······왕호룽이 피습 당했어.”

“뭐?”

진호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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