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59화 (159/178)

Chapter72. 전력질주(1)

영화 촬영이 마무리 될 즈음 다음 단계로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황천과 왕호룽은 본격적으로 몸을 키웠다.

물밑 작업으로 빼돌린 이들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새로운 공룡 기업의 탄생을 알렸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세계의 유명 회사들이 합작하여 거대한 미디어 연합체계를 이룬 것이다.

서로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합작 영화, 드라마, 공연 등을 기획하도록 했다.

이건 상당히 충격적인 뉴스였다.

거대 그룹인 드림은 긴 세월동안 미디어 시장을 잠식하면서 몸짓을 키웠다.

그 안에는 수십 년의 노하우들이 녹아 있었다.

이걸 몇 달 사이에 만들어진 단체가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싸움이 될까.

과연 연합체가 끝까지 유지 될 수 있을까.

의문과 불신.

걱정과 불안의 시선이 이어졌다.

“모든 건 결과가 말 해 줄 뿐이다.”

왕호룽은 세간의 반응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드림이 동종 업계 회사를 집어삼킬 때도 사람들은 불안과 걱정으로 바라봤었다.

독점 기업의 횡포나 미디어의 획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결과는 보다시피.

공룡은 자리를 잡았고 미디어는 언제나와 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모든 건 결과가 말 해 줄 뿐이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스트리밍 사이트는 오픈했습니다. 다만, 당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큰 터라.”

“신경 꺼. 어차피 그 늙은이들은 돈만 쥐어주면 입 닫을 거야.”

스트리밍 사이트도 열었다.

J.H에서 만드는 모든 저작물은 사이트를 통해서 서비스 될 예정이다.

극장을 통한 세력 확장도 중요하지만 요즘은 스트리밍 쪽의 영향력이 더 세다.

특히 영화 급의 드라마들이 즐비한 현 시점에서 빠르게 접근 가능한 스트리밍 사이트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반응은 어때?”

“일단은 위축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거든요.”

“확실하게 전해. 시작에 합류하지 못하면 결국 떨어지는 콩고물도 적을 거라고.”

“그걸로 설득이 될까요?”

“보면 알 거다. 하늘에서 사람을 내리는 것을 범인은 이해 할 수 없거든.”

왕호룽은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첫 프로젝트는 그저 불씨였을 뿐인데, 진호가 손을 대자 불길이 되어 화려하게 번졌다.

그가 찾아낸 배우들은 하나하나가 대단했다.

연출도, 시나리오도, 사용한 음악마저 좋았다.

한 사람이 그렇게 모든 영역에 방대한 영향을 미치는 건 있을 수 없다.

‘하늘이 내린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기에 이런 미친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최대한 서둘러라. 우리는 모든 상리를 무시하고 이 세상에 폭탄을 던지는 거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질풍노도라 하던가.

작금의 행보는 능히 그렇게 부를 만 했다.

#

얼마지 않아 새롭게 제작한 영화에 스크린에 걸렸다.

전 세계 동시 개봉이었다.

황천에서 배급에 힘을 꽉 주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각 지역에 맞는 번역가가 할당되고 몇 번에 걸친 검수 끝에 통과되었다.

결과는 상당했다.

아시아 쪽에서는 단번에 1위로 치고 올라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중국과 한국의 반응이 뜨거웠다.

“확실히 잘 뽑혔어.”

“배급을 확실히 쥐고 있으니까. 하지만 아시아권만 호성적을 이루어서는 답이 안 나와.”

“미국은 역시 아직인가.”

예고편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시아 배우와 아시아 무비는 다른 영역이었다.

일전에 진호가 시기를 잘 타고 좋은 성적을 이루기는 했으나 그건 합이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던 일.

지금처럼 정면에서 부딪친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서브컬처니까. 매니악한 층은 있지만 그것뿐이야. 주류 고객층을 붙잡기는 아직 힘들어.”

“역시 주류는 할리우드네.”

“전통이니까. 시장 점유를 더 먹으려면 단순히 재밌다, 정도로 끝나서는 안 돼.”

미국을 포함, 다른 서구권 시장도 비슷했다.

나름의 호성적은 거두었으나 대박이라 말 할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투자금 대비 수익으로 치자면 굉장한 성적이었다.

배우들의 출연료가 비교적 적은데다가 로케이션 지원도 황천에서 도맡았기 때문이다.

“뭐가 더 필요할까?”

“독특함.”

“독특함? 어떤 방식의?”

“어차피 화려하게 터지는 방식의 영화는 할리우드의 노하우를 따라가기 힘들어. 그럼 우리 고유의 맛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고유의 것이라.”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매일같이 이루어졌다.

이미 드라마, 영화, 공연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성이 중요했다.

거대한 시나리오 작가 팀이 노를 젓는다면 방향을 지시하는 건 진호의 손가락이었다.

“전래동화를 각색하는 건 어때?”

“갑자기?”

“왜, 잔혹동화라고 있잖아. 한 때 유행했는데. 그런 식으로 우리 전래 동화를 각색해서 만들어 보는 거야.”

“어. 미국에서 유행했던 이상한 이야기라는 드라마처럼?”

로봇이 나오고 우주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오고 스파이가 날뛰는 이야기는 식상하다.

아니, 식상하다기 보다는 길들여져 있다.

미국 식, 서양 식 코드가 깊이 박혀있는 터라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낯설 뿐이다.

그렇기에 아예 이상해도 좋은 이야기가 낫다.

“동화에 공포를 섞는 거지. CG팀도 확실하니까 괴물의 퀄리티도 보장되잖아. 중국 애들이 그런 건 또 잘하고.”

“그건 조심해야 해. 동양적 괴물의 이미지와 서양적 괴물의 이미지는 달라. 우리가 볼 때 굉장하다 싶은 것도 서양에서 보면 유치하게 보일 때가 있거든.”

“지네괴물 같은 거?”

“그렇지. 타협을 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편이 나아.”

문화권마다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접한다.

서양에서 유명한 광대 공포증을 동양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경계를 허물 되, 완전히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중간에 걸친 작업물로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오케이. 시나리오 방향을 내가 팀에게 전달할게. 아트 디렉션 팀장님하고는 네가 통화를 해 봐.”

“직접 하려고? 그룹 팀장님에게 전하면 돼.”

“됐어. 직접 말해야 뉘앙스가 전해지는 거라고.”

“이 아저씨가 작업 범위를 점점 넓히시네?”

“흐흐. 그래도 팀장 아니냐. 열심히 해야지.”

J.H 매니저 총괄 팀장, 송학.

직함만큼의 열정이었다.

#

은서의 회사 역시 연합에 합류했다.

대표는 ‘돈 될 기회네. 역시 남자를 잘 만나야······’라는 시대에서 뒤쳐진 말을 남기며 웃었다.

어찌 됐든 거대 자본을 끼고 장사를 하게 됐으니 규모가 작았던 그에게는 기회였다.

“대표님, 저 공연 스케줄 보냈는데. 확인 하셨어요?”

“그거 조율 중이다. 아직 자리가 안 나서.”

“빨리 좀 해주세요. 그거 진행되어야 다음에 해외 스케줄 진행 가능하다고요.”

물론, 바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규모가 큰 회사도 아닌 터라 몰려드는 일감에 너나 할 것 없이 줄 고생이었다.

“은서야. 가서 네 남자친구한테 사람 좀 보내달라고 하면 안 되냐?”

“대표님. 나랑 싸우실래요?”

“거, 좀 편의 봐주고 그래도 되잖아. 우리 같은 작은 회사에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지금 일감 떨어진 것만 해도 다른 회사는 양 손 들고 만세 부를 만 한 거 알죠?”

“크흠. 그냥 뭐 그렇다는 거지.”

괜히 한 번 툴툴대 봤다.

은서 보기를 벌써 몇 년 째인데 성격을 모를까.

“아차. 일본에서 배우 하나 찾는다고 공문 왔던데. 그거 확인해 보시고 답 주세요.”

“우리 애들 중에서?”

“네. 미주랑 소현이. 저번에 드라마 한 거 자료 보냈더니 둘 중 한명을 캐스팅 하고 싶다나 봐요.”

“허. 그런 건 또 언제 했냐?”

“오빠 따라다니면서 틈틈이 했죠.”

“너네 결혼은 언제 하냐?”

“대표님!”

“크흠흠. 알았다, 알았어. 금방 처리해서 보내 줄 테니까 너도 스케줄 늦지 말고.”

“스케줄? 저 오늘 스케줄 있어요?”

“아이고, 이 아가씨야. 정작 네 스케줄을 잊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대표가 혀를 끌끌 차며 접힌 대본을 건네줬다.

“아.”

진호와 함께 출연하는 시사 방송이었다.

한국에서는 제법 영향력 있는 방송이라 전부터 머리 싸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뭔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그래요. 질의응답 대본도 있구만.”

“쯧쯧. 거기 사회자 양반이 대본에 없는 질문하기로 유명해. 괜히 엮이지 말고 어렵다 싶으면 그냥 진호한테 넘겨.”

“저한테 오는 질문이면 제가 답해야죠. 그걸 또 오빠한테 왜 넘깁니까. 하여튼 대표님도 가끔 보면 얍삽하다니까.”

“아이고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니까.”

“네, 네. 그런가 봅니다, 아버지.”

“나가, 인마.”

화내는 시늉에 은서가 웃으며 도망쳤다.

#

사회적인 시선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배우일 때와 제작자일 때와 어떤 단체의 수장일 때는 대하는 시선이 다르다.

지금 대기실 풍경만 봐도 그렇다.

“하하.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훤칠하십니다.”

“메이크업이 잘 된 모양이네요. 그나저나 바쁘신데 이곳까지 내려오시고. 괜히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어이구 무슨 소리를. 홍 대표님이 오셨는데 제가 얼굴 한 번 안 비추면 되겠습니까?”

방송국 국장이다.

어느 방송에 출연을 해도 국장이 직접 보러 오는 경우는 없었다.

“저야 뭐 일개 출연자일 따름인데요. 오늘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가 잘 말 해 둘 테니 걱정 마시고 담담하게 이야기만 늘어놓으시면 됩니다.”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보통 출연자로 생각하시고, 편하게 대해주세요.”

“하하. 역시 대표님은 남다른 구석이 있군요.”

한참동안이나 와서 껄껄거리는 통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게다가 국장으로 끝이면 다행.

PD부터 시작해서 무슨 무슨 관계자들이라도 우르르 찾아오는 통에 대본도 못 볼 노릇이었다.

“사람들 참 약았다. 그치, 오빠?”

“하아. 은서였구나. 또 누가 찾아온 줄 알았다.”

겨우 담당 PD가 중재해서 10분의 여유를 찾았다.

“많이 피곤하지? 내가 안마 해 줄까?”

“입술에 안마 해 주면 피로가 풀릴 거 같은데.”

“이 아저씨 엉큼한 거 보소. 신성한 방송국 대기실에서 뭐라는 거야.”

“추파?”

은서가 깔깔 거리며 소파 뒤에서 진호 머리를 감쌌다.

얼굴이 위에서 아래로 겹쳐졌다.

“힘 좀 나세요, 아저씨?”

“아침에 된장찌개 먹었어?”

“아니거든!”

“하하, 이제 좀 기운이 나네. 대본은 봤어?”

“응. 근데 대표님이 그러는데, 여기 사회자가 대본에 없는 질문도 많이 던진데.”

“그래? 아직 대외비는 입에 안 익었는데.”

황천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비밀이다.

머리에는 잘 집어넣어 두었지만 단속은 익숙하지 않았다.

“딱히 불편한 질문을 하려나? 그래도 오빠, 대표님 소리 듣고 있는데.”

“에이. 말만 대표님이지. 내가 지금 얼마나 물어뜯기 좋은 먹이인줄 몰라?”

“오빠가?”

“그럼. 아직 나이 서른 중반도 안 된 놈이 커다란 집단의 대표라고 앉아 있잖아. 그것도 뭐 아시아 연합 미디어 회사라는 거창한 포부까지 걸고. 멀리서 보기에는 이처럼 이상한 것도 없을 거다.”

“그런가. 나는 잘 모르겠어.”

“너야 곁에서 봤으니까 그렇지. 타인이 보기에는 굉장히 수상쩍어 보일 거야.”

그렇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서 섭외에 응한 것이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공감이 필요했다.

타깃인 서구권이야 당연하고 안방인 한국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수였다.

“많이 물어뜯을까?”

“아마도. 하지만 그건 내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야. 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며 발이 편하기를 바라면 안 되잖아.”

“······힘들면 내가 업어줄게.”

“요즘 운동 좀 하나 봐?”

“스쿼트 빡세게 하지. 나만 믿어.”

이미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는 얻고 있으니까.

진호가 은서를 심장 가까이에 안으며 웃었다.

가시밭길을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