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46화 (146/178)
  • Chapter65. 앞으로 나가는 법(2)

    [연극 무대에 나타난 홍 진호]

    신문 1면에 찍혔다.

    관객들의 인터뷰와 지난 공연 이야기들로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대부분이 자극적인 제목을 쓰고 있었다.

    세계적인 천재의 몰락.

    얼마나 좋은 기사거리인가.

    무너진 천재의 처참한 모습을 여과 없이 그려내고 혹독한 평들을 가감 없이 실었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즐거워했다.

    슬퍼하는 팬들도 많았지만 성공한 누군가의 몰락을 씹고 뜯는 건 평범한 사람의 즐거움이었을 뿐이다.

    “진호야. 이건 아니지 않냐?”

    “죄송해요, 대표님.”

    “나는 널 존중하지만 수습 가능한 선에서 했어야지. 이렇게 퍼진 마당에 내가 무슨 수로 손을 쓰겠어.”

    곤란은 최현석 대표와 블루 아이를 찾아왔다.

    누가 뭐래도 회사의 대표 얼굴은 진호였다.

    그가 사고로 몰락한 모습이 대중에게 알려져 버렸으니 주가의 하락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우리와 계약을 끊겠다는 곳이 수십 곳이야. 침묵하는 이들도 연장은 엄두에 못 내겠지. 우리 자본이 아무리 좋아도 이런 식이면 못 버텨.”

    “손해는 제가 매우도록 할게요.”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그런 의미가. 너 어쩌자고 그런 거냐고? 자포자기 한 거야?”

    손해는 사업으로 매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희망이 꺼지면 되살리는 건 어렵다.

    그렇기에 최현석은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나 진호가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대표님. 나,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뭘?”

    “얼마나 연기를 사랑하고 있었는지요.”

    “갑자기? 사랑해서 공개를 했다는 거냐?”

    “그래야 했어요. 가면 뒤에 숨어서는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안 보이더라고요. 비난이든 칭찬이든 동정이든. 모든 걸 정면에서 맞으면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포기 한 건 아니지?”

    “제가 포기를 왜 해요. 대표님 먹여 살려야 하는데.”

    “새끼, 입은 살아있네. 그래, 뭐. 포기 안 했으면 됐다. 손해 보는 거야 어떻게든 매우면 되지.”

    밝아 보이는 얼굴에 최현석이 한시름 덜었다.

    어차피 진호가 성공하면서 벌어왔던 것들.

    이번 일로 손해가 쌓인다고 해서 억울해 할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뭔가 실마리라도 잡힌 거냐?”

    “네. 세상에는 버려야 얻는 것도 있는 거 같아요.”

    “버려야 얻는다?”

    옛 진호를 보내야 새 진호가 올 수 있다.

    나아감을 위해 비우는 건 당연한 일.

    한 겨울의 탈피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

    진호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생각보다 얼굴이 편해 보이시네요.”

    은수의 첫 마디는 그것이었다.

    “사건 사고에는 익숙해져 있습니다. 차라리 밝혀져서 마음이 편해요.”

    “그럼 다행이네요. 심리적 안정감이 필요한 시점에 흔들리면 곤란했을 겁니다.”

    “오늘도 전처럼 치료하실 건가요?”

    “일단 상태를 먼저 보고요. 컨디션은 나쁘지 않죠?”

    “각오는 단단하게 하고 왔습니다.”

    23번의 연기로 진땀을 뺐었다.

    이번에는 배는 할 각오로 단단하게 준비를 해 왔다.

    은수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차트를 건넸다.

    “이건······연기 별 분석인가요?”

    “네. 지난 연기를 돌려 보면서 정리했어요.”

    “이것도 치료의 일종이겠죠?”

    “네.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반응이 나오는지. 심리적 저항감은 육체 신호로도 충분히 구별이 되거든요.”

    툭툭. 은수가 차트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예를 들어서 이곳. 살인자의 감정이 나와야 할 곳에 국어책 읽기가 등장했죠.”

    “끄응. 국어책 수준이었습니까?”

    “네. 지나칠 정도로요. 흐름 상 갑자기 연기가 탁 풀려버리는 느낌이었어요.”

    “탁 풀려요?”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하면 좋겠죠. 그 전 까지도 엉망이었지만 여기부터는 최악이었어요.”

    진호가 차트를 쭉 살폈다.

    은수의 말대로 연기가 한 풀 꺾이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공연을 시킨 겁니까?”

    “네. 회사 연습생이나 지인들은 그 전의 진호 씨를 덧씌워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은 눈이 필요했어요.”

    “과거의 진호가 아닌 지금의 진호. 현재의 연기를 보라는 거죠?”

    “심리적 구속이라 생각해요. 왕년의 내가, 라고 말 하는 사람들 있죠? 극단적이지만 그런 마음이 지금의 연기를 방해하는 거죠.”

    진호 역시 같은 것을 느꼈었다.

    과거에 구속되어 지금의 연기를 하지 못하는 느낌.

    “그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연기를 해야 할까요?”

    “과거를 완전히 잊고 연기를 하면 좋겠죠. 하지만 사람이 컴퓨터도 아니고 그런 건 쉽지 않습니다.”

    “방법이 있으니 얘기를 꺼낸 거겠죠?”

    “일종의 명상법이에요. 자기 객관화를 하는 방식인데, 이번에는 진호 씨를 과거의 진호 씨와 분리하는 거죠.”

    은수는 두툼한 책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척 보기만 해도 두통이 올 만큼 어려운 책이었다.

    “책에 표시를 해 뒀어요. 오늘 해보고 난 뒤에는 틈 날 때마다 해보도록 하세요.”

    “이걸 하면 과거와 현재를 구분 할 수 있는 겁니까?”

    “최대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거죠. 진호 씨가 가졌던 독특한 기질은 대상에 대한 몰입에 있었어요. 이런 기질이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는 최대한 분리하여 몰입 정도를 조절하는 편이 최선입니다.”

    “몰입을 제어하라?”

    “네. 전에는 자연스럽게 되던 것이 지금은 안 되잖아요. 그러니 몸이 삐걱거리고 자연스럽게 거부반응이 나오는 겁니다. 일단은 그 속도를 제어하며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는 것으로 시작하죠.”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던 고층 빌딩을 계단으로 가야 한다.

    힘들고 고된 일이지만 갈 수 있으면 족하다.

    “까짓것 해 보죠.”

    진호는 각오를 다졌다.

    #

    명상이라고 대단한 건 아니었다.

    조용한 노래에 반복적인 자기 암시로 스스로를 분리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잠만 쏟아졌지만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커다란 철창인가.’

    진호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던 틀.

    그 틀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감이 잡히나요?”

    “대충 느낌은 오네요. 근데 이걸 연기에 어떤 식으로 부합시켜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괴리감을 없애야죠. 연기를 하는 주체가 과거의 진호 씨가 되어서는 안 돼요. 지금의 진호 씨가 연기를 해야지.”

    “일단······되는대로 한 번 해볼게요.”

    진호가 명상을 마치고 예의 연기를 다시금 시도했다.

    살인마 잭이 등장하는 그 소설이었다.

    숨을 천천히 고르고 캐릭터에 본인을 이입해 들어갔다.

    [살인마 잭은 쾌락을 탐하는 놈]

    [더러운 계집들을 정화하는 구도자]

    [내면의 열등감. 분노를 폭발시키는 건 열등감의 표출]

    여러 가지 느낌들이 쏟아졌다.

    이전의 진호가 가지고 있던 잭에 대한 단상이었다.

    캐릭터에 몰입하여 쌓아 올린 첨탑.

    지금의 진호는 그것을 올려다보며 몸에 닿지 않게 빙빙 돌 뿐이었다.

    “너는······”

    한 마디를 뱉는 것조차 힘들었다.

    지금 해석하는 캐릭터와 과거에 해석된 캐릭터에는 분명 격차가 존재했다.

    1레벨짜리가 쓰는 마법과 99레벨이 쓰는 마법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

    동일한 캐릭터지만 깊이가 달랐다.

    ‘괴리감.’

    그 차이가 괴리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불편함.

    숨을 막히게 하고 감정의 흐름을 방해했다.

    “너는······”

    과거의 자신이 아닌 현재의 자신.

    진호가 감정의 흐트러짐을 바로잡고 과거의 자신을 밀쳐냈다.

    한 때 이룩했던 것이나 지금은 가지지 못한 것.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에 흔들리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는 연기를 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기에 대한 마음이다.

    “너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진호가 겨우 한 마디를 뱉어냈다.

    어딘가 어수룩한 살인마 잭이 그곳에 있었다.

    “하—!”

    무너지듯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고작 한 마디에.

    “수고하셨어요.”

    “뭔가 된 건가요?”

    “네. 이제 첫 발을 떼셨어요.”

    그런 건가.

    건네는 수건을 받으며 진호가 웃었다.

    이제야 수많은 연기 지망생들과 같은 선상에 선 기분이었다.

    #

    가장 좋은 연습은 반복이다.

    진호는 단순한 진리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지금껏 했던 연기 영상을 전부 따 와서 재녹화를 하면서 반복 연습했다.

    수십, 수백······

    그 이상으로.

    “전보다 확실히 좋아졌어요.”

    “응. 응.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효과는 느리지만 착실하게 나왔다.

    아영과 그녀의 친구들이 한 입으로 칭찬했다.

    공연을 망친 탓에 욕할 만도 한데, 다들 심성이 좋았다.

    “마지막 대사 칠 때. 조금 더 강하게 하는 편이 낫겠지? 살짝 발음을 누르듯이 하면서.”

    “너무 강하면 엉키지 않을까요? 살짝 템포 죽이고 한 번에 올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숨 고르듯이?”

    “네.”

    진호는 그때마다 피드백을 받았다.

    전처럼 한 번에 모든 걸 해내는 완벽남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쌓아 올리는 노력가는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공연의 완성도도 조금씩 높아져 갔다.

    “오늘도 촬영하러 왔네요.”

    “우리야 이걸 기회로 얼굴 알려서 좋지만, 진호 형은 꽤 피곤하겠어요. 매일같이 신문에 오르내리고.”

    “스타라고 편한 건 아니지.”

    특정을 찾아 방문하는 언론사 인물들 앞에서 매일같이 검증을 받았다.

    혹평과 혹평. 비난과 비난. 동정과 동정.

    하루가 멀다 하고 실리는 기사들은 주변 사람들이 더 걱정 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진호는 되레 편안했다.

    100의 악평이 99의 악평과 1의 호평이 된다면 족하니까.

    지금은 그 하나를 위해서 나아가면 될 뿐이었다.

    “형. 다음 차례에요.”

    “오케이. 준비는 다 끝났어.”

    그렇게 진호는 오늘도 무대에 섰다.

    #

    “선생님, 선생님! 나 배역 땄어요!”

    찬 날씨에 옷이 두꺼워 질 무렵.

    세미가 대본을 흔들며 진호에게 자랑하러 왔다.

    “주연이야?”

    “네! 청춘 드라마 주인공이에요!”

    “청춘 드라마라. 할 수 있겠어?”

    “그럼요. 첫 주인공인데 불이라도 삼켜야죠!”

    연기력이 물오를 만큼 오른 세미다.

    청춘 드라마 주연 정도는 씹어 먹고도 남을 정도.

    진호도 그 점을 알기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잘하고. 선배님들 보면 인사 하는 거 잊지 마. 주연 됐다고 바로 거만해지고 그러면 못 써.”

    “알아요, 알아. 대표님도 만날 그 얘기만 하시던데. 넌 천방지축이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하하. 알면 다행이네.”

    “피. 내가 얼마나 잘하는데.”

    진호가 입술 비죽이는 세미의 머리를 다독여 주었다.

    넘치는 재능만큼 겸손하고 바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건 그나 최현석이나 같은 마음이었다.

    어디까지나 친동생 같은 마음으로 보고 있으니까.

    “진호, 선생님. 나 대본 좀 같이 연습해 주세요.”

    “상대역으로? 괜찮겠어?”

    “네! 첫 주연 연습은 꼭 선생님이랑 하고 싶었어요.”

    “네 연기를 감당하려면 내가 빠듯할 텐데.”

    “헤헤. 살살해 드릴게요.”

    “자식이. 겸손하라고 했지?”

    “넵!”

    피식 웃으며 대본을 건네받았다.

    전형적인 청춘드라마의 초반부.

    남녀 주인공이 우연한 일로 서로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대사가 많고 감정이 꽤 격했다.

    “그럼 도입부터 한다.”

    “네.”

    둘 다 연기자.

    진호는 설명은 제하고 곧바로 연기를 시작했다.

    대사를 눈으로 보고 감정은 상황에 맞췄다.

    이에 세미 역시 곧바로 응수했다.

    장난치던 꼬마에서 풋풋한 소녀의 느낌을 풍겼다.

    “아. 미안. 실수했다. 다시 한 번 가자.”

    “헤헤. 천천히 가요.”

    진호는 세미의 연기를 따라가지 못했다.

    연습의 차이도 있지만 몰입의 정도가 달랐다.

    세미는 순식간에 캐릭터가 되어 진호를 몰아쳤고 진호는 겨우 겨우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후우. 여기까지만 하자. 힘들어서 못하겠다.”

    “힝. 조금 더 하고 싶었는데.”

    “너 만한 에너지가 없다. 나중에 또 봐 줄게.”

    “네, 선생님.”

    연습은 그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끝났다.

    세미는 해소되지 않은 캐릭터에 혼자 남아서 독백을 더 이어갔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저기에서는 저렇게.

    진호가 해 주었으면 하는 모습들이 더러 있었다.

    ‘······어라.’

    그러다 문득 세미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리는 장면을 진호 오빠가 어떻게 알았지?”

    무언가 더, 라는 생각은 이미 틀이 맞았다는 이야기.

    부족함은 잊을지언정 전체 흐름은 세미가 그리던 것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대본을 받아서 즉흥으로 했는데도.

    “신기하네.”

    세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신기한 일. 신기한 사람.

    그녀는 한 동안 진호의 그림자를 쫓아 홀로 연기를 이어갔다.

    부족함은 있어도 어긋남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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