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55화 (155/178)

Chapter70. 재회(1)

드라마 첫 방송 시청률이 나왔다.

17.8%.

이례적일 정도로 높은 시청률이었다.

진호에 대한 관심도와 잘 뽑힌 예고편의 효과였다.

반응도 매우 좋았다.

연출이나 대사가 유치하지 않고 발상이 독특해서 신선하다는 얘기가 많았다.

“시작이 좋아. 이대로 쭉 달리면 동시간대 1위는 따 놓은 당상이야.”

“의외로 시청 연령대가 높더군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는데.”

“흐흐. 네가 나이 많은 분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거지. 시청자 폭이 넓은 건 좋은 일이야.”

시청률이 뜨면 시간 별, 나이 별, 지역 별로 통계가 다 나온다.

진호는 편중 된 곳 없이 골고루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평단 평은 어때요?”

“썩 나쁘지 않아. 익숙한 설정이라고 까기는 하는데, 전개가 나름대로 신선한가 봐.”

“역시 캐릭터 설정이 도움이 됐나 보네요.”

“무사가 DJ 하는 게 흔한 설정은 아니니까.”

드라마에 평단 평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좋은 말 들어서 나쁠 건 없다.

“스케줄 많이 밀렸죠?”

“뭐, 숫자로 치자면 소화가 불가능 할 정도. 적당히 추리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왕이면 인터뷰 위주로 해주세요. 예능은 좀 사양하고 차분하게 나가려고요.”

“안 그래도 너 인터뷰 하자는 곳이 엄청나게 많아. 국내 방송사는 둘째 치고 해외에서도 난리야. 몇 개 잡아 둘 테니까 미리 준비해 둬라.”

“나라 별 하나씩만 잡아 주세요.”

최현석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나씩만 해도 족히 열 곳은 넘어간다.

이야기를 푸는 데 부족함은 없었다.

“아, 그리고 이번 드라마. 중국에서 정식으로 수입 제의가 들어왔더라. 감독님한테 이야기 들었냐?”

“어? 아직요. 중국에서 수입한데요?”

“응. 디오디라는 미디어 회사.”

“디오디? 어디서 들어왔는데······아! 거기 황천 아래에 있는 회사 아니에요?”

“알고 있네. 꽤나 큰 금액으로 제안이 들어왔나 봐. 그렇게 들뜬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중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수입해 가는 건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황천의 자회사다보니 느낌이 조금 묘했다.

“왕 형님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네요.”

연락이 끊긴지 벌써 몇 달.

왕호룽의 소식이 궁금하긴 했다.

#

전 세계에서 왕호룽의 개인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그 중 하나가 진호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하하. 진호 아우님 아닌가. 이렇게 먼저 연락을 해 오다니 별 일이야.”

“그간 소식이 뜸했습니다. 많이 바쁘셨나요?”

“그랬지. 집안 단속도 해야 했고, 당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으니까. 밖에서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피가 흘렀어.”

왕호룽의 목소리는 조금 지쳐 있었다.

당쟁과 내부 항쟁을 동시에 치른 격이니 피로가 쌓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지금 멀쩡히 살아서 통화를 하는 것이 희소식이라면 희소식이었다.

“그래도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에 사람을 보내긴 했었네. 한 때는 큰일 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재기하는 걸 보니 역시 난 사람은 난 사람이야.”

“사람을 보냈었어요?”

“하하. 나같이 복잡한 사람과 대외적으로 어울려서 좋은 건 없지. 남 몰래 붙여 두었을 뿐이네.”

왕호룽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사상은 둘째 치고 허튼 소리 할 인물은 아니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연락을 했지? 그냥 안부만 물어보려고 연락 한 건 아닐 텐데.”

“형님 생각나서 연락한 걸로 하면 안 되는 겁니까?”

“하하. 그러면 기쁘기야 하겠지만 나도 알고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인가?”

“저보다 절 잘 아시는군요. 사실, 이번 드라마 건으로 물어 볼 게 있어서요. 디오디라는 회사가 황천의 자회사 맞죠?”

“아. 벌써 제안이 들어간 건가? 생각보다 일처리가 빠르군.”

“역시 형님이 개입하셨던 겁니까?”

모르는 반응이 아니었다.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나. 드라마라 복귀한다고 해서 유심히 지켜봤지. 내용도 마음에 들고 해서 정식으로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또 신세를 지게 되는군요.”

“좋은 작품에 좋은 연기니 당연한 결과일 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더. 수입 건을 핑계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 일이 있었네.”

“이야기요?”

왕호룽 쪽 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참는 듯 말소리가 잠시 끊겼다가 담담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건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통화로 나눌 만 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흠. 그럼 조만간 중국에 한 번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입 절차를 마무리 하면 인터뷰든 뭐든 정식으로 초대를 하도록 하지.”

“네.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짤막한 인사말을 남긴 채 통화는 끊어졌다.

진호는 그렇게 폰을 쥔 채 잠시 말없이 생각을 이어갔다.

‘통화로 말 못 할 이야기라.’

어쩐지 가벼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

드라마 정식 수입에 대한 발표가 났다.

전체 내용을 각색하지 않고 자막을 달아서 수입하는 형식이었다.

중국 내 프로모션 행사와 팬미팅 등 부가적인 활동도 계약에 포함되어 있었다.

“확실히 중국 애들이 돈은 거하게 쓴단 말이야.”

물론, 개별 행사는 페이도 개별적으로 지급된다.

진호의 경우는 톱급에서 톱.

몇 개의 방송을 묶어서 10억이 넘는 출연료를 제안 받았다.

“중간에 스케줄 좀 빼주세요.”

“응? 행사 와중에?”

“네. 중간에 왕 형님 잠깐 보기로 했거든요.”

“중요한 일이냐?”

“통화로는 말 못한다고 했으니까 뭔가 있는 거겠죠. 혹시 모르니까 뒤에 스케줄 하나는 빼주세요.”

“에잉. 이거 하나에 5억인데.”

최현석이 툴툴 거리며 스케줄 리스트에 빨간 줄을 그었다.

“광고랑 많이 들어왔잖아요.”

“크흠, 흠. 누가 뭐라냐? 거, 왕 형씨랑은 일 잘 보고. 뭔가 수상쩍다 싶으면 그냥 박차고 나와. 알지?”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갈 때는 송학 형만 데리고 갈게요.”

“경호원은?”

“아마 안쪽까지는 대동이 안 될 텐데······근처까지만 같이 이동할게요.”

왕호룽 주변이면 굳이 경호는 필요 없다.

그의 자택이면 요새와 다를 것이 없을 테니까.

“그래. 그쪽 위치 고려하면 우리가 경호에 힘 줄 필요는 없겠지. 무슨 일로 만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건 아닐 거예요.”

“그래야지. 너 해코지 하려는 거면 내가 가서 혼쭐을 내 줄 거다.”

“처음 봤을 때는 회장님이라고 절절 맸으면서.”

“크흠. 옛날 일은 말하지 말고.”

그 회장님이 무슨 이유로 부르는 걸까.

답을 알지 못한 채 중국행 날짜가 다가왔다.

#

공식적인 행사가 이어졌다.

대규모 프로모션 행사에는 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운집하기도 했다.

절정의 인기와 막대한 인구수를 동시에 체감했다.

그리고 일정 간 휴식 시간.

“형님, 야시장 열린다고 하는데. 같이 안 가십니까?”

들뜬 얼굴의 재혁이 방으로 찾아왔다.

아직 신인에 불과한 그에게 이런 대규모 행사는 놀이의 연장이었다.

행사 내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체력도 좋다. 안 쉬어?”

“흐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겠습니까. 현지 가이드 분이 따라와 준데요. 가서 구경 좀 하다가 오죠?”

“괜찮은 제안이긴 한데 선약이 있어서.”

“선약이요? 중국에서요?”

“그래. 지인을 잠깐 보기로 했거든.”

“헤에. 중국 배우에요?”

재혁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진호 정도 되는 배우가 친분을 쌓은 사람이면 보통 배우는 아닐 터.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

“배우는 아니야. 그냥 자기 사업 하는 사람.”

“와. 사업가랑 만나요? 역시 형님이 하는 일은 급이 다르군요.”

“그냥 개인적인 친분이야. 난 늦게 들어올지 모르니까 신경 쓰지 말고 놀아.”

“저도 같이 가면 안 되겠죠?”

진호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재혁의 호기심은 쉬이 죽지 않았다.

“지겨운 얘기만 할 거야. 그리고 그쪽에서 나만 초대한 거라 널 데려가기는 힘들어.”

“으으. 아쉽네요.”

“가서 놀다 와. 사고는 치지 말고.”

“그래야겠네요. 형님도 일 잘 보세요.”

그래도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는 밖으로 쪼르륵 달려갔다.

“진호 님. 모시러 왔습니다.”

그리고 때맞춰 프론트로 왕호룽이 보낸 사람이 도착했다.

호텔 문가에 대 놓은 고급 리무진이 눈에 들어왔다.

“리무진!”

재혁은 아직 덜 나갔던 모양이다.

스치듯 지나쳐 리무진에 탑승하는 진호를 보며 입만 벙긋거렸다.

“그냥 개인 사업하는 사람이라면서요!”

반쯤 열린 창문으로 진호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

리무진 타고 30분.

진호는 고성 비슷한 곳에 당도했다.

성벽도 있고 성문도 있으며 단단한 쇠창살과 방패 등도 있었다.

물론, 성벽 곳곳에 달린 CCTV나 무장 경비 등은 전경과 썩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랜만이군.”

그렇게 당도한 사무실 안에서 왕호룽을 만났다.

오랜만에 본 그는 훨씬 많이 늙어 있었다.

늘어난 주름과 틈틈이 보이는 흰머리는 그간의 고초를 보여 주었다.

“격조하셨습니까?”

“하하. 나야, 보면 알지 않나. 꼴이 말이 아니라네. 요즘은 링거를 달고 살아.”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몸부터 추스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나. 자, 군소리는 그만 하고 일단 앉게.”

왕호룽은 너털웃음으로 대화를 흘렸다.

“그래, 행사는 잘 마무리 했나?”

“제가 뭐 따로 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냥 팬분들하고 만나서 인사하는 것이 전부인데요.”

“겸손하기는. 통제를 안 했으면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보였을 거네. 그게 다 자네 인기라는 거야. 사고로 한 동안 쉬었음에도 변하지 않은 거지.”

“그건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왕호룽이 다시 한 번 웃었다.

사람이 이만큼 안 변하기도 쉽지 않은데, 진호는 전과 비교해도 달라진 구석이 없었다.

“역시 아까워. 자네가 중국인이었다면 황천의 이름대로 더 큰 꿈을 꿀 수 있었을 텐데.”

“나고 자란 곳입니다. 아쉬운 면은 많지만 고국을 배신 할 수는 없죠.”

“그런 면이 더 아깝다는 걸세. 이 넓은 대륙 땅에서 자네만 한 사람이 하나 없으니 말이야.”

혀를 차는 왕호룽의 주름이 깊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있지. 자네도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서구권 친구들이 암암리에 모여서 우리를 배척하고 있다네. 자기들 말로는 문화적 방파제라고 하던가.”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빌이 말하던 조직 이야기였다.

왕호룽 역시 이것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집단이었네. 자국 문화를 우선시 하고 타국의 문화를 배척하는 건 어디서나 있는 일이니까. 그들도 그렇게 시작했네.”

“지금은 달라졌다는 건가요?”

“그래. 방법은 모르겠지만 미국과 유럽 등지의 거대 자본과 손을 잡은 거 같아. 대대적으로 문화를 배척하고 강경한 수단을 구사하고 있어.”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글쎄. 문화는 생물과 같아서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네. 하지만······”

왕호룽이 입에 담배를 물었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를 더욱 더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들었다.

“멈추려고 시도는 할 수 있겠지. 첨탑을 잘라내는 것으로.”

연기 속 진호를 보는 왕호룽의 시선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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