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45화 (145/178)

Chapter65. 앞으로 나가는 법(1)

이른 아침.

진호가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를 뛰었다.

심장 고동소리가 거세지고 땀이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이른 시간부터 스쳐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부터 새벽 공부를 가는 학생. 장거리 출근을 위해서 움직이는 직장인들까지.

시간이 무색 할 만큼 거리 위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아. 하아······”

모두가 열심히 살고 있다.

사는 만큼 돌아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자신은 어떤 사람일까.

우연히 얻은 힘으로 남들은 꿈도 못 꾸는 부와 명예를 전부 거머쥔······도둑놈?

아니면 사기꾼이려나.

“스스로 이룬 것은 없다.”

입 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아니다.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했는가.

남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부정이 곧바로 따라왔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신인 배우조차 그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밑바닥부터 구르고 굴러야 작은 기회를 얻는다.

정말로 이런 노력과 비교해서 당당 할 수 있을까?

“이런 거 무시하고 잘 사는 사람도 많은데.”

세상은 불공평하니까.

가진 채 태어나서 호의호식하는 이들은 널렸다.

노력 따위는 하지 않은 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지위와 영광을 부끄러움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 역시 너무나 많다.

자책은 어리석음이고 후회는 순진함일 뿐이다.

그걸 알지만 이렇게 속이 쓰린 건 정말로 그 자신이 연기를 사랑하기 됐기 때문일 것이다.

“잘 하고 싶으니까.”

잃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연기가 얼마나 큰 의미를 지녔는지다.

표현의 자유, 주고받는 대사의 쾌감, 격정과 슬픔을 오가는 감정의 선율.

이렇게 연기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이제야 알게 되니 지난날의 자신이 후회될 뿐이다.

“다시. 다시 잘하고 싶다.”

새벽바람에 바람을 날려 보냈다.

이 삶에서 느꼈던 그 무엇보다도 간절한 마음이었다.

#

진호는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보러 갔다.

대학로에서 하는 학생 위주의 공연이었다.

작품에 대한 해석과 표현이 참신했다.

연기가 훌륭하다, 라고 말은 못 해도 열정은 대단했다.

“어, 진호 오빠?”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곳에서 아영이를 만났다.

연극 동아리 회장으로 지금도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학교 행사는 아니고. 도와주러 온 거야?”

“아르바이트 비슷하게요. 배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 손 거들었죠. 괜찮았어요?”

“응. 많이 좋아졌더라. 표정도 좋고. 실력이 부쩍부쩍 좋아지나 봐?”

“아싸. 진호 오빠한테 칭찬 받았다.”

스스럼없는 태도가 아영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양 손 쥐며 신나하다가 진호를 아예 대기실 쪽으로 끌었다.

“짜잔! 내가 누구 데리고 왔는지 보시라!”

“응? 누군데?”

“배우, 홍 진호! 들어는 보셨는가?”

“우와!”

같이 연극한 동료들에게 진호를 소개했다.

연기에 업 둔 사람치고 진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분장 지우는 것도 잊은 채 달려왔다.

“와, 진짜네. 아영이 너 친분 있다는 거 거짓말 아니었네?”

“이 양반이 속고만 사셨나. 나랑 오빠가 얼마나 친한데.”

“대박. 실물로 보는 거 처음이야. 저기, 사인 해 주실 수 있나요?”

“저도요!”

사인 해 주고 사진 찍고.

평범하게 팬들 만나서 하는 것처럼 진호는 대응했다.

다들 에너지가 넘쳤다.

사인 한 장에 신나서는 백 텀블링을 돌 정도로.

“헤헤. 오빠 바쁜데 와 줘서 고마워요. 아니다. 요즘 쉬고 있어서 한가한가?”

“쉬는 건 맞는데 한가하지는 않아.”

“으응. 그거 말이구나. 전에 은서 언니가 얘기했어요.”

“은서가? 많이 힘들어 하는 눈치니?”

“조금. 아무래도 오빠 일에는 언니가 일희일비하잖아요.”

아영이 눈치를 살피며 답했다.

반가워서 깜빡하고 있었을 뿐 그녀도 진호에 대한 소문은 들어서 안다.

정확하게는 은서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실체를 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사실 부탁 할 게 있어서 왔어.”

“부탁? 무슨 부탁.”

“공연에 나도 올라 갈 수 있을까?”

“······응?”

아영이 깜짝 놀라며 진호를 구석으로 끌고 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오빠, 무슨 소리에요. 공연이라니.”

“무대가 가면극이잖아. 익명으로 나서면 나인걸 밝히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 건 대표님이나······”

“얘기 안 했어. 대표님은 아직 민감하셔서.”

만에 하나라도 정체가 밝혀지면 소문에 살이 붙는 격이다. 최현석이 아무리 진호를 배려한다고는 하지만 이런 건 환영하지 않는다.

“얘기는 해 볼 수 있긴 하지만 괜찮은 거예요?”

“내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

“······어휴. 알았어요. 유동적인 배역이니까 한 명 정도는 충분히 가능 할 거예요.”

프로들의 무대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그렇기에 진호도 아영을 찾은 것이고.

“부탁할게.”

무대 위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처음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호가 연극에 나와 준다니까.

홍보나 이런 걸 일절 못한다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타랑 같이 연기 해 볼 경험 아닌가.

다들 좋아서 받아들였다.

“······허. 소문이 사실이었어?”

“이건 너무한데.”

“와. 이런 연기로 공연하면 위험하지 않겠어?”

하지만 연습실에 모여서 합을 맞춰보고 알았다.

왜 이런 무대에 서려고 한 건지.

소문이 퍼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부탁 좀 할게. 사람들 앞에서 여과 없는 반응을 받아보고 싶어. 동정도 비웃음도 아닌 실제 반응.”

“······진짜로 사고 때문에 그래요?”

“일시적일지 영구적일지는 나도 몰라.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다 해 보고 있어. 솔직히 무대에 서는 게 두려워. 내 연기가 어떤지는 내가 잘 아니까. 아마도 비웃겠지. 욕하는 사람도 많을 거야. 그래도 그걸 겪지 않으면 난 나아갈 수 없어.”

진호는 속이는 것 없이 털어 놓았다.

“······난 좋다고 봐. 우리가 프로는 아니잖아. 가끔 못하는 사람도 섞이곤 하고. 어차피 무료 공연이라서 뒤탈도 없을 거야.”

“우리 무대 자체가 마이너스가 될 거야.”

“알아. 하지만 너도 들었잖아. 솔직히 나 같으면 맨탈 나갔다. 이렇게 나오지도 못했을 거야. 세계적인 배우가 갑자기 자기 연기를 못하게 된 거니까. 근데, 그럼에도 하려고 나왔어. 도와주고 싶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

“나도 현우랑 같은 의견이야. 우리도 연기하면서 그따위로 하냐고 욕먹을 때면 얼마나 힘들었냐. 당장 때려 치고 싶을 때도 많았잖아. 근데도 무대에 오르는 건 연기가 하고 싶어서야. 우리나 진호 형이나.”

여러 가지 의견이 오고갔다.

갑자기 끼어 드는 진호에 반감가지는 사람은 있었으나 한 가지 만큼은 모두가 인정했다.

밑바닥에 떨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근성.

누구라도 좌절했을 법 한 상황에서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 이런 곳까지 찾아 왔다는 건, 보통 연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좋아요. 배역 하나 내어 드릴게요.”

“고맙다.”

“단, 조건이 있어요. 무대를 함께 꾸미기 시작한 이상 진호 형도 우리와 같은 단원이에요. 어떤 대접 같은 건 바라지 마세요.”

“그건 내가 바라는 일이다. 마음껏 굴려줘. 그리고 뇌물 삼아서 말하는데······”

진호가 잠시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회식은 앞으로 내가 전부 담당하마.”

남은 반대 입장마저 넘어왔다.

#

오랜만에 선 무대.

떨림과 흥분이 같이 찾아왔다.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지만 그들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집어치워.”

“저 검은 가면 놈 누구냐? 무슨 연기를 저따위로 해?”

“에휴. 우리 애들이 더 연기를 잘하겠다.”

결과가 썩 좋지 않아도.

무료에 학생들 위주의 공연이기 때문에 막말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진호는 집중 타깃.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모든 면에서 떨어졌다.

“형. 괜찮아요?”

“각오했던 일이야.”

“형은 벌어놓은 돈도 많잖아요. 굳이 이런 거 안 해도 평생 먹고 놀 수 있지 않아요?”

“말하자면 그렇지. 근데, 돈이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어. 사람은 평생에 걸쳐서 무언가를 쫓지 않으면 허망해져.”

“그게 연기라는 거죠?”

“그래. 부끄러움은 순간일 뿐이야.”

이 마음이 온전히 돌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진호는 매 공연마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2회, 3회, 회차가 올라가도 변하는 건 없었다.

연기는 여전히 엉망이었고 소문 듣고 찾아와 욕하는 사람만 늘었다.

“집어 치워!! 그딴 식으로 연기를 욕하지 마!”

팍. 머리에서 깨지는 건 달걀.

술 먹고 공연을 보러 온 어떤 중년 남자의 소행이었다.

욕 하며 스트레스 풀 대상이 있다는 건 좋은 걸까.

부쩍 이런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연을 마치고 백 스테이지로 물러 날 때, 기다렸다는 듯 던지기가 일쑤였다.

“······”

힘들다.

아무리 진호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포기하면 호화 요트에 고급 음식으로 산해진미를 차려서 즐길 수 있다.

돈이라면 썩을 만큼 있으니까.

“으하하하! 저 새끼는 연기를 발로 배웠냐?”

“저 놈 빼라고! 공연 제대로 할 생각은 있는 거냐?”

“그만 둬! 재능이 없어! 재능이 없다고!”

왜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계속 해야 하는 걸까.

태연한 척, 괜찮은 척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슴 한 쪽이 데인 듯 아프고 억누른 이에 어금니가 시려왔다.

과연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걸까.

“아이고, 이 양반아. 학생한테 그렇게 소리치고 싶어? 열심히 하는데 칭찬은 못 해줄 망정에.”

“쯧쯧. 재능이 없으면 때려치워야지. 저런 꼴로 언제까지 할 건데?”

객석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부부가 같이 공연을 보러 왔다가 틀어진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공연을 이어 갈 수 있을까.

‘나 하나의 욕심 때문에 애들을 너무 괴롭히는 걸까.’

미안함, 죄책감, 부담감.

감정은 썩은 동아줄처럼 몸을 칭칭 감아왔다.

“어휴. 썩은 눈깔 아저씨야. 저 학생 많이 늘었더만. 첫날보다 지금이 훨씬 낫다고. 사람이 배워서 늘면 칭찬을 해야지.”

“늘긴 뭘······”

“늘었어. 늘었다고. 전보다 지금이 훨씬 감정이 풍부하잖아. 그것도 몰라?”

“그런가?”

또 다시 들려온 대화.

진호가 공연 대사를 이어가던 모습 그대로 멈췄다.

“혀, 형. 대사.”

나란히 선 동생의 말에도 답하지 못했다.

너무 단순한, 하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방금 들었기 때문이다.

‘실력이 늘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과거의 진호’만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 연기와 비교하면 항상 망가진 상태였을 뿐이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

진호가 말없이 관중석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었다.

“뭐, 뭐야!?”

“저 사람 설마······!?”

“형!”

“진호잖아!!”

다급한 배우들의 목소리와 놀란 관객의 외침들.

그 속에서 진호는 맨얼굴을 드러낸 채 웃었다.

아니, 이제야 웃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껏 뒤만 보고 있었구나.”

이제야 앞이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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