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52화 (152/178)

Chapter69. 스타의 품격(1)

진호는 서두르지 않았다.

들어오는 작품은 많았고 선택지는 넓었다.

필요 한 건 맞는 옷이지 고가의 명품이 아니었다.

“아직도 고민하는 중이냐.”

“그래도 좀 추려 뒀어요. 국외의 작품들도 끌리기는 하는데, 지금은 국내에서 한 스텝 밟고 싶어요.”

“영화?”

“아뇨. 조금 더 자주 얼굴을 비추고 싶어서 드라마를 하면 어떨까 해요.”

진호가 추려둔 시나리오를 건넸다.

방송 3사 주말극을 포함해서 케이블 드라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장르가 제각각이네.”

“하고 싶은 게 많아서요. 저번에 액션 연기를 하다가 그만 뒀잖아요. 그쪽으로 끌리기도 하고, 광고 때문인지 멜로도 눈에 들어와요.”

“멜로 하다가 은서한테 머리채 잡히는 거 아니냐?”

“연기니까 봐주겠죠. 아니면 스릴러나 코미디 쪽도 괜찮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살펴보고 있어요.”

연기를 함에 있어서 제약은 두지 않는다.

그건 은서와도 같은 마음으로 약속해 둔 것이었다.

공개 연애를 한다고 서로를 제약하다가는 괜한 불만만 쌓일 뿐이다.

“이건 어떠냐? 살짝 로맨스도 들어가고 최근 트렌드인 판타지풍이기도 한데.”

“아. 과거의 장수가 현대로 환생한다는 내용이네요.”

“고려시대 이름 없는 무인의 환생. 저주로 엮인 인연을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괜찮아 보이네.”

“어디선가 본 내용 같지 않아요?”

“글쎄다. 난 잘 모르겠는데?”

스토리라인은 평범하지만 캐릭터는 괜찮았다.

특히, 주인공인 무사 윤강호는 평범하게 상상 할 수 있는 무사와는 달랐다.

그는 현대에서 환생하며 빠르게 이쪽 세계에 녹아나며 DJ나 스트릿 댄스 등도 하는 캐릭터였다.

무사다운 진중함이나 무거움은 없었다.

“어, 이거 작가진이 익숙하다 싶더니. 전에 은서랑 같이 작품 하신 분들이네요.”

“그래? 그때 시청률 꽤나 잘 뽑혔지?”

“막방이 10퍼 넘었으니까 선전했죠.”

“흐음. 실력은 있나 보네. 어때 이쪽으로 한 번 얘기를 해 볼래?”

진호가 시나리오를 눈으로 훑었다.

이야기가 엄청나다, 라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흥미가 동하는 건 사실이었다.

“한 번 해 보죠.”

그리고 지금은 그런 흥미면 충분했다.

#

제작사 측에 연락을 하니 금세 미팅 날짜가 잡혔다.

제작사 대표와 감독 등, 주요 인원들이 전부 참석하는 미팅이었다.

“음하하하하. 영광입니다, 영광.”

대표는 웃음이 많은 남자였다.

본래 AJ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독립 이후로 영화 제작사로 일하고 있었다.

인맥이 넓고 자본에는 자신이 넘쳤다.

“스텝진은 이미 구성이 끝난 건가요?”

“네. 이미 판을 싹 따 짜 놨습니다. 주연 배우가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죠.”

“아, 그럼 나머지 캐스팅도?”

“대부분 끝났습니다. 배우 명단을 알려 드릴까요?”

“그럼 좋을 거 같네요.”

진호가 살짝 아쉬워하며 답했다.

캐스팅에 관여할 생각 까진 없지만 미리 봐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계약 조건에 대한 건 저희가 보낸 메일에 전부 담겨 있습니다. 업계 최고임을 확신합니다.”

“그건 대표님이 확인하고 연락주실 겁니다.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계약이 어긋날 일을 없을 거예요.”

“오. 그렇습니까?”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에 흥미가 동해서 온 거니까요.”

“하하하. 그럼요. 배우라면 돈보다 연기를 쫓는 거죠. 이해합니다, 이해해요.”

그럭저럭 장단 맞추기는 쉬운 사람이다.

“자자. 그럼 무거운 얘기는 그만 하고 한 잔씩 합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홍 배우님도 괜찮으신거죠?”

“굳이 뺄 이유까지는 없겠죠. 적당히 반주해 드리겠습니다.”

“으하하. 역시 대 배우는 다릅니다!”

이야기는 겉치레로 건너 띄고 술자리로 이어졌다.

진호도 굳이 이런 자리에서 잰 채 하진 않았다.

제작자야 그렇다 쳐도 감독과 작가진까지 전부 와 있는 자리였다.

굳이 트러블 만들어서 촬영을 망가뜨릴 이유는 없었다.

드르르륵—!

그때였다.

방문이 옆으로 거칠게 열리고 얼굴이 붉은 남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까지 달려 온 건지 숨도 거칠었다.

“어이······재현 씨.”

“후아. 후. 감독님 이런 자리에 절 어떻게 빼 놓으신 겁니까?”

“아이고 이 양반아.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오면 어떻게 합니까. 여기 대표님 있는 거 안 보여요?”

“억. 죄송합니다. 신재현입니다.”

뒤늦게 제작사 대표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죠. 서브 남주 역할에 캐스팅 된 신재현 씨입니다. 여기 있는 진호 씨 광팬이라······이렇게 불쑥 찾아왔나 봅니다.”

“크흠. 재현 씨. 본 기억이 있군요. 팬심은 다 좋은데 그래도 자리를 가려야죠. 이렇게 불쑥 오시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죄, 죄송합니다.”

많아봐야 20대 초반.

아직 앳된 기색이 역력한 남자였다.

혈기로 찾아 왔다가 한 소리 듣는 모양새가 꽤나 불쌍했다.

“대표님, 그냥 합석하라고 하죠.”

“아, 진호 씨. 괜찮습니까?”

“젊은 친구면 그럴 수 있죠. 어차피 앞으로 같이 일 할 사이인데 얼굴 붉혀서 뭐하겠습니까. 온 김에 술이나 한 잔 같이 하죠.”

“이야. 역시 진호 씨는 배포도 좋아. 크흠. 거기 재현 씨. 들어오세요.”

대표가 허락했으면 된 거다.

그제야 재현이 얼굴을 펴며 안으로 들어왔다.

슬쩍 자리를 눈으로 훑은 뒤, 진호와 가장 가까운 쪽으로 앉았다.

눈을 반짝이는 모양새가 스타를 본 팬의 얼굴이었다.

“자요, 물부터 마시세요. 여기까지 뛰어 온 겁니까?”

“네, 네! 제가 진호 님 엄청난 팬이라서요! 여기 오신다는 얘기 듣고 집부터 뛰어 왔습니다!”

“하하. 그래요? 편히 앉아요. 뭘 또 무릎까지 꿇고 있습니까.”

“조, 존경의 표시입니다. 제가 완전 존경하거든요.”

썩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진호가 가볍게 웃으며 물을 건넸다.

양 손으로 받아서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다.

“서브 남주 역이라고요? 그럼 저랑 접점이 꽤 많겠네요?”

“네! 가 대본으로 싹 다 외우고 있습니다. 전부 열아홉 장면 만나서 이야기 합니다.”

“그걸 벌써 외워요? 당장 내일 바뀔 수도 있는데.”

“너무 기대가 돼서요. 진호 님이랑 같이 연기를 하다니. 심장이 밖으로 나올 거 같습니다.”

“재미있는 분이네. 그리고 님 자는 빼요. 그냥 형이라고 해요. 저보다 나이 어린 거 맞죠?”

“혀, 형이라고 말입니까? 으아. 3대의 복이라 여기고 부르겠습니다. 지, 진호 형님! 으히히.”

생긴 건 멀끔한 사람이 이러고 있다.

진호도 웃고 불편해 보이던 대표도 웃었다.

적어도 술자리에서 술안주하기에는 적당한 성격이었다.

“자. 한 잔 합시다.”

“네, 진호 형님!”

술잔이 오가고 취기에 말들이 흘러갔다.

#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주연 배우들 캐스팅이 마무리 되고 대본도 1차 수정되어 배포했다.

촬영 장소 섭외와 스케줄 조정도 매우 빨랐다.

제작사 대표가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인 덕분에 일이 수월했던 것이다.

“형님, 형님. 여기입니다.”

그리고 촬영 전 전체 리딩 날짜가 잡혔다.

꽤 이른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배우들이 집결했다.

“아, 재현아. 일찍 왔네.”

“헤헤. 형님보다 늦게 올 수는 없죠. 제가 자리 따듯하게 데워 놨습니다.”

“쓸데없는 짓이야. 그럴 시간에 대본이나 더 봐 둬. 새로 나온 거 다 외워뒀지?”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머리 하나는 좋습니다.”

술자리 이후로 번호를 가져간 재현이다.

틈 날 때마다 안부를 묻고 연락하는 통에 진호도 이제는 그가 꽤 편해졌다.

“두 번째 씬에서 나랑 붙던가? 꽤 어려운 씬이던데. 준비 많이 했어?”

“놀라는 씬이요? 그럼요. 어제 열심히 연습 해 뒀습니다.”

“제대로 안 하면 혼나는 거 알지? 오늘 선배님들도 많이 오니까 확실하게 해.”

“헤헤. 저야 형님 인정만 받으면 그만이죠.”

“야, 야. 선배님들 앞에서······”

덜컹.

진호가 무어라 한 마디 하려는 찰나 문이 열렸다.

감독과 제작사 대표. 작가들을 포함한 리딩에 참여한 인물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오오. 진호 씨. 먼저 와 있었습니까.”

“어떻게, 다들 같이 들어오시네요?”

“하하. 마침 이 앞에서 만났습니다. 여기 윤 배우님과 박 배우님.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죠?”

감독 뒤로 머리가 희끗한 배우 둘이 나왔다.

드라마 판 원로 중 원로인 이들이었다.

진호가 재빨리 손을 닦고 앞으로 나가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습니다. 진호라고 합니다.”

“어이구, 우리 배우님. 허허. 직접 보니까 훨씬 더 잘생겼습니다.”

“하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선생님께서 훨씬 더 훤칠하시죠. 전에 하신 붉은 강하고 우리 집 세월이. 잘 봤습니다.”

“전작까지 알아주는 겁니까? 이거 영광이네요.”

너털웃음 짓는 윤 배우를 지나 이번에는 옆으로 손을 뻗었다.

“선생님은 전에 한 번 스치듯이 봤죠? 제가 막 데뷔를 했을 때.”

“어머. 그걸 기억하고 계셨어요? 이거 영광이네요.”

“무슨 말씀을. 제가 영광입니다. 이번에야 말로 선생님과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세상에. 말 예쁘게 하는 거 좀 봐요. 이래서 스타가 됐나 보네.”

진호는 허리가 부러져라 두 원로 배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지도를 떠나서 두 배우는 연예계 바닥부터 일궈온 일꾼이었다.

존경을 표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진호 형님이 인사 할 정도인가.”

그렇기에 나직이 들려오는 재현의 중얼거림이 진호는 못마땅했다.

두 원로 선배에게는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러나 재현에게 속삭였다.

“가서 인사드려. 선배님들이다.”

“굳이 그래야 하나요?”

“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나하고 말도 섞지 마라. 난 기본이 안 된 사람하고는 대화 안 해.”

“아, 아니 지금 가려고 했어요.”

그제야 꾸물꾸물 가서는 인사를 했다.

그마저도 썩 진심이 담겨 보이는 인사는 아니었다.

두 원로 배우도 그걸 알았는지 진호와는 다르게 건성으로 인사를 받았다.

‘이 새끼. 아직 어리구나.’

진호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어리고 싹싹한 친구지만 아직 여물지 않았다.

“자, 안으로 가시죠. 선배님들 안쪽에 자리 마련해 뒀습니다.”

꼿꼿한 허리가 꼭 스타의 상징은 아니었다.

#

배우들이 모두 자리하고 리딩에 들어갔다.

촬영 전 전체가 모여서 하는 리허설 자리이기 때문에 리딩도 가볍게 하지는 않았다.

첫 스타트인 진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기는 어디이지? 이 낯선 공기는 무엇이란 말이냐.”

낯선 곳에 떨어진 고려 무사의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장내의 모든 배우들이 눈을 반짝이며 반응을 보냈다.

짧은 대사 한 줄에서도 연기력은 그대로 드러났다.

“씬 3-2. 갑시다.”

대사를 주고받고, 상황에 대한 제스처를 만들며 리딩이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 터라 장소에는 긴장감마저 흘렀다.

“대체 그게 뭐하는 연기인가!?”

그러다 일이 터졌다.

재혁과 대사를 주고받던 원로 배우 윤무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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