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66. 하나씩(1)
근래에 가장 잘 나가는 신예 가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유선아’라고 답 할 것이다.
OST작업에서 뜨기 시작한 이후로 그녀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청아한 목소리와 좋은 곡.
연달아 메가 히트를 치면서 솔로 여가수 중 독보적인 입지를 갖춰갔다.
“신곡 준비가 한창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조만간 신곡으로 찾아 뵐 수 있을 거 같아요.”
연예 프로그램 단독 인터뷰도 당연한 일.
그녀를 둘러싼 카메라의 숫자가 셀 수 없이 많다.
“생각보다 컴백이 빠르네요. 팬들은 기뻐하겠지만, 향간에서는 너무 무리 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스케줄은 대표님이 잘 조절해 주고 계셔서 피곤하진 않아요. 저는 최대한 많은 곡으로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좋은 말씀이네요. 그럼 이번 신곡은 역시나?”
“네. 선배님께서 남겨주신 곡이 아직 많이 남아 있거든요. 앨범 분위기에 맞춰서 편곡중이에요.”
선배는 진호를 일컫는 것이다.
당시 그가 만들어 둔 곡 숫자가 100곡이 조금 안 된다. 선별하고 편곡을 하는 것만으로 앨범 몇 개는 찍어 낼 수 있는 양이었다.
“조금 불편한 질문 일 수도 있겠지만······이번 작업에 진호 씨도 참여를 하셨나요?”
“아. 아뇨. 선배님은 곡만 주시고 편곡은 저와 다른 팀이 진행했어요. 선배님은 지금 다른 일로 바쁘시거든요.”
“다른 일이라면?”
“연극하고······아! 그게, 저는 잘 모르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답하던 선아가 흠칫했다.
진호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회자가 알았다는 듯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군요.”
“네, 네. 선배님은 굉장하거든요. 저 같았으면 당장 포기했을 일인데도 끄떡없어요. 보고만 있어도 존경심이 막 샘솟거든요.”
“그래요? 서로 분야가 다르다 보니 접점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아뇨. 선배님은 다르거든요. OST작업에 참여 할 때도 그렇고, 뭔가 특별한 게 있는 분이에요.”
“하하. 진호 씨를 굉장히 높게 보시네요.”
“그럼요. 회사 사람들은 전부 알아요. 선배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래서 걱정 같은 건 전혀 안 해요. 사람들이 아무리 비웃고 깎아내려도 선배님은 불같이 일어나실 거거든요.”
살짝 흥분했는지 말도 빨라지고 얼굴도 붉었다.
뒤늦게 그러 자신을 깨닫고 선아가 손부채질을 했지만 이미 다 방송에 나간 후였다.
“기대가 되는군요. 여자 솔로 중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선아 씨가 그렇게 평가 하는 사람이라면.”
“네! 그럼요. 아, 그리고 이거 말하라고 했는데, 대표님이.”
“응? 더 할 말이 있나요?”
“네. 저기, 이번 앨범에 선배님이 참여하거든요.”
“아까는 참여 안 하신다고······?”
“곡 말고 뮤직비디오에요. 그거 꼭 말하라고 했는데 깜빡 했어요.”
이번에는 사회자도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진호 씨가 정식으로 활동을 재기하는 건가요?”
“그······렇게 되나요?”
“연극무대는 무료 공연이니 정식 활동이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뮤직비디오라면 공식적인 활동이라도 봐야죠.”
“아, 네. 그럼 공식적인 활동 맞네요. 네. 네.”
긴가민가하며 답하는 선아의 모습에 사회자가 가볍게 웃었다.
눈앞의 어수룩한 아이는 대표가 하라는 말을 늘어놓았을 뿐이지만 이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뮤직비디오라면 확실한 활동 재개.
전 세계가 눈여겨보는 스타의 부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니, 부활 혹은 완전한 몰락.
“기대되네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한 동안 시끄러울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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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가 뮤직비디오를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는 하지만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맞출 수준은 아니었다.
이왕이면 회사 식구 위주로 재기 작을 노리는 것이 편했다.
“후후후후. 드디어 대놓고 오빠랑 연인 연기를 할 수 있다!”
한 술 더 떠서 상대역은 은서가 차지했다.
뮤직비디오 내용 자체가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터라 딱 맞았다.
“흑심은 집어넣고. 대본 확인했지?”
“응. 당연하지. 어제 새벽까지 보고 또 봤다고. 오빠 복귀하는 작품에 누가 될 수는 없지.”
“어이구야. 다른 작품도 그렇게 하시지 그랬어요.”
“히히. 의욕이 다르다고, 의욕이.”
매니저, 소윤의 핀잔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리던 복귀 작인가.
아직 예전만큼의 연기력은 나오지 않는다고는 해도 다시 시작 할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메이크업 끝내고 바로 이동 할 거지?”
“아냐. 잠깐 오빠네 회사 들렸다가 점심 먹고 이동 할 거야.”
“아주 대놓고 티를 내시겠다?”
“헤헤. 그것도 그런데, 오빠가 미리 좀 걷자고 했어. 같은 연이이라도 뮤직비디오의 연인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잖아.”
뮤직비디오 설정 상 은서의 배역은 굉장한 부자, 반대로 진호의 배역은 가난한 학생이었다.
서로 사랑하던 사람이 이런 현실적인 난관에서 다투고 아파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사랑을 되찾는다는 것이 전체 줄거리였다.
“편할 대로 해라. 회사까지만 데려다 주면 되지? 올 때는 진호 씨랑 같이 오나?”
“응. 데이트 하고 올게.”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덕업일체! 일과 사랑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하하하!”
“아주 그냥 대표님이 손 놨다고 막 나가요.”
“후후. 그 대표님도 이젠 내 편이라고.”
손가락으로 V자 만드는 은서의 모습에 소윤이 픽 웃고 말았다.
애인이 재기한다니 어지간히 기쁜 모양이었다.
“일이나 잘 해.”
“넵!”
그리고 이건 소윤에게도 기쁜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은서는 아끼는 동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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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감독은 송학주가 맡았다.
몇 개의 유명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유명세를 탄 사람. 실력이 좋고 센스가 있어서 업계에서는 못 모셔서 안달인 인물이다.
“이야. 드디어 뵙네요. 영광입니다.”
그리고 진호의 광팬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중요한 작업이 될 거 같아요.”
“하하. 그럼요. 제가 진호 씨 광팬 아닙니까. 후유증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재기를 하신다고 하니 제 일처럼 기쁘네요.”
“송 감독님이면 믿고 갈 만 하죠.”
“오, 은서야. 오랜만이다.”
“우리 오빠 재기작이니 잘 부탁해요.”
“하하. 믿고 맡겨 달라고.”
송학주는 은서와도 인연이 있었다.
그녀가 아이돌로 활동 할 당시 몇 번 작업을 같이 했었다.
당시에는 서로가 못 미더운 관계였지만 지금은 다르다.
“전체 대본은 숙지하셨죠?”
“네. 대본이라면 통째로 머리에 넣고 왔습니다.”
“으음. 믿음직스럽네요. 그럼 간단하게 카메라 테스트 부터 하고 갈게요.”
첫 날은 실내 스튜디오 촬영이었다.
진호와 은서가 나란히 사진관에 들린 상황이라 정적으로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첫 번째는 한창 사랑 할 때의 모습입니다. 손장난도 치고 서로 보면서 웃기도 하고. 그런 느낌. 연인 관계니까 잘 아시겠죠?”
“맡겨 주세요. 자신 있습니다!”
“은서가 파이팅 넘치네요. 진호 씨는 오케이?”
“네. 저도 준비 됐습니다.”
진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캐릭터라면 대본을 받은 뒤부터 착실하게 쌓아 올렸다. 그리 낯설지 않은 캐릭터라 구축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럼 슛 들어갈게요.”
카운트를 하고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진호는 살짝 긴장 한 듯 한 얼굴을 한 채 은서의 손을 잡았다.
처음 느껴지는 건 온기.
그리고 손바닥을 간질이는 손가락이었다.
“긴장하지 마. 내가 옆에 있잖아.”
“사진만 찍으면 굳어서. 얼굴 이상하지?”
이를 내보이며 웃는 모습이 어색했다.
은서가 짧게 웃으며 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렇게 웃어도 예쁜 건 내 눈이 이상해서일까?”
“야, 저기 사진사 분이 들어.”
“들으면 뭐가 어때서 그래. 우리가 예쁘게만 나오면 되는 건데.”
“뭐······예쁘긴 예쁘지만.”
자신감 넘치는 여자와 조금은 쑥스러움 많은 남자.
손을 만지작거리고 웃음을 주고받고 민망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보고만 있어도 사랑하는구나, 라는 느낌이 왔다.
“컷. 컷. 잠시 만요.”
그렇게 흘러가는 걸 송학주가 스톱스켰다.
“감독님 왜요? 이상했어요?”
“아뇨. 너무 좋았는데······좀만 더 깊이 가 볼게요. 진호 씨 이거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는데, 혹시 내재적으로 가진 두려움 같은 거. 눈빛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요?”
“내재적인 두려움이라. 서로의 처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건가요?”
“네. 너무 사랑하긴 하는데, 과연 이 사람과 계속 갈 수 있을까 라는 미세한 두려움. 그런 거 있죠.”
꽤 난해한 질문에 진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머리로야 이해를 하지만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표현 될 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감독님, 우리 오빠 너무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안 될 거 같으면 요구도 안 하지.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래. 어때요, 진호 씨. 해볼까요?”
“네. 까짓것 한 번 해보죠.”
어차피 도전하러 온 길.
진호도 어려움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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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행복해 하면서도 내면에서는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눈빛.
이걸 연기로 표현하라면 어찌 해야 할까.
과거라면 비슷한 전생 두 가지를 섞어서 캐릭터를 구축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감정을 끌어 올려야 한다.
“쉽지 않지?”
“쉬우면 연기가 아니지.”
계속해서 실패했다.
행복이 지나치면 불안함이 나오지 않았고, 불안함이 지나치면 행복이 줄어들었다.
그 절묘한 밸런스.
선 위를 걷는 듯 한 연기가 핵심이었다.
“힘들면 그냥 초반부처럼 갈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할 수 있어요.”
보다 못한 송학주가 넌지시 제안했지만 진호가 거부했다. 한 번 발 들인 이상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10전 8기의 각오로 계속해서 부딪쳤다.
“사랑하지만 불안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내재적인 불안이어야 해.”
홀로 독백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특별함이 없는 지금에서 할 수 있는 건 계속해서 부딪치는 것뿐이었다.
‘아니야. 틀을 잡지 말자. 지금 이 순간이 중요 한 게 아니라고. 이 남자의 인생. 그런 삶 속에서 찾아온 연인. 그걸 느껴야 해.’
가만히 눈을 감고 그려 봤다.
돈 없는 학생.
학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비를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삶이다.
우연한 기회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지만 그녀는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부유한 집의 자식.
돈 쓰는 것도 다르고 옷 입는 것도 다르다.
행복에 겨워 매일같이 웃지만 차이점을 모르진 않는다.
언젠가 그 차이가 사이를 갈라놓지는 않을까.
그런 불안감 역시 매일같이 찾아오는 것이다.
“오빠······울어?”
“아. 불안함만이 아니구나.”
“응?”
“불안은 결국 미래에 대한 거잖아. 그 말은 앞일에 대한 감정도 같이 느끼고 있다는 거야. 슬픈 거지. 이별이 찾아올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대한 슬픔.”
진호가 흘러나온 눈물을 닦고 카메라 앞에 섰다.
지금 이 순간은 진호가 아닌 배역 속 남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 이미 그 남자였다.
“한 번 더 갈게요.”
끄덕이는 송학주.
카메라가 돌고 사랑하는 두 연인의 짧은 잡담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진호의 눈빛.
행복함에 웃음 짓는 얼굴 위로 덧씌워진 불안과 슬픔으로 뒤엉킨 눈빛이었다.
카메라는 한 컷도 놓치지 않고 이를 오롯이 잡혔다.
“······완벽해.”
흘러나오는 송학주의 혼잣말처럼.
완벽한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