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전생 배우-143화 (143/178)
  • Chapter64. 다시 처음부터(1)

    진호는 한 달 만에 깁스를 풀었다.

    아직 팔 움직임은 어색했다.

    한두 달 정도는 더 재활 훈련이 필요한 상태였다.

    그래도 자유롭게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은 기분 좋았다.

    “한 달 만에 몸이 더 좋아졌다?”

    “좋은 밥 먹고 있으니 살만 찌나 봅니다.”

    “아니다, 인마. 얼굴이 좋아 보여.”

    깁스를 푼 김에 서울에 올라왔다.

    오랜만에 본 최현석이 너털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진호가 드라마에서 하차하면서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을 텐데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회사는 어때요? 저 없으니까 힘들죠?”

    “자식이. 우리 회사가 너 하나만 보고 가는 회사냐?”

    “아니었어요?”

    “새끼, 농담은. 다들 자기 앞가림 잘 하고 있다. 하윤이랑 세미는 드라마 들어가고 루카도 공연에 초대받았어. 선아는 조만간 콘서트 열고.”

    진호에게 가려져 있었을 뿐, 블루 아이 소속 연예인들의 잠재력은 하나같이 뛰어났다.

    가장 평범한 하윤이부터 세미나 루카 등.

    조금씩 싹을 틔워가고 있었다.

    “우리 팀은 어때요? 갑자기 붕 떠서 혼란스러워 할 텐데.”

    “뭐, 여기저기 붙이고는 있는데 다들 맥 빠졌지. 미국 활동을 단단히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그런가요. 괜히 미안하네요.”

    “됐어, 인마. 사고가 네 책임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팀, 진호는 졸지에 블루 아이 공용 자산이 됐다.

    미국 활동이 전면 중단되면서 인력을 회사로 돌릴 수밖에 없던 것이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던 분업 시스템도 올 스톱.

    돈이야 나온다지만 이래저래 실망한 이들이 여럿이었다.

    “온 김에 애들 연습하는 거나 보고 가라.”

    “하윤이랑 올라와 있어요?”

    “아니. 지난 분기에 계약한 연습생들. 네 얼굴 한 번 볼까 싶어서 기웃거리는 애들 많거든. 온 김에 도장이나 찍어주고 가.”

    “그러죠, 뭐.”

    진호가 상큼한 얼굴로 답했다.

    그 모습에 최현석이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도 더 밝은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연기가 안 된다는 건 해결이 된 건가?’

    그런 희망을 가질 만큼.

    “가자. 나도 좀 보게.”

    앞장서는 걸음이 빨랐다.

    #

    지하 연습실에 사람이 북적거렸다.

    지난 분기에 회사와 계약한 연기 지망생들이다.

    곧 있을 대학로 공연을 위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어떠냐. 다들 괜찮지?”

    “다들 나이가 어려 보이네요.”

    “학교 동아리나 연극무대에서 싹수 보이는 애들을 미리 계약해 뒀지. 너 보고 찾아오는 애들이 많아서 고리기는 편했다.”

    “흐응.”

    하나같이 훤칠하고 연기력도 출중했다.

    발성이나 표현 등도 상당히 세련되어 신인이라고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다.

    “자자. 다들 집중.”

    최현석은 그대로 연습실로 직행했다.

    박수로 사람들을 집중시키며.

    “여기. 너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이 왔다.”

    “어? 우와! 홍 진호다!”

    “우와! 진호 선배님!”

    “대박! 진짜에요?”

    최현석 뒤를 이어 진호가 등장하자 엄청난 반응이 나왔다. 젊은 배우치고 진호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거였다.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네요. 잠깐 구경하려고 하는데, 불편하진 않죠?”

    “네! 당연하죠! 완전 영광입니다!”

    “우와. 진호 선배님이 직접 봐 주신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떠, 떨려.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거 같아.”

    한 마디 한 마디에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면서도 눈을 빛내는 것이 진호 앞에서 연기를 뽐 낼 생각이 가득했다.

    우상 앞에서 실력을 보인다는 것.

    두렵지만 흥분되는 일이었다.

    “자자. 웅성거리지 말고 하던 거 계속 해 봐. 여기서 보면서 얼마나 잘하는지 평가 해 줄 테니까.”

    “대표님은 나가 계시면 안 돼요?”

    “시끄러워, 인마.”

    “우우. 독재자.”

    대표와 연습생답지 않은 거리감이었다.

    거울 맞은 편, 의자 두 개에 최현석과 진호가 나란히 앉았다.

    연습생들은 서로를 보며 신호를 주고받다가 기습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몸에 베일 정도로 연습을 했다는 증거였다.

    “어떠냐? 제법이지?”

    “네. 가까이서 보니까 알겠어요. 다들 실력이 좋네요. 특히 저 긴 머리 학생하고 건너 편 여자아이가 좋아요.”

    “보는 눈은 여전하구나.”

    “하하. 눈만 높아서 고민입니다.”

    실력은 죽었지만 보는 눈은 그대로였다.

    진호는 연습생들이 얼마나 진심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불같은 감정을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나도······’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그만, 그만. 수고했다.”

    20여분의 짧은 연습이 끝났다.

    최현석은 박수치며 일어나고 진호는 여전히 상념에 빠져 잔상을 쫓았다.

    “후우. 후우. 진호 선배님, 어땠어요? 저희 연기 괜찮았나요?”

    “······음. 아아. 네. 다들 기본기가 탄탄하네요. 발성도 좋고. 연습량이 보이는 거 같습니다.”

    “아싸! 진호 선배님한테 칭찬 받았다!”

    아이 같은 질문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럼 저희 중에 누가 제일 나은 거 같아요?”

    그리고 뒤이어 기대감 가득한 질문이 이어졌다.

    반짝이는 눈들 안에는 뜨거운 열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항상심은 필수적인 요소.

    같은 일을 하는 동료라고는 하지만 남보다 낫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었다.

    “다들 실력이 좋아서 콕 집기는 힘드네요. 굳이 말자면 거기 두 분?”

    진호는 앞서 거론했던 두 사람을 가리켰다.

    지목 된 둘은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에이. 저 둘 보다야 제가 낫지 않나요?”

    물론,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큰 차이는 아니에요. 그냥 저 둘이 보다 생동감이 있게 느껴진 것뿐이죠. 오늘 유독 컨디션이 좋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납득하기 어려운데······선배님. 그러지 말고 시범 한 번 보여주시면 안 됩니까?”

    “시범이요?”

    “네. 제가 저 둘보다 어떤 점이 모자랐는지 알고 싶어요.”

    아니면 그냥 진호의 연기를 보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한 명을 운을 띄우자 주변 연습생들도 ‘보여줘! 보여줘!’라며 흥을 돋웠다.

    전설적인 진호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 기색이었다.

    “크, 크흠. 자식들이 실력이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지 어디서 선배한테 하라 마라야?”

    “뭐에요, 대표님. 대표님 연기는 안 보고 싶거든요?”

    “이것들이······”

    “괜찮아요.”

    혹시 몰라 나서던 최현석을 진호가 제지했다.

    굳이 그렇게 기 쓰고 막을 일도 아니었다.

    “연기를 보고 싶다고요?”

    “네! 꼭 보고 싶습니다.”

    “그럼 짧게 해 볼게요.”

    진호가 연습생들을 가로질러서 중앙에 섰다.

    ‘오! 드디어 본다!’ 기대감 서린 말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정작 연기를 시작하자 쏙 들어갔다.

    “······어. 내가 이상한건가?”

    “좀 이상하지?”

    “응. 연기가 너무 어색하지 않아?”

    어색한 연기.

    대사나 동작은 둘째 치고 감정이 너무 약했다.

    이건 마치 연기를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의 모습과 같았다.

    “에이. 장난이겠지.”

    “그치?”

    쉬이 믿지 못했다.

    세계적인 스타가 이런 어설픈 연기를 한다는 것이 장난 아니면 설명이 안 됐다.

    “뭐지. 장난 아닌 거 같은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기하는데.”

    “저렇게 진지하게 하는 연기가 장난이라고?”

    “그럼 뭔데.”

    “설마 저게 실력이겠어?”

    “말 도 안 돼.”

    저들끼리도 의견이 갈렸다.

    “설마 그 소문이 진짜였나?”

    “소문? 무슨 소문.”

    “그거 있잖아. 전에 그 총격 사건으로 충격을 심하게 받았다고. 뇌에 문제가 생겨서 연기를 못하게 됐다던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그럼 저게 뭔데? 넌 저게 장난으로 보여?”

    답은 나오지 않은 채 침묵이 이어졌다.

    연습생들이 보여 주었던 20분과 동일한 시간.

    진호는 혼자서 그 시간을 모두 소화 한 채 마무리를 지었다.

    몸에서는 땀이 비옷 듯 나와 푹 젖어 있었다.

    “어떤가요?”

    그리고 돌아서며 건네는 질문에 연습생들은 답하지 못했다.

    “답 할 사람, 아무도 없나요?”

    “저기 진호 선배님. 장난으로 저희 놀리려는 거죠?”

    “아니에요. 전 진지하게 한 겁니다. 감상을 듣고 싶은데. 해 줄 사람 없나요?”

    “······아니, 진심으로 그게 연기였어요? 그런 건 초보 지망생도 안 할 연기 아닙니까.”

    결국 한 명이 대놓고 의견을 드러냈다.

    주변 연습생들이 움찔하고 최현석조차 눈썹을 들썩였지만 진호만큼은 침착했다.

    되레 반색하며 다시 물었다.

    “어떤 점이 이상한가요?”

    “아니, 전부 다요. 대체 감정 처리를 누가 그렇게 합니까? 목각인형도 아니고.”

    “목각 인형이라. 그만큼 감정이 메말랐다는 거군요.”

    “그래요. 학교였으면 그딴 걸 연기로 하냐고 호되게 혼났을 겁니다.”

    “혼나는 게 도움이 되던가요?”

    “네?”

    “혼나면 연기에 도움이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을 하던 연습생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문답인지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아니······되긴 되죠. 혼난 만큼 그 부분을 열심히 연습하곤 하니까요.”

    “연습만으로 되는 건가요?”

    “자꾸 그런 걸 왜 물어봐요!”

    “알고 싶으니까요.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연습을 해 왔는지.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접근하는지.”

    혼란을 넘어서 화가 치미는 수준까지 왔다.

    “하하. 진호야 그만 하자. 이 정도면 애들도 알아 들었을 거다.”

    그 전에 수습하는 건 최현석의 몫.

    “대표님.”

    “자자. 다들 돌아가서 연습이나 해.”

    “전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뭐하고 있어! 다들 돌아가라니까!”

    느닷없는 고함에 연습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진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그런 최현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생각했어.”

    사과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할까.

    그냥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다.

    #

    회사에 소문이 퍼졌다.

    진호가 총격 사건 이후로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소문이었다.

    “······앞으로는 애들 앞에서 연기하지 마라.”

    “대표님이 봐달라고 데려 갔으면서.”

    “그거야, 그땐 네가 좀 괜찮아 진 줄 알았으니까 그랬지.”

    골머리 앓는 건 최현석이었다.

    “대표님. 대표님은 제가 연기를 엉망으로 하고 있으면 보기 힘드세요?”

    “그런 거 또 왜 묻냐?”

    “혹시나 부끄러워하는 건 아닐까 해서요.”

    “야. 부끄럽긴 누가 부끄러워. 사람이 다쳐서 그런 걸. 괜히 너 상처받을까봐 그러는 거지.”

    “상처 같은 건 안 받아요. 그런 거 받을 시간 없다는 것도 알고 있거든요.”

    진호가 끄덕이던 노트를 펼쳐 보였다.

    끝에 몇 장 안 남은 손 떼 탄 노트였다.

    “이거 뭐냐?”

    “연습노트요. 혼자서 할 때 보다 남들 앞에서 할 때가 느끼는 점이 많네요.”

    “······저번에 그 연기 연습하던 거네? 이렇게 빼곡하게 정리했다고?”

    노트에는 그 날의 연습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작은 동선부터 초 단위의 감정.

    미세한 발성의 흐트러짐까지 전부.

    “다시 한 번 시작하려면 남보다 배는 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너. 이런 식으로 회복 할 생각이냐?”

    “회복이 아니에요. 그냥 처음부터 다시 쌓는 거죠.”

    “하. 너도 참 미친놈이다.”

    “하하. 그러니까 이젠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밑바닥의 밑바닥부터 굴러야 할 테니까요.”

    이게 웃으면서 할 이야기인가.

    최현석이 어이없는 얼굴로 진호를 봤다.

    근데 또 뭐랄까.

    이 대책 없는 놈의 얼굴이 참 밝으니 타박 할 마음이 안 생긴다.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널 누가 말리겠냐.”

    그리고 은근히 기대가 된다.

    밑바닥을 거쳐서 다시금 쌓아 올리면 이놈이 또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하는 기대.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이놈이 진호니까.

    0